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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작정과 가룟 유다의 배신, 예수님은 왜 가룟 유다의 배신을 방치하셨나?Q 질문 : ‘왜 예수님은 제자 중 하나인 가룟 유다가 자신을 배신하게 방치하였는가?’에 대한 의문이 계속 듭니다. 예수님이 그를 불쌍히 여겼다면 회개하고 구원받을 수 있게 뭔가 조치를 하셨을 것 같은데 그냥 구원 사역의 제물로 그를 이용하신 것일까요? A 답변 :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우리가 측량할 수도 없고 헤아릴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중 한 사람이 배신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이는 구약성경에 이미 예언된 것입니다(시41:9, 요13:18). 이 일에 사용된 사람이 바로 가룟인 유다였던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하신 뜻은 아니었지만, 하나님의 깊은 뜻에 속하는 것이었으며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위해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악을 기뻐하지 아니하시지만 이 세상의 모든 일은 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 들어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가룟 유다는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기 위해 사용된 사람입니다. 그래서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배신하고 예수님을 대제사장에게 넘겨주게 됩니다. 결국 가룟 유다는 악한 죄를 지었지만, 하나님은 그런 것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가룟 유다는 잘못한 게 없지않느냐?’하는 의문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각자 행한 행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것이 분명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악을 통해서도 자기 뜻을 이루시고 자기의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하나님의 그러한 깊은 뜻을 피조물인 우리가 다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가룟 유다를 바라보는 예수님의 마음도 복잡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가룟 유다를 향해 “그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마26:24)고 하셨습니다. 선택과 악의 문제는 하나님의 오묘한 일에 속합니다. 따라서 그런 문제는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는 분명히 나타난 일 곧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행하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마지막 날에 밝히 알게 될 것입니다. 답변자 : 변종길 교수 (고려신학대학원 신약학) <‘크리스천 큐앤에이’(도서출판 등과 빛) 中 요약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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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의 휘장이 찢어져 둘이 됐다는 의미는 무엇인가요?Q 질문 :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그 영혼이 떠나갈 때 성소 휘장이 찢어졌다는 의미와 휘장이 둘이 됐다(마27:51)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A 답변 : 예수님이 돌아가셨을 때 성소의 휘장이 찢어졌다는 것은 이제 예수님의 육체를 통하여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새롭고 산 길이 열렸다는 의미입니다(히10:20). 곧 전에는 오직 대제사장만이 일 년에 한 차례 그것도 수송아지와 숫염소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이제부터는 누구든지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하나님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는 신부나 목사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직접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을 만인제사장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따라서 우리는 약하고 도무지 하나님께 나아갈 자격이 없지만, 예수님을 힘입어 담대히 은혜의 보좌앞에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히4:16). 그리고 예수님이 죽으셨을 때 찢어진 성소의 휘장은 성소와 지성소 사이를 가로막는 커튼인데, 이를 둘째 휘장이라고도 합니다(히9:3). 왜냐하면 성소에 들어갈 때에도 휘장이 있는데, 그것을 첫째 휘장이라고 부르기 때문입니다. 이 둘째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었다”고 하는데(마27:51), 이것은 사람의 손으로 찢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찢으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위에서부터 찢어졌다는 것은 곧 하나님이 친히 찢으셨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이로써 대제사장의 역할과 구약의 제사제도는 끝나고 이제부터는 예수님을 통해 ‘산 제사’를 드리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교회당을 성전이라 부르는 것은 잘못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답변자 : 변종길 교수 (고려신학대학원 신약학) <‘크리스천 큐앤에이’(도서출판 등과 빛) 中 요약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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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명국 목사】 - 다시 여호와께로 다시 성전으로원 명 국 목사 구미명성교회 “너는 돌아와 다시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 모든 명령을 행할 것이라”(신 30:8) 신명기 30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 언약을 지키지 않을 때 포로로 잡혀갈 것이라 교훈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기억하고 회개하고 돌아오라 명령하심이지요. 우리들도 코로나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다시 여호와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너무 멀리 나갔거나 너무 오래 지체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십니다. 다시 여호와께로 돌아와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여 우리 함께 코로나 이전의 영성으로 회복합시다. 다시 여호와께로 돌아오는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복이 있습니다. ⓐ돌아온 자를 긍휼히 여겨주십니다. 어디로 어떻게 흩어졌든지 상관하지 않고 한 곳으로 불러 모아주십니다. ⓑ약속의 땅들을 차지하게 하십니다. 조상들보다 더 번창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마음의 할례를 행해주십니다. 그래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 하나님만을 사랑하게 하시며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십니다. ⓓ원수들을 물리치시며 그들에게는 징계를 내리십니다. ⓔ우리들의 모든 일들과 자녀들과 가축들과 토지 소산까지도 복을 주십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을 배신, 배반, 불순종함으로 멀어졌다가 회개함으로 다시 돌아와 복 받는 역사의 연속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현대를 사는 우리들의 믿음도 이와 같습니다. 