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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시성시화운동본부 6·25 구국기도회 열려▲‘6.25 구국기도회’에서 간증을 하고 있는 이순실 집사. 이순실 집사 초청, 구미시민교회당에서 구미시성시화운동본부(대표본부장 안재호 목사)가 주최한 ‘6‧25 구국기도회’가 지난 6월 23일(주) 오후 3시 구미시민교회(조민상 목사 시무)당에서 교계 지도자와 성도 1,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6.25전쟁(69주년) 기념으로 열린 이번 연합집회에서 참석한 성도들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 ‘한국 교회의 부흥을 위해’, ‘구미시 성시화와 회복을 위해’ 한목소리로 기도했다. 연합예배는 대표본부장 안재호 목사의 인도로 드려졌으며, 상임본부장 이상영 장로의 대표기도, 이순실 집사의 간증, 조민상 목사·서기선 목사·최재덕 목사의 인도로 특별 기도와 통성 기도, 구기총회장 안정현 목사의 축도 등의 순서가 있었다. 강사로 초청된 탈북 방송인 이순실 집사는 ‘예수님! 안녕하세요?’란 제목으로 북한의 실상과 탈북 과정에 대해 간증했다. 이순실 집사는 북한에서 간호장교로 최전방에 근무했으며, 가난으로 굶어 죽어가는 북한의 생활을 벗어나기 위해 탈북을 결심했다고 했다. 그녀는 8번의 탈북 시도와 모진 고문, 2007년에 있었던 9번째 탈북 시도, 이후 몽골 국경을 거쳐 한국에 오기까지의 고통스러운 과정 등에 대해 간증을 이어갔다. 이순실 집사는 “대한민국에 와서 신앙이 있는 시댁을 만나 지금은 모든 것이 감사할 뿐”이라며 “하나님의 방법으로 통일이 이루어지도록 같이 기도하자”고 했다. 이어 6.25 영상 상영, 애국가 제창을 끝으로 모든 순서를 마쳤다. ▲구미성시화운동본부 주최 ‘6.25 구국기도회’가 지난 6월 23일 구미시민교회당에서 열렸다. 박은숙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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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평안교회, ‘탈북어르신 위로예배 및 잔치’ 열어구미평안교회(담임목사 김동국)는 지난 5월 12일(주) 오전 11시에 탈북 가족들을 초청해 ‘제7회 탈북 어르신 위로예배 및 잔치’를 열었다. 구미평안교회에 매년 진행하는 이 행사는 가정의 달을 맞아 두고 온 고향과 가족을 그리워하는 탈북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고자 마련되었다. 이번 행사에는 구미, 경산, 상주, 김천, 대구, 영천, 안동 등지에서 탈북 가족들이 찾아주었으며, 예배 후에는 식사 대접과 소정의 선물 전달을 통해 따듯한 마음을 나누었다. ▲구미평안교회는 탈북 가족들을 초청해 위로예배를 드렸다. ▲예배 후에 정성껏 준비한 식사를 대접하고 있다. 이예진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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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출애굽기(12)나의 출애굽기(12) 드보라 32. 술, 마작, 부부 싸움… 나는 다시 시골로 돌아왔다. 남편은 방황하는 내 모습을 보고, 특히 돈 벌겠다고 가출했다가 돌아온 나를 보고 걱정되었는지 술만 마시지 말고 밖에서 사람들하고 어울리라고 돈을 조금 쥐여주었다. 그렇지만 시골 마을에 사람들이 어울려 놀만한 거리가 별달리 있었겠는가? 그저 모이면 마작을 치는 것이었다. 나도 자연스럽게 마작에 재미를 붙였다. 마작하면서 돈을 잃으면 분해서 돈을 빌려서 또 하고 또 잃고 그랬다. 그렇게 아침부터 저녁까지 마작을 하고 있으면 남편은 나를 잡으러 왔다. 나는 괜히 집에 가서 또 남편과 싸웠다.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다. 33. 위성 TV로 한국 드라마를 보다. 그렇게 하루하루 보내던 때에 우리가 자주 마작을 하던 집에 한국 위성 TV가 들어왔다. 그 집에서 마작을 놀다가 한국 드라마가 나오는 것을 봤다. 