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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청년면려회(CE)와 안대선 선교사(2)기독청년면려회(CE)와 안대선 선교사(2) 김승학 목사 신학과 교수/기독교교육학 안동교회 담임목사 안대선 선교사 (W.J.Anderson, 1890~1960) 목차 서문 1. 안대선의 출생지 2. 안대선의 출신대학과 신학대학원 3. 안대선의 결혼과 사별 4. 안대선의 안동선교부 부임 5. 안대선과 안동기독청년면려회 6. 안대선과 전국기독청년면려회 7. 안대선의 그 외 사역 8. 안대선의 퇴임 및 별세 3. 안대선의 결혼과 사별 안대선의 부인인 안의리는 1892년 8월 네브래스카 주 새드론(Shadron)에서 출생했지만 로스앤젤레스에서 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의리는 옥시덴탈 대학 재학 시절 켈로그 교수가 지도하는 성경 공부 모임에서 안대선과 만났는데, 이 시기는 북장로교 해외선교부가 안대선을 한국으로 파송하기로 결정한 이후였기 때문에 안의리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두 사람은 교제하면서 선교의 비전을 공유하고 한국에 관해 공부하면서 미리 선교지로 출발할 준비를 한 것으로 추측된다. 왜냐하면 1917년 8월 결혼한 안대선과 안의리는 선교를 위한 준비 없이 한 달 만인 1917년 9월 한국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한국에 도착한 안대선 부부는 순회선교에 최선을 다했다. 안의리 선교사는 남편과 함께 안동지역의 농촌과 산촌을 방문하며 3·1운동의 실패로 실의에 빠져 있던 청년들에게 복음과 희망을 전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사역으로 생각했다. 특히 안의리는 교회 안팎에서 여성 교육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교회가 좀 더 여성교육에 노력하기를 강조했다. 안동선교부에서 사역할 때 안의리는 안동남녀성경학원에서 여학생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교사였다. 그는 한국인들에게 ‘절대 화내지 않는 선생’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을 정도로 후덕하고 온유한 성격의 교사였다. 안동에서 귀경한 안의리는 서울 정신여학교와 피어선성경학원에서 학생에게 성경을 가르쳤다. 또한 그는 수년 동안 여성 선교사 모임의 회장으로 활동하는 등 활발한 여성 선교사였다. 안의리는 안동에서 출생한 지 7개월 된 딸 도로시(Dorothy)를 땅에 묻은 후 셜리(Shirley), 필리스(Phylis), 로라 베드(Lola Bete) 등 세 딸도 모두 안동에서 낳았다. 마을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성경을 교수함으로써 평신도 양육에 열심이던 안의리는 한국에 도착한 지 17년이 지난 1934년 11월 추수감사절을 보내고 42세에 심장마비로 하늘나라로 갔다. 비록 양화진 선교사 묘역에 있는 그의 묘는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고 있지는 못하지만, 그는 당시 누군가 반드시 해야 할 사역을 감당하고 순교 당했기에 그의 죽음은 고결하다고 할 수 있다, 4. 안대선의 안동선교부 부임 1) 첫 딸의 죽음 1917년 가을, 서울에 도착한 안대선 부부는 곧바로 안동선교부로 부임했다. 안동선교부에는 1909년 부임한 오월번 선교사, 1910년에 부임한 권찬영 선교사, 그리고 1914년에 부임한 인노절 선교사가 주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1년 전인 1916년 오월번 선교사가 안동을 떠나 평양으로 이임했기 때문에 안대선 선교사는 결원이 생긴 안동선교부로 신속히 부임해야만 했을 것이다. 안대선의 이름은 1918년 1월 1일 저녁 7시 대구동산성경학교에서 회집된 제3회 경북노회에 처음 등장하는데, 이것은 그가 1917년 안동선교부에 부임했음을 알리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안대선 부부는 안동에 도착하자마자 큰 슬픔을 경험해야만 했다. 1919년 6월 12일에 출생한 첫 딸 도로시가 1920년 1월 25일 7개월 만에 당시 풍토병인 이질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안대선은 도로시의 묘비에 “예수님과 함께(With Jesus)”라고 적었다. 결혼하자마자 선교지인 한국으로 출발했고, 안대선과 안의리 두 사람의 사랑의 결실로 얻은 첫아기의 죽음으로 이들은 큰 상실감에 빠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슬픔을 이겨내고 주어진 사역에 열과 성을 다하여 안동선교에 있어서 새로운 사역의 장(場)을 마련했다. 