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인터콥선교회, 징계 결정되자 KWMA 자진 탈퇴KWMA 법인이사회, 지난 29일 인터콥 징계 결의 징계 사실 알려지자 내부 논의 거쳐 탈퇴서 제출 국제선교단체인 인터콥선교회(본부장 최바울 선교사)가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의 징계 결정 직후 자진 탈퇴했다. KWMA는 “6월 28일~29일 부산에서 법인이사회를 열고 인터콥에 대해 2년간 회원권 정지, 회원권 복구 후 3년간 지도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지난 2월 KWMA 정책위원회가 인터콥 제명을 건의한 것에 따른 것이다. 교단선교부와 선교단체 리더들로 구성된 KWMA 정책위는 당시 “인터콥은 선교현장에서 교회, 선교계와 독단적 부조화를 지속해 왔다. KWMA의 지도로 개선됐지만 여전히 한국교회로부터 항의를 받아왔다”며, “인터콥의 행동은 한국사회와 기독교계 정서에 반하고 한국사회가 한국교회와 선교에 부정적 태도를 갖는 원인을 제공했다”고 판단했다. 정책위의 제명 건의에 따라 법인이사회는 논의를 통해 징계로 가닥을 잡았다. KWMA 강대홍 사무총장은 “인터콥에 비판적 시각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일정 부분 선교적 역할을 감당했다는 점은 사실”이라며 “제도권 안에서 한국교회와 함께 갔으면 하는 판단에 따라 제명이 아닌 징계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한편, 징계 사실을 확인한 인터콥은 내부 논의를 거쳐 29일 밤 11시경 KWMA 이사장 앞으로 탈퇴서를 제출했다. 인터콥 관계자는 “그동안 저희를 품고 지도해 준 KWMA의 위상과 연합사역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자진 탈퇴키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인터콥은 탈퇴서를 통해 “그동안 KWMA의 신학 및 사역지도를 받으며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다했지만,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음에 대해 죄송한 마음이다”고 밝혔다. 다만, 올해 초 상주 BTJ열방센터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쏟아진 뒤 언론의 비판적 보도에 대해선 “사실 왜곡과 과장 보도로 억울한 면이 적지 않았다”며 불편한 마음을 표하기도 했다. KWMA 정책위원 김장생 선교사는 “일반 성도들이 인터콥이 KWMA에 가입돼있는지 여부를 보고 인터콥에 참여하진 않았다. 따라서 인터콥의 동원 활동에는 큰 차이가 없으리라 본다. 다만 공교회와의 연합 활동에는 아무래도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혜경 기자 www.gbhana.com
-
영남지역노회협의회(예장통합) 제27회 목사 장로 선교대회민족 복음화, 선교사역 등 위해 기도 ▲영남지역노회협의회 목사 장로 선교대회가 열린 가운데, 증경총회장 이성희 목사가 설교하고 있다. 예장통합 영남지역 17개 노회가 참여하는 영남지역노회협의회(회장 이기주) 제27회 목사 장로 선교대회가 지난 6월 8일 대구제일교회(박창운 목사 시무)에서 열렸다. ‘주여 이제 회복하소서’를 주제로 열린 이번 선교대회에서 참석한 회원들은 민족 복음화와 선교사역, 영남지역노회협의회 등을 위해 기도했다. 개회예배는 회장 이기주 목사의 인도로 대구동노회장 김상래 목사 기도, 영주노회장 조영광 목사 성경봉독, 대구제일교회 양원윤 권사 특송, 증경총회장 이성희 목사의 ‘뉴 노멀’ 제하의 설교, 김승학 목사의 축도 등으로 진행됐다. 특별히 예배시간에는 ‘민족 복음화’, ‘한국교회와 세계선교’, ‘신학대학과 기독교 교육재단’, ‘영남지역노회협의회’, ‘제105~106회 총회’ 등의 기도 제목을 놓고 경동노회장 마흥락 목사, 진주남노회장 장지현 목사, 경안노회장 권헌서 장로, 부산노회장 김수찬 장로, 울산노회장 이재학 목사가 대표기도했다. 이어진 2부 선교대회는 수석부회장 김영춘 목사 사회로 이기주 목사의 대회선언과 대회사, 경북노회장 박청락 목사의 환영사, 5개 지역 협의회 회장의 축사, 부산노회와 경북노회에 선교비 전달, 영남신학대와 부산장신대, 경안대학원대학교에 장학금 전달 등의 순서가 있었다. 3부 선교특강 시간에는 김운성 목사(영락교회), 홍경환 목사(총회해외다문화선교처 총무), 황예레미야 선교사(21세기단기선교위원회)가 강사로 나서 강의를 진행한 후, 폐회예배를 끝으로 모든 순서를 마무리했다. 박은숙 기자 www.gbhana.com
-
