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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용 구미시장, “대한민국 산업의 중심, ‘스마트 산업도시 구미’ 만들어가겠다”경북하나신문 창간 기획 : 지방자치단체장 인터뷰 장세용 구미시장 인터뷰 ▲장세용 구미시장.(사진=구미시) Q : 코로나19로 인해 구미 시민들이 방역과 경기 침체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먼저, 위로의 말씀을 해주신다면. - 지난해부터 코로나19라는 국가적 재난 앞에 우리 모두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올해도 코로나19 장기화로 경제의 불확실성이 가중되며 전국적으로 힘겨운 한 해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버티고 계시는 42만 구미시민에게 진심으로 위로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방역과 경제가 함께 가는 길을 모색해 구미 경제가 회복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 Q : 수도권 집중 현상으로 지방 경제가 날로 악화하고 있는 데다 코로나19라는 악재까지 겹친 셈이다. 현재 구미의 경제 상황은 어떠한지. - 구미시는 주력산업의 경쟁력 약화, 대기업 이탈, 일본의 수출규제, 코로나19 충격 등으로 현재 경제 위기 상황에 놓여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위기는 곧 기회라고 생각한다. 경제 회복이라는 큰 과제를 위해 상생형 구미일자리, 스마트산단 조성, 도시재생 뉴딜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으며 상당 부분 성과도 이루어 냈다. 구미시가 대한민국 산업의 중심, 문화와 산업이 융합하는 스마트 감성도시로 재탄생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Q : 경제 활성화를 위해 추진하고 있는 역점 사업과 그 성과에 대해 구체적으로 더 설명해주신다면. - 지난 반세기 동안 대한민국의 근대화를 이끌어 온 구미 산업단지는 이제 그 우수한 역량을 기반으로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첨단 신산업과 IT 기술을 융합한 스마트산단으로 재도약할 것이다. 이를 위해 상생형 구미일자리(‘20~’24년), 산업단지 대개조 사업(‘21~’23년), 스마트그린산단 구축 사업(‘20~’23년) 등을 통해 산업구조 재편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강소연구개발특구 육성 지원(‘20~’25년), 고용안정 선제대응 패키지 지원사업(‘20~’24년) 등 대규모 국책사업들을 유치했다. 이러한 신산업 육성, 탄탄한 기업지원 체계 구축,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바탕으로 구미의 경제회복이 탄력을 받을 것이다. 믿고 지켜봐 주시길 바란다. Q : ‘스마트 산업도시 구미’라는 도시 브랜드 구축을 위해 또 어떤 정책을 펼치고 있는지요. - 스마트산단 구축 외에도 원도심 재생을 포함한 구미형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있다. 도시재생 사업은 본격적인 궤도에 올라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공단동 도시재생 혁신지구 국가시범지구 사업으로 대기업 의존 산업구조에서 벗어나 지역 자립적 산업생태계를 조성하고, 원평동‧선주원남동 등 주거지 도시재생 사업으로 도시의 가치를 재창출할 것이다. 아울러, 구미만의 문화와 역사, 환경적 특색을 살려 지속 가능한 삶의 공간을 만들어 나가겠다. 삶터‧일터‧쉼터가 조화로운 도시재생을 꿈꾸고 있다. Q : 구미는 이제 통합신공항 시대를 앞두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구미에서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말씀해주신다면. - 구미경제 회복의 힘은 통합신공항 조기 이전, KTX 유치, 5공단 분양 활성화 등에 달려있다. 무엇보다 통합신공항 이전은 공단 물류비용 절감과 글로벌 비즈니스 접근성 문제를 일거에 해소함으로 기업유치와 투자유치에 날개를 달아줄 것으로 기대한다. 구미시는 현재 이와 관련한 SOC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 4월 27일에도 한국도로공사를 방문해 북구미IC의 연내 개통, 북구미IC~군위JC간 고속도로 건설 등에 대해 논의했다. 아울러, 통합신공항과 가장 인접한 국가산단이라는 이점을 살려 산단 분양의 상승세 전환을 도모하고, 국가5산업단지 10만평 임대전용산업단지 지정 등 기업하기 좋고 살기 좋은 공항 배후도시 조성을 위한 전략수립을 꾀하고 있다. Q : 오는 10월 구미에서 제102회 전국체육대회와 제41회 장애인체육대회가 개최될 예정이다. 대회 준비는 잘 진행되고 있는지. - 제102회 전국체육대회 및 제41회 장애인체육대회는 늦어진 만큼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내실을 다지고 있다. 구미시는 총사업비 754억원을 들여 구미 시민운동장 리모델링, 복합스포츠센터 건립, 종목별 경기장 개보수를 통해 전국체전 대비 시설을 조성했다. 또 사업 305억원을 들여 운동장 진입도로를 조성했다. 대회 기간에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이행하면서 안전하고 감동적인 경기가 되도록 손님맞이 준비를 차근차근히 해나가고 있다. 전국체전 성공 개최로 시민들의 자긍심을 고취하고, 그 파급효과가 지역 곳곳에 전파될 수 있도록 착실히 준비하겠다. Q : 마지막으로, 향후 구미시의 방향성에 대해 말씀해 달라. - 민선 7기 출범 후, 숨 돌릴 겨를도 없이 정말 열심히 뛰었다. 구미 경제뿐 아니라 문화, 관광, 복지 등 전 분야에 걸쳐 변화를 만들기 위해 애썼고, 어려운 가운데 의미 있는 성과도 거두었다. 구미의 변화와 혁신을 바라는 시민 여러분 덕분에 고되어도 고된 지 모르고 달릴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일상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많은 것이 달라졌고, 새로운 방향, 과감한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2021년은 ‘확실한 경제성장, 지역 활력 회복’을 목표로 코로나19로 침체된 지역 경제를 살려 곳곳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이겠다. ▲장세용 구미시장이 광평동 시민운동장 일원을 방문해 ‘제102회 전국체육대회‧제41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와 관련된 주요 시설을 점검하고 있다.(사진=구미시) ▲장세용 구미시장이 오는 6월말 준공을 앞둔 ‘국도 33호선 국도대체우회도로(구포∼생곡) 건설현장’을 방문해 공사세부사항을 보고받고 시설물을 점검했다.(사진=구미시) /인터뷰 진행‧정리 = 박은숙 편집국장/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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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군↔K-water, ‘물 복지 도시 예천’ 위한 MOU 체결“사회적 가치 실현, 탄소 중립” ▲예천군(군수 김학동)은 27일 K-water 예천수도지사(지사장 안홍기)와 탄소중립 등에 대한 상호협력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예천군(군수 김학동)은 27일 오전 11시 군민들에게 더 나은 수도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K-water 예천수도지사(지사장 안홍기)와 사회적 가치 실현, 탄소중립 등에 대한 상호협력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이번 협약으로 양 기관은 취약계층 옥내 누수 수리‧노후관 교체 사업, 저수조 위생점검‧청소 시범사업, 예천정수장 탄소중립 위‧수탁사업(태양광 발전설비 설치)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상호 협력할 계획이다. 