코로나로 멀어졌던 교우들이 다시 여호와께로 돌아와 영성을 회복하여 복을 받고 평강을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그들을 가르치시더니”(요 8:2) 요한복음 8장에서 성전으로 다시 돌아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뵙습니다. 갈릴리에 계시던 예수 그리스도를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시기하고 질투하여 죽이려 합니다. 유대인들의 서슬퍼런 살해 위협에도 예수님은 초막절 명절을 지키고자 다시 성전으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순교적 각오로 다시 성전으로 돌아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라갑시다. 하나님의 성전을 코로나 발상지화한 언론보도와 세상을 바라보며 수많은 성도들이 성전을 등 뒤로 하고 떠나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 있는 우리들에게 예수님은 몸소 성전으로 돌아오시는 결단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성전으로 돌아오셔서 우리들을 성전으로 초청하십니다. 다시 성전 예배로 오라하십니다. 룻기에 나오미는 남편과 두 아들을 데리고 흉년을 피해 모압 땅으로 이민합니다. 나오미는 모압에 가서 남편과 두 아들을 잃고 가진 재물도 다 써버린 뒤 알거지가 되었습니다. 남편 엘리멜렉은 결혼 전부터 건강이 좋지 않았기에 아들을 낳아 큰아들의 이름을 ‘말룐’ 이라 했고, 둘째 아들의 이름을 ‘길룐’이라고 했는데 말룐이란 뜻은 ‘병자’라는 뜻이고, 길룐이란 이름의 뜻은 ‘허약’이란 뜻입니다. 그 이름 그대로... 첫째 아들 병자는 비실비실하다가 병들어 죽고, 둘째 아들 허약이는 마르고 빈약하여 시름시름 앓더니 죽었다 할 것입니다. 결국 나오미와 두 자부만 남게 되었습니다. 나오미는 하나님을 기억하고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나오미가 돌아오자 하나님은 그녀를 위해서 모든 것을 준비해 두셨습니다. 염치없고 부끄럽지만... 자존심을 버리고 용기를 내어 찾아 왔더니... 하나님의 은혜로 고향 사람들이 따뜻하게 맞아줍니다. 고향으로 돌아오니까 치유되어가고 회복되어 갑니다. 이웃들의 도움으로 살길이 열립니다. 자손의 복을 받습니다. 예수님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경북하나신문 구독자 여러분, 우리 모두 예수님처럼 성전으로 다시 돌아옵시다. 위드 코로나 시대를 넘어 비욘드 코로나 시대로! 다시 여호와께로! 다시 성전으로 돌아오는 성도님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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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장 재 효 목사 서울성은장로교회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5~17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22~23절) 본문 말씀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어보십니다. 이때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입니다’고 고백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에 매우 흡족해 하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고 죽임당하실 것’을 말씀하실 때 베드로는 강하게 ‘주여 그리 마옵소서’ 하고 막아섰습니다. 여기서 베드로는 왜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을까요? 이는 하나님의 일을 우선 생각하지 않고 육신의 생각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일로 베드로는 예수님께 책망을 받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칭찬하신 것과 책망하신 것을 잘 분별하여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깨닫고 바른 신앙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1. 베드로의 신앙고백 예수님께서 12명의 제자를 데리시고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가셨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13절)고 물으시니, 그들이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14절)고 말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기대에 많이 어긋난 반응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구원자로 오셔서 우리들의 죄를 해결해 주시는 희생양이 되심을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다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15절)고 물으십니다. 그중에서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절)고 대답했습니다. 베드로의 대답은 아주 정확한 신앙고백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17절)고 칭찬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복이 있다고 하신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이는 하나님께서 성령의 계시와 조명으로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누구신지 정확하게 알게하여 주시고, 고백하게 하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로부터 복을 받았다고 하신 것입니다. 베드로의 ‘예수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앙고백은 나중에 제자들이 성령을 받으면서 열방에 복음을 전하는 메시지가 되었습니다. 2. 반석 위에 세워지는 교회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18절)고 말씀하십니다. 베드로에게 하신 이 말씀은 소망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바탕으로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반석 위에 세우시는 교회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바탕으로 하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세우시는 교회는 음부의 권세, 즉 사탄이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19절).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이후 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대로 초대교회에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 수많은 사람이 천국백성이 되었는데 이는 사도행전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3.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는 교회 사도행전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 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행1:4절)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오순절 날 마가다락방에서 120여 명이 성령을 받았습니다. 성령을 받은 그들에게 어떤 일들이 일어났습니까?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했습니다(행2:4절). 또 행2:14절 이하에 베드로가 성령이 말하게 하시는 대로 설교를 할 때 회개하고 성령 받은 사람이 3,000명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성령 받은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회개하기 전에는 마귀에게 속아서 죗값으로 지옥으로 끌려가는 상황이었는데, 회개해서 죄를 용서받고 성령으로 천국 가게 된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성령 받은 사람은 천국 가지만 성령을 근심시키거나 모독하는 사람은 사탄에게 사로잡혀 지옥 갈 수밖에 없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이 천국열쇠를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대로 성령을 받아서 담대히 말씀을 전하자 수많은 사람이 믿게 되었고 예루살렘 교회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4. 예수님의 사명을 가로막은 베드로 예수님께서는 본인이 예루살렘에서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이라고 제자들에게 비로소 말씀하십니다.