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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시, 코로나19로 중단됐던 농업인교육 재개토양비료 및 작물생리반 새롭게 편성 ▲지난해 사과핵심리더반 실습 교육 현장 모습. 포항시는 코로나19로 잠정중단 됐던 농업인교육을 ‘포항시농업인대학 사과기초반’을 시작으로 20일 재개한다. 포항시농업기술센터는 지난 2월부터 새해농업인실용교육, 농업인대학, 귀농귀촌, 청년농부, 떡 제조기능사, 복지원예전문가, 농촌전통문화학교, GAP교육, 농기계교육 등 23개 과정 15,070명의 농업인교육을 추진할 계획이었으나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잠정 연기하였으며, 이달부터 △포항시농업인대학 △귀농귀촌 아카데미 △청년농부 아카데미 등을 순차적으로 진행할 방침이다. ‘포항시농업인대학’은 사과기초반, 사과핵심리더반, 농식품가공반, 한우반으로 4개반이 개설되었으며, 총 178명의 신입생이 입학했다.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신입생 입학식은 생략하며 4개 과정 모두 이론 및 실습수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특히 올해는 포항시농업인대학 심화과정으로 토양비료반과 작물생리반을 새롭게 편성하여 과학영농의 기본인 토양과 식물재배학 수강을 통해 토양관리와 영양관리에 필요한 체계적인 교육을 추진할 계획이다. 또한 지난해에 이어 추진하는 복지원예전문가 양성과정은 원예치료를 통해 장애인, 어르신을 포함한 다양한 계층의 정서치료와 재활을 돕는 복지원예사 자격증 취득을 지원하는 교육도 실시한다. 포항시 최상훈 농촌지원과장은 “내실 있고 수준 높은 강사로 농업인교육을 구성해 영농현장의 애로기술을 해결하고 경영비 절감, 고품질 농산물 생산, 경영능력향상, 전문농업 CEO양성, 전문성 극대화 등에 기여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이예진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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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실시간 쌍방향 수업으로 즐거운 랜선 교실 만들기온라인 개학 학교 탐방 시리즈 7’ 북삼초등학교 탐방 경북교육청(교육감 임종식)이 학교별 원격수업 우수사례를 소개하는 ‘온라인 개학 학교 탐방 시리즈’ 일곱 번째로 찾아간 학교는 칠곡 북삼초등학교이다. 칠곡 북삼초등학교(교장 이계숙)는 칠곡군 북삼읍에 있으며 36학급 전교생 851명, 교직원 81명의 학교로 원격수업 선도학교를 운영 중이다. 칠곡 북삼초는 새 학기 준비주간인 2월 셋째 주에 모든 학급이 모바일 학급 홈페이지를 구축했으며 교사를 대상으로 정보화 역량 강화 연수를 진행해 온라인 학습의 기반을 구축했다. 모바일 학급 홈페이지를 기반으로 학부모에게 온라인 가정통신문으로 원격수업에 대한 소식을 안내하고, EBS 콘텐츠와 e학습터 학습 자료를 제공하는 수업을 신속히 적용했다. 모든 학급 학생들은 ZOOM으로 만나서 학생들의 건강 확인, 지난 학습에 대한 질문, 오늘 학습에 대한 안내, 공지사항 전달 등을 하고, 대부분의 학생이 랜선(온라인) 학급에 입장해 수업에 참여한다. 일부 교과는 유튜브 라이브 수업을 실시간으로 진행하고 있다. 교사가 크리에이터와 유사하게 진행을 하고, 학생들은 실시간 채팅으로 수업에 질문하거나, 교사의 발문에 응답한다. 수업에 참여한 6학년 서◯록 학생은 “원격으로 수업을 하는데 실제로 교실에서 수업하는 것처럼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며 실시간 쌍방향 수업에 대한 의견을 남겼다. 수업 종료 후 모바일 학급 홈페이지로를 통해 제공되는 과제로 학생들에게 신속한 피드백을 제공하고 있으며 객관적인 성취도 분석을 바탕으로 개별화 지도에도 노력하고 있다. 특히 AI 분석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교육용 앱(클래스팅 AI)을 활용함으로써 학생 개인별 정확한 수준을 진단하고 원격수업에 활용하고 있다. 