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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난 때의 내 신앙환난 때의 내 신앙(다니엘 12장 1~13절) 장 재 효 목사 서울성은장로교회 내가 들은즉 그 세마포 옷을 입고 강물 위쪽에 있는 자가 자기의 좌우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하여 영원히 살아 계시는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되 반드시 한 때 두 때 반 때를 지나서 성도의 권세가 다 깨지기까지이니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일이 다 끝나리라 하더라(7절)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하게 하며 희게 할 것이나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 악한 자는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하게 할 가증한 것을 세울 때부터 천이백구십 일을 지낼 것이요 기다려서 천삼백삼십오 일까지 이르는 그 사람은 복이 있으리라(10~12절) 이 시대를 살면서 지금 코로나 유행병으로 인해 국민들이 상당히 어려움을 겪고 경제가 바닥에 허물어지면서 인간관계도 단절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교회가 하나님 앞에 대면예배마저 제지당하는 입장이 되어 있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신앙인으로서의 말이나 행동이 하나님을 실망시키고 여러 가지로 기대를 어긋나게 해드렸기 때문에 당하는 시련으로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모든 교회가 각성분발하며 회개운동을 일으킬 때입니다. 민족이 회개함으로 하나님께 용서받으면 하나님께서 이 모든 오늘의 불행을 회복의 역사를 통하여 영적인 기쁨이 넘치게 하시고 경제도 다시 활성화되게 해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에게 원인을 돌리고 원망이나 불평을 할 것이 아니라 나부터 먼저 하나님 앞에 솔직히 자신의 신앙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애통하며 철저히 회개해서 모두가 각자의 죄를 온전히 용서받을 때 회복의 날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앞당겨지게 될 줄 믿습니다. 이 시간 바벨론 포로 시절에 많은 환난 속에서도 순교적 신앙의 정절을 지켰던 다니엘과 그 친구들의 믿음을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1) 다니엘의 신앙의 정절 오늘 본문에 다니엘이라고 하는 사람은 그 이름 자체가 ‘하나님은 나의 재판장이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니엘은 그 이름의 뜻대로 하나님이 자기의 재판장이신 줄로 생각하며 아무리 어려운 환난과 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육신의 생명까지 하나님의 뜻에 의탁하고 믿음의 정절을 지키며 살았습니다. 당시 유대나라가 신앙이 변질되고 하나님께 불순종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을 일으켜 유대나라를 B.C 605년에 1차 침공하게 하셨습니다. 그 때에 많은 포로를 잡아갔는데 소년이었던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과 아벳느고도 함께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포로로 끌려간 다니엘과 친구들은 느부갓네살 왕의 수종드는 소년들로 선발되었습니다. 그래서 왕이 그들에게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언어를 가르치게 하였고 또한 왕의 음식과 포도주를 넉넉히 먹도록 지시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바벨론제국 세력 확장을 위하여 여러 나라를 정복하고 강탈해서 빼앗아 온 불의한 것들임을 알았기에 그들은 신앙 정절을 지키기 위해 왕이 제공한 음식과 포도주를 거절합니다. 오히려 채식만 먹어도 왕의 음식을 먹은 다른 소년들과 비교해서 전혀 손색이 없도록 하나님이 책임져 주실 것을 믿으며 환관장에게 열흘 동안 시험해 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결국 다니엘이 말한 대로 왕의 음식을 먹은 다른 소년들보다 더 좋게 나타나도록 하나님께서 역사하여 주셨습니다. 이것은 이들이 온전히 하나님 중심의 신앙이었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2) 다니엘을 높이신 하나님 5장에서 보면 벨사살 왕이 그의 귀족 천 명을 위하여 큰 잔치를 베풀고 술을 마시며 신들을 찬양하고 있을 때에 연회장 벽에 손가락이 나타나서 글자를 쓰는 것을 보고 박사들을 불러서 알아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글자를 읽지 못하며 해석도 하지 못하자 벨사살 왕이 크게 번민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다니엘이 부름을 받아 왕 앞에 나와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영감적 계시로 그 글자가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는 글자를 보여 주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왕을 저울에 달아 보니 하나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 곧 죽게 될 것이라고 하는 뜻이었습니다. 결국은 그 꿈을 해몽함으로 해서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간 다니엘이 셋째 치리자의 지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다리오 왕이 즉위했을 때 다니엘은 용모가 준수하고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고관들 위에 뛰어나므로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다니엘을 시기하여 죽일 계획으로 한 금령을 세우고 다니엘을 모함하게 됩니다. 결국 다니엘은 규례를 어긴 죄로 사자 굴에 들어가 사자 밥이 될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사자 굴에 던져진 다니엘을 사자들의 입을 봉해 머리카락 하나 상하지 않도록 안전하게 지켜주셨습니다. 다니엘이 사자굴 안에서도 하나님의 보살핌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믿음의 정절이 육신이나 주변상황이나 어떤 권력 앞에도 굴하지 아니하고 오로지 하나님 절대주의 신앙으로 믿음의 정절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절대 신앙으로 사는 사람은 아무리 세상 시대와 형편이 바뀌어 간다 할지라도 그런 것에 굴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영적인 믿음을 알차게 가꾸어서 하나님께 인정받고 쓰임 받게 될 것입니다. 3) 다니엘이 본 환상 다니엘은 마지막 때에 일어날 일에 대해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4절)는 말씀을 듣게 됩니다. 