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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으로 아니하고는장 재 효 목사 서울성은장로교회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3절)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4~7절) 사도 바울 당시 고린도 교회에 은사로 인하여 말할 수 없는 대혼란이 일어났습니다. 바울이 그 사실을 보고받고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보낸 내용이 본문의 말씀입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다양한 은사를 받았지만 많은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편지를 통해 은사는 한 성령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오직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이며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나타나지 않는 것임을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여러분도 깊이 깨닫는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1. 성령으로 예수를 ‘주’라 고백한다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성령)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3절) 당시 고린도 교회에는 성령과 악령을 구별하지 못하고 우상을 따라가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성령이 함께하지 않는 자는 예수님을 주라고 고백할 수 없으며 오히려 예수님을 저주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예수님을 주인으로 고백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즉 성령으로만 ‘예수는 주’라고 고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에 가보면 은혜와 사랑으로 서로 교제하고 음식을 나누는 모습을 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영적인 소망을 나누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성령으로 예수님을 주시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하지만 영적인 소망을 가꾸는 곳에 드나들면서도 천국 갈 믿음이 없다면 불행하게도 하나님이 버리신 가룟 유다처럼 버림받는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속히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2. 성령으로 여러 은사들이 나타난다 또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4절)라는 말씀처럼,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은사들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각 개인에게 나타나는 은사는 여러 가지라도 한 성령으로 은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은사(恩賜)’는 ‘값없이 은혜로 주어진 선물’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영어로는 gift라고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은사들을 값없이 주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7절)고 사도 바울이 설명하고 있음을 볼 때, 교회의 유익을 위해 성령으로 다양한 은사들을 선물로 주시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저에게도 성령으로 다양한 은사들이 나타나서 여러 가지 이적 기사가 나타나곤 했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의 응답이 즉석에서 나타나고 성령의 역사로 귀신이 쫓겨나갑니다. 항상 성령이 충만해 있으면 귀신이 역사하지 못합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권능을 행합니다. 이는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눅9:1)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을 받아 그 능력으로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3. 성령의 다양한 은사들 여기 보면 은사라고 하는 것을 9가지로 쭉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은사란 각 사람에게 성령으로 행사하게 하시는 기술과 능력이 있는 은사인 것입니다. 기술만 아니라 능력까지 주시는 것입니다. 기술이 있고 능력이 있어야 그 기술이 제대로 그 능력을 힘입어 성과를 올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은사 9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로, ‘지혜의 말씀’(8절上) 은사입니다. 지혜의 말씀을 선포하게 하시는 것은 성령이신데 그 성령을 따라 말씀을 선포할 때 듣는 사람이 그 말씀 속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이것을 지혜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목자를 통하여 성도들에게 주시는 모든 말씀 속에는 하나님의 뜻이 내포되어 있는데 성령 받은 사람이 즉각 깨달아질 때 지혜의 말씀이 나타난 것입니다. 두 번째로, ‘지식의 말씀’(8절下) 은사입니다. 