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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의 날, 아름다운 우리 독도 다 함께 지키자대한칙령 낭독, 대형 태극기 퍼포먼스 이철우 도지사, 독도수호 결의문 발표 등 독도 영유권 수호 재천명 ▲독도의 날 기념식 후 단체사진 촬영.(사진=경상북도) 경상북도와 독도재단(이사장 이철우)은 25일 독도의 날을 맞아 안동 소재 경북독립운동기념관에서 독도수호 결의대회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에는 이철우 경북도지사를 비롯한 도내 독도 단체 회원 등 50여 명이 참석했다. 이번 결의대회는 대한제국 칙령 제41호 제정* 121주년을 기념해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독도의 영토 주권을 대내외 홍보하기 위해 마련됐다. 당초 독도에서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독도 인근 어선전복 사고 수습에 총력을 다하기 위해 독립운동기념관으로 변경했다. * 대한제국 칙령 제41호 제정(1900.10.25.)·공포를 통해 울릉도·독도를 관제에 편입, 영토 주권을 법적으로 천명 결의대회는 고종황제 복장을 한 재현 배우가 대한제국 칙령 제41호를 낭독하는 이벤트로 시작했다. 이어 칙령이 그려진 대형 태극기(가로 18m×세로 12m)에 참가자 서명 퍼포먼스, 이철우 지사의 독도수호 결의문 발표, ‘독도는 대한민국 땅’ 구호 제창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이번 대회를 통해 선조들의 고귀한 호국의지와 희생정신으로 지켜온 독도를 역사적·지리적·국제법적으로 대한민국 영토임을 다시 한 번 되새기는 계기가 됐다”라면서, “앞으로도 일본의 독도 도발에 적극 대응해 나가면서 평화의 섬으로 지켜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박은숙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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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시, 해외도시와 교류 협력 추진페카 메쪼 주한핀란드대사 안동방문 ▲페카 메쪼(좌) 주한핀란드대사와 권영세 안동시장.(사진=안동시) 페카 메쪼(Pekka Metso) 주한핀란드대사가 10월 21일 안동시를 방문했다. 이날 2시 예정인 국제교류 아카데미 강연(안동대)을 앞두고, 안동시를 공식 방문하여, 권영세 안동시장과 함께 한국-핀란드 외교관계를 비롯 백신, 대마 등 안동의 미래 신성장산업과 핀란드의 경제교류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아울러, 유네스코 3대 카테고리를 보유한 안동의 세계유산 및 핀란드와 안동의 미래 교육 등 향후 핀란드와의 다각적인 교류에 대해 협의했다. 안동시는 내년에 안동에서 개최될 제16회 국제교육도시연합 세계총회 및 제18회 세계역사도시회의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핀란드대사관의 많은 협조와 관심을 당부했다. 안동시는 올해 국외 자매우호 도시의 주한 외국공관장인 이스라엘대사(5.27.), 주부산일본총영사 문화담당관(9.30.), 페루대사(10.14.)를 초청하여 국제교류 아카데미 강연을 개최한 바 있다. 안동 한상덕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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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광복 기념 주일에 봉화척곡교회를 가다<봉화척곡교회 탐방기> 8.15 광복 기념 주일에 봉화척곡교회를 가다 ▲97세인 김영성 장로가 찬송가에 맞춰 피아노 반주를 하고 있다. 광복 76주년을 맞이하여 그간 3.1절, 6.25 전쟁, 8.15 광복절 행사 및 8.29 국치일 상기 나라 사랑 음악의 밤 행사를 통해 민족교회로서 그 사명을 다하고 있는 봉화척곡교회를 찾아갔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교회와 종탑이 보이고 그 옆에서 태극기와 교회기, 명동서숙기 깃발이 파란 하늘에 휘날리고 있었다. 예배당에 들어가니 그날은 김종숙 목사의 후손들이 많이 참석하여 함께 예배를 드렸다. 김종숙 목사의 증손녀 김정희 권사의 피아노 반주, 원성현 집사의 대표기도, 김종숙 목사의 증손자 김명환 집사의 특송이 있었다. 