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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 기업 플라스틱옴니엄, 경주에 수소차 연료탱크 공장신설2023년까지 414억원 투자 연간 3만대 물량 자동차용 수소탱크 공급 경상북도는 경주시, 플라스틱옴니엄社와 16일 경주시청 대회의실에서 현대자동차에 연 3만대 물량의 수소탱크를 공급하기 위한 관련 제품 제조시설을 경주 플라스틱옴니엄 부지 내에 신설하는 내용의 투자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날 체결식에는 하대성 경북도 경제부지사, 주낙영 경주시장, 앤드류 하퍼(Andrew Harper) 플라스틱옴니엄 대표 및 임직원, 도의원, 시의원 등이 참석했다. 이번 투자협약은 경주에 사업장을 두고 있는 플라스틱옴니엄社가 강동면 기존 공장부지에 414억원을 투자해 약 4000평 규모의 수소연료전지 자동차용 수소저장탱크 제조시설을 2023년까지 신설하는 내용이다. 최근 정부는 온실가스 감축 및 미세먼지 저감을 위해 ‘2050 탄소중립 추진전략’을 발표하면서 저탄소화 정책의 구체적인 방안으로 수소연료전지차(FCEV) 생산 보급 확대 및 관련 인프라 확충 등을 통한 친환경차 전환을 가속화 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또한 수소사회비전 달성을 위해 수소연료전기차(FCEV) 대중화 전략을 제시하며, 지난 9월 플라스틱옴니엄社와 연간 스타리아 3만대의 수소연료전지차용 수소탱크를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프랑스 파리에 본사를 둔 플라스틱옴니엄은 전 세계 25개국에 진출한 글로벌 자동차부품 제조사로 연료 탱크, 범퍼 등 대형 플라스틱 부품 세계 1위 기업이다. 플라스틱옴니엄 한국법인은 지난 30년간 윤리경영, 환경경영, 사회공헌 등 경영혁신과 지속적인 연구개발과 제품혁신을 통해 자동차 부품 산업과 지역 발전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미래 특장차(수소·전기차 버스) 글로벌 생산거점 도시 구축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경주시는 올해 일지테크, 오토렉스 등과 투자협약을 맺은 바 있다. 또 이번 플라스틱옴니엄 수소연료탱크 제조공장 유치를 통해 미래차 생산거점 도시 이미지 구축에 한발 앞서게 됐다. 앤드류 하퍼(Andrew Harper) 플라스틱옴니엄 대표이사는 “이번 신규 사업 진출 및 공장 신설에 중앙 및 지역정부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았다”라며, “그에 부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여 자동차 부품 사업과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대성 경북도 경제부지사는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이 급속도로 전환되는 시점에 플라스틱옴니엄社의 수소연료탱크 사업 투자 결정으로 미래차 핵심부품 생산을 경주에서 시작할 수 있게 됐다”라며, “이번 투자가 향후 경북이 추구하는 미래 모빌리티용 핵심부품 생산 거점의 초석이 되는 만큼 반드시 성공 투자로 이어지도록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라고 밝혔다. 박은숙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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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부르심(10)브라더 앤드류 오픈도어 설립자 겨울밤이었다. 나도 나아만처럼 해야겠다고 마음먹고는 모두 잠들기를 기다렸다. 나는 조용히 침대를 빠져나와 차가운 마룻바닥을 기어서 목욕탕으로 갔다(허리 통증 때문에 걸을 수가 없었다). 목욕탕 문을 걸어 잠그고는 철로 만든 고풍스런 대형 욕조를 쳐다보았다. 여러 명이 들어가도 남을 커다란 욕조였다. 그때 그 욕조는 요단 강이었다. 나는 욕조 옆으로 기어가서는 찬물을 틀었다(나아만이 요단 강에 거부감을 느꼈기 때문에 나도 들어가기 싫은 찬물을 틀었다). 나는 욕조에 물을 가득 채우고 안간힘을 써서 차가운 물 속에 몸을 던져 넣었다. 찬물에 몸이 어찌나 놀랐던지 숨이 막힐 뻔했다. 그리고 다시 안간힘을 써서 물 밖으로 나와서는 바닥에 누워 몇 분간 기다렸다. 허리는 끊어질 듯이 팠다. 두 번째로 몸을 담그고 나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세 번, 네 번, 나는 허리 통증과 추위로 의식을 거의 잃을 뻔했다. 피부는 벌써 감각을 잃어버린 듯 차가운 바닥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일곱 번 들어갔다 나와야 했다. 나아만도 일곱 번 몸을 씻기 전에는 병이 낫지 않았다. 어떻게 일곱 번을 왔다 갔다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어쨌든 나는 젖 먹던 힘까지 짜내어 일곱 번을 들락거렸다. 내 몸에 변화가 느껴졌다. 그러나 불행히도 상태가 악화되는 변화였다. 마지막에는 죽는 줄만 알았다. 나는 욕조에 물을 빼고 물기를 깨끗이 닦은 다음 지친 몸을 이끌고 침대로 돌아왔다. 