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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학 목사의 논문 원문(3)- 심장에 전도의 불을 지핀 사람, 정재순 목사심장에 전도의 불을 지핀 사람, 정재순 목사 김승학 목사 신학과 교수/기독교 교육학 안동교회 담임목사 정재순 목사(鄭在淳, 1878~1948) 1900년 초 어느 날 정재순 목사는 부해리(傳海利, Henry M. Bruen) 선교사와 만났다. 어디에서, 언제, 어떻게 만났는지를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다만 정재순이 20을 갓 넘은 나이에, 경산 어느 마을에서 부해리 선교사를 만났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훗날 정재순의 행보를 보았을 때 이 만남은 우연적인 만남이 결코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는 오묘하신 섭리 가운데서 정재순이 부해리 선교사를 만나게 하셨다. 만남 후 정재순의 삶은 하나님께로 향한 삶이 되었다. 정재순은 이후 단 한 번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았다. 따라서 언제 누구를 어디에서 만나느냐는 정말 중요한 문제이다. 왜냐하면 삶의 방향과 내용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예수를 믿기로 결심한 이후 정재순은 단 한 번도 교회를 떠난 적이 없이 초창기 한국교회를 위해 헌신했다. 그는 교회 안에 세워진 기독교학교의 교사생활을 시작으로 교회에 관계를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선교사의 조사가 되어 함께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돌보는 일을 시작함으로써 하나님께서는 그를 전문적인 사역자로서 훈련시키셨다. 조사로 여러 교회를 섬기던 정재순은 1912년 평양신학교에 입하여 본격적인 신학수업을 쌓게 된다. 그러던 1914년, 그가 섬기고 있던 대구 신정교회(현 대구 서문교회)에서 장로로 임직하는데, 신정교회 초대 장로의 영예를 안게 된다. 1915년 평양신학교 제8회로 졸업한 후 목사임직을 받고 신정교회 첫 한국인 담임목사로 부임했다. 초임지인 대구 신정교회에서 정재순 목사의 사역은 국가와 민족을 위한 사역이었다. 여자 청소년을 위한 야간 학교를 개설했고, 대구 3·1만세운동에 깊이 관여했다. 1922년 6월 안동으로 사역지를 옮긴 이후, 그는 전도중심의 사역을 통해 안동 땅을 기경하기 시작했다. 계속적인 그의 관심사인 학원선교를 위해 청소년을 위한 기독교학교를 설립했다. 또한 교회분립을 통해 안동 땅의 부흥을 위한 새로운 도전을 감행하기도 했다. 안동을 떠난 이후 대구를 근거지로 둔 정재순 목사는 본격적인 복음전파자의 길을 걸었다. 청도, 영천, 경산, 달성, 고령, 월성, 경주, 영일, 칠곡, 상주, 군위, 선산, 의성군 등에 28개 예배처소를 개척했다. 이 때 그의 부인인 손주안 사모는 함께 교회를 개척하고, 함께 성도를 섬기고 돌봄으로써 정재순 목사의 소중한 동역자가 되었다. 연어가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서 산란하고 죽듯이 정재순 목사는 60세에 그의 첫 담임 목회지인 대구 신정교회로 돌아가 사역을 마무리했다. 그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했다. 정재순은 목회 전반전과 후반전을 똑같은 열정과 투철한 사명감을 갖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불꽃을 불사르며 살았을 뿐 아니라 성도들의 심장에 전도의 불을 지핀 믿음의 사람이었다. 이제부터 정재순에 관해 살려보자. 1. 목사 임직 이전의 인간(人間), 정재순 정재순에 관한 기록은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으며 극히 단편적인 것만 알려져 있다. 그의 집안이나 근무한 기관, 그리고 섬긴 교회도 그에 관한 것과 사역한 내용 등에 관해 남겨진 기록이 거의 없을 정도이다. 지금까지 그의 성장배경이나 가족 관계 등 역시 제한적인 정보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 결과 정재순 목사의 가정에 관한 연구는 전무하다 시피 했다. 그러나 한국기독교 교회역사 주영연구소장 이교남 목사에 의해 정재순의 가족 관계가 새롭게 밝혀졌다. 이교남 목사는 정재순 목사의 후손을 만나 그들이 기억하고 있는 정 목사에 관한 이야기나 그들이 보관하고 있던 귀한 자료들을 볼 수 있었다. 이교남 목사는 2013년 7월 제2회 안동지역 기독교 역사포럼에서 발표한 ‘정재순 목사의 목회사역과 독립운동에 대한 연구’라는 소논문에서 정재순 목사의 후손을 만나 확인한 새로운 사실을 공개한 적이 있다. 새롭게 밝혀진 정재순의 가족 관계는 다음과 같다. 정재순(鄭在淳)은 1878년 5월 24일, 경상북도 경산(慶山)군 남천면 신기동에서 출생(出生)했다. 부친은 정진호(金鎭鎬), 모친은 김소사(金召史)의 2남 4녀 중 장남이며, 부인은 손주안(孫主安)이다. 훗날 부인 손주안은 남편 정재순 목사의 동역자로 전도와 교회개척에 큰 공헌을 하게 된다. 정재순은 외동아들을 두었는데 아들은 정원조(鄭元祚), 자부는 손기순(孫琪順)이며, 그의 후손은 현재 대구에서 교회를 잘 섬기고 있다. 정재순 가문은 당시 여느 가문처럼 유학의 집안이었다. 따라서 그는 어릴 때부터 한문을 배우고 한학을 수학하며 유학을 따르는 집 안에서 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재순 목사의 묘는 칠곡에 있었는데, 1982년에 대전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정재순 목사가 안동교회에 시무할 때 교인으로 생존한 성도들이 기억하고 있는 정재순 목사는 천성이 어질고 중후한 성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성도들로부터 호감을 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아 있는 정재순 목사의 사진에서 보여 지는 그의 인상(印象)은 성도들의 증언을 뒷받침한다. 사진으로 보여 지는 그의 인상은 후덕하고 인정이 많은 교육자요 목회자, 바로 그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가 안동교회를 섬기는 3년 동안 성도들은 그의 신앙과 인격을 존경하며 영적 리더십에 순종했을 것이다. 또한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장을 역임하고 대구제일교회 원로목사인 이상근 목사는 정재순 목사의 훈훈함을 이렇게 기억한다: “우리들이 약혼한 때는 1942년 여름, 음력으로 7월 7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우리를 견우직녀라면서 축하해 주었습니다. 약혼식은 정재순 목사님의 주례로 처가 대청에서 올렸습니다.” 정재순 목사는 교인들을 포함한 주변의 여러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주는 주의 종이었다. 2. 선교사를 만나 회심(回心)한 사람, 정재순 유교가 뿌리 깊은 가정에서 출생하고 성장한 정재순은 처음에 기독교에 심한 거부감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재순 목사의 증손자에 따르면 정재순이 선교사를 구타하고 쫒아내려고 선교사를 찾아갔다가 부해리 선교사를 만나 전도 받고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한다. 대구 경북 조사인물편람에 따르면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하루는 부해리 선교사가 ‘나의 설교 중 어느 말씀에 감동을 받아 예수를 믿게 되었는가? 라고 정재순 조사에게 물었더니 정재순 조사는 ’내가 예수를 믿게 된 것은 부해리의 설교가 아니고 당신이 키우고 있는 사냥개 마이크가 식사 기도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정재순 조사는 사냥개가 빵을 다리 위에 놓고 주인이 먹으라는 명령을 기다리는 순간을 식사 기도하는 것으로 알았던 것이다. 미천한 개도 음식을 놓고 기도하는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이 어찌 기도하지 않겠는가? 하고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예수를 믿게 되었다. 개도 기도하고 난 후에 밥을 먹는데, 사람인 나는 당연히 하나님께 기도해야 되지 않겠는가 하는 마음이 들어 예수를 믿게 되었다는 정재순의 고백은 복음은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질 때만이 아니라 선교사의 행동 등을 통해서도 전해질 수 있음을 알게 한다. 그렇다면 정재순은 언제 회심했을까? 정재순의 회심은 경산에서 복음이 전해진 선교사와 기간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이다. 부해리 선교사는 1896년 프린스턴 신학교(Princeton Theological Seminary)를 졸업하고, 1899년에는 뉴욕 유니언 신학교(Union Th eological Seminary)를 졸업한 후 그해 봄 목사 안수를 받았다. 이어 미국 북장로교 해외선교부에서 한국 선교사로 임명되어, 그해 10월 26 일 대구에 도착하였다. 결혼을 위해 대구를 떠났던 그는 1902년 5월 다시 대구 선교부에 귀환하여 경북 서부지방, 즉 김천, 선산, 군위, 고 령, 성주, 상주, 칠곡 등지에서 복음을 전해 수많은 교회를 설립하였다. 1903년 부해리 목사는 안의와(安義窩, James E. Adams)의 후임으로 대구제일교회를 담임하였고, 1904년에는 대구 성경학원의 남자 조사반을 맡았다. 또한 1916년까지 나환자 선교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12년 1월 경상노회의 조직에도 크게 기여하여 1913~14년에는 경상노회 7, 8회 노회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또한 1915년에 대구 남산교회를 세워 1920년까지 당회장으로 시무하였다. (이하 내용은 논문원문 첨부파일 참조)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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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구원의 또 다른 이름, ‘성도’구원의 또 다른 이름, ‘성도’ 하승무 목사 한국장로회신학교 교수, 역사신학자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가장 감격해야 할 단어 하나를 꼽는다면 무엇이겠습니까? 