이용만 유초등교육과장은 “실제 교실의 모습을 온라인으로 학생들에게 제공해 줄 수 있는 실시간 쌍방향 수업을 정착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방안을 마련하고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이예진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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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교육청, 전국 최초로 실시간 유튜브 교실 운영유튜브에서 ‘경북교육청 실시간 수업 검색’ 10시부터 시작 경북교육청(교육감 임종식)은 코로나19로 각급 학교의 개학이 23일로 연기됨에 따라 학생들의 학습 공백을 막고 자기 주도적 학습 지원을 위해 전국 최초로 실시간 유튜브 수업을 시작했다고 5일 밝혔다. 경북교육청은 학생들의 학년 수준에 맞는 다양한 온라인 학습 사이트와 자료 제공을 통한 학습 지원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유튜브 채널을 활용해 생방송으로 수업을 진행한다. 실시간 유튜브 수업은 수학 교과를 대상으로 지난 3일 오전 10시부터 학년별로 각 1시간씩 진행한다. 유튜브 검색창에 ‘경북교육청 실시간 수업’을 검색하거나 학교 홈페이지 팝업창 안내를 통해 참여할 수 있으며, 수업 동영상은 언제든지 다시보기도 가능하다. 유튜브 수학 수업은 도내 수학 교과 수업 전문가 교사가 직접 디지털 교과서와 수학 교구 등을 활용해 다양한 방법으로 진행한다. 지난 3일 10시 첫 수업 이후 참여 학생 수가 급격하게 증가했으며 다시보기 재생 수도 3,000회를 넘어가면서 반응이 뜨겁다. 실시간 유튜브 수업에 참여한 한 학생은 “선생님과 이야기하듯 마치 교실에서 공부하는 것 같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공부하니 더 재미있고 다음 수업이 기다려진다”고 소감을 밝혔다. 경북교육청은 실시간 유튜브 수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앞으로 실시간 유튜브 수업을 희망하는 학년에 50만 원, 학급에 20만 원의 운영비를 지원한다. 더 나아가 실시간 유튜브 수업을 위한 방법 등을 공유하고, 전문가가 직접 운영을 돕도록 할 계획이다. 다음 주에는 수학 수업에 이어 놀이, 만들기 등 학생들이 좋아하는 콘텐츠로 실시간 수업을 더 확대할 계획이다. 임종식 교육감은 “크리에이터가 꿈인 요즘 학생들의 특성을 반영하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유튜브를 통해 개학 연기에 따른 학습 공백을 최소화하고 학생들의 학습 관리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이예진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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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노회남전도회연합회, 제23회 정기총회신임회장 이준욱 장로 취임 ▲구미노회남전도회연합회 제23회 정기총회가 1월 21일 오후 7시 구미새로남교회당에서 개최됐다. 예장합동 구미노회남전도회연합회(회장 박광기 장로)가 1월 21일 오후 7시 구미새로남교회(김용은 목사 시무)당에서 제23회 정기총회를 열고 신임회장에 이준욱 장로를 추대했다. 총회에 앞서 명예회장 이관구 장로의 사회로 드려진 1부 예배에서는 김용은 목사(구미새로남교회)가 ‘일상천국’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김용은 목사는 “우리는 가장 가치 있는 복음을 가진 자이다. 보화를 발견했을 때 모든 것을 다 팔아 그 땅을 샀던 농부처럼, 내가 있는 이곳이 하나님이 감추어두신 천국임을 깨닫고 삶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일상 천국을 누리는 회원들이 되기를 바란다”고 권면했다. 