그전에도 한국 드라마가 방송이 안 된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중국어 더빙이 된 방송이었다. 그렇지만 그 집의 드라마는 한국말로 방송이 나오기 때문에 너무 집중되고 몰입이 되었다. 드라마에 빠지기 시작하자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남한이 너무 부럽고 멋있었다. 북에서 알던 그런 곳이 아니었다. 특별히 한국 남자는 남조선 괴뢰도당을 따라 포악하고 악랄한 줄로만 알았는데 드라마에서 한국 남자는 정말 보들보들했다. 여자들을 많이 배려해주고 말도 예쁘게 하고…. 드라마를 보다가 내 처지를 생각하면 기가 막혔다. ‘같은 여자로 태어났는데 누구는 이렇게 고생하고 누구는 저렇게 대우받는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드라마를 열심히 보다 보니 문득 나도 저런 이층집에서 잘살아 보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34. 북한 가족과 연락이 닿다. 그즈음 우리는 딸을 낳았다. 이 시골에는 학교도 제대로 없기 때문에 자식 핑계로라도 나중에 시골을 탈출할 가능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에 우연찮게 이전에 거래하던 대방하고 연락되었다. 애가 막 2개월 되었을 때였다. 그렇게 해서 그 사람을 통해 북한의 가족까지 찾을 수 있었다. 대방에게 돈을 받지 못했던 형부는 결국 망하고 집은 이사를 해야만 했지만, 다행히 감옥까지는 가지 않고 다른 회사에서 일하게 되었다고 했다.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제 가족들에게 송금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가족과의 연결점을 찾았으니 정말 기쁜 일이지만 그 일로 남편과 나는 돈이 생길 때마다 싸우기가 일쑤였다. 나는 조금이라도 북의 가족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에 송금하려고 했고 남편은 돈이 없다고 막았다. 나는 속상해서 남편이 미웠고 가난한 집구석이 싫었다. 그 사이 우리 시골에도 단속의 손길이 뻗쳐왔다. 하루는 밤에 공안이 와서 아기가 없는 탈북자 2명을 잡아갔다. 너무 놀라고 무서웠다. ‘시내로 가면 안전할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에서는 종종 대대적으로 탈북자를 잡으러 다니는 시기가 있다. 그럴 때는 시내의 남편 친척 집에 숨어있기도 했다. (오픈도어 제공)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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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출애굽기(11)나의 출애굽기(11) 드보라 29. 돈을 벌기 위해 도시로 나가다. 그렇게 술에 취하고 남편과 싸우며 이렇게는 못 살겠다 싶었던 어느 봄이었다. 도시 사람들이 농촌 일손을 도와주며 일당을 벌려고 우리 동네를 찾아왔다. 그 사람들은 당시 20대 후반의 나이에 탈북자로 시골에 있는 내 모습을 보고 “젊은 사람이 이렇게 외지고 어려운데 사느냐?”하며 안타까워했다. 시골은 항상 돈이 없었다. 그분들 중 한 분이 도시 나가면 돈 버는 데 많다며 내 연락처를 받아갔다. 그리고 얼마 후 그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나는 전화를 받고는 무작정 짐을 싸서 도시로 출발했다. 30. 북경에 가서 마사지 일을 시작하다. 어렵게 이동해서 그 사람을 만났다. 처음에 그 사람은 대뜸 나에게 한국 가자고 했다. 나는 안기부 사람인가 싶어서 절대로 안 간다고 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나에게 돈을 벌도록 도와줄 사람이라며 어떤 이상한 남자를 소개하더니 그 사람과 함께 나를 북경으로 보냈다. 북경에서 어떤 큰 건물 지하로 들어갔다. 으쓱하고 색깔이 뻘건 불이 많은 그곳은 사람들이 샤워도 하고 안마도 하는 그런 곳이었다. 다행히 사장은 연변 사람이라 조선말을 했다. 사장은 나에게 마사지를 배우라고 했다. 그곳에는 오후만 되면 엄청 예쁜 대학생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애들이 단체로 와서 마사지했다. 