그 이름은 바로 ‘성도’(Saint)입니다. 성도는 구약의 세계관에 속한 것이 아니라, 신약의 세계관에 속한 성경적으로 완결된 용어입니다. ‘성도’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 속에는 그리스도교의 주요 핵심 개념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측면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측면에서 볼 때 ‘은혜’, ‘선택’, ‘구원’이라는 개념입니다. 둘째는, 사람의 측면에서 의미적으로 ‘중생한 자’, ‘하나님의 자녀’, ‘그리스도의 지체’를, 어의적으로는 구약의 ‘카도쉬(קֹדֶשׁ)’(역대하6:41, 시16:3)를 사도 바울이 헬라어 ‘하기오스’(ἅγιος.)라는 단어로 전의(轉義)한 ‘구별된 자’, ‘거룩함을 받은 자’라는 의미가 적용되어 그리스도교의 고유개념으로 확정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어의적인 의미의 전환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오직 주님으로 고백하는 신앙고백 공동체의 성도라는 의미가 전제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는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성경은 성도가 ‘믿기로 작정된 자’(행13:44-52)로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1:17-18)는 ‘칭의된 의인’ 즉 성도로서 세상과 구별하여 창세 전에 이미 택함(엡1:4)을 받았다고 가르칩니다. 신약시대 이래, 택함을 받은 믿음의 성도는 주님을 영접한 그 순간부터 기존의 세상 방식이나 자신의 방식대로 살지 않기 위해 믿음의 실천적인 삶을 이 땅에 사는 동안 끝까지 견지했습니다. 성경의 가르침에 반하는 그 무엇과도 타협하지 않으려고 말씀에 능동적으로 순종했습니다. 설령, 세상의 기준과 세상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성경이 금하는 불법한 죄에 빠지지 않으려고 했으며, 때로는 세상의 유혹과 불이익에 굴복하였을 경우에도 성도라면 반드시 불의한 사실 하나하나(case by case)를 회개하고, 동일한 죄를 더 이상 짓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혹여라도 동일한 죄를 반복하였을 경우라도 끝내는 죄습(罪習)의 고리를 끊고 성도로서 믿음의 행위를 실천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선택받은 믿음의 성도라면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까지 변함없는 성경의 가르침에 끝까지 순복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약2:26)이라고 했습니다. ‘죽은 믿음’의 소유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결코 자신을 내려놓지 않습니다. 주님의 가르침에 굴복하지도 않습니다. 이는 무늬만 성도요, 겉모습만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입니다. 믿음과 행위는 결코 분리될 수 없는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지난날 믿음의 선친들은 주님을 따르기 위해 목숨까지도 초개같이 버렸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현대교회의 상황을 보면 ‘성도’의 의미는 종교공동체의 하나로 분류된 교회 조직의 대중을 이루는 ‘교인’이자, 기독교 교단의 지 교회에 속한 ‘회원’ 정도로 인식되고 격하되었습니다. 한국교회는 지난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한국사회를 견인해 가는 도덕적이고 모범적인 양심공동체로 선도적인 주류였습니다. 하지만 세속적 부흥주의가 교회로 유입되면서 교인 수와 예배당의 규모가 곧 교회 성장의 지표가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한국교회는 지난날 1902년~1907년 원산과 평양에서 폭발적으로 일어난 회심을 통한 성경적 부흥이 아닌, ‘예수만 믿으면 복 받는다’ ‘예수 믿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물질적 기복주의와 번영론이 ‘교회됨과 성도됨’의 척도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와 기독교인의 모습은 ‘세속적인 것과 구별할 수 없다’가 교회 밖의 인식입니다. 현재 우리는 코로나 시대라는 엄중한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코로나 시대를 통과하면서 일부 대형교회와 기독교 극우단체를 중심으로 마치 한국교회가 정부와 한국사회를 향한 대결 양상으로 비쳐짐으로 교회 밖의 부정적인 인식은 더욱 강화됐습니다. 사단 마귀는 이를 반기독교 세력을 더 규합하고 확장하는 빌미로 삼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코로나19를 통해 한국교회에 주시고자 하는 메시지는 교회와 성도됨의 본질인 ‘거룩성’과 ‘순결성’의 회복임을 깊이 상고해야 할 것입니다. 더 이상 한국교회가 세상과의 논쟁에 뛰어드는 것은 결코 아무런 유익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다음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에 귀 기울일 것을 권면합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10:16)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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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의 평화장 재 효 목사 서울성은장로교회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떼를 지키더니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8~11절)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13~14절) 지금 세상 사람들은 참 불행하게도 성탄절 시즌이 다가오면, 여러 가지 추리(나무)를 장식하고 흥겹게 즐기는데 더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Christ-mas)는 예수님 탄생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이 왜곡되지 않게 만방에 알려야 합니다. 그리고 성탄을 기념하여 온 성도가 아기 예수님을 자기의 영원한 주님으로, 예수님만이 내 생명의 주권자이시고 왕이심을 고백함이 마땅할 것입니다. 본문 말씀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 주의 천사들이 목자들에게 나타나 구주 나심에 대한 기쁜 소식을 전한 내용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번 성탄절을 맞아 예수님이 오신 것을 우리 모두 찬송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사람들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 예수님 탄생의 시대 배경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백성들의 구원을 얻게 해 주시기 위하여 미리 계획을 세우시고 준비해 가십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 단계 단계마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일들을 실현시켜 나가십니다. 본문 첫머리인 ‘그 때에’(1절)는 역사적으로 로마의 대황제인 가이사 아구스도가 제국주의 세력을 확장해 가던 때요, 로마의 제국이 계속해서 중동과 유럽, 전 세계를 석권하고 점령해 가던 때였습니다. 그런 가운데 자기들이 추구하는 제국주의 시대가 계속되리라는 기대가 한껏 부풀었기에 더 많은 군인을 소집할 목적으로 그들(식민지 백성)에게 본적지에 가서 호적을 하라 하였던 것입니다. 바로 그때 마리아가 잉태하여 산기가 다가오고 그와 약혼한 목수 요셉이 마리아를 나귀에다 태우고 본적지 다윗 성으로 갔습니다.(4절) 유다 지파가 베들레헴으로부터 시작해서 번성하고 여러 지역으로 흩어져 살았는데 그 자손이 굉장히 번성했기 때문에 많은 유다 지파 사람들이 본적지인 베들레헴으로 한꺼번에 모여들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그들이 아무리 찾아봐도 빈방이 없었습니다. 방을 얻지 못하고 할 수 없이 짐승들(소나 말)이 쉬는 마구간에서 예수님을 출산하게 되고 강보에 싸서 말죽통인 구유에다가 뉘었습니다.(7절) 이처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에는 가장 낮은 곳에 볼품없는 모습으로 오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온 백성에게 미칠 기쁜 소식 마리아가 마구간에서 해산하게 됐던 바로 그때, 목자들이 광야 들판에서 자기 양 떼들의 풀을 찾아 이동하는데 갑자기 주의 영광이 두루 비치며 천사가 그들에게 말하자 크게 무서워했습니다.(8~9절) 주의 영광이 해도 달도 별도 아닌 그 밤중에 별빛이나 달빛보다 훨씬 밝은 영광의 빛이 목자들에게 두루 비추자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했던 것입니다. 이때 천사가 목자들에게 말하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베들레헴)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10~11절)고 전해 주었습니다. 