지식의 말씀은 지혜를 실생활에 적용하고 가르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지혜의 말씀은 목자를 통해서 선포되지만, 지식의 말씀은 성도들이 듣고 깨달아진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깨우쳐줄 수 있는 은사를 말합니다. 세 번째로, ‘믿음’(9절上) 은사입니다. 믿음도 성령의 은사로 주어집니다. 한 예로 들면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하나님께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을 믿음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믿음의 은사는 문제에 시달리던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믿음의 성과로 나타나게 하는 은사로 볼 수 있습니다. 네 번째로, ‘병 고침’(9절下) 은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전도하러 보내실 때 병 고치는 은사를 주셨습니다. 성령의 역사로 병을 고치는 일은 복음의 증거로 나타나게 합니다. 다섯 번째로, ‘능력 행함’(10절上) 은사입니다. 이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능력으로 이적 기사를 나타냅니다. 그 능력을 보고 예수님을 믿고 회개해서 구원 얻게 하도록 그렇게 능력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사도 바울도 죽었던 사람을 살린 능력으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데 그것이 능력 행하는 은사인 것입니다. 여섯 번째로, ‘예언’(10절中) 은사입니다. 장래의 일을 하나님이 미리 말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구원 얻는 일에 성령께서 미리 알려 주시는 것을 전하는 일이 예언의 은사입니다. 일곱 번째로, ‘영들 분별’(10절中) 은사입니다. 그 사람이 성령에 이끌리는 크리스천인지 아니면 악령의 앞잡이로 지옥에 끌려가고 있는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적으로 분별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 앞에 우둔하지 않고 영적으로 분별하여 책망하는 일에 쓰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영 분별의 유익입니다. 여덟 번째로, ‘방언’(10절下) 은사입니다. 이 방언의 은사는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으로,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된 ‘오순절 날 성령이 충만하여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자 그곳에 모였던 경건한 유대인들이 각기 자기 나라말로 들리는 방언’과는 다른 것입니다. 그런데 방언의 좋은 점은 방언으로 기도하면 귀신이 도망을 갑니다. 그 방언에 무슨 능력이나 효과가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 그 방언을 하게 하는 이가 성령이시기 때문에 그래서 성령에 쫓겨서 귀신이 도망을 간다는 것입니다. 아홉 번째로, ‘방언 통역’(10절下) 은사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방언은 사람이 알아들을 수 없어서 방언을 통역해 주는 은사가 필요했습니다. (권면의 말씀) 하나님께서 고린도 교회에 성령의 역사가 불같이 일어나게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성령을 통하여 다양한 은사들이 나타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은사 받은 사람들이 자기의 은사가 우월하다는 착각에 빠져 무분별하게 행동을 했습니다. 이 일로 교회가 그 은사로 말미암아 큰 혼란에 빠지게 되어 버렸습니다. 특히 방언의 은사는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고 혼자 떠들어대는 관계로 은사의 부작용을 초래하게 되기도 했습니다. 이에 사도 바울이 은사에 대해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11절)라고 말한 것을 귀담아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각별히 주의해야 할 것은 고린도 교회처럼 은사를 무분별하게 사용하거나 자랑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한 성령 안에서 교회의 유익을 위해 하나님의 뜻에 따라 각 개인에게 주시는 은사는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임에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은사는 교회의 덕을 끼치는 일이 되어야 함을 깊이 새기시길 바랍니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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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기도(7)브라더 앤드류 오픈도어 설립자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마6:13) 20세기 후반에 교회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욱 피상적으로 변했다. 우리는 하나님을 보기 원하며, 하나님께 사용되기를 원하며, 사도들이 본 것과 같은 기적을 보기 원하며, 더 깊은 삶을 살기 원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의 삶과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는 너무 얄팍해서 그리스도인 대부분이 그것을 경험하지 못한다.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그리스도인들과 같아 보이기를 원하며 그들과 같은 말을 하기 원한다. 