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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 안동지역 여성사역의 개척자(6)김정숙, 안동지역 여성사역의 개척자(6) 김승학 목사 신학과 교수/기독교교육학 안동교회 담임목사 김정숙 전도사 (金貞淑, 1880~1969) 목차 서론 1. 김정숙, 출생과 결혼 2. 최초의 순교를 목도한 시댁 3. 여성복음전도의 선구자 .............................................. 7. 안동교회 최초의 전도사 8. 경안노회 여전도회 연합회 리더 9. 일제에 저항한 애국운동가 10. 평신도 사역자 결론 9. 김정숙, 일제에 저항한 애국운동가 안동 3·1 만세의 1차 시위는 임시정부 국무령 이상용(李相龍) 선생의 실제(實弟)인 이상동(李相東, 영양 포산교회, 영덕 원전교회) 조사에 의해 발생했는데, 그는 안동 장날인 3월 13일 하오 5시 반경 단독으로 만세를 부르다가 일경에 체포 구속되었다. 사실 이상동 조사가 단독시위를 감행하기 전, 안동교회 김영옥 목사, 이중희 장로, 도청 서기인 김원진, 일본 유학생인 강대극 등 4인은 3월 13일 안동 장날에 거사할 것을 모의하다가 일경에 검거되어 3·1 만세운동이 주춤한 상태에 있었다. 이상동 조사가 안동교회 지도자들과 의논하여 결정한 거사 일자는 아니었지만, 안동에서 가장 먼저 만세 시위를 주도한 지도자들이 결정한 바로 그날인 3월 13일 오후 5시 반경에 안동에서 최초로 만세운동이 일어난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이상동 조사는 ‘대한독립만세’가 쓰여진 태극기 모양의 종이 연을 들고 현재 신한은행 앞에서 동쪽 방향인 삼산우체국 쪽으로 달리면서 대한독립만세를 부르짖었다. 그는 체포되어 압송되어 가는 자동차에서도 하나님의 뜻에 의해 대한민국은 10일을 넘기지 않고 독립될 것이라고 하면서 계속해서 만세를 불렀다. 이상동 조사의 1인 시위는 안동 3·1운동을 은밀히 추진하고 있던 기독교 지도자들에게 한편으로는 위기가 되었다. 이유는 만세운동을 감행할 인물들과 안동교회가 일경에 의해 더욱 주시를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상동 조사의 1인 시위는 만세운동을 준비하고 있던 안동지역 지도자들의 검거와 조사로 위축되어 있던 모의자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는 기폭제 역할도 하였다. 한편 안동교회 여성 지도자였던 김정숙, 김병규. 이권애 등 3인은 1911년 안동교회가 설립한 여성 초등학교인 계명학교 여학생 30여 명을 동원하여 선교사 임시주택이었던 가옥에서 독립선언서를 인쇄하고 국기를 제작하여 비밀스럽게 만세운동에 참여할 준비를 하였다. 3·18일 만세시위가 있던 날 김정숙, 김병규, 이권애 등 3명의 여성 지도자들은 옥고(獄苦)를 각오하고 옷고름을 뗀 뒤 단추를 달고 계명학교 여학생 30여 명을 인솔하고 만세운동에 참가했으나 당시 여론을 의식한 일제는 김정숙 등 3명은 물론 학생 1명도 구속하지 못했다. 또한 안동의 3차 만세운동은 3월 23일(주일) 오후 7시 30분 무렵부터 시작됐는데 앞선 2차 시위와는 다르게 안동군의 다른 면민들이 대거 참가하는 대중적인 시위 양상을 보였다. 무려 3,000여 군중이 모여 구금된 사람들을 구출하기 위해 경찰서와 법원 안동지청으로 밀고 들어갔다. 일본 경찰과 수비대와 충돌로 인해 30여 명이 죽고 50여 명이 부상을 입을 정도로 시위는 격렬한 양상을 보였다. 김정숙은 1919년 3월 18일의 2차 시위와 23일에 있었던 3차 시위 등 안동의 3·1 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던 행동하는 신앙인인 동시에 애국운동가였다. 참고로 3·1 만세운동에 참여한 여성지도자인 김병규는 안동의 기독청년면려회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의 아들 권중윤은 대구 계성학교 학생으로 대구 만세운동에 가담하였다가 구속되어 6개월 동안 수형 생활 후, 학교를 졸업하고 안동으로 돌아와 계몽운동을 하던 중 1921년 2월 5일 안대선 선교사가 전국에서 최초로 안동교회 청년면려회를 조직할 때 초대 회장으로 피선되었다. 그 후 안대선 선교사를 도와 경북지역 각 교회에 다니면서 청년면려회를 조직하여 1921년 6월 7일∼9일까지 26개 지회 600여 명이 모여 경북연합대회를 개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22년 청년면려회를 전국적으로 조직하기 위하여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는 안대선 선교사와 권중윤을 서울로 이주케 하여, 이들의 헌신적인 활동을 통해 1923년, 200여 교회에 청년면려회가 조직되었고, 1924년 12월 2일에는 서울 정동 피어선 성경학교에서 기독청년면려회가 조직될 수 있었다. 3·1 만세운동 당시 안동교회 교인이었던 김병규는 공식적으로 1924년 5월 22일, 안동교회에서 서울 안국동교회로 이명했다. 