하나님이 말씀하셨다고 생각한 일을 완수했기에 육신은 죽을 듯했지만, 마음만은 날듯이 기뻤다. 이튿날 아침 허리 통증은 여전했다. 다음날에도, 그 다음 주에도, 2년 뒤에도 기다리던 변화는 없었다. 모든 과정을 수료하고 학교를 떠나던 날 교장 선생님은 악수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앤드류, 자네는 선교사 지원을 할 필요가 없겠네. 여행을 떠나기에는 몸이 너무 약해서 안 되네.” 간단히 말해 내가 선교사후보에서 탈락하는 순간이었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달리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싶었다. 내 몸은 파선한 배와 같았다. 내 몸만 놓고 본다면 앤드류는 활동적인 선교사감이 아니라는 해석이 자연스럽게 나오고, 그것은 하나님의 뜻처럼 보였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선교 일은 다른 사람에게 맡겨버리는 게 어떨까? 신체 건강하고 효율적으로 사역을 감당할 사람에게 말이다. 나 같은 처지라면 누구나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안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가라!” 바로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았다. 어떤 말을 들을까? 건강이 사역의 걸림돌이 된다 해도, 그리고 다른 어떤 장애물이 있다 해도 모두 하나님께 맡기고 신뢰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학교 지하실에서 공산주의 잡지를 집어 들고 바르샤바에서 열리는 대회에 관한 기사를 읽는 순간 “가겠습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가야 했다. 그때 그 길이 공산 세계를 종횡무진 누비게 되는 여행길이 되었다. (한국오픈도어 제공)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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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부르심(9)브라더 앤드류 오픈도어 설립자 나는 여러 해 동안 심한 요통으로 고통스럽게 지냈다. 1953년 WEC 선교사 훈련 학교에 입학하던 바로 그 해, 내 허리가 ‘나가버렸다’. 척추 디스크였다. 더구나 여러 디스크가 탈장되어 심한 통증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빗질이나 옷을 입는 것조차 고통스러울 때가 있었다. 참을 수 있는 한 버텨봤지만 통증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마루나 거리에 주저앉을 때도 있었다. 곁에 사람이 없는 경우에는 누군가가 나를 발견하고 도와줄 때까지 그대로 누워 있어야 했다. 그리고 업혀서 내 방에 와서는 통증이 가라앉고 다시 힘이 생길 때까지 침대에 누워 있었다. 몇 주 동안 침대에만 누워 지낸 적도 있었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2년 동안 하루도 통증 없이 편할 날이 없었지만, 내가 맡은 학교 일과 선교 여행 등을 꾸준히 하면서 공부를 해나갔다. 그러나 허리가 아파오기 시작하면 나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이 되고 말았다. 허리만 생각하면 막막했다. 의사들도 수술을 거부했는데 당시에는 디스크 수술에 많은 위험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내 허리에 손을 대고 기름을 붓고 중보기도를 해주었다.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시도해보았다. 그러나 치유되는 기미는 조금도 나타나지 않았다. 한 번씩 내 소명이 선교사가 아니라 다른 일이 아닐까 의구심에 빠지기도 했다. 나는 허리에 무리가 가지 않는 일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루는 허리가 끊어질 듯이 아팠다. 그날 우연히 열왕기하 5장에 나오는 군대 장관 나아만의 이야기들 읽었다. 나아만은 히브리인도, 하나님을 믿는 성도도 아니었지만, 엘리사 선지자는 그의 문둥병을 치유해주었다. “하나님, 나아만 같은 이방인도 이렇게 낫게 해주셨다면 하나님의 자녀인 제 병은 확실히 낫게 해주시겠지요?” 나는 나아만의 기사를 통해 하나님이 말씀하신다고 ‘생각’했다. 나는 ‘생각’했다는 말을 강조하고 싶다. 하나님께서 특정한 성경 본문을 통해 말씀하실 때 곧바로 깨닫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는 하나님이 말씀하신다는 것을 ‘알면서’ 불순종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말씀하신다고 ‘생각’하며 순종하는 것이 훨씬 낫다고 믿는다. 아무튼, 나는 하나님이 끔찍이도 고통스런 내 병을 치유해주시리라는 강한 믿음이 들었다. 더군다나 나아만과 똑같은 방법으로 낫게 하실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물속에 일곱 번 들어갈 생각을 했다. 