특히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계층이 깨끗한 수돗물을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옥내누수 수리와 노후관 교체 등 지원사업을 6월부터 시행한다. 총 4천만 원(예천군, K-water 각 50%) 규모 사업으로 지방 상수도가 공급되는 자가 소유 주택에 거주하는 기초생활수급자, 독거노인, 장애인 등 취약계층 등 40가구를 지원해 누수로 인한 요금 과산정, 체납 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방침이다. 수돗물이 깨끗하고 안전하게 공급되도록 오래되고 녹이 슨 급수관‧물탱크‧수도꼭지 등 수리‧교체 시범사업도 추진하며 K-water에서 추진하는 저수조 위생점검‧청소 사업은 소규모 저수조를 사용하는 공공시설과 취약계층 등을 직접 방문해 수도시설 위생 점검은 물론 수질 안전성을 확인하고 필요시 청소 서비스를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군이 예산을 지원하고 K-water가 설계‧발주, 공사 등을 담당하는 ‘예천정수장 탄소중립 위‧수탁사업’은 유휴부지에 태양광 발전설비를 설치‧운영해 발전된 전력을 자가소비 후 잔여분을 한국전력에 공급함으로써 지방상수도 사업장 최초로 탄소중립 수도사업장 실현 모델을 선보인다. 김학동 군수는 “양 기관 협력으로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취약계층을 위해 누구나 수돗물을 믿고 마실 수 있는 물 복지 도시 예천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며 “사회적 가치 실현과 탄소 중립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예천 남종덕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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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와 교회 – 가정예배(2‧끝)코로나19와 교회 – 가정예배(2‧끝) 김승학 목사 안동교회 더욱이 안동교회는 2021년에 접어들면서 매주 목요일마다 개선(upgrade)된 온라인 가정예배를 추진하였다. 예배를 위해 정해진 시간과 형식을 지켜나가는 것은 중요하다. 그래서 매주 목요일 오후 8시에 시작하여 30분 동안 온라인으로 온 가족이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다. 준비과정으로 목요가정예배의 이름(Title)과 가정예배 사행시를 공모하였는데, 많은 교인이 적극적으로 동참함으로써 관심의 정도를 깨달을 수 있었다. 우선 목요가정예배의 공식 이름은 공모를 통해 ‘홈드림 가정예배’로 최종 확정되었다. 홈드림 가정예배의 의미는 1)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리는 대신 가정(홈, Home)에서 온 가족이 진심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 2)우리 가정(홈, Home)을 통째로 하나님께 드리는(드림) 예배, 3)우리 가정(홈, Home)이 갖고 있는 꿈(드림, Dream)을 하나님께 바치는 예배라는 의미다. 또한, 가정예배의 의미를 담은 사행시를 58명이 68개 작품에 공모한 결과 순위가 결정되었다. 공동 1위는 3명으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가: 가정예배 드릴 시간이에요! 정: 정말 다 모였나요? 예: 예수님을 만날 시간이에요! 배: 배에 힘을 주고 찬송가를 높이 불러요! 가: 가가호호 정: 정성모아 예: 예수님만 배: 배우자 가: 가정예배 시간은 정: 정말 행복한 시간 예: 예수님을 만나서 배: 배부른 시간 온라인 목요 홈드림 가정예배는 삶의 근간이 되는 가정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가운데 상처 입은 가정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 꿈꾸고 있다. 예배순서로는 찬송가나 CCM 찬송, 가정에서 부모가 대표기도, 준비된 가족창 후 8분 내외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주제는 삶과 긴밀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하되 어린이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설교를 마친 후 2가지 기도제목으로 합심기도를 하는데, 첫째는 설교 내용을 생각하며 기도하고, 둘째는 가정의 기도제목을 갖고 합심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기도 후 부모가 자녀들의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기도를 하는데, 교회에서 준비한 축복기도문을 사용할 수도 있고, 부모들이 소원하는 제목으로 축복기도를 할 수 있다. 이후 다시 찬양하고 주의 기도로 예배를 마친다. 그리고 공모하여 당선된 사행시를 매주 다르게 온 가정이 함께 읽음으로써 가정예배의 의미를 되새긴다. 모든 순서를 마치고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 포옹하면서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 축복합니다’라고 말하며 예배를 마친다. 온라인 목요 홈드림 가정예배는 분주한 일상을 보내는 가족 구성원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예배, 기도, 찬양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와 은혜를 나누고 용서, 격려와 칭찬을 통해 서로가 하나 되는 귀한 시간이 되고 있다. 코로나19는 그동안 잃어버린 가정예배를 회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코로나19는 가정 제단을 회복하기 위해 하나님이 주신 기회다. 코로나19로 인해 신앙적 관점에서 가정의 역할이 이전보다 훨씬 중요해졌음을 모두가 깨닫고 있다. 따라서 코로나19 시대에 가정예배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가정예배를 지키는 것이 아니고 가정예배가 우리 가정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온 성도는 코로나19로 인해 초래된 위기의 시간인 요즘, 오히려 가정을 살릴 수 있는 가정예배에 집중해야 한다. 코로나 시대에 부모의 신앙뿐 아니라 자녀의 신앙을 견고히 하는 방법이 가정예배이다. 또한, 가정예배가 회복될 때 가정 구성원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용서하고, 사랑으로 화목하여 작은 천국을 이룰 수 있기 때문에 가정예배에 생명을 걸어야 한다. 