봉화제일교회, ‘강동완 교수 초청 세미나’“북한 여성의 삶”을 주제로 북한의 실상 전해 ▲북한의 실상에 관한 강의를 하고 있는 강동완 교수. 지난 5월 30일(주일) 오후 2시, 봉화제일교회(담임목사 이재형)에서는 주일 찬양예배 시간에 제1남선교회(회장 강길창 집사) 주관으로 교우 2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신앙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강사로 초청된 부산 동아대학교 강동완 교수(국제정치학 박사)는 “북한 여성의 삶”이라는 주제로 북한 여성들이 살아가는 참혹한 실상들을 자세히 전했다. 강 교수는 “북한 여성들은 인신매매와 성매매, 사고 팔리는 형태로 이루어지는 결혼 등 박해와 성 착취로 인권이 억압되고 있다”며 “개인적이고 인간적인 삶의 개념은 꿈꿀 수조차 없는 ‘세상에서 가장 어두운 곳’이 북한의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러한 북한 주민들의 자유와 해방과 영육 구원을 위해 우리 모두 연합하여 간절히 기도하자”고 호소했다. 질의응답 시간에는 이재형 담임목사가 “북한 우상숭배에 대한 한국 기독교인들이 가져야 할 중요한 입장은 무엇인가?”라고 질의했고, 강동완 교수는 “김 씨 일가의 3대 세습에 따른 개인의 신격화가 가장 문제이다. 우리 크리스천들이 복음통일을 위해 기도하고 준비해야 한다”라고 답했다. 한편, 강동완 교수는 북한의 실상을 파악하기 위해 평양에도 여러 차례 다녀왔으며 북한에 관련된 책도 수십 권 집필한 북한 전문가로 평가받고 있다. 강 교수는 봉화읍 출신으로 ‘남북의 창’ 방송 출연, 영주 봉화 등 경북지역뿐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강연활동을 하고 있다. 봉화 우병백 기자 www.gbhana.com
-
“영남지역 교회에 큰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기를!기하성 영남지역총연합회 총회장에 김영식 목사 취임 이영훈 대표총회장, “영남지역에 성령의 불 타오르길” ▲영남지역총회장 김영식 목사.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대표총회장 이영훈 목사) 영남지역총연합회 김영식 총회장의 취임예배가 7월 2일 순복음구미교회(담임목사 김영식)에서 열렸다. 앞서 기하성 총회는 지난 5월 17일에 열린 제70차 정기총회에서 ‘지역총연합회 제도’를 본격 실시하기로 하고. 이에 따라 전국을 10개 지역으로 나누고 지역총회장을 선출한 바 있다. 이번에 영남지역총연합회 제1대 총회장에 취임한 김영식 목사는 영남지역 5개 지방회(경남‧경북‧대구‧부경‧부산지방회) 산하 교회와 기관들을 총괄하게 된다. 이날 취임예배는 영남지역총무 배종빈 목사 사회, 영남지역수석부총회장 김해동 목사 대표기도, 영남지역부총회장 홍성하 목사 성경봉독, 대표총회장 이영훈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 설교가 있었다. ‘성령이 임하시면’(행 1:4~8)이란 제목으로 설교한 이영훈 대표총회장은 “교회는 정치로 부흥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로 부흥된다. 지금 시국이야말로 기독교가 일어나야 한다. 김영식 총회장을 중심으로 초대교회와 같은 부흥의 역사가 영남지역에서 일어나기를 기대한다”며 기도운동, 성령운동을 강조했다. 이어 이영훈 대표총회장이 김영식 총회장에게 임명장과 취임패를 수여했으며, 교단총회장 이태근 목사, 충청지역총회장 김은수 목사, 순복음영산교회 고건일 목사, 교단총무 엄진용 목사 등이 권면과 격려, 축하를 했다. 김영식 총회장은 “영남지역은 약해 보이지만 무한한 잠재력이 있는 곳이다. 영남지역의 부흥을 위해 지방회장님들과, 각 교회 담임목사님들과 협력하며 최선을 다해 섬기겠다. 부족한 종이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관심과 기도를 부탁한다”고 인사했다. 한편, 이날 예배 후에 열린 제70차 1회 영남지역총연합회 정기총회에서는 영남지역총회 임원 및 위원장이 인준됐다. 임원 명단은 다음과 같다. △총회장: 김영식 목사 △수석부총회장: 김해동 목사 △부총회장: 김기태 목사 홍성하 목사 △총무: 배종빈 목사 △서기: 김철호 목사 △회계: 이재권 목사 △재무: 이원종 목사. ▲취임예배를 마친 뒤 단체 기념촬영 모습. 앞줄 왼쪽에서 네 번째부터 이영훈 대표총회장, 김영식 영남지역총회장. 박은숙 기자 www.gbhana.com
-
청도군 기독교교역자협의회, ‘6‧25 상기 구국기도회’ 개최강사 장학덕 목사, “하나님이 도우실 때 기적 일어난다” ▲장학덕 목사가 말씀을 전하고 있다. 청도군 기독교교역자협의회(회장 최점식 목사)가 주최한 ‘제71주년 6‧25 상기 구국기도회’가 지난 6월 27일(주일) 오후 3시 청도 대성교회(방인용 목사 시무)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는 청도군 기독교총연합회, 장로연합회, 평신도연합회, 여성연합회, 공무원신우회 등 청도군의 기독교 연합회와 기관들이 후원했다. 예배는 청교협 최점식 회장의 사회로, 장로연합회장 황영석 장로의 대표기도, 여성연합회장 박희숙 권사의 성경봉독, 장학덕 목사(부산 반송서부교회)의 말씀 선포, 특별기도회, 청기총 대표회장 이찬선 목사의 축도, 축사 순으로 드려졌다. 장학덕 목사는 설교에서 “우리 민족은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회복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제단 앞에 모여서 예배를 드리며 회개해야 한다. 하나님이 도우실 때 기적이 일어나고 빼앗겼던 모든 것을 되찾는 역사가 일어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진 특별기도회는 청교협 부회장 강현수 목사 인도로, ‘나라의 안보와 민족’ ‘청도군 발전과 공무원’ ‘청도군 지역교회와 복음화’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참석한 목회자와 성도들이 한목소리로 뜨겁게 기도했다. 최점식 회장은 “이 땅에 다시는 6‧25와 같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자유민주 평화통일을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회를 갖게 됐다”고 행사 취지를 설명했다. ▲‘제71주년 6‧25 상기 구국기도회’가 6월 27일(주일) 오후 3시 청도 대성교회에서 열렸다. 박은숙 기자 www.gbhana.com