온 백성에게 미칠 기쁜 소식이란 바로 예수님이 이 땅에 육신의 몸으로 오신 일이었습니다. 여기서 ‘그리스도’라는 말은 ‘성령 충만하다’는 뜻이고, ‘주’라는 말은 ‘아도나이’(히브리어)로 내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예수님이 내 생명의 주관자이시고 또한 나의 왕이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리스도 주’가 되신 분이셨습니다. 천사가 다시 그들에게 말합니다.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12절)고 알려 주었습니다. 이에 주의 천사가 전하는 기쁜 소식을 들었던 목자들은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 예수님을 보는 것이 표적이 된다는 소식에 큰 기쁨이 되었을 것입니다. 또한,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하나님을 찬송합니다.(13절) 천사들이 어떻게 찬양하고 있습니까?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14절)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이 오늘의 주제입니다. 지극히 높은 곳은 천국이며, 땅은 예수님이 태어나신 이 세상을 말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통하여 자기가 죄인인 것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하나님이 그 인생을 보실 때에 기쁨을 이기지 못하실 것입니다. 즉, 땅에 사는 사람 중에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구원을 얻게 될 때 그 사람을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사들이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처럼 구원 얻은 성도들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3.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에 대해 구약 스바냐서에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스바냐 선지자가 말하기를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습3:14)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시온의 딸, 예루살렘 딸은 같은 것입니다. 요즘 말로 ‘교회’를 말합니다. 이들이 바로 교회이며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왜 이들에게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하라고 하였을까요? “여호와가 네 형벌을 제거하였고 네 원수를 쫓아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15절)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임마누엘로 그 교회와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원수 마귀를 쫓아내 버렸고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하시니 너희는 이제 죄를 회개하고 용서받았으므로 형벌 받을 두려움이나 불안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바냐 선지자는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16~17절)며 소망의 말씀을 전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전에 불신앙으로 잘못 살았던 내가 죄인인 것을 깨닫고 예수님을 믿어 진정한 회개에 이르는 모습, 성령 받은 다음에는 죄를 되풀이하지 않는 회개의 열매를 맺는 모습을 기대하고 계십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은 그 사람을 보고 기쁨을 이기지 못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너무너무 기뻐하신다는 것을 꼭 아시기 바랍니다. 결론적으로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이 기쁨을 이기지 못하실 정도로 하나님 마음에 쏙 드는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다윗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에 든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행13:22)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도가 됩시다. (권면의 말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6:2)의 말씀을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세월은 참으로 빠르게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하나님은 구원의 계획을 가지시고 오늘 우리에게 지금이 은혜받을 때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구원을 실제적으로 실현하고 계십니다. 오늘 이때를 정하여 복음을 듣게 하시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으로 쓰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고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참 불행한 일입니다. 이런 자들은 교만하여 쉽게 넘어지게 됩니다.(잠16:18)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주의 천사를 통해 들었던 목자들은 참으로 복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스도 주가 되신 예수님을 직접 볼 수 있는 은혜를 누리는 것은 큰 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것이 표적이 되었던 것처럼 오늘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우리에게도 동일한 은혜를 누리게 하셨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겠습니까? 따라서 주의 천사가 전해 주었던 기쁜 소식을 우리도 널리 전하는 증거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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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순종의 일치성장 재 효 목사 서울성은장로교회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12~14절)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냐 곧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에게가 아니냐 이로 보건대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18~19절) 사람들은 육신의 병으로 죽을까 봐 불안과 두려움에 떠는 상황이 발생하면 누구나 다 생명에 대한 애착심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더욱이 최근에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중국에서 시작하여 동남아는 물론 유럽과 미주까지 엄청난 속도로 확산하여가고 있는 이럴 때일수록 사람들은 육신의 생명에 더욱 매달리게 됩니다. 그러나 오늘 주시는 말씀을 귀담아듣는 여러분들은 생명의 주권이 내게 있는 것이 아니고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 있음을 믿고, 말씀에 순종함이 더욱 필요한 때임을 깨닫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히브리서 저자가 시편의 말씀을 인용,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40년간 생활하면서 하나님을 시험하고 순종하지 못한 까닭에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되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그들의 실패를 교훈 삼아 죄의 유혹으로부터 완고하게 되지 않아야 할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1.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교회 모습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430년 동안 비참하게 종살이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기억하시고 모세를 준비하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이끌어 가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목적 있는 섭리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10가지 재앙을 애굽에 내리심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강권적으로 출애굽 시키셨고, 그들 앞에 막혀 있던 홍해를 육지같이 건너게 하신 반면 애굽 군대는 물속에 전부 죽게 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몸소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광야 길을 가던 이스라엘 백성이 물이 써서 마실 수 없는 곳에 이르렀을 때 발생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이들은 지긋지긋했던 종살이에서 해방시키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마실 물이 없어 죽게 되었다고 한탄하며 모세를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모세를 원망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만큼 체험했으면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알만한데도 그들은 마음이 강퍅하여 원망부터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온전한 순종의 모습을 기대하셨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교회에서의 모습은 불순종의 연속이었습니다. 