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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장합동 경북노회 제187회 정기회 개최7일, 청정지역 제주도에서 “화합과 발전” 다져 ▲노회장 홍승표 목사 예장합동 경북노회(노회장 홍승표 목사)가 지난 7일(월) 오전 11시~오후 8시까지 제주도 하워드존슨호텔에서 66명의 총대가 참석한 가운데 제187회 정기회를 가졌다. 경북노회는 108년의 역사와 전통이 살아있는 노회로, 한국교회와 합동교단의 정체성을 세워가면서 일제시대와 6·25전쟁 속에서도 전도와 섬김을 다해 합동교단이 장자교단으로 세워지는 데 앞장선 노회이다. 경북노회는 이러한 전통 위에 새로운 역량을 끌어올려 더욱 발전하는 노회가 되고자 이번 제187회 정기회를 장소를 옮겨 청정지역 제주도에서 처음 개최하게 됐다. 이날 개회예배는 노회장 홍승표 목사의 인도, 부노회장 이인순 장로의 기도, 서기 전대동 목사의 성경봉독, 노회장 홍승표 목사의 설교, 김봉환 목사의 축도 순서로 드려졌다. 이어 정기회가 개회되고, 정해진 회의 순서에 따라 각 부‧위원회의 보고, 청원사항 등의 안건이 다루어졌다. 특별히 이번 정기회에서는 새생명교회 이용득 목사와 왜관교회 정옥현 목사의 위임목사 청원 사항이 가결됐다. 홍승표 노회장은 “어려운 시기여서 조심스럽고, 또 처음으로 지역을 벗어나 정기회를 하게 되어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많은 분들이 협력하고 성심껏 준비를 해주어 가능했다”며 “이번 노회를 계기로 더욱 하나 되고 힘차게 발전하는 경북노회가 되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경북노회 제187회기 임원은 △노회장 홍승표 목사 △부노회장 김종화 목사 이인순 장로 △서기 전대동 목사 <부>최수환 목사 △회록서기 이현기 목사 <부>조무용 목사 △회계 배종호 장로 <부>김인규 장로이다. 또 노회에는 노회회관매각추진위원회(위원장 김중회), 미래자립교회지원위원회(위원장 박신득),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위원장 최광락) 등이 속해 있다. ▲경북노회 제187회 정기회가 지난 7일 제주도에서 열렸다.(사진=김태영 장로 제공) 박은숙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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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국민대회’ 이승만 광장에서 열린다!전광훈 목사, 시국 긴박성 강조하며 5,200만 전국민 참여 호소 문재인 대통령 탄핵을 모토로 내건 ‘8.15 국민대회’가 오는 8월 15일(토) 낮 12시 서울 광화문 이승만광장에서 개최된다. 이 대회를 앞두고 그동안 문재인하야범국민투쟁본부(범투본) 대표로서 광화문과 청와대 앞에서 반정부 시위를 주도해 왔던 전광훈 목사가 호소문을 발표하는 등, 적극 홍보와 독려에 나서고 있다. 이번 대회는 8월 15일 오후 12시부터 ‘청년 학생의 시간’을 시작으로, ‘여성의 시간’, ‘시민단체의 시간’, ‘한국교회의 시간’이 각각 30분씩 주어진다. 이어 2시부터 3시까지는 본 대회, 3시부터는 각 단체별 자유 행진이 진행될 예정이다. 전 목사는 최근 특별 호소문을 통해 “문재인 정부는 하나부터 열까지 대한민국을 해체하는 일에만 전력을 다하고 있다”며, “이제 온 국민은 대한민국을 해체하고 북한으로 가는 것을 선택하든지, 아니면 간첩들과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세력들을 청소하고 다시 한 번 대한민국을 재정돈하여 제2의 건국을 이루어낼 것인지 마지막 선택을 해야 한다. 8월 15일 모든 국민이 광화문 이승만 광장으로 뛰어나오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전광훈 목사의 호소문 전문.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가 걱정하고 염려했던 대로 대한민국이 해체되기 직전에 왔습니다.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자탄이 터지고 8월 9일 나가사키에 원자탄이 터졌을 때, 우리 한반도는 두 가지의 선택을 강요받았습니다. 바로 이승만을 선택할 것인가, 김일성을 선택할 것인가 입니다. 