이어진 축하 시간에는 안재호 목사가 격려사, 전국남전도회연합회장 홍석환 장로‧대경남전도회연합협의회장 김영태 장로가 축사를 했다. ▲신임회장에 취임한 이준욱 장로 신임회장에 취임한 이준욱 장로는 “지금까지 이끌어주신 증경회장단께 고맙고 감사하다”며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해 임원진과 연합회를 섬기겠다. 주님의 은혜 가운데 잘 감당하도록 기도와 협력을 부탁한다”고 인사했다. 한편, 제22회기 남전도회연합회는 지난해에 필리핀 팔라완 이나가완 구미남전교회를 건축했으며, 미자립교회 돕기 사업, 순회헌신예배, 장학금 지급, 진중세례식, 선교 부흥집회 등을 통해 선교 사역을 펼쳤다. ▲정기총회를 마치고 내빈과 신임임원, 증경회장단의 기념촬영. 이예진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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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시, 월급 받는 청년농부 육성으로 농촌에 활력을!‘월급 받는 청년농부제사업’ 참여 희망 법인 모집 안동시가 오는 15일까지 ‘월급 받는 청년농부제사업’ 참여를 희망하는 법인을 모집한다. ‘월급 받는 청년농부제사업’은 청년들의 농업 분야 신규인력 유입촉진과 성공적인 영농정착 동기부여로 젊은 인력의 농촌진입 활성화 촉진을 위한 경북형 청년농부 일자리 사업이다. 지난해 처음 시작해 농업법인과 미취업청년들을 매칭, 청년들에게는 일자리를 제공하고 법인에는 인건비를 지원해 청년과 법인 모두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참여 청년들은 향후 2년간 생산, 가공, 유통, 판매 등 실무를 익히고 향후 농업창업에 필요한 역량과 값진 경험을 쌓게 된다. 지원 자격은 법인설립 후 운영 실적이 1년 이상, 총 출자금 1억 원 이상인 농업법인으로, 6차 산업 인증 경영체와 청년대표 법인은 선정 시 가점이 부여된다. 안동시청 홈페이지(www.andong.go.kr)에서 신청서, 계획서 등을 내려 받아 작성 후 농정과에 방문 제출하면 된다. 안동시 관계자는 “사업 참여 희망법인 선정 후 참여 청년도 별도로 모집계획이며, 취업난을 겪고 있는 청년들에게는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농업법인에는 인력지원으로 경영난 해소에도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이예진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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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녹색미래과학관과 함께 성장하는 자유학기제 메이커 체험2019년 무한상상실 자유학기제 메이커 체험학습 인기 최고 김천시(시장 김충섭) 녹색미래과학관은 무한상상실 자유학기제 메이커 체험이 5년 째 성공적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올해는 경북 10개 시군 23개 학교에서 1,500여 명이 참가하여 다양한 체험활동을 학습했다. 2013년 교육부에서 시작한 자유학기제는 중학교 과정 중 기존의 교과수업을 벗어나 진로탐색 활동, 주제선택 활동, 예술·체육활동, 동아리 활동 등을 할 수 있는 학생 중심의 교육과정이다. 과학관에서 운영하고 있는 무한상상실 메이커 체험을 통해 학생들은 자유롭게 꿈과 끼를 발산하고 적성과 진로를 찾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김천녹색미래과학관에서는 연초 무한상상 국비 공모사업비(1억 2천만 원)를 확보했으며, 사업비로 운영되는 자유학기제 체험프로그램은 인공지능 로봇 체험, SW개발, 3D프린팅, VR콘텐츠 크리에이터, 목공공방, EM생활공방 6개 과목으로 구성되며 한 학생당 2과목을 선택해 체험할 수 있다. 이처럼 학생들이 관심 있어 하는 과목을 직접 선택하여 체험함으로써 자기주도적인 학습이 가능하도록 수업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메이커 체험과 더불어 4D풀돔 및 상설전시관을 관람할 수도 있어 학생들뿐만 아니라 지도교사들도 만족하고 있다. 