(21절) 당시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구약 성경을 가지고 종교 지도자 행세는 했지만, 성령의 계시도 조명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자신들의 먹고사는 일에 걸림돌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예수님을 죽이려고 안달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의 일로 마귀와 한통속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말씀을 듣자 베드로는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왜냐하면, 베드로는 예수님에 대해 큰 기대를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로마 제국으로부터 해방시키고 독립국가를 이루게 될 때 자기도 예수님 가까이 높은 자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생각으로 예수님을 붙들고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22절)하고 가로막았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참으로 어리석은 말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5.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 그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23절)라고 말씀하시며 책망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백성들의 죄를 위해 대신 피 흘리며 희생양으로 죽임당하셔야 그리스도의 책임을 완성하게 되는데, 베드로가 그걸 못하게 가로막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사탄에게 사로잡힌 베드로를 사탄과 하나로 동등시했습니다. 오늘 설교 제목이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성령의 계시와 감동혹은 성령에 붙들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일을 말합니다. 그것을 알았던 사탄이 예수님께서 사명을 이루지 못 하게 베드로를 통해 막았던 것입니다. 따라서 베드로가 예수님의 죽음을 가로막는 일은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오히려 육신적인 생각으로 하는 사람의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권면의 말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길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24절)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따라 천국 가길 원한다면, 날마다 자기를 부인해야 하는데 이는 자기 입장 즉 사람의 일을 다 부인하라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일꾼으로 세움 받았다면 자기 문제는 하나님이 알아서 책임져 주실 것을 믿고 하나님께 맡기며 오직 하나님의 일에만 쓰임 받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에 힘쓰는 성도는 하나님이 함께하시며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하여 깨닫는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육신의 생각으로 사람의 일을 하는 것이라면 속히 회개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나 자신을 위해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여 하나님 나라에 귀히 쓰임 받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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핍박하던 바울, 예수님의 증인이 되다장 재 효 목사 서울성은장로교회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3~5절)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15~16절)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19~20절) 바울은 철저한 율법주의자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했던 사람이었지만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 예수님을 만난 이후 오직 예수님을 증거하는 증인의 삶을 살았습니다. 바울은 사도로서 신약 성경에 기록된 13편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바울이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한 후 그리스도인들을 결박하러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 극적으로 예수님을 만난 사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 바울이 회심한 것은 하나님의 큰 은혜였습니다. 이 시간 바울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우리도 예수님을 믿는 성도로서 바울처럼 복음을 전하는 일에 힘쓰기를 바랍니다. 1.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한 바울 바울은 터키 동남쪽에 있는 길리기아 다소라는 곳에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친은 유대인으로서 로마제국에 군수품을 공급하는 상인으로 큰 돈을 벌었습니다. 그 덕분에 로마 황제로부터 로마 시민권을 얻게 되었고, 그래서 바울은 나면서부터 로마 시민권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 당시 로마 시민권자는 특권층에 속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에 바울은 유대인으로 예루살렘에 유학을 하게 되고, 당시 유대교 중에서 가장 정통 율법학자였던 가말리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바울은 철저한 율법주의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바울은 자신에 대해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빌3:5~6절)고 했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유대인으로 철저한 유대교 신봉자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런 율법에 정통한 교육을 받았던 까닭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말하는 자들에 대해 하나님에 대한 신성모독으로 여겼고, 대제사장들에 의해 충동을 받아 예수님 믿는 사람들을 죽이는 일에 앞장섰던 것입니다. 행7:55절 이하에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을 때에 바울은 스데반이 죽임당하는 것을 마땅히 여겼습니다. 스데반도 죽게 하고 예수님을 따르던 그리스도인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는 일에 앞장섰던 자가 바로 바울이었습니다. 그래서 스데반이 죽은 이후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사도들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피신을 했습니다. 2. 예수님을 만난 바울 박해로 인해 예루살렘 교회에는 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이 일로 옥에 갇히거나 순교를 당하기도 하여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여러 이방 지역으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대제사장에게 가서 시리아의 고대 도시였던 다메섹에 가져갈 공문을 청했고,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을 결박하기 위해 다메섹을 향해 길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갑자기 하늘로부터 빛이 자신을 비추는 것을 보게 됩니다.(1~3절) 눈이 부실 정도로 너무 밝아서 바울이 그만 땅에 엎드러지자 한 소리가 들립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라고 그 빛 가운데서 예수님이 말씀을 하십니다. 