여기서 북한은 김일성을 선택했고, 남한은 이승만을 선택하므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한미동맹, 기독교 입국론의 4대 기둥으로 건국되어 오늘날 세계 10위권의 영광스러운 대한민국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의 건국 당시 극렬히 저항했던 남로당의 찌꺼기와 북한에서 내려온 주사파들이 연합하여 70년 동안 대한민국을 무너뜨리기 위하여 공작해왔고, 그 결과 청와대와 대한민국의 각계각층을 완전점령하여 이제 낮은 단계의 연방제 개헌을 통하여 북한으로 가려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목표를 완수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대한민국을 방해해왔습니다. 대한민국의 건국 선거인 1948년 50선거를 방해하기 위하여 대구에 2.7폭동, 영천폭동, 구미폭동, 제주도 4.3폭동을 일으켰으며, 무엇보다 1950년 6월 25일 남침을 강행하여 대한민국을 적화하려 했고, 김신조 특수부대를 청와대에 침투시키는가 하면, 학교를 비롯한 각계각층에 간첩들을 투입하여 대한민국을 혼란케 해왔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연설할 때마다 48년 8월 15일에 선포된 대한민국 건국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해왔고, 동계 올림픽에서 간첩 신영복을 존경한다는 말을 했으며, 2019년 평양 연설에서 자신을 가리켜 남쪽 정부 대표로 왔다고 말함으로써 대한민국이 아직 건국되지 않은 나라라는 식으로 표현하는 등 문재인 대통령 스스로 대한민국 대통령임을 포기했습니다. 근래에 일어난 여러 가지 부동산 문제, 경제파탄, 종전 협정, 북한 및 미국과의 관계도, 결국은 그들이 마지막 일을 만들기 위한 공작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금주에 일어난 물난리 사태도 이명박 대통령이 4대강을 통하여 4대강 보를 완성했기 때문에 대홍수를 피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4대강 보를 해체하려고 혈안이 되어있습니다. 원자력 발전을 파괴하고 태양열 발전을 한다며 산의 산림들을 베어내고, 중국제 태양열 전기판을 설치함으로 금번 폭우사태를 통하여 산사태를 일으키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이명박의 4대 강보는 절반이 완성된 상태이며, 4대강의 지천을 새로 정돈하지 아니하면 앞으로도 지역적인 홍수는 막을 길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부터 끝까지 문재인 정부는 대한민국을 해체하는 일에만 전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제 대한민국은 마지막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대한민국을 해체하고 북한으로 가는 것을 선택하든지, 아니면 간첩들과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세력들을 청소하고 다시 한 번 대한민국을 재정돈하여 제2의 건국을 이루어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8.15일 광화문 이승만광장에 모든 국민들이 다 뛰어나와 새로운 역사를 시작해야 합니다. 이제 더 이상 미친 자에게 운전대를 맡길 수 없기 때문에 국민 여러분들은 8월 15일 이승만광장으로 전력 달려 나와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이 메시지를 수신하는 분들은 오늘부터 열 명 이상에게 본질을 전파하여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봅시다. 지키지 못한 자는 누릴 수 없습니다. 국민혁명의장 전광훈 목사 드림 박은숙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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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공항 ‘김포·제주로 다시 난다’… 진에어 31일 취항경상북도는 20일 포항시청 대회의실에서 포항공항 활성화를 위해 한국공항공사, (주)진에어 등 관계 기관과 업무 협약식을 가졌다. 