-
동성결혼 합법화하려는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을 “반대한다!”전국단체 네트워크 결성식 및 세미나 개최 ··· 개정안 철회 촉구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 반대 세미나에서 음선필 교수 등 발제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지난 4월 29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는 건강가정기본법개정안반대전국단체네트워크(건반넷) 748개 시민단체 주최로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 반대 전국단체 네트워크 결성식 및 세미나가 열렸다. 이날 세미나에는 정천구 교수, 오명식 교수, 음선필 교수가 발제자로 나서 남인순 의원과 정춘숙 의원이 발의한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의 문제점들을 구체적으로 다루고, 개정안 철회를 촉구했다. 먼저 정천구 교수(전 영산대 총장(불교))는 “기독교, 불교 등 주요 종교에서 신도들에게 동성애를 하지 말라고 권고하는 것은 종교의 자유이며, 동성애 문제는 문화적 마르크시즘으로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숙청을 연상시키는 위험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오명식 교수(전 부산 가톨릭대 교수(천주교))는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에서 가족의 정의를 제거하고, 가정의 개념을 대통령령으로도 정할 수 있음”을 지적하며 “건강한 가정을 위한 법이 아니라 동성애, 동성결혼 등을 포함시키려는 나쁜 의도가 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음선필 교수(홍익대 교수(기독교))는 “지금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은 양성의 평등을 바탕으로 가족생활을 보장하고 있는 헌법과 민법을 거스르고 있다”고 주장하며, “동성커플 등을 인정하기 위해 가족의 개념까지 없애 가면서 법을 개정하려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날 토론자로 나선 김지연 대표(차세대바로세우기학부모연합 상임대표)는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하려는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이 결국은 동성결혼 법제화의 수순으로 갈 것이 우려된다”며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의 재개정을 촉구했다. 연취현 변호사(바른인권여성연합 전문위원장)와 이진수 대표(더워드뉴스)도 개정안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사회에서 가족제도가 건강하게 형성되고 보호되는 것은 다음세대와 국가 전체의 명운을 가르는 중요한 문제인데, 이 개정안은 가정을 파괴하고 국가의 가정보호 책무를 없애겠다는 움직임”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과 정춘숙 의원이 각각 2020년 9월과 2020년 11월에 발의한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에 대해서 한국교회나 교계 단체들도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이 개정안은 가족 및 가정의 정의를 의도적으로 삭제하고, ‘가족의 형태를 이유로 차별받지 아니한다’고 했으며, ‘양성평등’을 ‘평등’으로 바꾸어서 동성결합 및 동성결혼의 합법화를 열고자 하는 의도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예진 기자 www.gbhana.com
-
경북도, 에너지 재활용 ··· 하베스팅 부품소재 산업 육성저전력 지능형 IoT 물류부품 상용화 기반구축 2022년 스마트특성화사업 선정 에너지 하베스팅 핵심 부품소재 국산화로 친환경 에너지 기술 선점 노력 경상북도는 2022년 스마트특성화사업에 ‘저전력 지능형 IoT 물류부품 상용화 기반구축’ 사업이 선정되었다. 오는 2022년부터 3년간 총사업비 186억 원을 투자해 지역 산학연 협의체 중심으로 사업을 추진하게 된다. 저전력 지능형 IoT 부품소재는 생활속에서 버려지는 에너지들을 하베스팅 부품소재를 활용해 수집하여 다시 전력에너지로 변화하여 사용하는 기술이다. 이른바 에너지의 재활용이라 할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에너지를 수확한다는 의미에서 ‘에너지 하베스팅’이라는 용어 또는 ‘저전력 IoT기술’로 사용된다. 이러한 일련의 기술은 웨어러블 기기의 발전, 탄소중립 등 친환경 정책의 강화로 주목받고 있다. 