참고로 안동 경안고등학교 정문 입구 좌측에 3기의 선교사의 무덤이 있는데, 하나는 인노절 선교사의 묘이고, 다른 두 기는 한 살도 되지 않은 안대선의 딸 도로시의 무덤, 그리고 옥호열 선교사의 2살 난 아들 윌리엄의 무덤이다. 2) 성경학교 교사 안대선은 안동선교부의 센터가 있는 안동을 근거지로 영주, 의성, 예천, 청송 지역 등지를 순회하며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세우고, 이미 설립된 교회들을 돌보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또한 안동지역 성도들에게 체계적으로 성경을 가르침으로써 평신도 양육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안동에는 1912년 처음으로 여자성경학원이 설립되어 평신도 여성들에게 성경을 가르쳤다. 하지만 안동지역 평신도의 성경공부에 관한 관심과 열망이 여타 지역에 비해 폭발적이어서 보다 체계적인 성경학교 설립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그래서 안동선교부는 1920년 4월 10일 안동남녀성경학교를 개교했는데, 이때 초대교장은 인노절 선교사, 교사는 권찬영 선교사와 안대선 선교사였다. 안동남녀성경학교는 남녀 모두를 대상으로 첫 입학생을 모집했는데, 1920년 가을에 1백30명이 등록했다. 성경뿐 아니라 수학, 한문, 음악 등 교양과목도 함께 가르쳤다. 그런데 학교의 교실을 미처 준비하지 못했으므로 첫 학기의 수업이 성소병원 진료실에서 진행되었다. 이 학교는 학제를 1년에 두 학기로 나누었고 한 학기에 한 달간씩 수업을 진행하였다. 1922년 교장 인노절 선교사가 순교한 후 1925년 12월 안동성경학교 교사와 기숙사가 새롭게 준공되었으며, 학교의 이름을 개명해 ‘인노절선교사기념성경학교’라고 명명(命名)하였다. ▲안동선교부 기지에 선교사 사택이 준공된 후의 모습. 사진에는 준공된 여러 채의 선교사 사택을 볼 수 있는데, 좌측 숲은 현재 경안고등학교로 오월번 선교사 가족이 1911년 12월 27일 입주한 사택으로 알려져 있다.(사진2) ▲1925년 안동에 준공된 ‘인노절기념성경학교’의 모습. 2005년 철거되어 그 자리에 성소병원 신관이 건축되기 전까지 80년 동안 안동지역을 위한 목회자 양성을 넘어 한국교회와 세계선교에 헌신하는 주의 종들을 배출했다.(사진3) /논문 발췌‧정리=박은숙 기자/ <논문 원본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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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with) 코로나” 전환 시작!11월부터 단계적 일상회복 시행 ··· 종교 활동 인원제한 대폭 완화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 대표회장:소강석 이철 장종현)이 10월 27일 정부의 단계적 일상회복 계획을 환영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11월 1일부터 단계적 일상회복(위드 코로나·with covid19·코로나와 공존)이 시작됐다. 이에 따라 종교 활동 인원제한도 대폭 완화돼 백신 미접종자가 포함될 경우 전체 수용인원의 50%까지 예배 참여가 가능해졌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지난 10월 29일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11월 1일부터 단계적 일상회복 1단계를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발표에 따르면 새로운 코로나19 방역체계인 단계적 일상회복은 총 3단계에 걸쳐 시행된다. 11월 1일부터 4주간 시행되는 단계적 일상회복 1단계는 생업시설 운영제한 완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에 따라 유흥시설을 제외한 다중이용시설의 영업시간 제한이 해제돼 24시간 영업이 가능해졌다. 사적모임도 백신 접종 여부와 무관하게 수도권은 10명, 비수도권은 12명까지 허용된다. 다만, 식당 카페 등 음식물을 섭취하는 장소인 경우 미접종자는 4명까지만 모일 수 있다. 1단계에서는 종교 활동 인원제한도 대폭 완화됐다. 11월 1일부터 정규예배 시 백신 미접종자가 포함될 경우 예배당 좌석 정원의 50%까지 참석할 수 있다. 