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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시, 상주읍성 역사 홍보 안내판 설치왕산공원에 설치, ‘작지만 의미 있는 일’ ▲왕산공원 내에 설치된 상주읍성 역사 홍보 안내판.(사진=상주시) 상주시(시장 강영석)는 상주읍성의 역사를 알리고 홍보하는 안내판을 왕산공원에 설치했다고 밝혔다. 상주읍성 안내판 설치는 금년부터 시행하는 ‘상주읍성 북문복원’ 사업의 일환으로 지역주민에게 상주읍성의 역사를 이해시키고 읍성 복원의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추진되었다. 안내판 크기는 가로 3.15m, 높이 2.6m이며, 상주읍성의 역사와 최근 몇 년간 상주시로 입수된 일제강점기 상주읍성 4대문과 관아지 등 사진에 관한 내용이 담겨있다. 상주읍성은 풍영루기와 경상도속찬지리지에 따르면 1381년(우왕 7년)에 만들기 시작하여 1385년에 완성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후 여러 차례 중수 및 보수가 이루어지다가 1912년 일본인들의 상업 활동 편의와 상가 요지를 확보하려는 목적으로 철거된 것으로 보인다. 피택용 문화예술과장은 “이번 안내판 설치는 매우 현실적이면서도 작지만 의미있는 일”이라며 “상주읍성 안내판이 상주가 고대읍성을 가진 도시임을 알려 상주시민들이 자긍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라고 전했다. 상주 김종환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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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시, 2022년 빈집정비 지원사업 대상자 모집이달 10일부터 26일까지 빈집 소재 읍면동 행정복지센터 신청 면적에 따른 120~150만원 차등 지원 영주시는 노후된 빈집으로 인한 도시미관 저해와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빈집정비 지원사업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시에 따르면 고령화와 지방 쇠퇴에 따른 농촌인구 감소로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빈집들이 우범지역화, 붕괴‧화재 등 안전사고 유발, 도시미관 저해와 같은 다양한 사회문제를 야기해 지난해 빈집 현황파악을 위한 실태조사를 실시해 지역 내 1200가구의 빈집을 확인했다. 이를 바탕으로 시는 안전하고 쾌적한 주거환경 조성에 기여하기 위해 관내 1년 이상 거주(사용)하지 않은 방치된 모든 빈집을 대상으로 철거시 세대당 120~150만원(연면적 기준 66.5㎡ 이상 150만원 지급, 이하는 120만원 지급)까지 보조금(추가비용 자부담) 지원을 결정했다. 사업 선정기준은 붕괴위험 등 노후화가 심각한 건물, 슬레이트 처리사업 연계 여부에 따라 우선 선정하며, 슬레이트 지붕의 경우에는 환경보호과에서 추진 중인 슬레이트 처리 지원사업을 별도 신청해야 한다. 빈집정비(철거) 사업을 희망하는 세대는 구비서류를 갖춰 이달 10일부터 26일까지 빈집 소재 관할 읍면동 행정복지센터로 신청하면 된다. 기타 문의사항은 시청 건축과 건축행정팀(☎ 054-639-6941)로 문의하면 된다. 시 관계자는 “올해는 빈집정비계획을 수립해 쾌적한 주거환경 조성을 통한 시민들의 삶의 질 향상과 범죄 및 안전사고 예방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영주 우병백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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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도, 21년 도시재생뉴딜사업 공모에 ··· 국비 확보 ‘전국 1위’3차 공모사업에서, ‘영천, 구미, 상주, 영덕, 봉화’ 5개 시·군 선정돼 ▲영덕읍 남석리 영덕시장에 도시재생 인정사업을 추진한다. 사진은 조감도.