해외에서는 대규모 호텔의 수만 개의 스위치에 에너지 하베스팅 기술을 사용하여 에너지절감을 이루어 낸 사례라든가 중국 상하이 홍차오 공항에 스마트 조명 센서를 부착하여 초저전력화 공항을 실현한 사례들이 있다. 국내에서도 부산 서면의 지하철 개찰구에 압전퍠드를 활용한 에너지 하베스팅 사례가 있다. <참고 : 에너지 하베스팅 해외사례> 해외에서는 이미 엔오션얼라이언스(EnOcean Alliance)라고 해서 에너지 하베스팅과 접목된 IoT용 무선솔루션 선도그룹이 활동하고 있으며 IBM, 오슬람(OSRAM) 등 글로벌 정보통신 기업들이 활동하고 있다. 이 기술은 스마트홈에서부터 스마트팩토리까지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으며 영국 시장 조사기관에 따르면 에너지하베스팅 시장 전망은 2020년 4억5,800만 달러에서 2028년까지 9억8천7백만 달러(한화 약 1조2천억 원)로 연평균 10% 이상 성장하는 고성장 분야로 알려졌다. 이번에 선정된 사업은 에너지 하베스팅 기술을 물류분야에 적용하는 사업이다. 물류분야는 다양한 센서들이 무선으로 운용되는 환경으로 독립된 전원공급 장치가 필요한 분야이다. 이러한 분야에 선도적으로 에너지 하베스팅 부품소재를 적용하여 저전력화하여 생산성을 향상시킨다는 것이 사업의 핵심이다. <참고 : 저전력 지능형 IoT 물류부품 상용화 기반구축 추진전략> ‘지능형 IoT 부품센터’를 설치하여 에너지 하베스팅 기술이 가미된 전원소자, 센서 등을 개발하고 이를 실제 물류분야에 적용하여 데이터를 수집한다. 거기에서 수집된 데이터는 다시 부품센터의 환경정보 수집 및 전송모듈로 전송되어 수정 보완 작업을 거쳐 성능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게 된다. 그동안 경북도는 에너지 하베스팅 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해 영천시 대구대 등과 협업하여 왔다. 지난 2020년 3월부터는 도와 영천시가 공동으로 ‘에너지하베스팅산업생태계 조성을 위한 기본계획수립용역’을 추진하여 12월 초 완료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국내 최초로 ‘에너지하베스팅 기술분류체계’를 정립하여 앞으로 체계적인 연구개발과 산업발전에 방향성을 제안했다. 스마트 특성화 기반구축 사업은 전국 55개 산업거점을 선정하여 지역특성에 맞는 연구장비 확충, 혁신기관 장비간 연계강화, 기술지원 등 지역의 혁신기반을 강화하는 사업이다. 경상북도는 지난해 ‘S/W기반 지능형 SoC모듈화 사업’을 스마트특성화 기반구축에 제출하여 선정 받았다. 본 사업이 IoT기기들의 원천이 되는 반도체 부품을 설계하는 원천디자인이었다면 이번에 선정된 IoT물류부품 상용화 기술개발사업은 이러한 설계역량을 바탕으로 에너지 하베스팅이라는 기술을 한단계 발전시킬 수 있는 응용디자인에 가까운 사업이다. 수많은 부품소재의 복합체인 IoT기기들의 경쟁력을 강화시키기 위해 설계부터 응용부품까지 새로운 기술들을 접목시키려는 시도가 우리 지역에서 앞으로도 더 활발해질 전망이다. 이철우 경상북도지사는 “스마트 특성화 사업은 지역의 혁신기관간 연계와 협업이 전제되어야 성과를 낼 수 있는 사업이다”며, “그간 구축된 IoT관련 연구기반들과 협업을 강화함은 물론, 산학연 협력체계를 통해 혁신기관들이 보유한 유망기술이 대학으로 확산하여 위기 속에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우리 지역대학들의 돌파구가 되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박은숙 기자 www.gbhana.com
-
김승학 목사의 논문 원문(8)- 안동교회 예배처소의 변화와 안동지역의 복음화안동교회 예배처소의 변화와 안동지역의 복음화 김승학(안동교회) 신학과 교수/기독교 교육학 안동교회 담임목사 선교사들의 보고에 따르면 1908년 안동에 선교부가 세워질 당시 안동의 인구는 약 15,000명 정도였다. 안동에 체류하고 있던 장인차(張仁車, Woodbridge O. Johnson) 의료선교사가 오월번(吳越璠, Arthur G. Welbon) 선교사에게 1910년 11월 26일 쓴 편지에 의하면 안동은 소도시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본 도시 중에서 가장 깨끗하고 쾌적한 도시 중의 하나였다고 기록할 만큼 안동은 선교사들에게 매력적인 도시였다. 안동에 도착한 최초의 선교사는 부산에 주재하고 있던 배위량(裵偉良, William M. Baird)으로 그는 1893년 4월 17일부터 5월 20일 까지 경상북도 지방을 순행하며 전도했다. 이후 1899년 대구선교부가 설치되자 안동은 대구선교부의 관할 지역이 되었고, 안동을 포함하는 경북북부지역은 대구선교부의 주된 선교 타게트(Target) 지역이 되었다. 대구선교부 주재 부해리(傅海利, Henry Munro Bruen) 선교사에 따르면 함께 안동을 순회한 방위렴(邦緯廉, William M. Barrett) 선교사는 1903년 안동의 첫 학습자이자 안동의 첫 열매를 얻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특히 미국북장로회 선교회가 1908년 9월 정기총회에서 안동선교부를 설립하기 위한 예비 작업을 결정하고 1909년 9월 정기총회에서 안동선교부 설립을 최종 결정한 후 안동을 중심으로 경상북도 북부지역의 선교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던 것이다. 사진 1. 1910년대 안동시의 모습과 생활상으로 위 왼쪽은 낙동강으로 사진 아래의 대동강은 오기로 보인다. 