백신 접종자만 예배를 드릴 경우에는 인원제한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종교시설 내 소모임, 식사, 숙박은 기존대로 금지하고 있어 역차별 논란이 여전히 남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추후 2단계와 3단계 시행 과정에서는 완화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와 관련 한국교회총연합(공동대표회장:소강석 이철 장종현 목사, 한교총)은 단계적 일상회복 1단계 시행을 반기며 최근 논평을 냈다. 한교총은 “지난 2년간 인내하며 방역의 고통을 견딘 국민들과 함께 ‘위드 코로나’를 맞아서 늦은 감이 있지만 교회의 예배 회복과 사회의 일상회복 시작을 반긴다”고 평했다. 이어 “그동안 한교총은 정부 관계부서와 방역당국에 한국교회의 소통창구가 되어 교단과 교회의 뜻을 적극적으로 전하였다”며 “오늘의 결과는 한교총을 비롯한 한교연, 한기총, 그리고 예자연과 전국17개광역시도기독교연합회 등 모두가 노력한 결과이다”고 말했다. 또 “앞으로도 한교총은 완전한 예배 회복을 위해 방역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면서 “접종 완료자로 성가대와 찬양팀 운영, 설교 시 마스크 착용하지 않는 방법, 그리고 모임과 식사 등 세밀한 부분까지 제안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교총은 전국 교회를 향해서는 “현장 예배와 일상의 회복이 당면한 과제이다. 전국 교회는 자율적인 방역지침을 마련하여 시행하고, 교인들과 이웃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며 세상의 희망이 되자. 우리 모두 예배 회복을 위해 하나 된 마음으로 다시 일어나자”고 주문했다. 이예진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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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나라를 대적하기 쉬운 3대 세력주님의 나라를 대적하기 쉬운 3대 세력 조병우 목사 김천제일교회 주님이 부활하신 이후에 부활에 대한 두 가지 방향성이 나타난 사실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잘 알고 있다. 하나는 예수님의 부활이 실제 사실이라는 교회의 주장과 다른 하나는 예수님의 부활은 거짓이고 제자들이 밤에 훔쳐 갔다고 주장하는 세력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을 거짓으로 만든 데는 세 가지 요소가 있었다. 하나는 돈이요, 둘째는 교권 즉 대제사장이요, 셋째는 권력이었다.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군병들이 대제사장에게 가서 사실을 말하니, 대제사장은 군인들에게 돈을 주면서 총독에게 이야기해서 너희에게 해가 되지 않도록 하겠으니 너희는 나가서 제자들이 와서 밤에 훔쳐 갔다고 하라고 시켰고 군인들은 나가서 그대로 말했다. 그것이 사람들에게 그대로 전해졌고, 그것이 진실을 몰아내고 사람들에게 기정사실처럼 되고 만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진리를 대적하는 모임의 역할을 보게 되는데 먼저는 대제사장의 역할이다. 이들은 가장 정직해야 하고,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하는 사람임에도 세상과 짝하면서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는 일에 가장 앞장섰다. 그리고 권력과 결탁하고, 성전을 장사꾼의 이익을 취하는 장터로 만들고, 그 돈으로 사람을 매수하여 거짓을 퍼트리는 일을 한 것이다. 종말에 주의 교회를 위협하는 세력 가운데 가장 중심에는 교회 지도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다. 배도라는 말은 하나님을 믿었던 사람이 하나님을 배신하는 일을 말한다. 세상과 결탁한 교회의 모습이고 타락한 지도자 모습이다. 그리고 권력의 역할이다. 빌라도는 스스로의 입으로 ‘나는 이 사람에게 죄를 발견하지 못하겠다’라고 반복하면서도 결국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사람들의 소리를 이기지 못하고 예수님께 사형을 언도했다. 권력이란 사람들의 여론에 너무도 취약하고 사람들의 여론이 법 위에 존재한다. 권력자는 여론에 움직이는 갈대와 같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권력은 사람들에게 만족을 줄 수 있다면 얼마든지 교회를 핍박할 수 있는 구조이다. 마지막으로 돈의 힘이다.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군인들이 어떠했는가. 대제사장에게 돈을 많이 받은 군인들은 거짓말을 하겠다고 약속했으며 가장 위대한 그리스도의 부활을 거짓 사건으로 만드는 일에 앞장서게 된 것을 볼 수 있다. 