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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여년만에 방문한 첫 목회지(구미인동교회) 강단에서 설교!옛 성도들과 함께 한 최태원 목사(오른쪽에서 4번째), 김성길 담임목사(5번째 “가는데 마다 화평을 만드셨다”, “분란이 있는 교회, 나뉘어서 어려움을 겪던 교회를 찾아다니며 화평과 안정을 통해 부흥을 일궈내고, 건축까지 마치는 귀한 목사님” 미국 이민목회 사역 후 원로목사로 은퇴한 목회자가, 50여년 만에 목사 안수 후 국내 첫 담임 목회지였던 교회를 방문, 옛 성도들과의 감격스러운 만남과 함께 은혜로운 말씀을 증거, 뜻깊고 의미 있는 시간을 가졌다. 구미인동교회(담임목사 김성길)는 지난달 15일 주일 오후 예배시간에 제2대 담임목사로 부임, 5년간 목회를 통해 교회를 안정시키고 부흥의 기반의 다진 목회자인 최태원 목사(84)의 방문을 받았다. 48년만의 방문인지라 머리칼은 색이바래고 몸은 야위었지만 반짝이는 눈빛과 호소력 있는 목소리로 전해지는 말씀은 예배에 참석한 성도들의 마음 깊이 새겨졌다. 지난날을 기억하는 몇몇 교인들은 곧 이어질 이별이 아쉬운 듯 설교를 마치고 내려온 최 목사와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함께한 옛 교인들은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외진 곳에 ‘호야’라고 불리던 호롱불 유리를 매번 닦아가며 저녁예배를 드려야했던 어려웠던 지난날을 회상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개척 초기라 많은 것이 부족했고, 생각들이 나누어져 어려움 겪었던 최 목사의 부임 전 인동교회는 교인들이 오전과 오후로 나뉘어져 따로 예배를 드리고 있는 형국이었다. 전도사로 교회를 개척, 강도사로 8년을 목회했던 최 목사는 간절한 기도와 평안의 말씀을 증거, 이내 성도들을 위로하고 교회의 안정을 이뤄냈다. 대내외적으로 평안을 회복하자 교회가 부흥되기 시작했다. 안정되고 힘이 있는 교회로 지역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교회가 되자, 30대 초반의 최 목사에게 하나님께선 새로운 소망을 주셨다. 당시 성도들의 만류가 심했지만, 장로님의 “보내 드립시다”란 호소에 모든 성도가 순종해 사역지를 옮길 수 있었다. 일주일을 계획하고 금식 기도에 들어갔던 최 목사는 4일 만에 응답을 받고 부산 초량교회 부교역자로 갔다. 이후 대구사월교회 담임 목회자로 3년 시무하던 중 미국 유학을 떠나 2년 만에 박사(예배학) 학위를 받고 귀국, 대구남부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했다. 교회는 부흥해서 2부로 예배를 나눠드려야 했고 예배당을 신축했다. 후진 양성에도 힘을 써 대구신학교 교수를 역임하고, 총신에서 목사 재교육을 위한 예배학(피종진 목사 등 300여명을 대상)도 강의했다. 이후, 그는 유학 시절 하나님께서 보여 주셨던 이민목회에 대한 비전을 가슴에 품고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최 목사가 정착한 곳은 한인들이 많지 않은 지역으로, 당시 분란을 겪고 있었던 시애틀에 소재한 평강장로교회였다. 최 목사의 부임 후 이내 교회는 이름처럼 평강을 회복했고, 담임 목회자로 시무한지 24년 만에 그는 원로 목사로 추대됐다. 또한, 그는 후진 양성에도 힘써 미주총회교단신학교인 워싱턴 신학대학에서 조직신학을 강의했고, 학장으로 15년을 더 섬기고 은퇴했다. 당시 신학교 제자들이 현재 은퇴할 나이가 되었을 정도로 원로가 된 최 목사는, 인근 지역에선 제일가는 원로로 추앙받고 있으며 지역 교계의 중대사엔 자문역을 맡아 상담해 주고 있다. 한편, 1962년 2월에 설립된 구미인동교회는 대한예수교 장로회(합동) 경북노회에 소속된 교회로 올해로 설립 54주년을 맞이했다.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과 섬김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같은 말, 같은 마음, 같은 뜻을 품고, 같은 열매를 맺기 위하여 진력을 다하는 인동교회는 현재, 김성길 담임목사를 중심으로 500여명의 성도들이 한결같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위해 헌신하고 있다. (現)강동교회에서 분립된 인동교회는 이후, 미소교회와 동부교회, 동신교회를 분립시키고, 성장 발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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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구미등대교회 차 봉사팀’그리스도의 향기나는 아름다운 섬김 구미등대교회선교회 ‘차 봉사팀’(팀장 김경옥 권사)은 매달 첫째주 월요일 오전 10시부터 구미강동병원에서 차와 빵을 직접 준비해 병원을 방문하는 이들을 섬기고 있다. 