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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이 더 중요합니다.실천이 더 중요합니다. 천석길 목사 구미남교회 새해 한 주간 동안 <감사나눔의 기적>이라는 책을 함께 읽으면서 그 내용으로 특별 새벽기도회를 했습니다. 모두가 좋아했습니다. 책의 내용이 쉽고 실제적이어서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코로나 펜데믹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참여해서 좋았고, 예년과는 다르게 풍성한 선물을 나눌 수 있어서 더 좋았습니다. 특새(특별 새벽기도회) 후에 많은 분들이 ‘정말 좋았다’ ‘아주 실제적이어서 우리 부부에게 유익한 시간이었다’라는 말씀을 전해 주셨습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연로하신 부모님의 생신에 손주들과 함께 감사한 것 다섯 가지씩을 읽어 드렸는데 아주 흐뭇해 하셨다’ ‘시아버지와 시어머니의 생신에 감사내용 50가지를 적어서 읽어 드리고 그 편지를 생신 선물로 드렸는데 굉장히 흡족해 하셨다’ 등의 내용도 있었습니다.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실제로 소리 내어 읽어 드린다는 것은 어느 정도의 용기(?)가 있어야만 되는 일입니다. ‘그깟 일에 무슨 용기까지나?’라고 반문하실지 모르지만, 가족이나 매일처럼 만나는 잘 아는 사이에는 감사의 표현이 때로는 낯간지럽기 때문입니다. 어느 집에서는 아이들과 함께 가정 예배를 매일 드리고 있었는데 특새 후에는 이틀쯤은 감사 나눔을 해 보니 아이들이 너무나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더구나 코로나의 상황이지만 빼먹지 않고 모이는 목장에서도 감사 나눔을 모임의 초반부에 도입해 보니 분위기가 굉장히 좋아지더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목장도 사람의 모임이니까 자연스럽게 정치에 대해서 흥분을 하거나 거침없이 오르는 부동산과 오르락내리락 하는 주식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분들로 인해서 적잖게 당황하는 일이 있었는데, 감사 나눔을 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덕스럽지 않은 주제는 사라지더라고 했습니다. 전해 주시는 문자와 편지를 읽으면서 참 귀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이지만, 누군가를 가르치기 위한 지식으로 끝내지 않고 자신이 처한 삶의 한복판에서 그것을 실천함으로써 아름다운 열매를 맺었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아는 지식은 남을 판단하는 무기가 될 수 있지만, 그것을 자신에게 적용하고 실천할 때에는 행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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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상대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 천 석 길 목사 구미남교회 특새(특별새벽기도회)의 열기가 교회를 훈훈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움츠려 있지만 우리는 믿음으로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진솔하게 나눔을 하고 서로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조금은 쑥스러웠을 터인데 기꺼이 참여해 주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다시 한번 나누고 싶습니다. 특새에 참석하면서 감사의 마음으로 계란 100판을 선물하신 분이 있어서 마지막 날에는 마치 각본에 있었던 축제처럼 나눌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중간 중간 눈에 뜨이는 유초등부 학생들에게 선물로 나누어 주고 싶었는데, 어디에 있었는지 자꾸만 자꾸만 앞으로 나오는 아이들을 보면서 이렇게나 많이 나왔나 싶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마음으로는 중고등부와 청년들에게는 계란 두 판씩을 품에 안겨 주고 싶었습니다. 특새가 끝난 후 주차부에서 올려 주신 글을 읽으면서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추운 새벽에 안내하시는 집사님들께 다가와서 “감사합니다”, “수고하십니다”라는 인사와 함께 따뜻한 음료수와 샌드위치, 간식을 살며시 가져다주 시더라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마치 사랑의 선물이 내 손에 전달이 되는 듯한 온기가 전해졌습니다. 이런게 성도의 교제이구나 싶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런저런 급한 일로 참석을 완주하지 못한 오겹줄의 교인들 모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는 분이 있어서 또 선물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나누고 나누면서 자꾸만 밀려오는 충만함···. 주는 사람의 마음이 훨씬 더 기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새를 통해 감사 나눔을 배우고, 부모님 생신날에 감사의 편지를 써서 큰 소리를 읽어 드리니 부모님이 너무 좋아하시더라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장성한 아들에게 감사 나눔을 읽어 주고, 남편과 아내에게 감사 나눔을 읽어 주니까 닭살스럽게 표현은 하지 않지만, 귓불이 붉어지더라고 했습니다. 고요한 새벽에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이런저런 일이 있음에도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할 때에 하나님도 우리를 보시면서 눈시울이 붉어지시겠지요? “아들아 딸아, 내가 너의 형편을 다 알고 있단다”라고 말씀하시면서 ···.