이날 협약식에는 이철우 경북도지사, 이강덕 포항시장, 주낙영 경주시장, 손창완 한국공항공사 사장, 최정호 (주)진에어 대표이사 등이 참석했으며, 7월 31일부터 진에어 포항~김포, 포항~제주 노선 여객기 신규 취항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2016년 5월부터 대한항공이 포항~김포노선을 운행했으나, 지난해 10월 27일부터 재정적 어려움으로 김포노선을 운휴했으며, 제주노선도 코로나19로 인해 2월 28일부터 운항을 중지해 포항공항의 하늘길이 멈춘 상태였다. 이번 협약에서 경북도, 포항시, 경주시 등 지자체는 재정지원과 홍보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한국공항공사는 원활한 운행을 위해 운항지원과 착륙료 등에 대한 감면 혜택, 포항공항의 시설개선 등을 약속했다. 진에어는 포항공항에서 7월 31일 취항을 목표로 운항 준비를 마무리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김포노선은 하루 2편, 제주노선은 하루 4편 운항할 계획이다. 이혜경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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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노회 여성위원회 간담회 개최“교회 안에서의 여성 리더쉽의 영향력” 주제로 영주노회 여성위원회(위원장 이준연 목사, 예천 고평교회)는 지난 7월 6일(월) 오전 10시 안정농협 로컬푸드에서 “교회 안에서의 여성 리더쉽의 영향력”이라는 주제로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번 행사에는 영주노회 산하 80여 명의 회원들이 참석해 교회 안에서의 여성의 역할과 리더쉽에 대해 점검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며,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철저한 방역 속에 진행됐다. 먼저 1부 예배는 서기 이수형 목사(봉화 소천교회)의 인도로 드려졌다. 노회장 송인화 장로의 기도, 위원장 이준연 목사의 설교(시편 133:1~3), 총무 이삼숙 목사(물댄동산)의 광고 등의 순서가 있었다. 2부 주제강의는 “교회 안에서의 여성 리더쉽의 영향력”이라는 주제로 최갑도 목사(성내교회 원로, 영주노회 공로목사)가 특강을 했다. 영주 우병백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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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세계유산축전 : 경북」 하회마을에서 개막인류의 문화가치 경북에서 꽃피다! 「2020년 세계유산축전 : 경북」의 시작을 알리는 개막행사가 오는 7월 31일 금요일 오후 8시 안동 하회마을에서 성대하게 열린다. 문화재청, 경상북도, 안동시, 경주시, 영주시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재단, (재)세계유교문화재단이 주관하는 개막식에는 공식 개막행사를 비롯해 도산12곡, 부석사의 사계, 가무극 선묘 등의 개막 축하 공연과 선유줄불놀이, 낙화 퍼포먼스 등 다채로운 개막행사가 준비되어 있다. 이번 세계유산축전은 이번 개막식을 시작으로 ‘인류의 문화가치 경북에서 꽃피다’라는 주제로 안동시, 경주시, 영주시에서 8월 한 달간 진행된다. 세계유산축전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국내 세계유산의 가치와 의미를 향유하기 위해 문화재청이 새롭게 추진하는 행사로 전통 공연, 재연행사, 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된다. 특히, 이번 축전의 하이라이트 행사이자 세계유산을 미디어 IT기술과 결합하여 미디어아트로 재해석한 세계유산전과 하이마스크 공연, 선유줄불놀이, 세젤귀 콘서트, 세계유산 버스킹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릴 예정이며, 도산서원에서는 서원의 하루 등 체험행사와 야간개장이 준비되어 있다. 또한, 경주시에서는 미디어아트 천년유산전, 패션쇼 회소, 新 신라오기 등을, 영주시에서는 가무극 선묘, 창작교향곡 부석사의 사계, 문방사우 특별전 등 다양한 행사를 만나볼 수 있다. 지난 7월 도산서원에서 개막식을 한 「2020년 한국의 서원, 세계유산 축전」을 시작으로 8월에는 경북, 9월에는 제주도에서 특색 있는 세계유산축전이 펼쳐질 예정이다. 