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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장합동 제107회 총회, “샬롬·부흥 운동”으로 시작▲ 직전총회장 배광식 목사가 신임총회장 권순웅 목사(우)에게 성경과 의사봉을 전달하고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제107회 총회가 9월 19일 오후 2시 주다산교회(권순웅 목사 시무)에서 개회했다. 개회예배는 총회서기 허 은 목사가 인도했으며, 총회장 배광식 목사가 설교, 직전총회장 소강석 목사가 축도했다. 배광식 총회장은 ‘은혜 위에 은혜가 임하는 총회’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이 땅에 다시 부흥의 불길을 타오르게 하며, 생명력을 가진 교회로 다시 세워지는 일을 위해 헌신하는 제107회 총회가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고 전했다. 개회예배를 마친 후 제107회 총회선거에서는 총회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소강석 목사)가 우선 단독후보를 일괄 상정했다. 배광식 총회장이 가장 먼저 총회장 후보 권순웅 목사의 당선을 공표했다. 1,500여 명의 총대들은 기립박수로 신임총회장 권순웅 목사를 맞이했다. 권순웅 신임총회장은 제107회기 주제로 샬롬·부흥을 내걸었으며, “샬롬·부흥운동으로 전도, 다음세대, 공의를 세우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겠다”고 다짐했다. 장로부총회장은 단독후보로 출마한 임영식 장로(아천제일교회)가 당선됐으며, 지난 회기 부서기였던 고광석 목사(광주서광교회)는 서기에, 부회록서기였던 한기영 목사(전주은강교회)는 회록서기에, 부회계였던 지동빈 장로(강변교회)는 회계에 당선됐다. 아울러 부회록서기는 전승덕 목사(설화교회)가 당선됐다. 이어진 총회 임원 경선 투표에서는 오정호 목사가 유효표 1,507표 중 807표를 획득해, 693표에 그친 한기승 목사를 제치고 목사부총회장에 당선됐다. 부서기는 김한욱 목사(새안양교회), 부회계는 김화중 장로(북일교회)가 차지했다. 한편, 제107회 총회 21개 상비부장 중에 영남지역에서는 정치부장 강진상 목사(평산교회), 재정부장 홍석환 장로(강북성산교회), 감사부장 김경환 장로(일광교회), 학생지도부장 손성욱 목사(도리원교회), 사회부장 안상헌 목사(상주제일교회), 은급부장 김상규 장로(자인제일교회)가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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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장통합 경서노회장로회 제51회 정기총회 개최▲ 신임 회장 이병섭 장로(좌)와 직전회장 이문영 장로(우)가 축하를 받고 있다. 예장통합 경서노회장로회 제51회 정기총회가 9월 17일(토) 구미영락교회(조윤호 목사 시무) 예배당에서 내빈과 축하객, 회원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1부 예배는 수석부회장 이병섭 장로 인도로, 직전회장 박병상 장로 기도, 회록서기 한영배 장로 성경봉독, 장로찬양단의 찬양, 구미영락교회 조윤호 목사 설교, 노회장 장영운 목사의 축도 순으로 드렸다. 조윤호 목사는 설교에서 “우리는 항상 어떤 눈으로 바라보는지, 어떤 소리를 듣는지, 목적지를 향해 잘 가고 있는지 스스로를 점검해야 한다”면서,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영적인 소리를 듣고,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달려가는 종들이 되길 원한다”라고 전했다. 2부 축하 시간에는 전국장로회연합회 수석부회장 황진웅 장로와 동부지역장로협의회 수석부회장 안병주 장로가 격려사를, 경서노회장 장영운 목사가 축사를 했다. 3부 총회는 회순에 따라 진행했으며, 임원개선을 통해 신임 회장에 이병섭 장로(구미영락교회), 수석부회장에 이성우 장로(상주교회)가 선출됐다. 