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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 강병주 목사의 생애와 사상 학술 포럼’ 열려영주노회 역사위원회와 농어촌부, 내매교회 공동 주관 ▲‘강병주 목사 학술 포럼’이 영주 내매교회당에서 열렸다.(포럼을 마친 후 참석자들의 기념 촬영) 지난 5월 13일(월) 오전 11시 영주시 평은면에 위치한 내매교회(윤재현 목사 시무)당에서 영주노회 역사위원회와 농어촌부, 내매교회 공동 주관으로 학술 포럼이 열렸다. “농촌운동 세미나 <농촌운동의 선구자 백남 강병주 목사 생애와 사상 포럼>”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세미나에는 70여 명의 목회자와 장로, 내매교회 교우들, 강병주 목사 후손 등이 참석했다. 1부 예배는 강병주 목사(농촌목회협의회 회장) 인도로 천정명 목사(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농어촌부장)가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2부 학술 포럼은 ‘한국장로교회의 농촌운동 선구자 강병주 목사’ ‘일제 강점기 총회의 농촌운동’ ‘내명학교 교사(校舍)의 보존관리 및 활용방안에 관한 제언’을 주제로 임희국 교수(장신대, 역사신학) 백명기 목사(총회 농어촌 선교부 총무) 손산문 목사(영천자천교회, 영남신학대 특임교수)가 강의를 진행했다. 우병백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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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 동안 한 교회를 섬긴 여성지도자 김점향 권사(1)김승학 목사 신학과 교수/기독교교육학 안동교회 담임목사 김점향 권사 (1907~1998) 안동교회 첫 예배는 4명씩 동수(同數)의 남·여가 함께 예배를 드렸다. 외할머니 등에 업혀 예배를 드린 아기를 포함하면 4명의 남성, 5명의 여성이 된다. 안동교회는 시작부터 균형 잡힌 성 비율로 하나님을 예배했던 것이다. 당시 시대적 상황은 남성중심의 교회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겠지만 그래도 교회 안에서 여성의 발언권도 무시할 수 없었다. 초기부터 뛰어난 여성 일꾼들이 안동교회에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선교사와 남성 교인들을 도와 새롭게 출범한 안동교회를 든든히 세워나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본 글은 3살 때 외할머니 등에 업혀 안동교회 첫 예배에 참석한 이래 무려 90년 동안 안동교회를 섬긴 김점향 권사님에 관한 것이다. 결혼 후 수년 동안 안동을 떠나 영주로 외도(外道)하기는 했지만 거의 100년 가까이 동안 한평생 안동교회를 섬겼으며, 안동교회 여전도회와 경안노회 여전도회의 중심인물로 여전도회를 든든히 세운 여성 지도자였다. 1. 할머니 등에 업혀 안동교회 첫 예배에 참석한 아기 1909년 8월 8일, 안동교회는 감격스러운 첫 예배를 드렸다. 안동읍 최초의 교회가 설립된 것이다. 당시 안동 최초의 근대서점인 기독서원(基督書院)에서 8명이 모여 첫 예배를 드렸고, 안동 땅에 복음이 전해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첫 예배를 드린 초대교인은 김병우, 강복영, 원화순, 원홍이, 권중락, 박끝인, 정선희, 김남홍 제씨였다. 다음은 8월 8일 주일 아침의 상황에 대해 김남홍의 외손녀 김점향이 생전에 들려준 내용이다. 김남홍의 집은 현재 100주년 기념관 바로 뒤편 화성동 언덕에 위치해 있었는데, 그날 아침 평소에 들을 수 없는 북소리가 들려왔다는 것이다. 주일 아침 누군가 북을 치면서 마을을 돌며 동네 사람들을 모았던 것이다. 김남홍이 무슨 생각으로 동네 아래에 있던 기독서원에 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발걸음은 그를 예수 믿게 하는 기회가 되었다. 기독서원에 간 김남홍은 모여 있던 사람들에게 “여기 오면 아들을 낳을 수 있느냐”는 질문을 했다고 한다. 그때 거기에 있던 사람들로부터 아들을 낳을 수 있을 뿐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큰 복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후부터 빠지지 않고 예배에 참석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김남홍은 안동교회의 첫 예배에 참석한 초대교인이 되었다. 