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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군, 세 자녀 이상 가정 가족사진 지원예쁜 모습 전해주는 행복성주 ‘한 컷’ 성주군은 세 자녀 이상 가정에 대하여 가족의 소중함과 가족관계 향상을 기대하고 출산 분위기를 조성하고자 2019년부터 가족사진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는 국가적 과제인 저출산 대책에 대한 관심을 증대시키고, ‘군민중심 행복성주’를 건설하는 정책의 일환이며 대상가정에는 가족사진 촬영으로 화목한 모습을 담아 가족이 화합하고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대상은 2018년 1월 1일 이후 출생아 중 주소를 6개월 이상 성주군으로 하는 세 자녀 이상 가정이며, 보건소 2층 모아건강부서로 방문하여 무료 촬영권을 받아 관내 협약 사진관(영보사진관, 아세아사진관)에서 예약 후 촬영하면 된다. 이에 이병환 성주군수는 “다자녀 가정을 비롯한 모든 군민이 희망과 활력이 넘치는 살기 좋은 도농복합도시에서 즐겁게 생활 할 수 있도록 행복성주 만들기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세 자녀 이상 가정 가족사진 지원에 관하여 궁금한 사항은 모아건강부서(☎930-8143)로 전화하면 상세하게 안내 받을 수 있다. 이혜경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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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심(童心)에 화답한 김병수 울릉군수한 초등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동아리에서 자치단체장에게 보낸 손편지에 김병수 울릉군수가 흔쾌히 화답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7월 10일 울릉군수는 어린 고사리손으로 정성스레 적은 편지 한통을 전달받았다. 본 편지는 울릉군 천부초등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유네스코 한마음 동아리에서 보내온 편지이다. 최근 개통된 일주도로변에 괭이갈매기 등 조류가 로드킬 당하는 일이 종종 있다. 이에 초등학교 동아리 학생들이 괭이갈매기의 로드킬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한 푼 두 푼 용돈을 모아 보호 현수막을 직접 설치하였으나, 아이들의 노력만으로는 힘에 겨워 울릉군수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편지의 주요 내용은 ‘갈매기 보호구역’을 만들어 쌩쌩 달리는 자동차로부터 ‘갈매기 가족을 지켜달라’는 내용으로 예쁜 입간판 그림도 보내왔다. 편지를 전달받은 김병수 군수는 “아마 취임 후 가장 어린 주민의 민원일 것이다. 아름다운 울릉도처럼 학생들의 마음 또한 예쁘고 사랑스럽다”며 “직접 관리하는 페이스북을 통해 좋은 방안을 찾아 얼른 답장하고 아이들의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따뜻한 마음 소중히 여기겠다”고 즉시 화답하였다. 이혜경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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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출애굽기(11)나의 출애굽기(11) 드보라 29. 돈을 벌기 위해 도시로 나가다. 그렇게 술에 취하고 남편과 싸우며 이렇게는 못 살겠다 싶었던 어느 봄이었다. 도시 사람들이 농촌 일손을 도와주며 일당을 벌려고 우리 동네를 찾아왔다. 그 사람들은 당시 20대 후반의 나이에 탈북자로 시골에 있는 내 모습을 보고 “젊은 사람이 이렇게 외지고 어려운데 사느냐?”하며 안타까워했다. 시골은 항상 돈이 없었다. 그분들 중 한 분이 도시 나가면 돈 버는 데 많다며 내 연락처를 받아갔다. 그리고 얼마 후 그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나는 전화를 받고는 무작정 짐을 싸서 도시로 출발했다. 30. 북경에 가서 마사지 일을 시작하다. 어렵게 이동해서 그 사람을 만났다. 처음에 그 사람은 대뜸 나에게 한국 가자고 했다. 