이어 박영순 담임목사가 “지금도 계속되는 하나님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선포했고 마지막으로 애국가를 제창했다. 제2부 순서로는 김종숙 목사의 장손인 김영성 장로(현 97세)가 척곡교회 앞집에서 태어나서 자라면서 본대로 들은 대로 그때의 일들을 눈물을 훔치며 전했다. 김영성 장로의 기억에 의하면 일체 치하에서 척곡교회 예배당에 모인 성도들은 대부분 흰 옷을 입은 여자들이었는데 늘 엎드려 흐느껴 울며 기도하던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그때는 그들이 왜 우는지, 남자 성도들은 왜 거의 보이지 않는지 몰랐다고 한다. 남자들은 의병 활동을 위해 집을 나가서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상황이었다는 것도 그때는 몰랐다는 것이다. 그 후 춘양으로 이사 가서 5년 정도 있다가 독립운동 사건으로 평양으로 홀로 떠난 아버지와 같이 살기 위해 어머니와 4남매가 짐을 싸들고 평양에 가서 살게 됐다. 그는 광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징병 2기 군 입대를 면하려고 교원 시험에 합격하여 1945년 초 진남포 제일국민학교 교사가 되었다. 그해 8월 15일 낮 12시가 되자 교무실에 라디오를 틀어 놓았는데, 방송 내용은 “일본 124대 히로히토 짐은 동양의 평화를 위하여 전쟁이 종결된 것을 선포하노라”는 한 마디였고, 그것으로 해방이 되었다. 평양 시내 중앙통으로 나가 보니 이미 만세를 외치며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진남포 상공학교 브라스 밴드는 연신 애국가를 연주하며 모두가 목이 쉬도록 애국가를 불렀다. 이듬해 3월에 아버지의 권유로 고등학생인 남동생과 단둘이 월남하고 가족이 흩어져 38선을 넘어 봉화로 왔으나 연락이 잘되지 않아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어머님은 끝내 오지 못하고 영영 이별한 지도 많은 세월이 흘렀다. 김영성 장로는 “내 조국 대한민국은 소중합니다. 과거 나라가 어려울 때 기독교가 나라를 지켰습니다. 3.1운동 당시에도 33인 중 16명이 기독교도들이었고, 우리 믿음의 선조들은 국권이 흔들릴 때 목숨 바쳐 나라를 지키려 했습니다. 지금의 우리 조국의 앞날은 을사늑약 때보다 나음이 없습니다. 남북한은 아슬아슬한 평화를 유지하고 있고 일본은 여전히 자기 잘못을 인정하기보다는 역사를 왜곡하고 독도를 두고 싸움을 걸어오고 있습니다. 믿는 사람은 모두가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라고 노령임에도 힘주어 말했다. 척곡교회를 떠나오며 일제 36년과 6.25 동족상잔의 전쟁을 몸으로 겪어온 노옹의 고백과 당부의 말씀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우리의 후손들이 꿈을 꾸고 꿈을 이루는 나라, 희망을 가지고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굳건한 대한민국을 위해 기도하리라 …. 내 나라 대한민국 만세! 우리 조국 대한민국 만만세! 봉화 우병백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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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에 묻혀있던 경북 독립운동가 33명, 독립유공자로 확정경상북도와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은 국가보훈처가 지난 제76주년 광복절을 맞이해 발표한 247명의 독립유공자 포상자 중 경북 출신 독립운동가 33명이 포함됐다고 8월 26일 밝혔다. 경북은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이 가장 활발했던 지역으로 이번에 독립유공자로 확정된 33명을 포함하면 지역의 독립유공자는 2,373명으로 전국의 독립유공자 1만 6932명의 14%를 차지해 가장 많다. 이번에 포상 결정된 경북 독립유공자 33명 중 21명은 독립운동기념관을 통해 발굴해 낸 독립운동가들이고, 나머지 12명은 국가보훈처 및 후손의 신청 등에 의해 발굴됐다. 한편, 이번에 포상되는 독립유공자는 건국훈장 애족장 14명, 건국포장 7명, 대통령표창 12명이다.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된 14명은 김종부(3.1운동)·김진휘(3.1운동)·임석현(3.1운동)·정덕필(의병)·강찬오(의병)·황신흠(국내항일)·권우섭(국내항일)·곽덕규(국내항일)·박진호(일본방면)·양용호(의병)·노말수(3.1운동)·김석이(3.1운동)·이승봉(의병)·최해일(일본방면)이다. 