그러나 그들처럼 기도하고 살며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생동감 있고 흥미진진한 것을 바라는 우리의 요구를 만족시켜 줄 진정한 신앙 경험 대신 다른 것을 받아들이게 되며, 무기력하고 연약하며 헛된 삶을 살게 된다. 오순절에 신자들이 그렇게 했다는 이유로 우리도 할렐루야를 외치며 손을 올린다. 진정한 성령의 은사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 만들어낸 성령의 은사를 과시하기도 한다. 우리는 오순절과 역사상 위대했던 부흥에 임하셨던 것같이 성령의 능력이 실제로 그분의 백성 위에 임재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거의 알지 못한다. 설사 우리가 그러한 임재를 경험하게 된다 하더라도 우리는 신앙의 선배들이 했던 것처럼 우리의 삶을 뒤집어엎을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하다. 우리는 대부분 우리의 안락하고 안전한 생활이 영원히 깨어져도 좋다는 각오가 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기도에는 피상적인 신앙생활로부터 구해달라는 내용이 포함되어야 한다. 피상적인 신앙생활은 생명력이 없는 것으로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께 입술로만 제사를 드리는 것이며, 우리에게 긴급한 문제가 생기기 전까지는 하나님을 문밖에 세워두고 하나님과 상관없이 사는 것이다. 우리는 교회가 지불했던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이 세세토록 교회에 주신 복을 누리고 싶어하는 욕망에서 구원받아야 한다. 지금 구원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구원의 대가를 지불할 필요가 없다. 예수님께서 모두 지불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주시는 특권을 위하여서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대가 없이 그러한 특권이나 복을 받을 수는 없다. 대가를 지불할 각오가 되어 있는가? 하나님이 우리를 사용하실 수 있도록 무엇을 기꺼이 포기하겠는가? 예수님은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요12:25)고 말씀하셨다. (오픈도어 제공)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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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 신앙 변천이 주는 교훈장 재 효 목사 서울성은장로교회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31절)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33~34절)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40~41절) 오늘은 베드로의 신앙 변천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에 대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1. 예수님을 처음 만난 베드로 베드로는 갈릴리 벳새다 사람이고 직업은 어부였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난 내용(눅5:1~11절)을 살펴보면, 하루는 밤이 새도록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그물을 씻고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그 현장에 찾아오셨습니다. 베드로의 배에 오르시더니 무리들에게 말씀을 전하시고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그 말씀에 순종하여 그물을 내리자 두 배에 가득할 만큼 물고기를 많이 잡게 되었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예수님이 어떠한 분인지를 깨닫게 되었고, 예수님 앞에 엎드리어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떠나소서”라고 예수님께 아뢰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내가 너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셨고, 그 말씀을 들은 베드로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2. 예수님을 따르며 기적을 체험하는 베드로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르면서 베푸시는 이적과 기사를 곁에서 다 보게 되고 많은 체험도 하게 됩니다. 마8:14절 이하에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이 심하여 죽을 지경이었는데, 예수님께서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자 그 장모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음식을 대접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후에도 베드로는 제자로서 예수님이 많은 병자들을 치유하시는 것을 직접 목격하였습니다. 또한 마17:1절 이하에 보면,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높은 산에 올라가시더니 그들 앞에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같이 희어지고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대화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영안이 열려서 그들을 보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 모습이 너무나 황홀하여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위하여 초막 셋을 짓고 여기에 계속 살기를 원한다고 예수님께 제의하기도 했습니다. 