돈은 진실까지도 거짓으로 만들고 하나님의 일도 거짓말로 만들게 된다. 그래서 돈은 일만 악의 뿌리이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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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학 목사의 논문 원문(9)- 김정숙, 안동지역 여성사역의 개척자김정숙, 안동지역 여성사역의 개척자 김승학(안동교회) 신학과 교수/기독교 교육학 안동교회 담임목사 김정숙 전도사(金貞淑, 1880~1969) 한국에 도착한 선교사들은 성경 말씀 그대로 남녀노소, 빈부, 계층에 관계없이 복음을 전했다. 그런데 귀족보다는 평민,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더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조선시대 말기의 여성은 유교적 전통으로 인해 철저하게 무시당했다. 한국 전통사회 안에 뿌리 깊은 성차별의 문화와 여필종부, 삼종지도, 칠거지악, 남녀칠세부동석, 부부유별 등의 가부장적 가치관은 여성의 인권을 철저히 억압했다. 무지와 가난, 고된 노동과 억압된 삶을 살던 여성은 한(恨)을 품은 존재였다. 조선시대 말기에 입국한 선교사들의 눈에는 누구보다 한국 여성들이 복음의 대상이요 구원받아야 할 존재로 보였다. 릴리아스 호튼 언더우드(Lillias Horton Underwood) 릴리아스 호튼 선교사는 최초의 장로교 선교사인 언더우드 선교사의 부인이다. 의료선교사인 그는 언더우드보다 8년 연상이었다. 호튼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 여의사였다. 여사는 당시 한국 여성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조선여자들은 대체로 아름답지 않다. 나는 그들을 누구 못지않게 사랑하고 내 형제처럼 여기지만 그 생각은 털어놓아야겠다. 슬픔과 절망, 힘든 노동, 질병, 애정의 결핍, 무지 그리고 흔히 수줍음 때문에 그들의 눈빛은 흐릿해졌고 얼굴은 까칠까칠해졌고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그래서 스물다섯이 넘은 여자에게서 아름다움 비슷한 걸 찾는 건 헛일이다. 다만 아직 무거운 걱정거리나 힘든 노동에 시달리지 않은 나이어린 소녀들과 젊은 색시 중에는 종종 예쁘고 깜찍한 그리고 가끔 드물기는 하나 아름답기도 한, 활짝 핀 우아한 모습을 한 이를 볼 수가 있다. 이런 환경에 있던 여성들은 한국 땅에 도착한 선교사들에게 누구보다 우선적으로 중요한 선교대상이 되었다. 특히 1885년 4월 5일 인천항에 함께 도착한 미국 장로교와 미국 감리교선교사는 선교대상으로서 여성을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1893년 장로교와 감리교의 양 교파 연합모임에서 선언한 10가지 한국선교정책 중에서 두 번째가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선교였다. 하지만 여성선교정책에 관한 장로교와 감리교의 강조점은 차이가 있었다. 사회적인 문제에 더 큰 관심을 갖고 있던 감리교의 경우, 처음부터 의료사업, 교육사업, 자선사업, 여성의 인권회복 등에 치중하셨다. 따라서 감리교는 여성의 계몽과 교육에 있어서 장로교에 비해 앞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직접적인 복음전파를 강조한 장로교는 우선적으로 가난한 자와 낮은 계층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였다. 사회 계층 중에서도 가장 소외된 여성들을 선교의 타깃으로 삼았다. 장로교 선교사들은 여성들이 다른 계층에 비해 더 쉽게, 더 빨리 복음에 반응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여성에게 복음을 전했던 것이다. 하지만 여성들에게 복음이 전해진 첫 10년 동안 여성 복음화의 속도는 매우 느렸다. 여성들이 소극적으로 복음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 여성들이 매우 적극적으로 복음을 수용하고 복음에 응답함으로써 복음전파가 급속히 이루어졌다. 그 결과 사회적 활동에 수동적인 여성들이 전도사역과 계몽사업에 주체적으로 참여할 뿐 아니라 일제의 압제 가운데서 애국 여성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1. 김정숙, 출생과 결혼 “임진(臨津) 이북의 땅은 다시 오랑캐의 땅이 될 터이니 몸을 보전하는 것을 논할 수 없다”는 예언으로 불안해하던 이북(以北) 사람들 중에는 이남(以南)으로 이주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특히 이들이 가장 선호한 지역은 정감록(鄭鑑錄)에서 언급하고 있는 ‘십승지’의 첫 번째 승지(勝地)인 경상북도 풍기(豊基)였다. 