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초기 안동교회 1909년~1952년 예배에 관한 연구(5)김 승 학 신학과 교수/기독교교육학 안동교회 담임목사 목차 서론 1. 김영옥 목사(초대) 시대의 예배 2. 이대영(2대)·정재순 목사(3대) 시대의 예배 3. 박상동(4대)·임학수(5대)·김영옥 목사(6대) 시대의 예배 4. 김광현 목사(7대) 시대의 예배 결론 3. 박상동(4대)·임학수(5대)·김영옥(6대) 시대의 예배: 1925년~1942년 (1) 4년간의 일본 고베신학교에서의 공부를 마치고 1925년 7월 안동교회 4대 담임교역자로 부임한 박상동 목사는 평양신학교에서 1년 동안 별신학과정 후 목사안수를 받았다. 고베신학교는 미국 장로교 선교사들이 운영한 신학교로 평양신학교의 교과 과정과 흡사했다. 또한 평양신학교에서 1년 과정은 그에게 한국교회의 이해도를 높일 수 있게 했을 것이다. 1924년 평양신학교를 졸업한 임학수 목사는 1929년 1월, 안동교회 제5대 담임목사로 부임했다. 박상동 목사, 임학수 목사와 김영옥 목사는 모두 평양신학교 출신으로 장로교 예배 신학을 벗어난 적이 없으며, 장로교회를 꾸준히 섬긴 목회자들이다. 당시 여러 교회의 예배순서를 비교 분석한 1930년대 예배의 주된 특징은 다음과 같다. 1)주악이나 성악으로 시작하던 미국 교회형의 주일 예배 순서로부터 점차 묵도를 첫 순서로 소개하기 시작하였다. 묵도는 한국적 예배의 특징이 되었다. 2)기도순서가 다양해지면서 예배의 앞부분에서 공동기도의 성격을 띠던 기도가 평신도가 담당하는 대표기도로 변하였다. 3)설교중심의 예배가 정착되면서 헌금과 광고가 설교 앞부분에 위치하였다. 1) 주일 오전예배 1922년 예배 모범은 선교 50주년을 기념하는 1934년, 약간의 개정을 거친 대한예수교장로회 헌법에도 거의 동일하게 계속되었다. 그러나 1934년에 개정된 대한예수교장로회 헌법의 예배 모범에도 주일 예배의 순서는 소개되지 않는다. 1930년대 주일 예배를 소개하는 자료로는 마포삼열 선교사가 제안한 예배 순서에 기초한 1932년의 새문안교회의 주일 예배 순서와 곽안련 선교사의 예배 순서와 비슷한 예전적인 형식을 가진 1934년 소열도(T. S. Soltau)에 의해 소개된 주일 예배 순서가 있다. 1932년 새문안교회의 주일 오전 예배순서는 다음과 같다: 예배사→찬송→기도(장로 송순명)→시편(1편)→성경봉독(장로 송순명)→찬송(성가대)→설교(목사 차재명)→기도(목사 차재명)→연보와 기도→광고→찬송→축복기도. 또한 1935년 1월 13일(주일) 정오 12시에 있었던 평양 장대현교회의 주일 오전 예배 순서는 다음과 같다: 주악(박요한)→찬송(149장)→기도(윤칠삼)→성경(마21:28~32)→광고→헌금(주악)→기도(변인화)→찬양(성가대)→설교(두아들, 남궁혁)→기도(남궁혁)→찬송(1장, 일동)→축복(채필근)→송영. 이 시대 예배는 전주로 시작하여 후주로 끝나는 것을 특징으로 하고 있는데, 새문안교회나 장대현교회는 이전과 는 다르게 이 순서를 포함하고 있다. 전주와 후주는 예배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신호역할을 했다. 전주 후에는 인도자의 예배의 말씀이 따른다. 그리고 예배의 말씀과 축도는 분명한 구두로 예배의 시작과 마지막을 선언하는 역할을 했다. 특히 성가대의 중요성이 대두되었다. 성경 봉독과 설교 사이에 성가대의 찬양이 들어가고 설교 후에 설교자의 기도가 따르는 것이 장로교 예배의 특징인데, 1930년대에 접어들면서 주일 오전 예배의 경우 비예전적 형식을 탈피하고 본래 장로교회의 예배 형식을 회복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1930년대에 접어들면서 곽안련 선교사가 1920년대 초에 제안한 예전적인 예배 형식이 일정 부분 개 교회에 반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1930년대의 주일 오전 예배 순서는 마포삼열 선교사가 제안한 간단한 구도자적 예배 순서는 감소하고, 보다 예전적인 예배 형식이 한국 장로교회에 자리잡아 가고 있었다. 안동교회의 경우 1920년대부터 1952년까지 안동 성소병원의 간호부장으로 봉사한 사은라(E. J. Sharrocks) 선교사에 의해 1928년 1월, 최초로 성가대를 조직했다. 예배가 성가대의 주악으로 시작하고 마칠 뿐 아니라 성가대의 찬양 순서를 포함한 1930년대 주일 오전 예배의 조건을 안동교회가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이전의 집회 형식의 예배에서 예전 요소를 갖춘 평양 장대현교회의 예배형식으로의 전환이 보다 용이했을 것이다. 즉 1930년대 안동교회의 주일 오전예배는 앞서 언급한 평양 장대현교회 예배 순서와 비슷한 형식으로 예배드렸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2) 특별예배 1943년 12월 17일(월) 오후 7시 선교 50주년을 맞이하며 안동교회에서 회집하여 희년 기념 예식을 가졌는데, 순서는 다음과 같다: 찬송→기도→(임학수 목사)→성경(이사야 6:13, 장사성 목사)→주악과 찬양(안동교회 찬양대)→설교(권찬영 선교사)→표창→교회 약사(서화선 목사)→기념사(김영옥 목사)→축사(내빈 주기철 목사, 목사대표 김인옥, 장로 대표 김익현, 전도사 대표 황영규)→찬송(1장)→축도(강성직 목사). 1934년 10월 21일(주일) 선교 50주년을 맞이하여 대구에서는 희년 감사 예배를 드렸는데, 주일에 가진 예배 순서는 다음과 같다: 찬송(137장)→기도→성경(최재화 목사)→찬양(배성야 학생)→연보→광고→찬양(희도 학생)→강도(길선주 목사)→찬송(1장)→축도. /논문 발췌‧정리=박은숙 기자/ <논문 원본 www.gbhana.com>
