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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노회 피택 항존직분자 교육 실시예장통합 영주노회 하반기 피택 항존직분자(장로/권사/집사) 교육이 8월 22일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3시 30분까지 영주제일교회(담임목사 금교성) 베어드홀에서 실시됐다. 영주노회 교육자원부(부장 김한식 목사) 주관으로 시행된 이번 교육에는 90여명의 피택자들이 참석해 직분을 감당하는 데 필요한 내용을 배우고 익히는 시간을 가졌다. 교육에 앞서 드린 경건회는 교육자원부 총무 신용균 목사의 인도로, 회계 박재실 장로의 기도, 교육자원부장 김한식 목사의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라는 제목의 설교 후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교육 일정은 총 다섯 번의 강의로 진행했다. △구약성경개론(신용균 목사) △가정과 사회생활, 전도 실제(오주엽 목사) △봉사와 헌금 실제(박재실 장로) △예배와 기도 실제(박지현 목사) △신약성경 개론(김한식 목사). 이후 수료식에서는 교육을 마친 피택자들에게 수료증서를 전달하고 격려하는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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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무리의 본이 되라이 정 우 목사 안동서부교회 1931년에 발표된 ‘하인리히 법칙’에 따르면, 큰 재해는 우연히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그전에 사소한 사건 징후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전조증상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당하는 여러 가지 문제는 반드시 전조증상이 있기 마련이라는 결론을 얻게 됩니다. 오늘의 정치 경제 사회 및 종교의 전조증상은 지도자의 탈선 모습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지도자가 건강하면 미래는 밝고 모든 사람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도자들의 편법과 탈선의 증상들이 나타나면, 여러 면에서 경고성 징후들이 사회와 종교면에서 좋지 못한 일들이 나타나게 된다고 봅니다. 지도자가 지녀야 할 조건과 덕목을 베드로 사도는 신약성경 베드로전서 5장 2절에서 4절까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 성경이 말하는 지도자의 모습은 첫째, 지도력을 행사할 때에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둘째, 이권이나 더러운 이익을 위하여 하지 말고 오로지 사명감으로 즐겁게 하라는 것입니다. 셋째,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로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지도자의 유형을 분류할때에 3가지로 분류합니다. 첫째는 권위주의적인 지도자, 둘째는 방임형 지도자, 셋째는 민주적 혹은 공동체적 지도자입니다. 이들 세 가지 유형의 지도자들 중에 바람직스러운 유형은 세 번째 유형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권위주의적인 유형의 지도자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책임을 지지 않는 방임적인 지도자들이 대부분입니다. 성경은 참다운 지도자는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본이 된다” 할 때의 ‘본’이란 말의 원어에서의 의미는 인감도장에 해당하는 말입니다. 인감도장은 한번 정하면 계속하여 그도장을 사용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지도자는 구성원 모두가 본받을 수 있는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바람직한 지도자는 자신이 앞장서서 실천하여 삶의 본을 보임으로, 다른 사람들이 그의 삶의 모습을 보고 본받아 따를 수 있도록 하는 지도자입니다. 우리는 이런 지도자를 얻을 수 있도록 기도하고, 스스로가 본이 되는 삶을 공동체 속에서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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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울리는 자들의 불행예수님을 울리는 자들의 불행(누가복음 19장 41~44절) 장 재 효 목사 서울성은장로교회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41~42절)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을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43~44절) 성경은 성령에 사로잡힌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여진 하나님 말씀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이루는 하나님의 능력’(롬1:16)이 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믿음으로 행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아무런 유익이 될 수 없고, 또 그 말씀을 불순종하게 될 때 심판과 형벌이 훗날에 임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듣는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고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계1:3)고 말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는 자가 아니라 주신 말씀을 깨달아 복을 받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1. 애통한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신 예수님 본문에 예수님께서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41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감람원이라 불리는 산 쪽에 있는 벳바게와 베다니에서 떠나 예루살렘 성에 가까이 이르자 그 성을 보시며 애통하는 마음으로 우신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을 거부하고 불순종하는 자들로 인해 예루살렘 성이 무너질 것을 아시고 안타깝게 여기시며 눈물을 흘리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눈물을 흘리신 기록은 본문 외에 요한복음 11장에도 나옵니다.