김천시 정보기획과 정세영 과장은 “김천녹색미래과학관은 무한상상실 경북거점센터로 자유학기제뿐만 아니라 초, 중, 고등학생들의 동아리 활동, 진로체험활동 등도 지원하고 있으니 많은 참여를 부탁드린다”며, “앞으로 더욱 다양한 교육프로그램 개발로 학생들의 체험활동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예진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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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학 목사의 논문원문(6) - 안동지역 최초의 순교자, 소텔 선교사안동지역 최초의 순교자, 소텔 선교사 김승학 목사 신학과 교수/기독교교육학 안동교회 담임목사 소텔 선교사 Chase C. Sawtell, 1881-1909) 남북 전쟁이 끝났을 때 미국은 분열된 상태였다. 1865년부터 1918년까지의 미국의 역사는 남북 전쟁 후에 미국 재건이 시작되어, 산업화가 진전된 시대였다. 사회의 급격한 변화로 많은 노동조합이 탄생했고 파업이 이어졌다. 특히 약 50여 년 동안(1865년~1918년) 유럽을 중심으로 다른 대륙에서 2,750만 명이나 되는 이민자가 미국으로 몰려들어 저렴한 노동력을 제공했고, 캘리포니아 주(州)와 같이 개발되지 않은 지역에 다양한 지역사회가 형성됐다. 대부분의 인디언 부족은 작은 거류지로 이주 당했고, 백인 농장주와 목장주의 소유가 되었다. 공장 노동자는 학대와 폭력에 시달렸고, 그것에 수반하여 노동 운동을 낳게 되었다. 이러한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소텔(史佑大, Chase Cranford Sawtell) 선교사는 1881년 1월 9일, 네브라스카(Nebraska) 주(州) 소재 티케이마(Tekamah)에서 출생했다. 그는 환경이 좋지 못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주의 종(從)으로 불러 선교사로 보내시려고 했을 때 소텔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무조건 순종했다. 네브라스카 주의 밸리뷰(Bellevue) 대학을 졸업한 소텔은 오마하(Omaha) 신학교에 입학하여 1907년 졸업했다. 그 해 목사 안수(按手)를 받고 파송 받아 1907년 10월 16일 한국에 도착했다. 소텔 선교사 부부는 처음에 대구선교부에서 사역을 시작했다. 여러 면에서 뛰어난 재목이었던 그는 대구선교부에 있던 선교사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1908년 안동선교부가 신설되었을 때 소텔 선교사는 자원(自願)하여 대구보다 열악한 환경인 안동 땅으로 이사했다. 안동선교부의 초대 주재 선교사가 된 그는 헌신했다. 특히 1909년 11월 16일 순교하기 전 까지 1년 동안 그를 통해 안동 땅에 의미 있는 전도와 새신자 양육이 이루어졌다. 복음전도의 전형적인 패러다임(paradigm)인 양육, 파송, 전도를 통해 안동지역 부흥의 기초를 마련했다. 하지만 소텔 선교사는 풍토병인 장티푸스에 걸려 28세의 젊은 나이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소텔 선교사는 무려 109년 동안 한국교회 속에서 잃어버린 선교사였다. 이 글을 통해 우리의 뇌리 속에서 잊혀진 소텔 선교사의 삶과 사역을 살펴보고자 한다. 1. 소텔 선교사의 가정(家庭) 소텔 선교사는 1881년 1월 9일, 미국 네브라스카(Nebraska) 주(州) 소재 티케이마(Tekamah)에서 출생했다. 소텔의 아버지는 웨스트 버지니아(West Virginia) 주에서 출생한 해리 소텔(Harry C. Sawtell)로 그는 세 번 결혼했는데, 소텔 선교사는 두 번째로 결혼한 제시 소텔(Jessie D. Sawtell)에 의해 출생했다. 제시 소텔은 소텔 선교사와 리트를 낳았다. 