교회와 가정이 긴밀하게 협력하여 그동안 잊혀진 보물인 가정예배가 회복되어 가정의 신앙이 살아나고, 상처 입은 가정이 치유되고 회복되는 은혜가 넘치는 가정이 되기를 소망해본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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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양은 내 음성을 듣고 따른다장 재 효 목사 서울성은장로교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거늘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25~26절)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27~29절) 본문 말씀에서 이스라엘 절기인 수전절에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향해 그동안의 행적에 대한 여러 의혹을 품고 당신이 그리스도인지 분명히 밝히라고 질문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들에게 수많은 기적을 보여준 증거들과 가르침을 믿지 아니한 것을 책망하십니다. 이는 그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인정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더 이상 백성들을 미혹하지 말라는 도전적인 질문이었음을 미리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그들을 향하여 “너희는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않는다”고 단호히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우리와의 관계를 ‘목자와 양’의 관계로 설명합니다. 즉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는 양이 아니며 예수님을 믿어야 양이라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제가 목회하면서 겪어보니까, 성령을 받지 못한 상태인데도 잘 믿는 척했던 사람이 마귀에게 속아서 지옥으로 끌려가고 있는데 그걸 알지 못하는 것을 보면 참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그러나 어떤 성도는 예수님을 똑바로 알아보고 예수님께 완전히 맡기며 사는 것을 봅니다. 누가 예수님의 양일까요? 본문 말씀을 오늘 여러분들에게 왜 하나님이 일러주며 선포하게 하시는지 자신의 신앙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1. 유대인들의 도발적 질문과 예수님의 답변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당신이 진짜 그리스도로 오신 분이면 우리에게 밝히 말씀해 달라. 언제까지 우리를 의혹 가운데 혼란에 빠져 있게 하겠느냐”고 도발적인 질문을 했습니다(24절).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단호하고 간단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거늘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25~26절)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많은 이적과 기사를 행하셨습니다. 한 사례로 예수님은 맹인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요한복음 9장). 예수님은 나면서부터 맹인인 한 사람을 보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눈을 씻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이 맹인은 일어나서 온 마음을 다하여 실로암 못을 찾아가 눈을 씻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함으로 가서 물로 눈을 씻고 밝은 눈으로 처음 세상을 보았을 때 이 맹인은 얼마나 황홀했겠습니까? 그는 눈을 뜬 것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통하여 자기 영혼이 천국 갈 소망의 믿음도 얻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맹인에게 행하신 것과 같은 기적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셨기에 자신이 바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데도 질문하는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그 많은 기적을 보고도 믿지를 않고 오히려 예수님을 향해 더 이상 미혹하지 말라고 경고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병 고침을 많이 받고 귀신이 쫓겨나가는 등 많은 기적을 보면서도 유대인들처럼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못한다면 구원 얻은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2. “내 양이 아닌 자는 믿지 않는다”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26절). 이 말씀은 참 무서운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가룟 유다가 예수님의 제자였지만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에 대해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그는 열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요6:70~71)고 설명하십니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를 제자로 택하시고 회계 업무를 맡기시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한 번도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호칭해 본 일이 없었습니다. 기껏 선생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돈을 예수님보다 훨씬 더 좋아했고 급기야 예수님을 은화 30개 받고 팔아 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에 대해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세상에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마26:24)고 한탄하셨습니다.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라면 그 영혼이 지옥에 갈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양이 아니었음을 성경은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척해도 예수님의 양이 아닌 자는 영생을 얻지 못한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내 양은 내 음성을 듣고 따른다” 예수님께서는 목자와 양의 비유로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27절)고 설명하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게 되며 예수님은 그들을 다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에 예수님과 제자들의 만남의 장면이 나옵니다. 세례요한이 예수님에 대해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고 고백하자 세례요한의 제자 두 사람이 그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들에게 “와서 보라” 말씀하시니 그날 하룻밤을 예수님과 같이 지나면서 이 분이 그리스도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제자 중 하나였던 안드레는 형제 시몬을 예수님께 데려오고, 예수님은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며 그를 제자로 부르십니다. 