여러 가지 질병과 아픔으로 인해 정신과 육체적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환자나 환자 가족들의 아픔을 위로하고(마25:35~40)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섬기는 이 행사는 구미등대교회(담임목사 강재식)에서 수년째 계속해서 감당하고 있는 선교 차원의 봉사활동이다. 삶의 고난 중에 있는 이들에게 사랑의 섬김으로 다가가 인생의 참 위로자 되시는 예수님을 전하는 봉사대원의 헌신은 많은 이들의 마음의 문을 열게 했고 복음을 받아들이게 했다. 한편, 등대교회선교회에서는 매주 화요일 교회 인근 택시 승강장을 찾아 기사들과 승객들에게 차 접대를 통해 교회 알리기에 힘쓰고 있으며, 매주 목요일은 교회 내에서 지역 주민을 위한 문화 강좌를 개설, 교회와 접촉점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하며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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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을 위한 사랑의 나눔 실천! 구미시 소재 옥계사랑교회(담임목사 노주복)는 지난달 10일 낮 12시 교회 식당에서 관내 어르신 150여명을 모시고 ‘제7회 사랑의 이웃초청잔치’를 열었다. 이날 옥계사랑교회는 따뜻한 점심식사 대접은 물론 한방진료와 이・미용서비스, 참석자 전원에 대한 맞춤형 돋보기안경을 무료로 제공해 어르신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양포동노인회 이근상 회장은 해마다 노인들을 초청해서 식사를 대접하고 교통편의까지 제공해 주는 옥계사랑교회에 감사의 마음을 전했으며, 참석한 어르신들도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교회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편, 옥계사랑교회는 2010년부터 매년 나눔 행사를 개최하여 경로효친사상 고취와 훈훈한 인정이 넘치는 지역사회를 만들어 가는데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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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하지 않는 교회, 불 꺼진 교회는 희망이 없다’ ‘행복한 전도세미나’ 칠곡 약목중앙교회에서 개최 취재: 편집부장 최영열 장로 새봄을 맞아 각 지역·교회별로 전도에 관심이 높아지고 ‘전도 집회’와 ‘전도 세미나’가 속속 개최되고 있다. 지난달 19일 칠곡군 약목면 소재 약목중앙교회(담임목사 박종환) 본당에서도 국민미션 주관 ‘2016 행복한 전도세미나’가 개최, 150여명의 참석자들 가슴속을 주님 사랑과 뜨거운 전도 열정으로 불붙게 했다. 행복한 전도세미나는 교회에서 쉽게 적용할 수 있는 효과적인 전도법을 하루 동안 무료로 진행해 주는 프로그램이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7시간 동안 진행된 세미나에는 ‘복음의 능력전도'이란 제목으로 황일구 목사와 ‘모유전도법'이란 제목으로 엄호섭 장로, ‘안 될 수 없는 부흥'이란 제목으로 박재열 목사, ‘전도에는 방학이 없다’란 제목으로 박상철 목사가 강사로 나섰다. 아래에는 이날 강의들을 간추려 정리했다. ‘성도님 전도가 너무 쉬워요’의 저자 새대구교회 황일구 목사 “문 닫는 교회가 늘어나고 그리스도인의 비율이 낮아지는 이유는 교회와 성도들이 성령의 능력으로 전도하지 않고 이론과 방법으로만 전도하기 때문이다.” 황 목사는 “첫사랑을 잃어버린 것이 가장 큰 죄이며 그런 자에게 주님은 촛대를 옮겨 버린다고 주님이 말씀하셨다”(계2:5)고 전했다. ‘유럽에 주신 하나님의 축복을 유럽인들이 복지로만 사용하면서 예수님을 잃어버리고 무너져 가고 있다. 어려워지는 것이 정치를 잘못해서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예수를 안 믿기 때문이다’고 분석했다. 생계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5천년 동안 가난하게 살던 대한민국에 하나님께서 촛대를 꽂으시자 이 나라가 부유하고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 아무리 미개한 나라도 주님이 촛대만 꽂으시면 잘 사는 나라가 된다. 