바울(당시엔 사울이라 불려짐)은 예수님을 직접 만나본 일이 없었는데 이 말씀을 들은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누구이신지 물었고, 예수님께서는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바울이 직접 예수님을 만난 적은 없었지만 예수님을 따르던 성도들은 예수님과 한 몸된 지체였기 때문에, 성도들을 박해한 것에 대해 예수님이 “나를 박해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3. 바울에게 안수하는 아나니아 바울은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이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에는 아나니아라는 제자가 있었는데 주님께서 환상 중에 그를 불러서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에 아나니아는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15절)고 말씀하십니다. 이에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으로 가서 바울에게 안수하고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고 말하니, 즉시 바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다시 보게 된 바울은 일어나 세례를 받고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졌습니다. 4. 예수님의 증인이 된 바울 예수님을 만나고 성령이 충만해진 바울은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간 교제를 나눈 후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다”라고 전파합니다. 그러나 이런 바울의 모습을 본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사람은 예루살렘에서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가고자 함이 아니냐”(21절)고 하였습니다. 그동안 예루살렘에서 교회를 박해하고 믿는 사람들을 괴롭히고 죽이던 바울이 갑자기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외치니 의심을 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런 말을 들어도 힘을 더 얻어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라고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자기들을 배신한 바울을 죽이기로 공모하였고, 이를 눈치챈 바울은 그곳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가게 됩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 있던 제자들을 만나 교제하고자 하였으나 제자들은 바울을 다 두려워하여 그의 제자 됨을 믿지 못했습니다. 이때 바나바가 바울을 사도들에게 데리고 가서 다메섹에서 있었던 사실들을 그대로 전하면서 변호해 주었고, 이후에 바울은 제자들과 교제하며 함께 예수님을 담대히 전하게 됐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면서 많은 고난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고린도교회에 쓴 편지글에 보면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고후11:23절)라고 자신의 고난에 대해 고백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마지막까지 예수님의 증인으로 복음을 전하고 네로 황제의 박해 때에 로마에서 순교하게 됩니다. (권면의 말씀) 바울은 율법이 최고의 법인 줄로 알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핍박하며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 얻게 하시는 은혜의 법을 배척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런 바울을 굴복시켜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세계 복음화를 위하여 오른팔 같이 붙들어 쓰셨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잘못을 깊이 회개하고 오직 예수님을 위해 전 생애를 바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절)고 말씀하신 대로, 제자들은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는 일에는 많은 고난도 따랐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롬8:17절)고 말합니다. 우리도 바울의 생애를 본받아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깨닫고 어떤 고난이 오더라도 담대히 예수님을 증거하는 증인으로 귀히 쓰임 받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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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요한복음 3장 31~36절) 장 재 효 목사 서울성은장로교회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의 손에 주셨으니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34~36절) 이 세상에서 난 사람은 세상에 속해 있기 때문에 그가 아는 것이 세상에 제한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늘나라에서 오셨기 때문에 하늘나라의 일을 다 아시고, 보고 들은 것을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요3:11)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소수입니다. 세상일에 빠져 살며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니 믿을 수도 없고, 깨닫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이 시간 영생의 말씀을 듣고 하늘로부터 오신 예수님에 대해 깊이 깨닫고 그 증언의 말씀을 믿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 요한복음 3장에 보면 니고데모가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니고데모는 유대인의 지도자요 최고회의 산헤드린공의회 의원이기도 했습니다. 모든 유대인들이 존경하고 학식이 많은 니고데모가 예수님에게 이르되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2절)고 고백하며 존경을 표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3절)라며 거듭남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는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니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니까”(4절) 하고 되묻습니다. 예수님은 영적으로 거듭나라고 하셨는데 그 사람은 육적으로 이해한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도 말씀을 들으실 때 육신의 기준으로 이해하려고 하면 니고데모처럼 오해할 수 있습니다. 영적인 진리의 말씀은 영적 기준에서 받아들이는 지혜가 있어야 이해가 되고 깨달아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다시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5절)고 거듭남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십니다. 어떻게 거듭나는 것일까요? 모든 사람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고 단절되었습니다. 이것이 영적으로 죽은 상태라고 표현합니다. 그래서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시어 하나님과의 끊어진 관계를 회복하시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즉 내가 죄로 말미암아 죽었던 영이 하나님의 아들을 믿음으로 회개하고 성령을 받으면, 그 성령이 오셔서 허물과 죄로 죽은 상태에 있는 내 영을 접붙여서 다시 살아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거듭남의 의미입니다. 사도요한은 요한일서에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요일5:13)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은 사람에게 새 생명이 있음을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 받은 사람이라야 새 생명을 얻습니다. 그 새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으로 온 것이기 때문에 믿는 자에게는 이미 영생이 있음을 우리에게 알게 하신 것입니다. 2. 