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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장합동)영남협의회, 신년인사회 및 임원회 가져▲ 영남협의회 신년인사회에서 경북지역 교직자들이 회원들 앞에서 새해 인사를 하고 있다. 예장합동 영남협의회(대표회장 장재덕 목사)는 지난 1월 21일 반야월교회(이승희 목사 시무)에서 신년인사회 및 임원회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영남지역 목회자와 장로들은 어려운 시기에 교회를 회복하고 건강한 교단으로 세우는 일에 힘쓸 것을 다짐하며, 새해 인사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행사에 앞서 드린 예배는 차기 회장 김종혁 목사 사회로, 상임회장 김봉중 장로기도, 장재덕 대표회장의 ‘살아있는 교회’란 제목의 설교, 명예회장 이승희 목사 축도 순으로 드렸다. 이어 사무총장 최인수 목사 사회로 가진 신년인사에서 장재덕 대표회장은 “교단과 지역복음화를 위해 역할을 잘 감당하는 협의회가 되자”고 인사했다. 격려사는 증경총회장 이승희 목사와 총회세계교회교류협력위원회 위원장 김상윤 목사가 전했다. 신년 하례인사는 사무총장 동현명 장로 진행으로 실무임원 인사, 각 지역별 교직자 소개와 인사, 참석한 내빈의 인사가 이어졌다. 한편, 영남협의회 제4회기는 임원세미나, 노회장·협의회장·장로회장 당선 축하예배 및 체육대회, 제107회 총회 당선인 축하예배 등의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혜경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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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장통합)영주노회, 춘양·봉화, 예천, 영주지역 제직세미나 열려▲춘양교회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오세원 목사가 말씀을 전하고 있다. ▪ 춘양·봉화지역 제직세미나 영주노회 교육자원부 주관 춘양·봉화지역 제직세미나가 지난 1월 20일(목) 오전 10시 30분 춘양교회 본당에서 70여 명의 제직원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예배는 영주노회 교육자원부 총무 조승호 목사(춘양교회) 인도로, 강종구 장로(봉화제일) 기도, 강사 오세원 목사(대구 은성교회)가 “좋은 제직, 무슨 힘으로 감당할까?”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고, 조승호 목사의 축도로 마쳤다. ▲예천교회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제직원들이 말씀을 받는 모습. ▪ 예천지역 제직세미나 영주노회 교육자원부 주관 에천지역제직세미나가 지난 1월 20일(목) 오전 10시 예천교회 본당에서 제직원 8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예배는 영주노회교육자원부 서기 신용균 목사(문수교회) 인도로, 조현창 장로 기도, 강사 박석진 목사(포항장성교회)가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꾼”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고, 노회장 김영수 목사(예천교회) 축도로 마쳤다. ▲영주동산교회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박석진 목사가 말씀을 전하고 있다. ▪ 영주지역 제직세미나 영주노회 교육자원부 주관 영주지역제직세미나가 지난 1월 20일(목) 오후 2시 영주동산교회 본당에서 제직원 8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예배는 영주노회 교육자원부 부장 이철희 목사(석포교회) 인도로, 박재실 장로(영주동산교회) 기도, 강사 박석진 목사(포항장성교회)가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꾼”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고, 전노회장 김창진 목사(영주동산교회) 축도로 마쳤다. 