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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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응답이 없는 그 때에기도의 응답이 없는 그 때에 천석길 목사 구미남교회 새벽기도회에 나오시는 한 분 한 분을 바라보는 습관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나 가정적으로 완벽해 보이는 분은 거의 없어 보입니다. 한결같이 ‘나 이런 기도 제목이 있어요’라고 얼굴에 쓰여 있습니다. 안타까움과 간절함과 처절함이 목사의 눈에는 확연하게 보입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오래도록 기도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상황이 바뀌지 않는 가정들을 보노라면 마음이 더 짠합니다. 저렇게 기도하고 있는데 왜 응답이 없을까? 얼마나 안타까울까? 라는 마음으로 같이 해 봅니다. 책을 읽다 그런 분들이 떠올랐습니다. 간절히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 분들에게 위로가 되겠다 싶은 글이어서 소개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양팔이 짧은 어느 목사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마음을 울리는 슬픈 이야기입니다. 그 목사님은 자기가 어떻게 스스로 옷을 입는 법을 배우게 되었는지 담담하게 들려줍니다. 그가 어렸을 적에 그의 어머니는 항상 그에게 옷을 입혀 주셨답니다. 어머니는 양팔이 없는 아들을 먹이고, 옷을 입히고, 모든 일을 옆에서 돌봐주셨습니다. 그 사랑스러운 어머니가 어느 날, 거실 바닥에 옷을 던져 놓으시더니 “애야, 혼자 입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어린 나이였지만 그에겐 너무나 충격적인 말이었습니다. “엄마! 어떻게 혼자 입을 수 있어? 어떻게 혼자 입으란 말이야!”라며 소리를 쳤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냉정하게 “언제까지 내가 입혀 주겠어? 이제는 너 혼자서 입어야 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이는 “아니야! 나 혼자 못해!”라고 소리 지르며 바닥에 누워 발길질을 하며 엉엉 울었습니다. 방을 나간 엄마를 향해서 “엄마는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거지?”라고 소리 질렀습니다. 아무도 없는 거실에서 결국 그는 옷을 입고 싶다면 스스로 입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몇 시간 동안 애를 써 가며 고생한 끝에 겨우 옷을 입을 수 있었습니다. 한 번 입고 나니 그다음부터는 점점 더 쉬워졌습니다. 그는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그때 어머니가 옆방에서 울고 계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답니다. 참 슬프고도 가슴 저려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침묵이 때로는 우리를 더 사랑하시는 시간일 수 있습니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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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어도 충분합니다.한 사람이어도 충분합니다. 천석길 목사 구미남교회 오래전 신학대학원을 졸업할 즈음의 이야기입니다. 교회를 탐방하는 중에 시골의 작은 교회에 설교할 교역자가 없어서 교인들끼리 예배를 드리는 곳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무도 가지 않는 곳이어서 일 년 가까이 비어 있다는 말을 듣고서 내가 그 교회를 부흥시켜 보리라는 마음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얼떨결에 담임 교역자가 되었습니다. 이사해 보니 열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 있는 작은 교회였기에 당연히 재정은 절대적인 미자립이었으며, 교회로서 해야 할 최소한의 어떤 일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더욱이 새벽기도회에는 유일한 남자 집사님만 나홀로 나오는 그런 기도회를 이른 새벽마다 인도해야 했습니다. 그 집사님도 농번기에는 몸이 너무 피곤해서 때로는 새벽에 결석할 때가 있었으며, 그날은 설교할 일이 없었고, 그런 날이면 새벽기도회는 적당히 일찍 끝내고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 날이 몇 번 반복되면서 묘한 욕심(?)이 생겨나기를 ‘차라리 집사님도 새벽기도회에 안 나왔으면 좋겠다. 그러면 밤이 늦도록 읽고 싶은 책이라도 읽을 텐데…’라는 천박한 욕심이 생겼습니다. (젊은 사역자였으니까 그럴 수 있겠지요···? ㅎㅎ) 그러던 어느 날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그 한 사람 때문에 새벽기도회를 준비했고, 그 한 사람이 교회에 나오기 전에 먼저 나가서 불을 켜서 기다리고 있었으며, 그 한 사람이 돌아간 자리를 생각하면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 한 사람 때문에 억지로 하고 있었지만,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어서 그 한 사람을 보내 주셨다는 생각이 마치 번개에 맞은 것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랬었구나. 그를 위한 사역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그 한 사람을 보내어 주셨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새벽이 진지해졌습니다. 오지 말았으면 차라리 좋겠다는 한 사람이 아니라, 그 한 사람이 나를 다듬으시고, 그 한 사람으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연결고리가 이어진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한 사람을 통하여서 일하십니다. 