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가 병들자 그 누이들이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 이 사실을 알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이 되어서야 그들에게 찾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을 보고 마리아가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를 어디 두었느냐” 하시니, 그들이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고 대답했고 예수님께서 눈물을 흘리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눈물을 흘리신 이유는 나사로의 죽음을 슬퍼해서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나사로가 죽기를 기다리셨다가 다시 살리러 가신 것으로, 나사로의 죽음을 슬퍼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거기 모여서 통곡하는 그 사람들을 보며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생명을 살리시는 분이심을 믿지 못하고 절망하는 모습에 애통하는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눈물을 흘리신 것은 요한복음과 본문의 내용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죄인들로 인해 애통해하시는 눈물임을 알아야 합니다. 2. 예수님을 울리는 자들의 불행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이 무너질 것을 예언하신 내용은 이전 바리새인들에게 심판하실 것을 미리 알려 주신 내용이기도 합니다. 눅13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향해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9개월쯤 전에 하신 말씀입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스스로 잘난 척하며 예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오히려 백성들을 미혹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한데도 예수님께서는 암탉이 그 새끼를 낳아 날개 아래 품으려 한 것같이 이들을 향해 불쌍히 여기시어 수없이 회개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돌아오지 않는 그들에게 심판이 있음을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바로 그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셨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시며 결국 심판이 임할 것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도 자기 욕구를 쫓아 자기 방식대로 살겠다고 고집하면서 예수님 안에 들어가지를 않았습니다. 그 결과로 ‘그들의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가 될 것이다’고 예수님이 예언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들어오도록 우리를 부르실 때 속히 회개하고 죄를 용서받으면 멸망당하지 않고 예수님과 함께 영원히 삽니다. 이것이 복음의 진수이며 핵심입니다. 3. 예루살렘 성의 멸망 예수님께서 그 성을 보고 우시며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42~44절) 하신 것은 앞으로 되어질 일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또 어떤 사람들이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을 것인지 묻자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눅21:20)고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때가 A.D 30년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40년 뒤 A.D 70년에 로마의 티투스장군에 의해 예루살렘 성이 무너지게 됩니다. 티투스장군이 대군을 거느리고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며 아무도 들어가지도 나가지도 못하게 토성을 쌓습니다. 그러자 안에 갇힌 사람들이 굶어 죽게 되어 자녀들을 서로 잡아먹게 되는 비극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또 예수님이 예언하신 그대로 예루살렘 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기지 않고 무너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안에 들어오라 하실 때 회개하고 들어가는 사람은 심판도 지옥도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서 이미 영생에 들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아니할 때 하나님의 심판이 다가옵니다. 예수님의 경고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이처럼 심판의 날이 임한다는 것을 깊이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4.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 예수님이 골고다로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길에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오고 있었습니다.