-
초기 안동교회1909년~1952년 예배에 관한 연구(4)김 승 학 신학과 교수/기독교교육학 안동교회 담임목사 목차 서론 1. 김영옥 목사(초대) 시대의 예배 2. 이대영(2대)·정재순 목사(3대) 시대의 예배 3. 박상동(4대)·임학수(5대)·김영옥 목사(6대) 시대의 예배 4. 김광현 목사(7대) 시대의 예배 결론 2. 이대영(2대)·정재순 목사(3대) 시대의 예배: 1921년~1925년 초대 김영옥 목사가 사임한 이후 1921년 2월, 안동교회 2대 담임으로 부임한 이대영 목사는 1년 정도 시무하다가 총회 전도국으로부터 파송선교사로 부름을 받고 중국 산동성으로 출발했다. 이대영 목사가 시무한 기간은 1년밖에 되지 않아 새로운 예배형식을 기대하기에는 무리라고 할 수 있다. 3대 담임으로 부임한 정재순 목사는 약 3년 동안 시무했는데, 그가 특별히 관심을 기울인 사역은 전도 사역이었기 때문에 이전의 예배형식과 내용에 있어서 큰 변화는 없었을 것으로 조심스럽게 추측해 볼 수 있다. 참고로 이대영 목사와 정재순 목사는 모두 평양신학교 출신이다. 1) 주일 오전예배 1902년 내한한 곽안련 선교사는 1908년부터 평양신학교에서 교수 사역을 시작했다. 특히 1916년에는 실천신학 학과장으로 설교학, 설교실재, 예배모범, 목회학, 목회실천 등의 과목을 개설하여 실천신학의 분야를 넓힌 실천신학자였다. 따라서 그가 한국 장로교 예배의 형식과 내용 등에 준 영향은 말할 수 없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마포 삼열 선교사가 제안한 집회형식의 예배를 청산하고 예배신학에 근거한 예배를 소원하고 있었다. 특히 1919년에 곽안련 선교사는 그의 저서 『목사지법』에서 예배순서의 집례를 평신도가 아닌 목사가 주도할 것을 제안했다. 또한, 한국장로교회는 1922년에 『예배규범』(Directory of Worship)을 출판하였는데 곽안련은 세밀한 예배지침 사항도 제시했다. 곽안련은 다음과 같은 예배순서를 제시하고 있다. ① 예배는 무리들이 “하나님 앞에 가까이 할 때 마땅히 마음을 안돈케 하기” 위하여 예배의 선언이나 예배의 부름 또는 예배의 기원과 같은 짧은 기도로 시작하라. 또는 입례송과 같은 찬송으로 시작하는 것도 가하다. ② 칼빈이나 루터가 사용했던 순서처럼 죄 고백의 순서를 가져라. ③ 성경봉독을 하라. ④ 사도신경으로 공동체의 신앙을 고백하는 것이 기본이나 그 교회가 만든 신앙고백서를 함께 읽을 수 있다. ⑤ 공기도를 하라. ⑥ 찬송이 기도와 강도에 합하도록 택하라. ⑦ 봉헌순서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자세와 준비를 강조하면서 여기서 십일조도 언급되고 있다. ⑧ 봉헌 전후에 봉헌기도를 하라. ⑨ 광고는 예배순서는 아니며, 가급적 간결하게 하고 구두로 할수 있으나 광고판이나 인쇄물로 할 것을 권하고 있다. ⑩ 강도(講道), 즉 설교로 30분 내에 간결하게 끝내라. ⑪ 안수 축복(축도)으로 예배를 마쳐라. 곽안련이 제시한 예배순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총설(성경요절이나 기도나 찬송)→자복(시51;32;60;38;102;130;143)→찬송(합창)→예정된 성경랑독→신경(사도신경이나 본교회 신경, 십계명)→찬송(합창이나 별찬송)→강도에 관한 성경랑독→공기도→찬송(합창이나 별찬송)→연보와 연보에 관한 기도→광고→찬송(합창이나 별찬송)→강도→강도 후 기도→찬송(제 1, 2, 3장 중에서)→안수축복→묵상기도(앉은 채로). 그는 서양악기들을 소개하면서 거문고와 같은 한국악기도 사용할 것을 권장하고, 한국 전통 리듬 찬송들을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유일하게 금지한 악기는 징과 드럼같이 불협화음을 일으킨다고 생각한 타악기였다. 그러나 곽안련이 소개한 예배 순서가 실제적으로 지역교회들의 주일예배에 널리 사용되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특히 1920년대 예배형식과 순서는 1922년에 조선예수교장로회 제11회 총회에서 결의된 헌법의 예배모범에 적지않는 영향을 받았다. 이 예배모범은 미남장로교회의 예배모범을 번역한 것으로 비예전적 성격이 강했다. 많은 교회들은 마포삼열 선교사의 집회형식의 예배순서에 따라 주일 예배를 드렸고, 비교적 복잡한 예배형식을 갖고 있던 곽안련의 예배갱신은 결실을 맺지 못했다고 예배학자들은 평한다. 