또 예수님은 빌립을 만나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고 빌립은 예수님을 따릅니다. 빌립은 자기 친구 나다나엘을 찾아가 예수님을 소개하고 예수님께 데려갔습니다. 예수님은 나다나엘을 보시고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고 칭찬하십니다. 나다나엘이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하고 묻자 예수님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고 대답하십니다. 그 말씀 앞에 나다나엘은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라고 굴복합니다. 이 사람이 바돌로매로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그의 양을 알아보시며 그 양은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따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 믿는 자에게 주시는 약속 ··· ‘영생’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믿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실까요?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28~29절)고 약속하십니다. 이것을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자기 죄를 회개함으로써 하나님과 나 사이에 막힌 죄악의 담을 허물고 예수님과 하나가 됐을 때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을 얻은 사람에게 예수님께서는 ‘영생(eternal life)’을 주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또한, 진리를 깨닫고 회개해서 성령을 모시고 생명책에 이름이 등록된 사람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고, 아무도 하나님 아버지 손에서 그를 빼앗을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권면의 말씀) 누가복음 5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하셨고, 베드로는 밤이 새도록 한 마리도 잡지 못했으나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해 한 번 더 그물을 내렸고, 결국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를 많이 잡게 됩니다. 베드로는 자기 생각, 자기 경험을 버리고 말씀에 순종한 결과 기적을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베드로를 비롯하여 안드레, 야고보, 요한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아보고 그분에게 자신의 생애를 온전히 의탁하며 따르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충성스런 양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충성스런 양으로 쓰임 받아야 할 것입니다. 가룟 유다처럼 믿는 척해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결국 지옥을 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오직 주님만 따라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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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 안동지역 여성사역의 개척자(2)김정숙, 안동지역 여성사역의 개척자(2) 김승학 목사 신학과 교수/기독교교육학 안동교회 담임목사 김정숙 전도사 (金貞淑, 1880~1969) 목차 서론 1. 출생과 결혼 2. 최초의 순교를 목도한 시댁(媤宅) 3. 여성 복음전도의 선구자 4. 평양여자성경학원의 유학생 5. 담임목사의 부재(不在)를 메꾼 여성교역자 ................................................... 10. 평신도 사역자 결론 2. 김정숙, 최초의 순교를 목도한 시댁(媤宅)(2) 김정숙의 시조부인 김승걸은 토마스 선교사의 처형 현장 가까이에서 순교당하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고 한다. 토마스 선교사가 죽어가면서도 평안한 얼굴로 박춘권에게 성경책을 건네주면서 “예수 믿으라”고 한 모습을 그는 잊을 수 없었다고 하면서 당시의 현장을 생생하게 가족들에게 전했다. 그러나 김승걸과 그의 가족은 사울처럼 좀처럼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지는 강렬했다. 김승걸의 후손이 스스로 예수를 믿지 않자 하나님께서는 외부 사람을 동원하셨다. 이들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도구로 사용하신 사람이 김정숙이었다. 예수를 믿기 시작한 김정숙은 시댁의 구원을 위해 쉬지 않고 기도하면서 복음을 전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가정의 복음화는 요원한 듯 보였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집을 떠나 평양에서 5년 동안의 신학공부를 마친 김정숙은 고향으로 내려왔다. 김정숙은 이전보다 더 열정을 갖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복음을 전하는 일에 마음과 정성을 다했다. 김정숙은 삶 속에서 식구들에게 헌신하며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고 날마다 전도했다. 그 결과 구원의 빛이 김정숙의 시댁에 비추기 시작했다. 결국, 그의 시댁은 복음을 수용하였고, 오늘날 6대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 충성스럽게 헌신하고 있다. ▲1909년 선교지 분할로 사역지인 강원도를 떠나야했던 오월번 선교사 가족은 안동선교부로 임명을 받은 후 대구로 갔다가 1910년 6월 현재 안동교회 부지 내에 있던 선교사 사택으로 이사했다.(사진2) 3. 김정숙, 여성 복음전도의 선구자 아낌없이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서라도 남편을 살리려고 했던 김정숙은 남편이 죽자 그 이듬해부터 예수를 믿기 시작했다. 29세인 1908년, 예수를 믿게 된 김정숙은 1911년 당시 안동선교부 선임 오월번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았다. 오월번 선교사는 미국 북장로교 파송 선교사로 1900년 10월 내한했다. 그의 사역지는 호남과 함경도 지역을 제외한 평양, 서울, 황해도, 강원도, 경기북부, 안동, 영주 등으로 거의 한국 전역을 망라했으며, 그는 어느 지역에서나 자신에게 맡겨진 사역에 최선을 다했다. 그러다 한국에 파송된 선교사들이 1909년 선교지 분할을 했고, 1909년 가을 오월번 선교사는 신설이 확정된 안동선교부로 임명을 받고 그해부터 사역을 시작했으며, 가족은 1910년 6월 안동으로 이주했다. 1909년 안동에 도착한 오월번 선교사의 사역지는 봉화, 순흥, 풍기, 예천, 문경, 함창, 상주 북편, 영주 등 안동의 서북지역이었다. 