소텔 선교사의 동생인 리트는 몬타나(Montana) 주 아나콘다 시에서 척추 전문의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텔 선교사의 부친은 1885년, 티케이마 북쪽으로 약 13Km 떨어진 실버 크릭(Silver Creek)으로 이사했다. 이곳에서 소텔의 부친은 농사를 지었다. 그러다가 어떤 이유인지는 알 수 없지만 오하이오(Ohio) 주의 댄빌(Danville)로 이사해 살기도 했다. 9세인 1900년, 소텔의 가정은 1870년에 거주한 적이 있던 아이오와(Iowa) 주 드모아 카운티 덴빌에서 살았다. 이 때 소텔 선교사 부친의 직업은 여전히 농부였는데, 상대적으로 다른 농부에 비해 가난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세기 미국의 농업은 현저한 발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토지의 피폐, 자연 재해, 자급자족 비율 감소와 연방 정부의 적절한 법적 보호와 지원의 부족 등으로 농부들의 삶은 지처 있었다. 일반적으로 19세기 미국 소작농의 대다수는 빚에 쪼들렸고, 유일한 탈출구는 수확량을 높이 과잉 생산이었으나 과잉 생산은 판매 가격 하락과 소득 감소로 이어졌고, 그 결과 토지는 피폐하고 토지 소유자나 소작농 모두가 가난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따라서 다른 농부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빈곤했던 소텔의 가정은 가난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소텔 가정은 다시 네브라스카 주의 오마하(Omaha)로 이주했고, 그 이후에는 오마하 인근에서 계속 거주했다. 소텔 선교사가 한국으로 오기 전인 1907년 3월 5일에 작성한 미국 장로교 해외 선교부에 제출한 선교사 지원서에 따르면 그의 주소는 오마하 노스(North) 21가 3303번지였다. 따라서 성장한 이후 소텔 생활의 중심 무대는 네브라스카 주의 오마하라고 할 수 있다. 네브라스카 주 티케이마에서 출생한 소텔 선교사는 웨스트 버지니아, 몬타나, 오하이오, 아이오와 주를 전전하다가 오마하에 정착하였던 것이다. 소텔 가정은 믿음의 가정이었다. 비교적 자주 이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착한 지역에 있는 교회에 등록하고 출석했기 때문이다. 2. 소텔 가정의 신앙(信仰) 대구와 경북지역에서 선교 사역을 감당한 선교사의 삶과 사역을 추적하여 연구하고 있는 손상웅 목사에 의하면 소텔이 최초로 섬긴 교회는 네브라스카 주의 티케이마 교회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는 것이다. 여렸을 때 소텔은 여러 주(州)를 옮겨 다니며 생활했다. 4살 때인 1885년, 소텔의 가정은 티케이마에서 실버 크릭(Silver Creek)으로 이주했다. 소텔은 시골의 작은 교회인 실버 크릭(Silver Creek) 감리 교회에서 1897년 11월, 낙스 본디(Knox Bonde) 목사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당시 실버 크릭에는 장로교회가 없었기 때문에 그의 가정은 감리교회를 다닐 수밖에 없었다. 소텔의 누나도 이 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것으로 보아 소텔 가정이 실버 크릭으로 이사 온 이후 온 가족이 모두 실버 크릭교회에 출석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리고 1861년 1월 11일, 공식적으로 오마하 제2장로교회(The Second Presbyterian Church of Omaha City)로 명명되었다가 1888년 4월, 오마하 제1장로교회(The First Presbyterian Church of Omaha)로 변경되었다. 따라서 소텔이 오마하로 이사해 교회를 정하고 등록할 당시는 교회 이름을 변경하기 이전(以前)이었기 때문에 오마하 제2장로교회가 옳다고 할 수 있다. 참고로 오마하에는 1867년에 설립된 또 다른 교회가 있었다. 이름은 오마하 중앙장로교회(Central Presbyterian Church)로 당시 해외선교를 특별히 강조하는 교회였다. 