건국포장에 추서된 7명은 강석희(국내항일)·신용균(국내항일)·박인길(국내항일)·신봉규(국내항일)·박영수(국내항일)·김창락(3.1운동)·권학동(의병)이다. 대통령표창에 추서된 12명은 류연태(3.1운동)·이주섭(3.1운동)·문소원(3.1운동)·이중창(국내항일)·이출이(3.1운동)·이은화(3.1운동)·이정백(3.1운동)·나부석(3.1운동)·정예술(국내항일)·이서구(3.1운동)·정두표(국내항일)·황갑수(국내항일)이다.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정진영 관장은 “앞으로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을 지속적으로 조사하여 역사 속에 묻혀있는 독립운동가들의 애국정신과 희생정신을 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혜경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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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오롱인더스트리, 구미공장 추가 증설··· 2,300억 투자5G 통신, 차량경량화 등 4차 산업 핵심소재, 세계시장 정조준 ▲8월 24일 구미시청에서 코오롱인더스트리(주) 투자양해각서(MOU)를 체결식이 진행됐다.(사진=경북도) 경상북도와 구미시는 8월 24일 구미시청에서 코오롱인더스트리(주)의 아라미드 섬유 제조시설 증설 투자를 위한 투자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날 협약식에는 이철우 경북도지사, 장세용 구미시장, 장희구 코오롱인더스트리 대표이사, 코오롱인더스트리 노동조합 위원장, 도의원 등이 참석했다. 투자협약에 따라 코오롱인더스트리는 올해부터 2023년까지 구미공장 부지에 2,300억 원을 투자해 아라미드섬유인 헤라크론(HERACRON®) 생산라인을 현재 7500t에서 1만 5000t 규모로 2배 증설하고 100여 명의 신규 일자리를 창출할 계획이다. 이번에 증설하는 헤라크론은 강철보다 5배 단단해 5mm 정도 굵기의 가는 실로 2t 무게를 들어 올릴 정도로 강하며, 섭씨 400~500도의 고온에서도 타거나 녹지 않아 ‘슈퍼섬유’로 불리고 있다. 연간 7만t 규모인 전 세계 아라미드 섬유 시장은 미국(듀폰), 일본(테이진)이 점유율 80%를 차지하는 양강 구도에서 후발주자지만 코오롱인더스트리를 필두로 한국기업들이 지난해부터 점유율을 꾸준히 높여가고 있다. 코로나 국면에서 헤라크론의 성장을 이끄는 것은 단연 5G통신 케이블 분야이다. 5G의 필수 설비인 광섬유는 기존의 구리선보다 전송속도가 월등히 높지만 쉽게 늘어나는 특성과 외부 충격에 약하다는 단점이 있어 이를 극복하기 위해 외부를 아라미드 섬유로 감싸고 있다. 헤라크론은 방탄복과 소방복 등 각종 보호 장비로 쓰이는데 기존 10kg의 방탄조끼를 이 소재로 생산할 경우 1.5kg 수준으로 줄일 수 있고, 또한 고온에 강한 특성 때문에 소방관들의 내열복이나 방염작업복 등에도 사용된다. 최근에는 헤라크론의 가볍고 단단한 특성으로 인해 주행거리와 부품 경량화 경쟁이 치열한 전기차 부품시장까지 적용 범위가 한층 더 넓어질 전망이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국내 최초로 나일론을 생산해 이 땅에 의류 혁명을 일으켰던 동력으로 아라미드 등 첨단 소재를 글로벌화해 다시 한번 국가경제 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해 줄 것”을 당부했다. 박은숙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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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 안동지역 여성사역의 개척자(7‧끝)김정숙, 안동지역 여성사역의 개척자(7‧끝) 김승학 목사 신학과 교수/기독교교육학 안동교회 담임목사 김정숙 전도사(金貞淑, 1880~1969) 목차 서론 1. 김정숙, 출생과 결혼 2. 최초의 순교를 목도한 시댁 3. 여성복음전도의 선구자 .............................................. 7. 안동교회 최초의 전도사 8. 경안노회 여전도회 연합회 리더 9. 일제에 저항한 애국운동가 10. 평신도 사역자 결론 10. 김정숙, 평신도 사역자 1934년 12월 17일 오후 4시 경안노회 주관으로 한국선교 50주년 희년기념식 및 기념축하예배가 안동교회에서 거행되었다. 크고 작은 축하기를 들은 안동교회, 안기교회, 신세교회 교인과 주일학교 학생들 약 1,000여 명은 찬송을 부르며 시가지를 행진하며 전도지를 시민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4시 30분 다시 안동교회로 모여 경안노회 만세를 삼창하고 기념식을 마쳤다. 