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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장 ‘2019 전국 기도대성회’ 열려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남신도회전국연합회(회장 박관순 장로)가 주최하고 충청권 4개 연합회가 주관한 ‘2019 남신도회 전국 기도대성회’가 지난 11월 21일 충주서남교회당에서 열렸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함께 일하는 남신도’라는 표어 아래 전국에서 모인 회원들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교단과 교회를 위해, 해외선교와 세계 복음화를 위해 간절히 부르짖는 기도의 시간을 가졌다. 기도회에 앞서 드려진 예배는 국내선교위원장 김형표 장로의 인도로 드려졌으며, 차기회장 임종신 장로의 대표기도, 서울한신교회 강용규 목사의 ‘구원받은 자의 삶’이란 제목의 말씀 선포가 있었다. 이어 ‘전국교회와 남신도를 위해’, ‘교단 총회의 부흥을 위해’, ‘국가와 민족을 위해’ 등의 기도 제목을 놓고 홍원섭 장로(충북연합회장), 김광수 장로(법제위원장), 안성섭 장로(충남연합회장) 등이 기도를 인도했다. 김치현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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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장합동 총회군선교회 경북지회 제17회기 정기총회 개최신임회장에 장성진 목사 추대 ▲경북지회 신임회장 장성진 목사 예장합동 총회군선교회 경북지회는 지난 12월 5일(목) 오전 11시 포항큰숲교회(장성진 목사 시무)당에서 제17회기 정기총회를 개최했다. 이날 총회에서는 경동노회 장성진 목사(포항큰숲교회)가 신임 지회장에, 구미노회 박신득 목사(구미옥계교회)가 수석부회장에 선출됐다. 총회에 앞서 지회장 조성래 목사의 사회로 드린 예배는 수석부회장 장성진 목사 기도, 상주제일교회 엘림색소폰찬양단 특송, 이사장 최재덕 목사 설교, 초대지회장 김승동 목사 격려사, 대경지회장 신현진 목사, 증경회장 정희수 목사 등의 축사, 경동노회장 현종규 목사 환영사, 명예회장 이기택 목사 축도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설교에서 최재덕 목사는 “후하고 너그러운 일을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신다”며 “빌립보 교회처럼 후원으로 복음전파 사역에 동참하는 교회들이 되기를 바란다”고 권면했다. 2부 총회에서는 개회선언 후 회순에 따라 각 부 보고, 임원 선출, 명예회장 추대, 공로패 및 감사패 전달 등의 순서가 있었다. 신임회장에 추대된 장성진 목사는 “군선교 현장이 매우 열악함에도 복음의 결실이 풍성하게 맺히는 증거가 많이 있다”며 ”회원들과 후원이사회와 협력하여 군복음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예장합동 총회군선교회 경북지회 제17회기 정기총회가 12월 5일(목) 포항큰숲교회당에서 열렸다.(총회를 마친 후 회원들의 기념촬영) 박은숙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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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시기독교평신도연합회 정기총회신임회장에 전희식 장로 추대 ▲신임회장 전희식 장로 구미시기독교평신도연합회(회장 강수경 권사)는 지난 11월 21일(목) 오후 7시 구미제일교회(김경택 목사 시무) 비전센터에서 제28회기 정기총회를 열고 신임회장에 전희식 장로, 수석부회장에 이진태 장로를 선출했다. 총회에 앞서 드려진 예배에서 김경택 목사는 ‘한마음을 품으라’는 제목으로 메시지를 전했다. 김 목사는 “연합회 일을 할 때는 먼저 서로 사랑해야 하고, 사명에만 집중해야 하며, 그 일을 끝까지 감당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권면했다. ▲이날 평신도연합회에서는 10명의 학생에게 장학금을 전달했다. 이어 증경회장 김종학 장로가 격려사, 구미장총 회장 정규진 장로가 축사 했으며, 학생 10명에게 장학금 전달 및 3개 기관에 선교후원금을 전달한 뒤, 구미기총 회장 안정현 목사의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2부 총회에서는 회순에 따라 각 부서 보고 및 신임임원을 선출하고 명예회장 추대 및 공로패 증정의 시간을 가졌다. 전희식 장로는 “부족한 종에게 사명을 맡겨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회원들과 협력하여 연합회 사역을 잘 감당해 나가겠다”고 인사말을 전했다. ▲총회를 마치고 난 후 신임임원진과 회원들의 기념촬영. 