당시 난리 중에에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 불안해하던 평안북도의 박천, 영변 지역에는 “풍기로 가야 산다”는 말이 떠돌았다고 한다. 정감록의 예언을 믿고 있던 북한 사람들이 실제로 이남으로의 이주가 시작된 것은 1890년대 후반부터였고, 이어서 1920년대에는 개성·평양에서 약 100여 가구가 풍기로 집단 이주를 했다. 이어 1945~50년 사이에 이북 전역에서 약 600가구가 이주를 했는데, 1가구에 5명만 따져도 600가구이면 3000명에 해당한다. 결국 약 4000~5000명의 사람들이 논과 밭, 가옥을 처분하여 풍기에 정착했는데, 현재 이들 후손들이 1000가구 정도 남아 있다고 한다. 특히 풍기로 이주해 온 사람들 가운데서 다수가 서도지역인 평안도와 황해도 출신이었다. 1907년 창립된 풍기성내교회는 지역 토착 주민들과 다른 지역에서 이주해온 이주민들이 함께 신앙공동체를 이룬 것으로 성내교회 100년사는 기록한다. 정감록을 믿고 이북에서 피난 온 사람들도 성내교회에 출석하였다. 황해도 중에서 특히 해주와 개성출신의 이주자들은 풍기지역에서 인삼재배를 주도하였고, 평안도 출신 이주자들은 1920년에 시작된 과수재배와 직조업을 주도하였다. 이들이 풍기지역의 경제를 일으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6·25전쟁 전후로 다시 북한에서 많은 이들이 이곳으로 이주해왔는데, 이들의 끈질긴 노력으로 전쟁으로 파괴된 직조공장이 빠른 속도로 회복되었다. (이하 논문 내용은 첨부파일 참조)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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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에서 크리스천들은 왜 박해를 받는가?아프가니스탄에서 크리스천들은 왜 박해를 받는가? 아프가니스탄은 이슬람 공화국으로 아프간 국민이 크리스천이 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공식적으로 아프가니스탄에는 국제군, 외교관, NGO 사역자들과 같은 외국인들 외에는 기독교인이 없다. 모든 현지인 아프간 크리스천들은 이슬람에서 개종한 비밀신자들로 공개적으로 신앙생활을 할 수 없다. 아프간에서 이슬람을 떠나는 것은 이슬람법에 의해 죽음으로 처벌될 수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가족과 친족, 부족은 자기들 중 개종한 크리스천을 제거함으로써 ‘명예’를 지켜야 한다. 개종한 자는 죽이거나 또는 정신이상자로 분류하여 정신병원에 보낼 수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크리스천들의 삶은 어떤가? 사회가 조밀하게 친족 중심이기 때문에 사회적 통제가 높고 사적 생활이 드러나지 않기 어렵다. 외국인조차 기독교 자료나 상징물을 소지하기 어렵다. 아프간 교회는 없고 유일하게 교회로 기능하는 하나의 외국인 교회도 그 활동을 감시받는다. 모든 형태의 모임은 탈레반 또는 감시기관의 높은 주목을 받기 때문에 매우 조심스럽게 작은 소그룹으로 나누어 모인다. 지하교회 비밀신자들 역시 극도로 조심하여 만남을 가진다. 오픈도어는 아프가니스탄의 크리스천 수를 ‘수천 명’으로 추산한다. 아프간 여성인권과 크리스천 여성 아프간 여성들은 일반적으로 신체적 학대를 받기 쉬우며 경제적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자율권은 거의 없다. 집에 감금상태가 되는 것은 흔한 일이다. 노예나 창녀로 팔릴 수 있고, 심한 매질을 당하거나 성적 학대를 당할 수 있다. 강제결혼과 강간은 크리스천이 된 여성을 이슬람으로 재개종하게 만드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UN보고(2018년 5월)에 의하면, 아프간 여성 51%가 평생 신체적 성적 폭력을 경험한다. ▲아프가니스탄의 얼굴들.(사진=한국오프도어) <한국오픈도어 제공>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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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김천 복합문화센터 공모 선정···문화·복지 산업단지로 탈바꿈구미시, 모두가 함께하고 즐기는 새로운 산단 문화재생 비전 김천시, 휴(休)& 휴먼케어 멀티플(MultiPlex) 공간 조성 목표 4차 산업혁명 중심지 도약을 위한 경북 산단대개조 프로젝트 착착 진행 중 ▲김천복함분화센터 조가도.