이날 오후 7시에 시작된 희년 축하예배 시 안동교회 악대의 주악과 찬양이 있었고, 권찬영 선교사의 설교 후 표창식이 있었다. 이날 20년 이상 경안노회 경내의 교회에서 시무한 교역자 12인 중 여성으로서는 김정숙 전도사가 유일했다. 참고로 12인으로는 김영옥, 권찬영, 김인옥, 강석진, 장사성, 김우일, 권수백, 김종수, 강우근, 권중한, 김익현, 김정숙 등이었다. 김정숙 전도사는 1934년에 이미 20년 이상 교역자로 봉사한 것으로 인정받은 것으로 보아 적어도 1914년 이전부터 노회가 인정하는 여성 교역자였음에 틀림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김정숙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가 세례받은 후 1년이 지난 1912년부터 생활의 근거지를 풍기에서 안동으로 옮겨 본격적으로 선교사들의 복음 사역을 도왔다고 증언한다. 그는 회심 이후 전도부인으로 투신하여 헌신한 여성 사역자였다. 또한 평양여자성경학원을 졸업한 이후에는 교회와 노회를 위해 충성을 다했다. 이처럼 그는 경안노회 여성 지도자 중에서도 가장 앞선 선각자(先覺者) 중의 한 사람이었다. 교역자로 봉사하던 김정숙 전도사는 1937년, 15년 동안 섬겼던 안동교회에서 사임함으로써 전도사직에서 은퇴했다. 이때 그의 나이는 58세로 아직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도사직에서 은퇴한 것이다. 1930년대에 접어들면서 민족말살정책의 하나로 내선일체(內鮮一體)와 황국신민화(皇國臣民化) 등을 강요한 일제는 황국 신민서사의 암송도 강요했다. 특히 1937년 10월, 총독부 학무국에서 교학쇄신(敎學刷新)·국민정신 함양을 목적으로 보급했다. 학교·관공서·은행·회사·공장·상점 등 모든 직장의 조회와 각종 집회 의식에서 황국 신민서사는 낭송이 강요되었다. 다시 말해 이때는 일제의 민족말살정치가 극성기에 달했던 시절이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교회를 섬기는 교역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특히 김정숙 전도사는 안동 3·1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민족 운동자였다. 이러한 김정숙 전도사의 이력은 일제의 눈에 가시와 같았을 것이며, 일제는 총력을 다해 황국신민화 정책에 걸림돌이 되는 교화와 애국자들을 탄압하고 제거했을 것이다. 임학수 목사도 일제 말엽의 기독교 박해(迫害)로 사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제는 교회에 김정숙 전도사의 거취에 무언 혹은 유언의 압박을 가했을 가능성이 있다. 아마 김정숙 전도사는 자신이 교회에 부담을 주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따라서 김정숙 전도사는 스스로 사임의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김정숙은 은퇴 후 교역자 신분으로서가 아니라 평신도로 안동교회를 섬겼다. 이와 같은 사실은 앞서 언급한 김정숙의 사임 이유를 지지하게 한다. 더 이상 교회에 부담을 주지 않는 평신도 신분으로 김정숙은 자신을 필요로 하는 거룩한 일이라면 하나님과 교회의 부름 앞에 철저히 순종하며 마음과 정성을 다해 동참했던 것이다. 김정숙은 안동교회의 집사와 권찰로 봉사하다가 69세인 1948년에는 권사로 피선되었고, 1949년부터 1955년까지 여장년부 부장으로 충성을 다했다. 그는 안동교회 전도사직을 내려놓고도 평신도로 돌아가 교회를 섬기는 것을 중단하지 않았던 것이다. 김정숙은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은 어떤 직책이든지 최선을 다해 감당한 신실한 하나님의 일꾼이었다. 그래서 1963년 1월 20일에 열린 당회는 20년 이상 안동교회를 위해 봉직한 것을 기념하는 예식을 갖기로 결의했는데, 대상자는 김광현 담임목사, 김재성·조흥노·이홍구 장로, 그리고 김정숙 전도사 등이다. 안동교회는 김정숙의 전도사 사역과 평신도 사역을 남녀 차별 없이 존중했던 것이다. 11. 결론 김정숙은 보신(保身)의 길을 갈 수 있었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일평생 험지(險地)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한 믿음의 선배다. 32세가 되던 1911년, 그는 안동선교부 선임 오월번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은 이후 안동지역의 노회와 교회를 섬기다가 1969년 90세의 일기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는 안동지역 여성 사역의 개척자였다. 