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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제기드온협회 영주캠프, 석포교회와 함께 성경 배포영풍 석포제련소 방문해 성경 600부와 전도용품 전달 ▲성경책과 함께 전달할 붕어빵을 직접 굽고 있는 석포교회 전도팀의 모습. 한국국제기드온협회 영주캠프(회장 김동원)에서는 석포교회(담임목사 이철희)와 연합으로 지난 7월 8일(목)과 19일(월) 두 차례에 걸쳐 영풍 석포제련소 제1공장과 제2공장을 방문해 성경 600부를 배포했다. 기드온협회 회원들과 석포교회 전도팀은 석포제련소 직원들에게 성경책이 들어있는 봉투를 전달했는데, 봉투 안에는 성경책 외에도 마스크, 전도용품, 석포교회에서 구운 붕어빵 등이 같이 들어있었다. 특별히, 석포교회 이철희 목사는 “석포교회에서 여러분의 풍성하고 행복한 삶을 위해 예수님의 복된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늘 함께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라는 내용의 인사글도 함께 봉투에 넣어 전달했다. 이날 성경 배포에 참석한 기드온협회 회원 황강섭 장로는 “성경을 전달받으신 모든 분들에게 복음의 귀한 열매가 맺기를 함께 기도하자”라며 “늦은 시간까지 수고한 회원들과 교우들에게도 그 섬김에 감사드린다”라고 인사했다. 봉화 우병백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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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 안동지역 여성사역의 개척자(5)김정숙, 안동지역 여성사역의 개척자(5) 김승학 목사 신학과 교수/기독교교육학 안동교회 담임목사 김정숙 전도사 (金貞淑, 1880~1969) 목차 서론 .............................................. 5. 담임목사의 부재(不在)를 메꾼 여성교역자 6. 다음세대 전문사역자 7. 안동교회 최초의 전도사 8. 경안노회 여전도회 연합회 리더 9. 일제에 저항한 애국운동가 10. 평신도 사역자 결론 7. 김정숙, 안동교회 최초의 전도사 선교 초창기 선교사의 조력자 역할을 한 전도 부인은 부인 전도사, 여전도인, 여전도사, 전도 부인 등으로 불렸다. 이들은 바깥출입이 자유롭지 못한 여성들을 찾아다니며 성경과 찬송가를 판매하고, 한글을 가르치며 복음을 전한 매서인(賣書人)인 동시에 복음전도자였다. 또한 전도 부인은 동역하는 선교사들의 지시에 따라 마을 마을을 방문하며 교회를 섬기며 성도들을 돌보는 사역을 감당했다. 조사, 매서인, 영수 등 남성 사역자들은 일찍이 교회법에 따라 교역자의 위상을 확보했지만, 여성이 교역자의 위상을 확보하게 된 것은 1930년대부터로 알려져 있다. 이와 같은 시대적 변화에 따라 김정숙은 공식적으로 안동교회와 경안노회 전도사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1929년 안동교회 당회록에 따르면 김정숙을 부인전도사로 청원하고 경안노회는 이를 허락했음을 기록하고 있다. 1921년부터 교회에서는 전도사로 사역을 감당했지만, 전도사로 노회 허락을 받은 것은 사역을 시작한 지 무려 8년이 지난 후였다. 당시 여성 교역자의 한계를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거의 10년 동안 노회의 승인 없는 교역자 생활을 하던 김정숙은 노회의 허락에 따라 여성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고 공식적으로 여성 교역자로 사역을 감당하기 시작했다. 당시 교회의 재정은 교역자들에게 충분한 사례를 줄 형편이 되지 못했다. 또한 정확한 날짜에 사례를 주지 못할 때도 적지 않았다. 안동교회 당회록에 따르면 김정숙 전도사가 공식적으로 전도사로 인정을 받은 1929년과 1930년, 교회는 김정숙 전도사에게 사례비를 줄 만큼 재정적인 여력이 없었다. 그때 권찬영 선교사의 부인인 권애라 선교사와 여전도회가 협력해 김정숙 전도사의 사례비를 지급했다. 앞서 언급한 전도부인의 경우 자신이 속해 있는 선교사들이 사역비와 생활비를 지급했는데, 이 사례를 참고한 듯하다. 여전도회가 김정숙 전도사를 위한 사례비 후원에 동참한 것은 당시 여전도회의 재정규모와 활동상을 어느 정도 짐작하게 한다. 물론 김정숙 전도사는 1922년 조직된 경안노회 여전도회 연합회 출범의 산파역을 했으며, 오랫동안 회장을 역임하면서 경안지역 여전도회의 발전에 지대한 역할을 감당한 지도자였기 때문에 여전도회의 재정 지원이 가능했을 수도 있다. 이처럼 김정숙 전도사는 사례조차 불확실한 형편에서도 인내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거룩한 복음사역을 감당했을 정도로 불타는 사명감을 갖고 있었다. 