이것은 이 시대처럼 인류역사 이래로 사람들의 이동이 가장 짧은 기간에 먼 곳을 왕래하고, 또 TV나 인터넷 그 외에 여러 가지 전자기기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지식이 넘쳐나게 전달되고 있는 때일 것입니다. 그리고 다니엘이 환상을 봅니다. “나 다니엘이 본즉 다른 두 사람이 있어 하나는 강 이쪽 언덕에 섰고 하나는 강 저쪽 언덕에 섰더니 그중에 하나가 세마포 옷을 입은 자 곧 강물 위쪽에 있는 자에게 이르되 이 놀라운 일의 끝이 어느 때까지냐 하더라 내가 들은즉 그 세마포 옷을 입고 강물 위쪽에 있는 자가 자기의 좌우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하여 영원히 살아계시는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로되 반드시 한 때 두 때 반 때를 지나서 성도의 권세가 다 깨지기까지이니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일이 다 끝나리라 하더라”(5~7절). 이것은 바벨론에게 망한 유대나라가 포로 신세의 불행이 언제쯤 끝날 것이냐 하는 것에 대한 예언으로 일차적으로는 안디오쿠스 에피파네스의 박해의 때를 가리키나 종말론적으로는 말세에 있을 대 환난의 때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3년 반을 말합니다. 42달이고 1260일 이것은 적그리스도의 세력이 교회를 허물어뜨리기 위하여 핍박과 온갖 악랄한 박해를 가하는 기간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일이 교회가 완전히 깨어지기까지 박살난다는 것입니다. 안디오쿠스 에피파네스는 유대인들을 악랄하게 박해를 하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도록 예루살렘을 쳐들어가 성전과 성벽도 불태웠습니다. 그리고 그 성전 안에 하나님을 경배할 때 쓰인 모든 기물들을 바벨론으로 다 빼앗아 간 적그리스도의 모형을 한 자였습니다. 우리가 기억할 것은 세상 권력을 가진 정치인들과 또 그 권력의 시녀가 되어서 상대국 신앙과 종교를 말살시키려고 하는 사탄의 세력들이 동시에 역사했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다니엘이 듣고도 깨닫지 못하여 “내 주여 이 모든 일의 결국이 어떠하겠나이까?(8절) 하고 질문을 했을 때 예수님이 ”다니엘아 갈지어다 이 말은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함할 것임이라“(9절)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그 당시도 일차 실행되겠지만 이중적 예언이고 또 종말론이기 때문에 이 세상 역사가 끝날 때도 똑같이 되어진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해서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하게 하며 희게 할 것이나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한다는 것입니다(10절). 악한 자는 자기 죄악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심판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 멸망을 재촉하며 하나님 앞에 무서운 형벌을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더 회개하고 성령의 충만함으로 하늘나라 갈수 있는 믿음을 가꾸기 위하여 자신을 더 정결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권면의 말씀) 본문에서 다니엘이 본 환상 가운데 ‘적그리스도의 세력들이 권력을 잡고 세상을 지배하여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게 한다’(11절)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도들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환난과 핍박의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신앙이 환난 때에 어떤 믿음을 보여주겠는가를 불꽃같은 눈으로 감찰하시고 계신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는 믿음들이 되시고 다니엘과 세 친구처럼 아무리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믿음의 정절을 지켜 나갑시다. 이 모든 환난의 때를 타개하고 극복하면서 끝내 승리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이 실현될 때에 영생의 상급을 보장받게 될 것입니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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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군 대가야읍 지역사회보장협의체특화 사업 실시‘사랑 쏙! 쏙! 꾸러미-추석맞이 나눔 꾸러미’ ▲대가야읍 지역사회보장협의체는 '사랑 쏙! 쏙! 꾸러미'를 저소득층 가구에 전달했다.(사진=고령군 제공) 고령군 대가야읍 지역사회보장협의체(민간위원장 최현숙, 공동위원장 이재원)에서는 2021년 9월 9일(목) 대가야읍사무소 2층 회의실에서 4차 정기회의를 개최하고,복지사각지대에 놓인 이웃들에 대한 발굴 및 서비스 연계에 대하여 다양한 의견을 나누며 봉사활동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논의를 했다. 회의 후 지역사회보장협의체 특화사업 ‘사랑 쏙! 쏙! 꾸러미- 추석맞이 나눔 꾸러미’를 대가야읍사무소 회의실에서 제작하여 관내 저소득층 30가구에 직접 전달하였다. 이번 꾸러미 사업은 ‘추석맞이 나눔 꾸러미’로 전 3종류, 김치, 떡갈비, 김, 두유, 소고기죽, 약과, 유과, 사과, 배, 귤 등 풍성한 추석을 보낼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최현숙 민간위원장은 “다가오는 추석 따뜻하게 보내시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정성을 담아 꾸러미를 준비했다”며 “앞으로도 주민들을 위해 나눔 활동을 지속적으로 펼쳐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재원 대가야읍장은 “매년 사랑 쏙! 쏙! 꾸러미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시는 협의체 위원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앞으로도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이혜경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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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나의 어머니, 김해선 권사님!나의 어머니, 김해선 권사님! 