(사진=경북도) 경상북도는 경북 산단대개조(구미권)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한 ‘정부 산업단지 복합문화센터 건립 공모사업’에 구미와 김천이 각각 선정됐다고 30일 밝혔다. 산업부 산하기관인 한국산업단지공단이 주관한 이번 공모사업에는 전국 15개 산단이 신청해 6개 산단이 선정됐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경북도만 2개의 산단이 선정됐다. 구미와 김천에는 각각 국비 31억 7500만 원이 지원될 예정이다. 올해 상반기에 한국산업단지공단 공모사업에 구미 아름다운 거리 조성사업, 구미 휴폐업공장리모델링사업, 성주 산단혁신지원센터구축사업이 선정된 바 있다. 이번 공모 선정으로 일자리위원회의 ‘21년 국가 산단대개조 사업’으로 시작된 경북 산단대개조(구미권)사업이 결실을 맺고 있다. 구미 국가제1산업단지 복합문화센터는 공단동 249번지에 건립 예정인 지식산업센터 내 1~3층에 연면적 2,400㎡, 사업비 82억 8800만 원 규모로 조성되며 ‘한뼘 라이프러리’와 ‘신나는 어린이문화학교’로 구성된다. ‘한뼘 라이프러리’는 다목적 커뮤니티 공간 및 생활기술·창작·독서활동 지원 공간이며 ‘신나는 어린이문화학교’는 어린이 케어 공간 및 창의 공간으로 조성돼 노후화된 산업단지를 문화적으로 재생해 소통과 상생의 공간으로 탈바꿈시킬 계획이다. 1969년 최초의 국가산업단지로서 조성된 구미 국가 제1산업단지는 국가 IT·모바일 산업의 수도 역할을 해온 역사적 위상에도 불구하고 지원시설 용지가 50년 전 기준으로 설정돼 있어 주거, 문화·복지 정주여건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며 노후화가 심각한 상태이다. 이번 복합문화센터 사업으로 여가문화시설, 도서관 및 교육시설, 어린이시설, 소모임 및 공동체 지원 공간을 조성해 근로자의 문화적 욕구 충족 및 근로자 주민의 공동체 커뮤니티 회복 등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김천1일반산단 복합문화센터 건립사업은 연면적 1687㎡(지상 2층), 사업비 62억 5000만 원 규모로 조성한다. 1층에는 문화예술 공연장 및 교육장, 북카페, 뷰티케어샵, 어린이노래방을 조성하고 2층에는 헬스&셀프케어센터, 심리상담센터, 동아리실 그리고 옥상에는 정원을 조성해 삭막한 산업단지에 문화의 숨결을 불어 넣을 계획이다. 2007년부터 조성된 김천1일반산단은 자동차 부품 중심의 산업단지로서 현재 76개 업체에 근로자 2300여 명이 종사하고 있으며 3단계까지 조성되면 약 5300여 명의 근로자가 근무하게 될 김천 최대 산업단지이다. 김천산단은 탄탄한 산업단지임에도 불구하고 청년 유입을 위한 근로자 의료, 문화, 복지 환경은 미비했다. 이번 사업은 그동안 부족했던 산단 내 근로자 휴식과 건강증진 공간 및 자기개발을 위한 문화 공간을 조성하고 창업교육, 제품홍보, 구인·구직 정보 공간도 마련하여 산단 활성화를 지원하게 된다. 장상길 경북도 과학산업국장은 “올해 국가 산단대개조사업 선정 이후 ICT 융합 新 전자산업 혁신생태계 조성을 목표로 37개 사업을 계획하고 시행하고 있다”라면서, “도내 산업단지를 제조혁신 산단, 친환경 산단, 일자리 창출 산단으로 줄기차게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박은숙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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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백신접종 완료자 포함 테이블입니다.”성주군, 코로나19 「안심테이블 안내판」 제작·배부 ▲성주군은 식당, 카페에 '코로나19 백신접종 완료자 포함 테이블'이라는 문구가 적힌 「안심테이블 안내판」을 제작·배포했다.(사진=성주군) 성주군은 관내 식당, 카페에 ‘코로나19 백신접종 완료자 포함 테이블’이라는 문구가 적힌 「안심테이블 안내판」 2,700개를 제작하여 배부하였다. 이는 식당, 카페 이용 시 백신접종 완료자에 대한 인센티브로 미완료자 최대 4명 포함 8명까지 사적모임이 허용되나, 표시할 방법이 없어 손님과의 마찰, 방역수칙 위반 오인신고 등으로 인한 혼란을 방지하고 안심하고 업소를 이용할 수 있도록 제작되었다. 업소에서는 4인 이상 동반 시 손님이 제시한 전자증명서(COOV앱), 보건소·질병관리청에서 발급된 종이증명서, 예방접종스티커 등으로 백신접종 완료 여부를 확인하고 안심테이블 안내판을 해당 손님 테이블에 배치하면 된다. 성주형 안심식당, 위생등급제 지정 음식점, 주요 관광지 일원 음식점 등에 우선 지원하며 추가 수요가 필요할 경우 순차적으로 배부할 계획이다. 자세한 사항은 성주군 보건소(☎054-930-6725)로 문의하면 된다. 