박은숙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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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평생 경안노회를 떠나지 않은 주의 종(從), 임학수 목사(2)일평생 경안노회를 떠나지 않은 주의 종(從), 임학수 목사(2) 김승학 목사신학과 교수/기독교교육학안동교회 담임목사 임학수 목사 (林鶴洙, 1884-1969) 목차 서론 1. 임학수, 믿음의 조상이 되다 2. 예수 믿기로 결단하다 3. 고향 매정에 교회를 설립하다 4. 권찬영 선교사의 서기가 되다 5. 목사로 임직(任職)하다 6. 주일학교에 비상한 관심을 갖다 7. 한국교회의 미래를 준비하다 8. 자유로운 영혼을 소유하다 9. 지역의 복음화에 앞장서다 10. 사경회에 온 힘을 쏟다 4, 권찬영 선교사의 서기가 되다 1908년 안동에 선교부가 조직되고 최초의 주재선교사로 소텔 선교사가 부임했다. 그러나 1909년 가을, 소텔 선교사는 안동에서 북쪽으로 전도를 떠난 지 10일 만에 장티푸스에 걸렸고, 28세라는 젊은 나이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소텔 선교사의 순교의 피가 뿌려진 지 2개월도 채 지나지 않은 1910년 1월, 권찬영 선교사가 안동에 부임함으로써 안동선교는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권찬영 선교사는 안동에 부임한 후 무려 40년 동안 안동에 머물며 지역민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안동을 사랑했고, ‘Mr. 안동’이란 별명을 얻을 정도로 안동 땅의 사람들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았다. 임학수는 1910년 권찬영 선교사의 서기(書記)로 일했는데, 아마 한국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권찬영 선교사가 한국의 문화와 언어에 서툴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권찬영 선교사와 함께 생활하면서 설교도 하고 예배도 인도할 수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임학수는 빨리 조사가 될 수 있었다. 그 결과 그는 권찬영 선교사의 선교 구역인 아곡교회, 원림교회, 예천의 지보 섭밧교회에서 조사로서 사역을 잘 감당했다. 그 후 1919년 제6회 경북노회에서 공식적으로 조사로 인정받게 되었으며, 1922년 경안노회가 조직된 후에는 장사리, 국곡, 덕봉, 아탐실, 수동, 하화교회 등 6처 교회에서 조사로 봉사했다. 1923년 5월, 임학수 가족이 안동교회로 이명한 후에도 임학수는 조사의 직분을 가졌기에 주일마다 여러 교회를 찾아다니며 성도들을 돌보는 일을 감당했을 것이다. 이후 그의 조사 사역은 계속되어 1924년에는 국곡, 아곡, 수동, 장사리, 소호리, 원림, 구미교회에서 역시 조사로 사역했다. 5. 목사로 임직(任職)하다 1901년 5월, 마포삼열 선교사는 자신의 사랑채에서 김종섭, 방기창 등 2명을 모집하여 신학교육을 시작했다. 이어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던 미국북장로교, 미국남장로교 등 4개의 장로교선교회에서 공동으로 운영하는 학교 설립이 요청되었고, 1904년 평양에 장로회신학교가 정식으로 출범하게 되었다. 평양신학교의 당시 입학조건은 까다로운 편으로 상당한 학식과 자격을 갖춘 자로 제한했다. 평양신학교는 총 5년간의 교육과정으로 진행됐는데, 매년 3개월은 학교에서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나머지 9개월은 거주하고 있는 교회에서 사역하는 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1920년에 이르러 1년 2학기 3년 과정의 학제를 가진 전문학교 제도를 도입했다. 조사로 교회를 돌보던 임학수는 1921년 가을, 비교적 늦은 37세로 평양신학교에 입학했다. 1921년 제9회 경북노회에서 특별 신학생으로 임학수의 평양신학교 입학이 허락되었으며, 별(別) 신학과에 입학한 지 3년 후인 1925년 1월 7일, 제7회 경안노회가 회집된 안동교회에서 문답을 거치고 나서 임학수는 목사 임직을 받았다. 임학수는 임직 후에 소호리교회 등 5개 교회를 섬겼으며, 고향인 녹전교회에서도 목회를 했다. 또한 경안신학원의 전신인 인노절 기념 성경학원 강사로 수년간 제자들을 양성했다. 6. 주일학교에 비상한 관심을 갖다 1926년에 대한제국의 순종황제가 별세한 후에 6·10만세 운동이 발생했다. 6·10만세 운동에서 학생운동 조직들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는데, 이를 계기로 이후 학생은 독자적인 운동 주체로 부상하게 되었으며, 기독교는 더욱 일제의 감시와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환경 속에서 임학수 목사는 조국의 미래가 다음 세대의 교육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고 인재양성에 매진하였다. 