영주 우병백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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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도, 지역뮤지션 위한 창작공간 마련30일, 경주 서라벌문화회관에서 ‘경북 음악창작소 개소식’ 개최 최첨단 음악장비 갖춰···경북 음악산업 발전의 거점 역할 기대 경상북도는 30일 오후 경주 서라벌문화회관에서 음악 산업 관계자, 뮤지션 등 8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경북 음악창작소’ 개소식을 가졌다고 밝혔다. 경북 음악창작소는 올해 3월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지역 기반형 음악창작소 조성사업 공모에 선정됐다. 이에 경주 서라벌문화회관에 총사업비 25억원(국비 10억원, 도비 5억원, 경주 5억원, 현물 5억원)을 투입해 지상 2층, 연면적 610㎡ 규모로 조성됐다. 주요시설로는 합주실, 편집실, 컨트롤룸, 라이브룸, 세미나실, 교육실 등과 음악창작에 필요한 각종 음악장비가 구축돼 있다. 음악에 관심 있는 도민이라면 누구나 사전예약을 통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이날 개소식은 트레봉봉의 축하공연을 시작으로 현판 제막식, 시설투어, 부대행사 순으로 진행됐다. 한편, 시설투어 시 라이브룸에서 뮤지션 ‘종코’의 축하공연이 함께 열려 행사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켰다 부대행사로 열린 ‘지역 인디음악씬 교류와 활성화를 위한 주체 간담회’에서는 뮤지션, 전국 음악창작소 담당자, 기획자 등이 참석해 지역 인디음악씬 현황 및 공유, 공동시장 창출 등의 지역 인디음악씬 활성화 방안에 대해서 논의하기도 했다. 경북 음악창작소는 앞으로 지역 뮤지션들의 창작 활동과 작품이 음반, 음원으로 재생산되는 과정에 필요한 기반시설과 음악 아카데미 운영, 음반 제작을 지원하는 등 지역 뮤지션과 도민들을 위한 열린 음악활동공간으로서 역할을 담당한다. 김상철 경북도 문화관광체육국장은 “이제는 수도권을 방문하지 않아도 지역 음악창작소를 통해 부담 없이 아티스트의 꿈을 펼치고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이를 위해 경북도는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은숙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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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시, 힐링푸드 ‘인삼요거트’ 개발 ‘착착’‘소비자패널 농산물 가공식품 시장성 테스트’ 온라인 평가회 실시 ‘신토불이 발효 유산균 식음료’ 로 자리매김 기대 ▲인삼요거트 '소비자패널 농산물 가공식품 시장성 테스트' 온라인 평가회를 하는 모습.(사진=영주시) 영주시와 농촌진흥청(청장 허태웅)은 16일 ‘인삼요거트’를 주제로 ‘제11차 소비자패널 농산물 가공식품 시장성 테스트’ 온라인 평가회를 실시했다. 온라인 평가회는 전국의 소비자패널 35명과 농인 및 관련 공무원 등 총 7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인삼 요거트의 ▲맛과 향 ▲농축 농도 ▲제품 1개(150mL)당 적정가격 등에 대한 전반적인 소비자 만족도 조사를 실시했다. 영주에서 생산되는 인삼요거트는 호르몬제·유화제·안정제·방부제가 전혀 첨가되지 않고, HACCP 시설에서 생산돼 소비자가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먹거리다. 영주요거트는 최근 마이크로바이옴(사람 체내에 존재하는 미생물)에 관한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한국인에게 맞는 ‘신토불이 발효 유산균 식음료’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시는 인삼 소비확대를 위해 향후 평가회 결과를 반영해 인삼요거트를 중심으로 하는 다양한 제품을 추가 개발할 예정이다. 특히 업무협약을 맺은 풍기인삼연구소와의 정기적인 세미나를 통해 지역농업발전을 위한 현장실용공동연구를 지속 추진할 방침이다. 