또한 그는 경안노회 여전도회연합회가 설립될 때 산파(産婆)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초기 경북 북부지역의 여성 복음화에 초석을 놓은 여성 지도자였다. 특히 김정숙은 1919년 3월 18일에 거행된 안동의 3·1 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던 행동하는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이었으며, 일제 말엽에는 일본제국주의에 맞서 신사 참배를 거절하고 신앙의 절개를 지킨 애국자였다. 그의 강직한 성품과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신앙, 그리고 성령 충만한 전도사역은 교회와 노회의 후배들에게 사표(師表)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김정숙은 그의 후손이 6대 신앙을 지켜 올 수 있도록 초석을 놓은 신앙의 지주(支柱)요 믿음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조사와 전도사, 전도사직을 은퇴한 후에도 평신도로서 무려 15년 동안 안동교회의 권찰로, 서리집사로, 여장년부 부장교사로, 또한 주일학교에서 어린이 사역에도 헌신함으로써 자신에게 맡겨진 크고 작은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한 충성스러운 하나님의 종이요 일꾼이었다. 그는 하나님을 만난 이후부터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순간까지 오직 하나님과 주의 몸된 교회를 위해 살다 간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김정숙의 일생을 회고하면 할수록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고 고백한 사도 바울의 육성이 들리는 듯하다. ▲경안노회 여전도회연합회 10주년 사진. 김정숙 전도사는 경안노회 여전도회연합회가 설립될 때 산파(産婆)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초기 경북 북부지역의 여성 복음화에 초석을 놓은 여성 지도자였다. 연합회의 초대 회장으로 수고한 김정숙 전도사는 두 번째 줄 정중앙에 앉아 있다. 맨 아래 줄 왼쪽에서 네 번째는 역시 경안노회 여전도회연합회의 산 증인인 김점향 권사를 볼 수 있다.(사진8) /논문 발췌‧정리=박은숙 기자/ <논문 원본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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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수운잡방’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총 114종의 음식 조리 및 관련 내용 수록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된 '수운잡방'.(사진=안동시 제공) 문화재청(청장 김현모)과 안동시(시장 권영세)는 (재)한국국학진흥원에서 보관 중인 안동 ‘수운잡방’을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했다. ‘수운잡방(需雲雜方)’은 경북 안동의 유학자 김 유(金綏, 1491∼1555)에서부터 그의 손자 김영(金?, 1577∼1641)에 이르기까지 3대가 저술한 한문 필사본 음식조리서이다. 위 책은 즐겁게 먹을 음식을 만드는 여러 가지 방법을 담고 있으며, 음식 조리서가 보물로 지정된 첫 사례이다. *제목의 ‘수운(需雲)’은『주역(周易)』의 “구름이 하늘로 오르는 것이 ‘수(需, 즉 수괘需卦)’이니, 군자가 이로써 마시고 먹으며, 잔치를 벌여 즐긴다(雲上于天, 需, 君子以飮食宴樂)”에서 유래한 것으로, 연회를 베풀어 즐긴다는 의미. 이 책은 김유가 지은 앞부분에 86항, 김영이 지은 뒷부분에 36항이 수록되어 모두 122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총 114종의 음식 조리 및 관련 내용이 수록되었다. 항목을 분류하면 주류(酒類) 57종, 식초류 6종, 채소 절임 및 침채(沈菜, 김치류) 14종, 장류(醬類) 9종, 조과(造菓, 과자류) 및 당류(糖類, 사탕류) 5종, 찬물류 6종, 탕류 6종, 두부 1종, 타락(駝酪, 우유) 1종, 면류 2종, 채소와 과일의 파종과 저장법 7종이다. 