그 촛대가 미국을 떠나려 한다. 현재 미국에는 동성애를 비판하는 설교와 길거리 전도를 하면 감옥에 가야 한다. 나와 이 나라 모든 성도도 첫사랑의 감격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 그런데 지난 고난주간을 지나며 십자가의 주님을 얼마나 묵상했고, 감격과 통곡의 눈물을 얼마나 흘렸는가? ‘전도하지 않는 교회, 불 꺼진 교회는 희망이 없다.’ 전도해야 믿음이 변질되지 않고 첫사랑이 식지 않는다. 전도는 사실 그를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하는 것이다. 첫사랑을 유지하는 방법은 전도 외엔 없다. ‘성도가 가진 온 부동산을 다 팔아 헌금하는 것보다 더 많이 헌금할 수 있는 방법은 전도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기 때문이다. 한국작은교회살리기운동본부장 박재열 목사(동선교회) “‘전도는 불신자를 데리고 와 예수 믿게 하는 것’이지, 작은 교회 교인을 데리고 오는 것은 ‘양 도둑질’일 뿐이다”라고 일갈(一喝)한 후 전도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을 것을 강조했다. 박 목사는 매년 2,400여개 교회가 설립예배를 드리는 것에 비해 3,000여개 교회가 문을 닫고 있는 실정이라 국내 교회의 수는 자연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음과 전국 교회 중 75% 교회가 자립이 어려운 교회임을 인지,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15년 전 ‘작은교회 살리기운동’을 시작하게 됐다고 밝혔다. 박 목사는 “예수님께서 만드신 교회는 구원선(한국 교계의 0.5%에 불과)이지 유람선이 결코 아니며, 구원선의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 성도들이 유람선에 탄 승객처럼 편안함과 재미를 추구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 “2년 전 학생들을 비롯한 310여명이 세월호에서 죽음을 맞이한 것으로 온 국민이 심한 좌절에 빠졌고 지금까지도 그 여파가 남아있다”며 “생명 존중의 마음이 존귀한 것이 사실이지만 우리나라에서 매일 죽어가는 사람(750여명이 사망)이 얼마인지, 예수님을 알지 못해 지옥 가는 이들(불신자의 죽음 650여명)이 얼마인지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중국에서 불에 타 죽어가는 이를 돕지 않고 40여 초 동안 동영상을 촬영해 비난을 받는 이가 있었다”며 “주변의 죽어가는 불신자들의 영혼을 보면서도 안타까워 않는다면 이와 다를 바가 무엇이냐?”고 반문했다. 김 목사는 특히, 불신자의 영혼은 사탄이 잡고 있기 때문에 뜨거운 기도, 많은 기도, 감동받을 정도의 사랑 베풀기, 맛있는 음식(먹어야 맘이 부드러워짐), 악착같은 전도를 실천하라고 당부했다. 어부가 물고기떼를 만나면 기뻐서 어쩔 줄 모르고 소리를 지르며 난리가 나는 것처럼, 경북은 ‘물 반 고기 반’의 상황이므로 전도자는 낚고, 잡기만하면 된다며 적극적인 헌신을 촉구했다. 반면, 마귀와 좌파들도 ‘영혼 구원’ 없는 ‘밥퍼’와 ‘나눠주기’, ‘자선 사업’을 좋아한다면서 영혼 구원을 우선하지 않는 어떠한 자선행위도 하나님과 관련이 없다고 못 박고 주의를 당부했다. 모유전도법으로 전교인 전도대를 만들고 있는 엘림전도훈련원장 엄호섭 장로 모유전도법은 어린아이가 태어나 스스로 걸어 다닐 수 있을 때까지 모유를 먹여 키우듯이 한 영혼이 교회에 등록해 서리집사가 될 때까지 ‘천번의 기도와 백번의 만남’을 가질 것을 강조하는 전도법이다. 하나님께서 전도에 대해 축복을 약속해 주셨지만, 사람들이 전도하지 않는 이유는 ‘전도를 은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도는 은사가 아니라 주님의 명령’이다. 마28:18 이하에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이가 전도하고 제자 삼으라고 말씀하셨다. 따라서 하나님의 마음에 흡족한 전도를 하면 하나님께서 물질, 건강, 직장 등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실 것이다. 3가지 생활전도법의 첫째는 ‘무릎의 전도’이다. 전도할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둘째는 ‘손의 전도’이다. 전도 대상자를 사랑으로 섬기고 도와주는 것이다. 사랑의 수고는 ‘저 사람이 우리 형제보다, 우리 가족보다 고맙다고 할 때 복음이 전해진다. 셋째는 ‘발의 전도’이다. 