오월번 선교사는 어떤 때는 하루 40㎞씩 보름 동안 4백여 명을 전도할 만큼 쉼 없이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개척했고, 개척한 교회들을 돌보았다. 그가 돌본 교회로는 고창교회(현 풍산교회), 흥안교회(현 안흥교회), 내매교회, 녹전교회, 장사리 교회, 척곡교회, 풍기교회, 순흥교회, 영주제일교회 등이며 그의 헌신으로 이 교회들은 든든히 뿌리내릴 수 있었다. 오월번 선교사가 소백산 기슭의 풍기 등지에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돌보았을 때인 1911년은 김정숙이 세례를 받은 해와 일치한다. 예수 믿기로 결심한 김정숙은 거침없는 믿음의 행보를 이어갔다. 세례받은 후 1년이 지난 1912년부터 김정숙은 생활의 근거지를 풍기에서 안동으로 옮겨 본격적으로 선교사들의 복음 사역을 도왔다. 김정숙은 사명감에 불타는 복음의 증인이었다. 특히 농민들이 논밭에서 일하는 시간, 비어있는 집에 가서 밥을 해놓고 저녁 때 일터에서 귀가하는 농민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을 정도로 복음을 전하는 일에 열심을 내었다. 그는 일회성 전도를 지양하고 생활 속에서 맺는 관계를 통해 복음을 전도하는 창의적이고 선진적인 전도방식을 취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김정숙은 안동선교부에 속한 선교사들의 조사로 경상북도 북부지역에 소재한 교회들을 순회(巡廻)하면서 복음을 전했다. 참고로 1914년 인노절 선교사가 안동에 부임한 이후에 오월번은 북쪽 지역을, 권찬영 선교사는 동쪽 지역인 예안, 청송, 영양, 영덕 등지를, 남쪽은 인노절 선교사가 담당하였다. 안동지역의 여러 교회들은 김정숙을 초청하기도 했다. 실제로 김정숙과 종질이지만 김정숙이 아들로 생각한 김학준 장로는 조사(助事)로서 김정숙이 손수 짚신을 만들어 신고 예천, 용궁, 함창, 상주, 문경, 풍기, 순흥, 봉화, 영주, 예안, 영양, 영해, 영덕, 청송, 의성, 비안 등 경상북도 북부지방 거의 전 지역을 순회하며 복음을 전한 복음전도자였다고 증언한 바 있다. 1911년부터 1916년 사이 안동지역 초기 대표적 조사로는 김성삼, 김병, 엄응삼, 서화선, 권수백, 김익현, 박영화, 김인옥 등으로 이들과 함께 김정숙은 이름도 빛도 없이 헌신함으로써 이 지역의 복음화가 앞당겨 질 수 있었다. ▲1897년 처음으로 단기성경학원으로 시작한 평양여자성경학원은 1907년 본격적으로 여성 교역자를 양성했고, 1923년에는 평양여자고등성경학교로, 1938년에는 평양여자신학원으로 개명하여 한국교회 여성 교역자의 산실이 되었다.(사진3) 4. 김정숙, 평양여자성경학원의 유학생(1) 안동에서 3년 동안 조사로 활동하던 김정숙은 비교적 늦은 나이인 36세가 되던 해인 1915년,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기로 결심하고 평양으로 출발했다. 평양에 있는 여자성경학원에 입학하여 신학수업을 받기 위함이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그의 시조부 김승걸은 남편이 죽으니 정신이 돌았다고 하면서 “그냥 두라”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김정숙이 공부를 마치고 5년 만에 안동으로 돌아왔을 때 그의 시아버지는 “네가 정신이 돌은 줄 알았는데 집에 돌아와 주어서 고맙다”며 반갑게 맞아 주었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김정숙은 집안 어른들의 허락을 받지 않고 평양으로 떠났던 것 같다. 하지만 김정숙은 시댁으로부터 버림받지 않고 여전히 가족의 일원으로 인정을 받은 것으로 보아 평소 좋은 인상을 주었던 것 같다. /논문 발췌‧정리=박은숙 기자/ <논문 원본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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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 ··· 구미송정교회 선교사 파송식 열려권여호수아·최한나(서아시아), 이시몬·김주애(중동지역) 선교사 부부 파송 ▲구미송정교회는 3월 28일 권여호수아‧최한나 선교사 부부(왼쪽)와 이시몬‧김지애 선교사 부부를 파송하는 예배를 드렸다.(선교사들이 교인들과 함께 '파송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모습.) “귀하는 선교사의 직무가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명령을 수행하는 거룩한 임무로 믿고 모든 일에 근신하며, 복음을 힘써 전파하고, 복음에 합당하게 행하여, 맡은 바 본분에 생명을 다하기까지 충성하기로 하나님과 교회 앞에서 서약하십니까?” ··· “네.” “네.” 지난 3월 28일(주) 오후, 구미송정교회에서는 권여호수아‧최한나 선교사 부부와 이시몬‧김지애 선교사 부부의 선교사 파송예배가 열렸다. 이들 선교사는 ‘서약’ 시간에 최문선 담임목사의 질문에 각각 “네.”라고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1965년 설립 이래 ‘사람을 살리며 키우며 세워서 세상을 향해 파송하는 교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 온 구미송정교회는 국내선교는 물론이고 해외 여러 지역에도 단독선교사를 꾸준히 파송하는 등 선교의 결실을 맺고 있는 교회이다. 특별히 이번 파송식은 코로나19로 인해 세계선교가 위축되고 있는 상황에서 젊은 선교사 부부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복음화율이 낮은 서아시아와 중동지역으로 나간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했다. 파송식은 예배와 축하 순서로 진행됐다. 선교위원장 이근태 장로의 사회로 드려진 예배에서 김스데반 선교사는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선포했다. 김 선교사는 “송정교회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선교사 두 가정을 파송하는 것은 큰 도전을 준다”며 “교회의 본질은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고, 교회의 생명력은 비전을 성취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권여호수아와 이시몬 선교사는 답사에서 “교인들의 사랑과 격려로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며 “선교지에서 늘 예배와 기도로 승리하며 복음을 증거할 수 있도록, 성령의 역사로 많은 제자들이 세워질 수 있도록 중보기도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박은숙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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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 안동지역 여성사역의 개척자(1)김정숙, 안동지역 여성사역의 개척자(1) 김승학 목사 신학과 교수/기독교교육학 안동교회 담임목사 김정숙 전도사 (金貞淑, 1880~1969) 목차 서론 1. 출생과 결혼 2. 최초의 순교를 목도한 시댁 3. 여성복음전도의 선구자 4. 평양여자성경학원의 유학생 5. 담임목사의 부재(不在)를 메꾼 여성교역자 ................................................... 10. 평신도 사역자 결론 서론 한국에 도착한 선교사들은 성경 말씀 그대로 남녀노소, 빈부, 계층에 관계없이 복음을 전했다. 그런데 귀족보다는 평민,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더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조선 시대 말기의 여성은 유교적 전통으로 인해 철저하게 무시당했다. 