김병규는 이명 후 불과 몇 년 되지도 않은 1925년 초 경기부인전도회의 서기를 맡을 정도로 왕성히 활동했다. 또한 김병규는 서울 승동교회에서 회집한 경기지역 12 교회 부인회의 회장으로 피선되었다. 1925년 전국 부인전도회가 처음 조직할 때는 선교사 중심으로 조직되었는데, 한국인으로 임원을 구성한 2회 총회부터 김병규는 한국인으로는 제일 먼저 회장으로 피선되었다. 1927년 9월 9일 원산 광석동교회에서 제16회 장로회 총회 시 ‘여전도회 전국연합회’ 발기회에서 김병규는 경기 여전도회 대표로 참석하였다. 1928년에 조직된 여전도회전국연합회에 경기지역 대표로 활동했다. 이처럼 김병규는 전국적으로 왕성히 활동한 여성 교역자였다. 김정숙 전도사의 애국 활동은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그는 일제 말엽에는 일본제국주의에 맞서 신사 참배를 거부하고 신앙의 절개를 지킨 여성 지도자였다. 1930년대 후반 중일전쟁이 시작되면서 일본제국주의는 황민화정책과 천황숭배를 강화하기 위해 신사참배를 강요하였다.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에 굴복하여 1935년에는 천주교회가, 1936년에는 감리교회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1938년에는 장로교회가 신사참배를 결의하였다. 일제의 극한 박해와 신사참배 문제 앞에서 수많은 교회 지도자들은 신앙을 포기하고 변절과 타협의 길로 갔지만, 김정숙 전도사는 죽음도 불사하면서 마지막까지 일제에 저항했다. 참고로 경안노회에서 신사참배를 거부한 인물로는 이원영·강병철·박충락 목사와 권수백 장로 등이다. 특히 안동교회의 인물로는 김익현·김성규·김재성·조흥로 장로와 조춘백, 이수원·이수형 성도 등 다수가 있었지만, 기록으로 남아 있는 여성 교역자로는 김정숙 전도사가 유일하다. 그는 죽음도 불사한 각오로 신앙의 정조(貞操)를 지켰던 용기 있는 믿음의 여성이었다. 김정숙은 일제 압제하에서도 용기 있게 신앙에 기초하여 민족의 편에 선 여성 민족 운동가였던 것이다. ▲안동의 3·1 만세운동은 세 차례에 걸쳐 발생했다. 1차 시위는 3월 13일 이상동의 단독시위였고, 2차 시위는 3월 18일 안동교회 주도와 유림들의 동참으로 다음날 새벽까지 이어졌다. 3월 23일 3차 시위는 많은 군민들의 격렬한 시위 결과 100명 가까운 사상자를 내었다. 3·18일 만세시위가 있던 날 김정숙, 김병규, 이권애 등 3명의 여성 지도자들은 계명학교 여학생 30여명을 인솔하고 만세운동에 참가했다. 위 사진은 1925년 삼산동 곡물전(현 신한은행 근처) 안동 장날의 번잡한 모습.(사진7) /논문 발췌‧정리=박은숙 기자/ <논문 원본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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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결혼 합법화하려는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을 “반대한다!”전국단체 네트워크 결성식 및 세미나 개최 ··· 개정안 철회 촉구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 반대 세미나에서 음선필 교수 등 발제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지난 4월 29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는 건강가정기본법개정안반대전국단체네트워크(건반넷) 748개 시민단체 주최로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 반대 전국단체 네트워크 결성식 및 세미나가 열렸다. 이날 세미나에는 정천구 교수, 오명식 교수, 음선필 교수가 발제자로 나서 남인순 의원과 정춘숙 의원이 발의한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의 문제점들을 구체적으로 다루고, 개정안 철회를 촉구했다. 