2024.05.31 (금)

  • 구름조금속초18.9℃
  • 구름많음21.9℃
  • 구름많음철원19.3℃
  • 구름많음동두천18.6℃
  • 구름많음파주18.3℃
  • 맑음대관령17.6℃
  • 구름많음춘천21.6℃
  • 흐림백령도13.8℃
  • 구름조금북강릉17.9℃
  • 맑음강릉19.9℃
  • 맑음동해17.6℃
  • 구름많음서울18.4℃
  • 흐림인천18.2℃
  • 구름많음원주22.1℃
  • 맑음울릉도17.6℃
  • 구름조금수원18.3℃
  • 구름조금영월22.1℃
  • 맑음충주22.1℃
  • 구름많음서산18.8℃
  • 맑음울진18.7℃
  • 맑음청주20.6℃
  • 구름조금대전20.9℃
  • 맑음추풍령22.3℃
  • 맑음안동21.8℃
  • 맑음상주23.0℃
  • 맑음포항23.3℃
  • 맑음군산18.3℃
  • 맑음대구25.4℃
  • 맑음전주19.0℃
  • 구름조금울산20.6℃
  • 맑음창원21.8℃
  • 맑음광주20.1℃
  • 맑음부산19.7℃
  • 맑음통영20.2℃
  • 맑음목포18.5℃
  • 맑음여수20.7℃
  • 맑음흑산도17.1℃
  • 맑음완도19.7℃
  • 맑음고창18.6℃
  • 맑음순천21.5℃
  • 구름조금홍성(예)19.2℃
  • 구름조금19.1℃
  • 구름많음제주19.3℃
  • 구름조금고산17.4℃
  • 구름많음성산19.4℃
  • 구름많음서귀포19.4℃
  • 맑음진주22.2℃
  • 흐림강화17.6℃
  • 구름많음양평20.7℃
  • 구름조금이천19.9℃
  • 구름많음인제22.5℃
  • 구름많음홍천21.2℃
  • 맑음태백16.4℃
  • 맑음정선군22.0℃
  • 맑음제천21.0℃
  • 구름조금보은21.0℃
  • 구름조금천안19.1℃
  • 구름조금보령17.1℃
  • 구름조금부여19.6℃
  • 구름조금금산20.5℃
  • 구름조금19.7℃
  • 맑음부안18.5℃
  • 맑음임실18.6℃
  • 맑음정읍18.6℃
  • 맑음남원21.2℃
  • 맑음장수19.2℃
  • 맑음고창군17.9℃
  • 맑음영광군18.2℃
  • 맑음김해시20.8℃
  • 맑음순창군20.5℃
  • 맑음북창원22.5℃
  • 맑음양산시22.3℃
  • 맑음보성군22.6℃
  • 맑음강진군21.0℃
  • 맑음장흥21.0℃
  • 맑음해남19.5℃
  • 맑음고흥21.9℃
  • 맑음의령군24.4℃
  • 맑음함양군23.4℃
  • 맑음광양시22.6℃
  • 맑음진도군17.6℃
  • 맑음봉화17.6℃
  • 맑음영주19.5℃
  • 맑음문경20.2℃
  • 맑음청송군18.2℃
  • 맑음영덕18.8℃
  • 맑음의성20.9℃
  • 맑음구미22.9℃
  • 맑음영천22.2℃
  • 맑음경주시22.7℃
  • 맑음거창21.1℃
  • 맑음합천23.2℃
  • 맑음밀양24.6℃
  • 맑음산청23.8℃
  • 맑음거제21.1℃
  • 맑음남해22.4℃
  • 맑음22.4℃
기상청 제공
‘최면’에 관한 기독교적 견해는?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면’에 관한 기독교적 견해는?

크리스천 큐앤에이

Q 질문 : 기독교에서 보는 최면에 대한 관점과 그 관점에 대한 이유(근거)를 알고 싶습니다.


A 답변 : 최면이란 원래 ‘잠(hypnosis)’이라는 말에서 비롯된 헬라어로, 자신에게 최면을 건 사람의 지시를 따라 일정한 행동 혹은 말을하게 되는 상태입니다. 100년 전, 심리 분석학이 시작될 당시 프로이트와 융은 인간의 심리분석을 위해 최면을 사용하였습니다. 일반적인 상담보다 최면을 통해 이야기할 때 훨씬 저항이 없이 자신의 기억이나 삶을 진술하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프로이트나 융은 최면의 한계가 분명하였기 때문에 그 방법을 버리게 됩니다.


인간의 뇌가 전능한 잠재력이 아닌 것처럼, 그것이 보여주는 최면의 잠재력 역시 제한되고 조작됩니다. 최면에서 드러나는 구체적인 내용 역시 그 개인의 환상이나 소망이나 불안의 감정들에 의해 조작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최면에서 나온 진술들을 문자적으로 믿는 것은 근거가 없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기독교의 신앙이나 신학에서 최면에 대해 말하는 것을 쉽게 찾을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선명한 의식의 상태에서, 책임 있는 개인 인격의 각성 가운데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이웃과의 교제를 지향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관점에서 볼 때 최면은 건전한 기독교적 신앙 실천의 중심에 들어오기 힘듭니다.


하지만 실제 최면의 양상들을 보면 다분히 종교 체험적입니다. 최면에는 영적 개방성이 있어서, 자칫 최면이 영적으로 불건전한 또 다른 영적인 존재들을 끌어들이거나 만나는 통로가 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최면은 결코 성령의 통로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은 오직 그리스도를 모시고 살아가는 현실과 의지의 원리가 전제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에 의해 특별하게 감독받아 허용된 제한된 목적의 상황 외에, 최면에 접하는 것은 스스로 영적인 위험에빠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답변자 : 하재성 교수 (고려신학대학원 실천신학)

<‘크리스천 큐앤에이’(도서출판 등과 빛) 中 요약 발췌>

관련기사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