(눅23:27) 예수님은 울고 있는 그들을 향해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28절)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그들에게 왜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예수님을 따라왔던 여인들은 예수님을 위해 헌신해 온 여인들로, 십자가를 지고 죽임당하실 예수님의 고통에 슬피 울었던 것입니다. ‘나를 위하여 울지 말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그 길을 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너희와 너희 자녀들을 위하여 울라’는 말씀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친히 죄인들을 위해 대신 벌 받아 주기 위한 목적이므로 ‘너희와 너희 자녀들을 위해 능히 죄를 용서받기 위하여 회개의 눈물로 애통하고 자복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나와 나의 자녀들을 위해 철저히 회개하는 애통의 눈물을 흘려야 마땅할 것입니다. (권면의 말씀) 신약성경에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3:9)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신다는 약속은 어떤 사람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잊혀진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시려고 오래 참으시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겔18:23)고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악인이라 할지라도 심판하시길 원하지 아니하며, 오히려 회개하여 그 죄악의 길에서 떠나 살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본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할 기회를 주었는데도 끝내 돌이키지 아니하면, 본문 말씀처럼 예루살렘 성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또한 명심해야 합니다. 이 시간 우리에게 주신 기회를 놓치지 말고 속히 회개하시어 죄를 용서받고 예수님 안에 거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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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쓰임 받음을 감사하나님께 쓰임 받음을 감사(누가복음 1장 26~38절) 장 재 효 목사 서울성은장로교회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31~33절)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35, 37절) 교회를 다니다 보면 부모님 사이에서 나를 잉태하게 하신 이가 하나님이시고, 태중에서 육체의 형체가 이루어져서 내가 출생하게 된 것이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였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내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서 세우신 계획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 신념으로 살던 세상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고,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순종하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그렇게 나를 쓰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보내셨다는 것을 알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께서 처녀 마리아를 택하시고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이루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듣는 우리도 이 시간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깨닫고 그 뜻에 나를 온전히 맡겨드리는 신앙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마리아 본문에 등장하는 마리아라고 하는 여인은 처녀로서 요셉이라고 하는 목수 직업을 가진 사람과 약혼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의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 마리아를 향하여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28절)라고 말합니다. 이에 마리아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 된 일인가 하고 생각합니다. 그러자 또 천사가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30~31절)고 전합니다. 이 예수님에 대해 마태는 “이는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니라”(마1:21)고 기록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혈통적 후손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인 메시아를 보내주시겠다고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선지자를 통하여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약속을 마리아를 통해 이루려 하시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마리아는 아직 결혼 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자를 알지 못한 상태인데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겠는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때 천사는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라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35,37절)고 말합니다. 사실 예수님의 탄생은 요셉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직 성령으로 되어진다는 것을 마리아는 미처 몰랐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마리아를 택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 하심은, 그 시대에 많은 처녀가 있었지만 그중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하는 일에 마리아가 가장 하나님의 기대에 합당하게 보여졌기 때문이었습니다. 2.