먼저 정천구 교수(전 영산대 총장(불교))는 “기독교, 불교 등 주요 종교에서 신도들에게 동성애를 하지 말라고 권고하는 것은 종교의 자유이며, 동성애 문제는 문화적 마르크시즘으로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숙청을 연상시키는 위험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오명식 교수(전 부산 가톨릭대 교수(천주교))는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에서 가족의 정의를 제거하고, 가정의 개념을 대통령령으로도 정할 수 있음”을 지적하며 “건강한 가정을 위한 법이 아니라 동성애, 동성결혼 등을 포함시키려는 나쁜 의도가 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음선필 교수(홍익대 교수(기독교))는 “지금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은 양성의 평등을 바탕으로 가족생활을 보장하고 있는 헌법과 민법을 거스르고 있다”고 주장하며, “동성커플 등을 인정하기 위해 가족의 개념까지 없애 가면서 법을 개정하려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날 토론자로 나선 김지연 대표(차세대바로세우기학부모연합 상임대표)는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하려는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이 결국은 동성결혼 법제화의 수순으로 갈 것이 우려된다”며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의 재개정을 촉구했다. 연취현 변호사(바른인권여성연합 전문위원장)와 이진수 대표(더워드뉴스)도 개정안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사회에서 가족제도가 건강하게 형성되고 보호되는 것은 다음세대와 국가 전체의 명운을 가르는 중요한 문제인데, 이 개정안은 가정을 파괴하고 국가의 가정보호 책무를 없애겠다는 움직임”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과 정춘숙 의원이 각각 2020년 9월과 2020년 11월에 발의한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에 대해서 한국교회나 교계 단체들도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이 개정안은 가족 및 가정의 정의를 의도적으로 삭제하고, ‘가족의 형태를 이유로 차별받지 아니한다’고 했으며, ‘양성평등’을 ‘평등’으로 바꾸어서 동성결합 및 동성결혼의 합법화를 열고자 하는 의도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예진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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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 안동지역 여성사역의 개척자(1)김정숙, 안동지역 여성사역의 개척자(1) 김승학 목사 신학과 교수/기독교교육학 안동교회 담임목사 김정숙 전도사 (金貞淑, 1880~1969) 목차 서론 1. 출생과 결혼 2. 최초의 순교를 목도한 시댁 3. 여성복음전도의 선구자 4. 평양여자성경학원의 유학생 5. 담임목사의 부재(不在)를 메꾼 여성교역자 ................................................... 10. 평신도 사역자 결론 서론 한국에 도착한 선교사들은 성경 말씀 그대로 남녀노소, 빈부, 계층에 관계없이 복음을 전했다. 그런데 귀족보다는 평민,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더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조선 시대 말기의 여성은 유교적 전통으로 인해 철저하게 무시당했다. 한국 전통사회 안에 뿌리 깊은 성차별의 문화와 여필종부, 삼종지도, 칠거지악, 남녀칠세부동석, 부부유별 등의 가부장적 가치관은 여성의 인권을 철저히 억압했다. 무지와 가난, 고된 노동과 억압된 삶을 살던 여성은 한(恨)을 품은 존재였다. 조선 시대 말기에 입국한 선교사들의 눈에는 누구보다 한국 여성들이 복음의 대상이요 구원받아야 할 존재로 보였다. 이런 환경에 있던 여성들은 한국 땅에 도착한 선교사들에게 누구보다 우선적으로 중요한 선교대상이 되었다. 특히 1885년 4월 5일 인천항에 함께 도착한 미국 장로교와 미국 감리교 선교사는 선교대상으로서 여성을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1893년 장로교와 감리교의 양 교파 연합모임에서 선언한 10가지 한국선교정책 중에서 두 번째가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선교였다. 