성경 말씀을 보면, 엘리사의 사자가 나아만에게 가서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면 병이 나을 거라고 전했다. 나아만은 화가 났다. 요단강은 더러운 강이기 때문이었다. 더러운 강에 뛰어들면 병이 나을 거라는 이야기에 발끈한 것이었다. 게다가 일곱 번을 씻으라니 그런 모욕적인 언사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러나 그는 결국 자존심을 버리고 요단강에 몸을 씻었다. 그리고 약속한 대로 하나님은 그의 병을 고쳐주셨다. (한국오픈도어 제공)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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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부르심(8)브라더 앤드류 오픈도어 설립자 목사님은 가벼운 마음으로 공원을 산책했다. 주변을 보니 유럽 여성 두 명도 산책을 하고 있었다. 보아하니 사람을 찾는 듯했다. 얼마 후에 그들과 눈이 마주친 목사님은 두 사람이 찾고 있는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서로 다른 곳에 있던 그들을 한자리에 모아주신 분은 하나님이셨다. 앙스와 리네는 뜸 들일 사이 없이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그들은 목사님을 따라 차에 올라탔다. 뒷좌석에 앉자마자 그들은 옷을 벗기 시작했다! 우리가 한 가지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는데 당시에는 보안상 성경을 몸에 지녔다가 전달해야 했다. 두 여성은 사람들에게 나눠주려고 옷을 여러 겹 입고 있었고, 속에 성경을 여러 권 숨겨 놓고 있었다. 그래서 할머니처럼 나이가 지긋한 두 여성이 나사로의 뒷좌석에서 몸을 꿈틀대면서 성경을 꺼내고, 여분의 옷을 모두 벗은 것이다. 목사님은 하나님의 인도와 공급에 놀란 나머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목사님은 앙스와 리네를 호텔로 데려다주었고, 두 여성은 호텔에 남아 있는 짐들을 모두 목사님에게 건네주었다. 목사님은 그들에게 감옥에 있을 때 브라더 앤드류라는 네덜란드 사람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아는 사람이냐고 물었다. 그들은 목사님에게 바로 그 사람 때문에 자신들이 쿠바에 왔다고 설명했다. 성령님의 인도로 페레즈 목사님은 용감한 두 선교사를 만나고 흔들리던 신앙이 소생했다. 그는 새 힘을 얻어 목회 현장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몇 년 후에 목사님은 쿠바에서 추방되었다. 너무나 많은 영혼을 주께로 인도한다는 죄목으로 말이다! 목사님은 현재 캐나다 토론토에 살면서 스페인교회 공동체를 이끌고 있다. 쿠바를 찾아간 사랑스런 두 네덜란드 여성이 내가 늘 강조하는 원리를 잘 보여준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신앙으로 박해받는 교회를 찾아가면 하나님께서 모든 길을 열어주신다.” 철의 장막(구소련-역주), 죽의 장막(중국-역주), 사탕수수의 장막(쿠바-역주), 폐쇄된 국경, 독재자, 테러리스트를 무론 하고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이 무엇이든지 간에, 고통 받고 있는 우리 믿음의 가족을 돌보는 데 걸림돌이 되지 못한다. 실제로 걸림돌이 되는 것은 바로 우리 마음속에 있다. 바로 두려움, 의심, 이기심, 물질주의, 자기만족, 고난을 피하려는 마음, 그리고 수없이 많은 변명이다. 나도 몇 가지 핑계거리가 있었다. 지금까지 오랫동안 사역을 하면서 힘든 여행을 그만두고 무엇이 되건 간에 평범한 삶을 시작하고 싶은 핑계거리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사실 건강 때문에 사역을 거의 접을 뻔한 적도 있었다. (한국오픈도어 제공)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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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부르심(7)브라더 앤드류 오픈도어 설립자 내가 탄 비행기는 암스테르담까지 얌전히 날아가지 못했다. 경유지인 마드리드에서 이륙이 지연되는 바람에 우리는 항공사가 제공하는 멋진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했다. 양말만 신은 채 호텔 로비에 서 있는 내 모습이 흥미로웠는지 모두들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그러나 나는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할 겨를이 없었다. 쿠바를 떠날 때 목사님이 마지막으로 해준 말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선교사님, 이렇게 사랑으로 모든 걸 다 주시니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선교사님은 목숨만 빼고 다 주셨습니다.” 내가 더는 쿠바에 갈 수 없게 되자, 나는 유럽에 있는 성도들에게 쿠바로 갈 것을 도전했다. 쿠바 교회에는 중보 기도와 재정과 기독교 출판물이 너무나 필요했다. 