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마리아 천사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들은 마리아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해보건대 약혼한 남자가 있었기에 이를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그 당시는 율법이 엄중했었기 때문에 처녀나 약혼녀가 아이를 갖게 되면 사람들이 몰려가 돌로 쳐 죽이도록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마리아는 약혼녀로서 아이를 가지게 되면 필경 파혼당할 것이고, 그 이후 어찌 될 것인가에 대해서 상당히 인간적인 걱정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마리아가 망설이는 중에 천사 가브리엘이 설득을 합니다.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36~37절)고 하나님의 뜻을 전합니다. 이에 마리아는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38절) 하고 결국 순종하였습니다. 우리 믿음이 하나님 마음에 들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일에 나를 쓰고 싶다고 하시면 여러분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겠습니까? 대부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외면하기가 쉽습니다. 우리도 이따금 그럴 때가 있습니다. 내가 먹고사는 문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할 입장 등 모든 육신의 현실적 형편들이 우리를 주저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내 생명을 드리며 하나님께 쓰임 받는다는 것은 기쁜 일입니다. 생명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 하나님이 나를 쓰기를 원하실 때, ‘너는 내 것이라’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저와 여러분은 모두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다는 것을 믿으며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 뜻에 쓰임 받기로 승낙합니다. 여기서 마리아의 순종은 율법에 의해 죽임을 당할 수도 있으나 자기가 죽을 각오로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는 고백을 한 것입니다. 3. 하나님께 쓰임 받은 마리아 하나님의 말씀대로 마리아는 예수님을 성령으로 잉태하게 됩니다. 그러자 마리아는 그의 친족인 엘리사벳을 찾아갑니다. 엘리사벳 뱃속에는 이미 6개월 전에 세례 요한이 잉태되어 자라고 있었습니다. 마리아를 만난 엘리사벳은 성령이 충만하여 큰소리로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 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42~45절) 하고 말했습니다. 엘리사벳은 예수님을 잉태한 마리아에게 복을 빌어 주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마리아가 하나님께 찬송 기도를 올립니다.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46~48절) 하고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이는 마리아 자신이 비천한 존재였는데도 능하신 하나님께서 큰일을 자신에게 행하신 것에 대해 하나님을 높이며 찬송한 것입니다. 4. 마리아가 받은 축복 하나님 말씀에 순종한 마리아를 하나님께서는 늘 함께 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리아를 죽을 위기에서 건져 주셨고, 또 요셉과 결혼하여 낳은 아들들을 귀하게 쓰셨습니다. 그 아들 중 야고보는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로 신약성경인 야고보서를 썼고, 동생 유다는 유다서를 썼습니다. 마리아는 성령의 충만한 복도 받았습니다. 사도행전 1장에 보면 제자들과 함께 여자들, 예수의 모친 마리아, 예수의 아우들이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에 힘썼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곳에 모인 무리의 수가 약 백이십 명이나 되었는데 오순절 날이 이르자 그들이 모두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마리아도 성령을 받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이 된 것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을 당하실 때도 끝까지 그 곁을 지킨 여인이었습니다. 그런 어머니를 지켜보신 예수님께서 마리아를 향해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라고 말씀하시고, 제자 요한에게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시며 마리아를 잘 돌보아 줄 것을 부탁합니다. 운명하시기 직전에 아들의 도리를 다하신 것입니다. (권면의 말씀) 우리가 하나님이 쓰시겠다고 하는 일에 헌신하기로 작정하고 ‘하나님 부족한 종을 원하시는 대로 쓰시옵소서’ 하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그 인생을 능력의 손으로 붙들어 쓰실 것입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손은 만유보다 크십니다.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요10:29)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불행한 모든 것을 미리 막아 주시고, 필요한 것을 채워주시며, 눈동자같이 보살펴 주시고, 그 인생을 책임져 주십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이 위험천만한 생지옥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오늘의 인생들에게 가장 안전한 구원의 보장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리아는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했습니다. 우리 또한 육신으로는 혹시 죽임을 당한다고 해도 예수님 안에서 성령에 이끌려 살아가며, 반드시 하늘나라 간다는 확신 속에서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며 사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런 사람만이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고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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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 주기철목사수난기념관 건립 사업 활성화2022년 하반기 완공 목표 … 기독교역사 물품 기증 받는다 ▲주기철목사수난기념관으로 활용될 옛 의성경찰서.