최 점 식 목사 길부교회 나의 어머니의 일생(1933년 9월 9일~) 어머니는 경북 군위군 의흥면에서 무남독녀로 어렵게 살아온 전형적인 가난한 농민의 딸이었다. 어머니는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여의고 홀로 계시는 아버지 밑에서 살아오셨다. 그러면서도 바느질을 배워, 동네 어르신들의 옷과 버선도 만들어 드리며 살아오셨다. 손재주가 남달라 동네 어른들로부터 사랑과 칭찬을 많이 받으셨고, 아버지를 정성으로 섬기며 집안일도 어머니를 대신하여 잘 해내셨다. 그러던 어느 날 군위 우보 5일장에 다녀오신 외할아버지께서 당시 15세인 어머니에게 시집이라도 가라고 하셨다. 어머니는 그렇게 자신보다 아홉 살이 많은 내 아버지를 만나 16세의 어린 나이에 5남매 중 장남과 결혼하여 시부모님과 함께 경북 군위군 우보면 이화동 1189번지에 한 가정을 이루게 되었다. 행복한 신혼의 꿈을 뒤로한 채 아버지는 군 입대를 하셨다. 남편도 없는 시집살이는 쉽지 않았고, 가정 형편 또한 넉넉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어머니는 조금의 불평도 하지 않으셨고, 부모님께는 효도하고 형제들과는 우애를 다지며 힘든 환경 속에서 살아오셨다. 그러던 중에 농촌에서의 삶이 어려워지자 대구 산격동으로 이사를 하셨다. 생각해보니, 도시로 이사를 나온 것은 어머니의 커다란 용기였다. 지금도 종종 이러한 결단이 없었다면 내가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게 도시의 생활이 시작됐으나, 별 직업이 없었던 아버지께서는 시장에서 리어카로 채소장사를 하면서 가정의 생계를 꾸려나가셨다. 동시에 어머니께서는 우리 4형제를 공부시키시기 위해 40대 초반의 나이에 식당에서 일을 하셨다. 그리고 어릴 때 배워둔 삯바느질을 통해 생계를 이어가셨다. 어린 내가 봐도 두 분은 참으로 열심히 사셨고, 어린 시절부터 보아온 두 분의 모습이 지금 우리 형제들의 성실과 부지런함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믿음의 가문을 일구어내신 어머니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세 들어 살던 곳의 주인집 아주머니에게 전도를 받아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교회를 다니면서 나 혼자만 예수님 믿지 말고 어머니도 함께 믿게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어머니를 설득했고 하나님의 은혜로 어머니도 40대에 처음 교회에 나가시게 되었다. 어머니는 평소 몸이 좋지 않으셨는데, 교회를 다니신 후로 건강을 회복하며 하나님의 큰 은혜를 체험하셨다. 하지만 제사 문제 등을 이유로 주위 친척들의 심한 반대가 시작되었다. 어머니는 믿음이 성장하면서 제사를 없애고 추도 예배를 드릴 것을 제안하셨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족들이 예수를 믿게 해야 했다. 어머니는 기도하면서 최선을 다해 가족들을 전도하셨고,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우리 4형제도 교회에 출석하게 됐다. 그 후 우리는 형편이 나아지면서 새로운 집으로 이사도 하게 되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우리 형제들은 모두 중·고등학교에 다닐 수 있었으나, 시장에서 채소를 운반하시던 아버지께서 갑자기 뇌출혈로 세상을 떠나셨다. 하루아침에 우리 집은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너무나 아파 목이 메어 온다. 아버지 없이 우리끼리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하는 생각에 불안한 마음이 점점 더 커졌다. 어머니는 그때부터 식당 일 등 돈이 되는 일이면 무엇이든지 가리지 않고 밤낮으로 일하셨다. 어머니의 희생으로 우리 형제들은 굶지 않고 살아갈 수가 있었다. 온 가족이 힘든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았으니,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장남인 나는 집안을 위해 사업을 시작했고 사업체를 운영하게 됐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를 사업의 길이 아닌 목회자의 길로 인도하셨고, 신학의 길을 걸어가고자 마음먹었을 때도 어머니는 반대하지 않으셨다. 지금은 우리 4형제 중 2명이 목사로서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 지난날 불신자의 가정에서 목회자가 배출되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비록 농촌목회와 자비량 선교사의 길을 걷고 있으나 최선을 다해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어머니에 대한 기억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어머니의 희생으로 무사히 고등학교를 입학하게 된 것이다. 입학 당시, 입학등록금이 없어 어머니는 끼고 계시던 금반지 세 돈을 팔아 입학등록금을 마련해주셨다. 또 2012년 어머니의 팔순 때, 어머니께서는 동생들은 모두 좋은 차가 있는데 장남인 내가 목사이면서도 소형 자동차를 가지고 있다며, 그랜저 3.0을 구입해 주셨다. 섬유공장에 다니시면서 모아두신 돈으로 새 차를 사주신 것이다. 나의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은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다는 사실을 70대를 바라보며 다시금 느끼고 있다. 현재 어머니는 경산에 거주하시는데 지금도 아들이 오면 커피를 손수 끓여주시며, “부모는 한 번 죽으면 다시 볼 수 없는데, 내가 살아있으니 커피라도 끓여준다”라고 말씀하신다. 아들로서 어머니에게 해드린 것이 한 가지 있다면 6년 전에 아내와 함께 의논해서 지금의 아파트로 모신 것이다. 다만, 더 해드리지 못해 항상 죄송한 마음이다. 부모 없는 자식이 어디 있겠는가? 자녀들에게 모범이 되신 어머니 어머니는 지난 1988년 88세로 세상을 떠나신 할머니를 수십 년간 모신 결과로, 1997년 5월 8일 어버이날에 대구광역시장으로부터 ‘장한 어버이상’을 수상하셨다. 이는 우리 가문의 영광이었다. 또 2020년 9월에는 아버님이 6·25 참전 국가유공자란 사실을 인정받게 되어 너무나 감격해하시기도 하셨다. 어머니는 지금은 89세로 연로하시지만, 40여 년간 출석하신 교회의 권사로서 주일예배, 삼일기도회, 금요구역예배 등 경산에서 대구까지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다니시는 모습에 존경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언젠가 교회 화장실을 청소하시다가 락스가 눈에 들어가서 고생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교회 관리집사님도 있었지만 더러운 화장실을 그냥 볼 수 없어서 청소하셨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그런 분이시다. 어머니는 지금도 교회 어르신들에게 옷을 만들어 드리고, 봉사하시며, 길흉사에 빠짐없이 참석하신다. 국가에서 받는 노령연금과 자녀가 드리는 용돈으로 십일조, 감사헌금, 선교헌금을 내시며 교회 권사로 그 의무를 다하시니 아들로서 부끄러운 것밖에 없다. 