감리교의 경우는 의료사업, 교육사업, 자선사업, 여성의 인권회복 등에 치중했고, 여성의 계몽과 교육에 있어서 장로교에 비해 앞서 나갔다. 직접적인 복음전파를 강조한 장로교는 우선적으로 가난한 자와 낮은 계층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였다. 사회 계층 중에서도 가장 소외된 여성들을 선교의 타깃으로 삼았다. 장로교 선교사들은 여성들이 다른 계층에 비해 더 쉽게, 더 빨리 복음에 반응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여성에게 복음을 전했던 것이다. 하지만 여성들에게 복음이 전해진 첫 10년 동안 여성 복음화의 속도는 매우 느렸다. 여성들이 소극적으로 복음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 여성들이 매우 적극적으로 복음을 수용하고 복음에 응답함으로써 복음전파가 급속히 이루어졌다. 그 결과 사회적 활동에 수동적인 여성들이 전도사역과 계몽사업에 주체적으로 참여할 뿐 아니라 일제의 압제 가운데서 애국 여성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1. 김정숙, 출생과 결혼 “임진(臨津) 이북의 땅은 다시 오랑캐의 땅이 될 터이니 몸을 보전하는 것을 논할 수 없다”는 예언으로 불안해하던 이북 사람들 중에는 이남으로 이주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특히 이들이 가장 선호한 지역은 정감록(鄭鑑錄)에서 언급하고 있는 ‘십승지’의 첫 번째 승지인 경상북도 풍기였다. 정감록의 예언을 믿고 있던 북한 사람들이 실제로 이남으로의 이주가 시작된 것은 1890년대 후반부터였고, 이어서 1920년대에는 개성·평양에서 약 100여 가구가 풍기로 집단 이주를 했다. 현재 이들 후손들이 1,000가구 정도 남아 있다고 한다. 1907년 창립된 풍기성내교회는 지역 토착 주민들과 다른 지역에서 이주해온 이주민들이 함께 신앙공동체를 이룬 것으로 성내교회 100년사는 기록한다. 김정숙(金貞淑)은 1880년 11월 10일 김병연(金秉淵)의 장녀로 풍기에서 출생했다. 그는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으며 정숙한 여인으로 성장했다. 김정숙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가 비록 체구는 작았지만 단정하고 고상하며 강직한 성품을 갖고 있었다고 기억한다. 더욱이 그는 자식과 손자뻘 되는 교역자를 존경하고 귀애했다고 안동교회 김광현 원로목사는 기억한다. 김정숙은 고매한 인격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그의 이러한 성숙한 성품은 지역사회에 복음을 전하는 전도부인으로, 또한 교회에서는 전도사로서 목회 사역을 빛나게 만들었던 것이다. 김정숙은 1898년 19세 때 김규립(金奎岦)과 결혼했다. 김정숙의 시부인 김수업은 성균관 진사에 합격했으나 당시 일본과 러시아 등 열강의 침입으로 인해 정국이 어수선한 1894년, 친척들과 함께 평양에서 풍기 금계리로 이주하여 생활하고 있었다. 김수업이 이주한 시기는 북한 사람들이 풍기로 이주한 1차 때였다. 따라서 김수업의 후손은 무려 100여 년 전 풍기로 이주하여 현재까지 생활하고 있는 셈이 된다. 김정숙은 결혼한 지 8년이 지난 1907년, 28세 때 병에 걸린 남편이 세상을 떠나 혼자가 되었다. 그는 슬하에 단 한 명의 자녀도 없이 청상과부로 홀로 남게 되었다. 중병(重病)에 걸린 남편을 헌신적으로 간호하면서 마지막까지 살리려고 했던 김정숙의 노력은 눈물겨울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남편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손가락을 잘랐던 열부(烈婦)였다. 당시 남편이 괴로워하며 숨을 헐떡거릴 때 약지(藥指)를 끊었다고 한다. 남편이 약지에서 나오는 피를 먹으면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믿은 김정숙은 부엌으로 가서 문지방에 약지를 놓고 부엌칼로 내리쳐 쏟아지는 피를 그릇에 받아 남편에게 먹였지만 결국 남편은 세상을 떠났다. 훗날 평양 여자성경학원에 입학한 김정숙은 선교사가 피아노를 배울 사람은 나오라고 했을 때 피아노 위에 놓은 손가락 중 왼손 넷째 손가락이 없는 것을 본 선교사가 이 손으로는 피아노를 칠 수 없다는 말을 듣고 피아노 배우는 것을 포기해야 했다. 2. 김정숙, 최초의 순교를 목도한 시댁 김정숙의 시댁(媤宅)은 한국 기독교 최초의 순교 현장을 목격한 가문으로 전해진다. 