이것은 당시 주의 종들이 사례를 초월하여 복음을 전하는 일과 교회를 섬기는 일에 헌신했음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한다. 8. 김정숙, 경안노회 여전도회 연합회 리더 안동교회가 중심이 되어 1916년부터 연중행사로 여도사경회가 개최되어 여성을 위한 사역이 본격화되었다. 특히 1922년부터 공식적인 첫 여성 교역자로 안동교회를 섬기게 된 김정숙 전도사는 안동지역 교회의 여성 지도자로서 강력한 리더십을 갖고 있었다. 이미 그는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투철한 사명감을 가지고 경안노회에 속한 전역에 다니며 복음을 전한 전도부인이었다. 1926년 10월에는 영주 내매교회에서 있었던 여사경회 강사로, 1927년 5월에는 지내교회에서 열렸던 부인사경회 강사로, 또 1929년 3월에는 안동교회에서 열린 부인사경회에 김정숙 전도사가 강사로 섬길 수 있도록 안동교회 당회는 허락했다. 이에 따라 김정숙 전도사는 교회 내 사역뿐 아니라 교회 밖의 여성사역에 헌신할 수 있었다. 교회의 배려로 김정숙 전도사는 여전도회 연합사업과 활동, 노회의 여성교육에 있어서 중심인물로 활동할 수 있었고, 그 결과 경안노회 경내의 여성 사역이 크게 활성화되었다. 이와 같은 여성 사역의 중심에 있던 김정숙 전도사는 경안여전도회연합회 창립 시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1928년 2월 18일 열린 경안노회 도사경회 중에 대구 주재 박우만 선교사가 내안하여 발기회를 가짐으로써 경안여전도회연합회는 출범하였다. 당시 발기인으로는 안동 주재 선교사인 권애라, 김정숙 전도사, 김향란, 김정희, 안주봉, 김순애, 권순희, 권순옥 씨 등이 참여했다. 발기회를 가진 그 다음 날인 1928년 2월 19일, 경안노회 여전도회연합회 창립총회가 개최되어 초대회장에 김정숙 전도사가 피선되었다. 김정숙 전도사는 여전도회연합회 초대부터 5대까지는 회장으로, 6대~13대까지는 부회장으로, 그리고 17대에는 다시 회장으로 섬기면서 경안여전도회의 기초와 활성화에 큰 헌신을 감당했다. 그는 여성사역에 혼신의 힘을 다함으로써 경안노회 경내의 여성사역에 초석(礎石)을 놓은 인물로 평가를 받는다. 김정숙이라는 뛰어난 사역자를 통해 당시 교회 내에서 여성 사역과 여성의 지위가 몇 단계 발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경안노회 여전도회연합회 제10회 총회 때의 아래 사진은 김정숙 전도사의 리더십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증명하고 있다. 사진6에는 당시 경안노회 여전도회를 이끌었던 여성 지도자들의 면면을 볼 수 있다. 특히 연합회 초대 회장으로 수고한 김정숙 전도사는 둘째 줄 정중앙에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가 당시 경안노회 경내 여성 지도자였음을 암시하고 있다. 사진6 밑에서 두 번째 줄에는 당시 안동지역에서 헌신했던 4명의 여선교사를 볼 수 있다. 이것은 선교사 부인들이 경안여전도회에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역대 경안노회 여전도회 회장 명단에는 어떤 안동에 주재하는 여성 선교사의 이름을 단 한 명도 찾아볼 수 없다. 선교사들은 현지인의 리더십을 세우는 일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경안여전도연합회가 선교사들에 의존하지 않고 현지 여성 지도자들에 의해 든든히 세워져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여성 선교사들은 전면에 나서지 않고 배후에서 헌신했을 것이다. 그 결과 경안여전도회는 비록 여성 선교사들의 도움은 받았지만 지역 출신의 여성들이 주체적이고 자율적으로 경안여전도회를 이끌어 갔던 것이다. 그리고 이 중심에 김정숙 전도사가 있었다. ▲경안노회 여전도회연합회 10주년 사진으로 아래서 두 번째 줄 좌측부터 4명의 여선교사를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당시 여성들에게 성경을 가르친 매켄지 선교사, 두 번째는 권찬영 선교사의 부인 권애라 선교사, 세 번째는 옥호열 선교사의 부인, 네 번째는 안의와 선교사의 3남인 안두조 선교사의 부인이다. 특히 연합회 초대 회장으로 수고한 김정숙 전도사는 둘째 줄 정중앙에 앉아 있다. 맨 아래 줄 왼쪽에서 4번째는 역시 경안노회 여전도회의 산 증인인 김점향 권사를 사진에서 볼 수 있다.(사진6) /논문 발췌‧정리=박은숙 기자/ <논문 원본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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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노회 교회학교아동부연합회, 여름성경학교 교사강습회“생명을 살리시는 하나님”이란 주제로 개최 예장통합 영주노회 교회학교아동부연합회(회장 박병태 장로)는 지난 6월 19일(토) 오전 9시 영주 신광교회(담임목사 김동락)에서 제38회기 여름성경학교 교사강습회를 개최했다. “생명을 살리시는 하나님”이란 주제로 모인 이번 교사강습회에는 24개 교회에서 아동부 교사 68명, 유치부 교사 31명, 교역자 16명, 전 회장 16명, 임원 및 실행위원 14명 등 총 157명이 참석했다. 