많이 모이지 못하여도 매 주일 마다 빠지지 않고 한 사람, 한 가정을 만나서 나눔을 하고 계시는 살아 움직이는 목장이 있습니다. 세상 모두를 사랑할 순 없어도 한 사람은 사랑할 수 있겠지요? 마음이 어떠하냐에 따라서···.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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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와 교회 – 예배당예배(2‧끝)코로나19와 교회 – 예배당예배(2‧끝) 김승학 목사 안동교회 코로나19는 안타깝게도 2020년 2월 하순부터 많은 교회의 예배당예배(공동체예배, 대면예배, 현장예배)와 교회 내 거의 모든 모임을 중단시켰다. 처음에는 코로나19가 줄 엄청난 심각성을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비정상적 일상이 1년이 넘어가면서 생활뿐 아니라 교회 역시 코로나 사태 이전의 일상으로 회복되는 것이 결코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된 이후 성도들은 반드시 교회로 돌아와 예배당예배를 회복해야 한다. 그렇다면 성도들이 예배당예배를 회복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교회는 부르심을 받은 자들의 모임이며 예배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시대가 바뀌고 세상이 변한다 하더라도 변할 수 없는 교회의 본질이다. 코로나 사태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문제로 인해 말씀선포와 성찬이 중심인 예배당예배를 고집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그러나 비상상황이 아니라면 온라인설교와 온라인성찬은 시류에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신중한 신학적 연구와 토론을 거친 이후 시행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옳다. 둘째, 교회가 예배공동체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예배만을 위해 성도들이 모이는 것은 아니다. 교회의 또 다른 사명이 선교, 훈련, 봉사, 교제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문제는 이 모든 사명을 온라인으로 대체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코로나19가 온라인 사역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지만, 온라인 예배와 사역의 이유가 소멸하면 당연히 예배당예배와 사역들은 재개되어야 한다. 셋째, 교회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각 교회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주일오후예배, 수요저녁예배, 새벽기도회, 그리고 평일 기도회 등 참석자의 수가 크게 감소하였다. 성경공부, 구역모임, 훈련 프로그램이나 친교모임 등은 거의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주일 예배당예배가 아니면 만날 수 없는 성도들이 너무도 많은 게 현실이다. 따라서 목양적 관점에서도 예배당예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넷째, 예배 없는 유럽 교회의 예배당이 관광자원으로 전락했듯이 예배 없는 예배당은 존재의미가 없음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보호 하심을 믿고 교회로 모여야 한다. 교회가 철저히 예방수칙을 지키며 예배당예배를 드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논쟁거리가 되는 것을 두렵게 생각하거나 성도의 모임을 너무 쉽게 포기하는 것을 사회적 요구에 책임 있는 행동을 다 하는 것처럼 자위하고 변명하는 소극적 자세는 옳지 않다. 다섯째, 오늘의 시대가 온라인 예배를 강요하고, 온라인 모임을 새로운 대안이라고 주장하면서 교회를 압박하더라도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사랑한다면 지체인 성도들은 교회로 모여야 한다. 이유는 안타깝게도 아직도 적지 않은 교회가 예배뿐 아니라 여러 사역을 온라인으로 전환할 정도로 준비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모이는 교회가 아니라 흩어지는 교회만을 주장하거나 집중한다면 교회는 회복이 어려운 큰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교회는 역사적으로 전쟁, 박해, 그리고 전염병 등과 같은 비상상황 속에서 피치 못하게 예배당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흩어져야만 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특별한 상황이 해소되면 예배나 사역을 위한 성도의 회집은 반드시 재개되었다. 기독교 신앙에서 예배는 중심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예배당예배는 포기할 수 없는 사명과 같다. 코로나 사태가 아직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지만, 성도들은 다시 모여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예배당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며, 훈련과 봉사에 힘쓸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그 날을 사모하며 준비해야 한다. 그때 코로나19로 인해 단절된 예배당예배를 포함한 여러 거룩한 사역을 힘들게라도 다시 이어 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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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와 교회 – 예배당예배(1)코로나19와 교회 – 예배당예배(1) 김승학 목사 안동교회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도 예배당의 문을 닫아야 할 때가 있음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교회로 하여금 깨닫게 하고 있다. 