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예천군, 11월 말까지 “가을철 농촌일손돕기” 적극 나서예천군은 본격적인 수확기 영농철을 맞아 공무원, 군인, 학생, 기관단체, 민간단체 등 1,000여 명의 인원을 투입해 11월 30일까지 “가을철 농촌일손돕기”에 나선다. 군은 11월 말까지 읍·면 행정복지센터, 지역농협, 농업인상담소에 “일손돕기 지원 창구”를 운영해 재해농가, 고령자와 부녀자 농가 등 일손 부족으로 적기 수확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가를 선별 지원할 방침이다. 올해 가을 첫 일손 돕기 지원으로 지난 10월 22일 농협중앙회 대구지역본부 및 대구 고향주부모임 회원 80여 명이 사과수확 돕기를 하였으며, 앞으로도 군은 관내 기관단체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사과, 무, 콩 등의 수확에 본격적인 일손을 지원할 계획이다. 특히, 일손돕기 참여자들에게 작업도구와 도시락 등을 자체로 준비하게 하여 농가의 부담을 없애고, 전문기술이 필요한 작업에 대해서는 전문가의 사전교육으로 농가에 피해가 되지 않는 실질적인 도움을 주게 했다. 예천군 관계자는 “본격적인 수확 철을 맞아 부족한 농촌 일손의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도록 기관단체, 민간단체, 군부대, 군 산하기관 등의 적극적인 참여”를 당부했다.
-
깊어가는 가을 경주서 신라의 달밤 함께 걸어요깊어가는 가을, 은은한 달빛과 함께 신라 천년의 문화와 역사가 어우러진 경주에서 오는 27일부터 28일 무박2일간 ‘신라의 달밤 165 걷기대회’가 열린다. 경주를 대표하는 문화체험형 걷기대회인 이번 행사는 올해 17회를 맞아 동궁원, 분황사, 첨성대, 재매정, 월정교, 통일전 등 경주 주요 관광지를 풀코스 165리(66km)와 단축코스 75리(30km)로 나눠 진행된다. 풀코스는 황성공원 축구공원 5구장에서 출발해 동궁원과 보문호를 지나 추령재, 장항사지, 불국사, 통일전, 월정교, 첨성대, 대릉원을 거쳐 황성공원 광장으로 돌아온다. 단축코스 역시 황성공원 축구공원 5구장에서 출발해 동궁원과 보문호를 거쳐 숲머리, 분황사를 돌아 동궁과월지, 첨성대, 월정교, 재매정, 남천과 서천을 지나 황성공원에 도착하게 된다. 이미 인터넷 홈페이지(www.kjlove.kr)를 통한 참가신청은 3,000여명으로 마감되었으나, 행사 당일인 27일 오후 4시부터 황성공원 축구공원 5구장에서 선착순 500명까지 접수가 가능하다. 참가비는 풀코스 일반 17,000원, 청소년 및 단체는 15,000원이며, 단축코스는 일반 14,000원, 청소년 및 단체 12,000원이다. 단체는 20인 이상 적용되며, 기타 참가 문의는 (사)경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054-743-5521)으로 하면된다. 주낙영 경주시장은 “노천박물과능로 불리는 경주의 옛길을 달빛아래 걷는 이번 행사를 통해 가을 정취를 만끽하고, 천년 역사 속의 신라의 숨결을 함께 느끼길 바란다”고 밝혔다.
-
‘제2회 경북청소년지도자대회 및 사랑의 쌀, 장학금 전달식’ 열려의료법인 이레의료재단(이사장 윤봉호) 주최로 열린 ‘제2회 경북청소년지도자대회 및 사랑의 쌀, 장학금 전달식’이 지난 6일(토) 경산시 재향군인회관 4층에서 수상자와 축하객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됐다. 이번 대회에서는 장애인종합복지관, 노인복지시설 등에 사랑의 쌀을 전달하고 경북 도내 초·중학생 6명에게 장학금을 전달함으로써 지역사회 어르신들의 삶의 질 향상과 청소년 인재 교육함양에 이바지하고자 했다. 또한, 각 지역에서 봉사와 헌신에 앞장서는 목회자, 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 예술인, 사업가, 주부, 학생 등을 발굴해 김석기·김광림·박명재·이완영·송언석 국회의원 표창, 경북도의회 의장 표창 등으로 치하하고 격려했다. 장학생으로는 김태완(사동중 2년) 외 5명이 선정됐으며, 김석기 국회의원 표창에는 박숙자(참좋은 노인복지센터 센터장) 외 3명, 김광림국회의원 표창에는 박정웅(사월교회 장로) 외 3명이 선정됐다. 이번 대회에 표창을 받은 대상자는 총 51명이다.