성주군 보건소 관계자는 “접종 완료자에 대한 가시적인 인센티브로 접종율을 높이고 변경된 방역수칙에 따른 혼란을 줄여 침체한 지역상권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이혜경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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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선기 칠곡군수, ‘한가위는 집에서 낙동강 대축전’ 챌린지 시작“이번 한가위는 집에서 온라인으로 낙동강세계평화 문화대축전을 체험하며 코로나를 예방하고 호국과 평화의 소중함을 느껴 보세요” 백선기 칠곡군수가 추석 명절을 맞아 귀성과 이동 자제를 당부하고 자치단체 최초로 메타버스 플랫폼으로 열리는 낙동강세계평화 문화대축전(이하 낙동강 대축전)을 홍보하는 챌린지를 시작해 눈길을 끌고 있다. 백 군수는 14일 그림판을 들고 촬영한 사진을 SNS에 공유하며 ‘한가위는 집에서 낙동강 대축전’ 챌린지를 처음으로 시작했다. 이번 챌린지는 백 군수가 기획한 것으로 명절연휴 지역 사회에 코로나19 확산을 차단하고 호국과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해 마련됐다. 챌린지는 칠곡군 출신 화가들의 모임인 맥심회 곽호철 회장의 그림을 들고 촬영한 사진과 메타버스 축전장에 접속할 수 있는 QR코드를 SNS에 게시한 뒤 다음 주자 3명을 지목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곽호철 작가는 추석명절 이동 자제를 통해 일상을 회복하자는 의미로 10년 전 가족의 행복했던 일상이 담긴 모습을 그렸다. 경북시장군수협의회장,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부회장을 맡은 백 군수는 다음 챌린지 동참자로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장인 황명선 논산시장과 권영진 대구시장 등을 지목했다. 백 군수는“각 지역에서 백신접종을 완료하지 못한 가족들이 모이는 상황은 굉장히 위험하다”며 “불가피한 상황을 제외하고 귀성과 모임을 최대한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코로나 팬데믹에도 참전용사의 희생과 헌신을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한다”며 “코로나 확산을 방지하고 평화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도록 낙동강 대축전에 많은 관심과 성원을 보내 달라”고 덧붙였다. 한편 칠곡군은 6.25 전쟁 당시 낙동강 방어선 전투에서 희생된 참전용사의 희생을 기리고 평화의 소중함을 알리기 위해 2013년부터 낙동강 대축전을 개최하고 있다. 올해는 9월 1일부터 10월 17일까지 메타버스 축전장을 중심으로 △예술을 배달하는 버스 예뻐 △평화 반디 프로젝트 △XR스튜디오 △구국의 배낭 △기념관이 살아있다 △다크투어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백 군수는 14일 그림판을 들고 촬영한 사진을 SNS에 공유하고 ‘한가위는 집에서 낙동강 대축전’챌린지를 처음으로 시작했다.(사진=칠곡군 제공) 이혜경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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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출애굽기(26)나의 출애굽기(26) 드보라 63. 도시로 나와서 다시 새 삶을 시작함 집에서 나와 집사님 집에 일주일 정도 살았다. 그런데 집사님은 항상 바빴다. 모임도 많고 일도 많았다. 나는 주인 없는 집에 그냥 있기도 미안하고 해서 며칠 머물다가 근처에 아는 동생네 집으로 옮겼다. 다시 인근 도시에 나와서 식당 일자리 구해서 일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름 열심히 성경도 읽고 필사도 하고 했지만 진정한 신앙과 믿음을 가지지는 못했던 부끄러운 모습이다. 나 같은 사람을 보살피고 복음으로 양육하려고 애쓰셨던 집사님과 선생님은 얼마나 힘이 드셨을까…. 그분들의 귀한 희생과 보살핌을 생각하니 나의 나 된 것은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동생네 집에서도 한정 없이 있을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다시 집에 돌아가면 계속 분란과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오래된 저렴한 집을 세로 빌리고 시작했다. 일해서 번 돈은 그래도 딸아이를 남편이 돌보고 있었기에 집에 생활비도 보내고, 북송 되었을 때 단련대에서 나를 꺼내준 남동생에게도 보냈다. 