종교의 자유가 허락된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릴 수 없고, 성도들이 은혜를 나누기 위해 교회와 가정에서 모일 수 없으며, 국가와 민족, 교회와 성도 등을 위해 기도하기 위해 교회에 나올 수 없음을 코로나19는 깨닫게 하고 있다. 우리 안동교회는 일제 말엽 신사참배의 강요에 의해 오늘도 주(主) 예배실로 사용하고 있는 석조예배당의 문을 닫고 금곡동 선교센터에 있는 선교사 사택에서 눈물의 예배를 드린 적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6․25 전쟁 당시에는 성도들이 아예 교회를 떠나 다른 도시로 피난을 가야만 했다. 폭격으로 예배당의 지붕이 모두 날아가고, 창문의 유리창이 모두 깨졌다. 수개월 동안 안동을 떠났다가 다시 교회로 돌아온 교인들은 예배를 드리기 위해 날아간 지붕을 수리하고 새 유리창으로 갈아 끼워야 했다. 그 후에 안동교회는 외부 강요나 환경적인 이유로 단 한 번도 예배당의 문을 닫은 적이 없다. 하지만 지구촌을 급습한 코로나19는 결국 예배당의 문을 닫게 했다. 소위 팬데믹이라 불리는 대재앙 앞에서 교회도 예외일 수 없었다. 2020년 2월 이후 한 해의 마지막 날까지 안동교회는 무려 3차례 예배당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우선 대구에서 신천지의 대규모 확진으로 인해 교회는 2월 23일 주일, 전격적으로 예배당의 대문을 닫아야 했다. 토요일(22일)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임시당회를 열어 일단 교회 문을 닫기로 결정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릴 수 없으므로 교회에 오지 말라고 각 구역을 통해 전 교인에게 고지했다. 너무도 갑작스러운 결정으로 23일 주일은 손도 쓰지 못하고, 어떤 형태의 예배도 드릴 수 없었다. 2020년 2월 23일 주일, 교역자들과 직원들만 출근했다. 교회는 너무 조용해 적막감이 감돌았다. 1~4부 예배 시간 정말 조용했다. 아마 6․25 전쟁 당시를 제외하고 이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을 것이다. 비록 교인들이 교회 안에 없더라도 많은 마을 주민들은 요일과 시간에 관계없이 지름길의 역할을 하는 교회 마당을 걷기 때문이다. 주일 오전 예배 시간에는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붐비던 주차 공간은 텅 비었다. 교회 앞 거리에도 지나가는 자동차가 거의 없었다. 그런데 가정에서 예배를 드린 후 헌금을 가지고 직접 교회 사무실로 온 장로님이 있었다. 예배당 앞에 서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고 돌아간 집사님도 있었다. 교회 사정이 궁금해서 교회를 찾아온 성도들이 있었다. 한 주일 지난 후부터 녹화하여 영상으로 주일오전예배, 오후찬양예배, 수요저녁예배와 새벽기도회를 가졌다. 그때 코로나 이전에는 조금도 생각하지 못한 것인데 예배당의 문이 닫혀도 예배드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했다. 물론 온 성도들이 이전처럼 함께 예배당에 모여 예배를 드릴 생각은 감히 하지 못했다. 대구 신천지의 파장이 너무도 컸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달이 넘게 지나갔다. 4월 둘째주일인 부활주일부터 성도들이 예배당에서 모여 예배를 드리기고 결정하고 부활주일 2주 전부터 본당에 항존직들과 10부장들이 모여 시간별로 릴레이 기도를 시작했다. 1주일 동안 함께 충분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며 기도했다. 종려주일에 예배당에서 예배가 멈춘 지 6주 만에 항존직들이 모였다. 그날 예배는 눈물이 범벅을 이룬 감격의 예배였다. 다시 고난주간인 일주일 동안 100부장․30부장․10부장 등 교회의 리더들이 예배당에 모여 합심으로 기도했다. 그리고 예고한 대로 부활주일, 예배시간을 조정하여 1~3부에 걸쳐 교회를 그리워했던 성도들이 예배를 드렸다. 다음세대교회는 문을 열지 못했기 때문에 아이들과 함께 예배에 참석한 가족들이 있었다. 교회에 나오지 못하고 가정에서도 예배드리는 실시간 온라인 예배도 이때부터 병행하기 시작했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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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와 교회 – 가정예배(1)코로나19와 교회 – 가정예배(1) 김승학 목사 안동교회 코로나19로 인해 가족 구성원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다. 2020년 10월에 발표된 ‘코로나 전후 가족 시간 비교’에 관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혼남녀가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일주일 평균 7.76시간이었다.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남녀는 코로나19 이후 가족과의 시간에 대해 ‘늘었다’는 56.9%, ‘줄었다’는 2.9%로 응답했다. 가족과의 시간이 늘어났다고 응답한 사람 중 59.4%는 ‘가족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답했다. 부정적이란 응답은 9.8%에 불과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우울, 불안, 외로움 등으로 정신건강을 위협받는 사례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한 제한된 환경은 가족들 사이에 신체적·정신적 스트레스를 주어 이전보다 갈등의 빈도수가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른 대안의 하나로 안동교회는 그동안 잊고 있던 가정예배의 의미를 재조명하며 실행에 옮기고 있다. 