홀 같은데 남자들이 흰 가운을 입고 누워 있으면 그 아이들이 마사지하는 것이었다. 사장은 그중 어떤 여자한테 나에게 마사지를 가르치라고 맡겼다. 나는 마사지를 배워서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마사지에 전혀 소질이 없었다. 나는 열심히 주무르는데 남자가 아파하기 일쑤였다. 더는 못하겠다 싶어서 사정했더니, 사장은 다른 일을 소개해 주었다. 어느 공안의 집에 어머니를 모시는데 가정부를 하라는 것이다. 공안이라니… 당장 나를 잡아갈 수도 있는 사람 집에서 어떻게 가정부를 하라는 건지 눈앞이 캄캄했다. 그래서 안 하겠다고 하고 다시 나와 보니 또 마사지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31. 일을 접고 다시 시골로 돌아오다. 가슴이 답답하고 암담했다. 그러면서 괜히 감정이 북받쳐서 그냥 다시 집에 보내달라고 사무실에서 울기 시작했다. 한참을 울었더니 사장이 나를 데리고 기차를 태워서 다시 연길로 보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정말 아찔한 일이었다. 그 사람이 나를 다른 험한 곳으로 팔아먹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기차표까지 사주고 나를 보냈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도 큰 손해였을 것이다. 게다가 북경까지 왔다 갔다 한 것 자체가 사실 너무 위험한 일이었다. 나중에 동네에서 친하게 지내던 예쁘장한 중국 언니에게 그 이야기를 하자 나에게 대뜸 “기차 칸에서 차표 검열 안 하디?”하고 물었다. 신분증 검사를 못해도 2번은 하는데 너는 어떻게 피했느냐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정신이 아찔했다. 그때는 몰랐지만, 주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셨다는 것 외에는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오픈도어 제공)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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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출애굽기(8)나의 출애굽기(8) 드보라 20. 자동차 사고에서 극적으로 살아나다 언니네를 기차로 가려니 한 달 넘게 걸릴 것 같아서 자동차를 얻어서 탔다. 담배 한 통을 뇌물로 찔러주고 짐을 가득 실은 써비차 위에 앉아서 갔다. 그렇게 길을 얼마나 갔을까…. 외진 길에 차가 가는데 갑자기 짐들이 한쪽으로 서서히 넘어가기 시작했다. 남자들은 “어… 어 넘어간다.”하면서 막 뛰어내렸다. 그렇지만 나는 몸이 둔해서 미처 피하지 못하고 짐과 함께 넘어가 버렸고, 뒤집힌 차 아래 깔렸다.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었던 아찔한 상황이었는데 다행히 다리만 차에 깔려서 목숨에는 지장이 없었다. 그 사고로 2명이나 죽었다. 경찰은 그 운전수를 잡아가고 나머지는 버리고 갔다. 우리는 비를 맞다가 다른 차를 얻어 타고 길을 이어갔다. 나는 먼저 친정엄마네를 갔다. 남편이 죽었다는 말에 부모님은 안타까워하면서 나를 집에서 쉬게 하셨다. 내가 친정에 있는 동안 아버지는 나에게 재혼을 권하셨다. 초소에서 일하는 홀아비 군인을 소개해 주시겠다고 했다. 나는 그래도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했다. 신랑이 사망한 지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어떻게 재혼을 생각하겠느냐며 펄쩍 뛰었다. 그렇게 재혼 건으로 부모님과 다투다가 나는 너무 화가 나서 집을 뛰쳐나왔다. 21. 언니네 집에서 일을 시작하다 나는 이어서 언니네를 찾아갔다. 언니는 나를 마땅치 않게 생각했지만 내가 혼자되었다는 소리를 듣자 그래도 가족의 정으로 동생 살 궁리를 함께 해주었다. 그 당시 형부는 외화벌이 사업소에서 일했기 때문에 그 어려운 시대에도 먹고 살 수 있었다. 나는 나중에 안정되면 아이들을 데리고 와야겠다고 생각하며 일단 형부의 일을 도우면서 지냈다. 