거듭난 니고데모의 행적 예수님을 만난 니고데모는 그날 이후 달라졌습니다. 요7:31절 이하에 보면 무리 중에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잡으려고 아랫사람들을 보냅니다. 하지만 잡으러 간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다가 크게 감동 받고 다시 돌아갑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왜 잡아오지 않았느냐 묻자, 그들은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때까지 없었나이다”라고 답합니다. 이에 바리새인들이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라며 책망합니다. 이 상황을 지켜보던 니고데모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심판하느냐”(51절)하고 예수님 입장에 서서 담대히 말합니다. 니고데모는 이제 성령에 붙들린 사람이 된 것입니다. 또, 요한복음 19장에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운명하셨을 때, 니고데모는 장례에 쓰이는 몰약과 침향 섞은 향품을 백리트라쯤 가지고 와서 마지막까지 예수님을 섬겼습니다. 니고데모처럼 복음서에서 예수님을 섬기기 위해 정성을 다해 드린 사람들이 여럿 나옵니다. 이 사람들은 믿음의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3. 하늘로부터 오신 예수님 예수님은 하늘로부터 오신 분입니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도다”(요3:11)라고 말씀한 것은 예수님이 하늘나라에 계셨을 때 아버지 하나님이 하신 일을 다 알고 보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나라에 대해, 하나님에 대해 증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이 증언하신 말씀을 받지 않고 거부한 사람들이 당시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습니다. 세례 요한도 사람들에게 예수님에 대해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그가 친히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되 그의 증언을 받는 자가 없도다”(31~32절)라고 전하면서 믿지 않는 자들을 향해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오셨기 때문에 모든 피조물 위에 계시고, 하늘나라의 일을 다 아시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땅에 속하여 세상 것을 기대하고 사는 사람은 교회 다녀도 헛되이 다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4. 예수님을 믿는 자는 성령을 받음 본문에 보면 세례 요한이 “그의 증언을 받는 자는 하나님이 참되시다는 것을 인쳤느니라”(33절)고 말합니다. 인친다는 것은 도장을 찍는 것으로, 확실히 인정한다, 자신이 책임진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고 회개하며 그 증언을 받는 소수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참되신 분이라고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확실히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인치시면서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보증하십니다. 고린도후서에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고후1:22)고 하셨습니다. 에베소서에도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엡1:13)라고 하셨습니다. “약속의 성령”이라고 하셨으니 하나님의 자녀 된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성령을 보내주십니다. 5.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음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사람에게는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고 말씀하셨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사람들에게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36절)라며 거듭 영생에 대해 복음을 전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20:31)고 전했습니다. 그 생명은 영원한 생명인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가 주신 것입니다. (권면의 말씀) 이제 우리 모두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철저히 회개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통하여 성령을 받읍시다. 성령 받지 못한 사람은 구원과 상관이 없는 사람입니다. 반면에, 성령으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늘나라를 상속받게 됩니다. 성령이 구원의 보증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믿어지는 믿음에 이르게 되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깨닫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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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나라를 대적하기 쉬운 3대 세력주님의 나라를 대적하기 쉬운 3대 세력 조병우 목사 김천제일교회 주님이 부활하신 이후에 부활에 대한 두 가지 방향성이 나타난 사실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잘 알고 있다. 하나는 예수님의 부활이 실제 사실이라는 교회의 주장과 다른 하나는 예수님의 부활은 거짓이고 제자들이 밤에 훔쳐 갔다고 주장하는 세력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을 거짓으로 만든 데는 세 가지 요소가 있었다. 하나는 돈이요, 둘째는 교권 즉 대제사장이요, 셋째는 권력이었다.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군병들이 대제사장에게 가서 사실을 말하니, 대제사장은 군인들에게 돈을 주면서 총독에게 이야기해서 너희에게 해가 되지 않도록 하겠으니 너희는 나가서 제자들이 와서 밤에 훔쳐 갔다고 하라고 시켰고 군인들은 나가서 그대로 말했다. 그것이 사람들에게 그대로 전해졌고, 그것이 진실을 몰아내고 사람들에게 기정사실처럼 되고 만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진리를 대적하는 모임의 역할을 보게 되는데 먼저는 대제사장의 역할이다. 이들은 가장 정직해야 하고,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하는 사람임에도 세상과 짝하면서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는 일에 가장 앞장섰다. 그리고 권력과 결탁하고, 성전을 장사꾼의 이익을 취하는 장터로 만들고, 그 돈으로 사람을 매수하여 거짓을 퍼트리는 일을 한 것이다. 종말에 주의 교회를 위협하는 세력 가운데 가장 중심에는 교회 지도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다. 배도라는 말은 하나님을 믿었던 사람이 하나님을 배신하는 일을 말한다. 세상과 결탁한 교회의 모습이고 타락한 지도자 모습이다. 그리고 권력의 역할이다. 빌라도는 스스로의 입으로 ‘나는 이 사람에게 죄를 발견하지 못하겠다’라고 반복하면서도 결국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사람들의 소리를 이기지 못하고 예수님께 사형을 언도했다. 권력이란 사람들의 여론에 너무도 취약하고 사람들의 여론이 법 위에 존재한다. 권력자는 여론에 움직이는 갈대와 같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권력은 사람들에게 만족을 줄 수 있다면 얼마든지 교회를 핍박할 수 있는 구조이다. 마지막으로 돈의 힘이다.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군인들이 어떠했는가. 대제사장에게 돈을 많이 받은 군인들은 거짓말을 하겠다고 약속했으며 가장 위대한 그리스도의 부활을 거짓 사건으로 만드는 일에 앞장서게 된 것을 볼 수 있다. 돈은 진실까지도 거짓으로 만들고 하나님의 일도 거짓말로 만들게 된다. 