-
심장에 전도의 불을 지핀 사람, 정재순 목사(4·끝)김승학 목사신학과 교수/기독교 교육학안동교회 담임목사 정재순 목사(鄭在淳, 1878~1948) 11. 청소년 기독교학교의 설립자(設立者), 정재순 안동으로 이임하기 전 경산과 대구에서 기독교 초등학교의 교사로 근무한 적이 있었던 정재순 목사는 누구보다 교육에 관한 많은 관심이 있었다. 당시 안동교회는 이미 1911년 안동 최초의 여자 학생을 위한 초등학교인 계명학교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계명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신앙과 무관한 공립학교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기독교 정신으로 세워진 중등학교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따라서 부임한 지 2년이 경과한 1924년 4월, 정재순 목사가 의욕적으로 추진하여 경안중학원이 설립되었다. 경안중학원은 오늘날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포함한 중등교육기관으로 경안노회 산하기관으로 편성하여 경안노회가 운영토록 했다. 이때 노회가 결의한 내용은 경안중학원의 발기인은 경안노회 경내의 교역자로 하고, 운영자금은 10세 이상 교인마다 의무금은 50전(1100환)으로 하고, 그 외 생일연보와 특별연보도 학교운영을 위한 예산으로 편성했다. 특히 학생들이 납입해야 하는 입학금과 월사금은 2300환으로 정했다. 초대교장에는 당시 안동교회 담임인 정재순 목사, 교사는 4명, 학생 수는 무려 100여 명이나 되었다. 그러나 경안중학원은 오래 지속할 수 없는 한계가 내재해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학교운영에 필요한 재원의 부족이었다. 당시 각 교회는 부족한 재정으로 운영되고 있었고, 더욱이 안동선교부의 외부지원 없이 중등교육기관을 운영한다는 것은 당시 교회 형편으로 볼 때 힘겨운 일임에 틀림없었다. 이에 1926년 제10회 경안노회에서는 안타깝게도 경안중학원의 폐교를 보고하게 된다. 하지만 경안중학원이 설립된 지 30년 만인 1954년 경안노회 설립인가를 받고 경안고등학교가 개교하였으며, 1961년에는 경안중학교가, 1966년에는 경안여자중학교와 경안여자상업고등학교가 개교하였다. 따라서 정재순 목사가 30년 전에 시작한 경북북부지역의 중등학교의 꿈이 비로소 이루어져 수많은 기독교 인재들을 배출하게 되었다. 12. 교회의 질서(秩序)를 세운 사람, 정재순 초기 한국교회는 철저한 권징과 치리를 통해 교회의 질서를 잡아갔다. 초기 한국교회 권징의 특징은 올바로, 공평하고, 바르게 행해진 권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정재순 목사 역시 성도들이 성경이 제시하는 길을 가지 않으면 책벌을 통해 방향을 수정할 수 있게 했다. 당시 안동교회의 당회록에 따르면 교회에서 행한 책벌의 이유는 다양했다. 예를 들면, 부부 사이에 불화가 있으면 교회는 그들을 당회로 불러 화해를 권면하거나 책벌하여 화평한 가정을 이루어 가도록 개입했다. 또한, 주일성수를 못하는 교인들을 책벌하거나 권징함으로써 성도의 의무를 다하게 했다. 그 외에도 교회법을 따르지 않고 세상적으로 결혼예식을 한 경우, 중직자의 자녀가 방탕한 생활에 빠져 죄를 범한 경우, 교인 사이에 불화가 생긴 경우, 일상생활 속에서 교인의 생활에 어긋난 행위들도 예외 없이 책벌의 대상이 되었다. 교회법에서 권징의 목적은 잘못을 한 형제를 교정하고 다른 형제들이 잘못하지 않게 하는 데 있다. 권징은 교회를 든든히 세우고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주신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다. 안동교회는 당회가 조직된 이후 권징을 통해 교회의 질서를 잡아갔다. 정재순 목사는 안동교회에서 시무한 3년 동안 죄를 범한 교인들을 차별 없이 공평하게 치리함으로써 안동교회를 든든히 세워가는 기초를 닦았다고 할 수 있다. ▲1913년 7월 20일 김병우 장로가 장립함으로써 안동교회는 안동지역 최초의 당회를 조직하게 되었다. 안동교회의 역사적인 첫번째 당회는 초대장로인 김병우 장로가 기도함으로8월 9일에 개회되었다. 