(사진=주기철목사수난기념관사업회 제공) 일제강점기 때 사용한 옛 의성경찰서는 주기철 목사의 남한 유일 수난지로서, 경중노회(노회장 추성환 목사)가 중심이 된 의성지역 기독교계의 노력으로 의성군 차원에서 주기철목사수난기념관 건립이 추진되고 있다. 지난 4월 21일(화)에는 이 기념관이 들어설 옛 의성경찰서 건물 복원과 신축 건물 설계를 맡을 건축사 EMA 대표와 의성군 관계자, 주기철목사수난기념관사업회(회장 신칠성 장로)가 만나 기념관을 올해 하반기에 착공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기념관은 2022년 하반기까지 완공을 목표로 의성군 예산 35억을 들여 지어질 예정이다. 한편, 경중노회는 이에 앞서 지난 4월 7일(화) 노회 회관에서 개최된 제132회 정기노회에서 기념관에 전시될 기독교역사 물품을 기증한 기증자들을 초청해 감사의 뜻을 표했다. 옛 의성署 건물 복원 35억원 투입 2022년 완공 목표 올 하반기 착공 초기 기독교 역사물품 기증 줄이어 지역 기독역사 산교육장 되길 기대 이날 정문섭 장로(탑리제일교회 은퇴)는 1920년대 발행으로 추정되는 구세군 노매실교회 설립자 박시학(1887~1959) 정교 유품인 ‘관주 신약성경’(눅1장~벧전5장) 1권, 이수석 장로(하령교회 원로)는 1922년도 발행 인쇄된 신약주석(에베소서~계시록) 1권을 기념관사업회에 기증했다. 하령교회(서정일 목사)는 일제강점기 때 사용했던 강대상(제작연도 미확인)과 강대상 의자(1960년대 제작)를 기증했다. 위 기증된 물품들은 주기철목사수난기념관에 지어질 의성기독교역사관에 전시된다. 사업회는 향후 부산에서 올라온 베어드 선교사의 여정을 통해 의성지역에 복음이 들어온 때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대구‧경북지역 교회사 관련 역사물품들을 이곳에 전시할 예정이다. 특히 사업회는 타 기념관과는 차별을 두기 위해 주기철 목사 관련 자료는 물론, 경북 유일 신사참배 순교자 권중하 전도사, 의성농우회 사건 중심인물인 유재기 목사 등 교역자 관련물이나, 기독교 관련 서적, 사진, 교회 회의록, 교회 일지, 주일학교 관련물 등 기념이 될 만한 물품을 제한 없이 기증받기로 했다. (기증 문의는 010-3815-0802 추성환 목사). 한편, 본 주기철목사수난기념관이 들어설 옛 의성경찰서는 당시 일제에 항거한 애국지사들이 갖은 고문과 수난을 당했던 애국 애족의 장소로 기독교 역사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곳이다. 특히 신사 참배를 거부해 평양에서 의성으로 압송당한 순교자 주기철 목사와 당시 의성 춘산면 지역에서 목회했던 권중하 전도사가 온갖 박해를 당했던 곳이다. 이에 예장(합동) 총회는 2017년 9월 21일 제102회 총회에서 이곳을 한국기독교역사사적지 제4호로 지정해 기념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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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먹는 것도 예배입니다.밥을 먹는 것도 예배입니다. 천석길 목사 구미남교회 신약성경의 복음서를 읽어보면 예수님의 사역에는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함께 식사하는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도 식사를 하셨고, 세리와 같은 죄인들과도 식사를 하셨고, 제자들과 마지막 시간을 보낼 때도, 또 부활 후 다시 만나서도, 그리고 베드로의 실수를 위로하시고 다시 사명을 주실 때도 언제나 식사의 자리에서였습니다. 식사하는 모습이 그렇게 자주 등장한다는 것은 밥을 같이 먹고 싶어 했던 예수님의 의도였다는 것과 교회와 밥은 떼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마침내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오순절을 통해서 교회가 시작되자마자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제자들은 일제히 ‘집집이 돌아가면서 빵을 뗐다(행2:46)’고 했습니다. 즉, 집집이 돌아가면서 식사를 준비함으로써 서로를 향한 사랑을 확인하였으며, 자연스럽게 교회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공동체가 함께 먹는 밥의 중요성은 예수님이 강조하시기 전에 이미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 앞에 나와서 함께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라(신12:7)’고 하실 때 하나님은 이미 밥을 함께 먹는 것을 예배의 연장 선상에서 가르치셨습니다. 식사가 거룩한 예배라는 것을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은 구약성경을 통해서 알았기 때문에 예수님이 거룩하지 않은 사람들과 식사를 하는 것을 볼 때 그토록 기겁을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식사는 우리끼리의 식사가 아니라 구원받아야 할 사람들을 불러 앉히고 함께 은혜를 누리며 앞으로 다가올 영원한 천국의 잔치를 맛보여 주고 싶어 했던 마음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영적인 의미를 안다면 우리는 목장과 교회에서 하는 식사를 거룩한 차원에서 보아야 합니다. 즉, 목장에서 섬기는 마음으로 정성스럽게 차린 밥상에 함께 앉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누리는 거룩한 예배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를 드리기 전에 형제와 화해하라는 말씀을 기억하고 함께 밥을 먹으며 미운 마음 불편한 마음으로 먹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공동체의 식사는 목자의 가정에서만 일방적으로 준비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구원받은 주의 백성으로서 우리가 함께 예배에 참여한다는 마음이 있다면 기꺼이 우리의 집을 열어서 섬김을 준비하는 것이 예배자의 자세이기 때문입니다. 집집이 돌아가면서!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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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지를 찾아서(11) - 아펜젤러 순직기념관“감리교 최초 선교사 아펜젤러” 아펜젤러(H.G.Appenzeller, 1858~1902) ▷아펜젤러 선교사 소개 아펜젤러 선교사는 미국감리교 선교회에서 한국에 공식적으로 파견한 최초의 선교사이다. 