무엇보다 그는 주일학교에 관한 관심이 지대했다. 1930년에는 새롭게 주일학교 임원을 구성했는데, 담임목사를 주일학교 교장으로 결의했다. 이것은 담임목사가 주일학교 신앙교육에 책임을 지고 지도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임학수 목사가 부임하기 1년 전인 1928년 9월 경안노회 역사상 처음으로 제1회 경안주일학교대회가 안동교회에서 열린 적이 있었다. 이 대회는 안동, 영주, 예천, 봉화, 의성, 청송, 영양, 영덕 등 지역에서 2,300여 명이 참석하는 등 뜨거운 열기 속에 진행되었다. 이후 5년이 지난 1933년 4월 6일부터 5월 3일까지 제2회 경안주일학교대회가 역시 안동교회에서 열렸다. 임학수 목사는 5년 동안 중단되었던 안동지역의 주일학교 교사대회를 복원함으로써 교사들의 사명감을 회복시키고자 했으며, 각 교회의 주일학교가 든든히 서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자 했다. 또한, 임학수 목사는 청소년에 관해 관심을 기울였다. 당시 교회 주일학교는 초등학생을 양육하는 유년부와 장년 성도를 교육하는 장년부만 존재했다. 그래서 임학수 목사는 ‘안동 기독소녀회’(1928년 조직)란 기구를 1930년 ‘기독 소년·소녀회’로 규칙을 제정하고 그 대상을 남학생으로까지 확대했다. 또 청소년 활성화를 위해 소년·소녀 현상(懸賞) 동화대회를 열 수 있도록 협력했다. 이처럼 임학수 목사가 시무할 때 안동교회는 구체적인 청소년 사역을 시작하고 지원함으로써 청소년의 체계적인 신앙교육과 양육이 활성화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 제2회 경안주일학교대회.(1933년 4월 6일부터 5월 3일까지 안동교회에서 열렸다) /논문 발췌‧정리=박은숙 기자/<논문 원본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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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평생 경안노회를 떠나지 않은 주의 종(從), 임학수 목사(1)일평생 경안노회를 떠나지 않은 주의 종(從), 임학수 목사(1) 김승학 목사신학과 교수/기독교교육학안동교회 담임목사 학수 목사 (林鶴洙, 1884-1969) 목차 서론 1. 임학수, 믿음의 조상이 되다 2. 예수 믿기로 결단하다 3. 고향 매정에 교회를 설립하다 4. 권찬영 선교사의 서기가 되다 5. 목사로 임직하다 6. 주일학교에 비상한 관심을 갖다 7. 한국교회의 미래를 준비하다 8. 자유로운 영혼을 소유하다 9. 지역의 복음화에 앞장서다 10. 사경회에 온 힘을 쏟다 서론 임학수 목사는 안동 땅에서 출생하고 안동 땅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늘나라에 갔다. 그는 안동 땅에서 예수님을 만났고, 안동지역에 있는 교회를 섬겼다. 그는 하나님이 보내신 교회, 크고 작은 교회를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해 섬겼다. 그래서 그가 시무한 교회는 든든히 설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가 교회를 섬긴 시대 상황은 결코 만만한 세월이 아니었다.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점하고 강압적으로 통치하던 시대였다. 특히 임학수 목사는 단순한 성도로서가 아니라 교회의 지도자인 목사로 살아야 했기 때문에 더 큰 믿음과 용기, 그리고 인내와 소망이 필요했다. 그러나 임 목사는 어려운 시기에 교회의 지도자와 경안노회의 중심인물로 그 사명을 잘 감당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황금만능주의와 세속화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해 위기를 맞고 있다. 거룩한 영향을 줄 수 있는 교회, 영적 리더십을 가진 존경받는 주의 종, 그리고 세상으로부터 인정받는 성도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현실을 보며 낙망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의 교회는 과거의 교회와 과거의 선배들이 남겨놓은 교훈을 배워야 한다. 거룩한 영향력을 끼친 믿음의 선배의 삶을 본받아야 한다. 그중의 한 사람이 바로 임학수 목사다. 임학수 목사는 조용하지만 분명한 흔적을 남긴 주의 종이었다. 