한국 전통사회 안에 뿌리 깊은 성차별의 문화와 여필종부, 삼종지도, 칠거지악, 남녀칠세부동석, 부부유별 등의 가부장적 가치관은 여성의 인권을 철저히 억압했다. 무지와 가난, 고된 노동과 억압된 삶을 살던 여성은 한(恨)을 품은 존재였다. 조선 시대 말기에 입국한 선교사들의 눈에는 누구보다 한국 여성들이 복음의 대상이요 구원받아야 할 존재로 보였다. 이런 환경에 있던 여성들은 한국 땅에 도착한 선교사들에게 누구보다 우선적으로 중요한 선교대상이 되었다. 특히 1885년 4월 5일 인천항에 함께 도착한 미국 장로교와 미국 감리교 선교사는 선교대상으로서 여성을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1893년 장로교와 감리교의 양 교파 연합모임에서 선언한 10가지 한국선교정책 중에서 두 번째가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선교였다. 감리교의 경우는 의료사업, 교육사업, 자선사업, 여성의 인권회복 등에 치중했고, 여성의 계몽과 교육에 있어서 장로교에 비해 앞서 나갔다. 직접적인 복음전파를 강조한 장로교는 우선적으로 가난한 자와 낮은 계층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였다. 사회 계층 중에서도 가장 소외된 여성들을 선교의 타깃으로 삼았다. 장로교 선교사들은 여성들이 다른 계층에 비해 더 쉽게, 더 빨리 복음에 반응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여성에게 복음을 전했던 것이다. 하지만 여성들에게 복음이 전해진 첫 10년 동안 여성 복음화의 속도는 매우 느렸다. 여성들이 소극적으로 복음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 여성들이 매우 적극적으로 복음을 수용하고 복음에 응답함으로써 복음전파가 급속히 이루어졌다. 그 결과 사회적 활동에 수동적인 여성들이 전도사역과 계몽사업에 주체적으로 참여할 뿐 아니라 일제의 압제 가운데서 애국 여성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1. 김정숙, 출생과 결혼 “임진(臨津) 이북의 땅은 다시 오랑캐의 땅이 될 터이니 몸을 보전하는 것을 논할 수 없다”는 예언으로 불안해하던 이북 사람들 중에는 이남으로 이주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특히 이들이 가장 선호한 지역은 정감록(鄭鑑錄)에서 언급하고 있는 ‘십승지’의 첫 번째 승지인 경상북도 풍기였다. 정감록의 예언을 믿고 있던 북한 사람들이 실제로 이남으로의 이주가 시작된 것은 1890년대 후반부터였고, 이어서 1920년대에는 개성·평양에서 약 100여 가구가 풍기로 집단 이주를 했다. 현재 이들 후손들이 1,000가구 정도 남아 있다고 한다. 1907년 창립된 풍기성내교회는 지역 토착 주민들과 다른 지역에서 이주해온 이주민들이 함께 신앙공동체를 이룬 것으로 성내교회 100년사는 기록한다. 김정숙(金貞淑)은 1880년 11월 10일 김병연(金秉淵)의 장녀로 풍기에서 출생했다. 그는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으며 정숙한 여인으로 성장했다. 김정숙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가 비록 체구는 작았지만 단정하고 고상하며 강직한 성품을 갖고 있었다고 기억한다. 더욱이 그는 자식과 손자뻘 되는 교역자를 존경하고 귀애했다고 안동교회 김광현 원로목사는 기억한다. 김정숙은 고매한 인격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그의 이러한 성숙한 성품은 지역사회에 복음을 전하는 전도부인으로, 또한 교회에서는 전도사로서 목회 사역을 빛나게 만들었던 것이다. 김정숙은 1898년 19세 때 김규립(金奎岦)과 결혼했다. 김정숙의 시부인 김수업은 성균관 진사에 합격했으나 당시 일본과 러시아 등 열강의 침입으로 인해 정국이 어수선한 1894년, 친척들과 함께 평양에서 풍기 금계리로 이주하여 생활하고 있었다. 김수업이 이주한 시기는 북한 사람들이 풍기로 이주한 1차 때였다. 따라서 김수업의 후손은 무려 100여 년 전 풍기로 이주하여 현재까지 생활하고 있는 셈이 된다. 김정숙은 결혼한 지 8년이 지난 1907년, 28세 때 병에 걸린 남편이 세상을 떠나 혼자가 되었다. 그는 슬하에 단 한 명의 자녀도 없이 청상과부로 홀로 남게 되었다. 중병(重病)에 걸린 남편을 헌신적으로 간호하면서 마지막까지 살리려고 했던 김정숙의 노력은 눈물겨울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남편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손가락을 잘랐던 열부(烈婦)였다. 당시 남편이 괴로워하며 숨을 헐떡거릴 때 약지(藥指)를 끊었다고 한다. 남편이 약지에서 나오는 피를 먹으면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믿은 김정숙은 부엌으로 가서 문지방에 약지를 놓고 부엌칼로 내리쳐 쏟아지는 피를 그릇에 받아 남편에게 먹였지만 결국 남편은 세상을 떠났다. 훗날 평양 여자성경학원에 입학한 김정숙은 선교사가 피아노를 배울 사람은 나오라고 했을 때 피아노 위에 놓은 손가락 중 왼손 넷째 손가락이 없는 것을 본 선교사가 이 손으로는 피아노를 칠 수 없다는 말을 듣고 피아노 배우는 것을 포기해야 했다. 2. 김정숙, 최초의 순교를 목도한 시댁 김정숙의 시댁(媤宅)은 한국 기독교 최초의 순교 현장을 목격한 가문으로 전해진다. 그의 남편 김규립의 조부인 김승걸은 평양에서 발생한 한국 기독교 최초의 순교자인 토마스(R. J. Thomas, 1840년~1866년) 선교사의 순교를 직접 목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866년 8월, 토마스 선교사는 항해사 겸 통역관으로 제너럴 셔먼호에 탑승하여 대동강으로 올라왔다가 당시 평양감사 박규수에게 붙잡혀 9월 5일 26세로 평양 대동강 변에서 처형을 당했다. 토마스 선교사는 마지막 순간 자신에게 칼을 겨누던 한 병사를 위해 기도하고 성경을 전달했는데 그가 바로 박춘권으로, 그는 이런 글을 남겼다. "내가 토마스 선교사를 죽인 것은, 지금 생각할수록 이상한 감이 있다. 내가 그를 찌르려고 할 때 그는 두 손을 마주잡고 무슨 말(기도)을 한 후 붉은 베를 입힌 책을 가지고, 웃으면서 나에게 받으라 권하였다. 내가 죽이기는 하였으나, 이 책을 받지 않을 수가 없어서 받아왔노라." ▲1840년 영국에서 출생한 토마스 선교사는 런던 선교회 파송으로 중국 상하이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천주교인을 만난 계기로 조선 선교에 관심을 갖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제너럴 셔먼호를 타고 대동강변에 좌초되어 1866년 9월 5일 순교당했다.(사진1) /논문 발췌·정리=박은숙 기자/ <논문 원본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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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장 재 효 목사 서울성은장로교회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1~2절)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5~6절)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우리 죄를 위하여 육신을 입고 사람으로 오셔서 그 몸으로 우리 죗값을 대신 담당해 죽임당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 박혀 운명하신 그 일을 생각해 보며 예수님의 말할 수 없는 고난의 결실로 우리가 구원받았음을 감사함이 마땅합니다. 