외할머니 김남홍은 1910년 8월 18일에 학습을 받고, 1911년 8월 17일에 세례를 받음으로 안동교회의 세례교인이 되었다. 특히 그는 1913년에 조직된 안동교회 여전도회의 중심회원으로 열심히 참여하였다. 또한 김남홍의 남편인 권정택은 안동교회 첫 세례자 9인 중 한 사람이었다. 당시 안동읍에는 그리스도인이 거의 없는 상태였지만,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모두 그리스도인인 가정 분위기에서 외손녀 김점향은 성장할 수 있었다. 이것은 김점향이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 속에서 자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을 것이고, 그는 자연스럽게 믿음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2. 믿음의 분위기에서 성장하고 결혼한 여성 김점향의 부친이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게 되자 김점향의 외조모는 자신의 집에서 딸과 외손녀인 김점향과 함께 생활하기 시작했다. 김점향이 3세 되던 때 외조모는 예수를 믿기 시작했고, 그 이후부터 외조모의 등에 업혀 성장한 김점향은 자연스럽게 찬송과 기도를 듣고, 선교사들과 성도들의 예배 모습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믿음 안에서 성장한 김점향은 23세 때 영주 내매교회 출신인 강신효와 결혼하였다. 강신효의 바로 위의 형은 강신충 목사로 당시 영주에서는 믿음을 가진 유명한 집안이었다. 김점향은 결혼 후 영주로 가서 생활하다가 나중에 안동으로 다시 왔다. 강신효의 부친은 강신효에게 많은 재산을 주었다고 한다. 영주 재산을 모두 처분하고 안동으로 이사온 강신효는 정미소를 시작했는데, 안동 최초의 방앗간이었기 때문에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한다. 하지만 경영을 잘하지 못하고 식구가 늘어감에 따라 가세가 조금씩 기울기 시작했으며, 6·25 전쟁으로 건물이 모두 타버려서 경제적으로 점점 힘들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와중에서도 성숙한 믿음으로 성장한 김점향은 교회와 노회에서 뛰어난 리더십을 발휘하는 여성 지도자가 되었다. ▲1910년 영주 내매에서 열린 춘계 평신도 성경공부반 중 남자 성경공부반 모임.(중앙 맨 뒷줄에 권찬영 선교사.) 이 성경공부반이 모인 내매에는 이미 교회가 세워져 부흥하고 있었다. 3. 안동 3·1만세운동 당시 태극기를 흔든 어린이 안동지방의 기미년 3·1만세운동은 김재명과 강대극에 의해 시작되었다. 이들은 김영옥 목사와 이중희 장로 등 안동교회 지도자들과 의논한 결과 3·1만세운동 날짜를 3월 13일로 정했다. 그러나 거사 하루 전날 김영옥·이중희·강대극·김원진 등 주역 4인이 검거됨으로써 3·1만세운동은 좌절되는 듯 했다. 하지만 다음 장날을 거사일로 다시 정하고 세밀하게 계획을 수립하게 된다. 그리하여 3월 18일 낮 12시경, 김병우 장로와 김익현 조사의 ‘대한독립만세’ 소리를 시작으로, 안동교회 교인 30여 명은 삼산동 곡물전 앞에서 온 힘을 다해 만세를 불렀다. 이때 동문통에서 내려오고 있던 유림의 시위대와 합쳐지고, 장터에 모인 읍민들도 합세하면서 안동읍 최초의 대규모 만세운동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안동의 3·1만세운동에는 안동 최초의 여자 초등학교인 계명학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당시 계명학교를 다니고 있던 김점향이 태극기를 들고 시내를 뛰어 다녔다고 김점향의 자부인 박춘희 권사는 증언했다. 어린 학생들에게는 태극기를 나누어 주지 않았지만 학생들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장터와 읍내를 돌아다녔다고 한다. 일제는 그가 너무 어려서인지 체포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위가 격해지자 목성교에 시체가 하나 둘씩 늘어가기 시작했고 이것을 본 김점향의 할아버지는 더 이상 김점향이 밖에 나가지 못하도록 했다고 한다. 또한 일제가 발포하기 시작했을 때 총알이 방안으로 들어온다고 하며 이불로 문을 막아놓았다는 것이다. 