(사진=경북도) 경상북도는 올해 국토교통부 주관 ‘도시재생뉴딜사업 3차 공모사업’에 영천, 구미, 상주, 영덕, 봉화 등 5개 시·군이 선정돼 국비 494억원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경북도는 올해 전체 선정개수와 국비확보에 있어서 전국 1위(12개소, 국비964억)를 차지했다 도시재생뉴딜사업은 쇠퇴하는 도시를 지역역량의 강화, 새로운 기능의 도입·창출 및 지역자원의 활용을 통해 시민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이번 국토교통부의 3차 공모는 지난 10월부터 접수·신청을 받아 사업별 사전검증과 발표평가 등을 거쳐 전국 13개 시·도 32개소가 최종 선정 됐다. 경북도는 영천시 등 5개 시·군이 도시재생뉴딜사업으로 선정됐다. 주요 사업으로는 먼저, 영천 서부동(157,000㎡) 일원에 LH를 총괄 사업관리자로 지정해 공공임대주택 140호와 거점주차장을 조성한다. 두 번째 구미 원평동 일대(25만236㎡) 금오시장 주변에 숙박업 중심의 쇠퇴한 상권을 창업·문화 공간과 특화거리를 조성해 업종전환을 유도할 예정이다. 세 번째 상주 서성동 일대(23만4524㎡)의 지역자산(왕산역사공원)을 중심으로 청년 창업 시설 조성과 공원·가로 등 기반 시설 정비, 돌봄기능 강화 등을 통해 유동인구 확대와 창업인프라 확충으로 중심상권 기능을 회복할 계획이다. 네 번째 영덕읍 남석리(1만 3795㎡)에 지난 9월 4일에 발생한 화재로 시장건물과 상인점포(79개소)가 소실된 영덕시장에 도시재생 인정사업을 추진한다. 끝으로 봉화 춘양면 의양리(5496㎡)의 노후화된 춘양면사무소를 철거하고 신축할 계획이다. 이철우 경북지사는 “올해 초부터 사업 공모와 관련해 시·군과 협력해 착실하게 준비한 노력이 전국 최고라는 좋은 결과로 나타났다”며, “주민과 함께 만들어 가는 이번 사업이 지역 발전의 마중물이 되도록 지속해서 관심을 두고 지원하겠다”라고 밝혔다. 이혜경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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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시, 지방 인구소멸 새문경 뉴딜정책으로 돌파구 마련공평동, 10세대 모집에 63세대 신청 ▲귀향·귀촌·귀농인 보금자리용 모듈 주택 설치.(사진=문경시) 문경시는 지방 인구소멸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새문경 뉴딜정책의 일환으로 귀향·귀촌·귀농인 보금자리용 모듈주택 설치사업을 펼치고 있다. 본 사업은 농촌에 방치된 빈집을 철거하여 이동식 모듈주택을 설치해 귀향·귀촌·귀농인들에게 제공하는 사업이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10월 전국 시군구 228곳 중 89곳을 인구감소지역으로 발표하였는데 여기에 문경시가 포함되었고, 현재 농촌은 인구감소 및 노령인구 증가로 인하여 곳곳에 빈집이 방치되어 있으며, 입주 가능한 빈집은 소유주의 잠재적 귀향 의사 등으로 거래가 되지 않는 등 귀향·귀촌·귀농인들이 이주를 희망하지만 당장 거주할 주택을 마련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이를 해결하고자 문경시는 경량 철골조 모듈주택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지난 11월부터 귀향·귀촌·귀농인을 대상으로 입주대상자를 공모하였다. 그 결과 영순면 의곡리에 설치한 모듈주택 3동은 입주자 공모결과 31명이 신청하였으며, 12월 중 완공되는 공평동 소재 10동은 이사철 비수기인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63명이 신청하여 6.3대1의 경쟁률을 보이는 등 큰 관심을 얻고 있다. 문경시 관계자는 “본 정책은 인구증가와 함께 만성적인 농촌 일손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농촌지역 주거환경개선 효과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동시에 이루어 지역 소멸위기를 극복해 나갈 수 있는 혁신적인 사업이다”라고 말했다. 이혜경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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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청년면려회(CE)와 안대선 선교사(2)기독청년면려회(CE)와 안대선 선교사(2) 김승학 목사 신학과 교수/기독교교육학 안동교회 담임목사 안대선 선교사 (W.J.Anderson, 1890~1960) 목차 서문 1. 