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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은 축복의 통로이정우 목사 안동서부교회 왜 아브라함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로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를 복의 근원으로 삼으시겠다고 부르셨을 때 그 부르심에 순종하였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를 보면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히11:8)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창세기 12장 1절부터 본격적으로 나옵니다. 그러나 그 전까지는 그가 어떻게 살았으며 무엇을 행하였는지에 대해 성경은 거의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소명에 대한 순종이 없는 삶에는 별로 관심이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과 관계성이 없는 일에 대해선 제로로 보십니다.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에게 있는 공통점은 하나님과 부르심 앞에 순종이었습니다. 성경은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15:22)라고 기록합니다. 히브리서 11장을 믿음장이라 말합니다. 거기에는 믿음의 선진들의 삶과 신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두가 믿음에 대한 순종이 그들의 삶을 가장 아름다운 하나님과의 동행자로 만들었습니다. 옛날 유대의 다윗 왕이 반지를 만드는 한 세공장을 불렀습니다. “내가 승리의 기쁨을 억제하지 못할 때 자제할 수 있고 절망에 빠졌을 때 좌절하지 않고 용기를 얻을 수 있는 글귀를 새긴 반지를 만들어오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며칠을 고민하던 그는 지혜로운 왕자 솔로몬을 찾아갔습니다. 그 때 솔로몬은 이런 글을 써주었습니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이 글귀가 새겨진 그 반지를 본 다윗 왕이 탄복했다고 합니다. 이생의 성공의 기쁨도, 실패의 절망도 뒤돌아보면 한 순간 지나가는 찰나에 불과합니다. 지금 성공의 기쁨 속에 있다고 너무 자만하지 말고 지금 절망 속에 빠져있다고 해서 용기를 잃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삶이 주어지든지 하나님이 베푸신 환경이라 믿고 순종할 때 지혜와 이길 수 있는 용기를 그 분이 부어 주십니다. 이것이 성령을 따라 사는 신앙의 삶입니다.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에게는 순종이 있습니다. 순종은 하나님의 뜻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순종은 성령의 열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열매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성령의 열매를 열리게 하는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뿌리가 없으면 마치 꽃병에 꽂힌 꽃 같아서 처음에는 화려하고 싱싱하나 시간이 지날수록 시들어 버려서 결국에는 쓰레기통에 버리게 됩니다. 하나님은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만 성령을 주십니다. 베드로 사도는 사도행전 5장 32절에서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이라고 공회원들 앞에서 증거했습니다. 그러므로 순종과 성령은 따로 따로 존재할 수 없는 한 몸 같은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는지에 대해 몸소 실천해 보여 주셨습니다.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히5:8~9)라고 기록된 것처럼, 예수님도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구원을 완성하셨습니다. 우리도 말씀 앞에, 하나님 앞에 순종함으로 구원을 얻게 됩니다. 만약 이런 순종이 없다면 구원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순종은 하늘의 복을 이 땅으로 불러오는 축복의 통로 구원의 통로입니다. ‘순종’으로 번역한 헬라어 ‘휘파쿠오’는 ‘~의 아래에서 주의 깊게 듣고 따르다’라는 의미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주의해서 신중하게 듣고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순종하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음성 앞에 행하는 것은 복입니다. 순종은 축복의 통로입니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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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우치고 말씀에 순종할 때장 재 효 목사 서울성은장로교회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아버지 가겠나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그와 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싫소이다 하였다가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28~30절) 그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이르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그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녀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31~32절)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 하신 비유의 말씀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불복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는 악한 자들이었습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경고로, 순종하려 하지 않는 자는 그 교만 때문에 패망하고 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잠16:18) 그러나 그 잘못을 회개하고 순종한다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1. 