그의 남편 김규립의 조부인 김승걸은 평양에서 발생한 한국 기독교 최초의 순교자인 토마스(R. J. Thomas, 1840년~1866년) 선교사의 순교를 직접 목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866년 8월, 토마스 선교사는 항해사 겸 통역관으로 제너럴 셔먼호에 탑승하여 대동강으로 올라왔다가 당시 평양감사 박규수에게 붙잡혀 9월 5일 26세로 평양 대동강 변에서 처형을 당했다. 토마스 선교사는 마지막 순간 자신에게 칼을 겨누던 한 병사를 위해 기도하고 성경을 전달했는데 그가 바로 박춘권으로, 그는 이런 글을 남겼다. "내가 토마스 선교사를 죽인 것은, 지금 생각할수록 이상한 감이 있다. 내가 그를 찌르려고 할 때 그는 두 손을 마주잡고 무슨 말(기도)을 한 후 붉은 베를 입힌 책을 가지고, 웃으면서 나에게 받으라 권하였다. 내가 죽이기는 하였으나, 이 책을 받지 않을 수가 없어서 받아왔노라." ▲1840년 영국에서 출생한 토마스 선교사는 런던 선교회 파송으로 중국 상하이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천주교인을 만난 계기로 조선 선교에 관심을 갖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제너럴 셔먼호를 타고 대동강변에 좌초되어 1866년 9월 5일 순교당했다.(사진1) /논문 발췌·정리=박은숙 기자/ <논문 원본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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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불교인보다 개신교인 향한 부정적 이미지 강해”코로나19 이후 개신교인 이미지 ··· ‘거리를 두고 싶은’, ‘사기꾼 같은’ <종교인에 대한 이미지> *자료출처: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 ‘종교(인) 및 종교인 과세 관련 인식 조사’(2020.07. 남녀=1,000명) 우리나라 국민들은 천주교나 불교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신교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목회데이터연구소(소장 지용근)는 지난달 28일 주간보고서에서 ‘일반 국민의 개신교인 인식’을 주제로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의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소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천주교인과 불교인은 ‘온화한(각 34.1%, 40.9%)’, ‘따뜻한(각 29.7%, 27.6%)’ 같은 긍정적인 이미지가 우세했다. 그러나 개신교인에 대해서는 ‘거리를 두고 싶은(32.2%)’, ‘이중적인(30.3%)’, ‘사기꾼 같은(29.1%)’과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가 더 많았다. 연구소 측은 “교회와 교회 지도자의 각종 추문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고, 교인들이 남들과 다투며 자기 잇속만 차리는 것이 실생활에서 드러나면서 교회 이미지가 부정적으로 형성되고 있던 차에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가 기독교인의 이미지에 더 나쁜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분석했다. 같은 조사에서 ‘우리나라 종교가 국민이 기대하는 역할을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제 역할을 잘하고 있다’는 답변은 단 6%에 그쳐 종교에 대한 대국민 인식이 좋지 않음을 보여줬다. 이는 2018년 같은 항목에서 7%를 기록한 것보다 더 낮았다. ‘코로나 사태라는 중차대한 시국에 종교가 한 역할이 없다’라고 느끼는 국민은 72%나 되는 것으로 나타나 종교계의 역할에 대해 비관적인 인식이 높았다. 그래도 국민의 절반 가까이는 ‘요즘 우리 사회에서 종교계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45%)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향후 종교 전망과 관련해서는 ‘종교계의 위상이 낮아질 것이다’(57%)라고 응답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종교계에 변화가 있을 것이다’에는 55%, ‘사회적 거리두기 경험으로 종교시설(절/교회/성당)을 찾는 이가 줄어들 것이다’에는 39%가 동의를 표했다. 