내 도전에 응한 사람들 가운데 앙스와 리네라는 네덜란드인 두 명이 있었다. 모두 50대 후반의 여성으로 프랑스 산간 지방에서 함께 사는 친구 사이였고, 이미 유럽에서 오픈도어선교회 사역에 여러 차례 참여한 경험이 있었다. 두 멋진 여성은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현신을 보여주었고, 그것은 내가 본받고 싶을 정도였다. 내가 쿠바에 대해 강하게 도전했을 때 두 여성은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나는 그들에게 쿠바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할 겨를이 없었다. 단지 쿠바의 실정과 스페인어 성경과 기독교 서적 몇 권, 그리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두세 사람의 이름과 연락처만 일러주었다. 나는 그들을 적재적소로 이끄실 하나님만 신뢰했다. 아무튼, 내가 그들에게 준 연락처는 하바나에 있는 오픈도어 교회로 알려져 있는 큰 교회였다. 두 여성은 하나바에 도착하자마자 호텔방으로 직행, 합심하여 기도하면서 주님의 뜻을 구했다. 두 사람은 기도하다가 성령 하나님이 그들을 레닌 공원으로 이끄신다는 느낌을 받았다. 두 사람은 바로 지도를 들고 레닌 공원을 찾아 나섰다. 한편, 도시 한쪽에서는 유세비오 페레즈라는 목사님 한 분이 역시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감옥에서 풀려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목사님은 매우 의기소침해져서 목회 사역을 그만두고 싶은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목회자는 사회적으로 멸시받고 공권력의 탄압에 시달리고 있었다. 기독교 신앙인이기 때문만은 아니고 목회자를 사회의 기생충으로 여기기 때문이었다. 유세비오 목사님은 소외감과 무력감을 느끼면서 신앙의 가치에 회의를 품고 있었다. 바로 그날, 유세비오 목사님은 기도 중에 성령 하나님이 자신을 레닌 공원으로 이끄시는 느낌을 받았다. 그곳에 가면 누군가가 자신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줄 것 같았다. 그래서 목사님은 자신이 나사로라고 부르는 차를 타고 레닌 공원으로 향했다. 나사로라는 이름은 1950년형 시보레 자동차가 여러 차례 폐차의 위기를 넘겼기 때문에 붙인 것이었다. (한국오픈도어 제공)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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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부르심(6)브라더 앤드류 오픈도어 설립자 우리는 쿠바 교회에 대량의 성경을 전달하는 일 외에 쿠바의 열악한 경제 상황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목회자 가족을 어떻게 도울까 고민했다. 나는 이미 앞에서 쿠바 목회자는 나라에서 나눠주는 식량과 의복을 지급 받지 못한다는 말을 했다. 당시 많은 목회자가 감옥에 갇혔는데 가장이 옥살이를 하기 때문에 뒤에 남아 있는 가족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쿠바 화폐는 무용지물이었기 때문에 돈은 아무런 도움이 못 되었다. 우리는 네덜란드 대사의 도움으로 시내에 있는 외교관 면세점에서 달러를 지불하고 침대 덮개, 옷, 휘발유, 음식 등을 구입했다. 그러나 모든 가족에게 나눠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자 목사님들이 좋은 아이디어를 내었다. 돈보다 금이 훨씬 가치 있는 통화 수단이었기 때문에 우리가 만약 패물이나 금 장신구를 가져올 수만 있다면 높은 가격에 팔아 상당한 기간 동안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미국에서 300달러에 구입한 금시계 하나가 쿠바에서는 반년 치 월급과 맞먹었다. 그래서 한번은 우리 팀원들이 모두 바람둥이 계모임 회원처럼 온몸에 주렁주렁 금시계, 금반지, 금목걸이, 금팔찌 등으로 치장한 적도 있었다. 나는 묵고 있던 호텔로 여러 목사님을 초대해 식사를 대접했다. 목사님들은 모두 고맙게 식사를 했지만, 집에 있는 가족에게 가져다주고 싶다면서 비닐봉지를 찾았다. 식사하는 도중에 그들은 닭고기며 밥이며 빵 같은 것을 조용히 봉지에 담았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어느 목사님 집에 가게 되었는데, 아이들이 목사님이 가져간 음식을 허겁지겁 집어삼키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 나는 동행했던 동료와 함께 패물을 꺼내어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목사님, 이것은 네덜란드 성도들의 선물입니다. 친구가 선물한다고 생각하시고 받아주십시오. 이것을 가족을 부양하는 데 쓰시고 다른 가족을 위해서도 사용해주십시오. 우리의 사랑과 기도를 늘 잊지 마시고 용기를 내십시오.” 그들은 고마운 마음으로 선물을 받아 각자 필요에 따라 나누어 가졌다. 선교 여행 마지막 날 한 목사님이 우리를 배웅하러 호세마티 국제공항으로 나왔다. 목사님은 따라올 수 있는 곳까지 나를 배웅해주었다. 