베드로는 특별한 영적 체험을 하였습니다. 3. 예수님에 대해 신앙 고백을 하는 베드로 예수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을 방문(마16:13절 이하)하셨을 때에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하고 물으셨을 때 베드로가 말하기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을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심히 기뻐하시면서 “이를 알게 하신 이는 내 아버지이시다”고 말씀하시며 베드로의 그 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고난당하시고 죽을 것을 말씀하셨는데, 베드로는 자기의 입장만을 생각하며 그런 일이 절대 예수님께 있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였습니다. 그때 예수님의 반응은 베드로를 사탄이라고 칭하시면서 “네가 사람의 일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는다”고 꾸짖으셨습니다. 4. 예수님을 부인하는 베드로 본문 3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33절) 하며 자신만만해 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34절)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셨습니다. 결국, 제자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님을 부인하고 흩어졌습니다. 나중에 베드로는 닭 울기 전에 세 번 예수님을 부인할 거라고 예언하신 말씀이 생각이 나서 통곡하고 회개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기도할 동안에 여기 앉아 있으라”(36절) 말씀하신 후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등 세 제자들에게는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38절) 하시고 따로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자고 있는 제자들을 보시며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40~41절)고 간곡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자고 있었던 제자들은 결국 예수님의 말씀대로 시험을 이기지 못하고 예수님을 배신하였습니다. 5.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시 만나게 된 베드로 베드로는 제자들과 함께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잡지 못하고 있는 그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말씀하시길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져라 그리하면 잡으리라”(요21:6절) 하였더니 말씀대로 순종하자 그물을 들 수 없을 만큼 고기를 잡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육신의 배고픔을 해결해 주신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영적인 양식뿐만 아니라 육적인 양식도 공급하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곳에서 다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사랑하사 사람 낚는 어부의 사명을 다시 주시고자 함이었습니다. 6. 오순절 날 성령 충만함을 받게 된 베드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분부하시길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지만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1:4절)고 말씀하셨습니다. 오순절 날이 이르자 기도하던 마가 다락방에 성령이 충만히 임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때 베드로도 성령을 받고 말씀을 전하자 3,000명이 회개하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예루살렘 교회의 시작이 되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행하시던 것처럼 기적도 많이 행하게 되었습니다. 성전 미문에 걷지 못한 자를 성령의 역사로 고친 일을 시작으로 룻다의 애니아라는 자가 8년간 중풍병으로 꼼짝 못 하고 병상에 누워 있던 것을 기도로 낫게 하였으며, 욥바의 다비다라는 여제자가 병들어 죽은 것을 살렸습니다. 베드로가 자기 사명을 다 하여 많은 이적과 기사를 나타낼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성령이 충만했기 때문이었습니다. 7. 복음을 위해 쓰임 받은 베드로 베드로와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자 대제사장과 관리들이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제자들을 잡아 감옥에 가둔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공회 앞에 서서 외치기를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행5:29절)고 말하며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였습니다. 