예수님에 대해 종교지도자들의 도발 오늘 본문 앞서 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 때,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네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하고 따져 물었습니다. 이렇게 한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많은 무리가 모여들어서 예수님을 환영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성전에 들어가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셨습니다. 또한, 열매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에게 저주하자 그렇게 생기발랄했던 우거진 나무가 하룻밤 사이에 뿌리부터 말라 죽어버렸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이러한 일들을 보고 두려우면서도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아볼 생각은 하지않고 여러 모양으로 흠집을 찾아보자고 안달을 했던 것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인기가 높아 갈수록 자기네들의 입지가 급속도로 허물어지는 것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에 대해 더는 두고 볼 수 없어 누가 너에게 그런 권세를 줬느냐고 예수님께 따지고 물었던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는 질문에 대하여 너희가 답변하면 나도 너희에게 답변하겠다고 하고,(24절)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아니면 사람으로부터냐?”라고 물었습니다.(25절) 그러자 종교지도자들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세례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 온 것이라 대답한다면 왜 그를 믿지 않았느냐고 할 것이고,(25절) 사람으로부터 온 것이라 대답하면 모든 사람이 세례 요한을 선지자로 아는 고로 백성들을 무서워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26절) 그래서 그들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할 난처한 상황이 되자 “우리가 알지 못한다”고 답변을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무슨 권세로 성전에서 백성들에게 말씀을 선포하시는지 밝히 알려주지 않으셨습니다.(27절) 세례 요한은 예수님에 대해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고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해서 오신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선포했던 선지자였습니다.(요1:29)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해 애타게 회개하라고 외쳤지만, 종교지도자들은 세례 요한을 미치광이로 무시해버리고 불신하며 배척했습니다. 또 이들은 세례 요한뿐만 아니라 예수님까지도 비난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저들의 비난에 대해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그들이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고, 인자가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마11:18~19)라고 말씀하신 것을 볼 때, 그들이 예수님에게 얼마나 큰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비하하고 예수님을 깎아내리면서 비방했던 자들이 또다시 예수님께 ‘권위’를 따지며 도발해 온 것입니다. 2.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심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권위에 대해 도발하는 종교지도자들을 향해 예수님이 그들의 완악하고 강퍅한 마음을 지적하고 깨우치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저들에게 비유를 들어, “한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맏아들이 ‘가겠나이다’하고 대답은 했으나 가서 일하지 않았고,(29절) 둘째 아들에게도 똑같이 말하니 둘째 아들은 ‘싫소이다’하고 대답했지만 뉘우치고 가서 열심히 일했다(30절)고 한다면, 두 아들 중에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고 그들에게 질문하셨습니다. 그러자 종교지도자들의 대답은 둘째 아들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31절) 이 비유를 하신 것은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믿으려 하지 않는 것을 지적하기 위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타락한 종교지도자들을 불순종한 맏아들이라고 표현한 것이었고, 저들이 천대했던 죄인들을 순종한 둘째 아들로 표현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것이다. 세례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와서 복음을 전했거늘 너희는 끝까지 그를 믿지 않았지만, 너희가 손가락질하며 욕하던 세리와 창기는 믿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32절) 죄인들은 둘째 아들처럼 뉘우치고 아버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목적을 따라 말씀 듣고 회개하여 구원의 자리로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종교지도자들은 잘 믿는 척하면서도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오히려 예수님을 세리와 창기 같은 부류로 취급하며 죄인이라고 한 것을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비유로 지적하신 것입니다. 이들은 말씀을 듣지도 아니하고, 성령의 임재도 없으며, 구원에 이르지도 못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런 자들을 바라보시며 예수님은 한탄하시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과 불순종의 결과 사1:19~20절에 보면, “너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즐겨 순종하면 이 땅의 아름다운 것을 먹게 해주겠지만 너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그 말씀을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켜질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그 칼은 어떤 칼입니까? 