그래서 임학수 목사의 성품, 인격, 신앙을 포함한 삶은 오늘을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큰 도전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소논문은 이러한 목적을 위해 연구되었다. 이제부터 일평생 단 한 번도 경안노회를 떠나지 않고 충성을 다한 믿음의 대선배인 임학수 목사가 걸어간 거룩한 구원사역의 흔적을 찾아보도록 하자. 1. 임학수, 믿음의 조상이 되다 임학수는 1884년 6월 23일 부친 임보현과 모친 정덕희 사이에서 장남으로 안동군 녹전면 매정리(일명 갈골)에서 출생했다. 임학수는 1894년 박계남과 결혼하여 임상경, 임상교 남매와 손자 1명과 손녀 4명을 두었다. 1911년 10월 23일, 임학수는 매정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 그의 모친은 1913년에, 처는 1916년에, 장남은 1922년에 매정교회에서 각각 세례를 받았다. 임학수가 복음을 받아들이고 난 후에 모든 식구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임학수는 한 가문에 있어서 믿음의 조상과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매정교회를 섬기던 임학수 가정은 1923년 5월 10일 안동교회로 이명했다. 임학수 목사의 장남 임상경은 안동교회에서 장로의 직분을 받았으며, 오랫동안 제직회 서기, 당회서기로 봉사했다. 자부인 강신덕은 교회학교 교사, 청년회, 성가대에서 헌신했다. 임학수 목사의 장남 임상경은 부산 거성교회를 섬겼다. 장녀 임상교는 대구 신암교회 권사로, 손자 임재오는 거성교회 장로로 시무했으며, 친손녀 임순오는 부산 수영로교회 권사로, 임양자는 안동교회 집사로, 임화자는 서울 밀알교회 집사로 헌신하고 있다. 이처럼 임학수 목사의 후손은 뿌리 깊은 믿음의 가정으로 어디서나 주님의 교회에 헌신하는 일꾼들이 되었다. 그만큼 임학수 목사는 목사로서의 삶도, 부모로서의 삶도, 또한 인간으로서의 삶도 모자람이 없는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다. 2. 예수 믿기로 결단하다 임학수는 1909년 안동에서 한 선교사의 전도를 받아 예수를 믿기로 결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사실을 권정국 장로는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1905년 약관의 나이로 과거시험에 합격하여 궁내부 주사로 왕실에서 근무했지만, 관직을 그만두고 선비로 후학을 가르치기 위해 낙향하여 제자들을 가르치던 중 한마을에 살고 있던 임경수와 함께 안동읍에 나갔다가 선교사를 만나 전도를 받고 예수를 믿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임학수는 당시 안동선교부의 소텔 선교사를 만나 예수를 믿게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선교사가 전한 복음을 받아들인 임학수는 자신의 상투를 자르고 예수를 믿게 되었다. 임학수가 상투를 잘랐다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다시는 예수를 모르는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결단이었다. 예수 믿기로 결심한 임학수는 완전히 변해 있었다. 크고 작은 개울과 강을 무려 9번이나 건너야 하는 영주 내매교회를 다녔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추운 정월 초하룻날 120Km나 떨어진 대구에서 열린 사경회에 참석하였다. 당시 안동에서 대구까지는 3일 길로 눈보라가 치는 추운 겨울에는 더 오래 걸렸다. 그럼에도 말씀에 목말랐던 그는 춥고 험한 길을 마다 않고 집을 떠날 정도의 열정이 있었다. ▲임학수 목사의 아들 임상경 장로 회갑기념. 3. 고향 매정에 교회를 설립하다 당시 매정에는 교회가 없었기 때문에 임학수는 임도현, 임경수와 함께 매정에서 20여 리 길인 영주 내매교회를 찾아 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마을 주민들에게 전도하여 믿는 자들이 생겨나자 이들은 처음으로 신효균의 사랑방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임학수는 신효균, 임도현, 임경수와 함께 1909년 9월 9일 매정교회를 설립했다. 기록에 따르면 임학수 임경수 두 사람의 마을 전도로 몇 달 만에 무려 70여 명이 예수를 믿고 교회를 건축하고 예배를 드렸다고 한다. 임학수, 임도현, 임경수가 함께 건축한 첫 예배 처소는 4칸짜리 초가집이었다. 이제는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는 소리가 매 주일마다 매정에서도 울려 퍼지게 되었다. 매정교회의 설립은 임학수가 예수를 영접한 이후 그가 얼마나 구원의 감격과 열정을 갖고 살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그는 예수를 만난 이후 세상적인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의 참된 제자로 살았다. 