지금은 80을 넘긴 부모세대는 가정예배를 중요시하였다. 필자의 부모도 가정예배를 고집했다. 하지만 이후 세대에게 가정예배는 그리 매력적이지 못했고, 거의 잊혀진 지난 세대의 유산에 불과했다.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지 않는 것을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는 풍조가 만연되어 온 게 사실이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거나 모임을 가질 기회가 감소하고 있는 현실은 교회로 하여금 침체에 빠진 영성훈련을 위한 대안으로 그동안 잊혀진 가정예배를 주목하게 하고 있다. 코로나19는 교회의 여러 사역을 위축시키기도 하지만, 그동안 잊고 있던 사역을 발굴하여 상황에 맞게 다시 시도할 수 있는 유익한 기회가 될 수도 있음을 깨닫게 하고 있다. 다시 말해 코로나19는 부모와 자녀들에게 가정에서의 예배를 통해 자녀의 신앙을 점검하고, 부모의 신앙을 전승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가정예배는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은혜를 간증함으로써 부모와 자녀 사이의 믿음이 성장하고 신앙적 유대를 견고하게 할 수 있음을 깨닫게 하고 있다. 가정예배는 자녀의 신앙교육에 매우 유용하며, 부모는 자녀들을 축복하고 격려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다. 가정예배를 시작할 때 반드시 가족 구성원 모두가 함께 모여야 한다는 생각을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모두 함께 모이면 가장 좋겠지만 그러다 보면 가정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날이 훨씬 많을 수밖에 없고, 결국 가정예배를 포기할 가능성이 많다. 가정예배의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가족이 순번을 정해 인도자, 기도자, 성경봉독자, 특송자를 정하고, 가족 중 악기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은 악기를 연주하는 것도 예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하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안동교회는 2020년 7월부터 가정예배를 포함한 ‘매일묵상일기쓰기’를 통해 온 가족이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졌다. 매일묵상일기쓰기에 참여한 성도들은 자신의 묵상 결과를 공유함으로써 함께 은혜를 나누는 일에 동참했다. 또한, 교회는 매일 예배 순서지를 만들어 새벽기도회 시간에 홈페이지에 탑재함으로써 가정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했다. 30분 분량의 가정예배는 찬송, 본문, 주제성구, 설교내용, 본문 질문, 기도, 본문 해설, 주기도문의 순서로 진행된다. 또 나눔을 위한 질문과 기도문까지 자녀들을 포함하고 있어 온 가족들이 함께 참여하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구성됐다. 안동교회는 코로나 사태 속에서 잃어버린 가정예배를 회복해야 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과감한 시도를 감행했다. 코로나19 이후 예배당에 나오지 못하는 교인들의 신앙을 독려하는 여러 방법 가운데 하나로 가정예배를 강조한 것이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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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와 교회 - 기도회코로나19와 교회 - 기도회 김승학 목사 안동교회 기도하지 않는 교회는 없다. 모든 교회는 기도하는 일에 많은 힘을 쏟는다. 한국의 교회는 거의 비슷한 형식과 종류의 기도회를 갖고 있다. 안동교회의 기도 사역도 예외는 아니다. 안동교회의 공식 기도회는 우선 매일 갖는 기도회로 새벽 5시와 6시에 있는 새벽기도회와 오후 4시에 있는 오후기도회(vesper)다. 징검다리 중보기도대실에서 기도 용사들의 기도도 매일 오전 6시부터 밤 9시까지 거의 중단 없이 계속된다. 또 매 주 금요일마다 갖는 특성화된 기도회로 매월 첫 금요일은 항존직이, 둘째 금요일은 중보기도대가, 셋째 금요일은 묵상기도회로, 넷째 금요일은 교사기도회로, 그리고 다섯째 금요일이 있을 경우는 파송·협력선교사를 위한 선교사 기도회가 있다. 또한, 교회를 방문하는 성도들은 시간에 관계없이 가장 먼저 기도실로 가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전교인 기도손모으기’ 기도운동이 있다. 하지만 코로나19는 여러 기도회를 중단시켰다. 교회의 문을 닫고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려야만 하는 때에 성도들이 함께 모여 간구하는 기도회는 부담이 되었다. 우선 새벽기도회의 경우 5시에 모이는 기도회는 중단하고 6시에만 모이고 있다. 여러 제한적인 상황이 있지만, 그럼에도 예배실을 열 수 있을 때는 방역 수칙을 지키며 어김없이 새벽기도회로 모이고 있다. 또 매일 오후 기도회(vesper)는 기도실에서 모였는데, 코로나 사태 이후 기도실이 잠정적으로 폐쇄됨에 따라 모일 수 없게 되었다. 참고로 본당 1층에 위치한 우리 교회 품음터 기도실은 24시간 개방되어 등록 교회와 관계없이 안동시 안에 있는 성도들이 자주 찾는 공간이지만 안타깝게도 코로나19 이후 문을 닫고 있다. 더욱이 “10년 걱정하는 것보다 10분 기도하는 것이 낫다”는 표어로 시작한 ‘전교인 기도손모으기’는 교회에 오는 성도는 누구나 언제든 관계없이 가장 먼저 기도실로 들어와 하나님께 기도하고 볼일을 보자는 운동인데, 기도실이 폐쇄되어 더 이상 이 운동에 참여할 수 없어 얼마나 가슴이 아픈지 모른다. 더욱이 매주 금요일마다 가진 특성화 기도회의 중단은 우리 모두의 아쉬움인 동시에 아픔이기도 하다. 안동교회 금요기도회의 특징은 기도 중심으로 전체 기도회 시간이 70분 정도 된다. 그래서 찬양도, 설교도 짧다. 대신에 참석한 성도들이 합심하여 기도하는 시간이 길다. 일반적으로 금요기도회는 찬양, 설교, 그리고 기도회의 순서로 진행되는데, 설교 시간이 상대적으로 길다. 