말씀의 칼입니다. 히4:12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칼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주신 생명의 말씀, 구원의 말씀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면, 그 말씀이 심판의 칼날로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신28장에 보면,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라”(2절)고 말씀하십니다. 순종하는 자의 복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서 순종하면 복이 임할 것을 약속하고 있는 내용입니다.(3~14절) 반대로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15절) 불순종하는 자의 저주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는데(16~44절) 이를 가벼이 여겨서는 결코 안 됩니다.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 복이요,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메시지를 마음에 깊이 새길 때 우리의 신앙생활에는 엄청난 유익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권면의 말씀) 오늘 본문의 비유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타락한 종교지도자들의 교만한 모습을 똑똑히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증거하는 일에 자기 생명을 다 바친 세례 요한을 미치광이 취급해버렸습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을 비난하면서 그 권위에 도발하는 행위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암4:10절에 보면, “내가 너희 중에 염병이, 전염병이 임하게 하기를 애굽에서 한 것처럼 하였으며 칼로 너희 청년들을 죽였으며 너희 말들을 노략하게 하며 너희 진영의 악취로 코를 찌르게 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라는 말씀처럼, 불순종한 자들의 결과는 참담한 끝을 가져옵니다. 종교지도자들의 악한 생각은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습니다. 저들은 스스로 의로운 자로 여겼지만, 실제는 악한 영에게 속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일이 무엇일까요? 영적으로 충만해서 악령과 싸워 이기는 것입니다. 모두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순종함으로 악령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모습을 보실 때, 예수님은 그 기쁨을 이기지 못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진짜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는 방법이라면 그 일을 왜 못하겠습니까? 예수님이 그런 여러분들을 보시고 기뻐하실 수 있도록 오늘부터 여러분들이 영적으로 거듭나서 성령 충만함으로 승리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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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정우 목사 안동서부교회 가을입니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입니다. 인생에도 가을이 있습니다. 청춘을 봄이라고 한다면, 중년은 가을입니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이 있듯이 인생의 주기도 유·소년기, 청년기, 중·장년기, 그리고 노년기가 있습니다. 신록의 봄은 인생의 유·소년기라고 할 때, 녹음의 여름은 청년기, 수확의 계절 가을은 중·장년기, 그리고 찬바람이 이는 겨울은 인생의 노년기에 해당할 것입니다. 그중에 열매를 맺어야 할 시기는 가을입니다. 가을을 앞두고 있는 사람, 이미 가을을 맞아 열매를 거두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열매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누가복음 13장 6절~9절 말씀을 보면, 무화과나무에 대한 비유가 나옵니다. 마태복음 21장, 마가복음 11장에서는 무화과나무가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음을 보시고 저주하심으로 나무가 말라 죽었습니다. 누가복음의 말씀은 무화과나무는 열매를 맺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교훈의 말씀입니다. 먼저, 무화과나무의 존재 목적은 열매입니다. 무화과나무는 관상용 나무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볼품이 없기 때문입니다. 키 작은(3~4m) 갈잎나무로 잎은 크나 가지가 이리저리 틀어지며 제멋대로 자랍니다. 옆으로 퍼져 자라기 때문에 재목으로도 쓸 수 없습니다. 즉, 무화과나무는 볼품도 없고 아름다운 꽃도 없고, 향기도 없습니다. 단지 존재할 목적이 있다면 열매입니다. 그러나 6절 말씀에 보면,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3년 동안 열매가 없다고 합니다. 3년 동안 물을 주고, 거름을 주고, 가꾸면서 노력했는데 열매가 없습니다. 그때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듯 주인의 호령이 들립니다. “찍어 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라는 말입니다. 무화과나무의 신세는 종말을 고해야 할 시간이 가까이 온 것입니다. 이때, 과원지기가 주인에게 중재안을 제시했습니다.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 버리소서(눅13:8)”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무화과나무를 말씀하실 때 비유라고 하셨습니다. 이 비유에서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입니다.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과원지기는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중재 역할로 나타납니다. 주인은 찍어 버리겠다고 할 때, 과원지기 되시는 예수님은 아직 소망이 있고, 희망이 있다고 하십니다. 이것이 우리 예수님의 중보적 역할이시며 우리의 영원한 중보자 되시는 분입니다. 과원지기는 “내가 1년 더 수고하겠습니다.”