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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선교 초기의 기독교 모습들(4)안동선교 초기의 기독교 모습들(4) 김승학 목사 신학과 교수/기독교교육학 안동교회 담임목사 목차 서문 1. 안동 땅을 밟은 첫 선교사, 베어드 2. 첫 교회들, 비봉·국곡·풍산교회 3. 안동지역 최초의 학습자, 홍재삼 4. 안동선교부 초대 주재선교사, 소텔 5. 안동지역 첫 선교사 사택, 휴게가옥 ............................................... 13. 최초 성경학교, 안동여자성경학교 결론 5. 안동지역의 첫 선교사 사택, 휴게가옥(Rest House) / 1909년 1908년 9월 장로교 선교사 정기총회는 안동선교부 설립을 결정하고 안동에 선교사 휴게가옥(Rest House)을 구입하기로 결정한다. 휴게가옥은 안동에 도착한 선교사들이 머물면서 선교전략을 세우고 휴식을 취하며 성경공부 등을 통해 이미 존재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의 신앙교육을 위해 꼭 필요한 거처였다. 그 결과 그해 12월 브루엔 선교사와 소텔 선교사는 안동을 방문하여 선교사들이 머물 휴게가옥을 구입했다. 웰번 선교사의 선교 보고를 토대로 쓰여진 에비 여사(웰번 선교사의 손녀)의 책은 1908년 12월 선교사를 위한 한 채의 가옥을 이미 구입했음을 분명히 밝힌다. 휴게가옥의 구입이 속전속결로 진행된 이유는 안동선교부의 구성과 활동을 위해 그만큼 중요한 과제였기 때문이다. 1909년 8월 8일 주일 기독서원에서 첫 예배를 드린 안동교회는 1년이 지난 후 무려 75명이 모여 예배를 드렸다. 5칸의 작은 기독서원은 예배드리기에는 너무도 공간이 협소하게 되었다. 따라서 교회 신축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장 마땅한 예배처소가 없었기 때문에 선교사들이 거주하고 있던 임시주택으로 예배처소를 옮기게 된다. 안동교회 80년사나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오늘날 안동교회 부지 안에 선교사 임시주택(구 교육관 건물 자리)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안동교회 80년사는 그때의 상황을 이렇게 진술한다. “안동교회는 처음에 매서 김병우의 인도로 서원(기독서원)에서 모이다가 그해 11월 원주 주재 선교사 오월번 목사와 조사 김영옥 씨가 내안(來安)하여 정착케됨으로 교회를 인도하기에 이르렀다. 선교사들의 임시주택(1910년)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니 장소는 현 교육관 자리에 있었던 한옥집이었다.” 김광현 목사는 그의 저서인 ‘이 풍랑 인연하여서’에서 이 사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그 해에 안동에 새로 선교부가 설치되었다. 선교부는 선교사 임시주택으로 쓰기 위하여 바로 그 서점 북쪽에 있던 큰 기와집 두 채를 사들여 수리를 하고 한 집(옛 교육관)은 독신 선교사였던 별리추 의사(플레처 의료선교사)와 권찬영 목사(크로더스 선교사)가, 다른 한 집(지금의 예배당 자리)은 오월번 목사(웰번 선교사) 가족이 살게 했다. 그래서 서점에서 모이던 교회는 선교사들의 임시주택인 별·권 양씨가 사는 집에서 모이게 되었다.” 1910년 2월부터 3명의 선교사들이 모두 안동에 체류함으로써 안동선교부가 정상적으로 운영되기 시작하자 몇 채의 선교사 사택이 필요하게 되었을 것이다. 두 채의 가옥을 구입했다는 김광현 목사의 진술과 달리 에비여사는 세 채의 가옥을 구입했음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안동선교부를 시작할 때 하나님의 압도하는 섭리에 의해 선교사들이 거주하기에 가장 편안한 가옥을 구입했다. 18칸짜리 기와지붕의 한옥을 구입해 선교사 가정이 거주할 수 있도록 수리를 하고, 다른 두 채의 한옥도 구입하여 사용할 수 있도록 수리하였다.” 1908년 1911년 3·4월 선교캘린더에 수록된 <사진 4>는 플레처 선교사와 크로더스 선교사가 사용한 임시 선교가옥이었음을 추정하게 한다. <사진 4>에는 당시 의료선교사인 플레처 선교사와 크로더스 선교사가 머물렀던 임시 선교기지 내 가옥 앞에서, 플레처 선교사가 검은색 양복을 입고 손을 뒤로 한 채 서 있는 장면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이 가옥이 안동선교부 설립이 결정된 후 최초로 구입한 휴게가옥, 첫 선교사 사택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독신인 안동성소병원의 초대 원장 플레처 선교사와 크로더스 선교사의 임시 선교기지로 사용된 가옥의 일부로 여겨진다. 웰번 선교사의 편지는 이 가옥에는 200명이 충분히 앉을 수 있는 대저택으로 기술하고 있는데, 이 주택이 안동에서 최초로 구입한 휴게가옥인 것으로 추정된다.(사진 4) /논문 발췌‧정리=박은숙 기자/ <논문 원본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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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선교 초기의 기독교 모습들(3)안동선교 초기의 기독교 모습들(3) 김 승 학 신학과 교수/기독교교육학 안동교회 담임목사 목차 서문 1. 