안대선의 출생지 2. 안대선의 출신대학과 신학대학원 3. 안대선의 결혼과 사별 4. 안대선의 안동선교부 부임 5. 안대선과 안동기독청년면려회 6. 안대선과 전국기독청년면려회 7. 안대선의 그 외 사역 8. 안대선의 퇴임 및 별세 3. 안대선의 결혼과 사별 안대선의 부인인 안의리는 1892년 8월 네브래스카 주 새드론(Shadron)에서 출생했지만 로스앤젤레스에서 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의리는 옥시덴탈 대학 재학 시절 켈로그 교수가 지도하는 성경 공부 모임에서 안대선과 만났는데, 이 시기는 북장로교 해외선교부가 안대선을 한국으로 파송하기로 결정한 이후였기 때문에 안의리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두 사람은 교제하면서 선교의 비전을 공유하고 한국에 관해 공부하면서 미리 선교지로 출발할 준비를 한 것으로 추측된다. 왜냐하면 1917년 8월 결혼한 안대선과 안의리는 선교를 위한 준비 없이 한 달 만인 1917년 9월 한국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한국에 도착한 안대선 부부는 순회선교에 최선을 다했다. 안의리 선교사는 남편과 함께 안동지역의 농촌과 산촌을 방문하며 3·1운동의 실패로 실의에 빠져 있던 청년들에게 복음과 희망을 전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사역으로 생각했다. 특히 안의리는 교회 안팎에서 여성 교육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교회가 좀 더 여성교육에 노력하기를 강조했다. 안동선교부에서 사역할 때 안의리는 안동남녀성경학원에서 여학생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교사였다. 그는 한국인들에게 ‘절대 화내지 않는 선생’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을 정도로 후덕하고 온유한 성격의 교사였다. 안동에서 귀경한 안의리는 서울 정신여학교와 피어선성경학원에서 학생에게 성경을 가르쳤다. 또한 그는 수년 동안 여성 선교사 모임의 회장으로 활동하는 등 활발한 여성 선교사였다. 안의리는 안동에서 출생한 지 7개월 된 딸 도로시(Dorothy)를 땅에 묻은 후 셜리(Shirley), 필리스(Phylis), 로라 베드(Lola Bete) 등 세 딸도 모두 안동에서 낳았다. 마을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성경을 교수함으로써 평신도 양육에 열심이던 안의리는 한국에 도착한 지 17년이 지난 1934년 11월 추수감사절을 보내고 42세에 심장마비로 하늘나라로 갔다. 비록 양화진 선교사 묘역에 있는 그의 묘는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고 있지는 못하지만, 그는 당시 누군가 반드시 해야 할 사역을 감당하고 순교 당했기에 그의 죽음은 고결하다고 할 수 있다, 4. 안대선의 안동선교부 부임 1) 첫 딸의 죽음 1917년 가을, 서울에 도착한 안대선 부부는 곧바로 안동선교부로 부임했다. 안동선교부에는 1909년 부임한 오월번 선교사, 1910년에 부임한 권찬영 선교사, 그리고 1914년에 부임한 인노절 선교사가 주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1년 전인 1916년 오월번 선교사가 안동을 떠나 평양으로 이임했기 때문에 안대선 선교사는 결원이 생긴 안동선교부로 신속히 부임해야만 했을 것이다. 안대선의 이름은 1918년 1월 1일 저녁 7시 대구동산성경학교에서 회집된 제3회 경북노회에 처음 등장하는데, 이것은 그가 1917년 안동선교부에 부임했음을 알리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안대선 부부는 안동에 도착하자마자 큰 슬픔을 경험해야만 했다. 1919년 6월 12일에 출생한 첫 딸 도로시가 1920년 1월 25일 7개월 만에 당시 풍토병인 이질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안대선은 도로시의 묘비에 “예수님과 함께(With Jesus)”라고 적었다. 결혼하자마자 선교지인 한국으로 출발했고, 안대선과 안의리 두 사람의 사랑의 결실로 얻은 첫아기의 죽음으로 이들은 큰 상실감에 빠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슬픔을 이겨내고 주어진 사역에 열과 성을 다하여 안동선교에 있어서 새로운 사역의 장(場)을 마련했다. 