이날 개회예배는 수석부회장 백승우 집사 인도로 전 회장 나석준 집사 기도, 랍비회 회원(전회장단) 특송, 김동락 목사의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제하 설교, 회계 유은희 집사 봉헌기도, ‘교사의 노래’ 제창, 김동락 목사 축도 등으로 진행됐다. 2부 순서는 회장 박병태 장로 인사 및 내빈소개, 교회학교아동부 전국연합회 부회장 이병윤 장로 격려사, 영주노회연합회 회장 박병태 장로에게 공로패를 전달 등의 순서가 있었다. 이어서 영유아부‧유치부는 “와! 하나님이다.(에스겔37:5)”라는 주제로, 아동부는 “생명을 살리시는 하나님(에스겔37:5)”이라는 주제로 각각 정해진 장소에서 성경학습, 특별프로그램, 찬양율동 배우기 시간을 가졌다. ▲영주노회 교회학교아동부연합회 여름성경학교 교사강습회에서 찬양율동 배우기가 진행되고 있다. 영주 우병백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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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꽃동산교회, 은퇴 및 임직 감사예배 드려영주 꽃동산교회(담임목사 이영식)의 은퇴 및 임직 감사예배가 지난 5월 30일(주일) 본 교회당에서 내빈과 축하객, 교우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먼저 1부 감사예배는 당회장 이영식 목사 인도로 영남시찰장 윤재현 목사 기도, 노회장 조영광 목사가 “하나님의 나라(로마서 14:13~23)”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2부 은퇴식은 당회서기 전용식 장로가 은퇴자 장로‧권사 소개 후 당회장이 기도, 선포 후 임직패‧선물 증정, 김광찬 장로가 은퇴기념사, 전노회장 강성효 목사가 치사, 김명원 장로가 답사했다. 3부 임직식은 당회장이 임직자 서약, 안수기도(장로, 집사, 권사) 후 악수례, 선포, 임직패‧선물 증정이 있었고, 영주노회장로회장 최경도 장로가 신임장로에게 회원패 증정, 영주노회남선교회연합회장 최국낙 장로, 여전도회 연합회장 윤삼선 권사, 여전도회 영남지회장 조윤자 집사가 회원들에게 기념품 증정을 했다. 4부 권면 및 축하순서는 전노회장 김창진 목사 권면, 부노회장 김영수 목사 축사, 이하나 자매 축가, 이인협 장로의 임직자 대표인사, 전용식 장로 광고 후 전노회장 영주제일교회원로 허승부 목사 축도로 모든 예식을 마쳤다. 은퇴 및 임직자는 다음과 같다. △장로은퇴: 김명원 김광찬 △권사은퇴: 이희자 박순남 △장로임직: 이인협 장도익 △집사임직: 김상진, 유병익 △권사임직: 박미정 류정민 석혜정 박성화. ▲은퇴 및 임직 감사예배를 마치고 임직‧은퇴자들의 단체 기념촬영. 영주 우병백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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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 코로나 시국의 교회, 위축돼서는 안된다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1년을 훌쩍 넘기면서, 예배가 제한되고 교회 내 모임이 사라지고 각종 사역을 진행할 수 없는 현실을 맞고 있다. 물론 이제는 어느 정도 온라인 예배, 영상 회의 등에 적응은 되었지만, 온라인이 주는 편리함 때문에 점점 안주하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 봐야 할 때다. 또 현장예배와 현장 사역, 모임과 친교를 통해 나누었던 신앙의 열정을 기억해내고 그 회복을 위해 간구하며 방법들을 찾아야 할 때다. 무엇보다 예배든 사역이든 그 목적과 명분이 분명하다면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것을 이어나가고 지켜내고자 하는 담대함도 필요하다. 얼마 전 구미시의 한 연합회에서 선교대회를 개최해서 많은 성도가 참석해 은혜롭게 집회를 마친 적이 있다. 코로나로 인해 집회와 모임이 제한을 받아 부활절연합예배, 6.25 구국기도회 등 주요 행사들이 대부분 취소되는 현실을 감안하면, 대단히 의외적인 행사였다. 왜냐하면, 그 연합회는 20년 넘게 전통적으로 체육대회, 찬양합창제를 주최하며 교회의 연합과 교류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해왔는데, 이 사역들을 진행할 수 없게 되자 이번에 ‘선교 사역’을 새롭게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번 선교대회를 통해 필리핀 지역에 예배당을 건축한다고 한다. 