안동 땅을 밟은 첫 선교사, 베어드 2. 첫 교회들, 비봉·국곡·풍산교회 3. 안동지역 최초의 학습자, 홍재삼 4. 안동선교부 초대 주재선교사, 소텔 5. 안동지역 첫 선교사 사택, 휴게가옥 ............................................... 13. 최초 성경학교, 안동여자성경학교 결론 4. 안동선교부 초대 주재선교사, 소텔 / 1908년 대구에서 안동까지의 거리는 무려 120Km나 되는 원거리이기 때문에 대구선교부는 1908년 안동에 선교부를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안동선교부는 미국 북장로교가 평양, 부산, 대구, 청주, 선천에 이어 조선 선교부 산하의 6번째 개설된 지역선교부였다. 당시 대구선교부에 주재하던 소텔 선교사는 안동주재 선교사로 임명을 받아 1908년 12월 1일 대구를 출발하여 안동에 도착했다. 180Cm의 장신인 소텔 선교사는 대구선교부에서 만물박사로 통할 정도로 다재다능하여 사택이나 건물에 기계적 문제가 있으면 거뜬히 해결했고, 동산병원에 물을 공급할 수 있는 작은 풍차를 만들기도 했다. 거룩한 꿈을 갖고 안동에 도착한 소텔 선교사는 선교기지가 될 임시주택 한 채를 구입했는데, 그 위치는 지난 2009년 7월 철거된 안동교회 교육관 자리로 추정된다. 이처럼 안동교회가 현재 서 있는 터는 안동선교부가 시작한 곳이며, 동시에 안동선교의 시발점, 자궁과 같은 근원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1909년 9월 강원도 원주가 감리교 구역으로 확정이 되자 원주에서 사역하던 미국 장로교의 웰번 선교사, 김영옥 조사, 그리고 플레처(A.G. Fletcher) 의료선교사도 안동으로 이주함으로써 소텔 선교사는 힘을 얻게 된다. 그 결과 안동선교부는 3명의 선교사를 갖춘 공식적인 선교부로 출범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안동에 그리스도인 스스로 예배를 드리는 교회가 좀처럼 세워지지 않자 선교부의 활동이 주춤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1909년 8월 두 번째 주일에 8명이 모여 감격스러운 첫 예배를 드림으로써 안동교회가 출범하게 되었다. 안동교회의 첫 예배는 선교부에도 힘을 실어주었다. 더욱이 원주에서 이주한 웰번 선교사와 조사인 김영옥은 예배를 인도하기도 했다. 안동교회의 설립은 선교사들에게 용기를 주었으며 선교부가 침체를 벗어나 전도에 활기를 띠게 했다. 그 결과 소텔 선교사와 웰번 선교사는 전도구역을 분할하여 1909년 9월부터 북쪽은 소텔 선교사가, 서쪽은 웰번 선교사가 책임지고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길을 떠난 지 10일 만에 소텔 선교사는 장티푸스에 걸려 돌아왔고, 약 1달 동안 치료를 받았지만 1909년 11월 16일 27세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아내인 맥클렁(K.M.McClung) 선교사는 남편 묘비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나는 그들을(조선인을) 사랑하겠노라(I am going to love them)” 안동 선교부의 초대 선교사로 부임한 소텔 선교사가 1909년 11월 16일 장티푸스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자 안동 선교부의 정상적인 선교활동은 다소 지연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순교의 피가 뿌려진 지 2개월도 채 지나지 않은 1910년 1월 크로더스(권찬영, J.Y. Crothers) 선교사가 안동에 부임함으로써 안동선교는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특히 소텔 선교사와 크로더스 선교사는 동서 사이로 크로더스 선교사는 소텔 선교사 부인의 언니인 엘렌 맥클렁의 남편이다. 그 결과 안동을 향하신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어떠한 단절도 없이 계속될 수 있었던 것이다. 크로더스 선교사는 1952년 은퇴하기 전까지 40여 년 동안 안동에 머물면서 복음을 전해 Mr. 안동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안동을 사랑했고, 지역사회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았다. 소텔 선교사가 안동에 부임한 후 1년도 넘기지 못해 중단할 위험에 빠져있던 복음사역을 이어받은 크로더스 선교사는 무려 40년 이상 사역을 잘 감당함으로써 두 선교사는 합력하여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이루어가는 거룩한 도구가 되었던 것이다. ▲ 1909년 9월부터 안동의 북부지역은 소텔 선교사가, 서쪽은 웰번 선교사가 책임지고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사진은 전도여행을 떠나기 전의 모습으로 추측된다. 왼쪽 말에 탄 사람은 소텔 선교사이며 말 옆에 있는 사람은 당시 조사인 김영옥(1911년 안동교회 초대담임목사가 됨)과 이름을 알 수 없는 마부, 그리고 오른쪽 말에 탄 사람은 웰번 선교사이다.(사진 3) /논문 발췌·정리=박은숙 기자/ <논문 원본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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