나는 안기부 사람인가 싶어서 절대로 안 간다고 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나에게 돈을 벌도록 도와줄 사람이라며 어떤 이상한 남자를 소개하더니 그 사람과 함께 나를 북경으로 보냈다. 북경에서 어떤 큰 건물 지하로 들어갔다. 으쓱하고 색깔이 뻘건 불이 많은 그곳은 사람들이 샤워도 하고 안마도 하는 그런 곳이었다. 다행히 사장은 연변 사람이라 조선말을 했다. 사장은 나에게 마사지를 배우라고 했다. 그곳에는 오후만 되면 엄청 예쁜 대학생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애들이 단체로 와서 마사지했다. 홀 같은데 남자들이 흰 가운을 입고 누워 있으면 그 아이들이 마사지하는 것이었다. 사장은 그중 어떤 여자한테 나에게 마사지를 가르치라고 맡겼다. 나는 마사지를 배워서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마사지에 전혀 소질이 없었다. 나는 열심히 주무르는데 남자가 아파하기 일쑤였다. 더는 못하겠다 싶어서 사정했더니, 사장은 다른 일을 소개해 주었다. 어느 공안의 집에 어머니를 모시는데 가정부를 하라는 것이다. 공안이라니… 당장 나를 잡아갈 수도 있는 사람 집에서 어떻게 가정부를 하라는 건지 눈앞이 캄캄했다. 그래서 안 하겠다고 하고 다시 나와 보니 또 마사지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31. 일을 접고 다시 시골로 돌아오다. 가슴이 답답하고 암담했다. 그러면서 괜히 감정이 북받쳐서 그냥 다시 집에 보내달라고 사무실에서 울기 시작했다. 한참을 울었더니 사장이 나를 데리고 기차를 태워서 다시 연길로 보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정말 아찔한 일이었다. 그 사람이 나를 다른 험한 곳으로 팔아먹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기차표까지 사주고 나를 보냈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도 큰 손해였을 것이다. 게다가 북경까지 왔다 갔다 한 것 자체가 사실 너무 위험한 일이었다. 나중에 동네에서 친하게 지내던 예쁘장한 중국 언니에게 그 이야기를 하자 나에게 대뜸 “기차 칸에서 차표 검열 안 하디?”하고 물었다. 신분증 검사를 못해도 2번은 하는데 너는 어떻게 피했느냐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정신이 아찔했다. 그때는 몰랐지만, 주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셨다는 것 외에는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오픈도어 제공)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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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게살기포항시협의회 “My Rose Garden 가꾸기”사업 동참바르게살기운동포항시협의회(회장 주지홍)에서는 8일 두호동 새마을공동체정원에서 포항시와“마이 로즈가든 가꾸기”협약을 맺고 장미정원을 조성하는 봉사활동을 추진했다. 이날 심은 “루지메이앙” 품종의 100여 그루 장미묘목은 천만송이 장미도시 만들기 사업의 일환으로 포항시 그린웨이추진단으로부터 지원받은 것으로 1년 내내 빨간 장미를 볼 수 있도록 바르게살기협의회 여성회에서 상시 관리할 예정이다. 장정선 바르게살기운동포항시협의회 여성회장은 “여성회원들의 손으로 예쁜 장미꽃밭을 예쁘게 조성했고 앞으로 열심히 가꾸겠다”며, “포항시화인 장미꽃이 시내 곳곳에서 많이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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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군, 우리마을 예쁜치매쉼터‘인기’청송군치매안심센터에서 3월 초부터 운영하고 있는 “우리마을 예쁜치매쉼터” 가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지역 어르신들의 치매예방과 중증 치매의 진행을 막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우리마을 예쁜치매쉼터”는 관내 경로당 7개소에서 재가경증치매환자, 인지기능저하자, 65세 이상 어르신 등 100여명을 대상으로 진행하고 있으며, 오는 10월까지 주 2회씩 총 51회에 걸쳐 운영된다. 