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09 (금)

  • 흐림속초6.1℃
  • 흐림-0.6℃
  • 흐림철원0.8℃
  • 흐림동두천2.0℃
  • 구름조금파주0.5℃
  • 흐림대관령-3.9℃
  • 흐림춘천-0.2℃
  • 구름조금백령도7.7℃
  • 구름많음북강릉6.8℃
  • 흐림강릉6.6℃
  • 흐림동해6.7℃
  • 구름많음서울4.3℃
  • 구름조금인천5.8℃
  • 흐림원주-0.2℃
  • 맑음울릉도9.7℃
  • 구름많음수원3.5℃
  • 흐림영월-1.8℃
  • 흐림충주-0.5℃
  • 구름많음서산6.8℃
  • 구름조금울진8.1℃
  • 흐림청주2.0℃
  • 구름조금대전2.9℃
  • 구름많음추풍령1.5℃
  • 구름조금안동-0.8℃
  • 구름많음상주-0.6℃
  • 맑음포항7.0℃
  • 구름많음군산4.9℃
  • 맑음대구2.7℃
  • 흐림전주7.5℃
  • 맑음울산9.2℃
  • 흐림창원5.6℃
  • 흐림광주6.8℃
  • 흐림부산10.0℃
  • 흐림통영9.2℃
  • 흐림목포7.2℃
  • 구름많음여수8.8℃
  • 흐림흑산도10.3℃
  • 흐림완도8.1℃
  • 흐림고창4.6℃
  • 흐림순천4.8℃
  • 구름조금홍성(예)3.7℃
  • 흐림-0.2℃
  • 흐림제주11.5℃
  • 흐림고산11.8℃
  • 흐림성산10.8℃
  • 흐림서귀포11.0℃
  • 흐림진주5.1℃
  • 구름조금강화2.9℃
  • 흐림양평0.1℃
  • 흐림이천-0.1℃
  • 흐림인제-1.5℃
  • 흐림홍천-1.5℃
  • 흐림태백-2.2℃
  • 흐림정선군-3.3℃
  • 흐림제천-1.4℃
  • 흐림보은-0.7℃
  • 흐림천안0.4℃
  • 구름많음보령7.8℃
  • 구름많음부여1.4℃
  • 구름많음금산0.3℃
  • 흐림2.3℃
  • 흐림부안4.6℃
  • 흐림임실2.6℃
  • 흐림정읍5.3℃
  • 흐림남원2.1℃
  • 흐림장수1.3℃
  • 흐림고창군5.8℃
  • 흐림영광군6.3℃
  • 흐림김해시5.7℃
  • 흐림순창군2.2℃
  • 흐림북창원5.0℃
  • 흐림양산시6.4℃
  • 흐림보성군8.0℃
  • 흐림강진군6.0℃
  • 흐림장흥5.9℃
  • 흐림해남5.2℃
  • 흐림고흥7.9℃
  • 흐림의령군2.1℃
  • 흐림함양군1.8℃
  • 흐림광양시8.0℃
  • 흐림진도군6.2℃
  • 흐림봉화-0.9℃
  • 흐림영주0.1℃
  • 흐림문경1.3℃
  • 맑음청송군-2.2℃
  • 구름조금영덕7.7℃
  • 맑음의성-0.9℃
  • 구름많음구미2.4℃
  • 구름조금영천1.5℃
  • 맑음경주시4.0℃
  • 흐림거창0.3℃
  • 구름많음합천2.2℃
  • 흐림밀양2.7℃
  • 흐림산청1.6℃
  • 흐림거제8.7℃
  • 흐림남해7.7℃
기상청 제공
외부기고 - 일제 36년을 보는 2분법적 시각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외부기고 - 일제 36년을 보는 2분법적 시각

달제교회 김원식 목사.jpeg

김원식 목사

의성 달제교회

 

제국주의가 최고조에 달한 20세기 초, 일본을 비롯 서양의 몇몇 강대국들은 지구 표면적의 80%를 식민지 혹은 보호령의 이름으로 지배하고 있었다. 대영제국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영국은 혼자만도 전 세계 인구와 지표의 4분의 1을 포괄하였다. 이는 현재 지구 상에 거주하는 인구 대다수가 식민주의를 경험한 사회에 살았으며 그들의 삶의 많은 부분이 아직 식민 지배가 남겨놓은 족적(足跡)에 의해 영향받고 있다는 말이 된다.