라고 하며 1년의 기회를 얻었습니다. 1년은 나무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과원지기에게 1년 수고할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다. 과원지기의 애정과 사랑 때문에 나무는 1년 더 살게 되었습니다. 1년 수고한다는 그 자체가 참사랑입니다. 그 사랑 때문에 변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초인적인 힘이 있습니다. 이 힘은 뜨거운 사랑을 느낄 때, 혹은 감격과 감동을 받을 때 나타납니다. 오늘의 말씀은 비유했습니다. 나무는 이스라엘 즉, 우리 성도들을 말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을 느낄 때(나를 위해 이 땅에 오셨고,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고, 우리의 영원한 소망과 존귀의 관을 주시기 위해 부활, 승천하셨습니다), 새로운 기적이 나타나 아름다운 신앙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나무에게 과원지기가 있었듯이 우리에게 예수님이 계십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중보하며 사랑하고 있다는 뜨거운 주님의 사랑이 내 마음을 감동케 해 이 세상에서 ‘예수님의 증인’으로서 성령의 열매와 전도의 열매를 많이 맺는 사랑받는 성도들과 독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가을은 열매의 계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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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장합동 제105회 총회 ··· “세움”을 주제로 선포소강석 신임총회장 취임 부총회장에 배광식 목사 송병원 장로 당선 ▲예장합동 신임 총회장 소강석 목사.(사진=예장합동 총회 제공)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제105회 총회가 9월 21일(월) 오후 2시 새에덴교회(소강석 목사 시무)와 전국 35개 거점교회에서 일제히 개회해서 오후 8시 38분에 폐회했다. 총회는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 화상회의로 진행됐으며, 157개 노회에서 1,425명의 총대가 총회에 참여했다. 총회에서는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가 총회장에 단독출마해 투표 없이 제105회 총회장으로 추대됐고, 목사부총회장에는 배광식 목사(대암교회), 장로부총회장에는 송병원 장로(늘사랑교회)가 각각 당선됐다. 서기에는 김한성 목사(성산교회), 부서기 허 은 목사(부산동현교회), 회록서기 정계규 목사(사천교회), 부회록서기 이종철 목사(두란노교회), 회계 박석만 장로(풍성한교회), 부회계 홍석환 장로(강북성산교회)가 선출됐다. 제105회기 총회 주제는 ‘세움’(Planting)으로 정해졌다. 급변하는 세대 가운데 예배와 교회 공동체의 영성을 회복하고, 개혁주의 신학 정체성을 바로 세우자는 제안들이 많았다. 신임총회장 소강석 목사는 취임사에서 “짧은 1년이지만 교단과 한국교회가 현재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구체적인 사역으로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 확립 △총신 정상화 △총회 코로나 위기대응팀 설치 △총회 유튜브 채널 개설 △미래전략발전위원회 상설화 △장자교단의 위상과 리더십 확립 △대정부 및 사회관계 위상 적립 등에 힘쓰겠다고 다짐했다. ▲예장합동 제105회 총회가 21일 새에덴교회와 전국 35개 교회당에서 ‘세움’을 주제로 열렸다.(사진=예장합동 총회 제공) 한편, 회무처리에 들어가자 총회가 사상 초유 비대면으로 진행됨으로 인해 생소한 장면들이 적지 않게 나왔다. 5일간 진행되던 총회 회무를 단 몇 시간 만에 처리해야 하는 일정 때문에, 특별위원회와 상설위원회의 보고는 모두 유인물대로 받고, 청원사항은 임원회로, 재정사항은 재정부로 보내기로 일괄 결의하면서 회의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상비부서도 신학부와 재판국, 규칙부 등 필수 부서들만 보고했다. 그러나 민감한 안건들이 제대로 토론되지 않고 거점교회 총대들의 의견이 본부에 전달되지 않아, 몇몇 거점 교회 참석 총대들은 “우리는 들러리냐”고 볼멘소리를 내기도 했다. 이 부분을 의식한 듯 의장인 소강석 총회장은 총대들에게 수차례 양해를 구하며 안건 통과 전 화상회의로 연결된 거점교회들의 반응을 일일이 확인하기도 했다. 이날 총회는 회의 시작 7시간여 만에 많은 우려를 불식시키고 결국 은혜 가운데 파회했다. 총회장 소강석 목사는 폐회예배에서 “사상 초유의 총회를 이렇게 마칩니다. 사막과 같은 길을 걷다 보면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 될 것을 기대합니다.”라며 교단의 발전을 기원했다. 폐회에 앞서서는 1959년 이후 합동교단이 세워진 과정들을 다룬 50여 분짜리 역사다큐멘터리를 상영했으며, 시청 후에는 박창식 목사의 인도로 기도회를 가졌다. 이후 총회서기 김한성 목사가 ‘총회2020 비전 선언문’을 낭독함으로 모든 총회 일정을 마쳤다. 박은숙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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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교회 예배처소의 변화와 안동지역의 복음화(1)안동교회 예배처소의 변화와 안동지역의 복음화(1) 김승학 목사 신학과 교수/기독교교육학 안동교회 담임목사 목차 서론 1. 첫 번째: 기독서원(基督書院) 2. 두 번째: 선교사 임시주택 3. 세 번째: 선교사 주택 4. 비공식 예배처소: 텐트 교회 5. 네 번째: 16칸 ‘ㄱ’자 예배당 6. 다섯 번째: 목조 2층 예배당 7. 여섯 번째: 2층 돌집예배당 결론 서론 선교사들의 보고에 따르면 1908년 안동에 선교부가 세워질 당시 안동의 인구는 약 15,000명 정도였다. 안동에 체류하고 있던 장인차(Johnson) 의료선교사가 오월번(Welbon) 선교사에게 1910년 11월 26일 쓴 편지에 의하면 안동은 소도시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본 도시 중에서 가장 깨끗하고 쾌적한 도시 중의 하나였다고 기록할 만큼 안동은 선교사들에게 매력적인 도시였다. 안동에 도착한 최초의 선교사는 부산에 주재하고 있던 배위량(Baird)으로 그는 1893년 4월 17일부터 5월 20일까지 경상북도 지방을 순행하며 전도했다. 이후 1899년 대구선교부가 설치되자 안동은 대구선교부의 관할 지역이 되었고, 안동을 포함하는 경북북부지역은 대구선교부의 주된 선교 타게트 지역이 되었다. 