마을과 낙동강 사이에 논이나 밭이 보이고 도로는 동에서 서로 향하는 안동-예천 도로이다. 역사 기록에 의하면 안동교회는 1909년 8월 둘째 주일 8명이 첫 예배를 드린 후 몇 차례 예배처소의 변경이 있었다. 안동교회 7대 담임인 김광현 목사는 안동교회가 임시 처소 까지 포함해 여섯 곳에서 예배를 드렸음을 기록한다. 특히 이 기록은 안동교회 7대 담임인 김광현 목사의 기억을 토대로 한 것으로 김광현 목사는 안동선교부 최초의 선교사인 사우대(史佑大, Chase C. Sawtell)이 세상을 떠난 후 1910년 1월 안동선교부 선교사로 파송되어 1952년 한국을 떠난 권찬영(權燦永, John Y. Crothers) 선교사와 그 동안 안동지역에서 사역한 선교사들과 함께 오랜 세월 동역한 안동지역 교회의 리더였다. 김광현 목사는 일본 고베중앙신학교에서 유학 후 부산 초량교회를 섬기다가 1943년 1월 안동교회 7대 담임목사로 부임한 이후 당시 안동 주재(駐在) 선교사들과 긴밀한 유대관계를 통해 누구보다 안동 초기 선교역사를 잘 이해하고 있는 분이었다. 김목사는 9년 전인 2006년 12월 14일, 93세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는데, 안동교회 80년사는 그의 기억이 생생할 때 쓰여진 책이다. 특히 안동교회 80년사에 기록된 안동선교와 안동교회의 초기 역사는 안동교회의 당회록, 제직회의록, 세례·학습명부, 경북노회록, 그리고 경안노회록을 기초로 김광현 목사가 안동선교 시작부터 함께 했던 여러 선교사들로부터 전해들은 내용과 자료들을 첨가한 공식적인 문서로써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안동교회 80년사에 따르면 안동교회의 예배장소는 임시 예배소까지 쳐서 여섯 번에 걸쳐 옮겨졌다. 첫 번째 예배처소는 1909년 8월 둘째 주일, 최초의 교인 8명이 창립예배를 드린 곳인 대석동 129번지로 옛 대석상회가 위치한 기독서원이었고, 두 번째 예배 장소는 1910년 선교사들의 거처했던 임시주택으로 안동교회 교육관 자리의 골기와 한옥(韓屋)이었으며, 세 번째의 임시 예배장소는 선교사들이 사택 건축을 위해 선교사들이 매입하여 잠시 거쳐하였던 구(舊) 교도소 자리에 있던 기와지붕 건물이었다. 네 번째 예배장소는 1910년에 건축된 안동시 광석동 214번지에 소재한 ‘ㄱ’자형의 16칸 크기 예배당이었다. 다섯 번째 예배 장소는 현재 100주년 기념관에 위치했던 2층 목조 함석지붕의 건물로 1914년 2월 준공되었다. 여섯 번째 예배처소는 현재도 주(主) 예배실로 사용하고 있는 석조 예배당으로 1936년 초여름에 건축을 시작하여 1937년 4월 6일에 준공되었다. 본 소고는 1909년 8월 8일 둘째 주일, 8명이 첫 예배를 드림으로써 시작된 안동교회의 예배처소 위치와 예배당의 변동을 연구함으로써 안동교회의 내·외적 변화와 부흥, 선교부의 정착과 선교사의 역할 및 생활상, 그리고 초기 안동지역의 복음화 진행과정을 살펴보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1. 첫 번째 예배처소 : 기독서원(基督書院) 100여 년 전 안동에는 성경과 기독서적을 판매하는 서점이 존재했다. 서점의 이름은 기독서원으로 이 서점은 안동 최초의 근대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안동교회 80년사는 대구선교부의 안의와(安義窩, James E. Adams) 선교사가 서문 밖 초가 5칸을 사들여 기독서원을 개원했음을 기록하고 있다. 기독서원의 정확한 위치는 현재 교회 앞 도로 건너편 버스 정류장이 있는 대석동 129번지다. 당시 김병우(金炳宇)가 언제 안동지역의 매서(賣暑)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안의와 선교사는 김병우를 기독서원의 매서로 활용했다. 하지만 기독서원의 정확한 개원(開院) 일자는 알 수는 없다. 다만 안동교회의 첫 예배가 기독서원에서 있었기 때문에 기독서원이 첫 예배일자인 1909년 8월 8일 이전에 개원했을 것으로 추측할 수는 있다. 이 사실을 근거로 기독서원의 개원(開院)에 관한 내용을 다음과 같이 추론해 볼 수 있다. 1908년 9월 미국북장로회 선교회 정기 총회 이후 부산에서 열린 한국 선교 집행 위원회는 오월번과 그의 부인인 새디, 그리고 별리추 박사에게 안동의 새 지부 개설을 요청했고, 이들이 동의함으로써 안동선교부가 개설되게 되었다. 안동 주재(駐在) 최초의 선교사인 사우대(Chase C. Sawtell)은 1908년 12월 1일 대구를 출발해 안동에 도착했지만 1909년 11월 16일 장티프스로 별세하였다. 이어 1910년 상반기에 오월번과 별리추 선교사, 권찬영 선교사가 안동으로 내려옴으로써 안동에는 3명의 선교사가 주재하게 되어 완전한 선교부의 조직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안동의 기독서원을 위한 가옥구입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당시 대구 주재 안의와 선교사에 의해 행해졌거나 안동선교부 주재 사우대, 오월번, 사우대 선교사 등에 의해 기독서원이 적극적으로 활용되었을 가능성이 모두 있을 것이다. 즉 안동에 선교부가 세워진 1908년 12월 이전이라면 안동이 대구선교부 관할이었기 때문에 안의와 선교사가 기독서원에 사용될 가옥을 구입했을 가능성이 크며, 1909년에 접어들어 기독서원이 개원되었다면 안동선교부에 의해 시작되었을 개연성이 있다. 