한편, 이번 축전은 코로나19의 재난상황 속에 개최되는 만큼 개막식에는 3단계의 방역계획을 세웠으며 차후 진행될 행사에서도 각 프로그램에 맞는 맞춤형 방역계획을 세워 코로나19의 철저한 예방을 위해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 안동시 관계자는 “8월 한 달간 경북지역의 세계유산들을 방문해 축전을 즐기고 체험하는 것은 물론 많은 국내·외 관광객이 세계유산의 가치를 되새기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안동 한상덕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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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시, ‘서울시 지역연계형 청년창업지원사업 지역 캠프’ 운영11개 팀 26명의 청년이 경주를 찾아 구체적인 사업 구상 경주시는 13~14일 이틀간 문정헌 및 황리단길 일원에서 ‘2020년 서울시 지역연계형 청년창업지원사업(이하 넥스트로컬) 지역 캠프’를 운영했다. 경주시는 지속적인 인구감소의 극복 방안으로 ‘경주에서 살아보기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며, 넥스트로컬 사업 또한 그 일환이다. 넥스트로컬 사업은 서울시가 지역의 자원을 연계·활용해 창업모델을 발굴하고 꿈을 실현할 청년들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지난 2기는 13개 지역 총 205명의 서울 청년들이 참여했다. 청년창업자들은 13개 지역 중 제주, 강원도 평창과 더불어 경주를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나 경주가 청년창업자들에게 매력적인 도시로 꼽혔다. 이번 캠프에는 11개 팀 26명의 청년이 경주를 찾아 창업 공간이 될 경주 구석구석을 접하고 구체적인 사업을 구상했다. 경주시는 청년들에게 경주의 다양한 자원을 소개하고 지역 멘토단과의 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창업을 넘어 정착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 참가팀 가운데 ‘휴힐러’팀은 “자연 속 휴식을 모티브로 문화관광 여가시설 정보를 제공하는 플랫폼 서비스 구축을 통해 대표적인 관광도시인 경주에 활력을 더하고 싶다”며, “짧은 기간이었지만 지원을 아끼지 않은 지역 관계자분들 덕분에 경주의 매력에 흠뻑 취하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면식범’팀은 “일명 `못난이`로 불리는 비규격품 농산물을 원료로 한 가공품 생산을 통해 지역 농촌 지역의 소득 증대와 상생에 기여할 것”을 희망했고, ‘삿갓’팀은 “창업과정에서 현장조사가 무엇보다 중요한데 지역의 다양한 멘토를 직접 만나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어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경주시 관계자는 “이번 캠프를 계기로 문화예술, 관광, 공유오피스, IT 등 다양한 아이템을 갖고 경주를 찾은 청년 창업자들이 사업화에 성공해 지역에 활기를 더하고 청년 인구 유입의 물꼬 역할을 톡톡히 해내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경주 김치현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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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평생 경안노회를 떠나지 않은 주의 종(從), 임학수 목사(7)일평생 경안노회를 떠나지 않은 주의 종(從), 임학수 목사(7) 김승학 목사 신학과 교수/기독교교육학 안동교회 담임목사 임학수 목사 (林鶴洙, 1884-1969) 18. 최고의 한학자(漢學者)가 되다 임학수는 예천군 보문면에 위치한 옥천서원에서 한학을 수학했다. 손녀 임순오 권사는 “할아버지가 1905년 궁내부 주사시험에 급제하여 관료가 되었다”고 증언한 바 있다. 궁내부 주사는 6품 벼슬이고, 궁내부는 1894년 제1차 갑오개혁 때 신설되어 왕실에 관한 일을 총괄 맡은 관청으로 고종이 근대화와 관련된 사무를 궁내부에 배치시켜 자신이 직접 통제했다. 임학수는 한학을 전공하고 한학에 능한 선비였다. 