참고로 안동 경안고등학교 정문 입구 좌측에 3기의 선교사의 무덤이 있는데, 하나는 인노절 선교사의 묘이고, 다른 두 기는 한 살도 되지 않은 안대선의 딸 도로시의 무덤, 그리고 옥호열 선교사의 2살 난 아들 윌리엄의 무덤이다. 2) 성경학교 교사 안대선은 안동선교부의 센터가 있는 안동을 근거지로 영주, 의성, 예천, 청송 지역 등지를 순회하며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세우고, 이미 설립된 교회들을 돌보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또한 안동지역 성도들에게 체계적으로 성경을 가르침으로써 평신도 양육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안동에는 1912년 처음으로 여자성경학원이 설립되어 평신도 여성들에게 성경을 가르쳤다. 하지만 안동지역 평신도의 성경공부에 관한 관심과 열망이 여타 지역에 비해 폭발적이어서 보다 체계적인 성경학교 설립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그래서 안동선교부는 1920년 4월 10일 안동남녀성경학교를 개교했는데, 이때 초대교장은 인노절 선교사, 교사는 권찬영 선교사와 안대선 선교사였다. 안동남녀성경학교는 남녀 모두를 대상으로 첫 입학생을 모집했는데, 1920년 가을에 1백30명이 등록했다. 성경뿐 아니라 수학, 한문, 음악 등 교양과목도 함께 가르쳤다. 그런데 학교의 교실을 미처 준비하지 못했으므로 첫 학기의 수업이 성소병원 진료실에서 진행되었다. 이 학교는 학제를 1년에 두 학기로 나누었고 한 학기에 한 달간씩 수업을 진행하였다. 1922년 교장 인노절 선교사가 순교한 후 1925년 12월 안동성경학교 교사와 기숙사가 새롭게 준공되었으며, 학교의 이름을 개명해 ‘인노절선교사기념성경학교’라고 명명(命名)하였다. ▲안동선교부 기지에 선교사 사택이 준공된 후의 모습. 사진에는 준공된 여러 채의 선교사 사택을 볼 수 있는데, 좌측 숲은 현재 경안고등학교로 오월번 선교사 가족이 1911년 12월 27일 입주한 사택으로 알려져 있다.(사진2) ▲1925년 안동에 준공된 ‘인노절기념성경학교’의 모습. 2005년 철거되어 그 자리에 성소병원 신관이 건축되기 전까지 80년 동안 안동지역을 위한 목회자 양성을 넘어 한국교회와 세계선교에 헌신하는 주의 종들을 배출했다.(사진3) /논문 발췌‧정리=박은숙 기자/ <논문 원본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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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군 현수막 실명제 시행깨끗한 거리환경을 만들기 위한 노력 ▲영양군청 전경.(사진=영양군) 영양군(군수 오도창)은 깨끗한 거리환경 조성과 불법 현수막 근절을 위해 10월 1일부터 현수막 실명제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영양군에 신고하는 모든 현수막에는 제작업체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의무적으로 기재해야 하며 이를 이행하지 않을 시 신고 반려 조치 및 현수막 철거 등 행정처분을 내릴 예정이다. 군은 지난 7월 20일간의 행정예고기간과 2개월간의 계도기간을 거치며 반상회보와 읍면 사무소 및 옥외광고협회를 통해 군민과 옥외광고업자에게 현수막 실명제 시행 및 불법 광고물 난립예방을 위한 협조를 안내하였으며, 앞으로도 불법 현수막 난립 예방을 위해 부족한 지정 게시대를 확충하고 정기적인 불법 광고물 일제정비를 추진하는 한편 지속적으로 불법 현수막을 게첩하는 광고주 및 광고업자에게는 무관용의 원칙을 적용하여 과태료 부과 등의 행정처분을 내릴 예정이다. 군 관계자는 “현수막 실명제의 경우 상업적 내용의 현수막은 물론 공익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행정용 현수막도 대상이 된다”며 “군청을 포함한 관내 유관기관이 솔선수범 되어달라”고 당부하였다 오도창 영양군수는 “앞으로도 군민에게 쾌적하고 안전한 거리환경을 제공하고자 불법 현수막 근절에 노력하겠다”며 “광고주와 광고업자분들도 책임감을 느끼고 선진광고 문화정착을 위해 노력해달라”고 당부하였다. 