하지만 안동교회 7대 담임인 김광현 목사에 의하면 안동에 교인이 증가하게 되자 대구선교부에서는 풍산교회 교인인 김병우를 매서인으로 하여 1909년 8월에 종교 서적을 파는 서점을 열게 했다고 증언한다. 사진 2는 안동교회의 첫 예배처소로 추정되는 기독서원 앞에서 성도들이 함께 촬영한 사진이다. 모임의 수나 모임 사람 대다수가 남성인 것으로 볼 때 남자성경공부반으로 추정되며, 첫 예배를 드린 후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난 어느 때였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사실 초기 한국교회가 곳곳에 세워진 것은 각 지역에 세워진 기독서원에 속한 매서와 권서의 활동과 깊은 연관이 있다. 교회가 없는 산간지방이나 외딴 지역에 매서를 통해 전해진 성경을 읽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고, 매서들은 그 지역 그리스도인들이 모일 장소를 마련하고 예배를 인도하였으며, 이것이 훗날 교회로 발전했음을 여러 초기 자료들은 증명하고 있다. 따라서 1909년 8월 8일 안동교회의 첫 예배가 당시 매서인 김병우에 의해 인도되었다는 것은 당시로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안동교회는 거의 1년 동안 이 기독서원에서 예배를 드렸다. 첫 예배 후 1년이 지날 즈음 교인의 수가 70명을 초과하여 예배공간이 비좁아 더 이상 예배를 드릴 수 없어 기독서원을 떠날 수밖에 없었음을 권찬영 선교사는 증언하고 있다. (이하 내용은 논문원문 첨부파일 참조) 편집부 www.gbhana.com
-
정부의 코로나 ‘교회발’은 왜곡‧과장 ··· 예배제한은 ‘헌법 위배’예자연, 기자회견 열고 “예배제한 중단” 정부에 요청 ▲기자회견에서 손현보 목사(왼쪽 두 번째)가 질병관리청이 발표한 종교시설 감염비율 통계 자료를 들고 발언하고 있다(왼쪽부터 박경배 목사, 손현보 목사, 심하보 목사, 심동섭 변호사). 정부의 잘못된 발표로 국민 48%가 코로나 확산의 원인이 ‘교회발’이라고 잘못 인식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 17일 한국프레스센터 내 외신기자클럽에서는 ‘예배회복을 위한 자유시민 연대’(이하 예자연) 주최 하에 ‘코로나 방역과 종교의 자유의 충돌,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기자회견이 개최됐다. 예자연은 “정부의 ‘교회발’이라는 발표와 인식은 국민 통합을 저해한다”며, “실제 신천지를 제외한 종교시설 감염자 비율은 8.2%에 불과하지만, 국민들의 48%는 교회발로 잘못 알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종교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하며, 정부의 비대면 예배 원칙과 10~20% 인원 제한 명령은 헌법에도 어긋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안창호 전 헌법재판관은 “여태껏 정부는 예배의 자유 등 정신적 자유를 함부로 제한해 버렸다. 지난 2월 1일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예배 과정에서 코로나19 감염율이 거의 없다고 발표했다”며, “교회는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켜왔다. 정부의 대면예배 금지 조치는 헌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손현보 목사(부산 세계로교회)는 “지역 어르신, 장애인들을 돌보는 교회의 선한 사역들이 무시된 채, 교회가 마치 코로나19의 주범으로 지목됐다는 건 유감”이라며, “과학적 근거 없이 종교의 자유를 억제하는 정부의 행태는 현재 대한민국의 자유가 얼마나 억제당하고 있는지를 보여 준다”고 했다. 심동섭 변호사(애드보켓코리아 대표)는 “예배란 인간의 가장 고귀한 행위로서 어떤 사람에게는 생명보다 더욱 소중한 것이다. 코로나19 비상시기에 왜 이렇게 교회만 예민하게 반응하느냐고 묻지만, 이런 조치가 1년 이상 지속된다면 일말의 정치적 의도가 숨어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예자연은 ‘왜곡 및 과장된 ‘교회발’ 감염에 대해 사실관계를 바로잡을 것’, ‘예배제한 정책은 정확하고 신중하게 할 것’ 등을 정부에 요청했다. 박은숙 기자 www.gbhana.com
-
김승학 목사의 논문 원문(7)- 일평생 경안노회를 떠나지 않은 주의 종(從), 임학수목사일평생 경안노회를 떠나지 않은 주의 종(從), 임학수목사 김승학 목사 신학과 교수/기독교 교육학 안동교회 담임목사 임학수 목사(林鶴洙, 1884-1969) 임학수 목사는 안동 땅에서 출생하고 안동 땅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늘나라에 갔다. 그는 안동 땅에서 예수님을 만났고, 안동지역에 있는 교회를 섬겼다. 그는 하나님이 보내신 교회, 크고 작은 교회를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해 섬겼다. 그래서 그가 시무한 교회는 든든히 설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가 교회를 섬긴 시대 상황은 결코 만만한 세월이 아니었다.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점하고 강압적으로 통치하던 시대였다. 