이어 부회장단과 실무임원진이 선임되고 총회의 승인을 얻었다. 신임 회장 이병섭 장로는 “부족한 저를 세워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면서, “앞으로 경서노회장로회를 최선을 다해 열심히 섬기겠다”고 인사했다. ▲ 경서노회장로회 제51회 정기총회가 9월 17일(토) 구미영락교회 예배당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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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진영 찬양사 찬양집회’ 열려영주노회 중고등부연합회(회장 박남주 장로) 주최로 영주지역 청소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해 마련한 ‘소진영 찬양사 초청 찬양집회’가 지난 8월 27일(토) 오후 4시 30분 영주제일교회 본당에서 열렸다. 소진영 찬양사는 마커스워십 예배 인도자이며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고 있고, 주내힘교회 찬양사로 사역을 하고 있다. 대표곡으로는 ‘나의 한숨을 바꾸셨네’, ‘오직 예수뿐이네’, ‘예수 늘 함께 하시네’, ‘주 은혜임을’, ‘주는 완전합니다’ 등이 있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500여명의 청소년들은 소진영 찬양사의 찬양을 듣고, 함께 찬양을 부르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경험하는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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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장통합 동부지역장로협의회 ‘하계수련회’ 개최예장통합 동부지역장로협의회(회장 박영배 장로) 제23회 하계수련회가 지난 8월 29일(월) 오전 10시 코모도호텔경주에서 개최됐다. “주여! 화목하게 하소서”를 주제로 열린 이번 수련회에는 동부지역 17개 노회에서 300여명의 회원들이 참석해, 장로의 사명을 다짐하며 나라와 민족, 한국교회와 지역사회를 위해 한목소리로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1부 예배는 회장 박영배 장로 인도로, 직전회장 이상길 장로 기도, 서기 서기봉 장로 성경봉독, 윤재덕 목사(울산비전교회)의 설교, 축도, 장로회가 제창 등의 순서로 드렸다. 2부 환영의 시간은 수석부회장 안병주 장로 사회로 진행했고, 전국장로회연합회장 류재돈 장로, 영남지역노회협의회장 김영춘 목사, 서부지역장로 협의회장 양정석 장로, 중부지역장로협의회장 이재하 장로가 격려와 축하 메시지를 전했다. 이어진 특강 시간에는 손병렬 목사(포항중앙), 양원용 목사(광주남문), 이기주 목사(사랑선교), 황세형 목사(전주시온성)가 은혜의 말씀을 전했고, 폐회예배에서는 박일원 목사(울산영락)가 말씀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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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드온협회 영주캠프, 순방예배 및 월례회 가져▲영동교회 순방예배 시 기드온 회원들이 특송을 하고 있다. 한국국제기드온협회 영주캠프(회장 전상욱 형제)는 지난 8월 21일(주일) 총 35명의 회원(기드온 20명, 부인회 15명)이 참석한 가운데 영동교회에서 순방예배를 드리고, 제27회기 제3차 월례회 모임을 가졌다. 월례회를 여는 경건회는 총무 정병주 형제가 인도했으며, 교회사역부장 나인식 형제가 기도한 후 다같이 성경말씀을 봉독했다. 이어진 회의는 회장 전상욱 형제 인도로 진행했다. 회장 인사, 회원 점명 및 사업보고, 재정보고, 안건토의, 기드온회가 제창 후 주기도로 마무리했다. 이번 월례회에서는 강성각 형제 가정을 비롯한 4가정(8명)이 신입회원으로 가입해 앞으로 기드온 회원으로서의 사명을 충실히 감당할 것을 다짐했다. 