한국 종교계의 문제점에 대해서(중복응답)는 ‘종교계 자체 부정부패’(65%)가 가장 높았다. 이어 ‘종교계의 집단 이기주의’(55%), ‘바람직하지 못한 종교인들의 생활’(35%), ‘종교계의 정치적 개입이 많아짐’(32%) 순이었다. 과거 대비 종교의 영향력을 개인/일상생활/사회 각각에 대해 평가한 결과, 세 영역 모두 과거 대비 영향력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특히 ‘종교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과거 대비 증가했다’는 응답이 54%로 가장 높았다. 한편, ‘국민이 원하는 종교 역할’은 ‘다양한 봉사활동의 주체’(51%), ‘사회적 약자 보호’(50%), ‘시민들의 심리적 불안감 해소’(39%) 등의 순으로 봉사/구제와 같은 전통적인 종교의 기능 외에 코로나19로 인한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해 주는 역할을 기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분석은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지난 6월 23일~26일 ‘종교(인) 및 종교인 과세 관련 인식조사’에 대해 전국 만 20세~59세 남녀 1천 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을 진행한 것을 바탕으로 했다. 박은숙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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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시, 종교계와 코로나19 극복위해 간담회 개최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격상에 따른 종교 단체 대표자 간담회 ▲김천시, 종교계와 코로나19 극복위해 간담회 열었다.(사진=김천시 제공) 김천시(시장 김충섭)는 지난 8월 31일 2층 접견실에서 문사무엘 김천기독교총연합회장, 박병래 천주교대구대교구김천지역대표, 적인 김천불교사암연합회장이 참석한 가운데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격상에 따른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격상에 따른 김천시의 실행사항 보고를 가진 후 지역 내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예배, 미사, 법회 등 종교 활동에 대한 대책 방안을 강구했다. 문사무엘 김천시기독교총연합회장은 “각종 종교 활동을 비대면 또는 50인 미만으로 제한하여 진행하고 방역수칙을 적극 이행 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박병래 천주교대구대교구김천지역대표는 “평일 및 주말 미사를 오는 9월 6일까지 전면 취소한다”고 했으며, 적인 불교사암연합장은 “9월 2일 예정 된 백중행사를 최소 인원으로 축소하여 진행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종교 단체 대표들은 한결같이 김천시의 방역 지침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뜻을 모았다. 김충섭 김천시장은 “지난 2월부터 코로나19로 인한 비상사태 속에서도 솔선수범하여 협조하여 주신 종교계에 감사의 뜻”을 전하며, “다수의 신도가 모이는 종교 활동을 자제하고 정부 및 김천시 방침에 적극 협력해 줄 것”을 당부했다. 이예진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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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시 종교계,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에 ‘모범’안동교회, 안동서부교회, 안동동부교회 등 방역수칙 지키며 부활절 예배 드려 ▲예배 장소에 들어가는 신도 수를 제한하고 예방수칙을 따르고 있는 안동교회. 안동시 종교계가 사회적 거리 두기에 모범을 보이며, 코로나19 확산 방지에 힘을 보태고 있다. 지난 주말 시에서 점검한 결과에 따르면, 지역 교회 총 204개소 중 부활절 예배를 한 교회는 113개소, 55.4%였으며, 예년마다 진행했던 연합예배는 하지 않았다. 부활절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많은 교회에서 예배를 자제했으며, 지역사회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2월 말부터 계속 예배를 중단했다가 지난 주말에 처음 예배를 한 교회도 다수 있었다. 