그런데 임학수는 전도를 받아 예수를 믿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예수의 제자로 변화되었다. 그는 궁내부 주사의 길을 버리고 십자가의 길을 걸었다. 임학수 목사는 권찬영 선교사의 서기, 조사를 거쳐 평양신학교를 졸업한 후 일평생 목사의 길을 걸었다. 그는 한문 성경을 늘 지니고 있었으며, 한문을 사용한 한시(漢詩)로 설교했다. 특히 주일 설교 중에 한시를 자주 인용하여 교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 주었다. 임학수 목사는 역사의식을 남기고 간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한시를 조건 없이 써주었고, 특히 상(喪)을 당한 성도에게 한시로 만장을 써서 상가를 위로했다고 한다. 임학수는 한학을 완전히 떠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한학을 예수보다 우선하지 않았다. 다만 한학을 하나님의 일에 사용하였다. 1937년 4월 6일, 안동교회는 역사에 남을 2층 석조 예배당을 준공했다. 그때 임학수 목사가 쓴 한시(漢詩)인 ‘법상동 예배당 건축기(法尙洞禮拜堂建築記)’는 1940년 4월 24일 자 장로회보에 실리기도 했다. 배흥직 목사의 증언에 따르면 임학수 목사는 은퇴 후에도 시간이 나면 한문 공부와 한시를 공부했다고 한다. 손녀 임순오 권사도 조부 임학수 목사 방안에는 한문책이 가득했다고 말 한 적이 있다. 또한, 임학수 목사는 생신날에는 지역의 한학자들을 집으로 초대하여 점심을 대접하고 식후에는 한시경연대회를 열었다고 한다. 임학수 목사는 비록 평생 목회를 했지만, 한학을 완전히 잊고 있지는 않았던 것이다. 임학수 목사가 남겨 놓은 또 하나의 유명한 한시가 있다. 그것은 은퇴 이후인 1950년대, 이승만 대통령 시절 개최된 전국 한시 백일장 대회에서 최우수작으로 당선된 시이다. 이 백일장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친히 ‘평화통일’이라는 시제(詩題)를 주었고, 임학수 목사가 쓴 한시가 참가자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선정됨으로써 전국적으로 유명한 한시 작가가 되었다. 또한, 임학수 목사는 경안노회 경내의 기관이나 교회 이름을 작명(作名)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안학원, 경안성서학원, 영주의 영광학원, 도원교회 등은 성경과 한문을 결합한 그의 작품으로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친숙한 이름들이다. 임학수 목사는 한학자였지만 목회의 길로 들어선 후에는 한학의 길을 걷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장점인 한학을 목회 현장에 도입함으로써 성도들을 위로하고 하나님의 교회를 든든히 세우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목회의 도구로 사용하였다. ▲1950년대, 이승만 대통령 시절 개최된 전국 한시 백일장 대회에서 최우수작으로 당선된 임학수 목사의 한시. 임학수 목사는 이 시에서 한반도의 허리가 잘린 것을 통탄하고 있다. 모든 것이 옛날과 똑 같은데, 한반도만이 분단되었음을 슬퍼하고 있다. 이 시에서 임학수 목사가 분단된 조국의 평화통일을 정말 그리워했던 지도자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19. 은퇴 후에도 목회를 계속하다 1929년 1월부터 1939년 3월까지 11년 동안 안동교회의 담임으로 섬기다가 사임한 임학수 목사는 영양읍교회, 풍기교회, 창락교회, 풍기 성내교회, 예천읍교회, 예천교회, 예천 상락교회 등 지역의 모 교회, 중심 교회를 섬겼다. 그 후 임학수 목사는 1952년 12월, 고향 땅인 안동으로 돌아왔다. 고향을 떠난 지 14년 만이었다. 당시에는 목사의 시무연령 제한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학수 목사는 예천교회를 끝으로 69세에 현직에서 은퇴하고, 교역자가 시무하지 않는 작은 교회를 위해 남은 인생을 드리기 시작했다. 그에게 있어서 목회는 천직(天職)이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힘이 남아 있는 동안에는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아야 할 사명감에 불타 있었던 것이다. 