제1장로교회와 중앙장로교회는 오마하의 대표적인 교회로 교회가 설립된 이래 오마하 지역 교회들의 중심교회였다. 그러나 두 교회는 1950년대 최고로 성장했다가 쇠퇴하기 시작했다. 1917년 3월 11일에 준공된 오마하 제1 장로교회의 모습으로 1959년엔 교회 역사상 최고로 2188명이 등록하고 있었다. 타개책을 모색하던 두 교회는 2014년 합병(合倂)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하 내용은 논문원문 첨부파일 참조)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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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군, 서울광장서 영양고추 H.O.T Festival 성황리 종료대한민국의 심장 영양고추의 매력에 빠졌다 경북 영양군(군수 오도창)이 개최한「2019 영양고추 H.O.T Festival」이 ‘퍼뜩 오이소! 영양고추 캡사이신입니더~’라는 주제로 지난 8월 27일부터 8월 29일까지 3일간 대한민국의 심장인 서울광장에서 개최됐다. 군에 따르면 이번 행사기간 3일 동안 12만 여 명의 관람객과 소비자들이 행사장을 찾았으며, 농·특산품 판매 20여 억 원의 매출 및 4~5억 여 원의 생산자 직거래 주문을 받았다. 올해는 서리피해와 고추수확 시기가 늦어져 예년보다 판매물량이 적어 현장에서 구매를 못하고 예약 주문한 소비자가 많았다. 「2019 영양고추 H.O.T Festival」은 2007년부터 고추라는 단일 농산품을 테마로 서울광장에서 시작한 통합마케팅 행사로서 대도시 소비지에서 개최하는 영양군의 청정 농·특산물 직거래 판촉행사다. 개최 초기에는 소비자를 찾아가는 축제로부터 출발했으나 해를 거듭해 오면서 현재는 수도권 소비자가 가장 기다리는 도·농상생의 한마당 큰 장터로 굳건하게 자리 잡았으며 올해도 역시 알차고 내실 있는 짜임새로 도시민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전시·체험 부스에서는 김치 담그기 체험, 전통 농기구 체험 등 다양한 전시·체험관을 운영해 관람객들과 함께 소통하는 축제의 장을 제공했으며, 소비자들의 구매물품을 지하철역 및 버스정류장까지 배달해주는 배달 도우미, 쾌적한 쇼핑 환경을 위한 그늘막 설치, 관광객 쉼터 조성 등을 통하여 판매 농가와 소비자들의 뜨거운 호응을 이끌어냈다. 또한, 농·특산품을 구입한 소비자에게 사은품으로 200g 시식용 홍고추 도시락을 제공함으로써 직접 고객 확보 및 영양고추 홍보효과를 높이는 계기가 됐다. 생방송 특집으로만 편성한 「KBS 6시 내고향」에서는 고추 관련 음식 시연과 축제 현장부스 소개, 주부모임 장보기체험 등 축제장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주어 전국에 「2019 영양고추 H.O.T Festival」의 열기를 전했다. 오도창 영양군수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영양고추 핫페스티벌이 생산농가와 도시 소비자 모두에게 서로 윈윈(win-win)하는 도·농 상생의 모범적인 사례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되었다”며 “내년 행사는 올해 미비했던 점을 보완해 천만 서울 시민과 수도권 주부들에게 정직하고 우수한 품질의 농·특산물을 제공하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으며,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는 영양고추가 될 수 있도록 순박한 농부의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예진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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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일만 크루즈 선상 포항물회 축제’ 개최영일만 밤바다 선상 불꽃쇼와 포항물회 설머리 물회지구 운영위원회는 오는 9월 7일 포항영일만크루즈 선상에서 ‘제2회 포항물회 축제’를 개최한다. 