안동교회 2대 담임인 이대영 목사와 3대 담임인 정재순 목사는 평양신학교에서 곽안련 선교사에게 예배신학을 배웠지만, 당시 장로교 예배를 주도하고 있던 마포 삼열 선교사가 제안한 예배형식에서 벗어나기 힘들었을 것이다. 즉 이대영 목사와 정재순 목사가 시무한 1920년대 초와 중엽까지는 이들이 시무하기 이전의 예배형식과 내용도 거의 동일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2) 주일오후예배 안동교회가 창립된 후 10시 30분, 주일오전예배를 마친 후 점심식사 시간을 갖고 곧 이어 오후예배를 드렸을 가능성을 이미 언급한 바 있다. 즉 1920년대 안동교회는 주일 저녁예배가 아니라 주일오후예배를 드렸던 것이다. 그러나 전국의 모든 교회가 주일 오후예배를 드린 것은 아닌 것 같다. 곽안련은 주일 오후예배가 아니라 주일 저녁예배를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곽안련은 주일 저녁예배를 ‘주일저녁 예배회(禮拜會)’라고 불렀다. 곽안련은 신선한 도전과 은혜를 경험할 수 있도록 목사들이 과감하게 주일저녁예배 순서를 변경할 것을 제안했다. 특히 30분 정도의 찬양을 강조함으로써 주일 오후 혹은 저녁에 드리는 예배를 찬양예배로 명명하게 했다고 할 수 있다. 1921년 2월 5일 전국 최초로 안동교회가 공인한 기독청년면려회는 주일오후예배 시간에 시대에 맞는 주제에 관한 토론회와 강연회를 개최했다. 이처럼 안동교회의 주일오후예배는 곽안련 선교사의 제안대로 다양한 순서를 포함했다. 곽안련은 주일저녁예배를 제안했지만 안동교회는 1920년대 초와 중엽에 여전히 오후시간에 예배를 드렸던 것으로 추측된다. 3) 수요예배 곽안련 선교사는 주일 오전과 저녁예배는 강도회(講道會), 즉 설교가 필요한 예배이지만 그 외의 모임은 공부회나 기도회로 정의했다. 그는 이러한 기도회의 중요성을 주장하면서 유익한 기도를 할 수 있는 14가지의 지침을 제시한다. 그 가운데 몇 가지를 소개하면 공기도자는 3분을 넘기지 말고, 전체 기도회 시간은 1시간으로 하며, 기도회의 인도는 목사가 단독으로 하지 말고, 장로와 집사들이 인도하는 방안도 검토할 것을 권면했다. 기도회가 잘 운영될 때 교회는 살아움직이는 공동체로서 활성화될 것이며, 교우들이 서로 화목하고 긍정적인 공동체로 변할 것을 강조했다. 삼일기도회는 1시간 내에서 마포삼열 선교사가 제안한 예배형식과 순서, 즉 찬송→기도→찬송→성경→강도→찬송의 틀을 그대로 유지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1920년대 중반까지 안동교회는 곽안련 선교사가 삼일기도회 혹은 수요기도회로 부르지 않고 여전히 수요예배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논문 발췌‧정리=박은숙 기자/ <논문 원본 www.gbhana.com>
-
경주시, 시내버스노사와 APEC경주유치 홍보 업무협약 체결경주시가 오는 2025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유치를 위한 다양한 홍보 전략을 펼치고 있는 가운데, 이번에는 지역 시내버스 노사와 손잡고 유치 분위기 확산에 나섰다. 경주시는 12일 시청 대외협력실에서 주낙영 경주시장과 유기정 ㈜새천년미소 대표이사, 김동규 새천년미소노동조합장, 곽휘주 새천년연합노동조합장 등 지역 유일의 시내버스 운영사인 ㈜새천년미소 노사대표자들과 ‘2025 APEC 정상회의 경주 유치를 위한 선진시민의식 캠페인 및 홍보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지난 7일 택시업계에 이어 버스업계와의 이번 업무협약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국내외 방문객에게 친절하고 긍정적인 인상을 심어 줌으로써 ‘2025 APEC 정상회의’ 유치 도시로서 경쟁력을 제고하고 유치 분위기 확산 및 성공적 유치를 위한 대내외 의지를 표명하고자 마련됐다. 협약 주요내용은 △유치 캠페인 및 공동 홍보 협력체계 구축 △친철·청결·신용·안전 등 관광선진화 4대 실천운동 전개 △국내외 관광객 대상 유치 분위기 확산 △교통 법 질서 확립 및 고객 중심 서비스 문화 정착 등으로 APEC 유치도시 결정시까지 유치 활동에 협력하기로 했다. 시는 이번 협약을 통해 2025 APEC 경주 유치 홍보 스티커 2종을 제작해 전달했으며, ㈜새천년미소는 이를 시내버스 내부에 부착해 APEC 정상회의 유치 홍보에 활용하며 적극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유기정 ㈜새천년미소 대표는 “2025 APEC 정상회의를 경주에 유치해 세계적인 관광도시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사 모두가 함께 노력하겠다”며, “경주시와 협업을 통해 유치 홍보활동은 물론 편안하고 안전한 서비스 제공으로 정상회의 개최에 손색없는 도시로서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고 전했다. 주낙영 경주시장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시민과 관광객의 손과 발이 되어 주는 대중교통 운수종사자들에게 항상 감사드린다”며 “경주가 한 단계 더 도약하는 일대 전환점이 될 APEC 정상회의 유치를 위해 홍보분야의 협력뿐 아니라 시민의 뜻과 의지를 모 으는 데도 큰 역할을 해 주시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