강희훈 기술지원과장은 “몸에 좋은 먹거리에 대한 수요에 발맞춰 인삼을 이용한 다양한 치유먹거리를 개발해 ‘힐링 영주’의 위상을 지켜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영주시농업기술센터는 홍삼을 이용한 요거트 제품 개발을 위해 경북농업기술원 풍기인삼연구소와 공동실증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인삼요거트 생산업체인 영농조합법인 ‘소백밀크’는 2024년까지 유가공 제조 공장과 카페와 전시실을 갖춘 복합문화공간 조성으로 6차 산업에 감성과 문화가 가미된 7차 산업의 메카로 거듭날 준비를 하고 있다. 영주 우병백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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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기쁨의교회, ‘천국복음과 생활선교’ 세미나 개최박진석 담임목사 “하나님 나라 통치권 회복 기대” ▲포항 기쁨의교회 ‘천국복음과 생활선교’ 세미나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포항 기쁨의교회(담임목사 박진석)는 10월 10일(주일)부터 31일(주일)까지 4주간 ‘천국복음과 생활선교’를 주제로 세미나를 진행했다. 이 세미나는 코로나19로 목회 전반의 변화와 더불어 선교와 전도의 패러다임이 바뀜에 따라 선교 전략을 공유하고 천국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루어졌다. 세미나에서는 복지, 문화, 일터, 교육이라는 4가지 영역의 강연과 사례발표로 진행했다. 복지 영역은 최무열 목사(전 부산장신대 총장), 문화 영역은 손은희 목사(총회문화법인 사무총장), 일터 영역은 최복이 본죽 대표, 교육 영역은 박혜경 한동글로벌학교 교장이 강연을 맡았다. 이 세미나를 통해 기쁨의교회는 교인들이 생활의 각 영역에서 생활 선교사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도전을 받고 삶에서 적용 가능한 실천 과제들을 찾아가기를 바라고 있다. 세미나를 기획한 박진석 기쁨의교회 담임목사는 “이번 세미나를 통해 교우들이 하나님 나라의 통치권을 각 영역에서 회복할 수 있는 지혜를 찾기를 바란다”라며 “교회가 시대의 흐름 속에 선교하기 위한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은숙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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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 안동지역 여성사역의 개척자(7‧끝)김정숙, 안동지역 여성사역의 개척자(7‧끝) 김승학 목사 신학과 교수/기독교교육학 안동교회 담임목사 김정숙 전도사(金貞淑, 1880~1969) 목차 서론 1. 김정숙, 출생과 결혼 2. 최초의 순교를 목도한 시댁 3. 여성복음전도의 선구자 .............................................. 7. 안동교회 최초의 전도사 8. 경안노회 여전도회 연합회 리더 9. 일제에 저항한 애국운동가 10. 평신도 사역자 결론 10. 김정숙, 평신도 사역자 1934년 12월 17일 오후 4시 경안노회 주관으로 한국선교 50주년 희년기념식 및 기념축하예배가 안동교회에서 거행되었다. 크고 작은 축하기를 들은 안동교회, 안기교회, 신세교회 교인과 주일학교 학생들 약 1,000여 명은 찬송을 부르며 시가지를 행진하며 전도지를 시민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4시 30분 다시 안동교회로 모여 경안노회 만세를 삼창하고 기념식을 마쳤다. 이날 오후 7시에 시작된 희년 축하예배 시 안동교회 악대의 주악과 찬양이 있었고, 권찬영 선교사의 설교 후 표창식이 있었다. 이날 20년 이상 경안노회 경내의 교회에서 시무한 교역자 12인 중 여성으로서는 김정숙 전도사가 유일했다. 참고로 12인으로는 김영옥, 권찬영, 김인옥, 강석진, 장사성, 김우일, 권수백, 김종수, 강우근, 권중한, 김익현, 김정숙 등이었다. 