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28 (화)

  • 맑음속초14.7℃
  • 맑음16.6℃
  • 맑음철원17.3℃
  • 맑음동두천17.9℃
  • 맑음파주17.1℃
  • 맑음대관령7.6℃
  • 맑음춘천17.0℃
  • 맑음백령도13.5℃
  • 맑음북강릉13.4℃
  • 맑음강릉15.7℃
  • 맑음동해13.6℃
  • 맑음서울20.8℃
  • 맑음인천19.0℃
  • 맑음원주17.9℃
  • 구름조금울릉도14.6℃
  • 맑음수원18.6℃
  • 맑음영월13.7℃
  • 맑음충주16.0℃
  • 맑음서산18.0℃
  • 맑음울진13.6℃
  • 맑음청주21.7℃
  • 맑음대전19.4℃
  • 맑음추풍령14.1℃
  • 맑음안동15.6℃
  • 맑음상주16.7℃
  • 맑음포항16.1℃
  • 맑음군산20.0℃
  • 맑음대구17.0℃
  • 맑음전주21.1℃
  • 맑음울산14.9℃
  • 맑음창원19.1℃
  • 맑음광주20.4℃
  • 맑음부산17.5℃
  • 구름조금통영17.7℃
  • 맑음목포18.6℃
  • 구름조금여수18.8℃
  • 맑음흑산도15.4℃
  • 맑음완도19.1℃
  • 맑음고창
  • 구름조금순천17.6℃
  • 맑음홍성(예)20.8℃
  • 맑음16.8℃
  • 맑음제주18.3℃
  • 맑음고산16.8℃
  • 맑음성산17.4℃
  • 맑음서귀포18.7℃
  • 구름조금진주18.9℃
  • 맑음강화17.6℃
  • 맑음양평18.2℃
  • 맑음이천18.0℃
  • 맑음인제14.6℃
  • 맑음홍천16.1℃
  • 맑음태백7.7℃
  • 맑음정선군10.6℃
  • 맑음제천13.7℃
  • 맑음보은16.1℃
  • 맑음천안16.1℃
  • 맑음보령17.4℃
  • 맑음부여18.4℃
  • 맑음금산16.2℃
  • 맑음19.0℃
  • 맑음부안18.8℃
  • 맑음임실16.6℃
  • 맑음정읍18.7℃
  • 맑음남원19.1℃
  • 맑음장수14.5℃
  • 맑음고창군17.3℃
  • 맑음영광군17.8℃
  • 맑음김해시16.0℃
  • 맑음순창군19.0℃
  • 맑음북창원19.0℃
  • 맑음양산시17.9℃
  • 구름조금보성군19.3℃
  • 맑음강진군20.0℃
  • 맑음장흥17.8℃
  • 맑음해남18.3℃
  • 구름조금고흥18.8℃
  • 구름조금의령군17.1℃
  • 맑음함양군16.7℃
  • 구름조금광양시18.9℃
  • 맑음진도군16.9℃
  • 맑음봉화10.9℃
  • 맑음영주13.2℃
  • 맑음문경14.8℃
  • 맑음청송군11.3℃
  • 맑음영덕12.3℃
  • 맑음의성13.9℃
  • 맑음구미17.7℃
  • 맑음영천15.5℃
  • 맑음경주시14.4℃
  • 맑음거창15.5℃
  • 구름조금합천17.8℃
  • 맑음밀양18.3℃
  • 구름조금산청18.0℃
  • 구름많음거제18.2℃
  • 구름조금남해18.9℃
  • 맑음18.0℃
기상청 제공
‘최면’에 관한 기독교적 견해는?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취재수첩

‘최면’에 관한 기독교적 견해는?

크리스천 큐앤에이

Q 질문 : 기독교에서 보는 최면에 대한 관점과 그 관점에 대한 이유(근거)를 알고 싶습니다.


A 답변 : 최면이란 원래 ‘잠(hypnosis)’이라는 말에서 비롯된 헬라어로, 자신에게 최면을 건 사람의 지시를 따라 일정한 행동 혹은 말을하게 되는 상태입니다. 100년 전, 심리 분석학이 시작될 당시 프로이트와 융은 인간의 심리분석을 위해 최면을 사용하였습니다. 일반적인 상담보다 최면을 통해 이야기할 때 훨씬 저항이 없이 자신의 기억이나 삶을 진술하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프로이트나 융은 최면의 한계가 분명하였기 때문에 그 방법을 버리게 됩니다.


인간의 뇌가 전능한 잠재력이 아닌 것처럼, 그것이 보여주는 최면의 잠재력 역시 제한되고 조작됩니다. 최면에서 드러나는 구체적인 내용 역시 그 개인의 환상이나 소망이나 불안의 감정들에 의해 조작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최면에서 나온 진술들을 문자적으로 믿는 것은 근거가 없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기독교의 신앙이나 신학에서 최면에 대해 말하는 것을 쉽게 찾을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선명한 의식의 상태에서, 책임 있는 개인 인격의 각성 가운데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이웃과의 교제를 지향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관점에서 볼 때 최면은 건전한 기독교적 신앙 실천의 중심에 들어오기 힘듭니다.


하지만 실제 최면의 양상들을 보면 다분히 종교 체험적입니다. 최면에는 영적 개방성이 있어서, 자칫 최면이 영적으로 불건전한 또 다른 영적인 존재들을 끌어들이거나 만나는 통로가 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최면은 결코 성령의 통로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은 오직 그리스도를 모시고 살아가는 현실과 의지의 원리가 전제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에 의해 특별하게 감독받아 허용된 제한된 목적의 상황 외에, 최면에 접하는 것은 스스로 영적인 위험에빠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답변자 : 하재성 교수 (고려신학대학원 실천신학)

<‘크리스천 큐앤에이’(도서출판 등과 빛) 中 요약 발췌>

관련기사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