중독회복자 독거세대 생일 지원···긍정적 변화 이끌어구미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센터장 조정민)는 6일부터 중독 폐해 없는 건강한 삶을 위해 중독질환에서 회복 중인 독거 세대의 생일지원 프로그램인 「다온: 다 함께 온 마음을 전하는」을 시작했다. 「다온」은 매월 1회 생일자 축하 파티, 선물 전달식, 기념사진 촬영, 소감 나누기로 진행되며, 생일 파티 선물과 음식 등은 지역사회의 후원을 받아 제공한다. 프로그램을 통해 중독질환에서 회복 중인 회복자들에게 정서 지원을 제공해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자신감을 회복하고 일상생활에 대한 긍정적인 변화와 건강한 사회복귀를 도모하고자 마련됐다. 참여한 회복자는 “아무도 생일을 챙겨주는 사람이 없는데 이렇게 챙겨줘 고맙고, 나도 집단의 구성원이라는 소속감을 느끼게 됐다. 앞으로 음주를 자제하고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하겠다”고 했다. 구미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이음센터)는 4대 중독(알코올, 도박, 인터넷·게임, 약물) 대상자 및 가족에게 상담·치료·재활·일상회복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중독 문제없는 안전한 사회환경 조성을 위해 예방교육, 캠페인 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자세한 사항은 구미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이음센터 ☎054-474-9791~2, 누리집(http://www.gmaddiction.or.kr/)으로 문의하면 된다.
-
기독교 박해지수 ‘15위’ ‘몰디브’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몰디브(Maldives)는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인구밀도 중 하나를 가지며 이는 특히 주요 섬인 말레에서 더 그러하다. 긴밀히 맺어진 동질적인 공동체는 종교를 포함해 이들 구성원들의 모든 일탈에 대한 자연스러운 감시인 역할을 한다. 기독교로의 개종은 이슬람교 지도자들 또는 당국들에 보고되는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 몰디브인들은 대부분 관광 부문에서 일하며 인도와 스리랑카 출신의 이주민 기독교인들은 면밀히 감시를 당한다. 이것은 예배를 위해 모이는 것을 아주 어렵게 만든다. 박해와 차별의 주된 요인은? 이슬람의 압박 : 이슬람 정부는 여전히 스스로를 이슬람 보호자로 보고 몰디브인들이 개종하는 것을 금한다. 공식적으로 몰디브인 기독교인들은 없고 이주민 기독교인들만 존재한다. 이슬람부와 국방부의 공식 정책은 배교자들은 절대로 용인될 수 없고, 정부는 절대로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을 거라는 것이다. 독재 정치 : 이슬람이 정치적 자유를 제한하기 위한 정당성으로 이용되고 있기 때문에 이슬람의 탄압은 독재정치와 혼합되어 있다. ‘종교의 보호’가 ‘이슬람의 보호’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에 종교의 자유는 계속해서 제한된다. 남성과 여성의 박해 상황 차이 여성: 이슬람에 대한 엄격한 해석을 고려할 때 기독교인 남성들과 여성들은 비밀신자가 되어야 한다. 만약 여성 또는 소녀가 기독교인인 것이 발각되면 그녀를 이슬람으로 되돌리기 위한 강제결혼, 폭력, 위협 등이 가해진다. 성적, 신체적 학대는 기독교 여성들에 대한 종교박해의 수단으로 이용된다. 남성: 몰디브인은 비밀 기독교 신자인 것이 발각되면 상해, 괴롭힘, 위협, 정부에 의한 투옥을 견뎌야 할 가능성이 있다. 이와 같은 압박 때문에 많은 이들이 형편이 되면 나라를 떠나 해외에 살기를 선택한다. (한국오픈도어 제공)
-