이혜경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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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군 수곡교 재해복구사업 조기 준공 추진우기 전 주요공정 신속 추진, 9월 준공을 위해 사업 추진 박차 ▲울진군청 전경.(사진=울진군 제공) 울진군(군수 전찬걸)은 근남면 수곡리 일원에서 추진 중인 ‘수곡교 재해복구사업’의 조기 준공을 위하여 교량건설 사업 추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수곡교 재해복구사업은 2019년 제18로 태풍 ‘미탁’ 재해복구사업으로 총연장 222m(폭 12.7m, 2차로), 사업비 177억 원(국비 150억 원, 도비 14억 원, 군비 13억 원)이 투자되는 사업이다. 군은 교량 개선복구를 위하여 2020년 5월에 기본 및 실시설계를 완료, 2020년 6월에 착공하여 거더 및 상부 슬라브 시공을 완료하고 현재 공정률 60%가 추진되었다. 수곡교 건설공사가 완료되면 태풍 및 집중호우 시 기존 교량의 통수단면 부족으로 인한 성류굴 주변지역 침수 피해가 해소될 전망이며, 성류굴과 울진종합운동장을 연결하여 2023년 울진에서 개최되는 경북 도민체전의 성공적인 개최와 성류굴 주변 경관개선은 물론 관광객 교통편의 제공에도 크게 기여하게 된다. 표남호 건설과장은 “우기 전 교량공사의 주요공정을 신속 추진하여 하천 내 가시설 철거 등을 완료하고, 여름철 안전사고 및 피해예방에 만전을 기하여 9월 중 준공될 수 있도록 현장관리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혜경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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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군, 간판개선사업 성공적 마무리민원 응대 등 어느 때보다 세심하게 사업을 추진 칠곡군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간판개선사업을 군민들의 호평 속에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칠곡군은 2019년 행정안전부와 경상북도 간판정비사업 공모에 선정되면서, 실효성 없고 획일적인 간판정비사업의 실패 사례를 철저히 분석해 대안을 마련하고 전국 공모를 통해 성공적으로 사업을 추진했다. 획일적인 간판디자인을 업종과 거리특성에 맞는 세련미와 다양성을 갖춘 디자인으로 차별성을 두었고, 원색적이고 지저분한 창문 썬팅은 모두 제거해 세련되고 개방감 있게 재디자인 했다. 또 위험에 노출된 거대한 돌출간판과 지주이용 간판에 대해 철거한 후 보행자 중심의 예쁜 간판으로 변모했다. 간판만 달면 된다는 기존 방식의 탈피하고 민원 응대 등 어느 때보다 세심하게 사업을 추진해 기존에 간판정비사업에 불만이 있었던 업주와 주민들의 칭찬 릴레이가 이어지고 있다. 소상공인 문명숙(혹 달린 신발) 씨는 “획일적인 간판정비사업, 처음엔 많이 반대했다. 주민설명회에서 칠곡군과 용역사의 설명을 듣고 반신반의했는데 정말 도시를 다시 만든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백선기 칠곡군수는 “지금의 변화된 간판에 만족하시는 상인들의 모습을 보며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들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어 마음의 위안으로 삼는다”며 “21년도 추가사업구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해 중앙로가 우리 군을 대표하는 거리로 거듭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간판정비사업 시행 후 전경. (사진=칠곡군 제공) 이예진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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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군, 군민 삶 질 높이는 환경정책 추진 박차!382억 원 사업비 투자해 ‘살기 좋은 예천, 청정 예천’ 만들기 올인! ▲예천군은 경북의 중심 도시로서 ‘살기 좋은 예천, 청정 예천’의 명성을 이어나가고 군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382억 원의 사업비를 환경정책 분야에 투자한다. 