안동으로 귀향한 임학수 목사는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는 일을 중단하지 않았다. 6·25 전쟁이 끝난 후 안동에는 예배당이 무너지고 담임목사가 없는 교회들이 많이 있었다. 그는 담임교역자가 없는 용상교회, 문수교회, 태화교회 등을 돌보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임학수 목사는 용상교회는 1952년 12월부터 1953년 12월까지, 문수교회는 1954년부터 1955년 5월까지, 그리고 태화교회는 1955년 6월부터 1962년까지 섬기는 투혼을 발휘했다. 특히 그가 마지막으로 섬긴 교회는 태화교회(지금의 도원교회)로, 그는 72세부터 시작하여 79세까지 마지막까지 목회의 끈을 놓지 않았다. 사실 그는 지역의 중심 교회만 섬긴 것은 아니다. 1925년 1월 7일 개회된 제7회 경안노회에서 목사 임직을 받은 이후 1926년에는 하회교회를, 1927년에는 노회 허락을 받아 옹천·지곡·연당·매정·안흥·녹내·방하 등 7처 교회에서 시무했다. 그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교회라면 교인 수의 다소를 생각하지 않고 교회를 돌보는 것을 우선으로 생각했다. 그 결과 임 목사는 자신에게 주어진 사역의 장(場)을 어떤 경우에도 마다하지 않고 찾아 섬겼던 것이다. 임학수 목사는 예수님을 영접한 1909년 이후 1962년까지 50여 년 동안 경안노회를 단 한 번도 떠나지 않은 주의 종이다. 동시에 목회자가 없는 작은 교회에서 끝까지 투혼을 발휘하며 평생을 다해 양들을 돌보는 사역에 마지막까지 헌신한 신실한 주의 종임에 틀림이 없다. /논문 발췌‧정리=박은숙 기자/ <논문 원본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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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 척곡교회, ‘교회창립 113주년 감사’‘제6대 박영순 담임목사 취임’ 축하 예배도 함께 드려 ▲봉화 척곡교회 예배당 전경. 경북 봉화군 법전면 척곡교회는 지난 5월 17일(주) 오후 3시 교회 예배당에서 창립 113주년 기념식과 제6대 담임목사 취임 축하 예배를 가졌다. 이날 행사에는 영주노회 노회장을 비롯한 노회 임원, 풍기 성내교회, 춘양교회 등 이웃교회 목회자와 성도 50여 명이 참석해 축하했다. 척곡교회는 1907년 김종숙 목사(김영성 장로 조부)가 창립한 교회로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257호, 예장통합 총회 사적 제3호, 영주노회 사적 제1호, 3‧1운동 참여교회 등으로 지정돼 있으며, 교육시설인 명동서숙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이번에 제6대 담임목사로 취임한 박영순 목사는 2016년부터 척곡교회를 섬기고 있으며, 앞서 5월 12일 제73회 영주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제1부 예배는 류재록 목사(직전 당회장, 도심교회)의 인도로 춘양시찰장 박양수 목사(대곡교회)의 기도, 최영자 권사 특송, 최갑도 목사(성내교회 원로)의 ‘교회의 존재 이유’라는 제목의 말씀 선포, 조승호 목사(춘양교회) 축도 순으로 드려졌다. 제2부 감사와 축하 시간에는 박영순 목사 사회로 내빈소개, 본 교회 김영성 장로 회고사, 김병호 장로 축가, 임채일 안수집사 색소폰 연주, 영주노회장 송인화 장로 축사, 본 교회 학생찬양대의 축가, 허성필 성시 낭독, 박영순 목사 인사 등의 순서가 있었으며, 김영성 장로(96세)의 피아노 반주로 ‘여기에 모인 우리 주의 은총 받은 자여라’ 찬송을 다함께 불렀다. 박영순 목사는 “믿음의 선조들의 헌신으로 세워지고 지켜진 이 교회를 다음 세대에게 잘 전해 줄 수 있도록 온 교회가 더 많이 힘쓰겠다”고 말했다. ▲봉화 척곡교회는 ‘창립 113주년 감사 및 제6대 박영순 담임목사 취임 축하 예배’를 드렸다. 우병백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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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평생 경안노회를 떠나지 않은 주의 종(從), 임학수 목사(6)김승학 목사신학과 교수/기독교교육학안동교회 담임목사 목차 서론 1. 임학수, 믿음의 조상이 되다 …………………………… 15. 