체육대회든, 선교대회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일에 멈추지 않고 사역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여기서 특정 연합회를 드러내려는 것도, 그 사역의 성과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코로나 시국에서 행사를 진행하고자 했기에 반대와 어려움이 많았을 터, 임원진들의 고민과 수고는 짐작할 만하다. 물론 작년과 올해 다른 몇몇 지역에서도 부활절연합예배나 연합기도회, 연합집회 등 크고 작은 행사들이 규모를 줄여가면서 개최된 것으로 안다. 역시 그 어느 때보다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19는 잠시 우리를 위협할 뿐이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일제 치하에서도, 공산주의의 위협 속에서도 생명을 걸고 교회를 지켰으며 예배를 드려왔다. 또한, 하나의 교회가 할 수 없는 사역들을 교회들이 연합해서 복음 전파 사역을 감당해왔다. 그래서 오늘의 우리가 있는 것이다. 교회가 사회 안에 존재하는 것은 맞다. 사회에 대한 책임감, 그것 역시 결코 가볍지 않다. 전도의 문이 막힐 수 있기에 사회에서 모범을 보여야 하고, 국가의 정책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는 점에도 동의한다. 그러나 교회는 영적 리더자의 사명이 있다. 교회의 역할에 대해 사회에 가르쳐야 하고, 국가의 위기에서도 교회의 예배와 기도를 통해 그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고 교회는 예배하는 공동체이기에 어떤 이유로도 예배를 금할 수는 없다. 또 기회를 얻든 못 얻든 복음을 전파하라고 말씀했으니, 우리가 본질에만 충실하다면 각종 사역도 중단되어서는 안 된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아직 남아 있어 매사에 조심스러운 시기이다. 그러나 하반기부터는 교회의 현장예배가 더 뜨겁게 드려지고 연합회 사역, 선교 사역들도 더 활성화되어서 교회가 제자리를 찾아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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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태를 막아라” ··· 경주시 첨단기술 활용 붕괴위험 감시시스템 ‘구축’붕괴위험 알려주는 실시간 감시시스템 구축 오는 10월까지 경감로 11개소에 계측기기 설치 시범운영 거쳐 12월부터 본격 운영 ▲사업구간도. (사진=경주시 제공) 경주시가 덕동댐에서 추령터널로 이어지는 ‘경감로’ 급경사지의 붕괴위험을 실시간 계측·감시하기 위한 관리시스템 구축에 나선다. 30일 경주시에 따르면 ‘경감로’ 상시계측관리체계 구축사업은 경주시 최초의 사물인터넷(loT) 기술 기반 감시시스템 구축사업으로, 행정안전부가 전국 자치단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공모에서 경주시가 선정되면서 본격 추진하게 됐다. 이번 사업을 통해 덕동댐에서 황용교까지 경감로 2.41㎞ 구간에 △강우량 △진동량 △경사도 △GNSS(위성항법시스템) 정보 등의 계측 값을 실시간 전송할 수 있는 계측기기 11기가 설치된다. 경주시는 실시설계가 마무리되는 대로 계측기기 설치공사에 들어가 오는 10월까지 완료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함께 실시간 관제모니터링 시스템 개발과 통합관리시스템도 구축하며, 이후 시범운영을 거쳐 오는 12월부터 본격 운영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이번 24시간 실시간 감시 시스템 구축에는 사업비 30억 원이 투입된다. 시스템이 완료되면, 실시간 모니터링을 통한 붕괴징후 경보체계가 마련돼 신속한 차량통행 제한은 물론 위험지역 주민 신속대피 안전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 특히 집중호우 등 재난위험 상황별 정보서비스 등의 다양한 최첨단 관제서비스를 제공해 급경사지 붕괴위험 일대 거주자의 인명과 재산보호로 안전도시를 실현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주낙영 경주시장은 “이번 경감로 급경사지 상시계측관리체계 구축사업은 지역 내 급경사지는 물론 노후 저수지 등 위험지역을 상시 모니터링하기 위한 첫 시범사업인 만큼 성공적인 사업이 될 수 있도록 관계 기관의 많은 관심과 지원을 바란다”고 전했다. 