이후 헤롯왕이 교회를 박해하자 야고보가 죽고 베드로는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감옥에서도 깊이 잠을 잘 정도로 담대해진 베드로를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셔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마지막 순교할 때는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게 됩니다. (권면의 말씀) 베드로의 신앙 변천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제자로 부르심을 받고 기적을 체험하였지만 자기 생각대로 할 때 예수님께 책망을 받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를 사랑하사 다시 그에게 기회를 주셨고, 그가 성령 받은 이후부터 성령에 이끌리며 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복음을 위해 쓰임 받은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성령 받기 전의 육신적인 베드로의 모습에서 벗어나 회개하고, 성령 충만하여 육신의 생각대로 살지 않고 성령에 이끌리어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힘쓰는 귀한 성도로 쓰임 받기를 축원합니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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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먹는 것도 예배입니다.밥을 먹는 것도 예배입니다. 천석길 목사 구미남교회 신약성경의 복음서를 읽어보면 예수님의 사역에는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함께 식사하는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도 식사를 하셨고, 세리와 같은 죄인들과도 식사를 하셨고, 제자들과 마지막 시간을 보낼 때도, 또 부활 후 다시 만나서도, 그리고 베드로의 실수를 위로하시고 다시 사명을 주실 때도 언제나 식사의 자리에서였습니다. 식사하는 모습이 그렇게 자주 등장한다는 것은 밥을 같이 먹고 싶어 했던 예수님의 의도였다는 것과 교회와 밥은 떼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마침내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오순절을 통해서 교회가 시작되자마자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제자들은 일제히 ‘집집이 돌아가면서 빵을 뗐다(행2:46)’고 했습니다. 즉, 집집이 돌아가면서 식사를 준비함으로써 서로를 향한 사랑을 확인하였으며, 자연스럽게 교회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공동체가 함께 먹는 밥의 중요성은 예수님이 강조하시기 전에 이미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 앞에 나와서 함께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라(신12:7)’고 하실 때 하나님은 이미 밥을 함께 먹는 것을 예배의 연장 선상에서 가르치셨습니다. 식사가 거룩한 예배라는 것을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은 구약성경을 통해서 알았기 때문에 예수님이 거룩하지 않은 사람들과 식사를 하는 것을 볼 때 그토록 기겁을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식사는 우리끼리의 식사가 아니라 구원받아야 할 사람들을 불러 앉히고 함께 은혜를 누리며 앞으로 다가올 영원한 천국의 잔치를 맛보여 주고 싶어 했던 마음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영적인 의미를 안다면 우리는 목장과 교회에서 하는 식사를 거룩한 차원에서 보아야 합니다. 즉, 목장에서 섬기는 마음으로 정성스럽게 차린 밥상에 함께 앉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누리는 거룩한 예배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를 드리기 전에 형제와 화해하라는 말씀을 기억하고 함께 밥을 먹으며 미운 마음 불편한 마음으로 먹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공동체의 식사는 목자의 가정에서만 일방적으로 준비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구원받은 주의 백성으로서 우리가 함께 예배에 참여한다는 마음이 있다면 기꺼이 우리의 집을 열어서 섬김을 준비하는 것이 예배자의 자세이기 때문입니다. 집집이 돌아가면서!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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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에 이끌리는 공동체장 재 효 목사 서울성은장로교회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당신과 함께 거주하는 이곳이 우리에게는 좁으니 우리가 요단으로 가서 그 곳에 우리가 거주할 처소를 세우사이다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가라 하는지라.(왕하 6:1,2) 무리가 요단에 이르러 나무를 베더니 한 사람이 나무를 벨 때에 쇠도끼가 물에 떨어진지라 이에 외쳐 이르되 아아, 내 주여 이는 빌려온 것이니이다 하니(왕하 6:4,5) 엘리사가 나뭇가지를 베어 물에 던져 쇠도끼를 떠오르게 하고 이르되 너는 그것을 집으라 하니 그 사람이 손을 내밀어 그것을 집으니라.(왕하 6:6,7) 우리는 흔히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에 하나님의 쓰시는 사람들에게 성령님이 임재하시고 초자연적 능력의 역사로 쓰임 받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약시대에서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꾼들에게는 성령을 주셔서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하여 헌신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BC847년경 북이스라엘 땅에 있었던 일입니다. 1. 