김정숙 전도사는 1934년에 이미 20년 이상 교역자로 봉사한 것으로 인정받은 것으로 보아 적어도 1914년 이전부터 노회가 인정하는 여성 교역자였음에 틀림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김정숙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가 세례받은 후 1년이 지난 1912년부터 생활의 근거지를 풍기에서 안동으로 옮겨 본격적으로 선교사들의 복음 사역을 도왔다고 증언한다. 그는 회심 이후 전도부인으로 투신하여 헌신한 여성 사역자였다. 또한 평양여자성경학원을 졸업한 이후에는 교회와 노회를 위해 충성을 다했다. 이처럼 그는 경안노회 여성 지도자 중에서도 가장 앞선 선각자(先覺者) 중의 한 사람이었다. 교역자로 봉사하던 김정숙 전도사는 1937년, 15년 동안 섬겼던 안동교회에서 사임함으로써 전도사직에서 은퇴했다. 이때 그의 나이는 58세로 아직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도사직에서 은퇴한 것이다. 1930년대에 접어들면서 민족말살정책의 하나로 내선일체(內鮮一體)와 황국신민화(皇國臣民化) 등을 강요한 일제는 황국 신민서사의 암송도 강요했다. 특히 1937년 10월, 총독부 학무국에서 교학쇄신(敎學刷新)·국민정신 함양을 목적으로 보급했다. 학교·관공서·은행·회사·공장·상점 등 모든 직장의 조회와 각종 집회 의식에서 황국 신민서사는 낭송이 강요되었다. 다시 말해 이때는 일제의 민족말살정치가 극성기에 달했던 시절이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교회를 섬기는 교역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특히 김정숙 전도사는 안동 3·1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민족 운동자였다. 이러한 김정숙 전도사의 이력은 일제의 눈에 가시와 같았을 것이며, 일제는 총력을 다해 황국신민화 정책에 걸림돌이 되는 교화와 애국자들을 탄압하고 제거했을 것이다. 임학수 목사도 일제 말엽의 기독교 박해(迫害)로 사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제는 교회에 김정숙 전도사의 거취에 무언 혹은 유언의 압박을 가했을 가능성이 있다. 아마 김정숙 전도사는 자신이 교회에 부담을 주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따라서 김정숙 전도사는 스스로 사임의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김정숙은 은퇴 후 교역자 신분으로서가 아니라 평신도로 안동교회를 섬겼다. 이와 같은 사실은 앞서 언급한 김정숙의 사임 이유를 지지하게 한다. 더 이상 교회에 부담을 주지 않는 평신도 신분으로 김정숙은 자신을 필요로 하는 거룩한 일이라면 하나님과 교회의 부름 앞에 철저히 순종하며 마음과 정성을 다해 동참했던 것이다. 김정숙은 안동교회의 집사와 권찰로 봉사하다가 69세인 1948년에는 권사로 피선되었고, 1949년부터 1955년까지 여장년부 부장으로 충성을 다했다. 그는 안동교회 전도사직을 내려놓고도 평신도로 돌아가 교회를 섬기는 것을 중단하지 않았던 것이다. 김정숙은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은 어떤 직책이든지 최선을 다해 감당한 신실한 하나님의 일꾼이었다. 그래서 1963년 1월 20일에 열린 당회는 20년 이상 안동교회를 위해 봉직한 것을 기념하는 예식을 갖기로 결의했는데, 대상자는 김광현 담임목사, 김재성·조흥노·이홍구 장로, 그리고 김정숙 전도사 등이다. 안동교회는 김정숙의 전도사 사역과 평신도 사역을 남녀 차별 없이 존중했던 것이다. 11. 결론 김정숙은 보신(保身)의 길을 갈 수 있었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일평생 험지(險地)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한 믿음의 선배다. 32세가 되던 1911년, 그는 안동선교부 선임 오월번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은 이후 안동지역의 노회와 교회를 섬기다가 1969년 90세의 일기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는 안동지역 여성 사역의 개척자였다. 