형부네 업체는 일이 참 많았다. 비록 남들에 비해 형편은 좋아 보였지만 형부도 수익을 내고 배정된 돈을 상납해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큰 부담에 시달렸다. 우리가 하는 일은 중고 물품 여러 개를 가져다 재조립해서 완제품으로 만들어 중국에 파는 일이었다. 수지가 잘 안 맞아서 물건 사이에 골동품도 끼워서 팔기도 했다. 그렇게 1년을 지냈다. 나름 일에 적응했다 생각하는 와중에 일이 터졌다. 우리와 거래하던 중국 대방이 갑자기 연락 두절이 되어서 물건의 대금을 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당장 당자금 입금일이 다가오는데 만약에 입금을 못 하게 된다면 큰 봉변을 겪을 것이다. 그렇지만 북한 안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22. 형부 일을 해결하기 위해 중국으로 탈북하다 다들 고민하고 발만 동동 굴리는 데 나라도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형부에게 중국에 잠깐 가서 거래했던 대방을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형부는 “미쳤냐. 여자 혼자 어딜 가냐!”며 펄쩍 뛰었다. 그렇지만 며칠이 더 지나고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형부도 마지못해 허락했다. 그렇게 나는 탈북 아닌 탈북을 했다. 당면한 일만 제때 처리하고 오겠다고 넘어간 것이 그렇게 긴 여정이 될 줄을 당시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오픈도어 제공)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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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18년째 기독교 박해지수 1위북한의 기독교 박해가 여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오픈도어선교회는 지난 16일 서울 사랑의교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19 세계 기독교 박해 보고서’(World Watch List)를 발표했다. 북한은 18년째 연속 기독교 박해 국가 부동의 1위다. 다니엘 간사(북한)는 “최근 남북관계 진전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20~40만 명가량의 기독교인들의 생활은 여전히 통제돼 있다”며 “특히 북중 접경지역의 북한사역 선교사들과 탈북자들의 상황이 더 위험해지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의 뒤를 이은 국가는 아프가니스탄, 소말리아, 리비아, 파키스탄 순이었다. 특히 중국이 지난해 43위에서 올해 27위로 순위가 급등해 주목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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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목회자부부 초청 전도세미나한국도농살리기운동본부(대표 정연수 목사, 미성교회)는 이달 27일, 28일 양일간 옥빛골문화촌(경북 의성군 금봉로 392)에서 제10회 목회자부부 초청 세미나를 개최한다. 이번 세미나는 목회현장 개척부터 작은교회가 전도를 통해 성장하는 방법까지 함께 나눌 예정으로 회비는 무료이며 많은 목회자 부부들의 참가를 기대하고 있다. 강사로는 정연수 목사를 비롯해 박용배 목사(청라사랑의교회), 홍동명 목사(대구성산교회), 양승대 목사(울산사랑의교회), 정운락 목사(부산주만교회), 최한욱 목사(대신교회), 김형천 목사(은천교회 원로)가 강의를 맡았으며, 윤O진 선교사(탈북목사)가 간증을, 조정만 장로가 찬양 인도를 한다. 특히, 정연수 목사는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기도와 전도에 미치면’이라는 제목으로 그간의 정 목사의 교회개척 및 부흥사례(1년 반 만에 7-80명 출석)를 강의에서 밝힐 예정이다. 