중국이나 조선의 다른 요리서를 참조한 예도 있지만, ‘오천양법(烏川釀法, 안동 오천 지방의 술 빚는 법)’ 등 조선 시대 안동지역 양반가에서 만든 음식법이 여럿 포함되어 있다. 또한, 조선 시대 양반들이 제사를 받드는 문화인 ‘봉제사(奉祭祀)’와 손님을 모시는 문화인 ‘접빈객(接賓客)’을 잘 보여주는 자료이다. 우리나라 전통 조리법과 저장법의 기원과 역사, 조선 전기 음식 관련 용어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아울러 저자가 직접 쓴 원고본이며, 전사본(傳寫本, 베낀 글)도 전하지 않는 유일본으로서 서지학적 가치가 크다. ‘수운잡방’은 조선 전기 요리서로 희소성이 크며, 당시 음식 문화에서 고유의 독창성이 돋보인다. 더 나아가 오늘날 우리의 음식 문화 기원을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점에서 역사·문화?민속?학술적으로 중요한 자료이다. 권영세 안동시장은 “안동의 우수한 전통 문화유산이 해마다 국가지정 및 도지정문화재로 지정되는 만큼, 소중한 문화유산을 지키고 가꾸는 데 시민들께서 많은 관심을 두고 동참해 달라”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도시 안동의 위상을 널리 알려 나갈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라고 전했다. 안동 한상덕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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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 안동지역 여성사역의 개척자(6)김정숙, 안동지역 여성사역의 개척자(6) 김승학 목사 신학과 교수/기독교교육학 안동교회 담임목사 김정숙 전도사 (金貞淑, 1880~1969) 목차 서론 1. 김정숙, 출생과 결혼 2. 최초의 순교를 목도한 시댁 3. 여성복음전도의 선구자 .............................................. 7. 안동교회 최초의 전도사 8. 경안노회 여전도회 연합회 리더 9. 일제에 저항한 애국운동가 10. 평신도 사역자 결론 9. 김정숙, 일제에 저항한 애국운동가 안동 3·1 만세의 1차 시위는 임시정부 국무령 이상용(李相龍) 선생의 실제(實弟)인 이상동(李相東, 영양 포산교회, 영덕 원전교회) 조사에 의해 발생했는데, 그는 안동 장날인 3월 13일 하오 5시 반경 단독으로 만세를 부르다가 일경에 체포 구속되었다. 사실 이상동 조사가 단독시위를 감행하기 전, 안동교회 김영옥 목사, 이중희 장로, 도청 서기인 김원진, 일본 유학생인 강대극 등 4인은 3월 13일 안동 장날에 거사할 것을 모의하다가 일경에 검거되어 3·1 만세운동이 주춤한 상태에 있었다. 이상동 조사가 안동교회 지도자들과 의논하여 결정한 거사 일자는 아니었지만, 안동에서 가장 먼저 만세 시위를 주도한 지도자들이 결정한 바로 그날인 3월 13일 오후 5시 반경에 안동에서 최초로 만세운동이 일어난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이상동 조사는 ‘대한독립만세’가 쓰여진 태극기 모양의 종이 연을 들고 현재 신한은행 앞에서 동쪽 방향인 삼산우체국 쪽으로 달리면서 대한독립만세를 부르짖었다. 그는 체포되어 압송되어 가는 자동차에서도 하나님의 뜻에 의해 대한민국은 10일을 넘기지 않고 독립될 것이라고 하면서 계속해서 만세를 불렀다. 이상동 조사의 1인 시위는 안동 3·1운동을 은밀히 추진하고 있던 기독교 지도자들에게 한편으로는 위기가 되었다. 이유는 만세운동을 감행할 인물들과 안동교회가 일경에 의해 더욱 주시를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상동 조사의 1인 시위는 만세운동을 준비하고 있던 안동지역 지도자들의 검거와 조사로 위축되어 있던 모의자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는 기폭제 역할도 하였다. 한편 안동교회 여성 지도자였던 김정숙, 김병규. 이권애 등 3인은 1911년 안동교회가 설립한 여성 초등학교인 계명학교 여학생 30여 명을 동원하여 선교사 임시주택이었던 가옥에서 독립선언서를 인쇄하고 국기를 제작하여 비밀스럽게 만세운동에 참여할 준비를 하였다. 3·18일 만세시위가 있던 날 김정숙, 김병규, 이권애 등 3명의 여성 지도자들은 옥고(獄苦)를 각오하고 옷고름을 뗀 뒤 단추를 달고 계명학교 여학생 30여 명을 인솔하고 만세운동에 참가했으나 당시 여론을 의식한 일제는 김정숙 등 3명은 물론 학생 1명도 구속하지 못했다. 또한 안동의 3차 만세운동은 3월 23일(주일) 오후 7시 30분 무렵부터 시작됐는데 앞선 2차 시위와는 다르게 안동군의 다른 면민들이 대거 참가하는 대중적인 시위 양상을 보였다. 