또한 그는 경안노회 여전도회연합회가 설립될 때 산파(産婆)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초기 경북 북부지역의 여성 복음화에 초석을 놓은 여성 지도자였다. 특히 김정숙은 1919년 3월 18일에 거행된 안동의 3·1 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던 행동하는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이었으며, 일제 말엽에는 일본제국주의에 맞서 신사 참배를 거절하고 신앙의 절개를 지킨 애국자였다. 그의 강직한 성품과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신앙, 그리고 성령 충만한 전도사역은 교회와 노회의 후배들에게 사표(師表)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김정숙은 그의 후손이 6대 신앙을 지켜 올 수 있도록 초석을 놓은 신앙의 지주(支柱)요 믿음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조사와 전도사, 전도사직을 은퇴한 후에도 평신도로서 무려 15년 동안 안동교회의 권찰로, 서리집사로, 여장년부 부장교사로, 또한 주일학교에서 어린이 사역에도 헌신함으로써 자신에게 맡겨진 크고 작은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한 충성스러운 하나님의 종이요 일꾼이었다. 그는 하나님을 만난 이후부터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순간까지 오직 하나님과 주의 몸된 교회를 위해 살다 간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김정숙의 일생을 회고하면 할수록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고 고백한 사도 바울의 육성이 들리는 듯하다. ▲경안노회 여전도회연합회 10주년 사진. 김정숙 전도사는 경안노회 여전도회연합회가 설립될 때 산파(産婆)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초기 경북 북부지역의 여성 복음화에 초석을 놓은 여성 지도자였다. 연합회의 초대 회장으로 수고한 김정숙 전도사는 두 번째 줄 정중앙에 앉아 있다. 맨 아래 줄 왼쪽에서 네 번째는 역시 경안노회 여전도회연합회의 산 증인인 김점향 권사를 볼 수 있다.(사진8) /논문 발췌‧정리=박은숙 기자/ <논문 원본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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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남노회, 자립대상교회 목회자 가정 위로23개 교회 교역자 가정에 위로금 및 장학금 전달 예장통합 포항남노회 교회동반성장위원회(위원장 이하준)는 지난 7월 1일 포항중섬로교회(석성환 목사 시무)에서 자립대상교회 교역자 부부 23가정을 초청해 사역 위로회 및 세미나를 개최했다. 교단 언론 보도에 따르면, 세미나에 앞서 1부예배는 총무 석성환 목사의 인도로 회계 방재원 장로 기도, 노회장 장성표 목사의 ‘잠이 오지 않은 밤에도’ 제목 설교, 서기 김찬유 목사 광고와 장성표 목사의 축도 순으로 진행됐다. 2부 세미나에서는 이동석 목사(안강영광교회)와 신영철 목사(포항강성교회)가 강사로 나서 ‘불가항력’이라는 주제와 ‘나의 목회, 나의 무기’라는 주제로 각각 특강을 진행했다. 이날 포항남노회는 23개 교회의 교역자들에게 가정당 25만 원의 위로금을 지원했으며, 대학생을 둔 12가정에는 학생 1인당 50만 원의 장학금을 지원했다. 또 특별 선물로는 박영호 목사(포항제일교회)가 참가 교역자 전원에게 ‘성경신학 스터디 바이블’을 제공했다. 이혜경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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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월성발굴조사 운영시설 ‘숭문대’ 내년 상반기 개관신라시대 왕실도서 보관·관리하고 동궁의 교육 맡았던 옛 관청 이름 시설 내부에는 출토유물 전시관, 세미나실, 수장시설, 연구실 들어서 ▲현재 경주시 황남동 407번지 일대에 건립 중인 숭문대 모습.