보통 사람들인 백성의 삶도 고단했지만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삶은 더 고난의 연속이었다. 황국신민화를 강요하는 일제의 정책 하에서 예수 믿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힘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임학수 목사는 단순한 성도로서가 아니라 교회의 지도자인 목사로 살아야 했기 때문에 더 큰 믿음과 용기, 그리고 인내와 소망이 필요했다. 그러나 임 목사는 어려운 시기에 교회의 지도자와 경안노회의 중심인물로 그 사명을 잘 감당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황금만능주의와 세속화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해 위기를 맞고 있다. 거룩한 영향을 줄 수 있는 교회, 영적 리더십을 가진 존경받는 주의 종, 그리고 세상으로부터 인정받는 성도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현실을 보며 낙망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다가 교회가 영영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빠지는 것은 아닌지 염려하게 된다. 그러나 교회의 능력은 분명히 회복될 수 있다. 왜냐하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세워진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교회는 과거의 교회와 과거의 선배들이 남겨놓은 교훈을 배워야 한다. 교회역사를 올바로 이해해야 하며, 거룩한 영향력을 끼친 믿음의 선배의 삶을 본받아야 한다. 그 중의 한 사람이 바로 임학수 목사다. 그는 분명한 소명의식을 갖고 헌신한 사명자였다. 그는 신실한 하나님의 일꾼인 동시에 도전하는 교회의 일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학수 목사의 신앙과 삶을 연구하고 정리한 글은 이교남 목사가 쓴 ‘한학자 임학수 목사’ 외에는 거의 없다. 그가 안동지역이라는 복음의 변방에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선교부가 위치해 있었지만 안동은 작은 도시였기 때문에 안동지역에서 활동한 교역자나 평신도들은 한국교회에 알려지기 보다는 묻혀 있을 수밖에 없는 태생적인 한계를 지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임학수 목사는 조용하지만 분명한 흔적을 남긴 주의 종이었다. 그래서 임학수 목사의 성품, 인격, 신앙을 포함한 삶은 오늘을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큰 도전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소논문은 이러한 목적을 위해 연구되었다. 연구 결과 필자는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고 영원히 잊혀 질 수 있었던 임 목사의 신앙과 삶을 새롭게 발굴할 수 있었다. 이제부터 일평생 단 한 번도 경안노회를 떠나지 않고 충성을 다한 믿음의 대선배인 임학수 목사가 걸어간 거룩한 구원사역의 흔적을 찾아보도록 하자. 1. 임학수(林鶴洙), 믿음의 조상(祖上)이 되다 임학수는 1884년 6월 23일 부친 임보현과 모친 정덕희 사이에서 장남으로 안동군 녹전면 매정리(일명 갈골)에서 출생했다. 특히 1885년은 원두우(元杜尤, Horace Grant Underwood) 선교사와 아편설라(亞扁薛羅, Henry Gerhard Appenzeller) 선교사가 인천 제물포에 첫발을 밟은 해로 그 의미가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임학수의 본관은 부안으로 호는 영온(嶺穩) 혹은 영루(嶺樓)이다. 령(嶺)은 재, 산봉우리라는 의미를 갖는다. 온(穩)은 ‘평온하다’와 ‘곡식을 거두어 모으다’는 뜻을 갖는다. 따라서 영온(嶺穩)은 ‘평온한 산봉우리’라는 의미로 산봉우리가 조용하고 평안한 것처럼 하나님의 교회가 평온하기를 소망했던 것 같다. 또한 영온(嶺穩)은 ‘곡식을 거두어 모으는 산봉우리’라는 의미로 산봉우리 같은 하나님의 교회가 자신의 사역을 통해 구원받은 알곡과 같은 성도들이 넘쳐나기를 소원했던 것 같다. 또한 루(樓)는 다락의 뜻으로 영루(嶺樓)는 산봉우리에 있는 다락과 같은 망대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임학수 목사는 악한 세력이 성도들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조망하고 감시함으로써 교회와 성도들을 지키는 것이 자신의 사명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임학수는 1894년 박계남과 결혼하여 임상경, 임상교 남매와 손자 1명과 손녀 4명을 두었다. 1911년 10월 23일, 임학수는 매정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 그의 모친인 정덕희는 1913년 6월 14일에, 처(妻)인 박계남은 1916년 2월 16일에, 장남 임상경은 1922년 매정교회에서 각각 세례를 받았다. 