아무쪼록 남은 삶 건강한 몸으로 계시다가 언젠가 하나님이 부르시면 조용히 천국 가실 수 있도록 기도한다. 60대 중반에 있는 큰아들을 마치 어린아이로 생각하시는 것을 보면 부모의 마음이 어떠한지 가히 짐작해 본다. 나의 어머니 살아계실 동안에 건강하세요. 존경합니다. ▲2021년 2월 설날에 어머니(뒷줄 왼쪽 세 번째)와 함께 찍은 가족사진.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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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취재> 성은교회 장재효 목사, ‘호소문’ 통해 사임 의사 밝혀장재효 목사, “이제는 노종(老從)을 놓아주시고, 진리정통(眞理正統)하고 성령충만한 후임 목회자 구해주세요.” 51년 동안 장재효 목사를 중심으로 선교사명을 힘있게 감당해왔던 서울 성은교회(서울시 송파구 소재)에서 후임 목회자를 맞을 채비를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 5월경 장재효 목사는 “이제는 건강이 미약하여 더는 책임목회를 감당할 수 없으니 노종(老從)을 놓아달라”는 취지의 호소문을 교회 앞에 발표했으며, 이에 따라 성도들은 장 목사의 간곡한 뜻을 존중하여 후임목사 청빙의 단계를 밟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서 지난 8월 23일(월) 장재효 목사와 서윤석 장로를 비롯한 세 분의 장로가 본 신문사 사옥을 방문해 그간의 경위를 설명하면서 후임목사를 구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에 본지에서는 다음과 같이 △장재효 목사의 호소문 △성은교회 성도들이 장재효 목사에게 보낸 편지 △장재효 목사의 ‘목회자의 사명’에 대한 생각 등을 게시함으로써, ‘이 시대에 참 목회자와 성도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가?’에 관한 답을 찾아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서울 성은교회 장재효 목사와 서윤석 장로를 비롯한 세 분의 장로가 지난 8월 23일(월) 본 신문사 사옥을 방문했다. 사진은 장재효 목사가 본지 임직원들과의 면담 자리에서 장 목사의 호소문 등을 낭독하고 있는 장면. 장재효 목사의 호소문(呼訴文) 사랑하는 성은교회 신도(信徒) 여러분 지난 세월 한결같은 사랑으로 모든 것이 부족한 종(從)을 주님의 사자(使者)라고 주님 대하듯 선대(善待)해 주셨고, 기도(祈禱)와 헌신봉사(獻身奉仕)와 어려운 형편에서도 적극적으로 협력(協力)해 주셔서 지금의 성은교회 성은동산을 세우게 하셨고 많은 나라에 선교(宣敎)하게 해주신 것을 뜨거운 중심(中心)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그 모든 정성(精誠)은 주님께 향기로운 제물(祭物)이 된 줄 믿습니다. 오늘은 부득이 죄송(罪悚)하고 죄송(罪悚)한 호소를 드릴 수밖에 없어 불초(不肖) 종(從)의 마음은 더욱 슬프고 괴롭답니다. 지나온 세월이 어언 반세기(半世紀)가 넘었지만, 늘 변함없으신 우리 주님의 사랑과 은혜(恩惠)로 우리는 주(主) 안에서 목양지간(牧羊之間) 성령(聖靈)으로 하나 되어 가(可)히 교회천국(敎會天國)으로 지내 온 것을 주님과 성도 여러분께 무한감사(無限感謝)를 드립니다. 부디 앞으로도 믿어지는 믿음으로 영적신앙(靈的信仰)을 끝까지 고수(固守) 하셔서 우리 모두 천국(天國)에서 다시 만나 주님과 함께 영생복락(永生福樂)을 누립시다. 불초(不肖) 종(從)이 노쇠(老衰)하고 기력마저 허약(虛弱)해져 책임목회(責任牧會) 사역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오로지 사명감(使命感) 하나로 지금까지 각고의 노력을 해봤으나, 성과(成果) 부실(不實)하여 주님께 송구스럽기 한이 없고 교회에도 죄송스러워, 심적(心的) 고통이 막심(莫甚)하여 주야(晝夜)로 번민(煩悶)하며 주님께 기도와 간구로 호소해 왔습니다. 목자(牧者)의 사명(使命)을 제대로 감당치 못하면서 당회장(堂會長) 자리만 보존(保存)한다는 것이 이 종(從)의 무딘 양심(良心)에도 너무나 괴롭고 두려웠습니다. 누구나 감당(堪當)치 못할 형편(形便)이면 자진(自進)해서 사직(辭職)하는 것이 모두를 위하여 현명(賢明)한 지혜(知慧)라 사료(思料)됩니다. 성은교회의 중흥(中興)을 위하여 심사숙고(深思熟考) 후 물러나기로 결심(決心) 했습니다. 이제 쓸모없는 노종(老從)은 놓아주시고, 진리정통(眞理正統)하시고 성령님의 다양한 은사(恩賜)와 능력(能力)으로 성은교회를 주님께로 잘 이끌어 줄 수 있는, 주님께 진실(眞實)되고 충성(忠誠)스러운 목자(牧者)를 모두가 합심해서 간절히 기도하시면 주님께서 필연적으로 응답(應答)해 주실 것입니다. 불초노종(不肖老從)의 서러운 고충(苦衷), 사명(使命)을 감당치 못해 애간장 태우며 통곡(痛哭)해야 하는 몸부림을 중단할 수 있도록, 너무나 죄(罪)스럽고 부끄럽지만 그토록 그립던 주님 품에 안기고 싶습니다. 성은교회와 여러분의 가정에 임마누엘(IMMANUEL)로 새로운 은혜(恩惠)와 평강(平康)이 넘치시길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祝願)드립니다. 2021년 5월 성은교회 당회장(堂會長) 불초노종(不肖老從) 피눈물로 드리는 호소문(呼訴文) 성은교회 당회장 목사님 전(前) 상서(上書) 반백년이 넘도록 한결같이 참 목자, 선한 목자로 책임 목회를 감당하시며 양떼들로 하여금 천국 들어갈 믿음을 알차게 가꾸어 주시고 영광스런 결실을 이루도록 불철주야 노심초사 하시는 당회장 목사님!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성은교회는 하나님의 목적 있는 섭리가운데 세우시고 붙들어 쓰시는 당회장 목사님을 통해 진리 정통하고 성령 충만한 교회로 계속 부흥 성장하며, 지역 복음화와 농어촌교회 지원과 세계 선교에 힘써 왔습니다. 또한 성은동산 봉헌으로 한국교회의 영적 부흥과 선교 확장에 쓰임 받는 보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주일 ‘당회장 목사님의 피눈물로 드리는 호소문’을 접하면서 우리의 믿음이 부족하고 연약하여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지 못하고 있음을, 영적 가치와 성과를 위한 일보다 세상일에 더 열심을 내고 있음을, 초대교회와 같았던 옥수동 성은교회에서의 처음 사랑과 열정이 식어있음을, 당회장 목사님의 아픔과 괴로움을 외면하고 그 심정을 헤아려 드리지 못하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 통회자복 합니다. 당회장 목사님께 송구하고 죄송합니다. 그럼에도 간곡히 요청 드립니다. 우리들은 부족하고 무지몽매하나 당회장 목사님께서는 우리들의 목자이시니 어떠한 경우라도 살리는 생명의 말씀으로 우리들을 계속해서 양육하여 주시기를 간청드립니다. 서서 말씀을 전하기 힘드시면 앉으셔서 하시고 앉으셔서도 힘드시면 누워서라도 전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예수그리스도가 머리되신 성은교회에서 당회장 목사님은 우리의 심장 같으신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예수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우리 영혼을 사랑하시며 성은교회 신도 한 사람도 낙오하지 않고 천국 백성으로서의 자격을 갖추는데 일평생을 헌신해 오셨습니다. 사랑하는 우리의 목자 당회장 목사님! 