그래서 돈은 일만 악의 뿌리이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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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의 사명과 순교에 대한 예고베드로의 사명과 순교에 대한 예고(요한복음 21장 15~22절) 장 재 효 목사 서울성은장로교회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15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18절) 예수님은 베드로를 처음 만나던 날,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요1:42)고 말씀하시면서 베드로가 어떤 사명으로 살아가게 될지를 미리 알려 주셨습니다. 게바는 번역한즉 베드로(peter)로 반석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향해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8)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베드로의 신앙고백 바탕 위에 예수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는 첫 사람으로 쓰임 받는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 사명을 받았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저주하며 부인한 것 때문에 괴로운 마음과 생활의 염려로 믿음이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베드로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그를 찾아오십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부활하신 몸으로 세 번째 만나신 장면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1. 예전의 생활로 돌아간 베드로 요21:1~14절까지 내용을 먼저 살펴보고자 합니다. 베드로를 비롯하여 여러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는데도 예전의 생활로 돌아갔습니다. 베드로는 동료들과 함께 갈릴리로 가서 고기를 잡으러 그물을 내렸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하고 허탕을 쳤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하고 물으니 “없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라고 말씀하셨고, 이에 그물을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을 정도였는데 잡힌 큰 물고기만 153마리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그 깊은 사랑을 깨닫고 주님을 떠났던 것을 철저히 회개하며 주님께로 다가갔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떡과 생선을 주셨을 때 제자들은 큰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배신하고 떠난 제자들이었지만, 앞으로 쓰실 계획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실패의 현장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애써 찾아가신 것입니다. 참 눈물겹도록 주님의 사랑이 깊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떠나서 실패하고 절망 가운데 있는 제자들의 아픔을 예수님께서는 종합적으로 해결해 주시는 분이셨습니다. 여러분,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습니까? 예수님은 여러분들의 영혼만 천국에 가게 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육신이 땅에 사는 동안 먹고 사는 문제도 예수님이 책임져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2.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질문하심 그러고 나서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하고 물으셨고, 베드로가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내 어린 양을 먹이라”(15절)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어린양을 먹이라’는 말씀은 ‘양육하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또다시 베드로를 향해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같은 질문을 하셨습니다.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베드로가 같은 대답을 하자, 예수님은 “내 양을 치라”(16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양을 치라’는 것은 예수님의 마음에 드는 양 떼가 되도록 그들을 잘 가르치고 훈련하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세 번째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또 물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또한 주님께서 아실 것이라고 고백하였는데 왜 자꾸 되풀이해서 물으셨을까요? 베드로는 당황했습니다. 위축되고 불안한 마음으로 근심하면서 베드로는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내 양을 먹이라”(17절)라고 다시 말씀하신 것입니다. 3. 베드로의 믿음이 회복되기를 원하신 예수님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왜 세 번이나 같은 질문을 하셨을까요? 이는 베드로가 그동안 예수님에 대해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살펴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제 예루살렘에 가면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나를 잡아서 이방인의 손에 넘겨 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일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나서서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라며 큰소리를 쳤습니다. 이것은 제자로서 당연한 도리였지만, 예수님은 오히려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라며 책망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임당하시고 언약의 피를 흘리셔야 택하신 백성들의 죄가 용서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베드로는 영적으로 무지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마26:31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날이 다가올 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라며 확신 있게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날 밤 예수님이 잡히신 후 베드로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그때 닭 울음소리를 듣고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심히 통곡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눅22:31~32절에서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한 이후에 믿음이 떨어질 것을 미리 아시고 그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같은 질문을 하신 이유는 베드로를 사랑하사 예수님과의 관계가 다시 회복되어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하신 것이었습니다. 3. 베드로의 사명과 순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신 뒤,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18절)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베드로가 나중에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인지를 알려주신 것입니다. 베드로는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복음을 전하자 하루에 삼천 명, 오천 명이 예수님을 믿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사도행전 4장에 보면, 베드로는 복음을 전하다가 잡혀갔을 때 “다시는 예수 이름으로 말하지도 가르치지도 말라”는 제사장들의 경고에 굴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라고 담대히 말합니다. 