초기 안동교회1909년~1952년 예배에 관한 연구(3)김 승 학 신학과 교수/기독교교육학 안동교회 담임목사 목차 서론 1. 김영옥 목사(초대) 시대의 예배 2. 이대영(2대)·정재순 목사(3대) 시대의 예배 3. 박상동(4대)·임학수(5대)·김영옥 목사(6대) 시대의 예배 4. 김광현 목사(7대) 시대의 예배 결론 1. 김영옥 목사(초대) 시대의 예배 / 1909년~1920년 말(3) 3) 수요예배 수요예배에 관해 처음으로 기록된 1917년 2월 22일 당회록에는 수요저녁예배라는 명칭으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수요저녁예배에는 설교만 할 것이 아니고 모든 교인이 신구약성경 좋은 구절을 택하여 암송도 하고 통독도 하기로 결정하다.” 안동교회의 수요저녁예배가 정확하게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1917년에 안동교회는 수요저녁예배를 가졌는데, 수요저녁예배는 주일오전예배에 비해 보다 간단했다. 따라서 1910년대 안동교회의 수요예배는 마포삼열 선교사가 제안한 예배순서, 즉 찬송→기도→찬송→성경→강도→찬송의 틀을 그대로 유지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4) 새벽기도회 길선주 목사의 특별집회 기간 중에 새벽기도회가 실시되었다. 평양 대부흥운동의 결과 한국교회의 전통으로 길선주 목사에 의해 확산된 새벽기도운동이다. 이후 새벽기도회는 한국교회 공예배의 하나로 정착되었다. 사실 평양 대부흥 이전에도 새벽기도회로 모이는 교회가 있었다. 한국 새벽기도에 관한 기록 중에서 1903년에 로스 선교사의 글에서 “왕 목사(현지인 목사)는 새벽에 일어나 손자들과 함께 새벽기도를 드렸다”라는 기록과 만주에서 세례를 받은 백홍준이 새문안교회에 출석하고 있을 때 매일 새벽기도를 가졌다. 하지만 새벽기도회는 대부흥 이후 전국 교회로 확산되었다. 기독교에 입문하기 전 도교와 선불교에서 새벽기도를 경험한 적이 있던 길선주 목사는 한국교회에 새벽기도회를 도입하였다. 길선주 목사의 집회가 시작된 다음 날 11월 14일(월) 오월번 선교사가 새벽 6시 새벽기도회(Sunrise prayer meeting)에 참석했음을 새디(Sadie)의 다이어리는 기록한다. 부흥사경회 이전까지 안동교회가 새벽기도회로 모였다는 기록은 새디의 다이어리에서 찾아볼 수 없다. 또한, 집회가 끝난 후 새벽기도회가 지속되었다는 기록 역시 발견되지 않는다. 따라서 길선주 목사를 통해 안동교회에 새벽기도회가 소개되어 길 목사 집회 기간 중에 한시적으로 운영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5) 외국인예배 외국인예배는 선교사와 그 가족들이 드린 예배였다. 새디 선교사가 안동에 도착해서 함께 동역하던 권찬영 선교사와 별리추 선교사는 모두 독신이었다. 오월번, 새디 선교사 부부만 자녀를 둔 가정이었다. 따라서 안동에서의 외국인 예배는 자연스럽게 오월번 선교사 사택에서 이루어졌을 것이다. 오월번 선교사 가족이 안동에 도착한 지 1달 후인 7월 3일, 공식적으로 감격적인 첫 외국인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 새디의 다이어리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4시 30분을 외국인 영어 예배시간으로 기록하고 있다. 오후 예배를 마치고 선교사들이 오월번 선교사 사택에서 식사한 기록도 여러 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6) 주일학교 성경공부 안동교회 80년사에 따르면 주일학교는 1914년 2월에 준공된 2층 목조 함석지붕 예배당에서 아침 9시 예배를 시작하여 1시간 동안 예배를 드린 후 계속해서 분반(分班)하여 지정된 교사에 의해 성경공부를 계속했다. 남장년부에는 청·장·노년의 광범위한 연령층이 함께 모여 성경공부를 했으며, 공부시간은 주일 아침 유년부(오늘의 초등학생부)의 예배와 성경공부가 끝난 뒤 곧바로 10~11시부터 예배당을 사용하였다. 성경공부교재는 아동부와 마찬가지로 선교본부로부터 가져온 교재 원본을 등사하여 담임목사와 선교사들이 교사들에게 가르친 후에 학생들과 분반공부를 하게 하였다. 여장년부는 세 부서 중에서 가장 활성화된 부서였으며, 유년부 예배가 끝난 후 남장년부와 동일한 시간에 휘장으로 분리된 예배당에서 운영되었다. 7) 예배당의 구조와 예배모습 오월번 선교사의 부인인 새디 선교사의 1910년 9월 23일 일기에는 ‘ㄱ’자 예배당 부지를 구입하여 대지를 고르게 했음을 기록한다. 당시 안동교회 성도들은 예배당 건축을 위한 헌금을 했다. 에비여사에 따르면 1910년 10월 9일 주일 오후 예배 시 16칸 ‘ㄱ’ 예배당 건축을 위해 특별헌금을 했다고 기록한다. 16칸 예배당은 30평 가까운 공간으로 결코 작지 않은 규모였다. 남녀유별의 유교적 풍습에 따라 남자와 여자의 출입 동선을 분리해야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ㄱ’자 예배당으로 건축되었다. 또한, 50평 규모의 안동교회 두 번째 신축예배당은 1913년 11월에 공사를 착수하여 1914년 2월에 준공되었다. 안동교회의 두 번째 예배당인 2층 목조 함석지붕 예배당은 가운데 남녀 분리를 위한 휘장이 존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기 예배는 의자 없이 마루로 된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렸다. 기도할 때는 모두 꿇어앉아 머리를 땅에 대고 절하는 형식을 취했다. 당시 풍속에 따라 휘장(Curtain)으로 남녀를 분리했다. 일반적으로 강대상을 바라보며 오른쪽은 여성이, 남성은 왼쪽을 사용하였다. /논문 발췌‧정리=박은숙 기자/ <논문 원본 www.gbhana.com>