우선 3월부터는 슬레이트 지붕 철거 등의 사업을 펼치게 된다.(사진=예천군 제공) 예천군(군수 김학동)이 경북의 중심 도시로서 ‘살기 좋은 예천, 청정 예천’ 명성을 이어나가고 군민 삶의 질을 높여 날로 심각해지는 기후변화 위기 대응역량을 키우기 위해 382억 원의 사업비를 환경정책 분야에 투자한다. 예천군은 우선, 석면으로 인한 군민 불안 해소와 쾌적한 주거환경 조성을 위해 17억5천6백만 원 예산으로 490동 슬레이트 지붕 철거를 지원할 계획으로 3월부터 철거 작업을 시작한다. 또한, 22억4천4백만 원 사업비를 투자해 국가적인 이슈가 되고 있는 미세먼지 저감을 위해 전기자동차 보급, 운행 경유차 조기폐차 지원, 배출가스 저감장치 부착 등 그린모빌리티 사업을 확대 추진한다. 아울러, 이동식 대기오염 감시 차량을 운영해 환경오염을 능동적으로 감시함으로써 생활환경 개선에 사업자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미세먼지 신호등 설치, 저녹스 보일러 보급 사업 등을 통해서 대기질 악화 시 신속한 상황 전파로 군민 건강을 보호할 수 있도록 1억1천3백만 원 예산을 투입한다. 그 외에 자연환경 보전 사업, 주요 하천‧소하천 수질 상시 모니터링, 가축분뇨공공처리 시설 개선사업 추진, 영농폐기물 공동집하장 35개소를 신설‧보수, 가정용 음식물 바이오처리기 설치 지원, 음식물쓰레기 전용 수거함‧수거차량을 구입 등의 사업을 펼친다는 계획이다. 박종하 환경관리과장은 “환경은 군민들 삶의 질뿐만 아니라 미래 경쟁력과 직결되므로 기후변화 위기에 책임감을 갖고 적극 대응해 ‘살기 좋은 예천, 청정 예천’을 만들어 가겠다”며 “환경보전 실천 운동에 군민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예천 남종덕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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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교회 예배처소의 변화와 안동지역의 복음화(6)안동교회 예배처소의 변화와 안동지역의 복음화(6) 김승학 목사 신학과 교수/기독교교육학 안동교회 담임목사 목차 서론 1. 첫 번째: 기독서원(基督書院) 2. 두 번째: 선교사 임시주택 3. 세 번째: 선교사 주택 4. 비공식 예배처소: 텐트 교회 5. 네 번째: 16칸 ‘ㄱ’자 예배당 6. 다섯 번째: 목조 2층 예배당 7. 여섯 번째: 2층 돌집 예배당 결론 6. 다섯 번째 예배처소 : 목조 2층 예배당(2) 교회 외적으로는 2층 목조 함석지붕 예배당의 신축에 따라 경북북부 지방에 여러 교회가 모일 수 있는 대형집회를 가능하게 했다. 신축 예배당은 많은 성도들이 한꺼번에 모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1914년 공식적으로 조직된 안동교회 여전도회는 1917년 1월 31일, 처음으로 인근 교회의 성도들이 함께 모이는 부인도사경회가 열렸는데 참석자의 수는 230명이었다. 1924년에는 남자도사경회가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1928년 3월에는 1주일 동안 여전도회 주최로 당대의 대부흥사인 길선주 목사를 초청하여 도사경회가 열렸으며, 1934년 6월의 두 번 도사경회에는 400명, 317명이 각각 참석하였다. 또한, 경북 북부지역 교회의 교사교육을 위한 집회도 2층 목조 함석지붕 예배당에서 열렸는데, 가장 큰 규모의 집회는 제1회 경안주일학교대회로 1928년 9월 21일부터 26일까지 8일간 개최되었다. 열기가 대단하여 정회원 1,300여 명 외 방청인원 1,000여 명 등 도합 2,300여 명이 참석하였는데, 2층 목조예배당에 수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외부에서도 강단이 보일 수 있도록 출입구 쪽 남쪽 벽을 헐고 교회 마당에 대나무로 비닐하우스처럼 지지대를 세우고 광목을 덮어 천막을 만들었다고 한다. 특히 경북노회로부터 분립된 경안노회가 1921년 12월 20일 경안성서학원에서 조직을 위한 모임을 한 후, 제1회 경안노회는 1922년 1월 18일부터 19일까지 안동교회 목조 2층 함석지붕 예배당에서 회집되었다. 경안노회가 1936년 12월, 30회로 회집되기까지 30회의 노회 회집 장소 중 안동교회 17회, 성서학원 8회, 예안만촌교회·영주교회·영덕교회·예천교회·풍기교회 각 1회씩으로 안동교회에 집중되었다. 