하나님께서 선지학교를 세우심 그 당시 선지자는 하나님 뜻을 전하는 대언자의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구약시대에 기름부음을 받는 직분으로 선지자, 제사장, 왕이 있었습니다. 그 세 직분을 세울 때는 반드시 기름 뿔에 기름을 채워서 그 사람에게 성결예식을 행하고 머리에 기름을 붓고 안수합니다. 기름은 곧 성령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자기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기름부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의 길로 가지 않도록 선지학교를 세워 선지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선지학교는 왕하 2장 3절 이하에 벧엘, 여리고, 요단이라는 곳에 있었는데 선지학교는 현재의 신학교와 같은 곳입니다. 그런데 선지학교에 선지자의 생도들이 넘쳐나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이 넘쳤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생도들을 많이 보낸 것입니다. 2. 엘리사의 겸손함과 생도들의 존경심 엘리사는 선지학교의 지도자(선생)의 위치에 있었으며 생도들을 보살폈습니다. 그런데 아주 작은 규모였던 선지학교의 생도가 너무 많아 장소가 매우 협소해지자 생도들이 엘리사에게 요단으로 가서 그곳에 우리가 거주할 처소를 세우자고 건의하였습니다. 사실 이 사회 조직으로 보면 윗사람이 지시하고 아래 사람이 따르는 것이 보편적입니다. 하지만 엘리사는 아래 사람의 요청을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엘리사가 보인 겸손한 마음은 생도들에게 살아 있는 교육이 되었을 것입니다. 또다시 어떤 생도 하나가 엘리사에게 “종들과 함께 가소서” 하고 요청하자 기꺼이 승낙한 것 또한 같은 마음으로 한 것입니다. 이때 생도들이 자신을 낮춰서 종이라고 말한 것은 성령이 충만한 엘리사를 하나님 다음으로 높이 받들고 따르고자 함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딤전 5장 17절 말씀에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고 하신 말씀을 깊이 되새겨 봐야 합니다. 선지학교처럼 성령이 충만하여 가르치는 자는 항상 겸손할 것과 따르는 사람들은 존중한 마음을 가지고 서로 섬겨 나가야 할 것입니다. 3. 요단에서 벌어진 기적 생도 모두가 요단에 가서 처소를 세우려고 나무를 베는데 한 학생이 나무를 벨 때 쇠도끼를 물에 빠뜨렸습니다. 비싼 쇠도끼를 빌려 왔는데 그만 물에 빠졌으니 얼마나 당황했겠습니까? “아, 내 주여 이는 빌려온 것입니다”하고 외치자 엘리사가 나뭇가지를 베어 물에 던졌더니 쇠도끼가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생도들이 이 기적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엘리사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이 역사하고 계시는구나”하고 느꼈을 것입니다. 교회 안에도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많이 경험할 수 있습니다. 어려운 일을 당할 위기 속에 있을 때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성령께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는 위급한 상황에 빠진 생도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기적을 베푸신 하나님이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단에서 벌어진 기적은 어려운 일을 당하더라도 결국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신 하나님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한 사건이었습니다. 4. 기적이 믿어지는 이유 쇠도끼가 물에서 올라왔다는 것을 인간의 생각과 세상 지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고전 2장 9~10절에 보면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영적인 눈이 가리워져 있기 때문에 본문의 기적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아니 쇠도끼가 어떻게 물에 떠오를 수 있단 말인가? 말도 안 돼!”하며 신화라고 여기고 부정합니다. 하지만 성령 받으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되고 그 하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성령을 받은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성령께서 영적인 눈을 열어 주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지게 하고, 또한 성경의 기적도 믿게 하는 것이지요. 5. 쇠도끼가 물에 빠진 것이 오히려 은혜였다 쇠도끼가 자루에서 빠져 물에 들어간 것은 큰 위기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는 사람들 모두 어려운 일을 당할 수 있습니다. 생도가 즉시 엘리사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처럼 우리 모두는 그 위기 순간에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위기에서 구해주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많은 경우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기 위해 어려운 일을 주시곤 합니다. 생도가 쇠도끼를 빠뜨려서 위기를 당한 것도 하나님의 뜻 가운데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일어나는 일은 우연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일을 그 섭리 가운데 주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쇠도끼가 물에 빠진 것이 오히려 은혜였던 것입니다. 