(사진=경주시 제공) 경주시와 문화재청은 신라왕경 복원정비사업의 일환으로 내년 상반기 개관하는 월성발굴조사 운영시설의 이름을 ‘숭문대’로 확정했다고 28일 밝혔다. 숭문대(崇文臺)는 학문(文)을 숭상(崇)한다는 의미로, 신라시대 왕실도서를 보관·관리하고 동궁(東宮)에 대한 교육을 담당하던 관청이다. 또 신라시대 명필(名筆)로 손꼽히는 요극일(姚克一)이 숭문대의 관리였다는 기록을 통해 숭문대가 신라시대를 대표하는 학문 연구 기관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같은 기록은 고대 역사를 기록한 ‘삼국사기’를 통해 확인됐다. 경주시와 문화재청은 찬란했던 신라 천년의 역사를 널리 알리고 계승하고자 월성발굴조사 운영시설의 이름을 숭문대로 명명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건립 중인 숭문대는 경주시 황남동 407번지 일대에 총사업비 75억 원(국비 70%·지방비 30%)을 들여, 연면적 2,370㎡, 지상 1층 규모로 시설 내부에는 출토유물 전시관, 세미나실, 수장시설, 연구실 등이 들어선다. 지난 3월 착공에 들어갔으며, 내년 상반기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숭문대가 교촌마을과 인접한 곳에 들어서는 만큼, 주변 경관을 고려해 한옥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설계안이 채택됐다. 경주시와 문화재청은 이 시설이 개관되면 신라왕궁 발굴 과정에서 출토된 유물의 전시와 연구 성과를 공개할 수 있는 ‘신라왕궁 출토유물 전시관’으로써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시설 운영은 문화재청 산하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맡는다. 경주시 관계자는 “장기간 소요가 예상되는 월성 발굴조사에 따른 체계적·전문적 연구 및 출토유물 수장시설의 필요는 물론, 출토유물의 전시 공간을 만들기 위한 사업”이라며, “숭문대가 개관하면 교촌한옥마을과 월정교 주변 경관이 크게 개선돼 지역의 새로운 명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경주 김치현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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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그린산단 「구미형 소재부품 융합얼라이언스 지원」 추진 본격화제조혁신을 위한 맞춤형 기업지원 추진사업으로 자리매김 4개 지원사업에 59개사, 6개 기업협의체 선정, 22억원 지원 ▲스마트산단과 연도별 추진전략.(사진=구미시 제공) 구미시(시장 장세용)는 스마트그린산단사업의 일환인 '구미형 소재부품 융합얼라이언스 지원 사업'을 통해 모듈형 토탈기업지원 및 산학연 협의체 활동지원, 기업 기술분석 지원 등 신산업 소재부품 생태계 구축을 통한 기업 제조혁신에 앞장선다. 지난해(1차년도) 추진한 산학연 협의체 구성, 공간 확보 등 필요한 기본 인프라를 토대로, 금년(2차년도)도 구미 미래 신산업분야 전문기업을 대상으로 지난 5~6월부터 1~2차 사업공고를 실시하여 △수요연계형 모듈형 토탈기업지원(기술지원사업화지원) △기업·기술분석 및 기획지원 △산학연 협의체 네트워킹 활동지원 등 총 4개 지원사업에 선정된 59개사, 6개 기업협의체를 대상으로 22억 원을 지원하여 사업 추진을 본격화 한다. 구미 산단 내 기업 간 협업을 전제로 하는 기술지원의 경우 1~2차 사업 공고에서 기업들의 관심과 참여도가 매우 높아 신규아이템 발굴, 제품생산용 라인증설, 공동납품을 위한 기술개발 등 다양한 협업 케이스를 보여주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내년부터 기술지원에 대한 규모를 더욱 확대하여 2023년까지 지속적으로 지원할 방침이다. 또한, 본 사업으로 기업들이 구미전자정보기술원 내 구축되는 개방형 혁신랩의 스마트 회의실, 마이크로오피스, 세미나실,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실 등을 8월부터 무상으로 이용할 수 있으며, 아울러 기술원이 보유한 공동활용장비를 비롯하여 타 기관 시설들을 인터넷으로 편리하게 예약ㆍ사용할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이 구축되어, 융합얼라이언스 커뮤니티와 전문가 네트워크, 데이터베이스 등 다양한 기업지원 서비스를 누릴 수 있게 된다. 