이날 행사는 지역 관광자원과 연계하여 영일만 밤바다와 야경으로 이루어진 먹거리 관광을 홍보하고, 청년 농부와 연계한 지역 농수산물 판매와 더불어 6차산업의 경쟁력 강화에 목적을 두고 있다. 포항 설머리 물회축제의 시작은 설머리 물회 우수 외식업지구 운영평가에서 대상을 받은 시상금으로 시작되었으며, 포항시와 설머리 물회지구 운영위원회 손휘준 회장 및 21개 업소 전 회원들이 올해 2회 행사를 성황리 개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영일만크루즈 선상에서 이루어지는 이번 행사의 1층에서는 포항물회 만들어 먹기 체험 및 시식행사, 2층에서는 컵물회 시식회 및 지역농수산물 판매를 위한 청년농부 파머스 마켓과 수산물 가공식품 마켓이 운영되고, 3층에서는 지역 곡주 시음과 더불어 해와 달을 상징하는 선상 포토존을 마련하여 관광객에게 ‘다시 찾고 싶은 포항!’과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재미를 더할 예정이다. 이외에도 참여객에게 포항물회 무료 시식, 포항물회 무료쿠폰 증정, 회 즉석 경매 등 다양한 공연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으며, 영일만크루즈 불꽃쇼는 3만원에서 크루즈 승선비 2만 원으로 할인하여 판매하고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손휘준 설머리 물회지구 회장은 “지역의 관광자원인 영일만크루즈와 연계하여 포항물회를 선보이고 지속적으로 판매할 수 있도록 협약도 하기로 했다”며 “이번 행사를 통해 포항물회가 지역 경제를 살리는 먹거리 콘텐츠가 되길 희망하고 다양한 행사를 통해 포항물회를 전국으로 널리 알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이예진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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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지역 최초의 순교자, 소텔 선교사(1)한국기독역사의 발자취(6)김승학 목사 논문 연재(6)- 소텔 선교사(1) 김승학 목사 신학과 교수/기독교교육학 안동교회 담임목사 소텔 선교사 Chase C. Sawtell, 1881-1909) 목차 1. 서론 2. 소텔 선교사의 가정(家庭) 3. 소텔 가정의 신앙(信仰) 4. 소텔 선교사의 소명(召命) 5. 소텔 선교사의 성품(性品) 6. 소텔 선교사의 파송(派送) 7. 소텔 선교사의 사역(使役) 8. 소텔 선교사의 순교(殉敎) 9. 소텔 선교사의 부인, 캐더린 10. 캐더린 선교사의 특별한 공헌(貢獻) 11. 결론 1. 서론 남북 전쟁이 끝났을 때 미국은 분열된 상태였다. 1865년부터 1918년까지의 미국의 역사는 남북 전쟁 후에 미국 재건이 시작되어, 산업화가 진전된 시대였다. 사회의 급격한 변화로 많은 노동조합이 탄생했고 파업이 이어졌다. 특히 약 50여 년 동안(1865년~1918년) 유럽을 중심으로 다른 대륙에서 2,750만 명이나 되는 이민자가 미국으로 몰려들어 저렴한 노동력을 제공했고, 캘리포니아주와 같이 개발되지 않은 지역에 다양한 지역사회가 형성됐다. 대부분의 인디언 부족은 작은 거류지로 이주당했고, 백인 농장주와 목장주의 소유가 되었다. 공장 노동자는 학대와 폭력에 시달렸고, 그것에 수반하여 노동 운동을 낳게 되었다. 이러한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소텔(史佑大, Chase C. Sawtell) 선교사는 1881년 1월 9일, 네브라스카주 소재 티케이마에서 출생했다. 그는 환경이 좋지 못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의 종으로 불러 선교사로 보내시려고 했을 때 소텔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무조건 순종했다. 네브라스카 주의 밸리뷰 대학을 졸업한 소텔은 오마하 신학교에 입학하여 1907년 졸업했다. 그해 목사 안수를 받고 파송 받아 1907년 10월 16일 한국에 도착했다. 