경주 김치현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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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의료원, 성주군 밀알센터에서 찾아가는 행복병원 운영성주군 보건소와 김천의료원 협력 ▲김천의료원은 성주 밀알센터에서 '찾아가는 행복병원'을 운영했다. (사진=성주군 제공) 김천의료원은 6월 15일(화) 성주군 보건소와 협력하여 성주군의 장애인직업재활시설 밀알센터에서 시설이용 장애인을 대상으로 무료 건강검진 “찾아가는 행복병원”을 운영했다고 밝혔다. “찾아가는 행복병원” 사업은 경상북도에서 주관하고 김천의료원에서 운영하는 의료복지사업으로 의료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무료검진을 실시하고 필요시 진료비 지원사업을 연계시키는 사업이다. 김천의료원은 이날 17여 명의 의료진이 의료진단장비를 갖춘 이동진료차량을 이용하여 시설이용 장애인 30여 명에 대해 개인별 맞춤 건강상담과 X-ray촬영, 심전도 검사, 혈액검사 등을 실시했다. 특히, 이날은 정신과 전문의 출신 정용구 원장이 직접 의료봉사에 참여해 정신 장애인들로 구성된 성주군 밀알센터에 맞춤형 고급의료서비스를 제공하였고, 6월 말에는 성주군 예원의집에서 입소자들의 건강검진이 예정되어 있다고 의료원은 밝혔다. 성주군 관계자는 건강검진 현장을 방문하여 의료진을 격려하고 저소득층, 장애인, 다문화가정 등 취약계층에 많은 관심과 배려를 당부했다. 이혜경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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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 안동지역 여성사역의 개척자(4)김정숙, 안동지역 여성사역의 개척자(4) 김승학 목사 신학과 교수/기독교교육학 안동교회 담임목사 김정숙 전도사 (金貞淑, 1880~1969) 목차 서론 .............................................. 5. 담임목사의 부재(不在)를 메꾼 여성교역자 6. 다음세대 전문사역자 7. 안동교회 최초의 전도사 8. 경안노회 여전도회 연합회 리더 9. 일제에 저항한 애국운동가 10. 평신도 사역자 결론 5. 김정숙, 담임목사의 부재(不在)를 메꾼 여성교역자(2) 임학수 목사는 전도, 교육과 봉사로 교회를 부흥시켰으며,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2층 석조예배당을 건축하며 헌신했다. 현재 안동교회의 돌집예배당은 임학수 목사가 안동교회에 시무할 때인 병자년 1936년 초여름에 착공하여 이듬해인 정축년 1937년 사월에 준공되었다. 이 예배당의 건축과 준공 현장에 김정숙 전도사는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김정숙 전도사는 석조예배당 건축 과정의 어수선한 상황에서 교인들을 돌보고 사역을 감당하면서 교회의 안정에 적지 않은 역할을 감당했을 것이다. 어느 교회나 교역자의 위치는 중요하다. 특히 교역자가 떠나고 부임하는 사이의 기간은 교회가 불안정할 가능성이 크다. 안동교회 역시 담임목사가 비어있는 기간 당회와 안동선교부의 선교사들은 교회의 안정을 위해 적지 않은 역할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담임목사 부재 시 안동교회는 다른 교회와 분명한 차이가 있다. 1920년대와 1930년대 부교역자를 둔 교회는 거의 없었지만, 안동교회는 담임목사와 여성교역자가 동역하고 있는, 당시로 보면 매우 특별한 교회였다. 김정숙 전도사는 2대 이대영, 3대 정재순, 4대 박상동, 5대 임학수 목사와 함께 전도사로 교회를 섬겼으며, 초대 담임목사를 역임한 이후 6대 담임목사로 다시 부임한 김영옥 목사, 그리고 7대 김광현 목사와 함께 평신도로 교회를 섬겼다. 그가 전도사로 또는 평신도로 안동교회를 섬긴 기간은 60년에 이른다. 특히 담임목사의 이임과 부임 사이의 공백 기간 동안 여성 교역자인 김정숙은 전도사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말씀을 가르치며, 심방을 통해 교회의 사역을 중단 없이 이어가고 교회의 안정을 지켰을 것이다. 안동교회 당회록은 그가 담임목사 부재(不在) 시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맡겨진 역할을 잘 감당함으로써 교회가 흔들리지 않고 안정을 유지할 수 있었음을 알려준다. 김정숙의 영적 리더십을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6. 김정숙, 다음세대 전문사역자 1) 청년사역 김정숙은 1922년부터 안동교회의 전도사로 공식적인 사역을 시작했다. 특히 그의 사역 기간은 기독청년면려회의 태동과 성장 기간과 겹친다. 이대영 목사가 안동교회 2대 담임목사로 시무를 시작한 1921년, 3·1운동의 좌절 이후 의식 있는 청년들이 교회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기독청년면려회는 기독교 청년운동의 첫 출발을 알리는 교회 조직으로 1921년 2월 5일, 한국교회 역사상 최초로 안동교회가 공식적으로 승인하여 출범할 수 있었다. 