전도대상자의 마음이 열릴 때까지 3년 이상 포기하지 않고 인내하며 찾아보는 것을 말한다. ‘전 교인 전도대’는 전교인 모두가 전도대가 되어 모두가 움직이면 자연히 모두가 스스로 움직인다.(환경순응의 법칙)는 법칙에 따라 전교인을 기도, 물질, 노방전도대로 조직한다. 기도전도대는 1주일에 10번 이상 교회에 나와 기도하는 전도대이며, 물질 전도대는 1~2끼 금식하여 남긴 물질로 헌금하는 전도대를 말하며, 노방전도대는 나가서 말하기보다 들어주는 역할을 감당하며, 예수님 자랑과 교회 자랑, 목사님 자랑을 반드시 들려준다. 교회가 지역에 좋은 소문이 나지 않으면 전도는 끝이다. 전도에는 방학이 없다고 외치는 ‘호떡 목사’ 박상철 목사 인천의 온제자교회를 섬기는 박상철 목사는 교회 개척과 함께 겪었던 목회 사역을 진솔하게 나누며 그 가운데 역사하셨던 주님의 사랑과 능력, 예수님의 마음을 전했다. 지하 예배당을 마련해 개척 예배를 드리고 전도를 열심히 다녔지만 10개월 동안 교인이 단 한명도 찾지 않는 상황, 한 영혼의 소중함과 주님의 애타는 마음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이후 동역자를 보내 주셨고 호떡 전도를 통해 초등학생들과 지역 사회의 호의적인 이미지를 구축, 전도의 열매를 거두기 시작했다. 7년째 계속되는 초등학교 정문 앞 호떡 전도는 아이들의 가슴 속에 “호떡 먹고, 예수 믿고, 천국가자, 온제자교회 가자”란 구호를 새겨 놓게 했다. 박 목사는 주님의 강권에 따라 밤 12시에 전도지를 갖고 밤거리에 나서게 된 간증을 통해 주님의 사랑과 예비된 동역자, 복음을 기다리는 안타까운 영혼들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그는 일이 꼬이거나 영적으로 그늘이 질 때, 열정이 식고 무기력해질 때 전도지를 들고 밖으로 나가면 성령 충만함과 문제 해결을 경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박 목사는 우리 인생의 남은 기간이 너무 짧고 촉박하기에 세상 것 다 가지려고 세월 허송하지 말고, 적당히 벌고 새벽기도 지키고 자녀 위해 기도하자고 당부했다. ‘커피 향에 취해 마음이 즐거워지고, 목구멍이 열림으로 마음이 열린다’ 커피와 한잔과 함께 복음을, 연천 군남교회 이재은 목사 ‘이게 뭐지, 이게 뭐야?’ 설립 60년 된 교회에 처음 부임 받아 예배당을 들어서면서 이재은 목사가 받은 첫 느낌이었다. 냄새나는 고무 실내화와 물새는 예배당에서 배어나오는 악취에 이 목사는 양 미간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 성도가 중심인 노년층 성도 구성, 재정적으로 어려운 교회, 갈라진 벽채, 비새는 지붕, 물 올라오는 바닥, 침울한 교회 분위기 등 어느 것 하나 가능성이 엿보이지 않는 교회. 새는 비를 막으려니 벽이 부실하고, 벽을 고치려니 바닥마저 습기로 예배당 전체를 공사해야 할 상황. 암담해서 기도하며 울고 있는 이재은 목사에게 하나님은 새로운 비전을 보여 주셨다. ‘기도실을 리모델링해 카페를 만드는 것’이었다. 공사를 시작하자 ‘교회가 망해서 업종 변경 한다’고 소문이 나고 ‘돈 많은 목사가 왔다’는 소문 등등 이 목사를 더욱 힘들게 했다. 카페 공사를 마치고 일터에 나가고 사람이 보이지 않는 시골 동네, 이 목사는 커피기계를 준비해 주민들을 찾아 다녔다. 절대 전도지를 지참하지 않고, 일단 사람을 만나면 준비해간 가방 속의 소형 커피 기계로 커피부터 내렸다. 커피를 준비하는 동안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고급 커피향에 주민들의 마음이 열려 먼저 말을 건네 오기도 했다. 가족 중에 신앙을 가진 이를 이야기하고, 옛날 어린시절 교회 다닌 이야기 등을 스스럼없이 건네는 등 주민들의 말을 다 들어주고 기도해주길 여러번, 결국 그들이 먼저 교회를 찾아 왔다. 이 목사는 “1년에 뿌리는 수만장의 전도지와 전도 물품으로 교회를 찾는 이가 없는 반면, 커피 전도는 먼저 커피 향에 취해 마음이 즐거워지고, 목구멍이 열림으로 마음이 열린다”고 설명했다. 그는 마음이 열린 상태로 1~2분간 간단히 전하는 복음이 훨씬 효과적이었다고 간증했다. 이후 교인들로 운영되는 카페는 ‘주님께 섬기듯 하자’는 이 목사의 뜻을 실천, 입 소문이 나면서 많은 이들이 찾는 곳이 되었고 더불어 교회도 한층 더 밝아졌다. 교회는 차를 타지 않고선 올 수 없는 시골에 있지만 하루 150~200여명이 커피와 함께 복음을 듣고 가는 카페 교회가 됐다. 한편, 국민미션은 ‘신바람나는 세상, 희망을 노래하는 교회’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문화콘텐츠를 통하여 한국교회 부흥과 성장 발전에 기여하고자 설립된 선교단체이다. 