대구선교부 주재 부해리(Bruen) 선교사에 따르면 함께 안동을 순회한 방위렴(Barrett) 선교사는 1903년 안동의 첫 학습자이자 안동의 첫 열매를 얻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특히 미국북장로회 선교회가 1908년 9월 정기총회에서 안동선교부를 설립하기 위한 예비 작업을 결정하고 1909년 9월 정기총회에서 안동선교부 설립을 최종 결정한 후 안동을 중심으로 경상북도 북부지역의 선교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910년대 안동시의 모습과 생활상으로 위 왼쪽은 낙동강으로 사진 아래의 대동강은 오기로 보인다. 마을과 낙동강 사이에 논이나 밭이 보이고 도로는 동에서 서로 향하는 안동-예천 도로이다.(사진1) 역사 기록에 의하면 안동교회는 1909년 8월 둘째 주일 8명이 첫 예배를 드린 후 몇 차례 예배처소의 변경이 있었다. 안동교회 7대 담임인 김광현 목사는 안동교회가 임시 처소까지 포함해 여섯 곳에서 예배를 드렸음을 기록한다. 특히 이 기록은 안동교회 7대 담임인 김광현 목사의 기억을 토대로 한 것으로, 김광현 목사는 안동선교부 최초의 선교사인 사우대(Sawtell)가 세상을 떠난 후 1910년 1월 안동선교부 선교사로 파송되어 1952년 한국을 떠난 권찬영(Crothers) 선교사와 그동안 안동지역에서 사역한 선교사들과 함께 오랜 세월 동역한 안동지역 교회의 리더였다. 안동교회 80년사에 따르면 안동교회의 예배장소는 임시 예배처소까지 쳐서 여섯 번에 걸쳐 옮겨졌다. 첫 번째 예배처소는 1909년 8월 둘째 주일, 최초의 교인 8명이 창립예배를 드린 곳인 대석동 129번지로 옛 대석상회가 위치한 기독서원이었고, 두 번째 예배 장소는 1910년 선교사들이 거처했던 임시주택으로 안동교회 교육관 자리의 골기와 한옥이었으며, 세 번째 임시 예배장소는 선교사들이 사택 건축을 위해 매입하여 잠시 거처 하였던 구 교도소 자리에 있던 기와지붕 건물이었다. 네 번째 예배장소는 1910년에 건축된 안동시 광석동 214번지에 소재한 ‘ㄱ’자형의 16칸 크기 예배당이었다. 다섯 번째 예배 장소는 현재 100주년 기념관에 위치했던 2층 목조 함석지붕의 건물로 1914년 2월 준공되었다. 여섯 번째 예배처소는 현재도 주 예배실로 사용하고 있는 석조 예배당으로 1936년 초여름에 건축을 시작하여 1937년 4월 6일에 준공되었다. 본 소고는 1909년 8월 8일 둘째 주일, 8명이 첫 예배를 드림으로써 시작된 안동교회의 예배처소 위치와 예배당의 변동을 연구함으로써 안동교회의 내·외적 변화와 부흥, 선교부의 정착과 선교사의 역할 및 생활상, 그리고 초기 안동지역의 복음화 진행과정을 살펴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1. 첫 번째 예배처소 : 기독서원(基督書院) 100여 년 전 안동에는 성경과 기독 서적을 판매하는 서점이 존재했다. 서점의 이름은 기독서원으로 이 서점은 안동 최초의 근대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안동교회 80년사는 대구선교부의 안의와(Adams) 선교사가 서문 밖 초가 5칸을 사들여 기독서원을 개원했음을 기록하고 있다. 기독서원의 정확한 위치는 현재 교회 앞 도로 건너편 버스 정류장이 있는 대석동 129번지다. 당시 김병우가 언제 안동지역의 매서(賣暑)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안의와 선교사는 김병우를 기독서원의 매서로 활용했다. 사실 초기 한국교회가 곳곳에 세워진 것은 각 지역에 세워진 기독서원에 속한 매서와 권서의 활동과 깊은 연관이 있다. 교회가 없는 산간지방이나 외딴 지역에 매서를 통해 전해진 성경을 읽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고, 매서들은 그 지역 그리스도인들이 모일 장소를 마련하고 예배를 인도하였으며, 이것이 훗날 교회로 발전했음을 여러 초기 자료들은 증명하고 있다. 따라서 1909년 8월 8일 안동교회의 첫 예배가 당시 매서인 김병우에 의해 인도되었다는 것은 당시로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첫 예배처소인 기독서원으로 추정되는 5칸 초가집으로 1909년 8월 8일 8명이 첫 예배를 드렸다. 남성들이 주를 이룬 것을 보아 남성성경공부반 참석자 중심으로 촬영한 것으로 보인다.(사진2) 안동교회는 거의 1년 동안 이 기독서원에서 예배를 드렸다. 기독서원은 안동교회의 첫 예배처소로 오늘의 안동교회가 있게 했으며 안동지역 선교의 영적 자궁(子宮)과 같은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기독서원의 운영에 관해 남아 있는 자료는 거의 없다. 일반적으로 한국교회 초창기에는 여러 도시에 세워진 기독서점은 그 지역의 선교부나 선교사들에 의해 직접 관리되거나 운영되었다. 따라서 안동의 기독서원도 선교사들에 의해 경영되었지만 어떤 시기부터 현지인인 한국인에게 운영권이 넘겨졌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기독서원의 규모는 5칸으로 선교사의 임시주택으로 옮기기 전까지 안동교회의 예배 처소로 사용되었는데, 위의 ‘사진2’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가옥은 초가집으로 안동교회 첫 예배를 드린 기독서원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에비(Ewy)여사(오월번 선교사의 손녀)나 필자의 소견이다. 왜냐하면, 사진2는 오월번 선교사가 남긴 초기 안동선교에 관한 사진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회중들을 배경으로 한 초가집은 5칸 정도의 규모로 보인다. 또한, 1909년이나 혹은 1910년 초가집 ‘ㄱ’자 예배당을 건축하기 전에는 또 다른 예배처소는 없었을 것이기 때문에 사진2의 초가집이 기독서원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논문 발췌‧정리=박은숙 기자/ <논문 원본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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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은 행동으로 이어집니다천석길 목사 구미남교회 아무런 생각이 없으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아무런 결과도 얻을 수 없습니다. 이 말은 우리의 모든 영역에 적용되는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농부는 봄이면 씨앗을 뿌립니다. 그런데 어떤 한 농부는 다른 일에 바빠서 씨앗을 뿌리지 않았지만 가을에 다른 사람이 추수할 때에 자신도 추수하겠다는 마음으로 들판에 나가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올해 연초에 광풍처럼 불어닥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서 평범했던 일상이 멈춤 내지는 혼돈 그 자체로 우리의 삶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중에 가장 큰 위험요소는 우리 자신도 모르게 ‘신앙적인 심음’을 소홀히 하는 분들이 더러더러 있습니다. 하기 쉬운 말로 코로나 때문에, 정부의 방침 때문에, 회사의 지침 때문이라고 자신을 합리화시킵니다. 지난 주일에 VIP초청 주일을 지나면서 이유를 둘러대지 않고 적극적으로 VIP를 초대하신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예배를 인도하면서 감격스러웠습니다. 