만약 쇠도끼가 물에 빠지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기적을 볼 수 있었겠습니까? 6. 성령 충만한 사람을 통해 하나님은 일하신다 하나님은 성령 충만한 엘리사 선지자를 통해 기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는 성령 충만한 사람으로 쓰임 받는 엘리사를 보며 생도들에게는 큰 도전이 되었을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이 교회에 목자를 통해 양을 보살피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성령 충만한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맡기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처럼 성령 충만한 목자의 본을 따라 우리 성도들도 성령 충만을 사모하고 귀히 쓰임 받기를 하나님께 구하시길 바랍니다. (권면의 말씀) 하나님은 구약 시대로부터 오늘 이 시대에까지 성령으로 역사하시고 많은 기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교회는 성령에 이끌리는 영적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요단에서 보여주신 기적을 믿고, 목자와 양 모두 성령 충만하여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를 통해 이 땅에 이루어지길 기도합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어려움을 당할 때도 낙심하지 않고 기적을 이루시는 하나님만 온전히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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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경북하나신문 신년기획 - 장재효 목사 대담서울성은장로교회 장재효 목사 “지금은 성령시대!”‘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 “하나님의 말씀만을 대언하는 목회자 되어야!”한국교회뿐 아니라 전 세계를 살리는 “영적 운동(Spirit Movement)” 필요 최근 한국 교회는 교회 안팎으로 큰 위기를 겪고 있으며 그에 따라 개혁(改革)과 자성(自省)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여기에 ‘교회의 본질(本質) 회복’과 ‘목회자의 사명’에 대한 해답은 오직 ‘성령 충만’에서만 찾을 수 있다고 가르치는 목회자가 있다. ‘팔순이 넘어서도 쉼없는 열정 목회’, ‘아버지 목사님’의 대명사로 불리는 서울 송파동 성은교회 장재효 목사이다. 본지에서는 신년을 맞아 장재효 목사님과의 대담을 통해 ‘성령 사역’과 ‘목회자의 사명’을 키워드로 한국 교회 회복의 방향을 제시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Q: 예수님의 구속 사역과 성령의 역사하심에 대하여 말씀해 주신다면. A: 신‧구약 성경을 통하여 구약시대에는 성부 하나님께서 자기 형상으로 창조하신 인간 세계를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주관하셨고, 아브라함을 택하심으로 그 계보 가운데서 인류를 죄에서 구속하실 메시아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기로 약속하신 바, 예수님을 아담의 원죄를 피하여 동정 탄생하게 하셨다. 죄없이 사시던 예수님은 택하신 자기 백성들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한 희생양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언약의 피를 흘리시고 <이사야 53:1~6>처럼 희생양으로 죽임당하셔서 인류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다. 그러나 이 사실을 타락한 인간의 이성(理性)으로는 알아볼 수 없기에, 예수님은 아버지께 기도하여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시도록 하셨다(요 14:16). 그리하여 인간은 하나님을 알아보고 그 즉시 자신이 죄인임을 직시(直視)하게 되었다. 죄책감으로 심판·형벌의 불안과 두려움에 어찌할꼬 하는 죄인들에게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 조명, 체험, 감동, 감화’ 같은 다양한 방법으로 믿어지게 하심으로 택하신 백성들의 구원 사역을 감당하고 계신다. 이처럼 성부·성자·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성부시대, 성자시대, 성령시대로 인류 구원을 위한 역할 분담을 하셨고, 지금은 오순절 이후 성령님께서 천국 들어갈 알곡들이 믿어지는 믿음으로 결실하게 역사하시는 성령시대, 즉 성령사역시대이다. Q: 성령의 역사하심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신다면. A: 이 시대에 구원의 주(主) 되신 예수님께서 인류 구원을 위한 사역자로 세워 쓰시기 위해서는 성령에 의해서 회개하고 죄 사함 받아 지옥길에서 천국길로 돌아서게 하시는데, 이것을 ‘리펜트 무브먼트(repent movement)’(회개 운동)라 한다. 오순절 이후 마가 다락방에서 120명이 급하고 강한 바람 소리와 함께 불의 혀 같은 것이 각 사람 머리 위에 임하여 성령이 충만하게 되었을 때,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 2:4)의 역사가 일어났다. 그 14절부터 베드로가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갈릴리 사투리로 설교했는데, 칠칠절(오순절)을 지키러 세계 16개 나라에서 온 사람들에게 각각 자기 나라말로 들려서, 설교 한 번에 3천 명이 회개하고 그들이 성령의 임재와 인도하심을 따라 예루살렘 교회의 초석이 된 것도 성령님의 불같은 역사로 이루어지는 섭리였다. Q: 목회자의 자세와 사명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A: 목회자는 베드로처럼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해야 한다. 