나는 들어가면서 혹시나 하고 목사님에게 물었다. “목사님, 더 필요하신 건 없습니까?” “저기, 사실 신발이 필요합니다.” 목사님이 빨리 대답했다. 나는 시선을 아래로 향하고 목사님의 발과 내 발을 번갈아 가늠해보았다. 발 크기가 거의 같아 보였다. 나는 일단 비행기에 오르면 암스테르담에 도착할 때까지 그저 앉아만 있을 것이고, 집에 돌아가면 신발 하나 정도는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나는 신발을 벗어 목사님 손에 쥐여주었다. “목사님, 가지세요. 목사님 겁니다.” 목사님이 신발을 받아 쥐고 고마워하던 얼굴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간단히 작별 인사를 하고 양말만 신은 채 천천히 세관을 지나 비행기에 올랐다. (한국오픈도어 제공)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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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부르심(5)브라더 앤드류 오픈도어 설립자 물론 회중 가운데에는 비밀경찰이 있었을 테고, 내가 한 말이 문화부장관의 귀에 들어가면 장관은 격분할 게 뻔했다. 그러나 나는 약속대로 질문했고, 질문에 대답했을 뿐이었다.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위해 놀라운 방법으로 우리를 사용하신다. 그래서 박해받는 교회를 찾아갈 때마다 기대가 크다. 그곳에 가면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증거 할 기회가 생기고 고통받는 성도들과 함께 기도하고 격려하는 소중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더구나 사역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늘 도리어 내가 그들에게 보살핌 받은 것을 느끼고 감동한다. 쿠바에 있는 동안 훌륭한 그리스도인을 만났다. 통역해 준 자메이카 태생의 조지였다. 그는 수년 전에 캐나다에 와서는 내가 쿠바에서 설교할 때 일어났던 기가 막힌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그때 나는 하바나에 있는 교회에서 말씀을 전하기 위해 강단으로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는데 고개를 돌려보니 조지가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 조지의 얼굴 표정으로 보아 굉장히 중요한 기도제목 같았다. 나는 조용히 그의 뒤에 다가가 그의 어깨에 손을 얹고 함께 기도를 드렸다. 내 기억으로는 그게 다였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예배를 드렸고, 조지는 통역을 멋지게 잘해주었다. 그런데 조지는 당시 심각한 위장병을 앓고 있었다고 한다. 조지가 기도하고 있던 그 날은 통증이 평상시보다 빨리 찾아왔다. 그는 고통을 참다못해 기절하지 않을까 걱정하며 괴로워했다. 그래서 예배가 시작되기 전에 통증을 덜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던 것이었다. 바로 그때 하나님은 나를 움직여 그와 함께 기도하게 하셨다. 나는 조지의 사정을 전혀 몰랐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조지의 병을 즉각적으로 고쳐주셨다. 며칠이 지나 조지는 통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을 알았다. 조지는 그날 사건을 신앙의 전환기로 보고 있다.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확신이 섰기 때문이었다. 그는 목회자가 될 준비를 했고, 지금은 하바나 기독교 공동체를 적극적으로 섬기고 있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무척 좋아한다. 나의 평범한 움직임 뒤에 감춰진 하나님의 비범한 움직임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가슴 설레는 모험이다. 조지를 고쳐주신 분은 하나님이었다. 다만 나는 누구라도 될 수 있는 축복의 통로가 된 것뿐이었다. 바로 여러분도 그런 통로가 될 수 있다. (한국오픈도어 제공)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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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부르심(4)브라더 앤드류 오픈도어 설립자 쿠바의 젊은 세대가 길을 잃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쿠바교회를 도와야겠다는 결심이 더욱 굳어졌다. 카스트로 의장을 만나고 싶었지만, 대신해서 문화부 장관과 마주 않자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사람이 쿠바의 기독교 박해를 주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당신이 언제 쿠바에 와서 어떤 일을 했는지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나의 모든 행적과 내가 만난 사람들이 자세히 적혀 있는 경찰 보고서를 보여주었다. “오늘부터 쿠바에서 설교를 해서는 안 됩니다.” 