한편, 영주캠프 제27회기는 지난 8월 13일(토) 영주시민교회에서 주간기도회를 했으며(총 15명 참석), 7월 9일(토)에는 세계성막복음센터(평택 소재)에서 총 34명(기드온 19명, 부인회 15명)이 참석한 가운데 ‘일일수련회’를 가진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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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시기독교연합회 ‘연합부흥성회’ 열어영주시기독교연합회(회장 이태용 목사)는 지난 8월 17일(수) 저녁 8시 집회부터 19일(금) 저녁 8시 집회까지 영주제일교회 본당에서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연합부흥성회’를 개최했다. 이번 부흥성회는 “하나님 나라의 영성을 회복하라”는 주제로 열렸으며, 차준희 목사(한세대 교수)와 한상인 목사(광주순복음교회 담임)가 주강사로 초청돼 은혜의 시간을 이끌었다. 17일 저녁과 18일 새벽 시간에는 차준희 목사가 ‘고난의 영성’, ‘풍·기·도의 영성’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으며, 한상인 목사는 18일 저녁과 19일 새벽·저녁집회 시간을 통해 ‘장막터를 넓히는 비전으로 비상하라’,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라’, 새 세계를 여는 성령충만’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19일 저녁집회에서 한상인 목사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눈이 열린 사람”이라며, “성령충만으로 위대한 삶을 살아가라”고 강조했다. 세 번의 저녁집회는 회장 이태용 목사, 서기 신동필 목사, 부회장 김원곤 목사가 각각 인도했고, 영주제일교회·영주시민교회·영주동산교회찬양대가 섬겼으며, 바리톤 허 호 집사가 특별찬양을 했다. 영주시기독교연합회는 매년 연합부흥성회를 개최해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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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선교 초기의 기독교 모습들(5)안동선교 초기의 기독교 모습들(5) 김승학 목사 신학과 교수/기독교교육학 안동교회 담임목사 목차 서문 1. 안동 땅을 밟은 첫 선교사, 베어드 2. 첫 교회들, 비봉·국곡·풍산교회 ............................................... 6. 안동지역 최초 근대서점, 기독서원 7. 안동의 첫 근대병원, 성소병원 8. 안동지역의 첫 한국인 목사, 김영옥 ............................................... 13. 최초 성경학교, 안동여자성경학교 결론 6. 안동지역의 최초 근대서점, 기독서원(基督書院) / 1909년 100여 년 전 안동에 성경과 기독서적을 판매하는 기독서원이 존재했다. 이 기독서원은 안동 최초의 근대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안동교회 80년사는 대구선교부의 아담스 선교사가 서문 밖 초가 5칸을 사들여 기독서원을 개원했음을 기록하고 있다. 김병우(金炳宇)가 언제 매서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김병우는 당시 매서로 활동했다. 왜냐하면 안동읍 최초의 교회인 안동교회가 1909년 8월 8일, 8명이 첫 예배를 드릴 때 예배 인도자가 매서인 김병우였기 때문이다. 안동교회는 거의 1년 동안 이 기독서원에서 예배를 드렸다. 첫 예배 후 1년이 지날 즈음엔 회중의 수가 75명이 되어 공간이 비좁아 더는 예배를 드릴 수 없었다. 하지만 기독서원은 안동교회의 첫 예배처일 뿐 아니라, 오늘의 안동교회가 있게 된 안동 선교의 영적 자궁과 같은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기독서원은 평일에는 성경과 기독서적을 판매함으로써 문서선교의 사명을 감당했다. 