13. 부인이 전도의 동역자(同役者)인 사람, 정재순 정재순 목사는 복음을 전하는 일에 사도 바울처럼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했던 복음전파자였다. 마찬가지로 그의 부인인 손주안(孫主安) 사모도 생명을 걸고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에 순종했던 믿음의 사람이었다. 정재순 목사의 부인인 손주안은 사모보다 전도사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 이유는 그가 사모로서 단순히 남편을 돕는 역할을 넘어 보다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전도인의 사명을 누구보다 잘 감당한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안동교회를 사임하고 대구 동산병원 직원전도회 담당목사로 사역한 1925년 6월부터 1937년 3월까지 정재순 목사는 28개 교회를 개척했다. 마지막으로 의성의 두 교회를 개척한 것은 그의 나이 60세가 되던 해이다. 정재순 목사는 경상북도 거의 전 지역인 청도, 영천, 경산, 달성, 고령, 월성, 경주, 영일, 칠곡, 상주, 군위, 선산, 의성군 등에 교회를 개척하고 목회사역을 감당했다. 교통환경이 열악한 당시 상황을 생각해보면 정재순 목사가 감당한 사역범위는 매우 넓어 마치 해외선교사의 사역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정재순 목사가 설립한 교회는 고모교회, 삼창교회, 기계교회, 덕지교회, 봉곡교회, 구릉교회, 삼귀교회, 예리교회, 금암교회, 조암교회, 방촌교회, 구촌교회, 대천교회, 대제교회, 기성교회, 입실교회, 양촌교회, 유금교회, 경동교회, 유동교회, 와동교회, 삼산교회, 평지교회, 석우교회, 음지교회, 화령교회, 서제교회, 오로교회이다. 그런데 손주안 사모는 정재순 목사가 개척한 28개 교회 중에서 무려 10개 교회를 함께 개척하고 돌보았다. 손주안 사모는 정재순 목사와 동산병원을 섬겼을 뿐 아니라 대구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위치한 도시에 교회들을 개척하고 돌보았던 것이다. 그는 자기 부부가 개척한 교회가 든든한 교회로 세워지기를 소원하며 어머니의 마음으로 자식처럼 사랑하며 헌신적으로 섬긴 참된 복음전도자였다고 할 수 있다. 결론 정재순 목사는 신실하고 충성스러운 사역자였다. 복음을 위해 생명을 건 하나님의 종이었다. 그가 행한 거룩한 사역은 참으로 많다. 그는 부해리 선교사를 만나 복음을 수용하고 예수를 영접한 이후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위해 살았다. 그는 단 한 순간도 교회를 떠나본 적이 없는 교회를 위한, 교회의 사람이었다. 정재순 목사는 교회가 지역사회 속에 있음을 인식하며 주민을 위한 사역을 숙고했던 인물이다. 그 결과 청소년을 위한 경안중학원을 설립했다. 그가 다니는 곳에는 복음의 씨앗이 뿌려졌다. 또한, 그는 치밀한 계획을 세워 안동 땅을 복음화시킨 전도전략가였다. 안동에서 사역을 마친 정재순 목사는 부인 손주안 사모와 함께 거의 경상북도 전 지역인 청도, 영천, 경산, 달성, 고령, 월성, 경주, 영일, 칠곡, 상주, 군위, 선산, 의성군 등에 교회를 개척하는 복음전도자로 살았다. 또한, 그는 첫 담임목회지인 신정교회에서 거룩한 사역을 마감했다. 그는 목회 전반전과 동일하게 목회 후반전에도 복음을 위해 불꽃을 불사르며 살았던 열정의 사람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나이는 정말 숫자에 불과했다. 그러나 신실한 주의 종, 정재순 목사가 걸어온 길은 참으로 고단한 길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한 그의 삶은 때로 감옥에서 생활하게 했으며, 복음에 대한 열정은 60이 넘어서까지 먼 길에 찾아가 교회를 개척하고 성도들을 돌보게 하였다. 그는 일평생 변방에서 예수의 참 제자로 살았다. 1878년 출생한 정재순 목사는 부르심에 감사하며 순종하는 삶을 살다가 1948년 71세 나이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천국에 입성하였다. ▲정재순 목사와 손주안 사모. 전도부인처럼 손주안 사모는 남편 정 목사를 도와 경산, 영천, 성주, 달성, 월성, 청도, 상주, 칠곡 등에 있는 힘들고 어러운 형편에 있는 작은 교회들을 돌보았다. /논문 발췌‧정리=박은숙 기자/<논문 원본 www.gbhana.com>