이처럼 안동교회의 두 번째 예배당인 목조 2층 함석지붕 예배당은 교회 내적으로도 새로운 변화를 가져와 교회성장을 이끌었을 뿐 아니라 외적으로도 지역 복음화의 산실이 되었던 것이다. ▲사진 뒷면에는 1923년 성탄절 안동교회(Christmas 1923, Andong Church)라고 권찬영 선교사가 친필로 쓴 글이 있다. 예배당 지붕 바로 아래 ‘祝聖誕(축성탄)’이란 글을 볼 수 있다. 중앙 가운데 검은색 양복을 입고 앉아 있는 분이 권찬영 선교사이다.(사진 11) 7. 여섯 번째 예배처소 : 2층 돌집 예배당(1) 안동교회의 돌집 예배당 신축 명분은 몇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예배당을 건축할 당시 일제의 수탈이 더욱 심해지고 1934년 7월 안동시가 물에 잠기는 대수재(水災)로 인해 경제적으로 몹시 어려운 상황이었음에도 안동교회가 대형 예배당을 신축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계속된 교회 부흥 때문이었다. 예배 시 성찬 참여 수는 두 번째 예배당인 목조 2층 예배당의 준공 이후 계속 증가하였다. 경안노회록에 따르면 1931년 6월 1일부터 1932년 5월 31일까지 안동교회 교인 수는 장로 4명, 세례교인 198명, 유아세례인 73명, 교인 총수 549명으로 교회가 크게 부흥하였다. 또한, 여성성경공부반, 장년성경공부반, 어린이와 소년소녀반, 청년 모임 등을 위해 더욱 넓은 공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또 안동교회는 당시 경안노회 지역의 중심교회였고, 경상북도 북부지역 교회의 성장과 함께 노회의 모임이 주로 안동교회에서 회집되었기 때문에 더욱 넓은 공간이 필요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또한, 1914년에 건축된 목조 2층 함석지붕 예배당은 20여 년이 경과하면서 노후 되어 수리의 빈도가 증가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결국 새로운 예배당 신축의 필요성이 검증되었고, 안동교회는 1926년부터 준비를 시작하여 병자년인 1936년 더운 여름에 2층 돌집 예배당을 기공할 수 있었다. 경안노회 중심교회의 상징으로서 2층 돌집 예배당 건축계획은 안동교회 4대 담임인 박상동 목사 때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예배당 건축 추진은 후임인 5대 임학수 목사 시무 때부터 본격화되었다. 안동교회 80년사에 따르면 1929년 1월 부임한 임학수 목사는 동년 3월 4일 제직회에서 그동안 신세교회 분립을 위해 저축해오던 것을 본당 건축비로 전용하기로 결의하고 본당 신축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예배당 신축을 위해 임학수 목사는 선교사들을 꾸준히 설득했으며, 그 결과 다른 지역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도 건축에 협력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당시에는 선교회에서 노회 중심의 교회 건축에 건축비의 1/3을 보조해 주는 규정이 있어서 보조를 받을 수 있었다. 아울러 임학수 목사가 가가호호(家家戶戶) 방문하는 등 건축을 위한 본격적인 행보를 해서 교인들이 건축헌금을 작정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돌집 예배당은 본격적으로 건축에 돌입할 수 있게 되었다. 돌집 예배당의 터는 이미 계명학교가 폐교가 된 후였기 때문에 계명학교가 서 있던 위치에 예배당을 건축할 수 있었다. 당시 계명학교를 다녔던 분들의 증언에 따르면, 돌집 예배당을 신축하기 위해 계명학교를 철거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계명학교의 위치는 본당 출입구의 서편 벽과 큰 소나무 위치로 추정된다. 더욱이 오늘날 교회의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돌집 예배당 전면의 넓은 마당은 전에 계명학교의 운동장으로 쓰던 자리였기 때문에 계명학교의 폐교 후에는 자연스럽게 넓은 부지를 교회가 소유할 수 있게 되었다. /논문 발췌‧정리=박은숙 기자/ <논문 원본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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