천주교 10개소는 미사에 신도들이 참석하지 않고 영상예배로 생중계했으며, 코로나 사태 이후 불교계에서도 법회를 개최하지 않는 등 사회적 거리 두기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지난 주말 부활절 예배를 한 교회도 코로나19 전파 예방을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방역수칙을 준수했다. 안동교회는 실내 예배 장소에 들어가는 신도 수를 제한하고 1~2m 거리 유지를 위해 선착순으로 쿠폰을 발행하기도 했다. 안동동부교회는 입장하는 신도들에게 번호 스티커를 붙여 지정된 좌석에 앉도록 했으며, 좌석마다 손 소독제를 비치하는 등 예방 수칙을 철저히 이행했다. 안동수상교회는 신도 간 접촉을 줄이기 위해 자동차를 탄 상태로 예배하는 자동차 예배(Drive-in Worship Service)를 했다. 안동서부교회와 안동용상교회 외 다수 교회에서는 입구에 테이블을 설치하고, 교회 직원들이 업무를 분담해 발열 체크, 손 소독 실시, 출입자 명단작성 등 체계적으로 예방 수칙을 이행했다. 한편, 시는 부활절인 지난 주말 예배를 하는 교회를 중심으로 입장 전 발열 체크, 마스크 착용, 손 소독제 비치, 책임자 지정 및 출입 대장 작성 등 7개 예방수칙 이행 여부를 점검하고, 예방수칙 준수를 홍보했다. 권영세 안동시장은 “코로나19로 인해 지역 종교계에서 장기간 예배, 미사, 법회 등을 중단하고, 방역수칙을 준수해 주신 데 대해 감사드리며, 조기 종식을 위해 끝까지 예배 자제, 예방수칙 준수 등 적극 협조해 주실 것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자동차 예배(Drive-in Worship Service)를 드리고 있는 안동수상교회. ▲교회 입구에서 발열 체크, 손 소독 실시, 출입자 명단 작성 등을 실시하는 안동서부교회. ▲지정 좌석에 스티커를 붙이고 손 소독제를 비치한 안동동부교회. 한상덕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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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 한국교회언론회, “교회보다 더 밀집한 시설에도 공평하게 중단명령 내려야” 논평‘코로나와 개신교 예배’ 팩트 체크 … 예배로 인해 전파 사례는 극소수 “많은 교회 정부 수칙 준수, 재난지역 지원하고 있어” 주장 한국교회언론회(대표 유만석 목사)는 3월 22일 논평을 내고 “신천지 등 비정상적인 이단 집회와 달리 개신교 예배로 인해 코로나19가 전파된 사례는 극소수”라고 주장했다. 언론회가 밝힌 ‘코로나와 개신교 예배 팩트 체크’에 따르면, 서울 명륜교회는 마스크 착용 등 예방조치가 일반화되지 않았던 시기의 사례다. 또 이스라엘 성지순례자들의 확진 판정은 개신교가 아닌 천주교 안동교구 사례이며 감염자 가족이 신천지로 판명됐다. 서울 명성교회의 경우 부목사 및 접촉자, 성동구청 여직원 등은 2~3차 재검사에서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으며 이후 교회 감염은 없었다. 부산 온천교회의 경우 예배가 아닌 청년수련회에서 발생했으며, 신천지 이중등록자에 의한 감염으로 확인됐다. 수원 생명샘교회도 외부에서 신천지에 의한 감염 후 예배가 아닌 회식, 회의를 통해 감염됐다. 서울 동안교회와 괴산 장연교회는 교회가 아닌 각각 수련회와 경로당에서 감염된 사례로 밝혀졌다. 성남 은혜의강교회는 이단성 시비가 있는 교회로 신천지의 집중포교 대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회는 “지금까지 사례를 볼 때 방역수칙을 지킨 예배는 감염 위험이 거의 없다. 대중교통, 마트, 카페, PC방, 클럽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또 “많은 교회가 예배를 온라인예배 영상으로 대체했으며 정부 예방수칙을 준수하고 재난 지역에 막대한 지원을 하는 등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소수 사례를 일반화해 ‘강행’ 등의 표현을 써가며 공예배를 범죄행위로 몰아가는 일련의 언행을 중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언론회는 “예배 자제를 요청하더라도 정부의 실책으로 예배까지 지장을 받는 사태에 이른 것에 대해 정중히 사과하고 주일 공예배를 목숨처럼 여기는 기독교 신앙을 배려해 고압적 자세가 아닌 자율적인 권고 차원에서만 요청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헌법으로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대한민국에서 무조건 예배 폐쇄를 종용하는 것은 국가권력이 종교의 자유를 제한할 수 없도록 한 ‘헌법 10조, 헌법 20조, 헌법 37조’에 위반하는 것이다”고 밝혔다. 