-
도민 73%, 자치경찰이 안전한 경상북도 만드는데 기여···경북자치경찰위원회(위원장 이순동)는 4월 25일부터 6월 14일까지 경북도민과 경찰공무원 3,7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자치경찰 도민체감 인지도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설문조사는 자치경찰제 시행 2주년을 맞아 자치경찰제에 대한 도민 인식과 도민이 필요한 치안 정책 발굴을 목적으로 △자치경찰제 인식 △자치경찰 기능별 활동 △향후 방향성 등 총 26개 문항으로 QR온라인 설문조사·대면조사와 전화응답을 활용한 방식으로 이뤄졌다. 조사에 참여한 도민은 여성이 51.4%로 남성 48.6%보다 많았으며, 연령대는 30대(30.6%), 40대(23.1%), 10~20대(18.3%)순으로 참여했다. 먼저 도민들은 ‘지방자치단체인 경북도가 경찰에 대한 책임과 권한을 행사해야 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70% 이상이 긍정으로 응답해 자치경찰 이원화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치경찰제가 지역의 치안향상에 도움이 되었느냐?’는 질문에서는 73.6%가 도움이 되었고 응답했다. 반면 현직 경찰공무원들은 자치경찰제 도입 만족도(만족 23.5%), 지역 치안향상 도움도(긍정 17.7%), 자치경찰 이원화 생각(찬성 39.4%)에 전반적으로 낮게 평가했다. ‘자치경찰제의 기여효과’에 대한 응답으로는 지역실정에 적합한 치안활동 및 주민보호가 54.1%, 생활 속 긴급 사건·사고 신속 대응 37.1%, 경찰-지역 주민 간의 협업참여 소통 36.5% 순으로 높게 평가했다. ‘분야별 치안 안전도 인식’ 조사에서는 △생활안전 90.8%, △사회적 약자 보호 82.7%, △교통안전 84%의 응답자가 안전하다고 답변해 경상북도 치안이 전반적으로 양호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세부적으로 △생활안전 분야에서는 주민참여가 필요한 치안활동으로 ‘범죄취약지 환경 개선 참여’, 생활안전을 위해 강화해야 할 사업으로 ‘시기별·테마별 범죄예방 지역안전 순찰 강화’로 응답이 높게 나와 경찰과 주민 합동순찰을 통해 범죄 취약지를 발굴하고 범죄예방환경 시설을 구축해 나가는 방향으로 정책을 수립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사회적 약자 보호 분야에서 우리 지역사회에서 우선적으로 보호가 필요한 대상으로는 ‘아동’이 50.9%로 과반수를 차지했으며, 가장 시급하게 근절해야 할 사회적 약자 대상 범죄로는 아동학대 및 유기 등 아동 범죄 31.3%, 학교폭력 등 청소년 범죄 30.4% 순으로 응답이 나왔다. 사회적 약자 보호를 위해 가장 필요한 자치경찰 활동은 ‘가해자 재범 방지 및 엄격한 처벌’, 강화해야 할 사업으로는 ‘사회적 약자 학대 예방 및 피해자 보호지원’ 응답이 가장 높게 나왔다. △교통안전 분야에서 가장 위협이 되는 요소는 ‘음주·무면허 운전’이 53.7%로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강화해야 할 사업에서도 음주운전 및 교통위반 지도단속강화가 65.4%로 가장 높게 나와 도민들은 음주운전과 교통위반단속을 강화하기를 희망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자치경찰위원회의 향후 지향점’으로는 지역 치안문제 발굴 및 맞춤형 시책 개발 32.2%, 치안 인프라 확충을 위한 예산 확보 20.9% 순으로 나타났다. 이에 도민의 의견을 청취하고 지역특성에 맞는 치안문제를 발굴해 지역·연령대별 차별화된 맞춤형 정책을 개발하는 방향으로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한편, 도민들의 자치경찰제 인식에 대한 조사에서는 39.1%만이 알고 있다고 응답해 자치경찰제에 대한 인지도가 낮은 것으로 나타나 위원회에서는 다각적인 홍보 전략을 모색하고 추진하고 있다. 이순동 경북자치경찰위원장은 “이번 설문조사를 통해 도민들의 자치경찰에 대한 인식과 수요를 잘 파악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도민들의 자치경찰제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남에 따라 자치경찰제 이원화는 반드시 시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며, “앞으로도 도민들의 목소리를 잘 경청하고 도민이 함께 참여하는 치안서비스 발굴에 최선을 다 하겠다”고 말했다.