교회 창립행사, 새성전입당, 새생명전도축제, VIP 초청 전도, 이웃주민을 위한 음악회 등 각종 집회를 기획·제작, 건전한 문화 공간을 제공하는 교회 모습을 통해 불신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지역복음화를 실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행복전도세미나는 광고 및 강사비, 포스터, 전단지, 현수막, 순서지 등 모든 경비를 국민미션에서 무료로 지원해 주고 주최하는 교회는 중식과 장소만 제공하면 된다. 세미나를 원하는 교회는 전화(02-782-7153)로 접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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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자비량 목회자 김경환 목사목록 본문 국내 자비량 목회자 김경환 목사 취재·정리: 편집부장 최영열 장로 사도 바울처럼 선교사역을 자비량(장막업-Tent maker)으로 감당하는 해외 선교사들이 있기는 하지만 국내 목회에 있어 자비량으로 사역을 감당하는 목회자는 많지 않아 보인다. 목회라면 당연히 풀타임 사역이라는 인식이 자리매김한 탓인가? 뭔가 자연스러워 보이지는 않는다. 이 땅엔 아직도 많은 수의 미(未)자립교회들이 존재하고 시골 벽지엔 고령화된 성도들로 구성된 어려운 농촌교회들이 지역마다 산재해 있다. 그 삶의 터전을 버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농촌교회 성도들을 위해 묵묵히 사역을 감당해 가고 있는 목회자들의 삶 또한 각박한 처지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때, 어려운 농촌목회자의 삶을 도우면서, 시골 교회를 세워가는 자비량 목회자가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경북 예천군 용문면에 소재한 ‘용문하금교회’ 김경환 담임목사가 그 주인공이다. 김 목사는 괴산에서 목회하던 중 고향인 울릉도에서 함께 신앙생활 했던 곽일부 목사가 용문하금교회에서 사역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인사차 방문했다. 그러나 기대했던 만남은 곽 목사와의 은퇴로 인해 이뤄지지 못했고, 다만 목자 없는 양떼와 허물어져 가는 예배당의 모습을 보면서 이곳을 찾은 김 목사의 마음은 아파왔다. 당시 교회는 사례금을 드릴 수 없는 형편이라 목사님을 모시지는 못하고, 다만 은퇴 시점에 갈 곳 없는 목회자가 와서 물질에 상관없이 사역해 주길 기대하는 정도였다. 김 목사가 기도 후 교인들과 다시 만나 교인들이 조건을 들어 준다면 사역을 하겠다고 말했다. 먼저, 맡아 오던 기업이 있기 때문에 사택은 필요 없다. 둘째, 사례비는 전혀 없어도 된다. 마지막으로 거처하는 숙소가 멀기에 새벽기도는 인도할 수 없다는 조건이었다. 성도들이 근근이 예배를 인도하며 지켜오던 시골교회, 목회자 모시기를 위해 기도하던 성도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그리하여 2014년 8월, 김경환 목사는 용문하금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하게 됐다. 김 목사는 먼저 비가 새는 예배당 공사를 비용을 들여 마쳤다. 이어서 공사용 철근이 밖으로 튀어나와 있을 정도로 농사용 창고보다 못한 교회 식당을 리모델링해야겠다고 제안하자 대부분의 교인들이 반대했다. 비용을 감당할 능력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김 목사는 출향 교인들의 지원과 김 목사의 부담, 은혜 받은 이들의 헌신을 합하여 결국 공사를 마무리했다. 또 외부 지원을 받아 종탑을 깔끔하게 해결했고, 식당에 비용을 들여 화목보일러를 설치, 교인들이 훈훈한 겨울을 날 수 있게 도왔다. 고난주간에는 교인들을 상대로 세족식 행사를 열어 섬겼고, 추수감사주일이 되면 김 목사가 직접 생산한 꿀을 교인들에게 선물했다. 명절엔 일체 목사에게 선물하는 것을 금지시키고 김 목사가 준비한 현금 봉투를 교인들에게 나눠줬다. 특별한 날이 되면, 성도들에겐 김 목사가 키우는 염소를 잡아서 대접하고, 마을 잔치에는 돼지를 잡아 대접했다. 이렇게 선한 사업을 계속하다 보니 이젠 주위의 돕는 손길도 생겨 훨씬 더 즐겁고 보람되게 섬길 수 있게 됐다. 현재, 교회에서 헌금 1등은 김 목사이다. 이렇게 많은 물질로 지역 사회와 교회를 섬기고 교인들을 도울 수 있는 것은 바로 김 목사가 운영하고 있는 사업체가 있기 때문이다. 김 목사가 현재 경영하는 사업은 양봉과 염소 농장이다. 군 제대 후 울릉도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던 중 양봉을 처음으로 접했다. 몇 번의 어려움을 겪고 난 후 깨달은 것은 벌을 지으신 하나님 관점에서 벌을 키워보자는 확신이었다. 