우리 교회에 처음 왔다는 표시로 꽃바구니를 앞에 둔 분들이 사랑스럽기도 하거니와 ‘저분들을 초대하기 위해서 얼마나 애를 썼을까?’라는 마음과 함께 VIP들이 설교를 들은 후에 결신하며 일어서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울컥했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코로나의 와중에도 해야 할 일은 물러서지 않고 협력하는 귀하고 귀한 분들이 있었습니다. 목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말을 듣는 순간부터 폐업(?)하다시피 목장을 닫은 곳도 있겠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목장은 살아 있어야 하고 우리의 모임은 이어져야 한다는 귀한 목장이 있습니다. 이놈의(?) 정부가 교회만을 타겟으로 삼아서 모여서 찬송하지 말고, 성경공부 하지 말고, 통성기도 하지 말라고 하지만, 우리 집에서 밥만 먹자고 초대하며, 이전처럼 찬송과 기도는 없어도 서로의 안부를 묻는 나눔은 중단하지 않으며, 어떤 목장은 한 가정씩 따로 불러서 식사하면서 더 깊은 목장의 맛을 보는 목장도 있습니다. 안된다고 손을 놓는 순간부터 꽃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도 제대로 자라지 않습니다. 하물며 사람이겠습니까? 사랑을 먹고 자라는 믿음의 세계는 위태위태할수록 앞선 사람의 섬김이 어떠하냐에 따라서 어떤 열매가 맺혀질지 결정됩니다. 상황이 어려울수록 그 상황을 뛰어넘는 참신한 발상을 할 때입니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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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 신앙생활 입문(저자 김현철 목사)새신자 및 모든 교인을 위한 신앙생활 안내 길잡이! 저자 : 김현철 목사 ◎ 저자 소개 김현철 목사는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침례신학대학원 신학과, 미국 서남침례신학대학원 기독교교육학과를 졸업했다. 미국에서 돌아온 후 홍이석 목사님과 함께 목동에 목산교회를 개척했으며, 1990년에 2대 담임목사가 되었다. 저자의 제자훈련 교재로는 <주님의 비유>, <성경이 우리 손에 오기까지>, <자아용납과 문제해결> 등이 있다. ◎ 책 소개 이 책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은 새 신자가 알아야 할 신앙생활의 주제 열한 가지를 골라서 신앙생활의 방향에 대해 오리엔테이션을 받도록 하였다. 또한, 이 책은 교회 생활은 오래 했으나 기초 교육을 제대로 받은 적이 없는 사람, 교회 방문자가 아니라 교회의 지체로서 공동체와 함께하려는 사람에게도 유익한 책이다. ◎ 본문 중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므로 하나님이 지으신 목적대로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분의 뜻대로 사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런데 자기가 인생의 주인 행세를 하며 “내 길을 가겠다”라며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이렇게 인생의 주권을 하나님에게서 빼앗아 자신이 행사하는 태도를 죄라고 합니다. 불의, 추악, 탐욕, 악의, 시기, 살인, 분쟁, 사기, 비방, 교만은 죄가 아니라 죄인의 열매입니다.”(p.14) <요단출판사 제공 : Tel (02) 2643-7290>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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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부활절 축하 메시지 - 한상일 목사한 상 일 목사 구미시기독교총연합회 회장 선산중앙교회 부활의 주님은 참 소망입니다! 20세기 신학계의 거장 칼바르트는 “부활의 메시지는 짧을수록 좋다. 왜냐하면 부활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인 사실을 성경은 구차하게 증명하려고 하거나 변증하려하지 않았다. 단순하게 선포했고, 믿고 살라고 선언했을 뿐이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믿음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곧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복음이 복음이 되고,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자가 되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이 분명한 사실 만큼 중요한 또 하나의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을 뿐 아니라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의 참 소망이 되십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소망을 가르쳐 주기 원하셨습니다.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셔서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셨고, 죄와 사망과 싸워 승리하심으로 참된 소망을 향해 걸어가는 삶을 보여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소망을 가진 사람은 삶의 뿌리부터 흔들어 놓는 일이 찾아온다 할지라도 오히려 극복하며 이겨나가 하나님의 역사를 창조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인생에 어두운 금요일 밤과 같은 시간이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주일이 오고 있음을 믿고 이겨냅시다” 꽃을 파는 할머니가 한 분이 계셨는데 사람들은 이 할머니를 ‘웃음 할머니, 기쁨 할머니’로 불렀습니다. 입고 있는 옷은 남루하기 그지없고, 생활은 참 고달픈 듯 보이는데 늘 기쁨으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어떤 분이 “할머니! 할머니는 뭐가 그렇게 기쁘세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아닙니다. 저에게도 어려운 일도 있고, 슬픈 일도 있지만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생각하면 힘이 난답니다. 예수님은 금요일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지만 삼 일만에 부활하셨듯이, 내 인생에 금요일은 지나가고 부활의 주일이 오고 있음을 믿기에 항상 기쁘게 살아간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누구에게나 인생에 어두운 금요일 밤과 같은 시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더 좋은 날이 오고 있습니다. 