그러나 안동교회의 금요기도회는 설교시간이 짧은 대신 합심으로 기도하는 시간이 비교적 길다. 그래서 기도회에 참석한 성도들은 믿음으로, 그리고 통성으로 간절히 기도한다. 그런데 코로나19 이후 모여 기도하는 것을 조심스럽게 한다. 그래서 교회는 통성으로 하는 금요기도회를 중단하기로 결정하였다. 그 대신 내용과 형식을 달리하는 온라인 기도회를 새롭게 시작하였다. 특성화된 금요기도회는 환경이 호전되면 재개하기로 하고 온라인 학부모기도회, 온라인 교사 한밤기도회와 온라인 선교사 기도회를 신설하였다. 매월 첫째 월요일 저녁 8시 시작하는 줌(Zoom) 온라인 학부모 온맘기도회는 1, 2부로 나누어져 있다. 온맘기도회는 다음세대교회의 부모들이 자녀들을 위해 온맘으로(with all our heart) 기도하는 시간이다. 우선 1부는 약 35분 정도 진행되는 예배 시간으로 찬양, 설교, 그리고 설교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과 관련된 기도제목·교회·가정과 부모·자녀를 위해 합심하는 기도로 구성되어 있다. 35분으로 계획된 2부 기도회는 다음세대교회의 학부모들이 자신의 자녀들이 속한 다음세대교회(새싹교회, 꿈나무교회, 새순·비전터교회) 소회의실로 이동한 후 이후의 순서는 지도교역자가 운영한다. 학부모들과 전(前) 월의 사역에 대한 피드백(feedback) 시간을 갖고, 새로 시작한 사역을 소개하면서 학부모들에게 협조를 당부한다. 이후 각각 다음세대교회의 기도제목을 나누고 합심하여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다. 총 70분 내외로 진행되는 온라인 학부모 온맘기도회는 지도교역자와 학부모가 서로 대화를 나눔으로써 코로나19 이전에는 생각하지도 못한 기도사역이 시작되고 있다. 온라인 교사 한밤기도회는 매월 넷째 주 금요일 밤 8시에 시작된다. 온라인 학부모 온맘기도회와 동일한 방식인 줌(Zoom) 화상회의에 다음세대교회 교사와 장년교회 교사들을 초청하여 기도회를 갖는 것이다. 1부는 예배시간으로 찬양, 설교, 공통의 기도제목으로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다. 특히 기도제목으로는 교사를 위한 기도, 부모와 가정을 위한 기도, 그리고 교사가 맡은 영혼을 위한 기도 등이다. 교사들의 사명감을 새롭게 하여 영혼을 뜨겁게 사랑하는 예수님의 심장을 갖고 헌신하기를 위해 기도한다. 부모들이 자녀들을 믿음으로 잘 키울 수 있도록 가정에 필요한 것들을 하나님께서 공급해주시기를 기도한다. 또한, 하나님의 비전이 다음세대의 비전이 되어 미래를 잘 준비할 수 있도록 기도한다. 2부는 소회의실로 교사들이 자기가 속해 있는 다음세대교회로 이동하여 교사회의와 함께 기도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온라인 교사 한밤기도회는 교사들이 한마음으로 기도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매 주일 오전마다 갖는 교사회와는 성격을 달리한다고 할 수 있다. 온라인 선교사 열방기도회는 교회가 파송한 선교사와 협력 선교사를 줌(Zoom) 화상회의에 초대하여 가진 기도회다. 참고로 안동교회는 세계 곳곳에 14가정을 파송하고 있으며, 31가정을 후원하고 있다. 선교사 열방기도회는 한국과 지구 반대편에 있는 콜롬비아, 그리고 알바니아. 우간다, 캄보디아, 필리핀과 한국에 입국해 있던 선교사들까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시차를 고려하여 저녁 늦은 시간이나 이른 새벽에 시작할 수밖에 없다. 보통 예정한 기도시간은 1시간이지만 1시간을 훌쩍 넘겨 100분 정도 이어질 때도 있다. 선교지 상황, 일반적인 기도제목과 긴급한 기도제목 등 선교사들의 보고 시간이 생각보다 길어지기 때문이다. 힘든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파송·협력교회가 선교사들을 잊지 않고 중보와 협력을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에 기도회에 참여한 선교사들은 감격해 한다. 또한, 선교지의 코로나 상황과 긴급한 기도제목을 공유하여 성도들이 합심으로 기도하는 것이 선교사들에게 큰 위로가 되고 있다. 온라인 기도회에 참석한 한 선교사는 “감동적이다. 용기와 굳은 결의를 다지게 되었다”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온라인 선교사 열방기도회는 코로나19라는 암초를 만났음에도 우리 교회가 계속해서 선교의 열정을 이어갈 수 있는 큰 에너지가 되고 있다. 코로나19가 교회에 모여 기도하는 것에 큰 장애가 되고 있지만, 성도들은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기도를 중단해서는 안 된다. 기도를 중단하면 모든 것이 끝나기 때문이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주신 가장 강력한 무기다. 더욱이 합심기도는 큰 능력을 가진다. 따라서 한자리에 모일 수 없다면 온라인으로라도 합심하여 기도해야 한다. 기도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사역의 에너지와 활력은 기도의 골방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코로나19는 어떤 형태로든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하나님이 명령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온 교회가 더욱 무릎을 세워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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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학 목사의 논문 원문(7)- 일평생 경안노회를 떠나지 않은 주의 종(從), 임학수목사일평생 경안노회를 떠나지 않은 주의 종(從), 임학수목사 김승학 목사 신학과 교수/기독교 교육학 안동교회 담임목사 임학수 목사(林鶴洙, 1884-1969) 임학수 목사는 안동 땅에서 출생하고 안동 땅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늘나라에 갔다. 그는 안동 땅에서 예수님을 만났고, 안동지역에 있는 교회를 섬겼다. 그는 하나님이 보내신 교회, 크고 작은 교회를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해 섬겼다. 