청년면려회 운동은 청년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여 일본 식민지하의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면서 독립된 국가의 내일을 준비할 수 있게 한 역사적 청년운동으로 평가받는다. 이후 기독청년면려회는 놀랍게 성장해 나갔다. 안동교회 당회가 조직을 승인한 후 경북 지방으로 신속히 확산되어 4개월이 지난 그해 6월 7일부터 9일까지 기독청년들이 안동교회에 모여 경북지역연합대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는 무려 26개 지회에 600여 명의 면려회원들이 참여해 교회와 사회를 위한 헌신을 결의했고 실제로 자신들의 삶에서 그 다짐을 실천했다. 다시 그해 9월 10일부터 15일까지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열린 조선예수교장로회 제10회 총회에서는 청년면려회를 전국 교회에 조직하기로 결의하고, 선교부 내에 면려청년위원회를 설치하기에 이른다. 이후 면려운동은 더욱 확산 일로를 달렸고, 마침내 1924년 12월 2일부터 8일까지 서울 피어선성경학원에서 기독청년면려회 조선연합회 창립총회가 열렸다. 안동지역에서 기독청년면려회의 출범과 활동, 그리고 성장에 있어서 여성 교역자인 김정숙 전도사는 일정한 역할을 감당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당시 청년면려회는 남·여가 함께 모였는데, 모든 목사가 남성이었던 시대에 안동지역의 유일한 여성 교역자였던 김정숙 전도사가 여성 회원들에게 큰 힘이 되었을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당시 김정숙 전도사의 나이는 40대 후반이었다. 때로는 청년들의 어머니로, 때로는 이모로, 때로는 고모 역할을 통해 청년들의 삶을 돌보고 기독청년면려회 중심의 안동지역 청년운동이 신앙과 말씀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지도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2) 어린이·청소년 사역 안동교회 4대 담임 박상동 목사는 주일학교를 통한 다음세대의 신앙교육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처음으로 어린이 주일에 유아세례를 베풀었음을 안동교회 80년사는 언급한다. 또한 그는 주일학교 구조를 전면적으로 개편하여 오늘날의 교회학교 조직과 거의 동일한 조직을 갖추게 하였다. 주일학교 교장은 담임목사, 부장은 평신도로 개편하고 조직을 새롭게 정비함으로써 주일학교 발전에 새로운 기틀을 놓았다. 이것은 박상동 목사가 다음세대의 신앙교육에 깊은 관심과 연구를 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 여름성경학교와 동일한 하계아동성경학교의 경우, 평신도가 교장을 맡게 함으로써 평신도와 함께 동역하는 성숙한 모습을 안동교회에서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유년주일학교를 거친 청소년의 신앙 교육을 위하여 오늘날의 중·고등부에 해당하는 안동기독소녀회를 창립하여 어린이와 장년 신앙교육 사이에 끼여 방치되었던 청소년의 신앙교육에 교회가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되었다. 이때 김정숙 전도사는 박상동 목사의 중점적인 사역인 어린이·청소년 사역의 지도교역자로 활동했다. 1927년에 김정숙 전도사는 당회의 허락을 받고 소녀회 고문으로 소녀들을 지도하였음을 당회록은 적시한다. 고문은 아마 소녀회 지도교역자의 다른 표현일 것으로 추측된다. 온화하고 차분하며 자상한 성품을 갖고 있던 김정숙 전도사는 주일학교의 어린이들과 청년들을 지도하는 데 매우 적합한 교역자였을 것이다. 김정숙 전도사는 어린이와 청년들을 친자식처럼 사랑하고 칭찬하며 격려하는 어머니와 같은 분이었다. 따라서 어린이와 청소년에 관한 사랑, 관심과 열정, 그리고 헌신과 전문성을 갖고 있는 김정숙 전도사에게 교회가 소녀회 고문의 직을 맡긴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1954년 4월 23일부터 27일까지 안동교회에서 개최된 제39회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시 독립운동가 이원영 목사가 총회장으로 피선되었으며, 기독청년면려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전날인 4월 22일에 제5회 전국대회를 개최했다.