우리들을 목자 없는 양같이 버리고 떠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참으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눈먼 양들을 끝까지 인도해 주십시오. 그리고 당회장 목사님처럼 하나님 말씀에 정통하며 성령님의 다양한 은사와 능력이 충만하여 당회장 목사님께 선한 목회를 잘 배울 수 있는 진실 되고 충성스러운 목회자를 구해 주십시오. 그래서 때가 되어 후임목사로 세워지면, 선대에 이어 다음세대도 성은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한 뜻을 잘 받들어 하나님 나라 확장에 맘껏 쓰임 받는 교회되게 하여 주십시오. 이를 위해 성은교회 신도 모두가 합심해서 간절히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뜻하신다면 공고, 추천, 지명 등 다양한 방법으로 후임목사 청빙위원회도 본격적 역할을 할 것입니다. 성은교회가 하나님 뜻하심과 역사하심 가운데 후임목자 문제로 분란과 혼란을 겪지 않고 질서 있게 진행되어 세습이 판치고 금전이 오고가는 부덕의 세태에 아름다운 모본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우리는 후임목사님이 세워진다고 해서 당회장 목사님을 다시는 못 보게 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원로 목사님으로 진리와 생명의 말씀을 계속 듣게 되는 복을 누리게 하여 주십시오. 세계 선교와 참된 목회자 양성에도 달려갈 길 마치는 그 날까지 맘껏 감당할 수 있도록 교회적 지원도 계속되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우리의 목자 장재효 목사님! 목사님의 외롭고 서러운 고충, 사명의 무게로 애간장 태우시며 때로 통곡하시고 주야로 번민하며 몸부림치시는 그 심정을 우리는 제대로 헤아리지 못할지라도 주님은 다 아실 것입니다. 우리는 합심으로 기도하며 당회장 목사님께 배운 대로 ‘믿어지는 믿음’ 가운데 영적 신앙 고수와 하나님 제일주의 신앙으로 교회적 사명 완수에 최선을 다해나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붙들어 쓰시는 당회장 목사님께서 오대양 육대주를 맘껏 누비시며 많은 구령성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눈동자같이 지켜주시길 바라며 저희는 항상 기도하겠습니다. 2021년 5월 8일 성은교회 교인대표 총무장로 서윤석 이하 성령님의 하나되게 하심따라 교회 제직원 일동 일심 동의함 ‘목회자의 사명’에 대한 단상(斷想) 목회자는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불러내사 책임 지워 맡기신 양떼를 위해 세움 받은 직분입니다. 그래서 선한 목자는 양떼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책임목회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목회의 궁극적 목적은 양들로 내세 소망의 확신과 신령한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 인정받고 쓰임 받음으로 은총의 대상이 되게 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목회 방침도 하나님 절대주의 신앙에 입각하여 말씀에 붙잡히고 성령에 이끌리는 영적 체질 신앙으로 바르게 가꾸어, 목자 자신에게보다 주님께 더욱 요긴한 존재들로 길러 드려야 할 것입니다. 목자는 양떼를 위하여 세움 받은 자입니다. 수제자였던 베드로에게까지 예수님에 대한 사랑의 깊이를 세 번씩이나 확인하신 다음에야 비로소 양떼를 맡기셨던 주님의 심정을 헤아려야 합니다. 주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그분의 심정을 가진 목자라야 양떼를 소중히 여기며 책임 목회 사역을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51년 전에 성은교회를 개척, 오늘에 이르도록 이상과 같은 사명 의지적 일념으로 애써온 것은 사실이나 교회 부흥과 선교 확장은 순전히 우리 주님의 경륜하시고 섭리하심을 따라 성령님의 불같은 역사로 이루어진 결과입니다. 또한, 가장 부족한 종을 예수님처럼, 또는 사도 바울같이 생각하며 기대하고 순종함은 물론, 재산과 생명을 바쳐 적극적으로 뒷받침해온 성은 양떼의 충정 어린 공덕으로 알고 눈물겹도록 뜨거운 감사를 드립니다. 참으로 성은교회야말로 목양지간에 하나로 결속, 혼연일체가 되어 오로지 우리 주님 더 잘 섬기는 기쁨을 위하여 이해하고 협력하며 순교적 사명 의지로 교세 확장과 인류 복음화를 위한 선교에 합심 전력하고 있습니다. 이상과 같은 성은교회를 ‘진리정통하고 성령충만하여 그리스도의 심장이 불타는 사명감’으로 오로지 구령성과를 위해 다양한 은사와 영역으로 교회부흥과 선교확장을 힘써 전심전력할 수 있는 후임목회자를 온 교회가 기도로 간구하고 있습니다. 2021년 9월 성은교회 당회장 장 재 효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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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출애굽기(26)나의 출애굽기(26) 드보라 63. 도시로 나와서 다시 새 삶을 시작함 집에서 나와 집사님 집에 일주일 정도 살았다. 그런데 집사님은 항상 바빴다. 모임도 많고 일도 많았다. 나는 주인 없는 집에 그냥 있기도 미안하고 해서 며칠 머물다가 근처에 아는 동생네 집으로 옮겼다. 다시 인근 도시에 나와서 식당 일자리 구해서 일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름 열심히 성경도 읽고 필사도 하고 했지만 진정한 신앙과 믿음을 가지지는 못했던 부끄러운 모습이다. 나 같은 사람을 보살피고 복음으로 양육하려고 애쓰셨던 집사님과 선생님은 얼마나 힘이 드셨을까…. 그분들의 귀한 희생과 보살핌을 생각하니 나의 나 된 것은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동생네 집에서도 한정 없이 있을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다시 집에 돌아가면 계속 분란과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오래된 저렴한 집을 세로 빌리고 시작했다. 일해서 번 돈은 그래도 딸아이를 남편이 돌보고 있었기에 집에 생활비도 보내고, 북송 되었을 때 단련대에서 나를 꺼내준 남동생에게도 보냈다. 한참을 그렇게 지내던 중에 중국으로 나온 막내동생을 만나게 되었고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듣게 되었다. 첫째 동생이 감옥에서 죽었다는 것이다. 막내동생은 중국으로 나올 때는 한쪽 손이 굽은 장애를 가진 상태였고 형의 죽음에 대한 상처로 분노와 악에 받쳐 있었다. 그렇지만 조선족 선생님의 도움으로 처소에서 생활하면서 복음을 받아들이고 치유의 기적을 경험하고 다시 북으로 돌아갔다. 이 내용은 지난번에서 이미 언급한 내용이다. 64. 남편이 한국으로 갔다는 소식을 듣게 됨 집을 떠나 열심히 돈을 벌며 생활하던 중에 남편이 한국에 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 번호로 전화가 왔는데 남편이 한국에서 건 전화였던 것이다. 남편은 취업 비자로 남한에서 일을 하고 돈을 벌겠다고 했다. 