지금은 인생의 금요일 같을 지라도, 부활의 주일이 오고 있습니다. 이 할머니처럼 기다려 보십시오. 여러분의 가정, 기업, 건강에 부활의 아침이 올 줄로 믿습니다. 아무리 추운 겨울도 우리는 봄이 올 것을 알듯이, 우리의 삶 속에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지만 우리는 봄이 올 것을 확실히 믿는 것입니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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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볼로의 중생장 재 효 목사 서울성은장로교회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24~25절)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26절)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함으로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를 써 영접하라 하였더니 그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 공중 앞에서 힘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이러라(27~28절) 본문의 말씀은 성경에 대해 지식으로는 능통하였으나 성령을 받지 못한 아볼로라는 사람이 바울의 동역자인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에 의해 하나님의 복음을 듣고 성령을 받아 중생하여 하나님의 복음을 담대히 전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1. 성경에 능통한 아볼로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나서 성장했습니다. 알렉산드리아는 그 시대에 120만 명 이상이 모여 사는 세계에서 최고로 큰 도시로 동양과 유럽과 아프리카 3개 주가 연결되어 있고, 전 세계의 많은 학자가 모여 자신의 학설과 이론을 강론했던 학문이 세계에서 가장 특출난 곳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세계적인 대학자로 알려진 사람이 아볼로입니다. 그는 유명강사로 많은 사람 앞에서 초청받아 강의했을 뿐만 아니라 유대인으로서 구약성경에도 능통했습니다. 또한, 그는 세례요한의 제자들로부터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예수님에 대해서도 강론을 했습니다. 그러나 25절에 보면 “아볼로는 예수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쳤지만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볼로는 그때까지 예수님이 성경에서 예언된 그리스도로 믿어지지도 않았고, 진정한 회개도 못 한 한마디로 성령을 받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고전1:18절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이 세상의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아볼 수 없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들에게는 성령으로 하나님의 지혜를 통하여 하나님을 알아보게 하시고, 죄를 깨달아 믿어지게 하는 능력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볼로는 아직 성령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하고, 자신도 믿지 못하는 예수님을 전하는 어리석은 짓을 행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아볼로를 통하여 무엇인가를 기대했기 때문에 그를 초청해 말씀을 들었지만, 구원 얻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오늘날 아볼로와 똑같이 성령 받지 못한 상태에서 예수님을 지식으로 전하고 대접받으려는 목회자들이 많이 있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아볼로처럼 지식만 가지고는 아무런 열매가 없습니다. 오직 성령을 받고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어야 하나님의 말씀에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2. 복음을 듣게 된 아볼로 마침 바울의 동역자였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아볼로의 집회에 우연히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성령 받지도 못하고 예수님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아볼로가 예수님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성령 충만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성령을 받지 못한 채 자신도 모르게 지옥으로 가고 있는 아볼로를 보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볼로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는 것을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 즉 예수님에 대해 더 정확하게 풀어 가르쳤습니다.(26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전하는 말씀이 성령으로 전했기 때문에 아볼로는 대학자임에도 불구하고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겸손한 자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주십니다. 그날 밤 대학자 아볼로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전하는 말씀을 듣고 깨달아 성령을 받았습니다. 3. 성령을 받고 중생한 아볼로 아볼로는 성령을 받고 비로소 중생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아볼로에게 있어 터닝포인트가 된 엄청난 일이었습니다. 성령이 충만해지니까 아볼로의 인생관이 완전히 바뀌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의 생애에서도 꼭 한번은 있어야 할 사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옥으로 가고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이들이 구원 얻게 하려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처럼 복음을 전하는 사람을 만나게 하십니다. 그리고 전도자를 통해 예수님을 영접하게 될 때 성령 받음으로 중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성령의 역사에 굴복하여 깨지고, 지옥 갈 인생이 천국을 향하여 방향이 바꾸어지게 됩니다. 