기독서원의 운영에 관해 남아 있는 자료는 별로 없다. 하지만 한국교회 초창기 기독서점은 그 지역의 선교부나 선교사님에 의해 직접 관리되거나 운영되었다. 따라서 안동의 기독서원도 선교사들에 의해 경영되었지만, 어떤 시기부터 현지인인 한국인에게 운영권이 넘겨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 후 약 30여 년 동안 기독서원의 운영과 활동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기독서원 이후 처음으로 나타난 서점 은 삼신사(三神社) 서점이다. 1940년대 후반 당시로는 비교적 큰 규모의 기독서점이었다. 삼신사 기독서점은 초기 안동지역 교회를 위해 조사(助事)로 크게 헌신한 안동교회 김익현 장로의 장남인 김희년 집사가 운영했다. 삼신사는 성경과 기독문서를 판매했고, 이것은 기독교 서점의 명맥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져 문서선교를 가능하게 했다. 삼신사 이후 기독교 서점의 계보와 위치는 분명하다. 삼신사가 협신사(協信社) 서점이라는 이름으로 개명된 것이다. 협신사라는 이름의 유래는, 기독교 서점의 운영이 몹시 어려워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 되자, 안동교회의 몇 성도들이 믿음으로 협력했다는 뜻이 담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즈음에 협신사 서점의 운영권자도 최종식 집사로 바뀐다. 이때 우리 총회 기관지인 기독공보도 판매했다고 한다. 또한, 1950년 말에서 1960년 초에 협신사 서점은 안동교회 정문의 바로 서편 가옥으로 이전했다. 그리고 1970년 초 김화진 집사는 최종식 집사로부터 협신사 서점을 인수받았다. 김 집사는 위대한 전도인인 김수만 장로의 차남으로 개곡교회 김영진 장로의 제씨(弟氏)다. 그 후 협신사 서점은 권태복 전도사가 운영했으며, 권 전도사가 목회에 전념하게 되면서 협신사 서점은 동생 권인찬 집사(안동교회)에게 운영이 넘어갔다. 그러다가 1980년 안동교회 선교관이 준공됨으로써 현 위치로 이전된 후 협신사 서점이 협신사로 이름이 바뀌어 오늘까지 권오탁 장로(안동교회)가 운영하고 있다. 안동교회 맞은편 길 건너 버스 정류장 바로 앞에서 시작한 안동 최초의 근대서점인 기독서원. 서점 이름과 위치는 바뀌었지만 110년 넘게 안동지역의 기독교 서점의 역사는 오늘도 지속되고 있다. 삼신사, 협신사 기독서점, 그리고 협신사를 통해 안동지역의 문서선교는 계속되고 있다. 물론 100여 년 전 기독서원이 감당한 역할과 오늘 협신사의 그것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기독서원은 초기 안동지역 복음화의 산실이었다. 여기서 팔려나간 성경과 기독교 문서들을 읽고 많은 사람이 하나님께 나아왔고, 골짜기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그 결과 곳곳마다 교회가 세워졌다. 이처럼 기독서원과 삼신사, 협신사의 합력으로 미신과 불교와 유교의 땅인 안동에 세워진 교회들이 오늘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무려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기독교 서점이 안동에 존재한다는 것에 무한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기독서원으로 추정되는 5칸 초가집의 모습. 사진에 남성들이 주를 이룬 것을 보아 남성성경공부반 참석자 중심으로 촬영한 것으로 보인다. 앞 첫줄에 아이를 안고 있는 분이 안동교회 초대 목사요 경북북부지역 최초의 한국목사인 김영옥이다. 안동읍 최초 교회인 안동교회는 이곳 기독서원에서 1909년 8월 둘째 주일(8일) 8명이 첫 예배를 드렸다.(사진 5) /논문 발췌‧정리=박은숙 기자/ <논문 원본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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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영남목회아카데미 제1차 세미나’ 열려▲‘영남목회아카데미 제1차 세미나’가 지난 8월 22일 영남신학대학교에서 열렸다. 