2.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 그래서 본문 7~8절에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하여 광야에서 시험하던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고 시편 95편 7절의 말씀을 인용했던 것입니다.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을 시험하고 증험한 일을 다 보고 계셨습니다.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이시지만 마음이 강퍅한 자에게는 진노하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또 “내가 이 세대에게 노하여 이르기를 그들이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였고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다”(10~11절)고 반복해서 말씀하신 이유는 불순종의 결과로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복을 받지 못하게 되었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결국, 말씀을 듣지도 않고 순종하지도 않았던 그들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다 광야에서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똑같은 말씀을 하고 계심을 알아야 합니다. 3. 우리에게 주시는 경고의 말씀 이스라엘 백성이 마음이 강퍅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불순종한 결과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그들의 마음이 완고한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12~13절)는 말씀입니다. 더 나아가 히브리서 저자는 구약 성경(시95:7)의 말씀을 인용,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격노하시게 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15절)고 다시 한 번 경고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반복해서 경고하시는 것일까요?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마음이 강퍅하여 하나님을 불신하고 배척하게 되면 하나님이 격노하셔서 심판하시니 주의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이 곧은 사람은 갑자기 패망을 당하고 피하지 못하리라”(잠29:1)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갑자기 패망을 당하고 피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는 “듣고 격노하시게 하던 자가 누구냐 모세를 따라 애굽에서 나온 모든 사람이 아니냐 또 하나님이 광야 40년 동안에 누구에게 노하셨느냐 그들의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범죄한 자들에게가 아니냐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냐 곧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에게가 아니냐 이로 보건대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16~19절)고 분명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4. 죄의 유혹으로부터 이기는 길 말씀에 불순종한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반면 순종한 사람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말씀에 순종해야 죄의 유혹으로부터 이기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갓난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2:2)고 말씀하고 있는바, 여기서 신령한 젖은 말씀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영이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2)고 말씀하셨듯이 예수님이 전하는 말씀을 생명으로 여기고 순종해야 죄의 유혹을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어 우리를 위해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천국 갈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린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14:6)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천국을 가려면 예수님을 통해서만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순종할 때 천국의 백성이 되는 것이며, 또한 천국 백성이 된 자들은 완고한 마음을 버리고 죄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권면의 말씀)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아 하나님의 진노를 받았지만,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마땅히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2:26)고 말씀하신 것처럼, 믿노라 하고 순종하지 않는다면 불순종한 이스라엘 백성과 다를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믿음과 순종이 일치되어야 산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에 순종하고 성령에 이끌리며 하나님 자녀답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자기에게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동안 불순종한 자신의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빌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아가페 하나님, 무한한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어떤 죄를 지었든지 간에 회개하는 모든 죄를 예수님의 피로 다 덮어서 용서하시고 그 사람을 받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을 끝까지 믿고 말씀에 순종하여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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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우치고 말씀에 순종할 때장 재 효 목사 서울성은장로교회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아버지 가겠나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그와 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싫소이다 하였다가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28~30절) 그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이르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그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녀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31~32절)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 하신 비유의 말씀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불복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는 악한 자들이었습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경고로, 순종하려 하지 않는 자는 그 교만 때문에 패망하고 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잠16:18) 그러나 그 잘못을 회개하고 순종한다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1. 예수님에 대해 종교지도자들의 도발 오늘 본문 앞서 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 때,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네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하고 따져 물었습니다. 