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4 (화)

  • 맑음속초13.8℃
  • 맑음10.4℃
  • 맑음철원11.3℃
  • 맑음동두천12.1℃
  • 맑음파주12.7℃
  • 맑음대관령2.4℃
  • 맑음춘천11.2℃
  • 맑음백령도15.4℃
  • 구름조금북강릉12.9℃
  • 맑음강릉13.9℃
  • 맑음동해12.7℃
  • 맑음서울16.7℃
  • 맑음인천18.8℃
  • 맑음원주12.8℃
  • 구름많음울릉도14.9℃
  • 맑음수원15.1℃
  • 맑음영월8.6℃
  • 맑음충주11.0℃
  • 맑음서산16.2℃
  • 맑음울진11.8℃
  • 맑음청주17.2℃
  • 맑음대전15.4℃
  • 맑음추풍령12.1℃
  • 맑음안동11.6℃
  • 맑음상주12.9℃
  • 구름조금포항15.9℃
  • 맑음군산16.1℃
  • 맑음대구13.3℃
  • 맑음전주16.5℃
  • 맑음울산14.6℃
  • 맑음창원14.9℃
  • 맑음광주17.1℃
  • 맑음부산15.2℃
  • 맑음통영15.3℃
  • 맑음목포16.7℃
  • 맑음여수17.6℃
  • 맑음흑산도15.5℃
  • 맑음완도15.6℃
  • 맑음고창14.9℃
  • 맑음순천14.1℃
  • 맑음홍성(예)16.3℃
  • 맑음14.5℃
  • 맑음제주17.6℃
  • 맑음고산17.1℃
  • 맑음성산17.5℃
  • 맑음서귀포17.8℃
  • 맑음진주16.2℃
  • 맑음강화13.1℃
  • 맑음양평12.5℃
  • 맑음이천12.0℃
  • 맑음인제8.9℃
  • 맑음홍천9.4℃
  • 맑음태백6.0℃
  • 맑음정선군6.0℃
  • 맑음제천8.4℃
  • 맑음보은12.7℃
  • 맑음천안13.1℃
  • 맑음보령15.2℃
  • 맑음부여14.5℃
  • 맑음금산13.9℃
  • 맑음15.1℃
  • 맑음부안16.0℃
  • 맑음임실15.3℃
  • 맑음정읍15.5℃
  • 맑음남원16.4℃
  • 구름조금장수13.0℃
  • 맑음고창군13.8℃
  • 맑음영광군14.8℃
  • 맑음김해시14.1℃
  • 맑음순창군15.5℃
  • 맑음북창원15.1℃
  • 맑음양산시14.0℃
  • 구름조금보성군16.3℃
  • 맑음강진군15.2℃
  • 맑음장흥14.8℃
  • 맑음해남15.9℃
  • 구름조금고흥14.6℃
  • 구름조금의령군14.8℃
  • 구름많음함양군16.9℃
  • 구름조금광양시15.9℃
  • 맑음진도군13.5℃
  • 맑음봉화6.5℃
  • 맑음영주9.6℃
  • 맑음문경11.4℃
  • 맑음청송군8.7℃
  • 맑음영덕12.6℃
  • 맑음의성10.0℃
  • 맑음구미13.5℃
  • 맑음영천11.2℃
  • 구름조금경주시14.7℃
  • 구름조금거창15.4℃
  • 맑음합천14.9℃
  • 맑음밀양14.2℃
  • 구름많음산청16.1℃
  • 맑음거제13.5℃
  • 구름조금남해16.0℃
  • 맑음13.4℃
기상청 제공
‘최면’에 관한 기독교적 견해는?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면’에 관한 기독교적 견해는?

크리스천 큐앤에이

Q 질문 : 기독교에서 보는 최면에 대한 관점과 그 관점에 대한 이유(근거)를 알고 싶습니다.


A 답변 : 최면이란 원래 ‘잠(hypnosis)’이라는 말에서 비롯된 헬라어로, 자신에게 최면을 건 사람의 지시를 따라 일정한 행동 혹은 말을하게 되는 상태입니다. 100년 전, 심리 분석학이 시작될 당시 프로이트와 융은 인간의 심리분석을 위해 최면을 사용하였습니다. 일반적인 상담보다 최면을 통해 이야기할 때 훨씬 저항이 없이 자신의 기억이나 삶을 진술하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프로이트나 융은 최면의 한계가 분명하였기 때문에 그 방법을 버리게 됩니다.


인간의 뇌가 전능한 잠재력이 아닌 것처럼, 그것이 보여주는 최면의 잠재력 역시 제한되고 조작됩니다. 최면에서 드러나는 구체적인 내용 역시 그 개인의 환상이나 소망이나 불안의 감정들에 의해 조작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최면에서 나온 진술들을 문자적으로 믿는 것은 근거가 없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기독교의 신앙이나 신학에서 최면에 대해 말하는 것을 쉽게 찾을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선명한 의식의 상태에서, 책임 있는 개인 인격의 각성 가운데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이웃과의 교제를 지향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관점에서 볼 때 최면은 건전한 기독교적 신앙 실천의 중심에 들어오기 힘듭니다.


하지만 실제 최면의 양상들을 보면 다분히 종교 체험적입니다. 최면에는 영적 개방성이 있어서, 자칫 최면이 영적으로 불건전한 또 다른 영적인 존재들을 끌어들이거나 만나는 통로가 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최면은 결코 성령의 통로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은 오직 그리스도를 모시고 살아가는 현실과 의지의 원리가 전제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에 의해 특별하게 감독받아 허용된 제한된 목적의 상황 외에, 최면에 접하는 것은 스스로 영적인 위험에빠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답변자 : 하재성 교수 (고려신학대학원 실천신학)

<‘크리스천 큐앤에이’(도서출판 등과 빛) 中 요약 발췌>

관련기사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