특히 사업에 참여하는 어르신들에게 음악, 미술, 감각자극, 회상, 신체활동 등 다양한 인지강화 프로그램으로 접근한 결과, 노인 우울감 감소, 기억력 상승, 인지 향상 등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윤경희 청송군수는 “치매는 조기에 발견해 적절히 치료할 경우 증상을 억제하거나 개선하는 것이 가능하기에 지역 어르신들의 치매 예방 및 대상자 관리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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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없는 밝은사회! 폐의약품없는 깨끗한사회!구미보건소(소장 구건회)는 3월 21일(목) 오전 10시부터 2시간 동안 공무원 등 2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구미역 광장, 새마을 중앙시장일원에서 “불법마약류 예방 및 폐의약품 회수 홍보 캠페인”을 실시했다. 이번 캠페인은 시민과 만나는 홍보 캠페인으로 불법마약류를 근절하여 마약퇴치와 약물오남용 예방 및 가정에서 무분별하게 버려지고 있는 폐의약품으로 인해 환경오염의 원인을 개선 할 수 있도록 시민들의 경각심을 고취시키고자 이번 캠페인을 실시했다. 이날 참가자들은 구미역광장에서 불법마약류 예방 및 폐의약품 회수 배너 설치, 홍보물 배부, 폐의약품 일정한 장소(약국, 보건소)에 배출 알리기, 마약류 위험성 알리기 등 찾아가는 홍보 캠페인을 전개 하였다. 또한 만 60세 이상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무료 치매선별검사를 실시하고,치매치료비 및 정밀검진비 지원, 찾아가는 치매예방교실, 치매환자 가족교실, 1:1 전산화 인지강화 프로그램, 예쁜 치매쉼터 운영 등 구미 치매안심센터 홍보 캠페인도 같이 진행하였다. 구건회 구미보건소장은 “이번 캠페인을 통해 시민들에게 마약류 및 약물 오남용의 올바른 인식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며, 폐의약품 배출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중요하여 적극적인 참여 협조를 부탁드리며, 앞으로도 시민들의 안전한 의약품 사용 환경조성을 위하여 지속적으로 홍보를 하겠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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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출애굽기(1)나의 출애굽기(1) 드보라 1. 어린시절 우리집 나의 아버지는 동네 유명한 깡패였다. 그런데 우리 어머니를 보더니 홀딱 반해서 따라다니다가 나중에는 억지로 결혼하자고 했다고 한다. 단순한 억지 수준이 아니라 결혼 안 해주면 집에 해코지 하겠다고 협박까지 했다고 한다. 우리 어머니는 반면에 그 당시 여자들이 가기 힘든 대학도 나오신 분이었고 외할아버지도 해외에 유학을 다녀온 학식 있는 집안이었기에 길길이 뛰면서 반대를 하셨다. 그렇지만 어머니는 너무 무섭고 겁이 나서 할 수 없이 아버지와 결혼을 하셨다. 이렇게만 이야기가 이어졌다면 매우 안타까운 일일 뿐이지만 다행히 아버지는 결혼 후에 마음을 고쳐먹으셨다. 결혼한 순간부터 싸움을 그만두고 깡패 친구들을 정리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항상 잘해주셨다. 아버지는 직장으로 한 화학 공장에 다니셨다. 그 공장은 살인무기를 만들었기 때문에 매우 위험한 공장이었다고 기억한다. 인체에 나쁜 매연과 환경 때문에 건강이 계속 나빠지셨다. 그렇지만 마음대로 직장을 옮길 수 없는 군수품 공장이었기 때문에 아버지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많으셨다. 그러다가 선택한 방법이 바로 벌목공으로 해외 노동을 하러 가는 것이었다. 비록 몸은 고되다하지만 3년 정도만 일하고 오면 다른 곳으로 배치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아버지는 위험을 무릅쓰고 벌목공으로 지원해서 가셨다. 낯설은 타향의 추운 지방에서 콧구멍에서 얼음을 뜯어내면서 당과 수령을 위해 온몸 바쳐 충성했다. 2. 노동력을 착취당한 아버지 아버지가 해외로 간 후 우리 가족은 시골 외갓집으로 이사를 갔고 그 후로 계속 거기서 살았다. 언니와 동생들은 해외의 추운 곳에서 고생하는 아버지에게 위로와 격려의 편지를 써서 한 달에 한 번씩 아버지에게 보냈다. 그렇지만 나는 무슨 심술이었는지 한 번도 편지를 안 썼다. 돌이켜보면 예쁜 짓 사랑스러운 짓을 한 번도 안 했다. 