-
심장에 전도의 불을 지핀 사람, 정재순 목사(1)김승학 목사 신학과 교수/기독교 교육학 안동교회 담임목사 정재순 목사 鄭在淳, 1878~1948) 1900년 초 어느 날 정재순 목사는 부해리(傳海利, H.M. Bruen) 선교사와 만났다.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만났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다만 정재순이 20을 갓 넘은 나이에, 경산 어느 마을에서 부해리 선교사를 만났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예수를 믿기로 결심한 이후 정재순은 단 한 번도 교회를 떠난 적이 없이 초창기 한국교회를 위해 헌신했다. 그는 교회 안에 세워진 기독교학교의 교사생활을 시작했으며, 선교사의 조사가 되어 함께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돌보는 일을 했다. 조사로 여러 교회를 섬기던 정재순은 1912년 평양신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던 1914년, 그가 섬기고 있던 대구 신정교회(현 대구 서문교회)에서 신정교회 초대장로로 임직하게 된다. 이후 1915년 평양신학교 제8회로 졸업한 후 목사임직을 받고 신정교회 첫 한국인 담임목사로 부임했다. 초임지인 대구 신정교회에서 정재순 목사의 사역은 국가와 민족을 위한 사역이었다. 여자 청소년을 위한 야간 학교를 개설했고, 대구 3·1만세운동에 깊이 관여했다. 1922년 6월 안동으로 사역지를 옮긴 후, 그는 전도중심의 사역을 통해 안동 땅을 기경하기 시작했다. 또한, 그는 계속적인 그의 관심사인 학원선교를 위해 청소년을 위한 기독교학교를 설립했으며, 교회분립을 통해 안동 땅의 부흥을 위한 새로운 도전을 감행하기도 했다. 안동을 떠난 이후 대구를 근거지로 둔 정재순 목사는 본격적인 복음전파자의 길을 걸었다. 청도, 영천, 경산, 달성, 고령, 월성, 경주, 영일, 칠곡, 상주, 군위, 선산, 의성군 등에 28개 예배처소를 개척했다. 이때 그의 부인인 손주안 사모는 함께 교회를 개척하고 함께 성도를 섬기고 돌봄으로써 그의 소중한 동역자가 되었다. 정재순 목사는 60세에 그의 첫 담임 목회지인 대구 신정교회로 돌아가 사역을 마무리했다. 정재순 목사는 목회 전반전과 후반전을 똑같은 열정과 투철한 사명감을 갖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불꽃을 불사르며 살았을 뿐 아니라 성도들의 심장에 전도의 불을 지핀 믿음의 사람이었다. 1. 목사 임직 이전의 인간(人間), 정재순 정재순에 관한 기록은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으며 극히 단편적인 것만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한국기독교 교회역사 주영연구소장 이교남 목사의 연구에 의해 2013년 새롭게 밝혀진 정재순의 가족 관계는 다음과 같다. 부해리(傅海利, H.M. Bruen) 선교사 정재순은 1878년 5월 24일, 경북 경산군 남천면 신기동에서 출생했다. 부친은 정진호, 모친은 김소사의 2남 4녀 중 장남이며, 부인은 손주안이다. 정재순은 외동아들을 두었는데 아들은 정원조, 자부는 손기순이며, 그의 후손은 현재 대구에서 교회를 잘 섬기고 있다. 정재순 가문은 당시 여느 가문처럼 유학의 집안이었다. 따라서 그는 어릴 때부터 한문을 배우고 한학을 수학하며 유학을 따르는 집안에서 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재순 목사의 묘는 칠곡에 있었는데, 1982년에 대전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정재순 목사가 안동교회에 시무할 때 교인으로 생존한 성도들이 기억하고 있는 정재순 목사는 천성이 어질고 중후한 성품을 가지고 있었다. 성도들은 후덕하고 인정이 많은 교육자요 목회자인 그를 신앙과 인격 모든 면에서 존경하며 영적 리더십에 순종했을 것이다. 