이렇게 한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많은 무리가 모여들어서 예수님을 환영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성전에 들어가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셨습니다. 또한, 열매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에게 저주하자 그렇게 생기발랄했던 우거진 나무가 하룻밤 사이에 뿌리부터 말라 죽어버렸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이러한 일들을 보고 두려우면서도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아볼 생각은 하지않고 여러 모양으로 흠집을 찾아보자고 안달을 했던 것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인기가 높아 갈수록 자기네들의 입지가 급속도로 허물어지는 것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에 대해 더는 두고 볼 수 없어 누가 너에게 그런 권세를 줬느냐고 예수님께 따지고 물었던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는 질문에 대하여 너희가 답변하면 나도 너희에게 답변하겠다고 하고,(24절)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아니면 사람으로부터냐?”라고 물었습니다.(25절) 그러자 종교지도자들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세례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 온 것이라 대답한다면 왜 그를 믿지 않았느냐고 할 것이고,(25절) 사람으로부터 온 것이라 대답하면 모든 사람이 세례 요한을 선지자로 아는 고로 백성들을 무서워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26절) 그래서 그들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할 난처한 상황이 되자 “우리가 알지 못한다”고 답변을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무슨 권세로 성전에서 백성들에게 말씀을 선포하시는지 밝히 알려주지 않으셨습니다.(27절) 세례 요한은 예수님에 대해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고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해서 오신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선포했던 선지자였습니다.(요1:29)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해 애타게 회개하라고 외쳤지만, 종교지도자들은 세례 요한을 미치광이로 무시해버리고 불신하며 배척했습니다. 또 이들은 세례 요한뿐만 아니라 예수님까지도 비난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저들의 비난에 대해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그들이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고, 인자가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마11:18~19)라고 말씀하신 것을 볼 때, 그들이 예수님에게 얼마나 큰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비하하고 예수님을 깎아내리면서 비방했던 자들이 또다시 예수님께 ‘권위’를 따지며 도발해 온 것입니다. 2.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심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권위에 대해 도발하는 종교지도자들을 향해 예수님이 그들의 완악하고 강퍅한 마음을 지적하고 깨우치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저들에게 비유를 들어, “한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맏아들이 ‘가겠나이다’하고 대답은 했으나 가서 일하지 않았고,(29절) 둘째 아들에게도 똑같이 말하니 둘째 아들은 ‘싫소이다’하고 대답했지만 뉘우치고 가서 열심히 일했다(30절)고 한다면, 두 아들 중에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고 그들에게 질문하셨습니다. 그러자 종교지도자들의 대답은 둘째 아들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31절) 이 비유를 하신 것은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믿으려 하지 않는 것을 지적하기 위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타락한 종교지도자들을 불순종한 맏아들이라고 표현한 것이었고, 저들이 천대했던 죄인들을 순종한 둘째 아들로 표현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것이다. 세례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와서 복음을 전했거늘 너희는 끝까지 그를 믿지 않았지만, 너희가 손가락질하며 욕하던 세리와 창기는 믿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32절) 죄인들은 둘째 아들처럼 뉘우치고 아버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목적을 따라 말씀 듣고 회개하여 구원의 자리로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종교지도자들은 잘 믿는 척하면서도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오히려 예수님을 세리와 창기 같은 부류로 취급하며 죄인이라고 한 것을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비유로 지적하신 것입니다. 이들은 말씀을 듣지도 아니하고, 성령의 임재도 없으며, 구원에 이르지도 못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런 자들을 바라보시며 예수님은 한탄하시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과 불순종의 결과 사1:19~20절에 보면, “너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즐겨 순종하면 이 땅의 아름다운 것을 먹게 해주겠지만 너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그 말씀을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켜질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그 칼은 어떤 칼입니까? 말씀의 칼입니다. 히4:12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칼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주신 생명의 말씀, 구원의 말씀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면, 그 말씀이 심판의 칼날로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신28장에 보면,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라”(2절)고 말씀하십니다. 순종하는 자의 복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서 순종하면 복이 임할 것을 약속하고 있는 내용입니다.(3~14절) 반대로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15절) 불순종하는 자의 저주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는데(16~44절) 이를 가벼이 여겨서는 결코 안 됩니다.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 복이요,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메시지를 마음에 깊이 새길 때 우리의 신앙생활에는 엄청난 유익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권면의 말씀) 오늘 본문의 비유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타락한 종교지도자들의 교만한 모습을 똑똑히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증거하는 일에 자기 생명을 다 바친 세례 요한을 미치광이 취급해버렸습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을 비난하면서 그 권위에 도발하는 행위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암4:10절에 보면, “내가 너희 중에 염병이, 전염병이 임하게 하기를 애굽에서 한 것처럼 하였으며 칼로 너희 청년들을 죽였으며 너희 말들을 노략하게 하며 너희 진영의 악취로 코를 찌르게 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라는 말씀처럼, 불순종한 자들의 결과는 참담한 끝을 가져옵니다. 종교지도자들의 악한 생각은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습니다. 저들은 스스로 의로운 자로 여겼지만, 실제는 악한 영에게 속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일이 무엇일까요? 영적으로 충만해서 악령과 싸워 이기는 것입니다. 모두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순종함으로 악령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모습을 보실 때, 예수님은 그 기쁨을 이기지 못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진짜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는 방법이라면 그 일을 왜 못하겠습니까? 