그가 미지의 한국 땅에 첫발을 디딘 것은 1885년 4월 5일 부활절이었다. 그날 제물포에 들어온 외국인은 아펜젤러 부부를 비롯해 미국 장로교 언더우드 선교사였다. 아펜젤러는 한국에서 17년 동안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는 우리나라 신교육의 효시가 된 배재학당을 세워 교육에 힘썼으며 정동제일교회 설립, 독립협회 지원, 신약성경 한글 번역, 지방 순회 전도활동, 종교신문 <죠션 크리스토인회> 창간 등 근대한국사와 기독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그러나 그가 1902년 6월 목포에서 열리는 성서번역위원회에 참석하기 위해 목포로 향하던 중 어청도 부근에서 선박 충돌 사고가 발생했다. 그는 동행한 조선인 통역사 조한규와 정신여학교 학생을 구출하려고 탈출을 미루고 침몰하는 배에 다시 들어갔다가 결국 바다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순직하였다. ▷아펜젤러 순직기념관 마량은 아펜젤러가 순직한 어청도에서 가장 가까운 육지로, 선박사고로 생을 마감한 아펜젤러의 숭고한 삶을 기리고자 지난 2012년 순직기념관을 건립했다. 또한, 아펜젤러 선교사를 한국으로 파견한 존 가우처 박사를 기리는 부속관이 있으며 감리교 초기 유물들이 특별 전시관에 전시 중이다. ▲아펜젤러 순직기념관(충남 서천 마량리 소재)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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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양과 염소를 구분하실 때장 재 효 목사 서울성은장로교회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지 작은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마 25:40) 1. 심판의 날에 양과 염소로 나뉩니다. 본문 31절에 예수님께서 만왕의 왕이 되시고 만주의 주가 되시는 자격으로 재림하실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아서 모든 민족을 자기 앞에 모아놓고 가려내시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과 같이 하신다고 했습니다.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33절) 구약에서부터 신약성경 요한계시록까지 일관된 표시가 예수님의 오른편은 권세와 능력과 생명과 영생이 보장된 사람들이고, 왼편은 기회를 놓치고 모든 것을 빼앗기고 잃어버리는 실패자의 위치를 소개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른편에 있는 양은 믿음으로 성공한 하나님의 자녀들이고, 왼편에 있는 염소는 자기만을 위해서 불의와 죄악을 일삼고 혈기와 정욕으로 양떼들에게 피해를 줘가면서 살아온 무리들을 말합니다. 2. 양들은 하늘나라를 상속 받습니다. 그때 임금이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와서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 보았느니라”(35~36절)라고 말씀합니다. 이에 의인들이 대답합니다.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른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본문의 내용을 문자적으로 읽으면서 혹은 들으면서 생각할 때, ‘아 구원 얻기 위해서는 선한 행적을 많이 쌓아야 하는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른편에 있는 양떼들 즉, 믿음의 정절을 지키고 오로지 천국 갈 소망으로 환란과 핍박과 고난을 받으면서도 신앙이 변절하지 아니한 사람들은 예수님이 이렇게 칭찬하시니까, “아닙니다. 저희는 주님이 주리실 때에 음식 대접한 일도 없고, 헐벗었거나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거나 옷을 입힌 일도 없고, 병들었을 때나 옥에 갇혔을 때 돌봐드린 일도 없는데요” 이렇게 겸양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인격입니다. 그때 예수님이 대답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일러주는데 너희가 내게 직접 한 것은 아니지만 나를 알아보고 믿어져서 회개하고 성령에 이끌려 살면서 다른 사람을 보살피고 돌보아주었던 것이 바로 구원을 이루게 된 것이다”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게 하기 위하여 성령이 우리를 신앙인격적으로 변화시키는 역사가 계속 있었을 것이다”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성품을 영적으로 닮아가기 위한 목적으로 살다 보니까 이웃에 배고픈 사람이 보이면 내가 먹을 것을 나누어 먹이든가, 그가 목말라 하면 내가 마실 물을 내가 더 목이 타더라도 그 사람부터 먼저 마시게 주게 됩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닮아가는 성도의 생활 즉, 이것이 성화의 과정인 것입니다. 3. 구원은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에베소서 2장 8-9절에 보면,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은혜’(graceful)로 된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 얻게 되는 과정에는 우리의 노력이나 수고가 전혀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구원입니다. 자기 아들을 내 죗값으로 대신 벌 받도록 희생양으로 내주셨습니다. 이는 누구든지 그 구원을 자기 노력이나 수고로 얻어진 것으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입니다. 참 안타까운 것은 교회 다니는 여러분 중에서도 이 행위를 자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중에서도 양과 염소가 확연히 구분되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보좌에 앉으셨을 때는 더 확실히 양과 염소를 가려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왼편에 있는 염소들에게 ‘저주받은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의 삶에 전혀 변화가 없음을 지적하셨습니다.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45~46절) 영벌은 사탄과 그 앞잡이들을 위하여 예비된 꺼지지 않는 유황불 지옥을 의미합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 즉 ‘성화’를 이루어가게 된다. ‘선한 일’은 자기 의지가 아니라 ‘성령의 감동과 지시하심’으로 가능하다. 4. 