교회가 설립됨으로써 매정의 복음화도 가속되게 되었다. 임학수는 매정이라는 마을의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이다. ▲임학수 목사의 손자 임재오 장로 장로장립(부산거성교호회). /논문 발췌‧정리=박은숙 기자/<논문 원본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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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역사사적지를 찾아서(3) - 부산 초량교회예장합동 한국기독교역사사적지 제2호한강 이남 최초의 교회 ▲영남 지역의 모(母) 교회 부산 초량교회 전경. ▷127년의 역사 … 민족의 수난과 아픔을 함께하다 부산 초량교회는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에서 파송한 윌리엄 베어드 선교사가 1892년 11월 설립한 부산지역 및 한강 이남 최초의 교회다. 영서현교회, 영주동교회, 초량삼일교회 등의 이름을 거쳐 현재 명칭으로 정착했다. 초량교회는 일제 강점기에 중국 상하이 임시정부와 광복군을 후원하고, 1932년 처음으로 개척한 산리교회 예배당에서 비밀리에 회합하며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추진하는 등 독립운동에 앞장선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정덕생 주기철 이약신 한상동 등 담임목사와 방계성 장로, 조수옥 전도사 등이 옥고를 치르거나 목숨까지 잃는 등 애국 신앙을 보여준 산 표본들로 기억되고 있다. 또한, 초량교회는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임시수도로 정해진 부산으로 찾아온 수많은 피난민들에게 위로와 안식의 처소가 되어주었다. 교회 유치원은 휴원했고 뜰과 마당은 온통 천막으로 덮였다. 그해 여름 초량교회에서 전국의 목회자와 성도가 국난 극복을 위한 통회구국기도운동을 전개했고, 기도가 끝난 9월 15일 기적처럼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했다. 초량교회는 1992년 설립 100주년을 기념해 교회 안에 역사관을 설립했다. 설립자 베어드 선교사의 사진과 주기철 목사의 유물 등 한국 기독교 역사에 중요한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한국기독교역사사적지 제3호 지정 대한예수교장로회 예장합동 교단은 지난 제102회 총회에서 역사적·선교사적·민족사적·교단적 측면에서 의미가 큰 초량교회를 한국기독교역사사적지 제3호로 지정했다. ▲초량교회 역사관에 있는 주기철 목사 재임 당시 강대상.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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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노회, 임희국 교수 초청 ‘설교세미나’ 열려영주노회 농어촌선교부 ‧농어촌목회자협의회 주관 세미나 영주노회 농어촌선교부와 농어촌목회자협의회는 지난 11월 12일(화) 영주 장수교회(담임목사 강성효)당에서 임희국 교수(서울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를 강사로 초청해 ‘설교세미나’를 개최했다. 임희국 교수는 ‘성경과 루터’를 주제로 강의했으며, 1517년 루터가 로마서를 읽으면서 로마서를 쓴 바울에게 역사했던 성령이 루터에게도 똑같이 역사해서 하나님의 말씀 곧 복음을 깨우친 사실에 주목했다. 임 교수는 “루터의 설교는 삶과 분리된 설교가 아니라 삶이 곧 설교였다”고 강조하며,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에 문자로 기록되어 있으나, 항상 ‘입’으로 ‘살아있는 이야기’로 선포되어야 하며, 우리의 설교에도 루터처럼 체험적 신앙이 필요하다”고 결론지었다. 우병백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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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경서노회 남선교회연합회 찬양제10월 26일 구미영락교회당에서 ▲황금동교회 찬양팀이 ‘은혜 위에 은혜’ 곡을 부르고 있다. 