사경회 강사(講師)로 활동하다 16. 지역의 중심(中心) 교회를 섬기다 17. 창씨개명(創氏改名)을 하지 않다 18. 최고의 한학자(漢學者)가 되다 19. 은퇴 후에도 목회를 계속하다 20. 후학을 위해 매진하다 결론 15. 사경회 강사(講師)로 활동하다 임학수 목사는 안동교회 시무 동안 여러 교회로부터 사경회 강사로 요청을 받았다. 1929년 11월 21일 안동교회 당회는 임학수 목사에 대한 오대교회의 사경회 강사 요청을 허락했다. 또한, 1930년 1월에는 의일교회 사경회 강사로, 1931년 1월 13일부터 18일까지는 아곡교회, 동년 9월 15일부터는 서사교회, 1932년 음력 정월부터 1주일 동안은 춘양교회의 부흥사경회 강사 요청이 있었고 당회는 이를 허락했다. 안동교회에서 유아세례를 받고 주일학교를 다닌 경안노회 배흥직 공로목사는 “임학수 목사님이 친근감 있는 매력적인 목소리를 갖고 있었고, 그의 음성은 맑고 분명하여 알아듣기 쉬웠다”고 기억한다. 임학수 목사는 설교자가 가져야 할 자질들을 잘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임학수 목사는 전형적인 부흥강사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설교는 성령 충만했다. 회중들은 그의 설교를 들으면서 웃고, 눈물을 흘렸다. 그는 언변도 뛰어났지만 인품이 그의 설교에 묻어났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학을 전공하고 한학 선생까지 한 그의 지식은 누구보다 성경을 잘 이해하게 했고, 또한 잘 풀어 설교할 능력을 갖추게 했던 것이다. 따라서 임학수 목사는 당시 경안노회 경내의 교회들에게 1주일 가까이 진행된 여러 교회의 사경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하는 말씀의 종으로 사명을 잘 감당했다. 16. 지역의 중심(中心) 교회를 섬기다 일제는 1937년 중국 대륙을 침략했으며, 1938년 국가총동원법을 제정해 국가를 전시 체제로 바꾸었다. 이러한 시국에서 일제는 지역사회 중심 교회의 담임목사가 자신에게 우호적인 사람이기를 원했을 것이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임학수 목사는 1939년 3월 사임했으며, 경안노회는 5월 15일 안동교회 사임을 허락했다. 안동교회 80년사는 임학수 목사의 사임이 일제 말엽의 기독교 박해에 따른 것으로 적고 있다. 그가 안동교회를 떠날 때 모든 성도는 아쉬워하며 눈물을 흘렸다. 임학수 목사가 전도, 교육과 봉사로 교회를 부흥시켰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2층 석조 예배당을 건축한 헌신을 성도들은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임학수 목사는 여러 지역의 중심 교회를 섬기며 사역의 끈을 놓치지 않았다. 안동교회를 사임한 후 1940년, 임학수 목사는 영양지역의 중심 교회인 영양교회를 섬겼으며, 풍기로 임지를 옮겨 1941년부터 1946년까지 영주의 모교회인 풍기교회(현 풍기성내교회)를 담임했다. 풍기교회를 섬기면서 1년 동안은 예천의 중심 교회인 예천교회를 겸하여 섬겼다. 또 임학수 목사는 1946년 12월부터 예천교회를 섬기면서 1947년 10월부터 3년 6개월 동안 예천 상락교회를 동시에 담임으로 시무했다. 임학수 목사가 예천교회와 상락교회를 왕래하면서 동시에 시무할 수 있었던 이유는, 1938년에 신사참배문제로 평양신학교가 폐교되면서 교역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이다. 임학수 목사가 각 지역 중심 교회의 담임목사로 시무했던 시기는 이처럼 어렵고 힘든 기간이었다. 그러나 일제 말엽, 교회들이 문을 닫아야 하는 위기 속에서 그는 교회를 지키려고 부단히 헌신했다. 또한, 광복과 함께 찾아온 극심한 혼란 속에서 무너진 교회를 세워나가야 할 사명이 그에게 있었다. 예천교회를 섬기던 1947년, 임학수 목사는 미군정 하에서 정부 수립을 위한 예천군 건국준비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사회적으로 혼란한 시기에 예천지역의 치안과 행정을 맡아 그 책임을 잘 감당했다. 그는 국가·사회적 현안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행동하는 신앙인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임학수 목사는 일제 말엽과 광복이라는 격변기 속에서도 생명을 걸고 하나님의 교회를 지키고 보수(補修)한 신실한 주의 종이었다. 17. 