새로운 시도로 인해 당시 벌을 키우는 사람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듣기도 했지만 결국 세월이 흐르면서 그의 방법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늘었고, 현재는 많은 이들이 그를 따라 양봉을 하고 있다. 김 목사는 현재 선진 양봉을 교육하는 농업기술센터 주최 전국 강의를 제일 많이 다니는 강사이다. 목회자로서 김 목사는 양봉 강의의 기회도 놓치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도구로 삼고 있다. 강의 중간중간 하나님과 인간, 구원에 관해서 설명하며 예수님의 사랑을 교육생들에 증거 하고 있다. 3박4일 강의 시엔 반드시 하루는 예배당에서 강의해 기독교엔 친근감을 느끼도록 노력하고 있다. 김 목사가 양봉(국사골양봉농원)을 통해 올리는 수익은 연간 약 1억원 이상, 그 중 1억원 가량을 선교비로 사용하고 그 나머지를 생활비로 사용한다. 생산한 꿀은 미자립 교회가 판매해 자립할 수 있도록 목회자들에게 저렴하게 공급해 준다. 또 양봉교육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꿀 생산이 어려운 이들에겐 꿀을 나눠주고 다음 해 생산을 많이 하면 그때 갚으라고 공급해 주기도 한다.(진대법 개념, 회수율 10%에 불과) 현재 특히 김 목사가 역점을 두고 시작한 사업은 염소농장이다. 호주산 염소인 ‘보아’ 종을 70여두를 사육하고 있는데, 300마리를 목표로 하고, 우수한 형질의 보아 원종 염소를 구하고 있다. 숙소도 하나님께서 예비해 주셨다. 김 목사가 숙소와 농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집(유천면 소재)은 과거 법당으로 사용되던 건물로 칡넝쿨이 집안으로 들어올 정도로 폐허가 된 상황이었다. 부동산 중개업자 조차도 일반인이 살 수 없는 곳이기에 목사님 정도 되는 사람이라야 살 수 있는 곳이라고 할 정도로 기가 센(?) 곳이었다. 그곳은 과거 전국의 무당들이 모여 큰 굿을 하던 집이었으며 집 둘레 곳곳이 촛불을 켜고 지성을 드리던 곳이었다. 따라서 그 누구도 범접(?)지 못한 탓에 김 목사는 시가의 1/4 가격으로 건물을 구입할 수 있었고 지금껏 잘 사용하고 있다. 김 목사가 이렇듯 나눠주는 목회를 하게 된 데에는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다섯명의 자녀를 잃고 낙심한 아버지는 무당을 찾아가 안타까움을 호소하자 무당이 말하길 “나하고는 안 맞고, ‘오랑캐당’에 가라 ‘야수교당’” 해서 절박한 심정으로 교회를 찾았고 예수님을 만났다. 이후 5자녀를 더 낳고 건강하게 양육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신 아버지는 이후 평신도로서 교회를 개척(울릉도 중령교회)하신 것은 물론, 좋은 것은 모두 교회에 갖다 드리며 하나님을 섬기기를 시작해, 형제들과 함께 무척이나 어렵고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내야만 했다.(어린 시절 점심식사가 있었다는 것을 몰랐을 정도) 공무원으로, 성공한 사업가로 성장한 김경환 청년은 하나님 말씀인 성경의 실생활 적용에 많은 괴리감을 느끼고 갈등하고 방황하던 중 하나님의 큰 은혜를 경험했다. 곧 하나님의 심정을 깨달은 것이다. 내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에서, 성경을 사람의 입장이 아니라 기록하신 하나님 심정으로 바라봄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 은혜에 감사해 신학을 하려 했지만 고생길을 가려는 아들을 어머니가 막으셨다. 수년이 흐른 후 37의 늦은 나이인 1997년 거부할 수 없는 부르심에 모든 것을 정리하고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울릉도에서 육지로 나왔다. 사역을 시작하면서 김 목사는 물질과 관련된 굳은 결심을 하게 된다. ‘목회자가 되면 나눠줄 수 있을 정도의 준비가 될 때 사역을 시작하자. 자비량 목회자가 되자. 생계도 어려울 정도로 가난한 교인 가정에서 헌금하는 일은 절대 없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수입원 없어 생계를 걱정할 정도로 살아가는 용문하금교회 노인 성도들과 이웃 주민들이 헌금이 부담스러워 교회 못 나오는 일이 없도록 김 목사는 헌금을 하지 말라고 독려(?)한다. 헌금 부담 때문에 교회 못 나오는 것보단 차라리 하나님 말씀을 한번이라도 더 듣게 하는 것이 목회자의 사명이라고 생각한 까닭이다. 현재, 교회는 귀농 2가정과 교회 인근 주민들, 공무원 가정 등 20여명이 출석해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다. 김 목사 1년에 1번씩 북한 땅과 철책이 보이는 통일전망대를 찾아간다. 