애는 아는 사람한테 돈을 주고 맡겨놓고 갔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 맡긴 집을 찾아서 딸아이를 데리고 새롭게 집을 잡아서 살았다. 이제는 남편이 생활비를 보내주었다. 꼴 보기 싫은 남편이었지만 그래도 뭔가 가정을 위해서 애쓴다는 생각이 들어서 전보다는 잘 연락하고 지내보려고 애를 썼다. 그렇게 분주하게 이곳저곳 이동해가며 지낸 것이 시간이 꽤 흘렀다. 생계를 꾸리기 바쁘다 보니 고마운 집사님과도 제대로 연락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집사님의 남편분을 길에서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했는데 인사를 받아주시는 얼굴이 매우 어두웠다. 무슨 일이 있는가 싶으면서도 집사님 잘 계시냐고 안부를 물었는데 남편분이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가슴이 철렁했다. 무슨 일이 있는 거냐고 다그치니 나지막하게 아내가 북송 당했다고 했다. 천지가 흔들리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나 같은 망나니 같은 년에게도 사랑을 베풀고 귀하게 보살펴주시던 집사님이었는데 북송을 당하다니…. 그날 집에 돌아오는 나의 발길은 천근같이 무거웠다. 그 이후로 집사님의 소식은 들을 수 없었다. (한국오픈도어 제공)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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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오롱인더스트리, 구미공장 추가 증설··· 2,300억 투자5G 통신, 차량경량화 등 4차 산업 핵심소재, 세계시장 정조준 ▲8월 24일 구미시청에서 코오롱인더스트리(주) 투자양해각서(MOU)를 체결식이 진행됐다.(사진=경북도) 경상북도와 구미시는 8월 24일 구미시청에서 코오롱인더스트리(주)의 아라미드 섬유 제조시설 증설 투자를 위한 투자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날 협약식에는 이철우 경북도지사, 장세용 구미시장, 장희구 코오롱인더스트리 대표이사, 코오롱인더스트리 노동조합 위원장, 도의원 등이 참석했다. 투자협약에 따라 코오롱인더스트리는 올해부터 2023년까지 구미공장 부지에 2,300억 원을 투자해 아라미드섬유인 헤라크론(HERACRON®) 생산라인을 현재 7500t에서 1만 5000t 규모로 2배 증설하고 100여 명의 신규 일자리를 창출할 계획이다. 이번에 증설하는 헤라크론은 강철보다 5배 단단해 5mm 정도 굵기의 가는 실로 2t 무게를 들어 올릴 정도로 강하며, 섭씨 400~500도의 고온에서도 타거나 녹지 않아 ‘슈퍼섬유’로 불리고 있다. 연간 7만t 규모인 전 세계 아라미드 섬유 시장은 미국(듀폰), 일본(테이진)이 점유율 80%를 차지하는 양강 구도에서 후발주자지만 코오롱인더스트리를 필두로 한국기업들이 지난해부터 점유율을 꾸준히 높여가고 있다. 코로나 국면에서 헤라크론의 성장을 이끄는 것은 단연 5G통신 케이블 분야이다. 5G의 필수 설비인 광섬유는 기존의 구리선보다 전송속도가 월등히 높지만 쉽게 늘어나는 특성과 외부 충격에 약하다는 단점이 있어 이를 극복하기 위해 외부를 아라미드 섬유로 감싸고 있다. 헤라크론은 방탄복과 소방복 등 각종 보호 장비로 쓰이는데 기존 10kg의 방탄조끼를 이 소재로 생산할 경우 1.5kg 수준으로 줄일 수 있고, 또한 고온에 강한 특성 때문에 소방관들의 내열복이나 방염작업복 등에도 사용된다. 최근에는 헤라크론의 가볍고 단단한 특성으로 인해 주행거리와 부품 경량화 경쟁이 치열한 전기차 부품시장까지 적용 범위가 한층 더 넓어질 전망이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국내 최초로 나일론을 생산해 이 땅에 의류 혁명을 일으켰던 동력으로 아라미드 등 첨단 소재를 글로벌화해 다시 한번 국가경제 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해 줄 것”을 당부했다. 박은숙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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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 안동지역 여성사역의 개척자(7‧끝)김정숙, 안동지역 여성사역의 개척자(7‧끝) 김승학 목사 신학과 교수/기독교교육학 안동교회 담임목사 김정숙 전도사(金貞淑, 1880~1969) 목차 서론 1. 김정숙, 출생과 결혼 2. 최초의 순교를 목도한 시댁 3. 여성복음전도의 선구자 .............................................. 7. 안동교회 최초의 전도사 8. 경안노회 여전도회 연합회 리더 9. 일제에 저항한 애국운동가 10. 평신도 사역자 결론 10. 김정숙, 평신도 사역자 1934년 12월 17일 오후 4시 경안노회 주관으로 한국선교 50주년 희년기념식 및 기념축하예배가 안동교회에서 거행되었다. 크고 작은 축하기를 들은 안동교회, 안기교회, 신세교회 교인과 주일학교 학생들 약 1,000여 명은 찬송을 부르며 시가지를 행진하며 전도지를 시민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4시 30분 다시 안동교회로 모여 경안노회 만세를 삼창하고 기념식을 마쳤다. 이날 오후 7시에 시작된 희년 축하예배 시 안동교회 악대의 주악과 찬양이 있었고, 권찬영 선교사의 설교 후 표창식이 있었다. 이날 20년 이상 경안노회 경내의 교회에서 시무한 교역자 12인 중 여성으로서는 김정숙 전도사가 유일했다. 참고로 12인으로는 김영옥, 권찬영, 김인옥, 강석진, 장사성, 김우일, 권수백, 김종수, 강우근, 권중한, 김익현, 김정숙 등이었다. 김정숙 전도사는 1934년에 이미 20년 이상 교역자로 봉사한 것으로 인정받은 것으로 보아 적어도 1914년 이전부터 노회가 인정하는 여성 교역자였음에 틀림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김정숙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가 세례받은 후 1년이 지난 1912년부터 생활의 근거지를 풍기에서 안동으로 옮겨 본격적으로 선교사들의 복음 사역을 도왔다고 증언한다. 그는 회심 이후 전도부인으로 투신하여 헌신한 여성 사역자였다. 또한 평양여자성경학원을 졸업한 이후에는 교회와 노회를 위해 충성을 다했다. 이처럼 그는 경안노회 여성 지도자 중에서도 가장 앞선 선각자(先覺者) 중의 한 사람이었다. 교역자로 봉사하던 김정숙 전도사는 1937년, 15년 동안 섬겼던 안동교회에서 사임함으로써 전도사직에서 은퇴했다. 이때 그의 나이는 58세로 아직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도사직에서 은퇴한 것이다. 1930년대에 접어들면서 민족말살정책의 하나로 내선일체(內鮮一體)와 황국신민화(皇國臣民化) 등을 강요한 일제는 황국 신민서사의 암송도 강요했다. 특히 1937년 10월, 총독부 학무국에서 교학쇄신(敎學刷新)·국민정신 함양을 목적으로 보급했다. 학교·관공서·은행·회사·공장·상점 등 모든 직장의 조회와 각종 집회 의식에서 황국 신민서사는 낭송이 강요되었다. 다시 말해 이때는 일제의 민족말살정치가 극성기에 달했던 시절이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교회를 섬기는 교역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특히 김정숙 전도사는 안동 3·1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민족 운동자였다. 