구미시 관계자는 “본 사업을 통해 구미 소재부품 중소기업의 신산업분야 개척 및 제품고도화를 통해 구미 기업의 경쟁력이 강화되고 신산업 창출과 제품혁신의 성과까지 거둘 수 있도록 각별한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혔다. 박은숙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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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 안동지역 여성사역의 개척자(5)김정숙, 안동지역 여성사역의 개척자(5) 김승학 목사 신학과 교수/기독교교육학 안동교회 담임목사 김정숙 전도사 (金貞淑, 1880~1969) 목차 서론 .............................................. 5. 담임목사의 부재(不在)를 메꾼 여성교역자 6. 다음세대 전문사역자 7. 안동교회 최초의 전도사 8. 경안노회 여전도회 연합회 리더 9. 일제에 저항한 애국운동가 10. 평신도 사역자 결론 7. 김정숙, 안동교회 최초의 전도사 선교 초창기 선교사의 조력자 역할을 한 전도 부인은 부인 전도사, 여전도인, 여전도사, 전도 부인 등으로 불렸다. 이들은 바깥출입이 자유롭지 못한 여성들을 찾아다니며 성경과 찬송가를 판매하고, 한글을 가르치며 복음을 전한 매서인(賣書人)인 동시에 복음전도자였다. 또한 전도 부인은 동역하는 선교사들의 지시에 따라 마을 마을을 방문하며 교회를 섬기며 성도들을 돌보는 사역을 감당했다. 조사, 매서인, 영수 등 남성 사역자들은 일찍이 교회법에 따라 교역자의 위상을 확보했지만, 여성이 교역자의 위상을 확보하게 된 것은 1930년대부터로 알려져 있다. 이와 같은 시대적 변화에 따라 김정숙은 공식적으로 안동교회와 경안노회 전도사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1929년 안동교회 당회록에 따르면 김정숙을 부인전도사로 청원하고 경안노회는 이를 허락했음을 기록하고 있다. 1921년부터 교회에서는 전도사로 사역을 감당했지만, 전도사로 노회 허락을 받은 것은 사역을 시작한 지 무려 8년이 지난 후였다. 당시 여성 교역자의 한계를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거의 10년 동안 노회의 승인 없는 교역자 생활을 하던 김정숙은 노회의 허락에 따라 여성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고 공식적으로 여성 교역자로 사역을 감당하기 시작했다. 당시 교회의 재정은 교역자들에게 충분한 사례를 줄 형편이 되지 못했다. 또한 정확한 날짜에 사례를 주지 못할 때도 적지 않았다. 안동교회 당회록에 따르면 김정숙 전도사가 공식적으로 전도사로 인정을 받은 1929년과 1930년, 교회는 김정숙 전도사에게 사례비를 줄 만큼 재정적인 여력이 없었다. 그때 권찬영 선교사의 부인인 권애라 선교사와 여전도회가 협력해 김정숙 전도사의 사례비를 지급했다. 앞서 언급한 전도부인의 경우 자신이 속해 있는 선교사들이 사역비와 생활비를 지급했는데, 이 사례를 참고한 듯하다. 여전도회가 김정숙 전도사를 위한 사례비 후원에 동참한 것은 당시 여전도회의 재정규모와 활동상을 어느 정도 짐작하게 한다. 물론 김정숙 전도사는 1922년 조직된 경안노회 여전도회 연합회 출범의 산파역을 했으며, 오랫동안 회장을 역임하면서 경안지역 여전도회의 발전에 지대한 역할을 감당한 지도자였기 때문에 여전도회의 재정 지원이 가능했을 수도 있다. 이처럼 김정숙 전도사는 사례조차 불확실한 형편에서도 인내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거룩한 복음사역을 감당했을 정도로 불타는 사명감을 갖고 있었다. 이것은 당시 주의 종들이 사례를 초월하여 복음을 전하는 일과 교회를 섬기는 일에 헌신했음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한다. 8. 김정숙, 경안노회 여전도회 연합회 리더 안동교회가 중심이 되어 1916년부터 연중행사로 여도사경회가 개최되어 여성을 위한 사역이 본격화되었다. 