굶주리고 있는 북한 주민들을 마음껏 먹이고 싶은데 안타까워 혼자 울고 내려온다. 또 세계 곳곳의 미(未) 전도 종족을 찾아 배불리 먹을 수 있도록 지원해 주고 싶은 큰 소망이 있다. 그래서 해외로 나갈 기회가 있으면 1달러짜리를 많이 바꿔서 나간다. 비판도 하는 이들도 있지만 복음을 30분 듣는 아이들에게 1달러씩 나눠줬다. 김 목사는 신령한 영적 양식인 복음을 전할 수 있어 좋고, 또한 가난한 아이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어 너무 기쁘다고 했다. 그는 또 우리가 전하는 복음이 너무나 좋지만, 머릿속 이론으로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며, 추상적이지 않고 현실적인 설교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말씀이 실생활에 이뤄질 때까지 무슨 일에든 중간에 평가하려 말고, 말씀을 보고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라고 강조했다. 그 말씀의 열매들을 분명히 거둬 본 체험들이 확실하기에 그의 설교는 힘이 있다. 그는 이후에 하나님 주신 복음을 인근에 소재한 안동대나 경북대 상주캠퍼스 대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열망을 갖고 있다.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야 할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자신이 받은 은혜를 더 많이 전해주고 싶은 열망 때문이리라. 그의 나이 50대 중반, 세월이 유수처럼 빠르다는 것을 느끼기에 더욱 시간의 소중함을 생각하고 믿음으로 달려가길 열망하는 김 목사의 꿈이 주님 안에서 조속히 이뤄지길 두 손 모아 기도해 본다. 김 목사의 가족으로는 강은숙 사모와 2남인 정혁(대전침례신학대학원 재학), 창혁(대학 2년)이 있다. 국사골양봉농원(대표 김경환 목사 010-3795-2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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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수고로 지역 명소를 만든 의성구세군교회한 사람의 수고로 지역 명소가 된 의성구세군교회 3일 만에 제작된 ‘마에스트로 J’ 의성구세군교회(담임사관 박근일)에는 빈 벽이 있다. 늘 그 자리에 있었지만, 그 누구하나 거들떠보지 않는 벽. 그 벽을 위해 한 화가가 대구에서 찾아왔다. 그는 3일 동안 벽만 바라보며, 묵묵히 붓을 대었다. 3일 동안, 지나가는 주민들이 한두번 ‘뭐하나’ 흘낏 쳐다볼 뿐. 3일 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빈 벽에 그림이 생겼다. 제목은 ‘마에스트로 J’ 의성구세군교회 박근일 사관이 ‘의성 주민 1인 1악기 프로젝트’를 표현한 것으로, 음악을 그림으로 알린 것이다. 지휘자는 ‘마에스트로’이신 예수님(JESUS) 3일전까지만 해도 아무도 쳐다보지 않던 벽이 이제는 교회의 포토죤이 되었으며, 새로운 사람이 오면, 늘 사진 찍는 포토죤으로 변화된 것이다. 존재감 없던 담벼락이 한 사람의 아름다운 수고로 이제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늘 쳐다보는 벽이 되었다. 볼품없었던 우리들에게 예수님이 손을 대시니 보배롭고 존귀한 존재가 된 것처럼, 볼품없었던 벽이 한 사람의 헌신으로 인해 이제는 의성에서 가장 신기하고 멋진 벽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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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굿뉴스’(gbhana.com) 인터넷신문 발행 시작인터넷신문 ‘하나굿뉴스’(발행인 윤형구)가 지난 10월 1일부터 새롭게 발행돼 독자들을 찾아가게 됐다. 이제는 정보도 무한 경쟁시대이다. 언론도 예외일 수 없다. 이에 경북하나신문 윤형구 발행인은 인터넷신문의 필요성을 느끼고 그동안 준비해 왔다. 따라서 이제는 경북하나신문의 모든 지면 기사는 더 많은 공유를 위해 ‘하나굿뉴스’(gbhana.com)를 통해 실시간으로 인터넷신문에 게시될 예정이다. 아울러 ‘하나굿뉴스’(gbhana.com)는 경북하나신문의 기사 외에도 매일 다양한 분야의 기사들이 업데이트된다. 이는 인터넷이라는 매체의 특성상 다수의 일반인 독자도 쉽게 매체를 접할 수 있기에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하나굿뉴스’의 뿌리와 정신은 경북하나신문에 두고 있기에 기독언론으로서의 목적과 방향은 경북하나신문과 다르지 않다. 