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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겸손한 자와 교만한 자「겸손한 자와 교만한 자」 하 승 무 목사 한국장로회신학교 교수, 역사신학자 겸손한 자는 타인으로부터 오는 그 어떠한 인간적인 평가나 가치에 귀기울이거나 주목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음해를 당하여 아주 몹쓸 사람으로 낙인이 찍힐지라도 겸손한 자는 고난의 복을 기꺼이 감내합니다. 이는 서로 속고 속이는 처음과 끝을 하나님께서 속속히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만한 자는 성경의 진리를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재단하여, 자신의 판단을 성경적인 가르침으로 알고 자신도 속고 타인도 속이는 죄를 거침없이 행하기에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교만한 자의 특징은 입술로는 하나님을 외치지만, 정작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가르침은 거부합니다. 성경의 자증과 교회 역사가 진술하는 바른 신앙의 유산에 대해서 주목하거나 자세히 살피지도 않으며, 자신의 판단과 경험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아예 무시해버립니다. 때로는 유리한 것만 적용하여 합리화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타인에게 전파하여 성경의 진리로 둔갑시키기까지 합니다. 성경은 교만한 자의 절정적인 형태를 거짓 선지자, 거짓 목자 심지어 적그리스도로 규정합니다. 각 시대마다 이들은 고난보다는 언제나 진리가 사라진 평안과 평화만을 외쳤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할 것입니다. 교만한 자의 모습이 아무리 좋아보일지라도 그 끝은 결코 좋을 수가 없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지름길’(잠16:18)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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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구원의 또 다른 이름, ‘성도’구원의 또 다른 이름, ‘성도’ 하승무 목사 한국장로회신학교 교수, 역사신학자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가장 감격해야 할 단어 하나를 꼽는다면 무엇이겠습니까? 그 이름은 바로 ‘성도’(Saint)입니다. 성도는 구약의 세계관에 속한 것이 아니라, 신약의 세계관에 속한 성경적으로 완결된 용어입니다. ‘성도’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 속에는 그리스도교의 주요 핵심 개념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측면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측면에서 볼 때 ‘은혜’, ‘선택’, ‘구원’이라는 개념입니다. 둘째는, 사람의 측면에서 의미적으로 ‘중생한 자’, ‘하나님의 자녀’, ‘그리스도의 지체’를, 어의적으로는 구약의 ‘카도쉬(קֹדֶשׁ)’(역대하6:41, 시16:3)를 사도 바울이 헬라어 ‘하기오스’(ἅγιος.)라는 단어로 전의(轉義)한 ‘구별된 자’, ‘거룩함을 받은 자’라는 의미가 적용되어 그리스도교의 고유개념으로 확정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어의적인 의미의 전환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오직 주님으로 고백하는 신앙고백 공동체의 성도라는 의미가 전제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는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성경은 성도가 ‘믿기로 작정된 자’(행13:44-52)로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1:17-18)는 ‘칭의된 의인’ 즉 성도로서 세상과 구별하여 창세 전에 이미 택함(엡1:4)을 받았다고 가르칩니다. 신약시대 이래, 택함을 받은 믿음의 성도는 주님을 영접한 그 순간부터 기존의 세상 방식이나 자신의 방식대로 살지 않기 위해 믿음의 실천적인 삶을 이 땅에 사는 동안 끝까지 견지했습니다. 성경의 가르침에 반하는 그 무엇과도 타협하지 않으려고 말씀에 능동적으로 순종했습니다. 설령, 세상의 기준과 세상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성경이 금하는 불법한 죄에 빠지지 않으려고 했으며, 때로는 세상의 유혹과 불이익에 굴복하였을 경우에도 성도라면 반드시 불의한 사실 하나하나(case by case)를 회개하고, 동일한 죄를 더 이상 짓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혹여라도 동일한 죄를 반복하였을 경우라도 끝내는 죄습(罪習)의 고리를 끊고 성도로서 믿음의 행위를 실천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선택받은 믿음의 성도라면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까지 변함없는 성경의 가르침에 끝까지 순복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약2:26)이라고 했습니다. ‘죽은 믿음’의 소유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결코 자신을 내려놓지 않습니다. 주님의 가르침에 굴복하지도 않습니다. 이는 무늬만 성도요, 겉모습만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입니다. 믿음과 행위는 결코 분리될 수 없는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지난날 믿음의 선친들은 주님을 따르기 위해 목숨까지도 초개같이 버렸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현대교회의 상황을 보면 ‘성도’의 의미는 종교공동체의 하나로 분류된 교회 조직의 대중을 이루는 ‘교인’이자, 기독교 교단의 지 교회에 속한 ‘회원’ 정도로 인식되고 격하되었습니다. 한국교회는 지난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한국사회를 견인해 가는 도덕적이고 모범적인 양심공동체로 선도적인 주류였습니다. 하지만 세속적 부흥주의가 교회로 유입되면서 교인 수와 예배당의 규모가 곧 교회 성장의 지표가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한국교회는 지난날 1902년~1907년 원산과 평양에서 폭발적으로 일어난 회심을 통한 성경적 부흥이 아닌, ‘예수만 믿으면 복 받는다’ ‘예수 믿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물질적 기복주의와 번영론이 ‘교회됨과 성도됨’의 척도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와 기독교인의 모습은 ‘세속적인 것과 구별할 수 없다’가 교회 밖의 인식입니다. 현재 우리는 코로나 시대라는 엄중한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코로나 시대를 통과하면서 일부 대형교회와 기독교 극우단체를 중심으로 마치 한국교회가 정부와 한국사회를 향한 대결 양상으로 비쳐짐으로 교회 밖의 부정적인 인식은 더욱 강화됐습니다. 사단 마귀는 이를 반기독교 세력을 더 규합하고 확장하는 빌미로 삼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코로나19를 통해 한국교회에 주시고자 하는 메시지는 교회와 성도됨의 본질인 ‘거룩성’과 ‘순결성’의 회복임을 깊이 상고해야 할 것입니다. 더 이상 한국교회가 세상과의 논쟁에 뛰어드는 것은 결코 아무런 유익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다음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에 귀 기울일 것을 권면합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10:16)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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