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25 (토)

  • 구름많음속초13.3℃
  • 맑음14.8℃
  • 구름많음철원15.2℃
  • 맑음동두천15.6℃
  • 맑음파주15.7℃
  • 흐림대관령10.1℃
  • 맑음춘천15.5℃
  • 흐림백령도15.0℃
  • 구름많음북강릉13.2℃
  • 구름많음강릉14.6℃
  • 흐림동해16.4℃
  • 맑음서울19.4℃
  • 안개인천16.3℃
  • 맑음원주21.0℃
  • 맑음울릉도14.1℃
  • 박무수원16.1℃
  • 흐림영월17.7℃
  • 구름많음충주19.6℃
  • 구름많음서산15.6℃
  • 흐림울진16.0℃
  • 흐림청주21.7℃
  • 흐림대전20.6℃
  • 구름많음추풍령17.2℃
  • 구름많음안동17.2℃
  • 구름많음상주18.0℃
  • 흐림포항17.1℃
  • 구름많음군산16.6℃
  • 흐림대구17.4℃
  • 박무전주17.8℃
  • 구름많음울산16.7℃
  • 맑음창원17.2℃
  • 맑음광주19.4℃
  • 맑음부산17.4℃
  • 맑음통영17.4℃
  • 박무목포16.5℃
  • 맑음여수17.8℃
  • 박무흑산도15.6℃
  • 맑음완도16.8℃
  • 맑음고창
  • 맑음순천15.4℃
  • 박무홍성(예)17.8℃
  • 흐림19.7℃
  • 맑음제주18.9℃
  • 맑음고산17.6℃
  • 흐림성산19.8℃
  • 맑음서귀포19.3℃
  • 맑음진주16.2℃
  • 구름조금강화14.8℃
  • 구름많음양평20.2℃
  • 흐림이천19.9℃
  • 구름조금인제12.7℃
  • 맑음홍천16.8℃
  • 흐림태백11.9℃
  • 흐림정선군15.1℃
  • 흐림제천17.4℃
  • 구름많음보은18.4℃
  • 흐림천안19.1℃
  • 맑음보령16.1℃
  • 구름조금부여17.3℃
  • 흐림금산20.4℃
  • 구름많음19.6℃
  • 맑음부안16.9℃
  • 맑음임실17.4℃
  • 맑음정읍16.5℃
  • 맑음남원19.9℃
  • 구름많음장수19.5℃
  • 맑음고창군15.8℃
  • 맑음영광군16.0℃
  • 맑음김해시18.0℃
  • 맑음순창군19.4℃
  • 맑음북창원18.9℃
  • 맑음양산시18.5℃
  • 맑음보성군17.2℃
  • 맑음강진군17.4℃
  • 맑음장흥17.3℃
  • 맑음해남18.5℃
  • 맑음고흥17.1℃
  • 흐림의령군17.7℃
  • 흐림함양군20.2℃
  • 구름조금광양시17.9℃
  • 맑음진도군15.5℃
  • 흐림봉화16.1℃
  • 흐림영주16.4℃
  • 흐림문경16.9℃
  • 흐림청송군15.5℃
  • 흐림영덕16.0℃
  • 흐림의성17.8℃
  • 흐림구미18.9℃
  • 흐림영천16.8℃
  • 흐림경주시17.0℃
  • 구름조금거창18.4℃
  • 구름조금합천18.9℃
  • 맑음밀양18.9℃
  • 흐림산청18.7℃
  • 맑음거제17.9℃
  • 맑음남해
  • 맑음18.5℃
기상청 제공
‘최면’에 관한 기독교적 견해는?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면’에 관한 기독교적 견해는?

크리스천 큐앤에이

Q 질문 : 기독교에서 보는 최면에 대한 관점과 그 관점에 대한 이유(근거)를 알고 싶습니다.


A 답변 : 최면이란 원래 ‘잠(hypnosis)’이라는 말에서 비롯된 헬라어로, 자신에게 최면을 건 사람의 지시를 따라 일정한 행동 혹은 말을하게 되는 상태입니다. 100년 전, 심리 분석학이 시작될 당시 프로이트와 융은 인간의 심리분석을 위해 최면을 사용하였습니다. 일반적인 상담보다 최면을 통해 이야기할 때 훨씬 저항이 없이 자신의 기억이나 삶을 진술하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프로이트나 융은 최면의 한계가 분명하였기 때문에 그 방법을 버리게 됩니다.


인간의 뇌가 전능한 잠재력이 아닌 것처럼, 그것이 보여주는 최면의 잠재력 역시 제한되고 조작됩니다. 최면에서 드러나는 구체적인 내용 역시 그 개인의 환상이나 소망이나 불안의 감정들에 의해 조작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최면에서 나온 진술들을 문자적으로 믿는 것은 근거가 없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기독교의 신앙이나 신학에서 최면에 대해 말하는 것을 쉽게 찾을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선명한 의식의 상태에서, 책임 있는 개인 인격의 각성 가운데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이웃과의 교제를 지향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관점에서 볼 때 최면은 건전한 기독교적 신앙 실천의 중심에 들어오기 힘듭니다.


하지만 실제 최면의 양상들을 보면 다분히 종교 체험적입니다. 최면에는 영적 개방성이 있어서, 자칫 최면이 영적으로 불건전한 또 다른 영적인 존재들을 끌어들이거나 만나는 통로가 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최면은 결코 성령의 통로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은 오직 그리스도를 모시고 살아가는 현실과 의지의 원리가 전제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에 의해 특별하게 감독받아 허용된 제한된 목적의 상황 외에, 최면에 접하는 것은 스스로 영적인 위험에빠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답변자 : 하재성 교수 (고려신학대학원 실천신학)

<‘크리스천 큐앤에이’(도서출판 등과 빛) 中 요약 발췌>

관련기사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