임학수가 복음을 받아들이고 난 후에 모든 식구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임학수는 한 가문에 있어서 믿음의 조상(祖上)과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1909년 9월, 임학수에 의해 설립된 매정교회를 섬기던 임학수 가정은 1923년 5월 10일 안동의 어머니(母) 교회인 안동교회로 이명(移名)했으며, 이명한 후에는 온 가족이 줄곧 안동교회를 위해 헌신했다. 임학수 목사의 장남(長男)인 임상경은 안동교회에서 장립집사와 장로의 직분을 받았으며, 오랫동안 제직회 서기, 당회서기로 봉사했다. 임학수 목사의 자부(子婦)인 강신덕은 교회학교 교사, 청년회, 성가대에서 헌신했다. 특히 강신덕은 당시 내매교회를 섬기고 있던 백부(伯父) 강병주 목사의 조카로 대구 신명여학교를 졸업한 신식 여성으로 학창시절에는 육상, 테니스 등 운동도 잘 했다고 한다. 당시 임학수 목사와 강병주 목사가 친밀한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임상경과 강신덕은 결혼하게 되었다. 임학수 목사의 손녀인 임화자 권사는 어머니 강신덕를 이렇게 기억한다: 어머니 강신덕은 신앙이 두터운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나 신학문을 배운 여성으로 깊은 신앙과 지혜로 슬기롭게 어려운 목사 가정의 살림을 잘 꾸렸다. 대가족 집안일도 많았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기도회에 참석하고 주일학교 반사, 여전도회 임원, 구역권찰로 주의 몸된 교회를 위해 열정적으로 헌신했다. 사경회나 교회행사 때마다(크리스마스 새벽송 찬양대 식사) 식사 준비로 봉사를 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목사관 뜰에서 몇 백 명의 밥을 큰 가마솥 3개에 불을 지펴서 하는 일은 늘 어머니의 몫이었다. 강신덕의 가정은 초기 한국교회부터 오늘날 까지 믿음의 큰 산맥을 이룬 가정이다. 큰 아버지인 강병주 목사는 평양신학교 14회 졸업생으로 내매교회, 영주교회, 그리고 풍기교회를 담임하면서 6차례 경안노회장을 역임했으며, 1933년 총회의 부름을 받고 서울로 임지를 옮겨 총회 산하교회의 신앙교육과 교사양성과정을 책임지며 교사양성에 주력한 분이다. 또한 서울의 새문안교회를 담임한 강신명 목사는 강병주 목사의 장남이기도 하다. 이처럼 임학수 목사의 후손은 뿌리 깊은 믿음의 가정으로 어디서나 주님의 교회에 헌신하는 일꾼들이 되었다. 노후에 장남을 따라 부산으로 이사한 강신덕은 거성교회에서 권사로 임직을 받았다. 임상경 부부는 거성교회를 섬기다가 별세하였다. 임학수 목사의 장녀인 임상교는 권사로 대구 신암교회에서 시무하였으며, 손자 임재오는 부산 거성교회에서 장로로 시무하였다. 친손녀인 임순오는 부산 수영로 교회에서 권사로, 임양자는 안동교회에서 집사로, 임화자는 서울 밀알교회에서 집사로 헌신하고 있다. 부모세대의 믿음과 헌신을 계승하여 후손들이 계속해서 아름다운 믿음의 가문을 이어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임학수 목사의 평소의 삶은 비단 신앙 뿐 아니라 인격, 품성 등에 있어서 자녀손들에게 선한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적어도 임학수 목사로 인해 교회를 이탈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만큼 임학수 목사는 목사로서의 삶도, 부모로서의 삶도, 또한 인간으로서의 삶도 모자람이 없는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임학수가 한 가정의 믿음의 조상이 됨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이하 내용은 논문원문 첨부파일 참조) 편집부 www.gbhana.com
Warning: Illegal string offset 'use' in /home/jane82850/public_html/theme/wide01/mobile/skin/search/basic/search.skin.php on line 138
Warning: Illegal string offset 'skin' in /home/jane82850/public_html/theme/wide01/mobile/skin/search/basic/search.skin.php on line 139
Warning: Illegal string offset 'use' in /home/jane82850/public_html/theme/wide01/mobile/skin/search/basic/search.skin.php on line 138
Warning: Illegal string offset 'skin' in /home/jane82850/public_html/theme/wide01/mobile/skin/search/basic/search.skin.php on line 139
Warning: Illegal string offset 'use' in /home/jane82850/public_html/theme/wide01/mobile/skin/search/basic/search.skin.php on line 138
Warning: Illegal string offset 'skin' in /home/jane82850/public_html/theme/wide01/mobile/skin/search/basic/search.skin.php on line 1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