정재순 목사는 교인들을 포함한 주변의 여러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주는 주의 종이었다. 2. 선교사를 만나 회심(回心)한 사람, 정재순 유교가 뿌리 깊은 가정에서 출생하고 성장한 정재순은 처음에 기독교에 심한 거부감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재순 목사의 증손자에 따르면 정재순이 선교사를 구타하고 쫒아내려고 선교사를 찾아갔다가 부해리 선교사를 만나 전도 받고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한다. 기록에 의하면, 정재순 목사는 부해리 선교사를 찾아갔을 때 선교사의 사냥개가 빵을 다리 위에 놓고 주인이 먹으라는 명령을 기다리는 모습을 보고, “개도 기도하고 난 후에 밥을 먹는데, 사람인 나는 당연히 하나님께 기도해야 되지 않겠는가?”하고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1900년 초 대구·경북 지방은 대구선교부 소속 선교사들이 지역을 정해 선교에 열심을 내고 있었다. 부해리 선교사, 안의와 선교사, 방위렴 선교사는 각각 경북 서부지방, 동부지방, 북부지방을 맡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선교사들은 다른 지역의 선교와 교회에 어느 정도는 관여하고 있었다. 정재순의 거주지인 경산 사월교회는 1898년 4월 안의와 선교사가 설립했으며, 부해리 선교사와 맹의와 선교사가 뒤이어 2대, 3대 담임 목사를 맡았다. 부해리 선교사는 1905년 사월교회에 부임했지만, 이미 1903년 이전에 경산을 방문해 복음을 전했던 것으로 추측되며, 따라서 정재순은 1903년 이전에 부해리 선교사의 전도를 받아 회심했다고 보여진다. 3. 어린이 기독교학교의 교사(敎師), 정재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정재순은 당시 어린이 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교사로 봉사하기 시작했다. 정재순의 증손자의 증언에 따르면 1905년 그는 경산 사월교회가 문을 연 계동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했다. 계동학교의 초대교사는 정재순, 전기식, 문사인 제씨였다. 계동학교는 오늘날 초등학교 수준의 학교로 신교육에 힘쓰며 인재양성에 앞장섰다. 이후 1910년경 경산에서 대구로 온 정재순은 대구 남성정교회가 운영하는 기독교 초등학교인 희도보통학교 전신(前身) 대남소학교에서 교사로 활동했다. 당시 교회 중심으로 세워진 기독교 학교들은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하던 백성들에게 복음 뿐 아니라, 근대교육의 통로로 큰 역할을 감당하였다. 정재순은 경산에 이어 대구에서도 기독교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다. 이것은 그가 얼마나 다음세대의 기독교 교육에 관심과 열정을 갖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하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의 주된 관심사 중의 하나인 다음세대 신앙교육에 관한 애정은 안동교회에 부임한 이후 곧이어 기독교 학교를 설립한 것을 통해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1911년 개교한 계동학교를 포함한 사월교회의 예배당과 종탑, 교회 정문과 화장실을 기억을 되살려 추정하여 그린 사진이다. 종탑을 사이에 두고 예배당과 계동학교가 나란히 서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아마 계동학교를 통한 다음세대의 교육을 그만큼 중시했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논문 발췌‧정리=박은숙 기자/<논문 원본 www.gbhana.com>
-