특히 1922년부터 공식적인 첫 여성 교역자로 안동교회를 섬기게 된 김정숙 전도사는 안동지역 교회의 여성 지도자로서 강력한 리더십을 갖고 있었다. 이미 그는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투철한 사명감을 가지고 경안노회에 속한 전역에 다니며 복음을 전한 전도부인이었다. 1926년 10월에는 영주 내매교회에서 있었던 여사경회 강사로, 1927년 5월에는 지내교회에서 열렸던 부인사경회 강사로, 또 1929년 3월에는 안동교회에서 열린 부인사경회에 김정숙 전도사가 강사로 섬길 수 있도록 안동교회 당회는 허락했다. 이에 따라 김정숙 전도사는 교회 내 사역뿐 아니라 교회 밖의 여성사역에 헌신할 수 있었다. 교회의 배려로 김정숙 전도사는 여전도회 연합사업과 활동, 노회의 여성교육에 있어서 중심인물로 활동할 수 있었고, 그 결과 경안노회 경내의 여성 사역이 크게 활성화되었다. 이와 같은 여성 사역의 중심에 있던 김정숙 전도사는 경안여전도회연합회 창립 시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1928년 2월 18일 열린 경안노회 도사경회 중에 대구 주재 박우만 선교사가 내안하여 발기회를 가짐으로써 경안여전도회연합회는 출범하였다. 당시 발기인으로는 안동 주재 선교사인 권애라, 김정숙 전도사, 김향란, 김정희, 안주봉, 김순애, 권순희, 권순옥 씨 등이 참여했다. 발기회를 가진 그 다음 날인 1928년 2월 19일, 경안노회 여전도회연합회 창립총회가 개최되어 초대회장에 김정숙 전도사가 피선되었다. 김정숙 전도사는 여전도회연합회 초대부터 5대까지는 회장으로, 6대~13대까지는 부회장으로, 그리고 17대에는 다시 회장으로 섬기면서 경안여전도회의 기초와 활성화에 큰 헌신을 감당했다. 그는 여성사역에 혼신의 힘을 다함으로써 경안노회 경내의 여성사역에 초석(礎石)을 놓은 인물로 평가를 받는다. 김정숙이라는 뛰어난 사역자를 통해 당시 교회 내에서 여성 사역과 여성의 지위가 몇 단계 발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경안노회 여전도회연합회 제10회 총회 때의 아래 사진은 김정숙 전도사의 리더십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증명하고 있다. 사진6에는 당시 경안노회 여전도회를 이끌었던 여성 지도자들의 면면을 볼 수 있다. 특히 연합회 초대 회장으로 수고한 김정숙 전도사는 둘째 줄 정중앙에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가 당시 경안노회 경내 여성 지도자였음을 암시하고 있다. 사진6 밑에서 두 번째 줄에는 당시 안동지역에서 헌신했던 4명의 여선교사를 볼 수 있다. 이것은 선교사 부인들이 경안여전도회에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역대 경안노회 여전도회 회장 명단에는 어떤 안동에 주재하는 여성 선교사의 이름을 단 한 명도 찾아볼 수 없다. 선교사들은 현지인의 리더십을 세우는 일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경안여전도연합회가 선교사들에 의존하지 않고 현지 여성 지도자들에 의해 든든히 세워져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여성 선교사들은 전면에 나서지 않고 배후에서 헌신했을 것이다. 그 결과 경안여전도회는 비록 여성 선교사들의 도움은 받았지만 지역 출신의 여성들이 주체적이고 자율적으로 경안여전도회를 이끌어 갔던 것이다. 그리고 이 중심에 김정숙 전도사가 있었다. ▲경안노회 여전도회연합회 10주년 사진으로 아래서 두 번째 줄 좌측부터 4명의 여선교사를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당시 여성들에게 성경을 가르친 매켄지 선교사, 두 번째는 권찬영 선교사의 부인 권애라 선교사, 세 번째는 옥호열 선교사의 부인, 네 번째는 안의와 선교사의 3남인 안두조 선교사의 부인이다. 특히 연합회 초대 회장으로 수고한 김정숙 전도사는 둘째 줄 정중앙에 앉아 있다. 맨 아래 줄 왼쪽에서 4번째는 역시 경안노회 여전도회의 산 증인인 김점향 권사를 사진에서 볼 수 있다.(사진6) /논문 발췌‧정리=박은숙 기자/ <논문 원본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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