무려 3,000여 군중이 모여 구금된 사람들을 구출하기 위해 경찰서와 법원 안동지청으로 밀고 들어갔다. 일본 경찰과 수비대와 충돌로 인해 30여 명이 죽고 50여 명이 부상을 입을 정도로 시위는 격렬한 양상을 보였다. 김정숙은 1919년 3월 18일의 2차 시위와 23일에 있었던 3차 시위 등 안동의 3·1 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던 행동하는 신앙인인 동시에 애국운동가였다. 참고로 3·1 만세운동에 참여한 여성지도자인 김병규는 안동의 기독청년면려회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의 아들 권중윤은 대구 계성학교 학생으로 대구 만세운동에 가담하였다가 구속되어 6개월 동안 수형 생활 후, 학교를 졸업하고 안동으로 돌아와 계몽운동을 하던 중 1921년 2월 5일 안대선 선교사가 전국에서 최초로 안동교회 청년면려회를 조직할 때 초대 회장으로 피선되었다. 그 후 안대선 선교사를 도와 경북지역 각 교회에 다니면서 청년면려회를 조직하여 1921년 6월 7일∼9일까지 26개 지회 600여 명이 모여 경북연합대회를 개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22년 청년면려회를 전국적으로 조직하기 위하여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는 안대선 선교사와 권중윤을 서울로 이주케 하여, 이들의 헌신적인 활동을 통해 1923년, 200여 교회에 청년면려회가 조직되었고, 1924년 12월 2일에는 서울 정동 피어선 성경학교에서 기독청년면려회가 조직될 수 있었다. 3·1 만세운동 당시 안동교회 교인이었던 김병규는 공식적으로 1924년 5월 22일, 안동교회에서 서울 안국동교회로 이명했다. 김병규는 이명 후 불과 몇 년 되지도 않은 1925년 초 경기부인전도회의 서기를 맡을 정도로 왕성히 활동했다. 또한 김병규는 서울 승동교회에서 회집한 경기지역 12 교회 부인회의 회장으로 피선되었다. 1925년 전국 부인전도회가 처음 조직할 때는 선교사 중심으로 조직되었는데, 한국인으로 임원을 구성한 2회 총회부터 김병규는 한국인으로는 제일 먼저 회장으로 피선되었다. 1927년 9월 9일 원산 광석동교회에서 제16회 장로회 총회 시 ‘여전도회 전국연합회’ 발기회에서 김병규는 경기 여전도회 대표로 참석하였다. 1928년에 조직된 여전도회전국연합회에 경기지역 대표로 활동했다. 이처럼 김병규는 전국적으로 왕성히 활동한 여성 교역자였다. 김정숙 전도사의 애국 활동은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그는 일제 말엽에는 일본제국주의에 맞서 신사 참배를 거부하고 신앙의 절개를 지킨 여성 지도자였다. 1930년대 후반 중일전쟁이 시작되면서 일본제국주의는 황민화정책과 천황숭배를 강화하기 위해 신사참배를 강요하였다.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에 굴복하여 1935년에는 천주교회가, 1936년에는 감리교회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1938년에는 장로교회가 신사참배를 결의하였다. 일제의 극한 박해와 신사참배 문제 앞에서 수많은 교회 지도자들은 신앙을 포기하고 변절과 타협의 길로 갔지만, 김정숙 전도사는 죽음도 불사하면서 마지막까지 일제에 저항했다. 참고로 경안노회에서 신사참배를 거부한 인물로는 이원영·강병철·박충락 목사와 권수백 장로 등이다. 특히 안동교회의 인물로는 김익현·김성규·김재성·조흥로 장로와 조춘백, 이수원·이수형 성도 등 다수가 있었지만, 기록으로 남아 있는 여성 교역자로는 김정숙 전도사가 유일하다. 그는 죽음도 불사한 각오로 신앙의 정조(貞操)를 지켰던 용기 있는 믿음의 여성이었다. 김정숙은 일제 압제하에서도 용기 있게 신앙에 기초하여 민족의 편에 선 여성 민족 운동가였던 것이다. ▲안동의 3·1 만세운동은 세 차례에 걸쳐 발생했다. 1차 시위는 3월 13일 이상동의 단독시위였고, 2차 시위는 3월 18일 안동교회 주도와 유림들의 동참으로 다음날 새벽까지 이어졌다. 3월 23일 3차 시위는 많은 군민들의 격렬한 시위 결과 100명 가까운 사상자를 내었다. 3·18일 만세시위가 있던 날 김정숙, 김병규, 이권애 등 3명의 여성 지도자들은 계명학교 여학생 30여명을 인솔하고 만세운동에 참가했다. 위 사진은 1925년 삼산동 곡물전(현 신한은행 근처) 안동 장날의 번잡한 모습.(사진7) /논문 발췌‧정리=박은숙 기자/ <논문 원본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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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독도의 생태학적 가치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야!