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3 (월)

  • 맑음속초16.0℃
  • 맑음18.3℃
  • 맑음철원17.9℃
  • 맑음동두천20.6℃
  • 맑음파주18.6℃
  • 맑음대관령9.0℃
  • 맑음춘천18.9℃
  • 맑음백령도16.3℃
  • 맑음북강릉14.8℃
  • 맑음강릉16.6℃
  • 맑음동해14.7℃
  • 맑음서울23.2℃
  • 구름조금인천21.7℃
  • 맑음원주21.0℃
  • 구름많음울릉도14.8℃
  • 맑음수원20.5℃
  • 맑음영월18.4℃
  • 맑음충주21.7℃
  • 맑음서산20.4℃
  • 맑음울진15.5℃
  • 구름조금청주24.2℃
  • 맑음대전21.3℃
  • 맑음추풍령18.3℃
  • 구름조금안동18.1℃
  • 구름조금상주20.4℃
  • 구름조금포항18.0℃
  • 구름조금군산19.1℃
  • 맑음대구18.2℃
  • 흐림전주18.7℃
  • 구름조금울산16.6℃
  • 구름조금창원17.1℃
  • 구름조금광주20.8℃
  • 맑음부산17.4℃
  • 구름많음통영17.4℃
  • 구름조금목포19.8℃
  • 구름많음여수18.5℃
  • 박무흑산도16.8℃
  • 맑음완도16.7℃
  • 맑음고창18.8℃
  • 흐림순천16.0℃
  • 맑음홍성(예)21.1℃
  • 맑음20.2℃
  • 맑음제주20.3℃
  • 구름조금고산18.6℃
  • 구름조금성산19.7℃
  • 구름조금서귀포20.0℃
  • 흐림진주18.2℃
  • 맑음강화21.5℃
  • 맑음양평21.4℃
  • 맑음이천19.8℃
  • 맑음인제16.2℃
  • 맑음홍천18.8℃
  • 맑음태백10.8℃
  • 맑음정선군13.7℃
  • 구름조금제천18.6℃
  • 구름조금보은19.9℃
  • 구름조금천안19.6℃
  • 맑음보령17.6℃
  • 맑음부여20.5℃
  • 맑음금산18.3℃
  • 맑음20.7℃
  • 맑음부안19.1℃
  • 흐림임실18.3℃
  • 구름조금정읍19.1℃
  • 흐림남원18.5℃
  • 흐림장수15.7℃
  • 맑음고창군17.5℃
  • 맑음영광군18.0℃
  • 맑음김해시17.8℃
  • 흐림순창군18.5℃
  • 구름조금북창원18.5℃
  • 맑음양산시18.6℃
  • 구름많음보성군19.6℃
  • 구름조금강진군19.6℃
  • 구름조금장흥18.6℃
  • 맑음해남18.6℃
  • 구름조금고흥18.8℃
  • 구름조금의령군18.6℃
  • 구름많음함양군18.7℃
  • 흐림광양시18.5℃
  • 맑음진도군18.7℃
  • 맑음봉화13.9℃
  • 맑음영주16.6℃
  • 구름조금문경19.1℃
  • 구름많음청송군15.7℃
  • 맑음영덕16.2℃
  • 구름많음의성18.6℃
  • 맑음구미19.6℃
  • 구름조금영천16.6℃
  • 맑음경주시17.3℃
  • 맑음거창16.6℃
  • 구름조금합천19.2℃
  • 구름조금밀양20.0℃
  • 구름많음산청17.7℃
  • 구름조금거제17.7℃
  • 흐림남해17.8℃
  • 맑음18.3℃
기상청 제공
‘최면’에 관한 기독교적 견해는?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면’에 관한 기독교적 견해는?

크리스천 큐앤에이

Q 질문 : 기독교에서 보는 최면에 대한 관점과 그 관점에 대한 이유(근거)를 알고 싶습니다.


A 답변 : 최면이란 원래 ‘잠(hypnosis)’이라는 말에서 비롯된 헬라어로, 자신에게 최면을 건 사람의 지시를 따라 일정한 행동 혹은 말을하게 되는 상태입니다. 100년 전, 심리 분석학이 시작될 당시 프로이트와 융은 인간의 심리분석을 위해 최면을 사용하였습니다. 일반적인 상담보다 최면을 통해 이야기할 때 훨씬 저항이 없이 자신의 기억이나 삶을 진술하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프로이트나 융은 최면의 한계가 분명하였기 때문에 그 방법을 버리게 됩니다.


인간의 뇌가 전능한 잠재력이 아닌 것처럼, 그것이 보여주는 최면의 잠재력 역시 제한되고 조작됩니다. 최면에서 드러나는 구체적인 내용 역시 그 개인의 환상이나 소망이나 불안의 감정들에 의해 조작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최면에서 나온 진술들을 문자적으로 믿는 것은 근거가 없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기독교의 신앙이나 신학에서 최면에 대해 말하는 것을 쉽게 찾을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선명한 의식의 상태에서, 책임 있는 개인 인격의 각성 가운데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이웃과의 교제를 지향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관점에서 볼 때 최면은 건전한 기독교적 신앙 실천의 중심에 들어오기 힘듭니다.


하지만 실제 최면의 양상들을 보면 다분히 종교 체험적입니다. 최면에는 영적 개방성이 있어서, 자칫 최면이 영적으로 불건전한 또 다른 영적인 존재들을 끌어들이거나 만나는 통로가 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최면은 결코 성령의 통로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은 오직 그리스도를 모시고 살아가는 현실과 의지의 원리가 전제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에 의해 특별하게 감독받아 허용된 제한된 목적의 상황 외에, 최면에 접하는 것은 스스로 영적인 위험에빠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답변자 : 하재성 교수 (고려신학대학원 실천신학)

<‘크리스천 큐앤에이’(도서출판 등과 빛) 中 요약 발췌>

관련기사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