-
예천군 집중호우 피해지역 ‘농기계 전문가’ 긴급 투입예천군농업기술센터는 경북 농기계 전문가 38명이 25일부터 26일까지 이틀간 관내 집중호우 피해지역의 복구 작업을 지원했다고 밝혔다. 농기계 전문가는 경상북도 농업기술원 및 시군농업기술센터 농업기계 안전전문관과 시군 농촌지도자(농기계운전숙련자) 38명으로 구성되어 있고, 화물트럭 18대, 농용운반차 4대, 굴착기 15대, 스키드로더 5대 등을 투입해 신속한 피해복구 활동을 전개했다. 이번 작업에서 유실 및 침수 피해 농경지 복구와 함께 토사로 인해 매몰된 배수로와 진입로를 정비하고, 2차 작업으로 8월 초 농촌진흥청 주관으로 피해 농기계 수리가 진행될 예정이다. 성백경 농업기술센터소장은 “빠른 피해복구를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은 경상북도 농기계 전문가들께 감사드리며, 집중호우 피해지역 회복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심해지는 인도의 기독교 박해한국교회언론회(대표:이억주 목사, 언론회)가 ‘인도의 기독교 박해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북동부의 마니푸르주에서 수많은 교회가 불탔다’는 제목의 논평을 7일 발표했다. 이번 논평은 최근 인도 북동부 마니푸르주에서 일어난 대대적인 기독교 박해에 대한 것이다. 이 지역에서는 주로 산간 지역에 사는 기독교공동체를 공격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교회 3백여 곳이 불타고 주택 4천여 채가 소실됐다. 또 1백 명 이상이 살해당하고 5만 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했다고 한다. 한 성도는 목이 잘린 채 교회 담장에 걸리는 악마적 현상도 일어나 공포와 분노를 사고 있다. 언론회는 “마니푸르주는 수십 년 사이 힌두교인 수가 감소하고 반대로 기독교인 수는 늘어나, 전체적으로 종교인구 비율이 힌두교와 기독교가 각각 41%를 차지한다”며 “이번 마니푸르주 상황은 주 정부와 인도 정부가 주도하고 있다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기독교인들을 이 지역에서 몰아내기 위해 지난 1월부터 탄압이 시작됐고, 5월 3일 평화 집회가 열리는 곳에 폭력자들이 난입해 아수라장을 만들면서 본격 탄압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언론회는 “이런 만행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 종교와 권력의 이름으로 타 종교를 탄압하는 것은 신(神)의 저주를 받을 일”이라며 “인도정부는 이번 일을 신속하게 처리하고 폭력과 가해자들에 대한 엄벌로써,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 “세계 모든 나라들도 이런 현상에 대해 인도적·인권적, 종교와 신체의 자유에 입각해 모든 조치를 내려야 한다. 우리나라도 이런 인권유린, 폭력, 살해 상황에 침묵하지 말아야 한다”고 소리를 높였다. 이어 “한국교회도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도울 것이다. 그리고 세계 교회와 함께 기독교 박해를 멈추도록 힘써야 한다. 종교의 이름으로 다른 종교를 핍박하고 박해하는 것은 야만적이고 비문명적이며, 반인륜적 행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더불어 “인도뿐 아니라 전 세계, 특히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 국가, 이슬람 국가에서 광범위하게 일어나는 반기독교 활동에 대해 한국교회는 관심을 가지고 기도하며, 영적 전쟁을 수행해야 한다”고 전했다.