소텔 선교사 부부는 처음에 대구선교부에서 사역을 시작했다. 여러 면에서 뛰어난 재목이었던 그는 대구선교부에 있던 선교사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1908년 안동선교부가 신설되었을 때 소텔 선교사는 자원하여 대구보다 열악한 환경인 안동 땅으로 이사했다. 안동선교부의 초대 주재 선교사가 된 그는 헌신했다. 특히 1909년 11월 16일 순교하기 전까지 1년 동안 그를 통해 안동 땅에 의미 있는 전도와 새신자 양육이 이루어졌다. 복음전도의 전형적인 패러다임인 양육, 파송, 전도를 통해 안동지역 부흥의 기초를 마련했다. 하지만 소텔 선교사는 풍토병인 장티푸스에 걸려 28세의 젊은 나이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소텔 선교사는 무려 109년 동안 한국교회 속에서 잃어버린 선교사였다. 이 글을 통해 우리의 뇌리 속에서 잊혀진 소텔 선교사의 삶과 사역을 살펴보고자 한다. 2. 소텔 선교사의 가정(家庭) 소텔 선교사는 1881년 미국 네브라스카주 티케이마에서 출생했다. 소텔의 아버지 해리 소텔은 두 번째로 결혼한 제시 소텔과의 사이에서 소텔 선교사와 리트를 낳았다. 소텔 선교사의 동생인 리트는 몬타나주 아나콘다 시에서 척추 전문의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텔 선교사의 부친은 1885년, 티케이마 북쪽 실버 크릭으로 이사해서 농사를 지었으며, 이후 오하이오주의 댄빌로 이사해 살았다. 소텔 선교사 부친의 직업은 여전히 농부였는데, 상대적으로 다른 농부에 비해 가난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텔 가정은 다시 네브라스카주의 오마하로 이주했고, 그 이후에는 오마하 인근에서 계속 거주했다. 소텔 선교사는 웨스트버지니아, 몬타나, 오하이오, 아이오와주를 전전하다가 오마하에 정착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소텔 가정은 믿음의 가정이었다. 비교적 자주 이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착한 지역에 있는 교회에 등록하고 출석했기 때문이다. ▲위 사진은 소텔 선교사가 어린 시절 출석하고 1907년 9월 한국으로 파송한 것으로 알려진 오마하 제2장로교회의 전경과 예배당 내부 모습이다. 3. 소텔 가정의 신앙(信仰) 대구와 경북지역에서 선교 사역을 감당한 선교사의 삶과 사역을 추적하여 연구하고 있는 손상웅 목사에 의하면 소텔이 최초로 섬긴 교회는 네브라스카주의 티케이마 교회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 어렸을 때 소텔은 여러 주(州)를 옮겨 다니며 생활했다. 4살 때인 1885년, 소텔의 가정은 실버 크릭으로 이주했다. 소텔은 시골의 작은 교회인 실버 크릭 감리교회에서 1897년 11월, 낙스 본디 목사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당시 실버 크릭에는 장로교회가 없었기 때문에 그의 가정은 감리교회를 다닐 수밖에 없었다. 소텔은 오마하로 이사한 후에 오마하 제2장로교회를 다녔다. 오마하 제2장로교회는 1888년 오마하 제1장로교회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소텔 선교사의 부친은 세 차례 결혼한 사람이었다. 소텔 선교사의 모친 제시 소텔은 두 번째 부인으로 좋은 신앙을 갖고 있었다. 소텔 선교사는 좋지 못한 가정환경에서 성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믿음 안에서 잘 성장하여 한국으로 파송 받은 선교사로 살다가 안동지역 선교사 중에서 최초로 순교(殉敎)를 당했던 것이다. ▲1917년 3월 11일에 준공된 오마하 제1장로교회의 모습으로 1959년엔 교회 역사상 최고 2,188명이 등록하고 있을 정도로 오마하에서는 최고의 부흥한 교회였다. /논문 발췌‧정리=박은숙 기자/<논문 원본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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