이러한 김정숙 전도사의 이력은 일제의 눈에 가시와 같았을 것이며, 일제는 총력을 다해 황국신민화 정책에 걸림돌이 되는 교화와 애국자들을 탄압하고 제거했을 것이다. 임학수 목사도 일제 말엽의 기독교 박해(迫害)로 사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제는 교회에 김정숙 전도사의 거취에 무언 혹은 유언의 압박을 가했을 가능성이 있다. 아마 김정숙 전도사는 자신이 교회에 부담을 주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따라서 김정숙 전도사는 스스로 사임의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김정숙은 은퇴 후 교역자 신분으로서가 아니라 평신도로 안동교회를 섬겼다. 이와 같은 사실은 앞서 언급한 김정숙의 사임 이유를 지지하게 한다. 더 이상 교회에 부담을 주지 않는 평신도 신분으로 김정숙은 자신을 필요로 하는 거룩한 일이라면 하나님과 교회의 부름 앞에 철저히 순종하며 마음과 정성을 다해 동참했던 것이다. 김정숙은 안동교회의 집사와 권찰로 봉사하다가 69세인 1948년에는 권사로 피선되었고, 1949년부터 1955년까지 여장년부 부장으로 충성을 다했다. 그는 안동교회 전도사직을 내려놓고도 평신도로 돌아가 교회를 섬기는 것을 중단하지 않았던 것이다. 김정숙은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은 어떤 직책이든지 최선을 다해 감당한 신실한 하나님의 일꾼이었다. 그래서 1963년 1월 20일에 열린 당회는 20년 이상 안동교회를 위해 봉직한 것을 기념하는 예식을 갖기로 결의했는데, 대상자는 김광현 담임목사, 김재성·조흥노·이홍구 장로, 그리고 김정숙 전도사 등이다. 안동교회는 김정숙의 전도사 사역과 평신도 사역을 남녀 차별 없이 존중했던 것이다. 11. 결론 김정숙은 보신(保身)의 길을 갈 수 있었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일평생 험지(險地)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한 믿음의 선배다. 32세가 되던 1911년, 그는 안동선교부 선임 오월번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은 이후 안동지역의 노회와 교회를 섬기다가 1969년 90세의 일기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는 안동지역 여성 사역의 개척자였다. 또한 그는 경안노회 여전도회연합회가 설립될 때 산파(産婆)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초기 경북 북부지역의 여성 복음화에 초석을 놓은 여성 지도자였다. 특히 김정숙은 1919년 3월 18일에 거행된 안동의 3·1 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던 행동하는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이었으며, 일제 말엽에는 일본제국주의에 맞서 신사 참배를 거절하고 신앙의 절개를 지킨 애국자였다. 그의 강직한 성품과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신앙, 그리고 성령 충만한 전도사역은 교회와 노회의 후배들에게 사표(師表)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김정숙은 그의 후손이 6대 신앙을 지켜 올 수 있도록 초석을 놓은 신앙의 지주(支柱)요 믿음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조사와 전도사, 전도사직을 은퇴한 후에도 평신도로서 무려 15년 동안 안동교회의 권찰로, 서리집사로, 여장년부 부장교사로, 또한 주일학교에서 어린이 사역에도 헌신함으로써 자신에게 맡겨진 크고 작은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한 충성스러운 하나님의 종이요 일꾼이었다. 그는 하나님을 만난 이후부터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순간까지 오직 하나님과 주의 몸된 교회를 위해 살다 간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김정숙의 일생을 회고하면 할수록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고 고백한 사도 바울의 육성이 들리는 듯하다. ▲경안노회 여전도회연합회 10주년 사진. 김정숙 전도사는 경안노회 여전도회연합회가 설립될 때 산파(産婆)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초기 경북 북부지역의 여성 복음화에 초석을 놓은 여성 지도자였다. 연합회의 초대 회장으로 수고한 김정숙 전도사는 두 번째 줄 정중앙에 앉아 있다. 맨 아래 줄 왼쪽에서 네 번째는 역시 경안노회 여전도회연합회의 산 증인인 김점향 권사를 볼 수 있다.(사진8) /논문 발췌‧정리=박은숙 기자/ <논문 원본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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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학교법 개정안’ 본회의 가결··· 사학 교원 채용시험 교육청에 위탁한교총·한장총, “이단 교사가 들어와도 못 막는다” 강력 반대 지난 8월 31일 국회 본회의에서 “사립학교가 신규 교원을 채용할 때 교육청이 관리하는 필기시험을 치르도록 의무화 할 것”을 골자로 한 사립학교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재석 212인 중 찬성 139표, 반대 73표로 가결됐다. 국민의힘은 “이 법이 통과되면 교원을 자유롭게 뽑지 못하는 등 사학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교육감에 의한 인사 문제가 야기된다”며 개정안에 대한 수정안을 다시 발의했으나 본회의에서 반대 139표를 얻어 부결됐다. 이번 사립학교법 개정안의 구체적인 내용은 △사립학교 교원 채용 시 필기시험 의무화 및 시험을 교육감에 위탁 △이사회 소집 전 학교 홈페이지 등에 미리 공지 △관할청(교육청·교육부)의 징계 요구 대상자를 ‘학교장’에서 ‘학교장 및 교직원’까지 확대 △교원징계위원회가 징계를 의결하면 관할청에 보고 등이다. 한편, 사립학교법 개정안에 대해 일부 교계 및 미션스쿨 관계자들은 강한 반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 공동대표회장:소강석·이철·장종현), 한국장로교총연합회(한장총, 김종준 대표회장), 사학법인미션네트워크(이재훈 이사장) 등 일부 교계 단체는 앞서 8월 24일 기독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립학교 교원 임용 교육감 위탁 강제 입법 반대”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기독교 학교는 기독교적 건학 이념으로 세워진 학교로서 그 설립 이념을 구현하는 것이 학교의 본질적 존립 이유이다. 