윤형구 발행인은 “앞으로 경북하나신문과 하나굿뉴스가 충실한 기독언론 매체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해 경북을 넘어 한국 교계에서도 소금과 빛의 역할을 충분히 감당하는 정통언론이 되도록 교계 지도자와 성도들의 지속적인 기도와 관심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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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하나신문 초청, ‘제4회 친선 골프대회’ 열린다▲지난 5월 16일에 열린 ‘제3회 친선 골프대회’(1차) 참가자 경북하나신문(발행인 윤형구 장로) 초청 ‘제4회 친선 골프대회’가 오는 10월 31일(수) 구미CC에서 경북도내 목회자와 장로를 초청해 열릴 예정이다. 스포츠를 통해 지역 교계 지도자들의 사역을 위로하고 친선을 도모하고자 열리는 이 대회는 지난해부터 매년 봄과 가을에 열리고 있으며 점차 많은 목회자와 장로의 참여를 기대하고 있다. 지난 5월에 치러진 3회 대회는 1차와 2차에 걸쳐 6팀 24명이 참가해 경기를 진행했으며, 대회를 마친 후 성적에 따라 우승, 준우승, 메달리스트상, 행운상, 롱기스트상, 니어리스트상, 다버디상, 다파상, 다보기상 등이 수여된 바 있다. 지난 대회 우승은 이기우 장로(구미시민교회)에게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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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만평(경북하나신문 150호)이예진 기자의 하나만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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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지를 찾아서(2)-엄주선 강도사경북 유일 6.25전쟁 순교자 ▷ 엄주선 강도사 순교 이야기 엄주선 강도사는 1919년 5월 23일 경북 의성군 다인면 봉정동에서 출생했으며, 1935년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부친과 함께 고향 다인면 봉정동에서 예천 상락교회까지 걸어서 믿음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일제의 수탈로 부친과 함께 만주 봉천(현, 심양)으로 건너가 봉천에 있는 서탑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며 교회를 섬기다가 해방을 맞아 귀국했다. 엄 강도사는 대구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복음을 위한 소명감에 불타 1949년 12월 장로회신학교(현, 장로회신학대학교)를 졸업하고(제43회), 1950년 5월 목사고시에 합격했다. 이후 1950년 12월 청송 화목교회를 시무하다가 1951년 2월 17일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홀로 기도하던 중, 갑자기 들이닥친 공산군 패잔병들에 의해 납치를 당했다. 엄 강도사는 함께 납치돼 끌려가던 내복 차림의 신중건 씨에게 대한(大寒)의 추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겉옷을 벗어서 입혀주는 사랑을 베풀었다. 또한, 엄 강도사는 인민군 10사단장 김두봉에게 “민족끼리 총부리를 겨누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복음을 전했으며, “예수를 안 믿겠다고 약속하면 죽이지 않고 집으로 돌려보내 주겠다”는 회유를 거절했다. 결국, 엄 강도사는 춘산면 옥정동(바랑골)에서 죽창으로 19군데를 찔린 채 순교를 당했다. 이후 공산군이 퇴각하자 화목교회 박치환 장로, 양재관 장로, 엄규영 영수(부친)가 사체를 찾아냈으며 박도선, 양원석, 김상정 집사 등이 현장에서 시신을 수습, 청송군 화목교회로 운구하여 경북노회 순교자장(葬)으로 장례를 치렀다. ▷ 엄주선 강도사 순교사적지 지정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총회는 지난 2012년 5월, 엄주선 강도사의 숭고한 사랑과 순교 정신을 기리고자 의성군 춘산면 순교지와 청송군 현서면 순교테마공원을 한국기독교사적지 10호, 10-1호로 각각 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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