 

식민 지배는 본질상 협력자를 필요로 한다. 이방인 지배자들은 아무리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소수이기 때문에 식민지 통치를 위해서는 반드시 현지인들의 협력이 필요로 했다. 그럼 현지인들 가운데 누가 협력자가 되었을까? 그 가운데는 일신상의 영달을 위해 협조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일부는 외세의 힘을 빌려서라도 자기 사회를 근대의 단계로 끌어올리는 것이 시급하다고 믿었던 근대론 자들도 있었다.

 

식민주의가 문명과 야만이라는 구도를 가지고 주변 국가에 침투해왔을 때 조국의 근대화를 갈망하는 지식인들은 식민주의가 수반한 근대의 이상에 현혹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무작정 식민주의에 협력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주저하는 협력자들이었다. 이들 지식인은 식민주의자들의 근대성을 일정 부분 받아들이면서 그들을 적절히 이용하고 통제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 길이 조국을 위한 길이라고 확신했다. 그들의 낙관적 이상은 결국 허상임이 판명되었지만, 당시 상황에서 그들은 그 길이 최선이라고 생각해서 그 길을 갔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친일파 문제는 자주 정치적 맥락(脈絡)에서 제기되고 이용되고 있다. 그러나 친일파라고 일괄적으로 매도당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분명 주저하는 협력자들이 있었을 것이다. 일제시대를 살고 있는 한국인들 가운데 자신과 가족을 희생하고 독립 투쟁에 헌신하는 영웅적 삶을 살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식민주의가 가져다주는 근대적·물질주의적 혜택에 매료되어 일제의 지배를 찬양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이 양극단(兩極端) 사이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식민시기 일상사(植民時期 日常史)’가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식민 지배에 대해 다양한 대응과 입장이 있었음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이것 아니면 저것 식의 이분법적 인식에 길들어져 있어 일제시대를 바라볼 때도 이런 흑백론 시각이 압도적이다. 그러나 식민시기에 있었던 다양한 정치적 스펙트럼을 외면하고, 이분법적 시각으로만 일제 36년을 바라보면 우리의 사고는 경직(硬直)하게 된다. 경직된 사고는 사물의 중층적면(中層的面)을 보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에 국론 분열은 여전(如前)하게 된다. 매사에는 시()가 있으면 비()가 있는 법이다. 그렇기에 시와 비를 함께 보고 사안을 파악하는 안목이 절대 필요하다.

 

인간 사회는 복잡성(複雜性)과 복합성(複合性)을 가지고 있다. 사람은 삶을 복잡다단(複雜多端)한 과정에서 때로는 가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되기도 하면서 살아간다. 인간의 삶을 이분법으로 두부 자르듯이 잘라 이거 아니면 저거라고 단순화시킬 수 없다. 일제 36년을 살은 사람의 삶도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다원적 시각에서 한 인물의 생애 전체를 조망하지 않고 일정 단계의 행위만을 문제시하는 것이나, ()은 인정하지 않고 과()만 강조하는 것은 올바른 접근법이 될 수 없다. 그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리고 난 후에 일제시대에 대해 포괄적인 판단을 해야 한다.

 

이를테면 윤치호(尹致昊)의 경우, 그는 조국의 독립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교육과 계몽이 급선무하고 확신했다. 그 일에 일제가 제공할 수 있는 이기(利器)를 이용하려 했다. 그것은 간과한 채 친일 행위만 부각시키는 것은 그를 전체적으로 이해하는 방식이 아니다. 민족주의자였던 그가 그것으로 옥고까지 치른 사람이 어떠한 사상적 궤적(軌跡)을 통해 민족주의로부터 친일에 이르렀는지 제대로 알려 하지도 않고 아주 간단히 그를 친일파로 치부해버린다.

 

우리는 일제 36년을 이분법적 단순 선()에서 벗어나야 한다. 역사는 단선적(單線的) 하나의 역사가 아니라 서로 상충하고 모순되기도 하는 복수의 역사로 이루어진다. 단순함으로는 인간 사회도 인간 역사도 바로 이해할 수 없다. 색깔은 검은색과 흰색만 있는 것이 아니다.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남색, 보라 여러 색이 있다. 이분법적(二分法的) 해석이 명쾌해 보이고, 올곧은 사람으로 보인다는 유혹에 빠져서는 안 된다. 이분법에서 벗어날수록 이제껏 보지 못한 측면이 드러나게 되고 타인에 대한 이해와 관용도 깊어진다. 그때 우리 사회 증오와 갈등은 해소되고 화합의 길로 가게 될 것이다.

 

편집부 www.gbhana.com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