포스코국제관에서 특산식물로 증명하는 독도영토권 학술포럼 개최 ▲경상북도는 16일 포항 포스코국제관에서 '특산식물로 증명하는 독도영토권 학술포럼'을 개최했다. 경상북도는 16일 포항 포스코국제관에서 ‘특산식물로 증명하는 독도영토권 학술포럼’을 개최했다. 이번 학술포럼은 영남경제신문 주관으로 울릉도·독도에서 자생하는 특산식물과 울릉도·독도의 생태학적 가치를 일반 대중은 물론 국제사회에 널리 알리고자 기획된 것이다. 박재홍 경북대학교 울릉도·독도연구소장은 기조강연에서 “울릉도의 특산식물 52종을 소개하고 이중 섬기린초, 섬초롱꽃, 섬괴불나무 3종은 독도에도 서식하고 있다”며 “이들 특산식물 중 88%가 *향상진화(an agenesis)의 생물학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데, 이는 세계자연유산 등재기준이 요구하는 ‘생물학적 진화를 나타내는 사례’에 해당하는 조건으로 판단되는 만큼 장기적으로 울릉도·독도의 세계자연유산 추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향상진화 : 시간의 경과에 따라 종의 변형으로 일어나는 종분화 김태원 포항 세명고 교사는 2005년부터 현재까지 70여 차례 울릉도와 독도의 식물조사 활동을 펼치고 그 결과를 발표했다. 김 교사는 “특산식물 등의 학명이 일제 강점기 때에 일본 학자들의 연구 활동의 산물로 남아 있음을 조사활동을 통해 알게 되면서, 우리 것을 우리가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본 활동을 지속해 왔다”며 “우리 생물자원에 관한 연구와 보존 활동 등 후대에 물려주기 위한 우리 국민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한편, 송경창 경북도 환동해지역본부장은 “울릉도·독도의 역사적 연구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이 실제로 이용하고 있는 울릉도·독도의 생태학적 조사·연구의 축적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며, “경북도는 세계적으로 독특하고 다양한 울릉도·독도의 생태학적 가치를 국제사회에 널리 알리기 위해, 세계자연유산의 등재 추진 등 큰 시각에서의 연구 활동을 지원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박은숙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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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교육청, ‘울진에서 독도까지’ 릴레이 마라톤독도 릴레이 마라톤 인증으로 독도사랑 실천해요! ▲임종식 교육감이 '울진에서 독도까지' 릴레이 마라톤 참여 인증을 하고 있다. (사진=경북교육청 제공) 경북교육청(교육감 임종식)은 오는 22일까지 독도교육올림픽 행사의 일환으로 ‘울진에서 독도까지’ 릴레이 마라톤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올림픽을 정치 도구화하는 일본의 억지 주장에 대해 경북교육 가족들이 올바른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독도수호 의지를 다지고, 독도사랑을 실천하는 행사이다. 코로나19 상황으로 비대면 온라인 방식으로 진행되는 이번 행사는 울진에서 독도까지 거리인 216.8km를 각자 100m씩 나누어 달리는 행사로 총 2,168명이 선착순으로 참석하게 된다. 각급 학교와 교육가족이 함께 참여하는 ‘울진에서 독도까지’ 릴레이 마라톤 인증하기는 직접 제작한 독도 릴레이 마라톤 인증 피켓을 들거나 독도 티셔츠를 입고 달리는 사진을 찍어 경상북도교육청사이버독도학교 게시판에 올리면 된다. 한편 독도교육올림픽 행사는 지난 6월 25일 독도사랑 음악회를 시작으로 온라인 독도 퀴즈쇼, 독도사랑 퀴즈대회, 사이버독도학교 수료 챌린지, 독도수호결의대회, 울진에서 독도까지 릴레이 마라톤 등을 진행하고 있다. 임종식 교육감은 “일본이 올림픽 성화 봉송 지도에 대한민국 영토인 독도를 표기한 것은 올림픽을 정치 도구화하는 것이다”며“독도 릴레이 마라톤은 독도사랑 실천과 진정한 올림픽 정신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행사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박은숙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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