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1 (토)

  • 흐림속초15.9℃
  • 비21.4℃
  • 구름많음철원22.3℃
  • 구름조금동두천23.2℃
  • 맑음파주22.9℃
  • 흐림대관령15.2℃
  • 구름많음춘천23.2℃
  • 맑음백령도18.6℃
  • 비북강릉15.8℃
  • 흐림강릉16.4℃
  • 흐림동해17.4℃
  • 구름조금서울22.7℃
  • 맑음인천21.8℃
  • 구름많음원주22.2℃
  • 구름많음울릉도18.2℃
  • 맑음수원21.8℃
  • 구름많음영월24.2℃
  • 구름많음충주21.2℃
  • 맑음서산20.8℃
  • 구름많음울진19.6℃
  • 구름많음청주22.7℃
  • 구름많음대전21.8℃
  • 구름많음추풍령21.7℃
  • 구름많음안동23.5℃
  • 구름많음상주22.6℃
  • 구름많음포항21.6℃
  • 맑음군산20.1℃
  • 구름많음대구24.9℃
  • 구름많음전주21.0℃
  • 구름많음울산23.6℃
  • 구름많음창원26.1℃
  • 구름많음광주21.6℃
  • 구름조금부산25.3℃
  • 맑음통영24.5℃
  • 구름많음목포19.8℃
  • 구름많음여수23.3℃
  • 구름조금흑산도20.2℃
  • 구름많음완도23.2℃
  • 구름많음고창21.3℃
  • 구름많음순천21.1℃
  • 구름조금홍성(예)21.8℃
  • 구름조금20.8℃
  • 구름조금제주22.3℃
  • 구름많음고산18.3℃
  • 구름많음성산21.8℃
  • 구름많음서귀포22.4℃
  • 구름많음진주25.0℃
  • 맑음강화22.4℃
  • 구름조금양평23.6℃
  • 구름많음이천24.2℃
  • 구름많음인제20.1℃
  • 구름많음홍천21.9℃
  • 구름많음태백21.2℃
  • 구름많음정선군23.7℃
  • 구름많음제천20.6℃
  • 구름많음보은21.4℃
  • 구름조금천안22.3℃
  • 맑음보령23.2℃
  • 구름조금부여23.4℃
  • 구름많음금산21.7℃
  • 구름많음22.7℃
  • 구름많음부안21.2℃
  • 구름많음임실20.8℃
  • 구름많음정읍21.5℃
  • 구름많음남원21.6℃
  • 구름많음장수20.7℃
  • 구름많음고창군20.4℃
  • 구름많음영광군19.7℃
  • 구름조금김해시26.3℃
  • 흐림순창군20.7℃
  • 구름조금북창원25.9℃
  • 구름많음양산시26.6℃
  • 구름많음보성군23.4℃
  • 구름많음강진군23.1℃
  • 구름많음장흥22.0℃
  • 구름많음해남21.3℃
  • 구름많음고흥23.6℃
  • 구름조금의령군27.0℃
  • 구름많음함양군23.2℃
  • 구름많음광양시24.4℃
  • 구름많음진도군20.2℃
  • 구름조금봉화21.6℃
  • 구름조금영주21.9℃
  • 구름조금문경21.9℃
  • 구름많음청송군22.9℃
  • 구름많음영덕22.6℃
  • 구름많음의성23.3℃
  • 구름많음구미23.3℃
  • 구름많음영천24.7℃
  • 구름많음경주시25.7℃
  • 구름많음거창22.9℃
  • 구름많음합천24.6℃
  • 구름조금밀양26.4℃
  • 구름많음산청24.3℃
  • 맑음거제25.2℃
  • 구름조금남해24.0℃
  • 구름조금26.9℃
기상청 제공
‘최면’에 관한 기독교적 견해는?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면’에 관한 기독교적 견해는?

크리스천 큐앤에이

Q 질문 : 기독교에서 보는 최면에 대한 관점과 그 관점에 대한 이유(근거)를 알고 싶습니다.


A 답변 : 최면이란 원래 ‘잠(hypnosis)’이라는 말에서 비롯된 헬라어로, 자신에게 최면을 건 사람의 지시를 따라 일정한 행동 혹은 말을하게 되는 상태입니다. 100년 전, 심리 분석학이 시작될 당시 프로이트와 융은 인간의 심리분석을 위해 최면을 사용하였습니다. 일반적인 상담보다 최면을 통해 이야기할 때 훨씬 저항이 없이 자신의 기억이나 삶을 진술하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프로이트나 융은 최면의 한계가 분명하였기 때문에 그 방법을 버리게 됩니다.


인간의 뇌가 전능한 잠재력이 아닌 것처럼, 그것이 보여주는 최면의 잠재력 역시 제한되고 조작됩니다. 최면에서 드러나는 구체적인 내용 역시 그 개인의 환상이나 소망이나 불안의 감정들에 의해 조작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최면에서 나온 진술들을 문자적으로 믿는 것은 근거가 없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기독교의 신앙이나 신학에서 최면에 대해 말하는 것을 쉽게 찾을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선명한 의식의 상태에서, 책임 있는 개인 인격의 각성 가운데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이웃과의 교제를 지향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관점에서 볼 때 최면은 건전한 기독교적 신앙 실천의 중심에 들어오기 힘듭니다.


하지만 실제 최면의 양상들을 보면 다분히 종교 체험적입니다. 최면에는 영적 개방성이 있어서, 자칫 최면이 영적으로 불건전한 또 다른 영적인 존재들을 끌어들이거나 만나는 통로가 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최면은 결코 성령의 통로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은 오직 그리스도를 모시고 살아가는 현실과 의지의 원리가 전제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에 의해 특별하게 감독받아 허용된 제한된 목적의 상황 외에, 최면에 접하는 것은 스스로 영적인 위험에빠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답변자 : 하재성 교수 (고려신학대학원 실천신학)

<‘크리스천 큐앤에이’(도서출판 등과 빛) 中 요약 발췌>

관련기사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