그래서 그가 시무한 교회는 든든히 설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가 교회를 섬긴 시대 상황은 결코 만만한 세월이 아니었다.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점하고 강압적으로 통치하던 시대였다. 보통 사람들인 백성의 삶도 고단했지만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삶은 더 고난의 연속이었다. 황국신민화를 강요하는 일제의 정책 하에서 예수 믿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힘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임학수 목사는 단순한 성도로서가 아니라 교회의 지도자인 목사로 살아야 했기 때문에 더 큰 믿음과 용기, 그리고 인내와 소망이 필요했다. 그러나 임 목사는 어려운 시기에 교회의 지도자와 경안노회의 중심인물로 그 사명을 잘 감당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황금만능주의와 세속화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해 위기를 맞고 있다. 거룩한 영향을 줄 수 있는 교회, 영적 리더십을 가진 존경받는 주의 종, 그리고 세상으로부터 인정받는 성도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현실을 보며 낙망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다가 교회가 영영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빠지는 것은 아닌지 염려하게 된다. 그러나 교회의 능력은 분명히 회복될 수 있다. 왜냐하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세워진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교회는 과거의 교회와 과거의 선배들이 남겨놓은 교훈을 배워야 한다. 교회역사를 올바로 이해해야 하며, 거룩한 영향력을 끼친 믿음의 선배의 삶을 본받아야 한다. 그 중의 한 사람이 바로 임학수 목사다. 그는 분명한 소명의식을 갖고 헌신한 사명자였다. 그는 신실한 하나님의 일꾼인 동시에 도전하는 교회의 일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학수 목사의 신앙과 삶을 연구하고 정리한 글은 이교남 목사가 쓴 ‘한학자 임학수 목사’ 외에는 거의 없다. 그가 안동지역이라는 복음의 변방에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선교부가 위치해 있었지만 안동은 작은 도시였기 때문에 안동지역에서 활동한 교역자나 평신도들은 한국교회에 알려지기 보다는 묻혀 있을 수밖에 없는 태생적인 한계를 지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임학수 목사는 조용하지만 분명한 흔적을 남긴 주의 종이었다. 그래서 임학수 목사의 성품, 인격, 신앙을 포함한 삶은 오늘을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큰 도전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소논문은 이러한 목적을 위해 연구되었다. 연구 결과 필자는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고 영원히 잊혀 질 수 있었던 임 목사의 신앙과 삶을 새롭게 발굴할 수 있었다. 이제부터 일평생 단 한 번도 경안노회를 떠나지 않고 충성을 다한 믿음의 대선배인 임학수 목사가 걸어간 거룩한 구원사역의 흔적을 찾아보도록 하자. 1. 임학수(林鶴洙), 믿음의 조상(祖上)이 되다 임학수는 1884년 6월 23일 부친 임보현과 모친 정덕희 사이에서 장남으로 안동군 녹전면 매정리(일명 갈골)에서 출생했다. 특히 1885년은 원두우(元杜尤, Horace Grant Underwood) 선교사와 아편설라(亞扁薛羅, Henry Gerhard Appenzeller) 선교사가 인천 제물포에 첫발을 밟은 해로 그 의미가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임학수의 본관은 부안으로 호는 영온(嶺穩) 혹은 영루(嶺樓)이다. 령(嶺)은 재, 산봉우리라는 의미를 갖는다. 온(穩)은 ‘평온하다’와 ‘곡식을 거두어 모으다’는 뜻을 갖는다. 따라서 영온(嶺穩)은 ‘평온한 산봉우리’라는 의미로 산봉우리가 조용하고 평안한 것처럼 하나님의 교회가 평온하기를 소망했던 것 같다. 또한 영온(嶺穩)은 ‘곡식을 거두어 모으는 산봉우리’라는 의미로 산봉우리 같은 하나님의 교회가 자신의 사역을 통해 구원받은 알곡과 같은 성도들이 넘쳐나기를 소원했던 것 같다. 또한 루(樓)는 다락의 뜻으로 영루(嶺樓)는 산봉우리에 있는 다락과 같은 망대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임학수 목사는 악한 세력이 성도들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조망하고 감시함으로써 교회와 성도들을 지키는 것이 자신의 사명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임학수는 1894년 박계남과 결혼하여 임상경, 임상교 남매와 손자 1명과 손녀 4명을 두었다. 1911년 10월 23일, 임학수는 매정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 그의 모친인 정덕희는 1913년 6월 14일에, 처(妻)인 박계남은 1916년 2월 16일에, 장남 임상경은 1922년 매정교회에서 각각 세례를 받았다. 임학수가 복음을 받아들이고 난 후에 모든 식구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임학수는 한 가문에 있어서 믿음의 조상(祖上)과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1909년 9월, 임학수에 의해 설립된 매정교회를 섬기던 임학수 가정은 1923년 5월 10일 안동의 어머니(母) 교회인 안동교회로 이명(移名)했으며, 이명한 후에는 온 가족이 줄곧 안동교회를 위해 헌신했다. 임학수 목사의 장남(長男)인 임상경은 안동교회에서 장립집사와 장로의 직분을 받았으며, 오랫동안 제직회 서기, 당회서기로 봉사했다. 임학수 목사의 자부(子婦)인 강신덕은 교회학교 교사, 청년회, 성가대에서 헌신했다. 