(사진5) /논문 발췌‧정리=박은숙 기자/ <논문 원본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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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기쁨의교회 무료 책나눔 ‘북 페스티벌’ 개최포항 기쁨의교회(담임목사 박진석)는 지난 5월 9일과 16일, 도서 업체에서 후원받은 중고 서적을 지역 주민에게 나누는 특별 행사를 진행했다. 도서업체 예스24는 도서 4만 권을 기쁨의복지재단에 기부했고, 교회는 ‘북 페스티벌’을 열어 이 책을 교인과 주민에게 무료로 전달했다. 지난해 8월에도 예스24중고는 11만 권의 책을 기부했고 기쁨작은도서관은 100여 개 단체에 7만 권의 책을 나눠준 바 있다. 기쁨의교회 측은 이번 행사에 대해 “코로나19로 교회 오기를 꺼리는 분위기 속에 전도 대상자들이 편안하게 교회 앞마당을 밟고 교회의 따뜻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었다”며 “책 외에도 전도팀들이 전도 팔찌를 만들어주는 등 문화와 선교가 함께 연출되는 장이 되었다”고 전했다. 특별히 기쁨의교회는 책 나눔 이외에도 그림 그리기 대회, 무료 모종 나눔, 비누 만들기 체험 등 다양한 체험 부스를 통해 행사의 풍성함을 더했다. 한 참석자는 “마음과 영이 위축된 요즘, 책이라는 매체를 활용해 나눔을 하니 마음도 여유롭고 전도 대상자를 데려올 기회가 생겨서 좋았다”라고 말했다. 이번 행사는 예스24, 기쁨의복지재단, 기쁨작은도서관, 조이랩, 도서출판 하영인이 함께 협력하여 준비했다. 행사 당일에는 김정재 국회의원, 박용선 경상북도 도의원 등 외부 인사들이 참석해서 “어려운 시기에 교회가 나눔의 정신을 계속해서 이어나가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교회 측은 주민 2천여 명이 방문한 이번 북 페스티벌이 마무리된 후 남은 책은 여러 기관에 기부할 예정이며, 행사 관련 후원금은 전액 문화예술발전 기금으로 사용한다고 밝혔다. 이혜경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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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 안동지역 여성사역의 개척자(3)김정숙, 안동지역 여성사역의 개척자(3) 김승학 목사 신학과 교수/기독교교육학 안동교회 담임목사 김정숙 전도사 (金貞淑, 1880~1969) 목차 서론 1. 출생과 결혼 2. 최초의 순교를 목도한 시댁(媤宅) 3. 여성 복음전도의 선구자 4. 평양여자성경학원의 유학생 5. 담임목사의 부재(不在)를 메꾼 여성교역자 ................................................... 10. 평신도 사역자 결론 4. 김정숙, 평양여자성경학원의 유학생(2) 참고로 내한(來韓)한 선교사들은 1900년대부터 여성 교역자를 양성하기 시작했다. 이유는 남녀 구별과 차별이 심했기 때문에 선교사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순회 전도하는 일에 도움을 받기 위해서였다. 처음에 여교역자는 전도부인(傳道婦人, Bible Woman)으로 불렸다. 전도부인들은 선교사들과 함께 지방을 순회하면서 복음을 전했을 뿐 아니라 사경회 시 보조역할을 했다. 1907년 평양여자성경학원은 본격적으로 여교역자를 양성하는 훈련원으로, 1910년에는 정식으로 평양여자성경학원이 되어 보다 체계적인 교육을 시킬 수 있었다. 1923년에는 미국북장로회 선교부의 설립 허가를 받아 여교역자 양성을 위해 평양여자고등성경학교로 개교하였다. 1938년에는 평양여자신학원으로 개명되었다가 1943년 일제에 의해 폐교되었다. 당시 미국장로교에서 세운 여자성경학원의 수업기간은 3년이었고, 교과과정도 성경뿐 아니라 일반 고등학교와 같이 교양과목도 가르쳐 교역자와 평신도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자질을 갖추게 하였다. 김정숙의 입학 당시 평양여자성경학원은 3년 과정으로 1년에 봄, 가을, 겨울 3학기로 이루어졌으며, 교과과정은 성경 외에 교회사, 설교학, 윤리, 심리학, 영어, 음악 등 성경교사로서의 자질을 갖추기 위한 것들로 꾸며졌다. 위에 언급된 과목들은 오늘날 4년제 신학대학교에서도 개설하고 있는 과목들이며 평양여자성경학원은 당시 우수한 신학교육을 받은 여성 교역자를 배출하는 기관이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김정숙은 입학한 지 5년 만인 1920년, 당시 여성 신학교 중에서는 가장 공신력 있는 여자성경학원을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사역의 현장인 교회에서 섬길 수 있게 충분한 자격을 갖추게 되었다. 5. 김정숙, 담임목사의 부재(不在)를 메꾼 여성교역자(1) 1920년 평양여자성경학원을 졸업한 김정숙은 안동으로 내려와 교회와 노회를 위해 헌신적인 복음 사역을 시작하였다. 1922년부터 김정숙은 안동의 공식적인 첫 여성 교역자로 안동교회를 섬기면서 교회의 여러 사역에 참여하였다. 