이번 세미나에는 목회자 부부라면 전국 누구나 참가할 수 있으며 숙소배정은 선착순으로 한다. (※문의: 김재만 목사 010-8851-9191, 정연수 목사 010-3807-6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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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도 봉사활동으로 이재민 섬겨지난 23일, 탈북민 공동체인 주사랑 교회 이사랑 목사와 10여명의 성도들이 이재민들을 돕기 위해 기쁨의교회 지진대피소를 찾았다. 생업이 있지만 돕고 싶은 마음에 휴가를 내고 참여한 사람이 대부분이다. 청소와 궂은 일에는 자신있다는 탈북민들은 곳곳으로 흩어져 화장실, 복도, 계단 등을 청소했다. 식사를 마치고 주방과 식당 정리를 도맡았다. 김장과 반찬 만들기에도 힘을 보탰다. 힘든 내색 없이 주방 일을 마무리하고 봉사활동을 마쳤다. 봉사에 참여한 탈북민은 “지진 후 몇 일만에 이재민들을 위한 대피소와 천막이 신속히 설치되는 모습을 보고 대한민국이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봉사를 마친 후 이사랑 목사는 탈북민들의 정성을 모은 성금을 기쁨의복지재단에 전달했다. 이사랑 목사는 “지역 주민들이 어려운 시기에 탈북민들이 도움을 줄 수 있어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번 봉사를 계기로 탈북민들이 지역 사회에 더욱 녹아든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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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67주년)기념 구미시 구국기도회 개최6.25(67주년) 구국기도회가 지난 25일 구미시성시화운동본부(대표본부장 진상권) 주최로 구미시민교회(담임목사 조민상) 본당에서 지역 목회자와 성도 등 1,0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개최됐다. 연합집회로 드려진 이번 구미시 6.25 구국기도회에는 서임중 목사(포항중앙교회 원로)가 초청강사로 메시지를 전했으며, 2부 순서로 월드비전 홍보대사인 다윗과 요나단의 황국명 목사가 찬양을 인도해 참석자들에게 큰 감동을 끼쳤다. 서임중 목사는 설교를 통해 “믿는 자라면 하나님의 마음을 봐야한다”며 “절박한 환경에 처한 대한민국을 보시는 하나님의 절규하는 마음을 볼 수 있는 성도가 되자”고 전했다. 계속해서 서 목사는 “대한민국을 압제자의 손에서 건지신 이는 독립투사가 아닌 하나님이시다”며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 “미래를 살아가야 할 우리에게는 역사를 거울로 볼 수 있는 혜안(慧眼)이 있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역사를 아이들에게 가르쳐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잃지 않도록 지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2부 다윗과 요나단의 찬양 중 1950년 한국전쟁 시 한국의 전쟁고아를 돕기 위해 설립, 현재 전 세계 100여 개 국가에서 일하는 세계최대규모의 국제구호개발 NGO인 월드비전에 대한 소개와 후원 신청을 받았다. 이번 구국기도회를 통해 모금된 기금은 6.25전쟁 당시 6,000명의 전투 병력을 지원, 우리나라를 지원한 에티오피아를 돕는 일에 사용된다. 현재 에티오피아는 가난과 극심한 기근으로 많은 국민들이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날 행사 참가자들은 연합예배 전·후 시간을 통해 월드비전 구미지회에서 준비한 보리떡과 주먹밥, 미숫가루 등을 체험하며 전쟁의 참상을 되새기는 기회도 가졌다. 6.25구국연합예배는 진상권 목사(성시화운동본부 대표본부장)의 인도로 드려졌으며, 이진호 목사(기독교총연합회장)의 대표기도, 서귀석 목사(교역자연합회장)의 성경봉독, 구미남교회의 찬양, 서임중 목사의 ‘우리민족의 나아갈 길’(수23:1~8)이란 제목의 메시지 선포를 통해 나라사랑의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이 됐다. 