성령이 말하게 하신 대로 대언하는 것이 100% 하나님의 말씀이고 그 말씀은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이 수반해서 역사하시기 때문에 아무리 무디고 완악한 심령도 깨어지고 부서지고 녹아져서 회개할 수밖에 없다. 요즘 일부 목사님들이 기도도 않고 성령의 충만한 임재가 없는 상태에서 자기가 만든 설교문을 마치 하나님의 말씀인 양 포장해서 양떼들에게 선포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가 없다. 건축 계획을 세우고 헌금 설교를 계속하거나, 교세를 늘리기 위해 전도에 관한 여러 이론들을 하나님의 것으로 포장해서 양떼를 속이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설교를 계속 들으면 성도들은 예수님을 만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성령 받은 사람에 의해서 또 다른 사람이 회개하고 성령 받고…’ 하나님은 그렇게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Q: ‘성령 충만’은 강단에서부터 먼저 흘러나와야 한다는 말씀이시네요. A: 그렇다.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롬 8:16) 했고,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 8:9)고 성경에 말씀하셨다. 그래서 내가 운다. 하나님 앞에서 통곡할 때도 있다. 나도 이 시대에 58년이나 목회했는데, 한국 교회 원로로서 한국 교회가 성령을 배척하는 것을 보기 때문이다. 신비주의라고 하면서. 그래서 나는 한국교회뿐 아니라 전 세계를 살리는 ‘영적 운동(Spirit Movement)’을 일으키고 싶다. 방송이든 신문이든 기회 되는대로 여러 언론을 통해 메시지를 전하는 것도 다 이러한 마음이 있어서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고후 13:5)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또한, 유다는 “이 사람들은 당을 짓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이 없는 자니라”(유 1:19)고 했다. 교회 지도자들 중에서 성령을 못 받고 육에 속한 사람들을 가리켜 한 말씀이다. 그들은 패당을 짓고 자기 명분과 잇속을 챙긴다. 현대 목사 중에도 목사가 되기까지 철저한 회개가 없어 죄인 그대로이고 심령에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을 모시지 못한 경우를 보게 된다. 그들에게는 영혼 구원에 대한 목사 본래의 고유 사명인 ‘구령 성과’를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이 없다. 그러면 교인들의 눈치를 살피고 비위를 맞추는 직업인이 될 것이며 그 목적의 수단이 다양해지면 삯꾼 내지 사기꾼으로 멸망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Q: 목사님 말씀 경종으로 잘 듣겠습니다. 그런데 바른 목회 현장에도 종종 교회 내에 분열과 대립이 나타남을 보게 됩니다. A: 교회를 다니긴 하지만 회개도 중생도 신앙고백도 없는 교인들이 많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마 23:15)고 하셨다. 이 말씀을 잘 분석해보면, 교회 신도들의 문제점은 원칙적으로 교회 지도자에게 찾을 수 있다. 교회 지도자가 외식하고 성령 충만하지 못하면 그들에게는 구원의 길로 이끌어 줄 가능성이 없기에 양떼들은 교회 다니면서도 불신자와 똑같은 죄악 생활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만, 바른 목회를 하는데도 목회자들에게 대적하고 훼방하며 모함하는 마귀의 앞잡이 같은 양떼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럴 때 목사는 인간적인 생각으로 몇 번 권면해보다가 듣지 않으면 원수 시하고 교회 밖으로 내쫓기도 한다는데, 그래서는 안 된다. 주님께서 택해서 내 목장에 들여보내시고 내 양떼로 맡기셨다면 속썩이는 그 사람은 본심이 아니고 사탄이 그를 사로잡고 회개도 못 하게 하며 말씀을 무시하고 거역하게 하는 것이다. 참 목자라면 그 인생 영혼을 구원시키기 위하여 갑절의 깊이 있는 기도로 성령을 더욱 충만히 받아야 한다. 목사가 애타는 심정으로 그 영혼을 사랑으로 감싸 안고 눈물로 기도하면 목사와 함께하시는 성령께서 강권적으로 역사하시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완악하고 강퍅했던 그 사람에게서 사탄을 몰아내시고 마침내 그도 인간 본심으로 회개하며 목사에게 용서를 빌고 목회에 적극 협력 봉사하게 될 날이 올 것이다. Q: 마지막으로 성은교회 양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A: 부족한 종을 목자로 신뢰하고 존경하고 사랑하며 힘에 겹도록 분에 넘치는 봉사와 중심어린 협조에 뜨거운 눈물로 감사드립니다. 또한, 모두가 회개하고 성령 충만하여 그리스도의 심성으로 서로 이해하고 협력하는 건강한 영적 공동체인 성은교회가 될 수 있게 애쓰신 여러분께 예수님의 이름으로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인터뷰 후기> 한 시간 가까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장재효 목사님의 음성은 힘이 있었고 메시지는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정확했다. 그리고 성령께서 충만히 주의 종에게 임하게 될 때 그것이 얼마나 강하고 아름다운 모습인지를 보고 느꼈다. “성령 받은 사람들이 성령의 역사를 일으키자”는 장 목사님의 메시지가 한국 교회는 물론 전 세계 선교 현장에 깊은 울림으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담·정리=박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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