어린 아이였던 김점향은 자신이 외친 대한독립만세가 무슨 의미인지도 정확히 몰랐겠지만 전국에 타올랐던 3·1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였다. ▲안동 3·1만세운동은 1919년 3월 18일 열렸다. 안동교회 교인 30여 명은 삼산동 곡물전(현 신한은행 근처) 앞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있는 힘을 다해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다. 위 사진은 1925년 당시 삼산동 곡물전 근처 안동 장날의 번잡한 모습. /논문 발췌‧정리=박은숙 기자/<논문 원본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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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성곡교회 ‘창립 100주년 기념 감사예배’ 드려예장(통합) 성곡교회(담임목사 남동권, 영주시 장수면 성곡길 소재)는 지난달 10일(토) 오전 11시 본 예배당에서 노회 산하 목회자와 성도 및 교우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곡교회 창립 100주년 기념 감사예배’를 드렸다. 성곡교회의 설립은 1918년으로 거슬러 간다. 그해 3월 13일 내매교회 강재원 장로가 성곡리에 전도하러 와서 조용원, 우상익, 안승정 씨가 결신한 후 내매교회로 출석했다. 그후 임숙조, 최문서 씨가 결신하여 성곡(현재 의산) 조용원 씨 댁에서 예배를 드림으로 성곡교회가 설립되었다. 1부 예배는 남동권 목사 인도로 드려졌으며, 故 강재원 장로의 손자 강신권 목사(시온산 교회) 기도, 박찬순 권사의 아들 이봉호 목사(새구미교회) 성경 봉독(벧전 4:7~11), 성곡교회 호산나 찬양대의 찬양에 이어 김병환 장로의 아들 김기태 목사(노회장, 원리교회)의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제목의 말씀을 선포, 김기대 목사(출향 성우회 회장, 은퇴목사)의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2부 감사와 축하순서는 남동권 목사 인도로 진행됐으며, 故 이종하 목사의 아들 이현우 목사(흰돌교회) 기도, 故 이중무 장로 후손들의 특별 찬양, 강성효 목사(영주노회 부노회장, 장수교회)의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고”라는 주제의 강연, 김영호 장로(성곡교회 원로장로)의 연혁 소개가 이어졌다. 故 김성환 장로 손자 김덕호 장로(인애가 재단이사장)의 축사, 성곡교회 항존직분자 일동의 특송, 윤재현 목사(내매교회)의 축사, 공로패와 감사패 전달, 100년 회고 영상 상영, 이태건 목사(영중시찰장, 하늘 소망교회)의 축도로 모든 순서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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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 척곡교회, ‘제2회 나라사랑 음악의 밤’ 가져봉화군 법전면 척곡교회(담임교역자 전도사 박영순)는 지난달 29일 내빈들과 이웃교회 교인 등 8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제2회 나라사랑 음악의 밤’을 열었다. 경술국치일(8월 29일)을 기념하여 열린 ’나라사랑 음악의 밤’은 내년부터는 봉화척곡교회를 비롯 영주내매교회, 영천자천교회가 순번대로 열릴 예정이다. 1부 예배는 척곡교회 어린이 찬양대의 찬양이 있은 후, 권정호 목사(경북기총연 전회장. 전노회장, 봉화제일)가 “평안이 있는 나라(시112:6-9)”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2부는 기념식으로 애국가 4절까지 제창 후,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 내빈소개, 박노욱 봉화군수 기념사가 있었다. 3부 음악회에는 영주 선비관악봉사단의 관악연주, 영주남성합창단이 기타연주가 있었다. 반달, 눈물 젖은 두만강, 독립군가를 불렀으며 관객들과 함께 군가, 선구자 등을 합창했다. 