벌목공으로 가셨던 아버지는 3년 만에 돌아오셨다.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우리 가족은 충격에 빠졌다. 가기 전에는 건장하고 듬직했던 아버지의 모습이 몰라보게 핼쑥해졌기 때문이다. 진하게 검었던 아버지의 머리카락은 물이 맞지 않고, 1년 내내 여름 한번 없는 북극의 추운 지방에서 너무 고생하여서 머리카락이 다 빠져 대머리가 되어 버리셨고 두툼했던 얼굴 살은 다 어디 갔는지 피골이 상접한 모습이었다. 그렇게 고생해서 일을 했지만 북한 당국의 당자금으로 몽땅 착취당했고, 단 1원 한 푼도 못 받고 러시아 빵 3박스만 가지고 집에 돌아왔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그래도 아버지가 살아서 돌아오신 것을 위안 삼아야 했다. 나는 아버지가 그렇게 고생하고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신 못 차리고 학교에서 집에만 오면 언니와 동생들과 맨날 싸움박질을 해댔다. 이렇게 나는 학교에서는 공부도 잘하고 칭찬을 잘 받는 모범학생이지만 집에만 오면 천덕꾸러기가 되는 생활을 하며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갔다. 3. 일요일에 수상한 외할아버지 그 당시 우리가 살았던 외할아버지 댁은 함경도 산 속 시골이었다. 외할아버지는 산에 감자나 밀, 보리 등을 심어서 생계를 유지하며 사셨다. 듣기로는 유학도 다녀오시고 원래는 평양에 계셨다고 한다. 그런데 왜 지금은 이 시골에 계시는지 어린 나로서는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게다가 이상하게 외할아버지는 일요일만 되면 텔레비전을 보고 싶어 놀러 오는 나와 외할머니에게 오전에는 옆집에 가서 놀다가 오라고 보내셨다. 그 날은 꼭 인근에 몇 십리 떨어진 산골짜기의 다른 집에 어른들 몇 분이 와서 회의를 한다고 하면서 오전에는 다른 집에 가서 놀다가 오후에 오라고 하곤 하였다. 우리 외할머니는 외할아버지가 전처와 사별하고 이후에 재혼하셨다고 했는데 평소에도 순종적인 분이라 외할아버지 말씀에 묻지도 않고 하라는 대로 옆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오셨지만 나는 괜히 불만이었다. 그 당시에는 일요일만 텔레비전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텔레비전 봐야 되는데 왜 자꾸 딴 데 가라 하시는지, 빨간 날은 휴식하는 날인데 왜 집에서 무슨 회의를 하는 건지… 궁금은 했지만 워낙 어릴 때라 짜증만 내고 말았다. 4. 크리스천이었던 외할아버지 나중에 탈북을 해서 남한에까지 온 다음에야 나는 왜 외할아버지께서 그러셨는지 알 수 있었다. 하루는 탈북 성도들 모임이 있어서 갔는데 그 모임을 인도하시던 목사님께서 자신이 선교 사역 중에 입수한 북한에서 나온 중국어 성경책을 사진으로 보여주셨다. 한글성경이 아니라 한문으로 기록된 옛날 성경이다. 그런데 그 책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전에 어디서도 그 책을 본 적이 없어야 할 터인데 분명 내가 확실히 본 적이 있는 책이었다. ‘왜일까? 왜 내가 저 책이 낯설지 않을까’ 한참을 생각하고 나서야 나는 그 책이 외할아버지 댁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전에 북에 있을 때 골동품을 밀수해서 팔면 돈을 벌 수 있다고 해서 집에 팔만한 것들을 찾다가 한자가 잔뜩 적힌 책 한 권을 보고 팔려고 했다가 못 팔았었는데, 그 책이 바로 그 사진 속의 책이었기 때문에 확실하게 기억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확인하자 외할아버지가 일요일마다 나와 할머니를 다른 곳으로 보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우리 외할아버지도 남모르게 믿음을 지킨 크리스천이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외할아버지가 평양에서 함경도 산골짜기로 오게 된 것도 종교적인 것이 문제가 되었던 것 같다. 다행히 교회 내 주요 인사가 아니셨는지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가서 고통을 당하지 않고 생명은 부지하셨지만 추방을 당해 이 산골짜기까지 오셨던 것이다. (오픈도어 제공)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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