쿠바를 다니면서 이런 경우가 처음은 아니었다. 그래서 질문을 했다. “좋습니다. 장관님, 만약 설교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사람들에게 질문을 하는 것은 괜찮을까요?” 장관은 잠시 말을 멈추고 나서 대답했다. “질문 정도라면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나는 원하는 답을 얻기 위해 신중을 기하면서 “그렇다면 사람들이 저에게 던지는 질문에 답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장관은 잠시 망설이더니 “그 정도라면 역시 별 문제없을 것 같군요.”라고 대답했다. 나는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서 질문을 계속했다. “장관님, 러시아 교회가 진정한 신앙심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러시아 혁명은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해보셨습니까?” 그는 확신에 찬 어조로 대답했다. “나는 확실히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지구상에 있는 많은 기독교인에게 진정한 신앙심이 없다는 사실이 어찌나 기쁜 일인지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혁명은 지속적으로 확산될 것입니다. 아무도 우리를 막을 수 없지요. 우리의 목적은 하나, 세상을 차지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당신네 교회 사람들은 현실적인 일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고 하늘만 쳐다보고 사는 것 같더군요.” “자기의 믿음대로 나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애쓰는 그리스도인이 있다면 나는 그 사람에게 경의를 표할 겁니다. 그런데 고맙게도 그런 사람이 거의 없더군요.” 장관은 비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날 이후 나는 교인들 앞에서 말씀을 전할 때면 늘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여러분에게 몇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여러분 가운데 예수님을 자신의 구세주로 영접하신 분은 얼마나 됩니까?” 이런 질문들을 청중에게 던지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 나서, 그들의 질문을 받았다. “자, 이제 여러분의 질문을 받겠습니다. 혹시 저에게 질문이 있으신 분은 말씀하세요.” 그러면 신자들이 손을 들고 나에게 질문을 했다. “어떻게 해야 거듭날 수 있습니까?” “성경에 나타난 예수님의 참 모습은 어떤 것입니까?” 이런 질문을 받고 나면, 나는 성경을 펼쳐 들고 신자들의 질문에 대답했다. (한국오픈도어 제공)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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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부르심(3)브라더 앤드류 오픈도어 설립자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광대하다. 특정한 국가나 집단만이 아니라 하나님은 만민을 위하여 계획하신다.” 몇 년 전에 목이 아파 허브티를 마신 적이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산이었는데, 차에 달린 손잡이 꼬리표에 짧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앞장서지 않으면 꽁무니만 좇게 된다.” 그리 점잖지 못한 표현일 수는 있지만, 담긴 단순한 진리가 머리를 때렸다. 우리의 영적 부르심에 적용해 보았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우리에게 세상에 나아가 복음을 증거하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당할 만큼 당시에도 세상은 복음에 적대적이었다. 예루살렘, 유대, 사마리아 모두 오늘날 존재하는 폐쇄 국가만큼이나 배타적인 곳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가라는 명령을 하셨다. 제자들은 개척자가 되어야 했다. 말하자면 “앞장서서” 가야만 했다. 개척자는 어디로 가야 할지 알아야하며, 계획을 짜야 한다. 만약 우리가 새로운 선교지를 찾지 않는다면, 그리고 우리를 필요로 하는 곳마다 안전한 곳을 선호한다면, 우리는 옛 생각의 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니며 똑같은 일만 똑같은 방식으로 되풀이 하게 될 것이다. 결국 세상에 그리스도 예수를 알리는 주님의 지상명령을 수행하기가 요원해진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눈을 들어서 밭을 보아라 이미 곡식이 익어서 거둘 때가 되었다.”