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27 (월)

  • 구름많음속초23.5℃
  • 구름많음20.6℃
  • 흐림철원19.6℃
  • 흐림동두천21.2℃
  • 구름많음파주21.2℃
  • 흐림대관령15.8℃
  • 흐림춘천20.7℃
  • 구름조금백령도18.8℃
  • 구름많음북강릉23.3℃
  • 구름많음강릉24.6℃
  • 구름많음동해20.7℃
  • 구름많음서울21.9℃
  • 구름많음인천20.8℃
  • 흐림원주21.1℃
  • 흐림울릉도19.3℃
  • 구름많음수원19.9℃
  • 흐림영월20.6℃
  • 구름많음충주21.3℃
  • 구름많음서산19.8℃
  • 흐림울진23.7℃
  • 흐림청주22.1℃
  • 구름많음대전21.7℃
  • 구름많음추풍령21.2℃
  • 흐림안동22.2℃
  • 구름많음상주23.2℃
  • 흐림포항24.2℃
  • 흐림군산18.7℃
  • 흐림대구24.3℃
  • 구름조금전주20.7℃
  • 흐림울산23.9℃
  • 흐림창원24.5℃
  • 구름많음광주22.6℃
  • 흐림부산23.3℃
  • 흐림통영23.9℃
  • 흐림목포20.2℃
  • 흐림여수23.1℃
  • 흐림흑산도18.9℃
  • 흐림완도22.4℃
  • 구름많음고창
  • 흐림순천21.0℃
  • 흐림홍성(예)20.6℃
  • 흐림20.4℃
  • 흐림제주21.6℃
  • 흐림고산17.7℃
  • 흐림성산20.5℃
  • 흐림서귀포21.1℃
  • 흐림진주24.2℃
  • 구름많음강화21.1℃
  • 흐림양평22.0℃
  • 구름많음이천21.6℃
  • 흐림인제20.0℃
  • 흐림홍천21.1℃
  • 흐림태백18.6℃
  • 구름많음정선군21.3℃
  • 흐림제천19.7℃
  • 구름많음보은20.9℃
  • 흐림천안20.5℃
  • 구름많음보령19.7℃
  • 흐림부여21.2℃
  • 구름많음금산21.1℃
  • 흐림20.8℃
  • 구름많음부안19.1℃
  • 흐림임실21.2℃
  • 구름조금정읍21.3℃
  • 흐림남원21.9℃
  • 흐림장수20.1℃
  • 구름많음고창군20.4℃
  • 구름많음영광군20.2℃
  • 흐림김해시24.7℃
  • 구름많음순창군22.2℃
  • 흐림북창원24.7℃
  • 흐림양산시25.7℃
  • 흐림보성군23.2℃
  • 흐림강진군22.9℃
  • 흐림장흥22.3℃
  • 흐림해남22.2℃
  • 흐림고흥22.5℃
  • 흐림의령군23.9℃
  • 흐림함양군22.2℃
  • 흐림광양시21.6℃
  • 구름많음진도군20.5℃
  • 흐림봉화20.1℃
  • 흐림영주20.8℃
  • 구름많음문경21.2℃
  • 흐림청송군21.3℃
  • 흐림영덕21.8℃
  • 흐림의성22.6℃
  • 흐림구미22.9℃
  • 흐림영천23.1℃
  • 흐림경주시24.5℃
  • 흐림거창21.2℃
  • 흐림합천24.0℃
  • 흐림밀양24.9℃
  • 흐림산청22.1℃
  • 흐림거제22.3℃
  • 흐림남해23.1℃
  • 흐림25.8℃
기상청 제공
‘최면’에 관한 기독교적 견해는?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면’에 관한 기독교적 견해는?

크리스천 큐앤에이

Q 질문 : 기독교에서 보는 최면에 대한 관점과 그 관점에 대한 이유(근거)를 알고 싶습니다.


A 답변 : 최면이란 원래 ‘잠(hypnosis)’이라는 말에서 비롯된 헬라어로, 자신에게 최면을 건 사람의 지시를 따라 일정한 행동 혹은 말을하게 되는 상태입니다. 100년 전, 심리 분석학이 시작될 당시 프로이트와 융은 인간의 심리분석을 위해 최면을 사용하였습니다. 일반적인 상담보다 최면을 통해 이야기할 때 훨씬 저항이 없이 자신의 기억이나 삶을 진술하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프로이트나 융은 최면의 한계가 분명하였기 때문에 그 방법을 버리게 됩니다.


인간의 뇌가 전능한 잠재력이 아닌 것처럼, 그것이 보여주는 최면의 잠재력 역시 제한되고 조작됩니다. 최면에서 드러나는 구체적인 내용 역시 그 개인의 환상이나 소망이나 불안의 감정들에 의해 조작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최면에서 나온 진술들을 문자적으로 믿는 것은 근거가 없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기독교의 신앙이나 신학에서 최면에 대해 말하는 것을 쉽게 찾을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선명한 의식의 상태에서, 책임 있는 개인 인격의 각성 가운데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이웃과의 교제를 지향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관점에서 볼 때 최면은 건전한 기독교적 신앙 실천의 중심에 들어오기 힘듭니다.


하지만 실제 최면의 양상들을 보면 다분히 종교 체험적입니다. 최면에는 영적 개방성이 있어서, 자칫 최면이 영적으로 불건전한 또 다른 영적인 존재들을 끌어들이거나 만나는 통로가 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최면은 결코 성령의 통로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은 오직 그리스도를 모시고 살아가는 현실과 의지의 원리가 전제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에 의해 특별하게 감독받아 허용된 제한된 목적의 상황 외에, 최면에 접하는 것은 스스로 영적인 위험에빠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답변자 : 하재성 교수 (고려신학대학원 실천신학)

<‘크리스천 큐앤에이’(도서출판 등과 빛) 中 요약 발췌>

관련기사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