한참을 그렇게 지내던 중에 중국으로 나온 막내동생을 만나게 되었고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듣게 되었다. 첫째 동생이 감옥에서 죽었다는 것이다. 막내동생은 중국으로 나올 때는 한쪽 손이 굽은 장애를 가진 상태였고 형의 죽음에 대한 상처로 분노와 악에 받쳐 있었다. 그렇지만 조선족 선생님의 도움으로 처소에서 생활하면서 복음을 받아들이고 치유의 기적을 경험하고 다시 북으로 돌아갔다. 이 내용은 지난번에서 이미 언급한 내용이다. 64. 남편이 한국으로 갔다는 소식을 듣게 됨 집을 떠나 열심히 돈을 벌며 생활하던 중에 남편이 한국에 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 번호로 전화가 왔는데 남편이 한국에서 건 전화였던 것이다. 남편은 취업 비자로 남한에서 일을 하고 돈을 벌겠다고 했다. 애는 아는 사람한테 돈을 주고 맡겨놓고 갔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 맡긴 집을 찾아서 딸아이를 데리고 새롭게 집을 잡아서 살았다. 이제는 남편이 생활비를 보내주었다. 꼴 보기 싫은 남편이었지만 그래도 뭔가 가정을 위해서 애쓴다는 생각이 들어서 전보다는 잘 연락하고 지내보려고 애를 썼다. 그렇게 분주하게 이곳저곳 이동해가며 지낸 것이 시간이 꽤 흘렀다. 생계를 꾸리기 바쁘다 보니 고마운 집사님과도 제대로 연락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집사님의 남편분을 길에서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했는데 인사를 받아주시는 얼굴이 매우 어두웠다. 무슨 일이 있는가 싶으면서도 집사님 잘 계시냐고 안부를 물었는데 남편분이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가슴이 철렁했다. 무슨 일이 있는 거냐고 다그치니 나지막하게 아내가 북송 당했다고 했다. 천지가 흔들리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나 같은 망나니 같은 년에게도 사랑을 베풀고 귀하게 보살펴주시던 집사님이었는데 북송을 당하다니…. 그날 집에 돌아오는 나의 발길은 천근같이 무거웠다. 그 이후로 집사님의 소식은 들을 수 없었다. (한국오픈도어 제공)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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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연합기관 통합, 10월 31일까지 완료하겠다”한교총 미래발전위원회 첫 모임 가져, ‘탑-다운’ 방식 배제, 절차와 규정대로 한국교회 주요 보수 연합기관인 한교총, 한교연, 한기총 등의 통합이 오는 10월 31일까지 이루어질 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 대표회장:소강석 이 철 장종현 목사)은 한교연 및 한기총 등 한국교회 보수 주요 연합기관과의 통합을 오는 10월 31일까지 완료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한교총 미래발전위원회 내 기관통합준비위원회(위원장 김태영 목사)는 지난 8월 26일 첫 회의를 갖고 연합기관 통합 논의를 본격화했다. 위원회는 “연합기관 통합은 ‘선 문제 해결, 후 통합’ 원칙에 따라 절차와 규정에 따라 진행한다”는 입장을 확고히 했다. 통합 논의 과정에서 제기된 ‘탑-다운’ 방식(통합 선언 후 실무진 이견 조율 방식)은 배제하고 실무 회의와 협의를 통한 논의와 검증 절차를 밟겠다는 의지를 밝힌 셈이다. 위원회는 이를 위한 실무위원으로는 대표회장 소강석 목사와 위원장 김태영 목사, 최종호 기감 감독을 선임했고, 통추위 대변인으로는 성결교단 총회장 지형은 목사가 선정됐다. 지형은 목사는 “통합의 중요성과 극복해야 할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기에 10월 31일까지 통합을 위해 노력하겠다”라고 브리핑했다. 한편, 앞서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는 임원회를 갖고 통합 원칙을 정한 바 있다. 한기총 임시 대표회장 김현성 변호사는 “한기총 내 이단 문제를 지적하는 것은 사실상 통합을 반대하는 논리”라는 입장을 밝혔다. 김 변호사는 연합 논의를 ‘탑-다운’ 방식으로 추진할 것과 한교총과 한교연과의 3자 회동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혜경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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