김영성 장로(봉화척곡)는 “이번 음악회를 통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후손들이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가슴 깊이 새겼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한편, 봉화척곡교회는 김종숙 목사(김영성 장로의 조부)가 일제강점기에 항일운동을 지원하면서 1907년 세운 교회로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257호로 지정되었으며 당시의 교육시설인 서당(명동서숙)이 그대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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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노회남선교회 체육대회 열려영주노회 남선교회(회장 최신규 장로)는 지난 5월 27일 오전 10시 영광고등학교(교장 임하규) 실내체육관과 운동장에서 8개 시찰(영중, 영북, 영남, 영동, 예천, 예남, 봉화, 춘양시찰) 회원 2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시찰대항으로 배구와 족구 대회를 실시했다. 1부 개회예배는 수석부회장 이영재 장로의 인도로 드려졌으며, 전 회장 최경도 장로의 대표기도, 시편 133편 1절 말씀봉독, 평신도지도위원장 김창진 목사의 메시지 선포와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2부 순서는 총무 최교학 집사의 내빈 소개와 전국남선교회 수석부회장 조동일 장로의 격려금 전달, 대회장 최신규 장로 대회사, 영주노회장 김성하 장로의 격려사, 영주시 장욱현 시장과 영주노회 장로회장 이인화 장로의 축사. 부서기 우영욱 장로의 행동강령 낭독, 광고 후 시찰별 열띤 응원이 펼쳐진 가운데 생동감 넘치는 경기가 이어졌다. 3부 폐회식에서는 총무 최교학 집사의 성적 발표가 있었다. 배구경기(1위 영남시찰, 2위 영중시찰, 3위 영동시찰)와 족구경기(1위 영북시찰 B팀, 2위 춘양시찰, 3위 영북시찰 A팀) 입상 팀에게 대회장 최신규 장로의 상장과 격려금 수여가 있었으며 이어서 경품 추첨이 진행됐다. 총무 최교학 집사는 “영주노회 평신도지도위원장 김창진 목사의 ‘연합이 아름답습니다’라는 설교 말씀과 참으로 어울리는 체육대회였습니다.”라고 했으며, 내매교회 교인인 여호윤 집사는 “대회가 아주 좋고 은혜로워서 앞으로 자신의 교회에도 남선교회를 조직하여 참석하도록 목사님, 장로님과 협의해 보겠다.”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족구 우승 영북시찰 B팀장 황규원 장로는 “오늘 하나님의 은혜로 제34회 영주노회 남선교회 체육대회를 화목하고 즐거운 가운데 잘 마치게 하시고, 최신규 회장님 이하 임원들 수고와 헌신으로 유종의 미를 거두게 하심 감사드리며 영북시찰 B팀 풍기동부교회가 우승하게 되어 감사드립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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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매교회, 강신명 목사 사진전과 강진구홀 기공식 열려영주 내매교회(담임목사 윤재현)는 지난달 27일 ‘제3회 내매사람들 모임’ 및 소죽 강신명 목사 사진전과 강진구홀 기공식을 지역 목회자들과 출향성도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었다. 예배 설교는 산본교회 강윤구 원로목사, 기도 내매사람들 회장 배재호 장로, 축사 영주노회장 강성효 목사(장수교회)가 맡았다. 강신명 목사 사진전은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강 목사의 신앙의 발자취를 재조명하기 위함이었다. 그의 아버지 강병주 목사는 한국교회의 농촌운동을 시작했고 그의 동생 강신정 목사는 기장 측 68대 총회장이었다. 한편, 내매교회는 삼성전자 강진구 장로를 기념하기 위해 봉사관 이름을 강진구홀이라고 지었다. 이 행사를 주관한 윤재현 목사는 “강신명 목사, 강진구 장로 두 분의 이름을 교회 본당과 식당 이름으로 지을 수 있어 영광”이라며, “앞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이들이 한국사회에 끼친 영향력을 기억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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