예수님이 그런 여러분들을 보시고 기뻐하실 수 있도록 오늘부터 여러분들이 영적으로 거듭나서 성령 충만함으로 승리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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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장통합 2020 가을노회 개최 ··· “주여! 이제 회복하게 하소서”경서노회 제138회 정기노회, 신임 노회장 정만익 목사 취임 ▲예장통합 경서노회 제138회기 정기노회가 지난 10월 20일(화) 구미시민교회(조민상 목사 시무) 예배당에서 열렸다. 예장통합 가을노회가 코로나19의 어려움 속에서도 노회 총대들이 참석한 가운데 전국에서 속속 개최됐다. 참석한 노회원들은 코로나 시국의 안정과 한국교회의 회복을 위해 한목소리로 기도했다. 경북지역에서도 지난 10월 5일 경동노회를 시작으로, 6일 포항노회 포항남노회, 13일 경안노회 경북노회, 20일 경서노회, 27일 영주노회가 개회했다. 경서노회 제138회 정기노회는 ‘주여! 이제 회복하게 하소서’를 주제로 20일(화) 오전 9시 구미시민교회(조민상 목사 시무)당에서 372명의 총대 중 273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개회예배는 노회장 박상도 장로의 인도로 드려졌으며, 부노회장 서정호 장로 기도, 부노회장 안정현 목사 ‘주여! 이제 회복하소서’ 제목의 말씀 선포, 은퇴 목회자를 위한 헌금, 전 노회장 정영화 원로목사 축도 등의 순서가 있었다. 안정현 목사는 설교에서 “오늘날 이 절망의 시대에 교회는 그 어느 때보다 세상에 희망을 주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며, “한국교회의 희망은 공동체의 회복, 말씀의 회복, 예배의 회복, 선민의식의 회복, 회개운동 참여에 있다”고 강조했다. 예배 후에는 임원선거를 통해 신임 노회장에 정만익 목사(구미하은), 부노회장에 장영운 목사(김천운남), 홍종철 장로(점촌시민)가 선출됐고, 이후 회의 순서에 따라 각 부, 위원회 보고, 시찰회 보고 등의 사무 처리를 했다. ▲신임 노회장 정만익 목사(우)가 직전 노회장 박상도 장로의 축하를 받고 있다. ▲신임 노회장 정만익 목사가 선서를 하고 있다. 취임식에서 신임 노회장 정만익 목사는 “우리 경서노회는 어느 노회보다 은혜롭고 평안한 노회이다. 계속 평안한 노회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하면서 겸손하게 노회를 잘 섬기겠다”고 소감을 말했다. 한편, 이번 노회에서는 조상희 권순창 김제석 황건욱 목사 임직식, 황용봉 목사 은퇴식, 박근호 목사 공로목사 추대식이 있었다. ◎신임 임원진 ▲노회장: 정만익 목사(구미하은) ▲부노회장: 장영운 목사(김천운남) ▲부노회장: 홍종철 장로(점촌시민) ▲서기: 김상기 목사(한마음) ▲부서기: 방연영 목사(동천) ▲회의록서기: 허지태 목사(율리) ▲부회의록서기: 이경원 목사(김천벧엘) ▲회계: 김명환 장로(점촌시민) ▲부회계: 이기우 장로(구미시민) ▲경서노회 제138회기 신임 임원진. 박은숙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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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사랑하라 하신 이유장 재 효 목사 서울성은장로교회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7~8절)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10~11절) 본문 내용은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에 우리도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사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셔서 우리를 살리려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같이 하셨으니 당연히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코로나19로 일상의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깊이 깨닫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1.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말씀이 8절과 16절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자체가 사랑이신 것이 어떻게 입증되어 졌습니까? 이에 대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9절)고 말씀하십니다. 즉,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신 것은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어 우리로 구원을 얻게 하시는 방법으로 그 사랑을 입증하신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그 아들을 통해 무엇을 보여 주셨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10절)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과 함께 영생하도록 구원을 얻게 해주시기 위한 목적으로 아들의 희생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입체적으로 증거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어 주심으로 구원받은 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아들을 희생시키신 그 엄청난 사랑에 대한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또한,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 그 목숨을 버리기까지의 사랑, 이런 것을 우리가 체험하고 구원을 얻었기 때문에 우리도 주변의 가족과 이웃, 그리고 동료들을 구원시키기 위해서 사랑으로 행하는 데 힘써야 할 것입니다. 2. 서로 사랑하라 하신 이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7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면 서로 사랑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원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말씀합니다.(요1:12) 구원받은 자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받은 것임을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자녀는 아버지의 모든 것을 상속받아 후사로 물려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늘나라를 차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 못 받은 사람은 천국 갈 수 없습니다. 회개하고 성령 받아서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으로 구원을 얻었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11절)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이고 자녀가 되었으니 하나님과 같은 사랑의 체질로 바뀌어야 합니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눈으로 본 사람이 없지만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게 되면 사람들로부터 “아 저 사람은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구나” 하는 것을 인정받게 됩니다.(12절) 그러나 희생 없는 사랑은 거짓말 사랑, 가짜 사랑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8절)는 말씀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한 자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구원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원을 받지 못한 자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절대 불가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 채 마귀와 함께 지옥 길을 계속 가고 있다고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3. 사랑은 실천해야 한다 서로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입으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도 형제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말로만 하고 그 사람에게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약2:15~17) 믿음이 있다고 하나 사랑하지 않는다면 바로 행함이 없는 믿음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필요한 곳에 성령이 감동하시고 지시하시면 그냥 주는 것이 사랑이요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며 자기에게 있는 것을 사랑으로 주는 자들의 선행을 갚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잠19:17) 우리 교회에 한 자매가 교통사고를 당해 의식도 없는 상태로 병원에 입원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 교통사고는 언니 차를 타고 가다가 당한 사고였는데 전적으로 이 차의 책임인 까닭에 전혀 보상받을 길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부득이 서울 가까운 병원으로 옮겨서 치료를 받아야만 하는 상황에 이르자 가난한 형편에 어쩔 수 없이 급히 빌려서 치료비를 처리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는 너무나 마음이 아파 그 자매를 찾아가 기도해 주고, 하나님이 주신 사랑하는 마음으로 치료비를 전부 부담해 주었습니다. 