영주영일교회, 영주시인재육성장학회 장학금 기탁영주시인재육성장학회(이사장 장욱현)는 영주영일교회에서 인재육성 장학금 50만 원을 기탁했다고 지난 5일 밝혔다. 영일교회 방윤식 목사는 “영주의 미래를 밝혀줄 학생들을 위해 성도들이 정성어린 헌금으로 장학금을 마련하게 되었다”며 “자라나는 우리지역 청소년들이 큰 꿈을 가지고 미래를 설계하는데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고 마음을 전했다. 장욱현 이사장은 “지역의 인재들을 위해 장학금을 기탁해주셔서 감사하며, 학생들이 공부에 힘쓰고 꿈을 이뤄갈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데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영덕군, 신생아 증감 비율 전국 2위!영덕군이 신생아 증감비율 전국 2위를 기록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7년 인구통계에 따르면 영덕의 신생아 수가 2016년 163명에서 2017년 208명으로 28%나 증가했다. 전국적으로 저출산이 심각한 상황에서 영덕의 출산율이 크게 증가한 것은 출산장려금 확대와 출산·보육 인프라 구축에 힘쓴 결과다. 2016년 합계출산율(※ 합계출산율 : 가임여성(15~49세) 1명이 평생 출산하는 평균 자녀 수) 1.225로 초저출산 사회(※ 초저출산 사회 : 합계출산율 1.3명 이하)에 접어들자 영덕군은 「영덕군 출산장려금 등 지원에 관한 조례」를 개정했다. 그 결과 첫째·둘째 자녀 이상 출산장려금 규모가 크게 늘었다. 두 자녀 가정의 경우 출생아 건강보험료 360만 원 포함, 총 1천 830만원을 지원받을 수 있다. 경상북도 군부에서 지원규모는 2위를 차지한다. 영덕군에 앞서 출산장려금 지원 정책으로 큰 효과를 본 곳은 전남 해남군이다. 해남군은 2012년 양육비 지원을 현실화하며 2011년 1.52명이던 합계출산율이 2012년 2.47명으로 치솟았다. 전국 229개 시군구에서 해남이 2012년부터 6년간 합계출산율 1위를 차지했지만 총인구는 꾸준히 감소해 경제적 지원 위주의 인구정책은 한계에 부딪히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해남군 사례를 참고해 영덕군은 출산장려금 지원이 끝나는 시점에서 우려되는 인구유출을 막고자 임신·출산·보육 인프라 구축에 적극 투자하고 있다. 관내 어린이집 13개소(공립 5, 민간 8) 중 12개소가 한국보육진흥원 평가인증 시설이며 민간 어린이집 보육수준을 지속적으로 향상시킨 결과 보건복지부 선정 공공형 어린이집이 5개소(63%)로 늘었다. 또한 가족품앗이 활동에 필요한 공간을 제공하고 부모의 양육부담을 덜기 위해 공동육아 나눔터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엔 세이브더칠드런 공모사업으로 지품면에 팡팡놀이터를 완공해 농어촌지역 아동이 방과 후에도 안전하게 놀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으며 1억 6천만 원을 들여 신축 보건소에 영유아를 위한 장난감 도서관을 운영할 계획이다. 생애맞춤형 출산·육아 상담지원센터 구축사업이 2018년 경북도 저출산 공모사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영덕군은 임신·출산·보육정책 통합 컨트롤타워를 구축하는 한편 저출산 극복 기본계획 조례 제정과 중장기 5개년계획 용역을 추진해 지역특성을 반영한 종합적이고 실질적인 인구정책 수립에 힘쓰고 있다. 군 관계자는 “인구감소가 국가위기를 가져오고 있는 만큼 지역맞춤형․생애주기별 인구정책을 추진해 ‘아이와 함께 행복한 영덕’을 만들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
6.25의 노래비 제막식대한민국 6.25참전유공자회 상주시지회(회장 최영근)는 10월 8일 개최하는 화령 전승기념행사 및 전승기념관 개관식에 앞서, 9월 22일 화령 전승기념관 내 야외정원에 노래비를 설치하고 10월 1일 최영근 회장을 비롯한 6.25참전유공자회원 38명이 참석하여 제막식을 개최했다. 6.25의 노래비는 6.25참전유공자회상주시지회 회원 및 임원진 39명이 후원하여 제작·설치하였다. 노래비에는 6.25의 노래, 제17연대 보병연대 역대 지휘관(연대장), 화령전투 주요전사 등이 새겨져있다. 화령전승기념관은 6․25전쟁 중 주민신고와 정찰활동 지원, 군의 매복 작전으로 적을 대파하여 전쟁의 불리한 판세를 바꾸고, 낙동강 방어선 구축의 시간적 기반을 제공한 상주 화령전투의 전승을 기념하며, 나라사랑 정신계승과 청소년 호국안보 의식함양 등을 위해 건립하였다.