본문 이사야 53장은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시기 약 700년 전에 예언된 말씀입니다. 구약의 예언대로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그 뜻을 성취하셨습니다. 우리는 오늘 이 시간에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미리 선포하고 기록하게 하신 그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당하셨다는 이 복음을 믿고 십자가를 바라보는 신앙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1.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가리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천국 가는 길이 되시며 진리가 되시고 영원한 생명이 되어 주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진리의 말씀을 애타게 전하시고 이적과 기사를 보여주셨음에도 믿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본문에 예언되었기를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1절)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반어법적인 표현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이스라엘에 선포되었음에도 그들이 믿지 않았고, 하나님의 크신 권능이 그들의 역사 가운데 체험되었음에도 믿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는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고 반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여호와의 팔은 구원하시는 만능의 팔로 하나님의 능력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팔, 그 팔이 누구에게 나타납니까? 바로 세상 학문이 부족할지라도 성령으로 지혜를 얻은 사람입니다. 즉, 그 사람에게 성령의 지혜를 주셔서 성령의 계시와 조명으로 하나님을 알아보게 하시고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희생양으로 내 죄를 십자가에서 대신 당해 주신 사실을 알게 하고 믿어지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성경에서는 복 받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2. 예수님의 볼품없는 모습 예수님의 모습이 본문 2~4절까지는 이제 부정적인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타락한 인간들의 잘못된 관점에서 볼 때 예수님에 대해 그릇되게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는, 즉 앞으로 700년 후에 세상에 태어나실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서 자라날 때의 모습이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 볼품이 없다고 소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타락한 인간의 눈으로 볼 때 고운 모양도 풍채도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었다고 말합니다(2절). 그것 때문에 “그는 멸시를 받고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3절)고 설명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생각한 것과 너무나도 다른 볼품없는 모습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완전히 무시와 외면당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다”(3절)고 안타까운 심정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옥 문턱으로 끌려 빠져들고 있는 타락한 인간들에게 있어 예수님의 볼품없는 모습은 귀하게 여길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은 “우리가 전한 이 복음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라며 그렇게 반어법으로 말씀을 미리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당하신 고통에 대해서는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4절)이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우리가 질병으로 당하는 고통을 예수님이 대신 담당하셨다는 것을 말하며, 지은 죄로 인한 우리의 슬픔을 예수님이 대신 담당하셨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4절)고 잘못된 판단을 내려 버립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그러니 예수님을 볼품없는 모습으로 여기고 잘못 판단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과연 구원 얻을 자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신 것은 나를 위해 대신 담당하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참으로 복 있는 자입니다. 3. 예수님이 고난 당하신 목적 예수님이 왜 고난을 당하셨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내용이 다음 구절에 이어집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5절)고 전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머리에 수십 개의 가시가 찔려서 피가 한없이 흘러내린 것이 바로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라고 말합니다. 또 예수님의 온몸이 상하신 것이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죗값으로 받을 벌을 예수님이 대신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신이신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화목을 위한 희생양이 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를 온갖 질병에서 나음을 얻게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몸의 모든 병을 고침 받게 해 주신 것입니다. 전에 말씀드렸듯이 그동안 여러 집회 현장에서 실제로 많은 병자가 나음을 얻었습니다. 암으로 의사가 죽는다고 하였지만 하나님이 고쳐주심으로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또 미국에서도 소경이 눈을 뜨고, 대구에서는 나병환자가 깨끗이 낫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일은 예수님이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은 증거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행동하였나요? 