예장(통합) 경서노회 남선교회연합회(회장 이병섭 장로)는 지난 10월 26일(토) 오전 10시 구미영락교회(박근호 목사 시무)당에서 ‘제2회 경서노회 남선교회연합회 찬양제’를 개최했다. 1부 예배는 이병섭 회장의 인도로 드려졌으며 경서노회 부노회장 서정호 장로의 기도 후 박근호 목사(구미영락교회)가 ‘제7의 찬양’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이어 수석부회장 김명환 장로의 인사, 설교자의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2부 찬양제는 총무 김광현 장로의 사회로 진행됐으며, 순서에 따라 구미시민교회 찬양팀의 ‘주님의 크신 은혜’, 구미영락교회 야긴과 보아스 찬양팀의 ‘주님 곁에 있을 때’, 상주교회 찬양팀의 ‘이제야 돌아봅니다’, 송곡교회 찬양팀의 하모니카 연주, 점촌시민교회 찬양팀의 ‘날마다 숨쉬는 순간마다’, 황금동교회 찬양팀의 ‘은혜 위에 은혜’, 대광교회 강중규 집사의 ‘You raise me up’, ‘십자가의 길’ 색소폰 연주가 있었다. 찬양제에 참가한 모든 찬양팀은 하나님께 받은 은혜와 감격을 기쁨으로 노래했으며, 참가 인원의 많고 적음을 떠나 정성껏 준비한 찬양을 최선을 다해 부르는 모습에 참석한 성도들은 은혜와 감동을 받았다. 한편, 구미영락교회에서는 이날 기획위원회와 선교사회위원회 주관으로 ‘영락 프리마켓 & 전시회’ 행사가 같이 진행돼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선교사역을 펼쳐졌다. ▲연합회 임원과 내빈들의 기념촬영. 박은숙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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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기성내교회, 제32회 선교바자회 열어예장(통합) 영주시 풍기성내교회(위임목사 최효열)는 지난 10월 11일(금) 오전 8시 30분~오후 3시까지 선교바자회를 열었다. 이 바자회는 지금까지 32년 동안 지속하여 왔다. 바자회의 핵심 목적은 지역사회인 풍기읍내 주민들과 사랑의 교제를 나누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자 함이며, 수익금 전액은 국내외 선교를 위해 사용되고 있다. 바자회를 위해서는 모든 교우들이 헌신적으로 준비했다. 바자회에는 김, 미역, 멸치, 오징어포, 김밥, 국수, 팥죽, 도토리묵, 수수전, 떡볶이, 약식, 부침, 닭튀김, 차 종류, 참기름, 딸기잼, 청국장 등 다양한 먹거리와 헌 옷 등이 판매됐다. 선교위원장 김학란 장로는 “모두가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고자 기쁘게 일하는 모습에 감사한 하루였다”고 말했다. 우병백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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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기도회, 11월 1일~21일 “열방을 위해 함께 기도”초교파적 1만3천 교회 동참 … 전세계 40만 성도 함께 기도 복음의 열정과 기도의 열기가 점점 식어가는 이 때, 다시 한 번 하나님께 부르짖고 부흥의 열정을 회복하겠다고 다짐하는 뜨거운 기도의 불길이 일어나고 있다. ‘21일간 열방과 함께하는 2019 다니엘기도회’가 지난 11월 1일 기도회의 모태가 되는 오륜교회(김은호 목사)에서 막이 올랐다. ‘다니엘기도회’란 이 땅의 영적인 회복을 꿈꾸는 연합기도회로 매년 11월 1일~21일 열방의 각 교회 현장에서 인터넷 생중계로 참여하는 기도회다. 올해는 국내외 1만3천 교회, 40만 명 성도들이 동참한 것으로 집계됐다. 첫날이었던 1일은 경남 지역을 위한 날로 경남 지역 교회들의 기도 제목이 각지로 송출되고 함께 기도했다. 첫날 강사로 나선 오륜교회 김은호 목사는 ‘영적 기념비를 세우라’는 주제로 말씀을 선포했다. 김 목사는 “마가 다락방에 모인 120명의 성도들이 자신의 사상과 이념을 내려놓고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전념했을 때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다”며 “기도회 기간 동안 온전히 기도에 힘을 쏟는다면 각자의 인생에 분명한 영적‧역사적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은호 목사를 시작으로 21일간 진행된 기도회에는 박상원 선교사(에스와티니 선교사), 이상구 박사, 최철규 집사, 류정길 목사, 김관성 목사, 오롬비 목사, 오은주 집사, 자두 사모(가수), 현승원 대표, 최려나 성도 등이 다양한 말씀과 간증으로 기도회를 인도했다. 마지막 날인 21일은 간증의 밤으로 진행된다. 한편, 1998년 시작된 다니엘기도회는 2003년부터 교단과 교파를 초월해 동참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했으며, 시설이 열악한 작은 교회에는 방송 송출 장비를 지원하는 등 연합과 부흥의 사역을 이어가고 있다. 박은숙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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