따라서 기독교 학교는 ‘기독교적 건학 이념 구현’과 ‘학교 발전의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그 인사권이 반드시 자주적으로 행사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이번 법안을 “사립학교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매우 초법적이고 위헌적인 발상”이라며 “법이 통과되면 기독교 사학은 교원의 임용권을 박탈당할 뿐 아니라, 건학 이념에 동의하지 않는 비신앙인, 타 종교인, 심지어 이단들의 침투를 막을 수 없게 된다”고도 주장했다. 박은숙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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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교회 내의 분쟁, 해결의 길은 없는가?박 민 성 대표 경북하나신문 교회 안에는 신앙 윤리가 있고, 교회 지도자들에게는 더욱 엄격한 신앙적·도덕적 윤리의 잣대가 요구된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성도 앞에서 모범을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에서도 지도자의 부정과 부패는 더 큰 책임을 묻는다. 한동안 이 나라를 심히 혼란스럽게 했던 모 권력자의 자녀 부정 입학 문제를 보더라도, 사법부는 그것을 가벼이 넘기지 않고 표창장을 위조한 사실 등을 추적하며 그 책임을 묻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세상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 교회에서 부정직하고 부도덕한 일들이 종종 발생하며, 결국 교회가 분쟁에 휩싸이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된다. 더구나 목회자가 깊숙이 관련된 상태에서 그런 일들이 일어난 경우, 목회자의 과실은 흐지부지 쉽게 덮어지는 반면, 그것을 지적하고 밝히려는 성도들은 징계를 당하거나 교회를 떠나는 사례를 볼 때 안타까움이 더해진다. 최근에 모 지역 읍 소재지 교회의 시무장로 10명이 노회로부터 출교 또는 면직·정직 등의 처분을 받은 사건이 발생했다. 취재한 결과, 사건의 발단은 2019년 3월경 담임목사의 불법적인 금전 취득 및 사문서위조 등의 문제를 당회가 인지한 것으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 해당교회 장로들은 사안이 중차대하다고 보았지만, 당회 내에서 그 문제를 덮기로 하고 13명 장로 전원이 직접 서명한 권고사직서를 담임목사에게 제시했다. 이에 담임목사는 잘못을 시인하면서 2019년 12월 말까지 사임하겠다는 약속을 담아 서면으로 당회원들에게 제출했다고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담임목사는 교회에 계속 남겠다는 뜻을 밝혔고, 이후 서로에 대한 불신과 분란, 성도들 간에 고소, 사회 법정에 고소·고발 등 심히 부끄러운 상황이 전개되고 말았다. 결국 시무장로 중 10명이 지난해에 소속 노회로부터 출교·무기정직·1년정직·권계 처분을 받았으며, 그중에서 1년정직을 받았던 6명의 장로는 지난 8월 10일 임시노회에서 다시 면직 처분을 받았다. 당일 노회에 참석한 20여 명의 장로 총대들은 이 안건이 결국 표결에 부쳐지자 전원(해당교회 장로 2명 제외) 회의장을 퇴장함으로써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히기도 했다. 노회에서는 표결 전에 3시간 가까이 찬반토론이 펼쳐지기도 했는데, 필자가 가장 납득할 수 없었던 부분은 “6명의 장로들이 종시(終是) 회개하지 않았다”라는 해당교회 담임목사와 몇몇 목회자들의 주장이었다. 성도의 회개 유·무를 누가 정확히 판단할 수 있을까? 그것은 절대 평가자인 하나님의 영역이 아니겠는가? 물론, 노회에서도 공정한 판단을 내리기 위해 애쓴 흔적은 보였다. 중재를 위해서 수차례 양측을 면담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럼에도 결국 6명의 장로는 ‘예배 참석, 헌금 생활, 교회 봉사 등에 소홀했으므로 회개하지 않은 것이다’라는 이유로 장로 면직 처분을 받고 말았다. 교회 내에서도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근신’ 등의 처분을 내릴 수는 있지만, 그 징계에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회복’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또 징계는 양쪽에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번 사건의 경우, 징계를 당한 장로들은 ‘과연 사랑의 채찍이었는가?’와 ‘과연 양측에 공평했는가?’라는 부분에 수긍을 하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 해당 장로 중 몇몇은 자신들의 억울함을 밝히고자 이 사건을 사회 법정에까지 가져갔다고 한다. 현재 담임목사는 공문서위조, 사문서위조, 사기 등의 혐의로 기소 처분을 받아 법정 다툼을 앞두고 있는 상태이다. 예수님의 가장 큰 가르침은 “네 원수까지 사랑하라”였다. 또 예수님은 “어찌하여 형제의 눈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라는 말씀도 하셨다. 분쟁은 마귀가 좋아할 뿐이다. 더 늦기 전에 양측은 서로 용서를 구하고 화평을 이루었으면 한다. 또한, 노회에서도 문제의 근본적 해결과 교회 정상화를 위해 한 번 더 방법을 찾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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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의회 건설소방위원회, 태풍 피해 및 응급복구 현장 확인30일 영천시 자양면 일원, 태풍 ‘오마이스’·집중호우 피해 현황 확인 ▲경상북도의회 건설소방위원회 위원들이 태풍 오마이스로 피해가 발생한 영천시 하거천 현장을 방문했다.(사진=영천시 제공) 경상북도의회 건설소방위원회 박영환 의원 등 위원 11명, 김중권 경상북도 재난안전실장, 박동엽 건설도시국장 포함 총 16여 명이 지난 제12호 태풍 오마이스의 강한 비바람으로 피해가 발생한 영천시 자양면 보현리 하거천 태풍피해 현장을 방문했다. 영천시의 요청과 박영환 도의원의 주도로 이뤄진 이번 방문은 태풍 피해 및 응급복구 현장을 직접 방문하여 피해 정도를 파악하고, 도 차원의 대책을 수립하기 위함이다. 현장에 도착한 도의원들과 관계자들은 윤문조 영천시 부시장의 안내로 먼저 하천 제방 유실 현황 등을 살피고 태풍 및 집중호우 피해복구 대책 수립을 위한 현장 의견을 청취했다. 또한, 해당 하천의 안전관리를 점검하고 추후에 다시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조치에 온 힘을 다할 것을 당부했다. 현장방문을 마친 박영환 도의원은 “기후 변화로 인해 예측할 수 없는 폭우로 지역의 피해가 많은 만큼 경상북도 차원에서도 대책 수립을 강구하고 도울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윤문조 부시장은 “태풍피해 현장을 방문해 도 차원에서 노력을 기울여 주심에 감사드리고 시에서도 선제적인 태풍 예방조치로 주민 피해가 최소화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답했다. 이혜경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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