그 후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보상금을 받게 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 왔을 때는 눈물이 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저는 그 자매에게 “이것은 100%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 너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이렇게 보상을 받게 하신 것이다”라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우리는 해외 많은 곳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곳에 교역자를 세우고 선교 사명을 가지고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데 힘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필요할 때에 누구를 통해서든지 재정을 지원할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눅6:38)는 말씀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저는 예수님의 지시에 따라서 그분의 것을 그분이 원하시는 대로 전달하고 베풀고 나누어 준 것뿐이었는데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께서 그 선한 행실에 대한 보상을 반드시 갚아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 받기를 소원하고 사랑하는 일에 힘쓴다면 하나님이 하나님의 방법과 은혜로 그 인생을 살리실 것입니다. (권면의 말씀) 지금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붙들어 인도하시고 쓰시기를 원하신다면 그런 것은 내가 걱정할 일이 아니고 하나님이 보호해 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 코로나 시대에 불안해하고 걱정하는 대신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구원받은 성도라면 성령의 지시와 감동을 따라 이웃에게 나누고 베풀면서 영혼 구원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아들을 희생시키신 하나님께서 그 아들의 대속하신 은혜로 나를 통하여 복음의 증거자로 쓰신다면 무엇이 아까운 게 있을까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8:32)고 하신 약속의 말씀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뜻대로 쓰임 받기를 원하며 사랑에 힘쓰는 자에게 하나님은 넘치도록 은혜를 부어 주실 것입니다. 본문 21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고 도와주는 것은 형제를 사랑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선한 행실에 대한 보상을 반드시 갚아 주실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에 믿음으로 순종하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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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 복음전도(Evangelism) (저자 J. D. 페인)오늘날의 질문에 대한 성서적인 답변 J. D. 페인 지음 / 허 준 옮김 ◎ 저자/역자 소개 J. D. Payne(페인) 박사는 미국 샘포드대학교(Samford University)의 기독교목회학 교수이다. 미국 내 몇 교회에서 목회를 했고, 선교와 복음 전도에 관한 13권의 책을 출간했다. 자신의 홈페이지(jdpayne.org)에 자주 글을 올리고 있으며, 팟캐스트 Strike the Match를 진행하고 있다. 역자 허 준 목사는 침례신학대학교 신학과 교수이며 강남중앙침례교회를 섬기고 있다. ◎ 책 소개 이 책은 ‘오늘날의 질문에 대한 성서적인 답변’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저자는 “우리는 질문을 통해 배운다”라는 전제를 기초로 로베르토와 마크라는 가상의 인물을 내세워 33개의 질문을 다룬다. 이 질문들은 전도를 위해 전도자가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내용뿐 아니라 전도 현장에서 받게 될 질문을 포함하고 있다. 전도자는 읽기만 해도 전도훈련이 되고, 전도대상자는 읽다가 전도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 본문 중에서 “모든 믿는 자들은 은사에 상관없이 전도 사역을 감당해야 한다. 분명한 사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이는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해 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축복이 되고(창12:1-3), 모든 민족을 제자 삼고(마28:19), 회개와 용서를 설교하고(눅24:47), 그의 증인이 되어(행1:8), 그의 영광을 선포하기 위해(벧전2:9)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다.”(p.142) <요단출판사 제공 >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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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으로 아니하고는장 재 효 목사 서울성은장로교회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3절)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4~7절) 사도 바울 당시 고린도 교회에 은사로 인하여 말할 수 없는 대혼란이 일어났습니다. 바울이 그 사실을 보고받고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보낸 내용이 본문의 말씀입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다양한 은사를 받았지만 많은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편지를 통해 은사는 한 성령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오직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이며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나타나지 않는 것임을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여러분도 깊이 깨닫는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1. 성령으로 예수를 ‘주’라 고백한다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성령)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3절) 당시 고린도 교회에는 성령과 악령을 구별하지 못하고 우상을 따라가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성령이 함께하지 않는 자는 예수님을 주라고 고백할 수 없으며 오히려 예수님을 저주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예수님을 주인으로 고백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즉 성령으로만 ‘예수는 주’라고 고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에 가보면 은혜와 사랑으로 서로 교제하고 음식을 나누는 모습을 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영적인 소망을 나누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성령으로 예수님을 주시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하지만 영적인 소망을 가꾸는 곳에 드나들면서도 천국 갈 믿음이 없다면 불행하게도 하나님이 버리신 가룟 유다처럼 버림받는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속히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2. 성령으로 여러 은사들이 나타난다 또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4절)라는 말씀처럼,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은사들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각 개인에게 나타나는 은사는 여러 가지라도 한 성령으로 은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은사(恩賜)’는 ‘값없이 은혜로 주어진 선물’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영어로는 gift라고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은사들을 값없이 주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7절)고 사도 바울이 설명하고 있음을 볼 때, 교회의 유익을 위해 성령으로 다양한 은사들을 선물로 주시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저에게도 성령으로 다양한 은사들이 나타나서 여러 가지 이적 기사가 나타나곤 했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의 응답이 즉석에서 나타나고 성령의 역사로 귀신이 쫓겨나갑니다. 