이웃을 살피는 것은 성령의 감동으로 되어집니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선한 일을 하게 되는 동기는 인간의 자기 의지적 결단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고 성령충만할 때에 성령이 감동과 지시하심으로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너 누구 좀 어떻게 도와줘라.” 성령은 이렇게 가르쳐 주십니다. 사실 저에게는 제자들도 많고 후배 목사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에 어려움을 당한 이가 있으면 성령께서 그 문제를 나에게 기도하게 하시는 겁니다. “그 목사에게 꼭 필요한 돈이 얼마인데 그것 때문에 굉장히 고심하며 힘들어하고 있다.” 그것을 나에게 알게 하시고 나를 기도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참 오묘한 것은 내가 그 목사님의 형편을 살펴가며 기도할 때에는 이미 그 목사에게 전달할 하나님의 예비한 몫이 내게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준비해 놓고 나 보고 기도하고 전달하라고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여호와이레 하나님이신 겁니다. 나를 통하여 전달하게끔 만드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나는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는 겁니다. 여러분들에게도 똑같은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은 성령이 아무개 얼마 도와줘라 하시게 될 때 ‘아 이거 참 곤란하네. 내가 가진 게 없는데 뭐 가진 게 있어야 도와주지...’ 이렇게 걱정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 사람을 도와주도록 하나님이 기도하라 하셨으니 도와줄 수 있는 몫을 하나님께서 준비하셨고 내게 전달할 수 있도록 밀어주실 줄 믿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게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임을 깨닫기만 하면 됩니다. 어쩌다가 기도해오던 사람과 우연히 만날 일이 생깁니다. “요즘 힘들지?” “뭐 좀 그렇습니다. 목사님께서 기도 좀 많이 해 주세요.” “그래, 기도하고 있어.” 그러면 그 사람은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는 이미 하나님이 예비하신 것을 나를 통하여 전달하도록 보내주시는 겁니다. 그리고 혹 어떤 사람은 먼저 찾아와서 자기 사정을 털어놓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렇게 됐는데 지금 상당히 난감하고 어렵고 힘이 듭니다.”라고. 그러면 “내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있으니까, 하나님이 내게 전달해 주시면 내가 즉시 불러서 줄테니까. 당신도 기도하고 나도 기도하자.” 이렇게 다독이고 돌려보내게 됩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이고 하나님께 쓰임 받는 과정의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5. 선한 일은 구원의 길을 찾는데 도움이 됩니다. 다만, 선한 일을 많이 했다고 구원 얻는 것은 절대로 아니지만 선한 일을 하는 것이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도움이 될 수는 있습니다. 사도행전 10장에 고넬료라고 하는 이탈리아 군대의 백부장이 있습니다. 고넬료는 착취당하고 억압당하는 유대인들에게 최선을 다해 선을 베풀었습니다. 배고픈 사람에게는 먹을 것을, 헐벗은 사람에게는 입을 것을 또 목마른 사람에게는 마실 것을 여러모로 사랑과 수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구제를 힘썼습니다. 그리고 하루에 여러 차례 시간을 정해 놓고 하나님 앞에 자기를 좀 하나님의 백성으로 받아주시라고 애타게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기도하는데 하나님의 천사가 앞에 나타났어요. “고넬료야, 네 구제가 하나님께 상달되고 네 기도 또한 하나님께 열납되었으니 지금 네가 사람을 욥바로 보내서 그곳에 있는 시몬 베드로를 청해 모셔 와라. 그가 와서 그가 모신 성령이 말하게 하심으로 선포되는 복음을 들을 때에 너희가 회개하고 성령을 받음으로 구원 얻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이다.” 하나님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시107:9) 고넬료는 하나님이 보내주신 베드로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복음을 듣고 깨달아졌으며 믿어지게 되어, 회개하고 성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6. 양인지 염소인지 스스로를 돌아봅시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나는 심판의 날에 양의 반열에 설까 아니면 염소 반열에 설까?’를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도 양과 염소는 있습니다. 양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꿀송이처럼 달게 먹습니다. 그러나 염소는 뿔이 아주 예리합니다. 날카로운 뿔로 하나님이 목자를 통하여 쏟아부어 주는 양식을 먹지 않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양떼들을 뿔끝으로 들이받기도 합니다. 이것이 염소의 행패라는 것입니다. 목자도 보이는데 예수님이, 하나님이 왜 못 보시겠습니까? 이 시간 자기 스스로를 냉철히 분석해보고 비판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염소의 자리에 있다면, 지옥불에 던져지기 전에 철저히 회개하고 성령을 받아 모심으로 예수님 닮아가기 위하여 성화되는 신앙인으로 새 출발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장재효 목사 ▲서울성은장로교회 당회장 ▲성은동산 원장 ▲예장증경총회장 ▲선목회 회장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초대 총장 ▲바른목회연구원 원장 ▲국제성은복음선교회 총재 ▲전국기도원총연합회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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