이어 특별기도 시간, 최광락 목사(강동)가 ‘북한 동포와 탈북자를 위하여’, 김동혁 장로(평신도연합회장)가 ‘남북 평화통일과 세계평화를 위하여’, 강재식 목사(등대)가 ‘나라와 민족, 위정자를 위하여’, 심재홍 장로(장로연합회장)가 ‘구미시정 및 경제 활성화를 위하여’, 우종휴 목사(경북기독교총연합회장)가 ‘구미성시화를 위하여’ 기도했다. 이어서 서동구 장로(회계)의 헌금기도와 진격교회 장병들의 특송, 정기용 목사(사무총장)의 광고, 김승동 목사(지도자협의회 회장)의 축도로 연합예배를 모두 마쳤다. 2부 행사는 안재호 목사(성시화운동본부 상임본부장)의 사회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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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출애굽기(5)나의 출애굽기(5) 드보라 14. 남편과 단란한 가정을 꾸리다. 지난날을 생각해보면 고난이 유익이라는 고백이 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흘러나온다.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북한에서의 일들도 그 당시에는 괴롭고 끔찍한 일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아픔 속에 절망한 나를 구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었다. 지난 이야기에서 나누었던 것 같이 친부모와 가족들에게는 천덕꾸러기였던 나지만 남편과는 사이가 좋았고 큰 사랑을 받았다. 남편을 통해 채움 받으려고 했다. 아마 남편이 계속 함께 있었다면 나는 절대 탈북하지 않았을 것이다. 남편은 성품도 보통의 북한 사람처럼 우락부락하지 않고 속 깊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의지하며 절대적으로 먹을 것이 부족했던 그 어려운 상황을 이겨냈다. 15. 시댁에 불어닥친 줄초상 그러던 어느 단옷날이었다. 명절이라고 친척들이 셋째 시형네 모였다. 우리 집은 막내였다. 사실 고난 행군의 기근이 시작된 이후 우리 시댁은 큰 어려움을 겪었다. 첫째 시형네는 아이가 무엇을 잘못 먹었는지 정신이 이상해져서 고생하다가 죽었다. 슬퍼할 새 없이 시형도 배고픔에 풀을 뜯어 죽을 쑤어먹다가 배앓이를 해서 일주일 만에 못 일어나고 돌아가셨다. 가정이 풍비박산 났다. 가정의 비극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첫째 시형께서 돌아가시고 2개월 후에 둘째 시형이 돌아가셨다. 농장에서 감자농사를 했었는데 너무 먹을 것이 없어서 감자 껍질 발라먹다가 결국 영양실조로 사망했다. 집안에 줄초상이 났다. 멀리 있던 우리를 포함한 다른 형제들은 깊은 촌에 살아서 제때 소식을 듣지 못하고 장례에 가보지도 못했다. 알았다면 없는 살림이지만 조금이라도 도왔을 텐데… 비통하고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집안에 어려운 일이 있다 보니 일단 남은 형제들이 단옷날을 맞아서 모이긴 했지만, 흥이 날 리가 없었다. 그렇게 우울한 분위기 속에 원체 술을 좋아하는 집안이라 그래도 없는 살림에 명절이라고 어디서 술을 구해왔다. 남은 세 형제가 술을 마셨는데 남편을 제외한 나머지 두 분 시형은 술버릇이 고약했다. 넷째 시형은 술만 먹으면 동네 사람을 패고 다니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고 다섯째 시형은 밖으로 돌아다니지는 않았지만 대신 아내를 팼다. 고약한 술버릇 때문에 문제가 많았다. 이번에도 오랜만에 가족끼리 술자리가 만들어진 데다 집안에 안 좋은 일이 많았던지라 금세 술잔이 비워지고 다들 얼큰하게 취하셨다. 그런데 그때 고약한 버릇대로 넷째 시형이 또 동네 거리로 박차고 나갔다. 우리 남편은 형님이 또 누구와 싸우는 건 아닌가 싶어서 급하게 따라나섰다. 그러고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오픈도어 제공)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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