그 사람에게 성령의 임재가 시작되면서 삶의 방향이 정반대로 바뀌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저와 여러분에게 꼭 있어야 할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이것 없이 교회 다니는 사람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만나기 이전의 아볼로의 상태와 같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처음 아볼로는 예수님에 대해 사람으로부터 배웠기 때문에 성령의 계시와 조명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생각대로 믿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자기 생각대로 믿는 사람이 많습니다. 사람의 생각으로 예수님은 이런 분이실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입니다. 그러했던 아볼로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내외를 통해 복음을 들어 예수님을 만나고 성령 충만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마도 아볼로는 그때까지 예수님을 잘 아는 척하고 남들에게 가르치기도 했지만, “나는 그동안 지옥 가고 있었구나”를 깊이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아볼로의 가치관이 완전히 달라진 것처럼 우리도 이제는 온전히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령을 받고 중생의 경험이 꼭 있어야 할 것입니다. 4. 복음 증거자가 된 아볼로 아볼로는 성령 받기 전에는 세상의 조건을 가지고 많은 사람에게 존경받고 대접을 받으며 살았지만, 이제 예수님 앞에 회개하며 성령 받고 난 이후에는 예수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가 너무너무 감사해서 “내가 어떻게 그 은혜를 보답할까?”하는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부터 영적인 소망인 영광스러운 천국과 예수그리스도를 위하여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이후 아볼로는 자신을 아가야 지방에 선교사로 파송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함으로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를 써 영접하라 하였더니 그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었다”(27절)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전에는 세상 지식으로 전했는데 이제는 성령의 도우시는 역사로 믿는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는 사람이 아볼로였습니다. 또한, 그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이다”라고 증언하며 많은 사람 앞에서 힘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기었습니다.(28절) 즉, 예수님을 부인하는 유대인의 주장을 꼼짝 못 하게 만든 것입니다. 아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여 한 영혼이라도 구원하기 위한 헌신의 마음이 불일 듯 했습니다. 그는 성령이 주신 지혜를 가지고, “구약성경이 예언한 대로 오신 분이 예수님이시고, 또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이 예수님이시니 그분을 믿고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하신 증거로 성령을 주신다”는 사실을 증거하였습니다. 이렇듯 아볼로가 구약성경을 예수님과 딱 맞추어 증거하자 예수님을 이단 취급하던 유대인들도 감히 대항하지 못하고 말씀 앞에 굴복하더니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권면의 말씀) 오늘날 교회에도 성령 받기 전 아볼로와 같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목자를 애타게 합니다. 목자의 사명은 맡겨 주신 양 떼들이 지옥 가지 않고 천국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에 애타게 성령께 간구합니다. ‘그들이 주의 법을 지키지 아니하므로 내 눈물이 시냇물같이 흐른다(시119:136)’고 시편 기자가 고백한 것처럼, 양 떼가 주의 법을 지키지 않으면 목자의 눈에는 시냇물처럼 눈물이 흐릅니다. 우리 중에 예수님을 지식으로 아는 데 머물러 있다면 진정으로 회개하여 성령 받고 중생하는 성도들이 됩시다. 또한, 성령 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는데 더욱 힘쓰기를 축원합니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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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군, 사랑의 열매 나눔 봉사단 사랑의 도시락 전달코호트 격리에 들어간 복지시설 2개소에 전달 울릉군은 경상북도가 지난 9일부터 22일까지 “코로나19 대응 총력 주간”으로 운영하는 데 발맞추어 관내 복지시설 2개소(송담실버타운과 송담양로원)에 대하여 예방적 코호트 격리에 들어갔다. 이번 조치는 최근 사회복지시설 내 대규모 코로나19 집단감염사례가 잇따라 발생함에 따라 노인 등 취약계층이 많은 시설에 감염병 유입을 차단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이다. 코호트 격리시설로 지정되면 종사자와 입소자 등 모두는 2주간 외부 출입이 전면 금지된 채 시설 내에서 생활하게 되며, 외부인의 시설방문도 차단된다. 이 소식을 접한 울릉도 사랑의 나눔 봉사단은 격리된 종사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 17일 사랑의 도시락 25인분을 만들어 전달했고, 다가오는 19일에도 도시락을 전달할 계획이다. 장금숙 나눔봉사단장은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울릉군에 나눔봉사단도 작은 힘이 될 수 있어 단원들과 함께 기쁜 마음으로 참여했다”고 말했다. 김병수 울릉군수는 “예방적 코호트 격리에 참여한 종사자들과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참여한 모든 분들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2주간 가정에 남아 있는 종사자들의 가족에게도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전했다. 이혜경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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