영남목회아카데미(공동위원장:신영균 목사 안승오 교수)에서 개최한 제1차 세미나가 지난 8월 22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영남신학대학교 이상근 기념관 정류홀에서 ‘성경과 목회’라는 주제로 열렸다. 영남목회아카데미는 영남신학대학의 학문과 경건의 인프라를 구축하고, 영남지역 17개 노회 목회자들에게 신학적 지식과 지도력 향상에 도움을 주고자 영남신학대학교 교회와목회연구소(소장 안승오 교수)와 예장통합 총회동부지역훈련원(원장 신영균 목사)의 협력으로 지난 5월에 설립됐다. 이번 세미나에는 영남신대 총동문회가 적극 협력했으며, 지역 목회자와 영남신대 신학생 등 50여 명이 참석해 평소에 관심을 가졌던 신학적 문제를 해소하고, 성경에 대한 보다 진일보한 지식과 목회적 역량을 키우는 기회가 됐다. 오전과 오후에 걸쳐 두 차례 진행된 세미나는 김진산 박사(대한성서공회 번역위원, 하브루타 한국대표)와 김한성 교수(영남신대 구약신학교수)가 각각 강연했다. ▲세미나에서 강연을 하고 있는 김진산 박사(좌)와 김한성 교수(우). 김진산 박사는 ‘신구약 중간시대 역사와 문헌’이란 주제의 강의에서 “신구약 중간시대의 랍비 유대교의 역사, 텍스트, 전통 등을 연구함으로써 신약성서의 배경을 이해하고 신약성서에 대한 이해를 더 높일 수 있다”라고 말했다. 김한성 교수는 ‘성서 히브리어의 구문론적 특성과 구약 본문 해석을 위한 제언’이란 주제의 강의에서 “성서의 바른 해석을 위해서는 히브리어 원어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실제적인 해석 방법의 예를 들며 그 중요성을 심도있게 설명했다. 한편, 이날 개회예배는 총무 유승종 목사의 인도로, 이춘길 목사(영남신대 총동문회장)의 기도, 공동위원장 안승오 교수의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리더십” 제하 설교, 서기 강석호 목사의 광고, 신성환 목사(포항목양테마교회)의 축도 순으로 드렸으며, 행사 전체를 마무리하는 폐회기도는 김명실 교수(영남신대 교수)가 했다. ▲예배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는 운영위원장 안승오 교수. 영남목회아카데미 운영위원회 조직은 다음과 같다. △고문: 김태영 목사(증경총회장) 권용근 총장(영남신대) 허원구 총장(부산장신대) △공동위원장: 신영균 목사 안승오 교수 △총무: 유승종 목사 △서기: 강석호 목사 △회계: 김은수 목사 △간사: 김순예 목사 △운영위원: 신성환 목사 이기주 목사 이은석 목사 김명실 교수 채혁수 교수 △후원이사: 이수근 목사 박인환 장로 서기봉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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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에서 천국으로(4‧끝)청송에서 천국으로(4‧끝) 박효진 장로 서울명문교회 청송감호소에 불어오는 바람을 흔히들 ‘귀신 바람’이라고 부릅니다. 주왕산 높은 봉을 타고 내려온 겨울 강풍이 협곡을 맹렬하게 통과하면서 공명이 되어 ‘이잉··· 위잉··· 이잉’ 내는 소리가 흡사 귀신의 울음소리 같다 하여 수용자들이 그렇게들 부르는 그 바람 센 날, 그는 청송감호소 정문을 나서서 자유의 땅으로 발을 내디뎠습니다. 수년 전, 이곳에 들어올 때만 해도 자신의 말마따나 ‘머릿속에 똥만 들었다’던 그가 이제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인텔리가 되어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가슴 뿌듯한 마음 그 뒤편에서 연기처럼 피어오르던 불안감을 어렴풋이 느꼈습니다. 