초대 김영옥 목사가 사임한 후 안동교회 2대 담임목사로 부임한 이대영 목사는 1921년 1월 부임해서 헌신하던 중 1921년 9월 10일부터 15일까지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열린 제10회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 전도국의 부름을 받았다. 이대영 목사가 중국선교사로 파송 받은 후 정재순 목사가 안동교회 3대 담임목사로 부임하게 됐다. 1922년 7월 20일에 개회된 제83회 당회록은 정재순 목사가 당회에 참석한 것으로 기록한다. 따라서 짧게는 5월과 6월, 2개월을, 길게는 3~4개월 안동교회는 담임목사가 공석으로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때 전도사로 교회를 섬기고 있던 김정숙은 비록 2개월에서 4개월 정도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제한된 범위 내에서 담임목사의 공백을 잘 메웠을 것이다. 또한, 새로운 담임목사가 교회에 부임해서는 그와 의견을 맞추어가며 사역에 충성을 다했을 것이다. 아마 교회의 분위기와 성도들을 소개하고 교회가 진행하고 있던 이전 사역을 소개함으로써 새로운 담임목사가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왔을 것이다. 안동교회 3대 담임목사로 부임한 정재순 목사의 최우선 목회방침은 지역전도였다. 그는 안동교회를 전도중심의 교회로 만들어 나갔다. 그가 추진한 강력한 전도사역을 통해 안동 땅은 영적으로 기경되기 시작되었다. 전도의 결과로 호암교회(현 송현교회)와 수하리교회(현 수상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다. 또한, 그의 주도로 뿌려진 복음의 씨앗은 훗날 안동 땅에서 수확할 풍성한 구원의 열매를 기대할 수 있게 만들었다. 정재순 목사가 시무하던 시기는 처음으로 현지 교회인 안동교회를 중심으로 복음이 널리 전파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김정숙 전도사는 누구보다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뜨거운 구령의 열정을 갖고 있던 김정숙 전도사는 정재순 목사와 뜻을 같이하여 지역을 복음화하는 일에 앞장섰을 것이다. 정재순 목사 역시 복음의 열정을 갖고 있는 김정숙 전도사와 동역하면서 고을마다 전도인을 파송하여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통해 안동 땅은 예수 마을로 바뀌고 있었다. 정재순 목사가 사임한 후 의성 출신으로 1925년 일본 고베신학교를 졸업한 후 귀국한 박상동이 안동교회 강도사로 부임했다. 박상동 목사는 1926년 9월 제11회 경안노회 임시노회에서 안수 후 안동교회 제4대 담임목사가 되었다. 박상동 목사는 전임 정재순 목사처럼 교회의 부흥뿐 아니라 안동읍의 성시화를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추진하였다. 1925년 7월 6일 제직 회의록에 따르면 오늘의 안동서부교회인 안기기도실을 세웠을 뿐 아니라 안동 읍을 4개 권역으로 나누어 복음전파의 책임을 가진 권찰을 두었다. 1926년 접어들면서 전도대를 조직하고 안동읍 동·서 양편에 파견하여 안동복음화의 깃발을 높이 들었다. 특히 1928년 9월 18일부터 26일까지 제1회 경안주일학교대회가 안동교회에서 개최되어 유년부, 소년소녀부, 청년부, 남·여장년부, 여전도회 교사 및 교역자 등 정회원 1,300여 명과 방청객 1,000여 명 등이 참석했다. 안동지역에서 개최된 최초의 대중 집회였는데, 참석한 인원은 당시 교회가 신앙교육에 얼마나 큰 관심을 갖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이때 안동교회 소년소녀부의 고문이며, 다음세대를 지도했던 김정숙 전도사는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을 것이다 김정숙은 정재순 목사가 사임한 후 박상동 강도사가 부임하기 전까지의 공백 기간에 교회의 안정을 위해 힘썼을 뿐 아니라 그 후 박상동 목사를 도와 안동지역 복음화에 최선을 다했다. 또한, 박상동 목사가 사임한 이후 1929년 1월 안동교회 5대 담임목사로 임학수 목사가 부임하기까지 김정숙은 다시 전도사로 자리를 지키며 교회와 교인의 안정을 도모했다. ▲1928년 9월 18일부터 26일까지 제1회 경안주일학교대회에 참석한 교사들과 교역자들이 함께 촬영한 사진으로, 사진 왼쪽 위에 있는 기와집은 안동 최초의 여성전문초등학교인 계명학원으로 안동 3‧1만세운동 당시 태극기와 독립선언문을 등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사진4) /논문 발췌‧정리=박은숙 기자/ <논문 원본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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