6절에 보면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이라고 한탄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고난을 당하심으로 평화를 주시고 나음을 주셨건만 우리는 여전히 잘못된 길로 걸어가는 양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양처럼 잘못 행하여 자기 멋대로 죄만 짓는데도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다”고 말씀하신 것을 볼 때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사61:1)라고 이사야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대속의 희생양으로 세상에 오셔서 하실 일을 미리 예언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선포되고 700년 후에 예수님께서 그 일을 성취하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권면의 말씀) 이 말씀을 듣고 있는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지금 코로나19에 전염될까 봐 전전긍긍하며 신앙생활은 다 포기하고 엎드려 있지는 않으십니까? 예수님을 진짜 믿는 사람이라면 자기 형편과 처지가 아무리 힘들고 어렵고 죽음 직전에 있다 할지라도 주님께 나아가 엎드려 고백할 수 있는 용기와 또 확신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18:8)라고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내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라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질문한 것처럼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묻고 계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죗값으로 시달려 왔던 모든 절망과 실패, 또 고통스러운 만 가지 질병, 여러 환란 등 어떤 문제든지 간에 예수님께서 해결 못 하실 일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한 일이 없느니라”(막9:23)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내 구원을 위해 죽임당하신 예수님의 희생이 결코 헛되지 아니했다는 것이 오늘 여러분들의 신앙생활로 믿음의 결실을 꼭 이루어가시기를 바랍니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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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별이름 없는 별 천석길 목사 구미남교회 시골의 조그마한 예배당은 언제 건축했는지도 모를 오래된 낡은 건물이었습니다. 삐익 소리가 나는 문을 열고 우당탕 뛰어 들어서면 어린아이의 눈에는 아주 넓어 보이는 마룻바닥의 저 끝에 우리가 장난감처럼 건드려 보는 발로 밟아서 바람을 넣어 연주하는 풍금이 있었을 뿐 신기한 것도, 새로운 것도 없는 휑한 예배당이었습니다. 그래도 주일이면 교회에 가고 싶었던 것은 우리를 지극히 사랑해 주시는 선생님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노래를 가르쳐 주시고, 율동도 하게 하고, 때로는 성경 요절 암송을 잘했다고 굵은 왕사탕도 주셨습니다. 우리가 선생님, 선생님이라고 불렀던 그들은 농사를 짓고 돼지와 닭을 키우는 평범한 시골 분이었습니다. 그래도 우리 선생님은 전도사님이 설교하시는 대로 살려고 무던히 애를 쓰시는, 우리의 눈에는 스타(별)였습니다. 선생님에 대해서 잊혀지지 않는 한 폭의 그림은 어느 해 봄날의 수요일이었습니다. 선생님은 논에서 소를 몰고 쟁기질을 하다가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답니다. 해거름 시간에 울려 퍼지는 예배당 종소리를 듣고 급하게 교회에 오느라고 저녁 식사를 못 한 채, 집에 가서 옷 갈아입을 시간도 없이, 일하던 논에 소를 묶어 두고 교회로 달려오셨답니다. 수요일 어린이 예배에 모이는 학생은 열 명 안팎이었지만 선생님은 우리를 위해서 언제나 최선을 다하시었습니다. 돌이켜 보니 설교의 내용은 다 잊었지만 설교하시던 그 모습은 흑백사진으로 제 기억에 오롯이 남아 있습니다. 하루 종일 무논에서 일을 하시고 엄청 피곤했을 텐데… 갈아입지 못해 흙이 묻은 전투복과 같은 그 진지함을 보면서 어린 마음이지만 뭉클했습니다. ‘신앙생활은 이렇게 하는 것이야!’를 분명히 보여주신 분이었습니다. 어른이 되어 생각해 보니 조용한 봉사자요, 이름 없는 별이었습니다. 그들은 모임에 늦지 않으려 애를 쓰며, 누군가를 위해 음식 만들기를 기뻐했으며, 마룻바닥과 강단을 닦았으며, 세상적인 자랑거리는 없었지만 하나님의 기쁨으로 찬송의 곡조를 흥얼거렸던 분이었습니다. 조용한 봉사자! 이름 없는 그 별이 예수님을 믿어지게 했고, ‘너희도 우리처럼 살아야 해!’라는 그림을 손에 쥐여 주었습니다. 이름 없는 그 별이 우리 안에서 다시금 반짝반짝 빛을 발하기를 소망해 봅니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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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쌤과 함께 떠나는 구미 봄맞이 랜선여행「퇴근길 랜선 타고 ON 굿 이브닝 구미」 2강 구미의 건강한 먹거리 홍보로 농가도 살리고, 건강도 지켜 코로나극복을 향한 응원의 메시지 담아 요르신과 제철음식 요리대결 펼쳐 ▲장세용 구미시장(오른쪽)과 김태훈 요르신(왼쪽)의 요리대결 장면.(사진=구미시 제공) 구미시(시장 장세용)는 3월 18일 「제1기 구미시정아카데미」 수강생 40명을 대상으로 2강 구미시 문화관광분야와 농특산물 수업을 진행했다. 첫 번째 시간에는 구미의 주요 농특산물 소개와 저렴하게 살 수 있는 방법 등에 관해 설명하며, 현재 주요역점사업인 구미형 푸드플랜 사업에 대해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특히, 장 시장은 <구미농산물을 부탁해> 코너에서 김태훈 요르신(고아읍 관심2리 이장)을 초청해 코로나19로 지친 시민을 위로하는 마음을 담은 구미농산물 레시피를 공개하고 함께 요리대결을 펼쳤다. * 요르신(요리하는 어르신), 「백파더, 요리를 멈추지 마」 출연 두 번째 문화·관광시간에는 구미시 최초 공립박물관으로 등록된 구미성리학역사관의 역사적 가치와 야은 길재부터 여헌 장현광으로 이어지는 성리학 5현에 대해 알아보고, 구미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인 왕산 허위, 장진홍, 박희광 선생의 일대기를 돌아보는 등 우리 지역의 역사를 깊이 있게 공부해 보았다. 이어진 <구미관광, 어디까지 가봤니> 영상코너를 통해 전국체전 마스코트 새롬이·행복이와 함께 구미의 관광지를 돌아다니며 봄맞이 랜선 여행을 떠나보는 시간을 가졌다. 장세용 구미시장은 “2강은 봄을 맞아 코로나19로 지쳐있는 시민을 위해 특별히 랜선여행을 준비했다”며 “믿고 먹을 수 있는 정직한 우리 농산물 많이 이용해주시고, 소개해드린 관광지에서 힐링되는 봄을 맞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구미시정아카데미」는 시의 주요정책을 시민들에게 알기 쉽게 설명하는 프로그램이며 산업경제, 문화관광, 사회복지, 도시환경 등 평소 시민들이 시정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강의내용으로 진행된다. 강의는 3월 11일부터 25일까지 매주 목요일 19시에서 20시까지 주 1회, 한 시간씩 진행되며, 모든 강의는 장세용 구미시장의 직강으로 운영된다. 박은숙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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