특히 강신덕은 당시 내매교회를 섬기고 있던 백부(伯父) 강병주 목사의 조카로 대구 신명여학교를 졸업한 신식 여성으로 학창시절에는 육상, 테니스 등 운동도 잘 했다고 한다. 당시 임학수 목사와 강병주 목사가 친밀한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임상경과 강신덕은 결혼하게 되었다. 임학수 목사의 손녀인 임화자 권사는 어머니 강신덕를 이렇게 기억한다: 어머니 강신덕은 신앙이 두터운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나 신학문을 배운 여성으로 깊은 신앙과 지혜로 슬기롭게 어려운 목사 가정의 살림을 잘 꾸렸다. 대가족 집안일도 많았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기도회에 참석하고 주일학교 반사, 여전도회 임원, 구역권찰로 주의 몸된 교회를 위해 열정적으로 헌신했다. 사경회나 교회행사 때마다(크리스마스 새벽송 찬양대 식사) 식사 준비로 봉사를 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목사관 뜰에서 몇 백 명의 밥을 큰 가마솥 3개에 불을 지펴서 하는 일은 늘 어머니의 몫이었다. 강신덕의 가정은 초기 한국교회부터 오늘날 까지 믿음의 큰 산맥을 이룬 가정이다. 큰 아버지인 강병주 목사는 평양신학교 14회 졸업생으로 내매교회, 영주교회, 그리고 풍기교회를 담임하면서 6차례 경안노회장을 역임했으며, 1933년 총회의 부름을 받고 서울로 임지를 옮겨 총회 산하교회의 신앙교육과 교사양성과정을 책임지며 교사양성에 주력한 분이다. 또한 서울의 새문안교회를 담임한 강신명 목사는 강병주 목사의 장남이기도 하다. 이처럼 임학수 목사의 후손은 뿌리 깊은 믿음의 가정으로 어디서나 주님의 교회에 헌신하는 일꾼들이 되었다. 노후에 장남을 따라 부산으로 이사한 강신덕은 거성교회에서 권사로 임직을 받았다. 임상경 부부는 거성교회를 섬기다가 별세하였다. 임학수 목사의 장녀인 임상교는 권사로 대구 신암교회에서 시무하였으며, 손자 임재오는 부산 거성교회에서 장로로 시무하였다. 친손녀인 임순오는 부산 수영로 교회에서 권사로, 임양자는 안동교회에서 집사로, 임화자는 서울 밀알교회에서 집사로 헌신하고 있다. 부모세대의 믿음과 헌신을 계승하여 후손들이 계속해서 아름다운 믿음의 가문을 이어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임학수 목사의 평소의 삶은 비단 신앙 뿐 아니라 인격, 품성 등에 있어서 자녀손들에게 선한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적어도 임학수 목사로 인해 교회를 이탈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만큼 임학수 목사는 목사로서의 삶도, 부모로서의 삶도, 또한 인간으로서의 삶도 모자람이 없는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임학수가 한 가정의 믿음의 조상이 됨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이하 내용은 논문원문 첨부파일 참조)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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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목사는 어느 편일까요?천석길 목사 구미남교회 신학생 시절에 같이 자취했던 절친 목사와 통화를 했습니다. 개척 이후 아름답게 성장하고 있는 교회인데 요즘 어떻게 예배를 드리는지를 물었습니다. 자기들은 정부에서 방역지침을 내리기 전에 자발적으로 온라인 예배를 드린다고 합니다. 뉴스에서 말하기 전에 교인들에게 교회에 오지 말고 집에서 예배를 드리라 했고 수요일, 새벽기도회까지 그렇게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웃하고 있는 사람들이 교회에 대해서 신뢰를 보낼 것이고, 또 교인들을 보호할 수 있답니다. 그는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건물 안에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 줄 수 있는 오히려 좋은 기회라고 합니다.(맞는 말입니다) 요즘 9시 뉴스에 몇 번 나온 핫한 세계로교회 손현보 목사와 통화를 했습니다. 신학교에서 7년 동안 같이 공부한 동기입니다. 그 친구의 기질과 열심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교회는 주일은 물론이거니와 새벽기도회, 수요예배 실황을 동영상 촬영해서 자발적으로 공무원에게 보낸답니다. 오천 명이 앉을 수 있는 좌석에 우리는 거리 두기를 철저히 해서 20명이 아닌 천 명이 예배하고 있으니 교회를 폐쇄시켜 달라고 했답니다. 다른 교회도 그렇게 하자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교회가 폐쇄당하면 헌법소원을 해서 대한민국 헌법이 말하는 종교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에 대해서 재판을 받겠다는 겁니다. 그는 말하기를 교회만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편파적이기 때문에 헌법의 기준으로 판단을 받아서 다른 교회에 희망을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용기가 부러웠습니다) 두 명의 친구는 모두 옳습니다. 그런데 천 목사는 이도 저도 아니었습니다. 교회에 오지 말라는 매몰찬 말을 못하니까 교회를 폐쇄시킨다는 경고장도 받았습니다. 그렇다고 폐쇄시켜 달라고 할 만큼의 용기는 더더욱 없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소리 지르고 싶지만, 담임목사의 입장에서는 투쟁이 전부는 아닌 듯합니다. 코로나 팬데믹을 영적전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피할 수 없는 새로운 시대 전환으로 준비해야 하는지? 묻고 물으면서 주일이면 텅 빈 예배당에서 4부 예배까지 목이 쉬도록 설교하는 천 목사는 어느 편일까요? 어리버리해 보이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편에 서서 교인을 지키고 싶어하는 마음은 이전보다 더 간절하답니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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