베드로는 사명을 완수하는 그 날까지 예수님의 은혜를 잊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네로 황제의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로 말미암아 순교하게 됩니다. 마지막에도 베드로는 예수님을 욕하고 부인한 그 죄책감 때문에 예수님과 똑같이 십자가에 매달릴 수 없다고 생각하여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죽기를 자청하였습니다. 이 일은 이미 예수님께서 베드로가 어떠한 죽임을 당할지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권면의 말씀)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한 뒤 절망하여 예전의 생활로 돌아가려 하였으나, 예수님은 그를 사랑하사 관계를 회복하도록 친히 찾아가셔서 복음을 증거 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말씀처럼 베드로는 담대히 복음을 전하며 사명을 감당하였고, 순교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우리도 베드로처럼 자신의 믿음을 지키며 사명을 받은 직분대로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뜻은 많은 영혼들이 다 구원 얻어 천국 가는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하여 우리가 합심 전력해야 합니다.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다는 마음으로 영혼 구원에 내 생애를 바치겠다는 다짐이 필요합니다. 이제 정신 바짝 차리고 이왕 믿으려면 진짜로 믿는 성도가 됩시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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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끝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를 하게 된 계기와 의미는?기도의 끝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를 하게 된 계기와 의미는? Q 질문 : 외국 영화를 보면, 기도를 마친 후 아무런 이야기 없이 “아멘”만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는 말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없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를 꼭 붙이잖아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를 하게 된 계기와 그 의미는 무엇인가요? A 답변 :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할 때에는 우리의 모습으로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죄가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해 줄 중보자가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자기 몸을 희생 제물로 드려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 주신 대제사장이시며 또한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나아갈 때는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신 예수님을 힘입어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게 되는데, 이것은 우리는 아무 자격 없으나 오직 예수님의 공로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간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기도할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는 말을 덧붙이는 것입니다. 이 문장의 의미는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드린다는 의미이며, 우리 자신에게는 하나님께 나아갈 아무런 자격이 없음을 고백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이 문장을 꼭 붙여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할 수 있는데, 붙이는 것이 정상적이고 좋지만 반드시 꼭 붙여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말의 뜻은 우리가 기도할 때에 예수님의 피 공로를 의지하여 나아간다는 믿음이 중요한 것이고 꼭 그런 문장을 말로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한국 교회에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는 문장을 많이 사용하고, 이것이 관용화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기도를 끝마칠 때 이런 문장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됩니다. 답변자 : 변종길 교수 (고려신학대학원, 신약학) - ‘크리스천 큐앤에이’(도서출판 등과 빛) 中 요약 발췌 -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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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우치고 말씀에 순종할 때장 재 효 목사 서울성은장로교회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아버지 가겠나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그와 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싫소이다 하였다가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28~30절) 그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이르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그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녀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31~32절)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 하신 비유의 말씀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불복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는 악한 자들이었습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경고로, 순종하려 하지 않는 자는 그 교만 때문에 패망하고 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잠16:18) 그러나 그 잘못을 회개하고 순종한다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1. 예수님에 대해 종교지도자들의 도발 오늘 본문 앞서 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 때,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네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하고 따져 물었습니다. 이렇게 한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많은 무리가 모여들어서 예수님을 환영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성전에 들어가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셨습니다. 또한, 열매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에게 저주하자 그렇게 생기발랄했던 우거진 나무가 하룻밤 사이에 뿌리부터 말라 죽어버렸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이러한 일들을 보고 두려우면서도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아볼 생각은 하지않고 여러 모양으로 흠집을 찾아보자고 안달을 했던 것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인기가 높아 갈수록 자기네들의 입지가 급속도로 허물어지는 것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에 대해 더는 두고 볼 수 없어 누가 너에게 그런 권세를 줬느냐고 예수님께 따지고 물었던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는 질문에 대하여 너희가 답변하면 나도 너희에게 답변하겠다고 하고,(24절)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아니면 사람으로부터냐?”