창씨개명(創氏改名)을 하지 않다 일제는 자신의 입맛에 맞는 기독교를 만들기 위해 1939년 9월 신의주에서 열린 조선예수교장로회 제28회 총회에서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 연맹’의 결성을 강요했다. 총회 직후, 각 노회는 지역별 노회지맹을 결성하여 교회의 모든 조직을 국민정신총동원 운동의 추진을 위한 조직으로 탈바꿈시켰다. 경안노회는 1939년 12월 12일, 국민정신총동원 결성식을 강압적으로 가졌다. 이러한 시대 속에서 임학수 목사는 1940년 12월 17일, 경안노회장으로 취임했다. 일제는 1940년 12월 경안노회 시에도 궁성요배, 출전 명령과 장사를 위하여 황국서사낭송, 천황페하 만세 삼창을 하고, 국방헌금과 교회 안에 신사(神祠)를 봉안하는 것을 결의하게 했다. 이러한 강압적인 일제의 기독교 탄압정책은 1945년 해방될 때까지 극에 달했다. 손녀인 임순오 권사는 조부인 임 목사가 당시 경안노회장이었기 때문에 일제에 형식적으로 협조했다고 하면서, 8·15 해방을 맞을 때 임학수 목사는 감옥에 있었다고 증언했다. 일제로부터 해방되기 바로 직전 임학수 목사가 감옥에 간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투옥 이유가 일제의 눈 밖에 났기 때문임에는 틀림이 없다. 또한, 조선총독부는 신사참배, 황국신민서사 암송, 지원병제도 등과 함께 1940년 2월부터 창씨개명을 시행했다. 그러나 임학수 목사는 끝까지 창씨개명을 하지 않았다. 당시 일제가 창씨개명을 위해 가한 압박은 평범한 사람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비록 일제 말엽 어떤 이유로든 임학수 목사가 일제의 정책에 협력한 것은 분명한 오점이지만, 창씨개명을 하지 않고 일제의 강압을 버티며 해방을 맞이했던 것은 뒤늦게라도 올바르게 평가가 이루어지는 것이 마땅하다. ▲일제는 1940년 2월부터 창씨개명을 시행하고, 창씨개명을 하지 않으면 학교에 갈 수도 없고 식량 배급도 받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이러한 강압 속에서도 애국 인사들은 끝내 이를 거부했다. /논문 발췌‧정리=박은숙 기자/ <논문 원본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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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문화예술의전당,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대구·경북지회 회장 기관으로 취임!안동문화예술의전당은 지난 3월 18일 문화체육관광부의 승인을 받아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제9대 신규 임원으로 취임했다.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이하 한문연)의 임원은 7개 지회(서울·인천지회, 경기지회, 강원지회, 대전·세종·충청지회, 대구·경북지회, 부산·울산·경남지회, 호남·제주지회) 총회에서 선출해 문화체육관광부의 승인을 받아서 취임한다. 한문연 임원으로 대구·경북에서는 지회장 기관인 안동문화예술의전당(관장 조병기), 부지회장 기관인 재)달서문화재단 웃는얼굴아트센터(관장 이성욱)가 이사기관이며, 구미문화예술회관(관장 여상법)이 감사기관으로 선출됐다. 한문연 대구·경북지회의 구성은 회장기관인 안동문화예술의전당(관장 조병기), 부회장기관인 대구 웃는얼굴아트센터(관장 이성욱), 경북 구미문화예술회관(관장 여상법)이며, 이사기관으로는 대구오페라하우스, 대구학생문화센터, 대구서구문화회관, 경주예술의전당, 성주문화예술회관, 의성문화회관이다. 감사기관은 재)달성문화재단(대표이사 서정길)로 구성돼 임기는 2020년 3월 18일부터 2023년 3월 17일까지 3년이다. 조한익 대구·경북지회 사무국장(안동문화예술의전당)은 대구·경북지회의 회원기관은 33개 기관이며, 연합회의 사업 추진과 지회 자체 사업추진으로 공연기획, 무대예술, 문화행정 등의 다양한 교류와 연구를 통해 공연장과 예술단체가 상생하는 지역 문화예술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혜경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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