다시는 어리석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겠다는 굳은 약속을 손가락 걸고 ‘사나이의 맹세’로 다짐했지만, 사회는 그에게 그리 만만하게 자리를 내어 주지 못하는 곳이라는 사실을 나도, 그도 잘 아는 엄연한 사실이기에 그 불안한 조바심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소식이 한참 뜸했던 어느 날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장로님, 저 대학교 합격했습니다. 앞으로 주의 종이 되려고 준비 중입니다.” “뭐라꼬? 니가 무슨 대학을 간단 말이고? 게다가 신학은 어쩐 일이고?” 그는 ‘주님의 뜻’을 따라 장차 목회의 길을 가리라고 마음먹고 수능을 거쳐 정규 대학 4년 과정을 달팽이가 절벽을 올라가듯 몸부림하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입학 등록금부터가 문제로 시작된 학업이니, 그 과정이야 더더욱 힘든 일의 연속이었습니다. 이곳저곳에서 많은 사람들의 도움의 손길들이 조금씩 모여 그때마다 겨우 필요가 채워지는 4년의 과정은 그에게 있어 메마른 광야를 걷는 구도자적인 모습 그 자체였습니다. 한동안 연락이 없으면 또 궁금하여 오히려 내가 전화를 걸어봅니다. “서 전도사, 지금 어디고? 소식이 없어서 전화했네.” “장로님···, 지금 기도원 뒷산에 올라와 있심더.” “기도원이면 기도원이지 뒷산은 또 뭐꼬? 이 한겨울에···.” 목소리가 힘이 다 빠진 상태로 전화를 받는 그의 기력이 느껴집니다. “기도원 뒷산에 텐트 치고 거기서 기도하고 있습니더.” “아니, 기도원에 숙소도 있는데 왜 하필 산에 텐트를 치고 이 고생이여?” “장로님···, 내 같은 죄인이 무슨 염치로 뜨신 방에서 여유롭게 기도를 한단 말입니꺼? 얼어 죽을지라도 속죄하는 맘으로 이 텐트도 내겐 과분하지예.” 걱정스런 내 말에 오히려 나를 안도케 하느라 그는 너스레를 떨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추워도 침낭 속에 들어가 누워 있으면 죽지는 않을 날씨라 괜찮기는 하지만, 제일 힘든 것이 물이 꽁꽁 얼어붙어 목이 마르면 얼음을 깨서 먹어야 하는 것이라며, 그나마 치아가 튼튼해서 다행이라고 싱겁게 통화를 마무리하곤 했습니다. 세월이 몇 바퀴 흘렀습니다. 학부를 마치고 그는 결국 신학대학원에 입학을 하고 또다시 긴 어려운 공부와 삶의 수레바퀴를 스스로 굴리며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이 주님이 부르신 그 길을 걸어갔습니다. 재정적 어려움은 날이 갈수록 힘들었고 후원자들의 손길도 끊어지기 다반사여서 늘 안타까운 내 마음과 그의 고통은 내내 우리를 무릎 꿇는 자리에서 떠나지 않도록 옭아매고 있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결국 신대원을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게 되었습니다. 결혼을 하지 않은 독신에게는 목사 안수를 해주지 않는 교단의 법이라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으나, 어찌어찌 많은 분들의 도움과 보증, 그리고 특수한 상황의 처지가 감안되어 마침내 ‘목사님’이 되었습니다. “서 목사님. 인제부터는 말도 못 놓겠네요···. 그리고 목사님 학력이 보통이 아니네요. 나보다 고학력이요.” 짐짓 농담 같은 내 말이었지만 대견스럽고 자랑스러운 한 인생의 승리의 모습 앞에 나의 가슴은 뻐근한 기쁨이 충만하였습니다. 그가 대구 변두리에 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만성교회. 성도는 늘 손가락으로 헤아릴 정도로 몇 안 되었지만, 그는 꿋꿋하게 깊은 죄악의 골짜기에서 건져진 구원의 은혜 앞에 당당하였습니다. 서 목사님의 장례식 날, 예배를 인도하시며 서 목사님의 관 위에 손을 얹고 설교하시던 선배 목사님의 말씀이 지금도 내 뇌리에 남아있습니다. “서 목사! 이 사람아. 그 교회에서 고생 그만하고 우리 교회 와서 협력목사 하자고 그리 권해도 끝내 만성교회를 지키겠다고 고집하더니만···. 그래 당신이 맞았소. 귀한 사역 잘 마쳤소.” 그 날도 추운 날이었습니다. 주일예배를 마친 후, 교인 집사님과 헤어진 그 날 이후 아무도 서 목사님의 마지막을 몰랐습니다. 평소 가슴에 통증은 있었지만 건강했던 서 목사님이 주검으로 발견된 것은 며칠 후, 수요예배일···. 