언론회는 “지자체에서 ‘종교집회 금지명령’을 근거로 감염병예방법 제49조 제1항을 적용하는 것은 법리적 다툼이 있다”며 “공무원들이 단속을 나갈 때 경찰을 대동하는 것은 교회를 잠재적 범죄 집단으로 취급하는 것으로 위법 소지가 다분하다”고 했다. 언론회는 “예배 중단을 요구할 정도면 이에 상응하도록 교회보다 더 밀집하는 모든 시설에 대해서도 공평하게 중단명령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만약 2m 조치를 강행한다면 매일 8시간 근무하는 관공서부터 시행해야 공정하다”고 덧붙였다. 언론회는 “모든 기관과 업소에 7가지 준칙을 적용하지 않는다면 많은 이들이 의혹을 제기하는 것처럼 일련의 조치들은 국민의 불만을 교회로 돌리기 위한 정치적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마지막으로 언론회는 “방역수칙에 최선을 다하고, 공무원들에게 친절히 대하되 위압적 언행은 촬영해서 피해사례를 피해접수센터(chpr-org@hanmail.net)로 제보해 달라”고 안내하며 “코로나 사태로 고통 받는 이들과, 헌신하는 의료진들을 위로하며 빠른 종식을 위해 함께 기도하자”고 권유했다. 박은숙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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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의 뜻을 아십니까?천석길 목사 구미남교회 종교개혁자들이 교회를 개혁하면서 없앴던 천주교의 용어들이 언젠가부터 슬그머니 교회 안에서 다시 쓰이는 단어 중에 하나가 사순절입니다. 사순절이란 순(열흘旬)이 네 번이니까 말 그대로는 40일로서 부활주일 40일 이전이라는 말로서 예수님의 고난을 깊이 묵상하면서 경건하게 40일을 보내자 라는 좋은 의미에서 시작된 영성 프로그램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뜻만 보아서는 좋아 보이고 경건하게 보내기 위한 의미 있는 절기처럼 보이지만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순절이 시작되는 3일 전부터 시작되는 사육제의 뜻을 알면, 아 그렇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사육제를 카니발이라고 하는데 각 나라마다 조금씩 다른 형태로 즐기기는 했지만, 기본적인 뜻은 먹고 마시는 축제로서 말의 뜻 그대로는 라틴어로 카니(carne=고기) 발(val=격리)은 고기와 작별하기 위하여 라는 뜻입니다. 이제부터 40일 동안은 육고기를 먹지 않고 경건하게 살기 위해서 미리 3일 동안은 고기를 실컷 먹고 술에 취한 후에 40일 동안은 경건하게 보내자 라는 다짐으로 축제를 즐긴 것이 카니발, 즉 사육제입니다. 문제는 유럽이나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해마다 카니발, 즉 사육제의 축제 기간에 앞으로 먹지 못할 고기와 술을 그 기간에 과식과 폭음을 하면서 필요 이상으로 들뜬 축제를 즐기다가 성적범죄(카니발 베이비)가 많이 생겨났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은 마치 참회하기 위해서 적당히 죄를 지어도 괜찮다는 듯한 사육제를 없애야 하며, 사순절 기간만 잘 지키면 신앙이 좋은 사람인 양 자기 스스로를 위로받게 하는 종교적인 행위는 옳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이 날이 저 날보다 더 귀하지 않습니다. 일 년 365일이 모두 경건한 날이어야 합니다. 사순절을 지켜야 하느냐? 아니면 그 용어 자체를 쓰지 말아야 하느냐? 라는 질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특정한 기간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우리의 삶을 통해서 증명되어야 합니다. 평소에 십자가를 묵상 못 했다면 40일도 좋지만 고난 주간만이라도 내 몫에 태인 십자가를 깊이 묵상하는 중에 우리의 인격과 삶의 변화가 나타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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