항상 성령이 충만해 있으면 귀신이 역사하지 못합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권능을 행합니다. 이는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눅9:1)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을 받아 그 능력으로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3. 성령의 다양한 은사들 여기 보면 은사라고 하는 것을 9가지로 쭉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은사란 각 사람에게 성령으로 행사하게 하시는 기술과 능력이 있는 은사인 것입니다. 기술만 아니라 능력까지 주시는 것입니다. 기술이 있고 능력이 있어야 그 기술이 제대로 그 능력을 힘입어 성과를 올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은사 9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로, ‘지혜의 말씀’(8절上) 은사입니다. 지혜의 말씀을 선포하게 하시는 것은 성령이신데 그 성령을 따라 말씀을 선포할 때 듣는 사람이 그 말씀 속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이것을 지혜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목자를 통하여 성도들에게 주시는 모든 말씀 속에는 하나님의 뜻이 내포되어 있는데 성령 받은 사람이 즉각 깨달아질 때 지혜의 말씀이 나타난 것입니다. 두 번째로, ‘지식의 말씀’(8절下) 은사입니다. 지식의 말씀은 지혜를 실생활에 적용하고 가르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지혜의 말씀은 목자를 통해서 선포되지만, 지식의 말씀은 성도들이 듣고 깨달아진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깨우쳐줄 수 있는 은사를 말합니다. 세 번째로, ‘믿음’(9절上) 은사입니다. 믿음도 성령의 은사로 주어집니다. 한 예로 들면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하나님께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을 믿음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믿음의 은사는 문제에 시달리던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믿음의 성과로 나타나게 하는 은사로 볼 수 있습니다. 네 번째로, ‘병 고침’(9절下) 은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전도하러 보내실 때 병 고치는 은사를 주셨습니다. 성령의 역사로 병을 고치는 일은 복음의 증거로 나타나게 합니다. 다섯 번째로, ‘능력 행함’(10절上) 은사입니다. 이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능력으로 이적 기사를 나타냅니다. 그 능력을 보고 예수님을 믿고 회개해서 구원 얻게 하도록 그렇게 능력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사도 바울도 죽었던 사람을 살린 능력으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데 그것이 능력 행하는 은사인 것입니다. 여섯 번째로, ‘예언’(10절中) 은사입니다. 장래의 일을 하나님이 미리 말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구원 얻는 일에 성령께서 미리 알려 주시는 것을 전하는 일이 예언의 은사입니다. 일곱 번째로, ‘영들 분별’(10절中) 은사입니다. 그 사람이 성령에 이끌리는 크리스천인지 아니면 악령의 앞잡이로 지옥에 끌려가고 있는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적으로 분별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 앞에 우둔하지 않고 영적으로 분별하여 책망하는 일에 쓰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영 분별의 유익입니다. 여덟 번째로, ‘방언’(10절下) 은사입니다. 이 방언의 은사는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으로,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된 ‘오순절 날 성령이 충만하여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자 그곳에 모였던 경건한 유대인들이 각기 자기 나라말로 들리는 방언’과는 다른 것입니다. 그런데 방언의 좋은 점은 방언으로 기도하면 귀신이 도망을 갑니다. 그 방언에 무슨 능력이나 효과가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 그 방언을 하게 하는 이가 성령이시기 때문에 그래서 성령에 쫓겨서 귀신이 도망을 간다는 것입니다. 아홉 번째로, ‘방언 통역’(10절下) 은사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방언은 사람이 알아들을 수 없어서 방언을 통역해 주는 은사가 필요했습니다. (권면의 말씀) 하나님께서 고린도 교회에 성령의 역사가 불같이 일어나게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성령을 통하여 다양한 은사들이 나타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은사 받은 사람들이 자기의 은사가 우월하다는 착각에 빠져 무분별하게 행동을 했습니다. 이 일로 교회가 그 은사로 말미암아 큰 혼란에 빠지게 되어 버렸습니다. 특히 방언의 은사는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고 혼자 떠들어대는 관계로 은사의 부작용을 초래하게 되기도 했습니다. 이에 사도 바울이 은사에 대해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11절)라고 말한 것을 귀담아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각별히 주의해야 할 것은 고린도 교회처럼 은사를 무분별하게 사용하거나 자랑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한 성령 안에서 교회의 유익을 위해 하나님의 뜻에 따라 각 개인에게 주시는 은사는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임에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은사는 교회의 덕을 끼치는 일이 되어야 함을 깊이 새기시길 바랍니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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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방역 실패 책임은 교회? ··· 교계 “유감” 표명고신·대신·합신 교단장들 공동 성명 ··· “국가‧이웃 위해 기도할 것” 예장 고신·대신·합신 지도자들이 21일 긴급 회동을 갖고 “교회에 대한 사회적 거리 두기 2단계 격상에 대한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최근 정세균 총리의 ‘오프라인 예배 금지’ 담화에 대해 “우리는 책임을 통감하며 동시에 슬픈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교회의 자율성이나 방역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모든 교회를 동일시하여, 그동안 방역에 최선을 다해온 교회들에게까지 동일한 조치를 취하고, 정부의 방역 실패의 책임을 유독 교회에만 전가하는 것에 대하여 유감을 표한다”며, “정부가 교회를 코로나19 바이러스 전염병 위기를 함께 풀어갈 협력자가 아니라 방역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교회가 세상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하지 못한 것과 교회를 정치 세력화하려는 무리들을 제어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책임을 통감하며 하나님 앞에서 우리 스스로를 먼저 돌아보고 회개한다”고도 했다. 이에 이들은 “이 모든 상황을 주관하고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이 상황을 다스리시고 선한 길로 이끌어 주실 것을 믿는다”며 “모든 교회와 목회자, 성도들은 지금처럼 코로나19 방역에 최선을 다해달라”고 했다. 또 “앞으로 2주간 수도권에서는 공예배를 비대면으로 전환해 온라인 예배로 진행하고 일체의 소모임을 자제할 것, 영상제작이 어려운 교회들을 도와줄 것, 예배를 더욱더 정성껏 준비하고 참여할 것” 등을 요청했다. 국가와 이웃을 위한 기도도 당부했다. “국가의 지도자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나라와 국민을 위한 바른 정책을 펼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수고하는 관계자와 의료진, 환자와 환자의 가족들, 수해와 경제적 상황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웃과 교회를 위해 기도하자”고 말했다. 이 성명에는 고신 총회장 신수인 목사, 대신 총회장 황형식 목사, 합신 총회장 문수석 목사 등이 참여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조치가 시행 중인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온라인 주일예배가 진행되고 있다.(사진=여의도순복음교회 제공) 박은숙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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