그는 강대상 앞에 엎드린 채로 그토록 소망했던 하나님의 영광스런 품으로 떠나 있었습니다. 청송의 바닥에서 천상의 천국을 그는 소유하고 떠났습니다. 다시는 죄짓지 않겠다며 다부진 입술을 깨물면서도 교회의 밀린 월세 때문에 한숨을 내쉬던 그의 걱정도 끝난 채 하늘 아버지의 품에 안기웠음에 내 마음 한켠으로는 감사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서 목사님을 생각할 때마다 심령의 아려옴을 느끼곤 합니다. 언젠가 만날 것입니다. 그곳에서. 청송 땅에서 시작된 천국으로의 여정을 또다시 그의 입으로 들어 볼 것입니다. 언젠가 만날 것입니다. 그곳에서. 청송 땅에서 시작된 천국으로의 여정을 또다시 그의 입으로 들어 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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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부러워했지만 ···모두가 부러워했지만 ··· 천석길 목사 구미남교회 모든 사람이 부러워했지만 정작 자신의 삶을 뼈저리게 후회했던 한 사람의 글을 읽었습니다. 그녀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모델이자, 패션 디자이너이며, 작가인 인도의 크리시다 로드리게스라는 여성입니다. 그녀는 암에 걸려서 치료를 받던 중에 많은 사람들이 읽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고 합니다. “나는 지구에서 가장 유명한 차를 갖고 있다. 그러나 현재는 병원 휠체어에 앉아 있다. 나의 집에는 디자인이 다양한 옷과 신발, 장신구 등 비싼 물건이 많이 있다. 그러나 나는 병원의 하얀 환자복을 입고 있다. 나는 은행에 아주 많은 돈이 내 이름으로 있다. 그러나 지금 내 병은 많은 돈으로도 고칠 수 없다. 나의 집은 왕궁처럼 크고 대단하다. 그러나 나는 병원 침대의 의자에 누워 있다. 나는 별 5개짜리 호텔을 바꿔가며 머물렀다. 그러나 지금 병원의 검사소를 옮겨 다니며 머물고 있다.” “나는 유명한 옷 디자이너였으며 계약 체결 때마다 나의 이름으로 사인을 했다. 그러나 지금 병원의 진단 검사지에 사인하고 있다. 나는 보석으로 장식된 머리 장식품이 많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비싼 보석으로 장식할 머리카락이 없다. 나는 자가용 비행기가 있어서 어디든 갈 때마다 타고 갔다. 그러나 지금은 간호사의 두 팔로 밀어주는 휠체어에 앉아 있다. 나는 먹고 마시는 비싼 식품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병원에서 주는 약과 물만 마신다. 나는 비행기, 보석, 장식품, 비싼 옷, 많은 돈, 고급 차 등등 모든 것을 다 가졌지만, 지금의 나를 보호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드리고 싶은 말은 사람이 살아갈 때 다른 사람에게 이익이 되도록 축복하고, 도와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의 생은 너무나 짧다. 이 생애에 비싼 물건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타인의 행복을 위해 도움을 준 것만이 기억에 남을 뿐이다” 모든 것을 가졌으며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그녀는 위의 글을 남기고 2018년 9월에, 함께 나누지 못했던 것이 가장 후회된다는 메시지를 남긴 이틀 후에 운명했다고 합니다. 누군가를 섬기는 삶, 그가 나로 인해서 성공했다는 고백을 듣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요, 목장을 섬기는 힘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가진 것을 나누며, 남을 섬기면서 사는 삶이 진정 부러운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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