-
초기 안동교회(1909년~1952년) 예배에 관한 연구(2)김 승 학 신학과 교수/기독교교육학 안동교회 담임목사 목차 서론 1. 김영옥 목사(초대) 시대의 예배 2. 이대영(2대)·정재순 목사(3대) 시대의 예배 3. 박상동(4대)·임학수(5대)·김영옥 목사(6대) 시대의 예배 4. 김광현 목사(7대) 시대의 예배 결론 1. 김영옥 목사(초대) 시대의 예배 / 1909년~1920년 말(2) 1) 예배형식과 순서(2) 선교 초기 전국 곳곳에 설립된 교회의 예배를 선교사들이 직접 인도할 여유가 없었고, 한국어가 서투른 선교사들이 예배 전체를 인도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선교사들은 함께 동역하는 조사들을 교육시켜 예배를 인도하게 했다. 당시 한국인 평신도가 인도한 예배는 3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예배 순서를 가급적 단순하게 구성하고 진행함으로써 예전적 요소가 충분히 포함되지 않았다. 둘째, 주제를 논리적으로 전개하는 설교가 선교사들에게 쉽지 않았기 때문에 성경공부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셋째, 지역에 산재한 교회들이 연합하여 예배를 드렸다. 1887년에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장로교회인 새문안교회의 1890~1900년 초 주일 오전예배는 10:30에 시작해 11:30에 마쳤다. 예배 순서는 찬송→기도→성경봉독→전도설교→기도→봉헌→찬송 등의 순서로 매우 간단했다. 이 순서는 마포 삼열 선교사가 제안한 예배순서와도 흡사한데, 마포 삼열 선교사의 제안은 찬송→기도→성서봉독→회중의 기도→찬송→성서교훈→기도→봉헌→찬송의 순서로, 찬송으로 시작하여 찬송으로 끝났다. 안동교회는 1909년 8월 8일(주일) 첫 예배를 드렸는데 매서 김병우를 포함하여 8명이 첫 예배에 참석했다. 첫 예배를 인도한 사람은 안동의 기독서원을 운영하고 관리하던 매서인 김병우였다. 안동교회의 주일 오전예배, 주일 오후예배, 외국인영어예배, 또한 새벽기도회의 시간과 장소는 오월번 선교사의 부인 새디(Sadie Welbon) 선교사와 안동주재 선교사들의 선교보고와 편지 등을 통해 어느 정도 추측이 가능하지만, 예배 순서와 내용을 알 수 있는 직접적인 자료는 1900년대처럼 거의 전무하다. 다만 당시 장로교 선교사가 활동했던 지역의 예배 형식과 내용은 거의 유사하기 때문에 앞서 언급한 마포 삼열 선교사가 제안한 예배 순서가 초기 안동교회의 예배 순서였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또 이 시기에는 1911년 가을, 안동교회 초대 담임으로 부임한 김영옥 목사가 안동교회 예배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도 있다. 특히 김영옥은 평양신학교 교수로 사역한 곽안련 선교사에게 사사 받았기 때문에 예배 신학 및 예배내용과 순서 등에 있어서 곽 선교사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2) 주일 오전예배 및 오후예배 안동교회의 첫 예배의 형태와 시간에 관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새디 선교사의 다이어리와 다른 선교사의 선교편지, 선교보고에 따르면 주일 오전예배, 오후예배, 외국인예배가 존재했다. 특히 주일 오전예배는 10시 30분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사료된다. 또 주일 외국인예배, 즉 선교사와 가족들을 위한 영어예배 시작 시간이 오후 4시 혹은 4시 30분으로 추론되는 바, 주일 오후예배는 오전예배를 마치고 점심 식사 후인 1시부터 4시 30분 사이일 것으로 추측된다. 주일 오전예배의 정확한 순서도 찾을수는 없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네비우스 선교정책에 따른 예배원칙과 미국 북장로교 출신 선교사가 인도한 예배순서에 따랐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주일 오전예배 시간은 안동교회가 창립된 지 1년이 지나 ‘ㄱ’자 예배당을 신축하고, 1910년 11월 13일(주일)부터 20일(주일)까지 평양 장대현교회 길선주 목사를 초청하여 가진 특별부흥집회 시간에서도 짐작해볼 수 있다. “평일 집회는 오전 10시에 속개되었고, 집회 마지막 날인 20일은 주일로 오전 10시 30분에 시작됐으며 만원을 이루어 예배당이 꽉 찼다”는 기록이 있다. 주일 오후예배 시간의 경우, 당회록은 보다 구체적인 예배시간을 추측하게 한다. 1916년 11월 8일 당회록에 따르면 주일 오후 2시 30분에 세례 7인, 학습 5인에 대한 성례식이 있었다. 그 이후의 당회록에도 성례식은 계속해서 주일 오후 2시 30분에 있었다. 세례식과 성찬식만 별도로 가졌기 보다는 오후예배 시 함께 가졌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1910년대 주일 오후예배시간은 2시 30분으로 적시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논문 발췌‧정리=박은숙 기자/ <논문 원본 www.gbhana.com>
Warning: Illegal string offset 'use' in /home/jane82850/public_html/theme/wide01/mobile/skin/search/basic/search.skin.php on line 138
Warning: Illegal string offset 'skin' in /home/jane82850/public_html/theme/wide01/mobile/skin/search/basic/search.skin.php on line 139
Warning: Illegal string offset 'use' in /home/jane82850/public_html/theme/wide01/mobile/skin/search/basic/search.skin.php on line 138
Warning: Illegal string offset 'skin' in /home/jane82850/public_html/theme/wide01/mobile/skin/search/basic/search.skin.php on line 139
Warning: Illegal string offset 'use' in /home/jane82850/public_html/theme/wide01/mobile/skin/search/basic/search.skin.php on line 138
Warning: Illegal string offset 'skin' in /home/jane82850/public_html/theme/wide01/mobile/skin/search/basic/search.skin.php on line 1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