-
2018 기업체 탐방 인터뷰 - 삼우연합정형외과의원 김 식 원장<화제의 인물 : 단독 인터뷰> 만나고 싶었습니다! 구미 삼우연합정형외과 김 식 원장 “소통”과 “공감”의 의술 펼치다! 소통이 없어진 시대, 지식과 정보는 넘쳐나는데 막상 우리에게 어떤 문제가 생기면 마음 놓고 찾아가 대화를 나눌 곳이 점점 없어지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나 구미시 형곡동에 위치한 삼우연합정형외과에 가면 마음씨 따뜻한 의사 선생님이 한 분 계신다. 병원을 방문한 환우들은 진료뿐 아니라 인생 문제 상담까지 오랫동안 의사 선생님과 대화를 나눈다. 김 식 원장의 “공감” 의술이 빛나는 의료 현장이다. 본지에서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일터 사역을 펼치고 있는 김 원장을 만나 그의 생각을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다음은 그와 나눈 진솔한 대화들을 정리한 것이다. Q. 환자들과 특별히 많은 얘기를 나눈다고 알고 있습니다. 원장님의 의술 철학이 있다면요? 현대는 의료 분야에서도 지식과 학문이 놀랍게 발전했습니다. 의료 장비도 최첨단으로 발달하고 진료 과목은 더 전문적으로 세분화되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가진 문제, 즉 몸이 아플 때 그것을 치료하는 패턴은 아직도 그에 못 미치고 있습니다. 어디가 아픈지 묻고, 엑스레이 찍고, 주사, 약, 물리치료… 저는 그런 획일적인 치료에서 벗어나 환자들과 함께 문제를 해결하고자 진정성 있는 대화를 많이 합니다. “소통”이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Q. 매일 아침 진료를 시작하기 전, 직원들과 15분씩 스트레칭과 운동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우리는 운동을 안 하면서 환자들에게만 하라고 하는 것은 진실성이 없으니까요. 저는 치료하면서도 환자가 꼭 해야 하는 운동은 저도 같이 따라 합니다. 의사의 권위는 강요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신뢰를 얻을 때 저절로 형성되는 것입니다. 병원 경영에서도 저는 직원들의 의견을 최대한 들어주고 인정해줍니다. 지난 6월 18일부터 저희 병원은 주 5일 진료로 바뀌었습니다. 직원들의 근무 여건을 존중해주기 위해서였습니다. 끊임없이 서로를 신뢰해주는 것, “공감”의 형성은 기독교인들의 일터 현장에서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Q. 영적인 원리가 의료 현장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남기시고 싶은 말씀은요? 모든 병에는 원인이 있기 마련입니다. 정형외과적인 질병은 잘못된 생활 습관과 자세에서 오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그 근본 원인을 고치지 않으면 재발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의사는 병 고치는 능력을 100%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그저 효율적인 해결 방법을 알고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일 뿐입니다. 환자와 의사는 서로 존중해야 하고 신뢰할 수 있는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물론 그것은 약간의 시간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서로 상처받을 수도 있으니까요. 저는 저를 의사의 길로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환자들을 그분의 마음으로 대하고자 항상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인터뷰 후기> 삼우연합정형외과 병원에는 아늑한 분위기의 병실과 물리치료실, 비수술 로봇형 척추 디스크 치료기 등 최첨단 장비들이 갖추어져 있었다. 그러나 그런 시스템보다도 더 병원에 신뢰가 가는 것은 바로 환우들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의사 선생님이 있기 때문이다. 마음 놓고 언제나 찾아갈 수 있는 병원, 궁금한 것은 무엇이든 대답해주는 의사 선생님, 김 식 원장의 하얀 가운은 우리에게 그렇게 기억되길 바래본다. /대담·정리=박은숙 기자/
Warning: Illegal string offset 'use' in /home/jane82850/public_html/theme/wide01/mobile/skin/search/basic/search.skin.php on line 138
Warning: Illegal string offset 'skin' in /home/jane82850/public_html/theme/wide01/mobile/skin/search/basic/search.skin.php on line 139
Warning: Illegal string offset 'use' in /home/jane82850/public_html/theme/wide01/mobile/skin/search/basic/search.skin.php on line 138
Warning: Illegal string offset 'skin' in /home/jane82850/public_html/theme/wide01/mobile/skin/search/basic/search.skin.php on line 139
Warning: Illegal string offset 'use' in /home/jane82850/public_html/theme/wide01/mobile/skin/search/basic/search.skin.php on line 138
Warning: Illegal string offset 'skin' in /home/jane82850/public_html/theme/wide01/mobile/skin/search/basic/search.skin.php on line 1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