라고 물었습니다.(25절) 그러자 종교지도자들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세례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 온 것이라 대답한다면 왜 그를 믿지 않았느냐고 할 것이고,(25절) 사람으로부터 온 것이라 대답하면 모든 사람이 세례 요한을 선지자로 아는 고로 백성들을 무서워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26절) 그래서 그들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할 난처한 상황이 되자 “우리가 알지 못한다”고 답변을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무슨 권세로 성전에서 백성들에게 말씀을 선포하시는지 밝히 알려주지 않으셨습니다.(27절) 세례 요한은 예수님에 대해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고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해서 오신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선포했던 선지자였습니다.(요1:29)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해 애타게 회개하라고 외쳤지만, 종교지도자들은 세례 요한을 미치광이로 무시해버리고 불신하며 배척했습니다. 또 이들은 세례 요한뿐만 아니라 예수님까지도 비난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저들의 비난에 대해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그들이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고, 인자가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마11:18~19)라고 말씀하신 것을 볼 때, 그들이 예수님에게 얼마나 큰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비하하고 예수님을 깎아내리면서 비방했던 자들이 또다시 예수님께 ‘권위’를 따지며 도발해 온 것입니다. 2.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심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권위에 대해 도발하는 종교지도자들을 향해 예수님이 그들의 완악하고 강퍅한 마음을 지적하고 깨우치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저들에게 비유를 들어, “한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맏아들이 ‘가겠나이다’하고 대답은 했으나 가서 일하지 않았고,(29절) 둘째 아들에게도 똑같이 말하니 둘째 아들은 ‘싫소이다’하고 대답했지만 뉘우치고 가서 열심히 일했다(30절)고 한다면, 두 아들 중에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고 그들에게 질문하셨습니다. 그러자 종교지도자들의 대답은 둘째 아들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31절) 이 비유를 하신 것은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믿으려 하지 않는 것을 지적하기 위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타락한 종교지도자들을 불순종한 맏아들이라고 표현한 것이었고, 저들이 천대했던 죄인들을 순종한 둘째 아들로 표현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것이다. 세례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와서 복음을 전했거늘 너희는 끝까지 그를 믿지 않았지만, 너희가 손가락질하며 욕하던 세리와 창기는 믿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32절) 죄인들은 둘째 아들처럼 뉘우치고 아버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목적을 따라 말씀 듣고 회개하여 구원의 자리로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종교지도자들은 잘 믿는 척하면서도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오히려 예수님을 세리와 창기 같은 부류로 취급하며 죄인이라고 한 것을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비유로 지적하신 것입니다. 이들은 말씀을 듣지도 아니하고, 성령의 임재도 없으며, 구원에 이르지도 못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런 자들을 바라보시며 예수님은 한탄하시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과 불순종의 결과 사1:19~20절에 보면, “너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즐겨 순종하면 이 땅의 아름다운 것을 먹게 해주겠지만 너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그 말씀을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켜질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그 칼은 어떤 칼입니까? 말씀의 칼입니다. 히4:12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칼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주신 생명의 말씀, 구원의 말씀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면, 그 말씀이 심판의 칼날로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신28장에 보면,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라”(2절)고 말씀하십니다. 순종하는 자의 복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서 순종하면 복이 임할 것을 약속하고 있는 내용입니다.(3~14절) 반대로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15절) 불순종하는 자의 저주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는데(16~44절) 이를 가벼이 여겨서는 결코 안 됩니다.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 복이요,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메시지를 마음에 깊이 새길 때 우리의 신앙생활에는 엄청난 유익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권면의 말씀) 오늘 본문의 비유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타락한 종교지도자들의 교만한 모습을 똑똑히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증거하는 일에 자기 생명을 다 바친 세례 요한을 미치광이 취급해버렸습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을 비난하면서 그 권위에 도발하는 행위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암4:10절에 보면, “내가 너희 중에 염병이, 전염병이 임하게 하기를 애굽에서 한 것처럼 하였으며 칼로 너희 청년들을 죽였으며 너희 말들을 노략하게 하며 너희 진영의 악취로 코를 찌르게 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라는 말씀처럼, 불순종한 자들의 결과는 참담한 끝을 가져옵니다. 종교지도자들의 악한 생각은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습니다. 저들은 스스로 의로운 자로 여겼지만, 실제는 악한 영에게 속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일이 무엇일까요? 영적으로 충만해서 악령과 싸워 이기는 것입니다. 모두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순종함으로 악령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모습을 보실 때, 예수님은 그 기쁨을 이기지 못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진짜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는 방법이라면 그 일을 왜 못하겠습니까? 예수님이 그런 여러분들을 보시고 기뻐하실 수 있도록 오늘부터 여러분들이 영적으로 거듭나서 성령 충만함으로 승리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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