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3 (월)

  • 맑음속초17.4℃
  • 맑음21.5℃
  • 맑음철원21.6℃
  • 맑음동두천22.3℃
  • 맑음파주21.3℃
  • 맑음대관령10.9℃
  • 맑음춘천21.1℃
  • 맑음백령도16.4℃
  • 맑음북강릉15.8℃
  • 맑음강릉18.1℃
  • 맑음동해16.3℃
  • 구름조금서울24.4℃
  • 구름많음인천22.7℃
  • 맑음원주22.5℃
  • 구름조금울릉도15.0℃
  • 구름조금수원22.0℃
  • 맑음영월18.9℃
  • 흐림충주22.7℃
  • 맑음서산22.4℃
  • 맑음울진16.4℃
  • 맑음청주24.8℃
  • 맑음대전22.8℃
  • 맑음추풍령19.2℃
  • 구름많음안동19.0℃
  • 구름조금상주21.2℃
  • 구름조금포항18.1℃
  • 맑음군산19.7℃
  • 맑음대구18.8℃
  • 소나기전주19.5℃
  • 맑음울산16.7℃
  • 맑음창원17.8℃
  • 구름조금광주22.0℃
  • 맑음부산17.7℃
  • 구름조금통영17.6℃
  • 맑음목포20.7℃
  • 구름많음여수18.6℃
  • 맑음흑산도17.3℃
  • 맑음완도17.8℃
  • 맑음고창19.8℃
  • 흐림순천17.4℃
  • 맑음홍성(예)22.9℃
  • 맑음21.2℃
  • 구름조금제주21.2℃
  • 구름조금고산19.1℃
  • 구름조금성산19.6℃
  • 구름많음서귀포20.4℃
  • 구름많음진주18.5℃
  • 구름많음강화22.1℃
  • 맑음양평23.1℃
  • 맑음이천22.4℃
  • 맑음인제18.0℃
  • 맑음홍천21.2℃
  • 맑음태백12.5℃
  • 맑음정선군16.1℃
  • 맑음제천19.4℃
  • 맑음보은19.5℃
  • 맑음천안20.7℃
  • 맑음보령18.5℃
  • 맑음부여22.2℃
  • 맑음금산20.3℃
  • 맑음22.1℃
  • 맑음부안19.9℃
  • 구름많음임실18.7℃
  • 맑음정읍20.3℃
  • 흐림남원18.9℃
  • 흐림장수16.1℃
  • 맑음고창군18.7℃
  • 맑음영광군19.2℃
  • 맑음김해시17.9℃
  • 흐림순창군18.7℃
  • 맑음북창원19.3℃
  • 맑음양산시19.3℃
  • 흐림보성군20.0℃
  • 구름조금강진군20.3℃
  • 구름조금장흥19.2℃
  • 맑음해남18.9℃
  • 흐림고흥19.3℃
  • 구름조금의령군19.2℃
  • 흐림함양군19.6℃
  • 구름많음광양시19.0℃
  • 맑음진도군18.5℃
  • 맑음봉화15.9℃
  • 맑음영주18.2℃
  • 구름많음문경20.2℃
  • 구름많음청송군16.8℃
  • 맑음영덕16.5℃
  • 구름조금의성19.5℃
  • 맑음구미20.7℃
  • 맑음영천17.3℃
  • 구름조금경주시17.6℃
  • 구름조금거창17.8℃
  • 구름조금합천19.8℃
  • 구름조금밀양20.7℃
  • 구름많음산청18.2℃
  • 구름조금거제18.0℃
  • 구름많음남해17.4℃
  • 맑음18.8℃
기상청 제공
‘최면’에 관한 기독교적 견해는?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면’에 관한 기독교적 견해는?

크리스천 큐앤에이

Q 질문 : 기독교에서 보는 최면에 대한 관점과 그 관점에 대한 이유(근거)를 알고 싶습니다.


A 답변 : 최면이란 원래 ‘잠(hypnosis)’이라는 말에서 비롯된 헬라어로, 자신에게 최면을 건 사람의 지시를 따라 일정한 행동 혹은 말을하게 되는 상태입니다. 100년 전, 심리 분석학이 시작될 당시 프로이트와 융은 인간의 심리분석을 위해 최면을 사용하였습니다. 일반적인 상담보다 최면을 통해 이야기할 때 훨씬 저항이 없이 자신의 기억이나 삶을 진술하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프로이트나 융은 최면의 한계가 분명하였기 때문에 그 방법을 버리게 됩니다.


인간의 뇌가 전능한 잠재력이 아닌 것처럼, 그것이 보여주는 최면의 잠재력 역시 제한되고 조작됩니다. 최면에서 드러나는 구체적인 내용 역시 그 개인의 환상이나 소망이나 불안의 감정들에 의해 조작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최면에서 나온 진술들을 문자적으로 믿는 것은 근거가 없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기독교의 신앙이나 신학에서 최면에 대해 말하는 것을 쉽게 찾을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선명한 의식의 상태에서, 책임 있는 개인 인격의 각성 가운데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이웃과의 교제를 지향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관점에서 볼 때 최면은 건전한 기독교적 신앙 실천의 중심에 들어오기 힘듭니다.


하지만 실제 최면의 양상들을 보면 다분히 종교 체험적입니다. 최면에는 영적 개방성이 있어서, 자칫 최면이 영적으로 불건전한 또 다른 영적인 존재들을 끌어들이거나 만나는 통로가 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최면은 결코 성령의 통로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은 오직 그리스도를 모시고 살아가는 현실과 의지의 원리가 전제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에 의해 특별하게 감독받아 허용된 제한된 목적의 상황 외에, 최면에 접하는 것은 스스로 영적인 위험에빠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답변자 : 하재성 교수 (고려신학대학원 실천신학)

<‘크리스천 큐앤에이’(도서출판 등과 빛) 中 요약 발췌>

관련기사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