(요4:35) 농부가 한 해 전에 신중하게 계획을 세워두지 않으면 결코 가을에 추수할 수가 없다. 농사일은 과학이다. 땅을 일구고 추수하기까지 모든 과정을 염두에 두고 차근차근 계획을 세워야만 한다. 복음을 전하는 일도 마찬가지이다. 눈을 들어서 밭을 보아라! 눈을 들어서 중국을 보아라. 이슬람 세계를 보아라. 쿠바를 보아라.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를 보아라.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 이웃, 학교를 보아라. 모두 무르익어 거둘 때가 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서 있는 자리에서 복음의 영향력을 발휘하려면 계획이 있어야 한다. 반드시 첫째 단계에 있는 예언적 말씀을 받고 실천에 옮길 계획을 세 워야 한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보자. “나는 너희가 수고하지 않은 것을 거두게 하려고 너희를 보냈다.”(요4:38) 우리는 교회에서 씨를 뿌리는 일에만 열심을 내지 추수하라는 말만 나오면 온갖 경건한 어투로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 “저의 사명은 다른 데 있습니다.” “추수는 성령님의 일이잖아요.” 이러한 와중에도 세상은 그토록 애타게, 그토록 간절히, 다 준비된 상태로 추수를 기다리고 있다! (오픈도어 제공)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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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부르심(2)브라더 앤드류 오픈도어 설립자 “넌 안돼!” 사람의 영혼을 급속도로 시들게 하는 말이 있다면 아마 이 한 마디일 것이다. 나는 평생 이 말을 수도 없이 듣고 살았다. 하나님이 가라고 하시는 곳에 가서 그 뜻을 따르고자 할 때 이런 말을 듣는다면, 반드시 정색하고 상대방의 태도를 꾸짖어야 한다. 1953년 글라스고 WEC에서 훈련을 받을 때, 성탄절 전후 짧은 방학 동안 지낼 만한 곳이 없었다. 요통으로 인해 가을 학기 대부분을 침대에서 보내면서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의 “주님의 나의 최고봉”을 읽으면서 위로를 받고, 목사님의 아내인 비디 사모님께 감사하다는 편지까지 쓴 적이 있다. 사모님은 한 번 찾아오라고 했다. 나는 성탄절 휴가를 목사님 댁에서 보내고 1월에 학교로 돌아왔다. 전체 학생들이 식사하는 시간에 교장 선생님은 휴가 기간에 어디 갔는지 물었다. 나는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고 대답했다. 교장 선생님은 “뭐? 자네가? 안 되지!” 나는 별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영적 거장의 가족을 쉽게 만날 수 있을 거로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일어나서 복음을 배척하는 나라로 떠나는 것이 내게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왜 안 되겠는가! 나는 평생 그렇게 살았다. 생각해보면 성경에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겠다고 결정을 내렸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넌 안돼!”라고 말하더라도 듣지 않고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놀라운 결실을 맺은 사람들, 그들은 우리만큼이나 평범했다. 그러나 그들은 닫힌 문을 여시고 각자에게 필요한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겠다고 결정 내렸을 때 사람들이 “넌 안돼!”라고 말해도 어려운 환경 이기고 놀라운 결실 맺은 사람들, 그들은 능력의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했다. 이집트에 종으로 팔려간 요셉이 왕국의 2인자가 되었다고? “그래도 넌 안돼!” 모세가 홍해를 갈랐다고? “그래도 넌 안돼!” 양치기 소년 다윗이 조약돌만으로 거인 골리앗을 때려눕혔다고? “그래도 넌 안돼!” 요나가 죄악의 도시 니느웨에 가서 설교 한 번으로 모든 시민을 회개하게 만들었다고? “그래도 넌 안돼!” 그렇다!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도우셔서 그들은 불가능을 현실로 만들었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사방의 문이 닫혀 있는 듯 보이지만, 그 문들은 백화점 자동문처럼 닫혀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멀리서 보면 닫혀 있지만, 우리가 그 앞으로 걸어가면 문 위에 달린 센서가 우리가 오는 것을 알고 문을 열어준다. 하나님은 우리가 순종하는 마음으로 다가오기를 기다리신다. 우리가 다가가면 하나님께서 문을 열어주시고, 우리는 주님을 섬길 수 있다. (오픈도어 제공)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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